수중단맛

[아록슈슈] Deep Abyss Brinicle

퍄퍙책미 2022. 6. 19. 21:09

KPC 프루헤 슈테른     PC 시아록

날짜 2021.10.30 ~ 2021.11.20

플레이타임 총 21시간

원문 시나리오 링크     https://dear-heresy.postype.com/post/8882301

 

 

※아래 내용은 플레이로그입니다. 시나리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므로 열람에 주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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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걷고 있습니다.
 
발아래 닿는 단단한 땅의 감촉이 어색합니다.
 
몸을 받쳐주는 물이 없으니 한 걸음 한 걸음이 지독하게도 위태롭습니다.
 
아가미를 부드럽게 빠져나가는 차갑고도 신선한 바닷물 대신 바싹 마른,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버석버석한 대기만이 있습니다.
 
발을 아래로 끌어내리는 중력에 반하여 걸음을 옮기다 보면...
 
아, 당신의 몸이 기우뚱, 회전합니다. 아무래도 다리에 힘이 풀린 것 같아요.
 
나침반은 아직도 눈길조차 닿지 않는 까마득한 저편을 기다리는데,
 
이대로 쓰러지면 안 되는데...
 
시아록: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1
판정결과: 대성공
 
책미 (GM):wow
 
하늘:(여기서 운을 다 쓰면 어떡하죠? ㅋㅋ)
 
책미 (GM):아록이 오늘 오하아사 1위인가봐여
 
당신은 가까스로 한 발 더 내디뎌 충돌을 막지만, 그 여파로 옆에서 걷던 슈슈가 같이 휘청이더니 넘어질 뻔 합니다.
 
슈테른:괜, 찮아요, 시아록...? (발을 헛디디더니 가까스로 중심을 잡는다.)
 
시아록:아니. 난 괜찮은데. 슈슈야말로 괜찮아? (당신의 옆에서 기웃거리며 괜찮은지 확인한다.) 육지는 좀 이상하네... 숨쉬는 것도 불편하고, 걷는 것도 너무 힘들다. 슈슈는 어때? 괜찮아?
 
슈테른:전... (몇 번 더 발을 딛어본다. 여전히 이상한 표정이 얼굴에 그려진다.) 잘 모르겠어요. 이렇게 손 잡고 휘청이고 있으니까 꼭 춤 추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아무튼 이게 맞게 걷는 건지 모르겠네요. 바닷말이나 미역도 이렇게까지 흐물거리진 않았는데...
여긴 바다도 아니고 말예요. (작게 한숨을 흘린다.) 물 밖으로 나왔는데 우리는 어디로 숨을 쉬고 있는 걸까요? 우린 지상 인류가 된 걸까요?
 
시아록:그러게 말이야.. (발을 들어 쿵쿵 바닥을 찍어보더니 역시 모르겠네,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춤은 춤이지만, 뭔가 엉성하지 않아? (아직 익숙하지 않은 듯 조금 휘청거리며 몇발자국 걸었다.)
지금은 지상 인류인 거 같네. (숨을 한차례 깊게 들이쉬더니 가슴 안쪽을 도는 시린 공기에 몸을 떨었다.) 숨 쉬는 것도 진짜 느낌 이상하다..
 
슈테른:밑에 받쳐주던 것도 없어졌다는 느낌이에요. 이곳엔 정말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걸까요? 인류는 예전에 어떻게 이런 황폐한 곳에서 살았던 걸까요. (흙만 밟히는 바닥을 발로 천천히 딛는다.)
... 숨도 그렇고, 몸이 조금씩 말라가고 있어요. 느껴지세요? ...닦은 것도 아닌데 몸이 마르다니, 몸에서 물이 떨어지다니...
 
시아록:맞아. 옛날엔 왜 이런 곳에서 살았지? 훨씬 불편하고 아무것도 못했을 거 같지 않아? 역시 물이 있어야 편한 거 같아.
 
슈테른:(잠시 드러난 제 팔을 쓸어내리더니) ...일단 마저 걸을까요? 아직은 도착하지 않았나봐요.
 
시아록:(당신의 말을 듣고 말라가는 몸을 보고 신기한 듯 눈을 크게 뜨고 팔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완전히 말라가네. (당신이 쓸어내린 팔도 잠시보다가) 그래, 앞으로 쭉 걸어가면 되나? 아니면, 우리 발견한 나침반?
 
슈테른:지금까지처럼 나침반이 가리키는 대로 따라가면, 무언가 나올 거에요. 아마도 저주를 해결할 무언가가.
 
시아록:응, (당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침반을 꺼냈다.) 같이 볼까?
 
슈테른:...아마 멀리서 신기루처럼 보이던 빛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겠죠. 초롱아귀의 빛도 저렇게 밝지는 않았는데, 뭘까요?
좋아요. (꺼내든 나침반을 들여다본다.) 음... 계속 우리가 걷던 방향이네요. 이 빨간 쪽을 봐야 하는 거죠?
 
시아록:응, 표시된 건 빨간 거밖에 없으니까. 빨간 게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면 될 거 같지? (당신과 같이 나침반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이곤 그 방향을 한 번 바라봤다.) 이제 가볼까?
 
슈테른:좋아요.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셔야 해요, 받쳐주는 물도 없으니까. (나침반과 의문의 빛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이끌리듯 나아간다.)
 
시아록:응, 슈슈도 조심해. (나침반을 들고 당신과 함께 걸었다.)
 
당신은 계속 걷습니다.
 
지상에서의 걸음은 분명히 바닷속에서의 걸음과는 다릅니다.
 
이 어색한 몸짓을 과연 '걸음'이라고 불러도 될지 의문이에요.
 
아직은 텅 빈 공기를 밟는 기분도, 피부에서 물이 증발해가는 감각도 어색할 뿐입니다.
 
마녀가 준 약이 효과를 잘 발휘하고 있는지, 숨을 들이마시고 있는데도 답답하단 생각은 들지 않아요.
 
그리고, 얼마나 그렇게 걸음을 계속했을까요?
 
여러분의 앞에 점점 가까워져오는 것은...
 
소라의 뿔보다 훨씬 높고, 훨씬 뾰족한 무엇입니다.
 
하늘을 찌를 만큼 아득한 높이에 뾰족뾰족한 절벽 같은 것이 세워져 있습니다.
 
어쩐지 유적지에서 본 절벽들이 생각날 때쯤이면, 귀에 조금씩 소음이 찾아들기 시작합니다.
 
네, 소음이요. 왁자지껄한 소리, 무언가 구르는 소리, 뛰는 소리...
 
시아록:저건 뭐고, 이 소리는 뭐지? (시야에 보이는 아득한 무언가를 목을 꺾어 올려다보다가 이내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슈슈도 들려?
 
슈테른:...아, 들려요!
희미하게 들리는 걸 보니 저 너머에서 오는 건가 봐요. 온통 높고 뾰족뾰족하네요...
...뭐가 있길래 저렇게 시끄러운 걸까요? (목소리에는 걱정과 기대가 담겨 있다.)
 
시아록:그러게.. 근데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이 저긴가? 가도 되는걸까.. (나침반을 한 번 들여다보고 이내 걱정이 되는 얼굴로 그 너머를 보듯 눈가가 가늘어졌다.)
가도 괜찮을까?
 
슈테른:여기까지 걸었는데, 아무것도 안 보고 되돌아갈 수는 없잖아요. 나침반도 이 쪽을 가리키는 중이고.
우선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봐요. 아무도 모르게... (숨죽여 말하면서, 다시 걸음을 이끈다.)
 
시아록:으응. 그래, 조용히 가보자. (당신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간다.)
 
멀리 보이는 정경과, 어느새 소음을 덮을 만큼 커지는 심장소리에 익숙해질 무렵.
 
삐걱거리는 다리로 걸음을 재촉하면, 어느새 발밑에는 딱딱한 돌들이 깔립니다.
 
울퉁불퉁하고 사나운 돌이 아니라,
 
바다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매끄럽고 모양도 일정한 돌들이에요.
 
마치 따라오라는 듯 저쪽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시아록:어, 돌이 왜 모양도 일정하지..? (당황한 듯 작게 중얼거리고는 바닥을 여러차례 확인했다.) 슈슈, 바닥에 돌 이상하지 않아? 육지는 원래 이런 걸까
 
슈테른:... 아까부터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요. 바로 앞인 게 아닐까요? (잠시 쭈그려앉아 바닥의 매끄러운 돌을 더듬어 본다.) 신기루처럼 떠 있던 빛과,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
우리의 목적지가요.
 
그 말에 앞을 올려다보면, 까마득하던 절벽도 어느새 가까워져 하늘을 다 덮고 있습니다.
 
저렇게 높이 뻗어있다면, 하늘과 그 위에 떠 있는 하얀 것들도 찔러버리는 게 아닐까요?
 
어쩐지 아찔해지는 느낌에 마저 걸으며 점점 그 소란에 가까워지다 보면...
 
우리는 어떤 표지판을 지나, 새로운 구역의 초입에 다다릅니다.
 
낯선 도시
 
나침반을 확인하면 내내 빛을 가리키던 바늘은,
 
바닥에 돌이 깔릴 무렵부터 고장난 것처럼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맞게 온 거겠죠. 그래야만 합니다.
 
슈테른:뭍은 사람이 살 수 없다고 했었는데.
 
슈테른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중얼거립니다.
 
“여기까지 오면서, 숨 쉬는 것만큼 쉬운 일도 없었어요.” 그것뿐인가요?
 
깔려있는 돌이나 높디높게 세워진 건물까지, 사람의 흔적이 여실한 광경이 사방에 펼쳐져 있는데요.
 
동시에 바람을 타고 흘러들어오던 소음이, 사실 소음이 아니라는 걸 알아챕니다.
 
이건, 인간들의 말소리입니다. … 그것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아주 일상적인 언어.
 
시아록:...이상하네.. (말소리를 듣고는 당황한 듯 슈슈를 보았다.) 사람 목소리지..? 거기다 말이고...
 
슈테른:(이쪽을 바라보곤 심각한 표정으로 끄덕인다.) 여기도 사람이 사는 걸까요...? 그렇다기엔 이 곳은 너무 요란스럽고, 또 번잡한데 말이에요.
이 앞에 펼쳐진 걸 보세요. 절벽이 한두개가 아니라 곳곳에 서 있잖아요... 이렇게 복잡하면 꼭 미로에서 헤매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요?
 
시아록:그러게.. 왜 육지에 사람이 있지? 사람 맞는 거겠지? (무서운 듯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사람이라면 육지사람들은 복잡하게 집으로 들어가는 게 그들의 삶의 방식인가..?
난 매일 길 잃어버릴 거 같은데..
 
슈테른:육지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요. 우리보다 키가 엄청 크다든가, 털이 삐죽삐죽 솟아 있다든가, 이빨이 무지 길다든가... (말하면서도 경악스러운지 목소리가 조금씩 떨린다.)
정말 그렇다면 우리는 괴한처럼 보일텐데, 말이 통하기라도 해서 다행...일까요?
저도요. 매일 이런 곳에서 살라니, 제가 육지 사람이었다면 몇 번이고 헤맸을 텐데...
 
시아록:(당신의 말에 상상하고는 눈이 동그래졌다.) 그.. 최대한 우리랑 비슷하게 생겼으면 좋겠네... 진짜 말이 통하는게 다행일까? 근데 우리 말을 안 들어주면 어떡하지...
들어주겠지..? 아니야, 들어줄 거야. (다짐하듯 얘기했다.) 근데 나침반도 빙글빙글 돌고 어떡하지..?
누구가한테 물어봐도 될까..? 그냥 가볼까..?
 
슈테른:나침반이 가리키던 게 여기가 아닐까요? 아니라면, 우선 저기로 향해야 다른 곳을 가리켜줄 거에요.
우선 물어볼 사람이 보일 때까지 걸어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요... (긴장한 듯 침을 삼켰다가, 곧 비장한 표정으로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시아록:아, 그런가.. 그래, 그럼 걸어가보자. (당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따라 발을 움직였다.)
 
뭍으로 올라와서, 이미 절멸했다던 인류를 다시 찾을 줄이라곤 꿈에도 생각 못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뭍을 볼 수 있다니, 이런 천운은 아주 희귀한 것이겠죠.
 
무너지고 빠개진 표지판을 지나쳐, 네모낳고 딱딱한 절벽들 앞에 다다릅니다.
 
절벽들 사이 너머로는 넓고 크게 깔린 길이 보이네요. 이곳이 지상 인류의 구역일 텝니다.
 
뭍의 사람들이 사는 공간. 사람도 절벽도 가득한 것이 꼭 도시 같습니다. 신기하지만, 조심해야 할 점도 있지 않을까요?
 
시아록: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6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어렴풋이 보건대 그들 중 적어도 일부는, 우리가 한때 상상했던 괴상한 형태는 아닙니다.
 
하지만 걸치고 있는 옷가짐에서 확연히 차이가 나네요.
 
이대로 출신을 숨기지 않았다가 수중 인류라는 걸 들켜버리면, 뭍의 사람들은 적대적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역을 침범당한 바다 생물들이 어떤 식으로 난폭하게 구는지 알잖아요.
 
슈테른:일단은, 저들과 최대한 비슷하게 보여야 덜 적시받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변장을 한다든가, 옷을 바꿔 입는다거나...
 
시아록:으응, 그렇겠지? 우리랑 옷 엄청 달라보이네.. (슈슈와 숨어서 지상의 사람들을 쳐다본다.) 옷을 바꿔입으면 어디서 구하지..? 그냥 변장할까?
 
슈테른:옷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아, 저기 뭔가 보여요. 더미... 같은데, 옷일까요? (그렇게 말하며 뒷골목 어딘가를 가리킨다.)
 
시아록:그럼 가보자. 괜찮은 게 있으면 입고, 아니면 변장하자.
 
그가 가리키는 대로 따라가면, 마침 그들의 의복이나 신발 같은 게 쌓여 있습니다.
 
지상 인류는 옷마저 우리와 사뭇 다릅니다.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옷 재질은 때로는 뻣뻣하고, 때로는 피부보다 더 부드럽네요.
 
그것들을 대강 휘감고, 신고, 입고, 낑낑거리다 보면 외양만큼은 평범해 보입니다.
 
슈테른:(의복을 몸에 하나 덮어씌웠다. 넉넉한 수중에서의 옷과는 다르게 몸에 딱 달라붙는 판판한 재질의 옷을 입자 어색한 듯 팔을 휘적인다.) 다... 된 걸까요?
 
시아록:(당신이 입은 걸 빤히 보다가 방긋 웃었다.) 응, 저기 사람들이랑 비슷한 거 같아. 나도 그래? (팔을 벌려 주워입은 옷차림을 보여준다.)
 
슈테른:네..., 네. (어색하게 옷가짐을 갈무리하곤 당신의 복장을 흝는다.) 잘 어울려요.
이 정도면, 아마 의심을 살 일은 없을 거에요. 옷만큼은 저들이랑 비슷하니까. (확신에 찬 표정으로 큰길로 나간다.) 마저 갈까요?
...아, 근데 저희 어디로 가고 있었죠...? (아연한 표정으로 묻는다.)
 
시아록:아.. 어, (같이 아연해진 표정으로 나침반을 한 번 들여다보다가 당황했다.) 으음.. 이걸로 안 되겠지? 저기 빛을 보고 그냥 걸어가야할까?
 
슈테른:도시 안에는 들어온 것 같아요. 문제는... 이 안에서 어딜 향해 가느냐죠... (곳곳에 세워진 졀벽들을 보곤 아득한 표정이 된다.)
...일단 저기에서 사람 목소리가 제일 많이 들려오니까, 저 쪽으로 나가볼까요? (절벽들의 중심부 즈음, 뻥 뚫린 공터를 가리킨다.)
 
시아록:음. (미로같은 길들을 보다가) 좋아, 슈슈말대로 하자. 뭔가 공간도 넓은 거 같고! (냉큼 당신의 말에 동의하고 손을 잡고 그리고 향한다.)
 
야트막한 절벽(사람이 안에서 나오는 걸 보면 놀랍게도, 건물이 아닐까요?) 사이를 헤치고 들어갑니다.
 
처음엔 어떻게 되려나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이곳의 사람들은 우리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다들 저마다의 일에 바쁜지 자신의 길을 재촉할 뿐입니다.
 
바퀴가 두 개 달린, 찌릉거리는 물건을 타고 가는 이가 여러분에게 “저리 비켜!” 하고 소리를 지르며 지나가기도 하고,
 
고래 울음소리만큼이나 커다란 소리를 내는, 바퀴가 네 개 달린 거대수레가 거칠게 사이를 밀고 지나가기도 합니다.
 
이 곳엔 고래도, 가오리도, 톱상어도 없지만 그만큼 무시무시한 것들이 사나 봐요.
 
다행히 말은 통하는 것 같지만, 아무도 여러분을 눈여겨보지 않습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죠? 어디로 가야 우리는 저주를 풀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봐야 할까요? 그렇다면, 누구에게 물어봐야...
 
시아록:누구한테 뭐라고 묻지..? 뭔가 저주라고 얘기하는 것도 이상하겠지? 아니면 이 나침반이 왜 빙글빙글 도는지 물어봐야 하나.
내가 한 번 나침반에 대해서 아무한테나 물어볼까, 슈슈?
 
슈테른:그럴까요? 지나가시는 분께 물어보면 도와주실 거에요...
 
시아록:으응. 한 번 내가 물어볼게. 슈슈도 같이 갈래? 아니면 위험하니까 혼자 다녀올까?
 
슈테른:괜찮아요. 이런 곳에서 떨어지면... 콜록, 콜록. (기침을 토하며 고개를 숙였다.) 괜히 떨, 어졌다가 길이라도 잃으면 안 되잖아요.
저기요, 잠깐만 길 좀 물을게요... (마침 앞을 지나가던 행인 한 명을 조심스레 붙잡는다.)
 
시아록:괜찮아? (당신의 기침에 깜짝 놀라, 같이 고개를 숙이고 네 얼굴을 들여다보며 등을 쓸어준다.) 역시 몸 안 좋은 거지?
(금방 추스르고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당신에게 놀라 얼른 따라붙었다.)
 
그러나 뻗은 손이 무색하게도 그가 붙잡은 사람은 이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고 휙 지나가버립니다.
 
우리 말을 못 들은 걸까요?
 
시아록:(훽 가버리는 사람을 보고 멍하게 가버리는 그 사람의 등을 바라본다.)
어어, 말을 못 들었나..?
 
슈테른:괘, 괜찮아요... (입을 가리던 손을 떼어냈다.) 여긴 우리가 살던 곳이랑 환경도 많이 다르고, 찬 공기도 맞아서 그럴 거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괜스레 위에 걸친 옷을 더 꽉 여몄다.)
그러니만큼 저주가 더 퍼지기 전에 빨리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거고요.
...제 목소리가 작아서 안 들린 걸까요? 시아록이 불러보면 반응할지도요.
 
시아록:진짜 괜찮은 거야..? (당신을 걱정서린 눈으로 바라보다가) 그 진짜 아프면 말해? 조금 쉬어가도 괜찮으니까.
럼 일단 내가 가서 말을 걸어볼게.
(고개를 당신에게 한차례 끄덕이고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좀 물어볼 말이 있는데요.
 
행인: 네?
 
당신에게 붙들린 한 사람이, 한순간 귀찮다는 빛을 띄우더니 표정을 갈무리하고 이쪽을 바라봅니다.
 
시아록:아, 다행이다. 죄송해요. (나침반을 상대에게 보여주며) 여기서 이게 빙글빙글 도는데, 이유라거나 고칠 수 있는 곳을 아실까요?
 
당신을 바라보는 눈빛에 담긴 의문은 당신이 웬 나침반을 꺼내들자 배로 강해집니다.
 
행인: 이건 수리점엘 찾아가셔야지,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애초에 이 나침반 어딜 가리키는 거에요? 내가 쓰는 나침반이랑은 다른데?
 
시아록:아, 저도 얻은 거라서.. (어물어물 답변을 하고는 잠시 어쩔 줄 몰라했다.)
 
행인: 보세요, 이걸 보면... (주머니에서 네모낳고 새까만 무언갈 꺼내더니, 나침반 그림을 띄운다.) 여기가 북쪽이고, 여긴... 전혀 다른 쪽이잖아요?
 
시아록:그, 그렇구나. (상대의 나침반을 쳐다보다가) 고장났나봐요.. (어색하게 웃었다.)
 
행인: 애초에 고장난 게 아니면 빙글빙글 돌 수가 있나? (뒷목을 긁는다.)
뭐, 정 중요한 거면 수리점엘 가 보세요. 요즘에도 이런 구식 나침반을 취급하려나 모르겠지만.
 
행인은 자기 할 말만 하더니 쓱 지나가버립니다.
 
시아록:아, 고맙습니다. (우물거리다가 상대가 가는 걸 보다가 슈슈를 바라본다.) 슈슈, 내가 묻는 게 틀린 걸까..
 
슈테른:...방금 저 사람이 꺼내든 거, 조금 이상하지 않았어요?
 
시아록:응? 나침반?
 
슈테른:나침반보다 훨씬 크고, 둥그렇지도 않았는데, 또 바늘은 보였었죠. 그건 나침반이라기보다는...
 
시아록:난 저게 여기 나침반인 줄 알았지.. (뒷목을 쓰다듬었다.)
그거 이상한 거였구나..?
 
슈테른:...음, 뭔지는 몰라도 우리가 쓰는 거랑은 달랐었죠...
 
시아록:맞아, 엄청 달랐어.
 
슈테른:지상 인류와 우리는 쓰는 물건마저 다르... 다르겠죠, 당연히 그렇겠죠... (무언가 깨달은 표정으로 옷깃을 꽉 잡는다.)
 
시아록:응? 왜 그래?
 
슈테른:아까 그 분이 뭐라고 하셨죠? 수리점으로 가랬었나...?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걷다 보면 나올까요?
 
시아록:응, 그랬었는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럼 그리로 가볼까..? 그냥 돌아다니면서 찾아보면 되나..?
근데 여기가 이상해서 빙글빙글 도는 건가, 싶기도 해.. 여기서 벗어나면 제대로 가리킨다던가..? 그냥 내 추측이지만..
 
슈테른:이 공터, 생각보다 훨씬 크고 넓으니까... 우선은 쭉 가로지르면서 가 봐요. (공터라기엔 커다란 장치나, 가판대며 찌르릉대는 수레가 옆을 스쳐지나가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아까처럼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물어 가다 보면 수리점에도 닿을 수 있을 테니까...
음... 여기가 이상해서 빙글빙글 도는 거라면, 반대로 여기에 무언가 있어서 나침반을 붙잡아두는 건 아닐까요?
고장난 건지 아닌지 확실히 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나침반을 조심히 덮었다.)
 
시아록:그렇지.. 음, 그럼 여길 조금 돌아다녀볼까?
그, 돌아다니다가 수리점을 찾을 수도 있잖아! 아까 그사람이 이상하다고 한 게 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슈테른:이상하든 아니든, 우리에겐 하나밖에 없는 나침반이니 어쩔 수 없어요.
실제로 지금까지 틀리지도 않았고. 우리가 이 도시에 무사히 다다른 것도 나침반 덕인 걸요.
 
시아록:그래, 그럼 수리점 찾아서 조금 돌아다녀보자. 괜찮지?
 
슈테른:좋아요. 뭔가 있을까요? (이곳저곳에 놓인 물건들에 시선을 이끌리며 산책하듯 걷는다.)
 
조금 걷다 보면 후끈후끈하게 달아오른 바닥이 여러분의 발밑을 데우고 땀을 흘리게 만듭니다.
 
하늘 위 둥그렇게 뜬, 새빨간 것이 천천히 아래로 하강합니다.
 
기분 탓인지 좀 어두워진 것도 같아요.
 
그러고 보니 리키 씨가 말했었죠, 지상의 하늘은 시시각각 변한다고.
 
그 때 우리는 뭐라고 답했었죠? 하늘이 그렇게 움직이다 갑자기 내려앉거나 멈춰버리면 어쩌냐며, 도거렸던가요.
 
시선으로 이 생소한 도시의 곳곳을 더듬어 봅니다. 시아록, 관찰력 판정.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11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음? 지금 보니 사람이 산다는 절벽― 아니 건물들은 어쩐지 성한 것이 드뭅니다.
 
군데군데 긁힌 자국이 있거나, 심지어는 닳아 있거나 아예 무너져 있기까지 해요.
 
떨어져나간 건물의 일부가 골목을 막고 있기도 합니다.
 
제법 큰일일텐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유해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습니다.
 
...저런 일이 생기면 바닷 속 사람들은 어김없이 서로 도와주고, 치워주곤 했는데.
 
역시 물과 뭍은 다르다는 걸까요. 삭막한 모습에 어쩐지 외로워집니다.
 
하여간 곳곳에 사람이 가득하니 천천히 둘러봅시다.
 
*간단한 도시 탐사가 가능합니다. 광장, 노점상A, 노점상B, 무너진 절벽.
 
시아록:나 저기 절벽 무너진데 가서 한 번 확인해볼래. 슈슈도 같이 가자.
 
슈테른:그럼요, 같이 갈까요? (나침반을 들지 않은 자유로운 손을 제 손으로 훔치곤 조심스레 고쳐잡더니, 절벽 근처로 다가간다.)
 
시아록:응. (네 손을 꼭 잡고 절벽에 다다랐다.)
 
이 무너진 절벽―높고 네모낳고 딱딱한 건물― 근처에는, 사람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가 주변에 깔려 있습니다.
 
처절하게도 반파된 건물이네요. 본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쯤 무사한 걸까요?
 
잔해 아래에 집기들이 몇 개 깔려있습니다.
 
살짝만 파헤쳐보면 뭔가 나올지도요. 잔해를 들춰보려면 행운 판정입니다.
 
시아록:
기준치: 80/40/16
굴림: 82
판정결과: 실패
 
부스럭거리며 이제는 가루가 된 건물의 일부를 들어올리면,
 
그곳에는 옷가지와... 사람의. 뼈 몇 군데가 있습니다.
 
대체 얼마나 이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으면, 뼈만이 유해로 남겨진 걸까요.
 
명백한 재난의 흔적. 누군가는 안타까움에 탄식할 광경이 분명함에도,
 
사람들은 그저 옆을 지나쳐갈 뿐입니다. 근처에 서 있던 샛노란 잎의 나무만이 무심하게 잎을 흔듭니다.
 
그리고 떨어진 나뭇잎과 함께, 옆에는 무언가가 떨어져 있습니다.
 
시아록:이런 걸 이렇게 방치해도 되나.. (작게 중얼거리고는 옆에 떨어진 무언가를 보고는 주웠다.) 뭐지..?
 
주워들면, 미역만큼 얇지만 부슬부슬한 감촉이고, 천같지만 그보다는 더 날렵하고 빳빳한 것이 손에 쥐여집니다.
 
무언가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사람의 얼굴과 함께, 숫자 10인 것 같네요.
 
어딘가 쓸모가 있을까요?
 
시아록:이게 뭐지? 사람 얼굴같은 게 그려져있네..? (주워들은 것을 이리저리 앞 뒤로 살펴봅니다.)
 
뒤에는 이상한 문양같은 게 그려져있습니다. 당최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네요. 보물찾기하는 것도 아니고.
 
슈테른:(죽음의 흔적을 다시 손으로 덮어두다...가, 밀러오는 흙먼지에 잠시 콜록댄다. 해변에 밀려온 유해들이 생각나는지 쉽사리 손을 떼지 못한다.)
(가라앉은 표정으로 천천히 일어난다.) ...이만 갈까요, 여긴 이미 다 무너져서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시아록:응, 그러자. (슈슈의 가라앉은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네가 너무 마음 쓰지마. 모든 것에 마음을 두면 네가 먼저 지치고 힘들어. 이건 오롯이 여기 지상 사람들의 문제니까. (낮게 읊조리고는 네 손을 잡아 살짝 당겨 제 옆에 당신을 붙였다.)
그만 잊고 다른 곳에 가보자. (노점상 A쪽으로 당신을 이끌어 향한다.)
 
슈테른:... (망설이듯 발을 끌다가도, 당신의 위로가 힘이 된 듯 이내 이끄는 대로 막힘없이 걸어간다.)
 
앞에도, 뒤에도 사람들이 선 가판대에서는 맛 좋은 냄새가 퍼집니다.
 
시아록:뭔가 맛있는 냄새가 나네..?
 
무언가 음식을 팔고 있는 것 같은데, 척 봐도 당최 뭔지 모르겠네요.
 
새빨갛게 기어오르는 것이 냄비에 달라붙으면(꼭 문어가 달라붙은 것 같아요.) 그 안에서 식재료가 부글부글 끓습니다.
 
애초에 저게 먹을 수 있는 건 맞을까요? 상한 것도 아니고, 식재료에서 거품이 나게 하다니 무슨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메뉴판이 세워져 있긴 한데, 글씨를 ‘읽을 수는 있어도’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보기가 좀 힘드네요.
 
“핫도그! 맛있는 핫도그 팝니다! 다른 것도 많아요!” 주인이 호객하자, 아이와 어른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줄을 서 음식을 사 갑니다.
 
시아록:뭔지 모르겠네.. 저게 먹는 걸까? (사람들이 음식을 받아가는 걸 보고 고개를 갸웃 거렸다.)
슈슈 배고파?
 
슈테른:음... 마지막으로 식사한지 좀 지났으니까, 먹을 수 있다면 배를 채우는 것도 좋겠죠.
 
시아록:여기도 물건으로 교환할 수 있을까..
(핫도그라는 정체모를 음식을 보다가 주머니를 뒤졌다.)
 
주머니에는... 시아록, 행운 판정.
 
시아록:
기준치: 80/40/16
굴림: 2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아, 아까 해변에서 굴러다니던 진주가 몇 개 잡힙니다.
 
조개들이 뱉어내는 진주는 꽤 귀하니, 작긴 하지만 잘 하면 교환할 수 있을 지도요.
 
슈테른:그런데... (작게 목소리를 낮추며 말한다.) 지상 인류의 음식이 우리 입에도 맞을지 모르겠네요, 우리랑 준비하는 방식도 전혀 다른 것 같고...
 
시아록:으음.. 그치만 우리 계속 굶을 순 없으니까.. (당신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같이 속삭였다.)
 
슈테른:...그러고 보니 해초로 배를 채운 게 전부였는데, 여기까지 오면서 한 번도 배가 고픈 적이 없네요.
 
시아록:(가만 듣다가 이내 당신의 말이 맞다는 걸 깨닫고 눈이 동그래졌다.) 진짜네. 왜 배가 안 고프지..?
 
슈테른:그렇게 멀리 걸어왔는데... (애초에 하늘의 색이 이렇게 확실히 변한 적이 있던가? 고개를 기울이며 생각에 잠긴다.) 여기 사실은 바다로부터 무척 가까운 걸까요?
 
시아록:인간으로 되는 약의 부작용일까?
음.. 바다에서 꽤 걸어온 거 같은데..
 
슈테른:...아무리 지상 인류가 되었다고 해도 배는 고프지 않을까요? 배가 고프지 않은 게 부작용이라면, ... 좋은 걸까요?
 
시아록:느끼지만 못하는 건지.. 우리가 정말 배가 안고픈 건지 모르겠네..
그냥 하나만 사서 맛 볼까? 입에 안 맞으면 어쩔 수 없는 거고.
 
슈테른:(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것도 안 먹을 순 없으니까...
 
시아록:응, 그럼 하나만 사자. 나 진주 있어. 이건 교환해주겠지? (당신에게 진주를 보이며 웃었다.)
 
슈테른:아, 참. 교환할 게 없구나... 그거라도 챙겨와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하며 무심코 웃는다.)
그럼 저건 어때요? 저거, 막대에 꽂힌 게 꼭 물 속에 피던 부들 같잖아요. 동글동글하고...
 
시아록:좋아. 그나마 비슷하게 생긴 거 같아. (당신과 함께 노점상에 다가가 주인을 부른다.) 저기요..
 
노점 주인을 부르려 하면, 이미 다른 사람들이 주문하고 있습니다.
 
그 뒤로 사람들이 죽 늘어서있고, 여러분 뒤로도 몇 명인가 서는 걸 보니 우리도 이 행렬에 끼어 있어야 주문할 수 있나 봅니다.
 
시아록:아.. 저기 뒤에 서야 하나봐.. (손으로 행렬 뒤를 가리키고는 당신과 함께 행렬의 뒤로 향한다.)
 
기다리는 동안 당신에게는 중요한 과제가 하나 남았습니다. 음식을 주문하려면, 음식의 이름을 알아내야 하잖아요.
 
메뉴판을 살펴보든, 사람들에게 물어보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 선 사람들은 웃고 있는 게, 아까 지나치던 사람들보다는 너그러워 보이니까요.
 
시아록:(고민하다가 제 앞의 사람을 살짝 불렀다.) 저기요. 궁금한 게 있는데,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기다리는 사람: 아, 네. 말씀하세요.
 
시아록:저, 음식 이름 뭐예요? 제가 처음 봐서..(아까의 음식을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기다리는 사람: 아, 그건 핫도그에요. 안 드셔보셨어요? (어리둥절해선 묻는다.)
 
시아록:네, 안 먹어 봤어요. 핫도그구나.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이름을 알아냈다는 생각에 해맑게 웃는다.)
 
이름을 묻고 있으면 몇 분의 노력 끝에, 드디어 앞 사람이 전부 빠지고 우리의 차례가 다가옵니다.
 
“주문하시겠어요?” 주인은 푸근하게 웃으며 묻습니다.
 
시아록:어, 핫도그.. 하나 주세요. 이거랑 교환될까요? (진주 하나를 꺼내 주인에게 건넨다.)
 
당신이 손톱만한 진주를 꺼내들면, 주인의 표정은 어째선지 사색이 됩니다.
 
노점 주인: ...네? 이걸로 지불하시겠다고요? 괘, 괜찮으시겠어요?
 
시아록:(주인의 반응에 당황해서는) 어, 안 될까요...?
 
노점 주인: 이, 이건 핫도그 값으로 받기에는 너무... 귀한데요. 괜찮으니 돈으로 주세요. (웃으며 손을 설레설레 젓는다.)
 
시아록:어, 그..제가 지금 돈..이 없어서요. 괜찮아요..!
 
노점 주인은 여러분을 경외감에 찬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그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얼굴로 한동안 대답이 없더니, 정신이 든 듯 손을 벌벌 떨며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노점 주인: 가, 감사합니다!! 좋은 곳에 쓰겠습니다! 금방 만들어드릴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십쇼!
 
그가 앉아있던 의자가 콰당, 넘어지는 게 들립니다. 핫도그를 기다리고 있으면 어째선지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람들: 뭐야, 방금 그건?
글쎄다, 어디서 훔쳐왔거나 어지간한 갑부인가 보지...
 
시아록:(주변의 소음에 어리둥절해서 쳐다본다.)
어.. 내가 실수했을까? (슈슈에게 작게 소근거린다.)
 
슈테른:...주인분 반응도 좀 이상했죠, 평범하게 보이려고 했는데 어쩐지 반대로 눈에 띄어버린 것 같아요...
우리 뭔가 실수한 것 같지만... 일단 부들처럼 생긴 그것부터 받아들고 생각해요, 배는 채워야죠.
 
시아록:그러게 말이야.. 실수한 거 같네.. 진주가 귀하긴 해도, 우리한텐 엄청 희귀한 것도 아닌데.. 음.. (얼떨떨한 표정으로 주변을 보다가 우물쭈물 쪼그라들었다.)
으응.. 일단 받고 생각해야지.. (핫도그를 만드는 주인을 쳐다본다.)
 
주변의 소란을 어색하게 등 뒤로 넘기면, 곧이어 주인이 핫도그, 라고 불리던 그것을 두 손으로 공손히 내놓습니다.
 
그는 아직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얘기합니다.
 
노점 주인: 저,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쇼, 언제든지 또 찾아주세요!
 
시아록:어, 음.. 감사합니다. (핫도그를 받고 얌전히 인사하고는) 슈슈, 우리 좀 다른데 가서 먹자. 그.. 너무 눈에 뛴 거 같아.
 
슈테른:(꾸벅 인사하고는 노점상으로부터 멀어진다.) 저 바위 뒤쪽에서 먹고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사람도 없고.
 
시아록:응응, 좋네. (고개를 끄덕이고 바위 뒤로 향한다.)
 
슈테른:그런데 저 바위, 큰 건 둘째치고 모양이 엄청... 특이하네요. 어떻게 바위가 저렇게 생겼을까요? 둥그런가 싶으면 저기는 또 날렵하고...
 
시아록:(숨는데 급급했던 나머지 바위의 생김새에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당신의 말을 듣고서야 바위를 제대로 쳐다보았다.) 진짜 바위가 이상하게 생겼네...?
 
슈테른:게다가 좌우대칭도 잘 맞고 모양도 예쁘네요. 아니, 바위가 이렇게 생긴 게 아니라 일부러 이렇게 만든 건가...?
 
시아록:바닥도 그랬는데.. 여기 사람들은 돌을 깎아 쓰나..?
 
슈테른:아이나씨네 집을 깔곤 했던 바위들도 저렇게 크고 신기하지는 않았는데...
바닥의 돌도 인간이 만든 거라면, 설마 여기 사람들은 돌을 잘라서 쓰는 걸까요?
....음, 지상 인류는 접할 수록 모르겠어요. 어떻게 그 단단한 바위를 깎아서 쓰지...?
애초에 어떻게 바위를... 가는 것도 아니고 깎으려고 했을까요? 다들 힘이 엄청 센가 봐요...
 
시아록:뭐.. 깎는 건 그나마 이해되는데.. 잘라서..? 그게 될까? (당신의 상상에 눈이 동그래졌다.)
그러게 다들 힘이 엄청 센가보네.. 신기하지만, 우리 조심해야겠는걸? 바다에서 올라온 걸 들키면 안 되겠다.
 
슈테른:...히, 힘으로 바위를 깎아낼 정도라면 다른 것도... (이어지는 상상에 표정이 점점 굳다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 떨쳐낸다.) 이, 일단 받은 것부터 먹어봐요. 이게 뭐라고 했었죠?
 
시아록:어, 핫도그! (핫도그를 당신에게 보여준다.) 내가 먼저 먹어볼까..? 이상하면 그러니까.
(조심스럽게 먼저 한입을 베어물었다.) 어... 나쁘진 않은데..(고개를 갸웃 거리며 우물우물 씹는다.) 안에 그 고기? 같은 거 들은 거 같은데.. 겉은 괜찮고.. (우물우물 먹으면 단면을 살핀다.) 그치만.. 이걸 무슨 맛이라고 해야하지...?
(당신에게도 핫도그의 단면을 보여준다.)
슈슈는 고기 못 먹는데..
 
입으로 덥석 베어물면 그건 무척 이상한 식감입니다.
 
딱딱하지도 않고 오히려 부들부들하고 무르네요. 천을 입에 가득 넣고 씹는 듯한 느낌인데, 그마저 입에서 몇 번 씹으면 금방 부서지고 사그라들어 버립니다.
 
언젠가 호기심에 입에 넣어보았던 해삼보다도 더 이상한 맛입니다.
 
하지만 겉의 식감과 달리 속에 숨어있는 것에서는 짭쪼름하고도 달짝지근한 맛이 납니다. 새우를 먹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그만큼 강렬한 맛이 따끈한 육즙과 함께 씹힙니다.
 
그러니까 총평은... 딱 나쁘지 않네요.
 
슈테른:고기가 들었어요? 이상하네요, 그렇겐 안 보였는데... 안에 숨어있었을 줄이야.
그럼 저 겉부분만 먹어봐도 돼요? 이 중심 부분은 피해서요.
 
시아록:응응, 먹고 싶은만큼 먹어. 이 식감은 분명 고기인데.. 뭔가 우리가 바다에서 먹는 거랑은 좀 다르달까...? (고개를 기울이고는 당신에게 핫도그를 내밀었다.)
 
슈테른:(애꿎은 핫도그만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곧 조심스럽게 빵 부분을 베어문다.) 응...?
음, 뭐라고 해야 하지, 엄청 폭신하고 물컹한 느낌이네요. 그리고 무엇보다... 따끈따끈해요.
바닷 속에서 먹던 것들은 죄다 미끈거리거나 오독오독하고, 차가웠었는데.
음... 그래도 처음 먹어본 것 치고는 나쁘지 않은 출발이었던 것 같아요.
 
시아록:응, 육지는 이렇게 먹나봐. 완전히 반대 느낌이지. (당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먹을만한 걸 골라서 다행이야.
 
슈테른:입에 어느 정도 맞은 것 같아서 다행이죠. 그래도 줄기 부분은 딱딱하기만 하고 맛 없으니까 드시면 안 돼요. (핫도그를 당신에게 다시 건넨다.)
그럼 음식도 입에 댔으니 또 둘러볼까요?
 
시아록:응, 그럴게. 슈슈는 다 먹었어? 남은 거 그냥 내가 다 먹어? (건네받은 핫도그를 들고 당신에게 물었다. 한 번에 다 먹을 생각인 듯 하다)
다 먹고 이동하자. 얼마 안 걸릴 거 같고.
 
슈테른:전 이만하면 괜찮아요. 시아록이야말로 배고프지 않아요? (막대를 든 손의 반대편 손을 잡아오며 묻는다.)
아, 어디가 이렇게 시끄럽나 했는데... 저기, 아이들이 온통 모여 있어요. (광장의 장치 주변을 가리킨다.) 세상에, 수중 마을에선 우리가 제일 어렸었는데, 여긴 아이들이 이렇게 많다니...
 
시아록:으응. 배고프진 않는데. 나쁘지도 않고, 얼른 다 먹으려고. (다른 손으로 당신의 손을 꼭 잡고는 핫도그를 얼른 먹어치우고, 막대만 남겼따.)
와, 진짜다. 애들은 처음 보는 거 같아.
(신기한 듯 두리번 거리며 쳐다본다.)
 
슈테른:저기 뭔가 신기한 거라도 있는 걸까요? (목을 길게 빼고 광장 쪽을 쳐다본다.) 구경해볼까요, 뭐가 있는지.
 
시아록:응응. 가보자. (조금 신이 난 듯 열심히 고개를 흔들고 당신과 함께 광장으로 발을 옮긴다.)
 
무섭고 낯설 거라 생각한 도시는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그래도 돌아다니다 보면 분명 무언가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으로 먹어본 음식도, 혀에 감기는 맛과 식감은 낯설기 그지없지만, 씹다 보면 나쁘지 않다는 걸...
 
오히려 맛있고 배도 찬다는 걸 깨닫게 됐죠.
 
우리는 지상에서 무엇을 보게 될까요? 무엇을 마주치게 될까요?
 
아마 미래의 우리만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
 
널리 탁 트인 광장 가운데에는 아이들이 웃으며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활기찬 광경이네요. 아이들은 빙글빙글 돌며 깔깔거리고, 그 가운데에는 어떤 장치가 하나 보입니다.
 
쏴아아아, 하고 뿜어져 나오는 물에 빛이 반사되어 오색 빛깔로 반짝거리네요.
 
생각해보면, 물이 튀기는 것은 수중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이네요!
 
슈테른:(장치 근처에서 웃고 떠드는 아이들을 보며 입을 연다. 진심을 다해 즐겁게 웃는 얼굴들을 보며 떠올리게 되는 사람에게 시선을 돌린다.) 시아록도 어릴 땐 저랬을까요?
 
시아록:와, 우리보다 어린 사람은 처음 보는 거 같아. (아이들을 보고 눈이 동그래졌다.)
나..? 나는 잘 모르겠네.. (떠올려보지만 기억이 나진 않는다.)
 
슈테른:어릴 땐 바닷속에서 뭘 하면서 지냈어요? 옛날엔 저도 없었잖아요. 유적지도 몰랐고.
 
시아록:어.. 흠.. 어리니까 따로 어른들이 일도 별로 안 맡겼어서... 그냥 주변에 돌아다니면서 혼자 뭘 줍고 그랬찌. 엄청 심심했어. 위험하다고 바깥도 못 나가게들 하고
 
슈테른:한가하셨겠네요. ...생각해보면 심해는 충분히 위험하니까, 집에만 있게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네요. 수중 마을에서 저랬다면, 심해어가 잡아가 버리기 쉽상이니까.
...그런 점에서 지상 세계는 정말 안전한 것 같아요. 저렇게 안심하면서 뛰어다녀도 된다니.
참,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알려줄까요? 그... 나침반을 고쳐준다는, 수리점이라는 곳.
 
시아록:그러게, 우린 늘 물이 주변에 있으니까 저렇게 물이 뿜어져나오는 것도 신기하긴 하지만.. (어린이들이 뛰어노는 걸 보다가)
그럴까. 어른들보다는 애들한테 물어보는 게 더 친절하게 알려줄지도 몰라.
 
슈테른:그렇죠? (자기들끼리 소꿉장난을 하며 정신없이 노는 아이들을 불러세웠다.) 여러분, '수리점'이라는 건 어딜 가야 나오나요?
 
말을 걸면, 동글동글한 눈 몇 쌍이 순식간에 이쪽으로 모입니다. 악의 하나 묻어있지 않은 초롱초롱한 눈이네요.
 
아이들:네? 수리점이요? 수리점은 저쪽으로 가면 있어요.
아니야, 저 쪽이야! 저기서 꺾은 다음에 쭉 직진하면 나온단 말이야.
뭐라고? 거긴 미용실이잖아! 내 말이 맞아!
 
...
 
시아록:으응..?
 
아이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졸지에 아이들은 내가 맞네 네가 맞네 하며 싸우고 있습니다.
 
곤란하게 됐네요. 우선 말리는 게 좋겠습니다. 다른 걸 물어보면 답해줄지도 모르고.
 
시아록:으음, 친구들 그만 싸우고.. (조금 쩔쩔매며 말려본다.)
 
아이들:칫, 그치만 얘가 자꾸 자기가 맞다고 하잖아요, 내 말이 맞는데!
경찰 아저씨들을 찾아가면 도와줄 지도 몰라요! 전에 길 잃었을 때 친절하게 알려줬어요.
경찰이 아니라 도시 수비대라니까! 경찰이 없어진 지가 언젠데 뭐라는 거야?
 
시아록:어어, 그래? 그럼 그 사람은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어?
 
아이들:보통 마을 바깥쪽으로 나가면 있다고 했는데... 그냥 걷다 보면 만날 수 있어요!
근데 형이랑 누나는 어디서 왔어요? 이사 온 거에요?
 
시아록:어, 응.. 밖에서 왔어. 처음 와서 여긴 잘 모르겠더라고. 여행 같은 거야.
 
아이들:(마을 밖에서 왔다고 하자 무리가 한 차례 술렁이더니) 우와, 짱이다!!
 
시아록:그, 그래?
 
아이들:밖에서 왔다는 사람들은 처음 봤어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시아록:(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다가 같이 인사한다.)
으응, 고마워. 잘가
 
아이들은 아까처럼 장치를 둘러싸며 손에 든 이상한 도구로 서로에게 물을 쏘며 놉니다.
 
버튼을 누르면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게, 꼭 먹물을 쏘는 오징어 같아요. 지상 인류는 모두 이런 복잡한 장치를 가지고 있는 걸까요?
 
시아록:저건 물을 쏘는 건가? 이상한 거네.. 난 그냥도 저정도는 할 수 있는데.. (고개를 갸웃하며 아이들의 장치를 쳐다보았다.)
 
광장 한가운데에 놓인 장치에 가까이 다가가면 이쪽으로 물 파편이 튀깁니다.
 
차갑지는 않고 딱 미지근한 수준이네요. 오색 파편이 되어 반짝이는 게, 아랫쪽에 조명을 품고 있습니다.
 
산호 불빛처럼 선명하게 빛나다가도 색깔이 수시로 바뀝니다.
 
세상에, 어떤 친구도 이렇게 빨리 몸 색깔을 바꾸지는 못했는데 말이에요.
 
시아록:되게 신기하다. 슈슈도 그렇지 않아? 이정도면 다들 여기 나와서 살아도 될 거 같은데..
 
슈테른:이건 장식용으로 여기에 둔 걸까요? 물을 이렇게 튀길 수 있다니 정말 예쁘네요. 수중에도 이런 게 있으면 좋을 텐데.
...어? 저기 돌바닥에 뭔가 있어요. 뭔가 반짝이는데...
 
시아록:바닥에? 뭐가? (반짝인다는 말에 번쩍 고개가 돌아갔다.)
 
그 말대로 분수대 바닥에는 반짝이는 돌들이 가득 쌓여 있습니다.
 
양면에 그림이 새겨져 있는, 납작하고 편평한 돌입니다.
 
시아록:어, 저게 뭐지? 다들 주워가지도 않네..?
 
장식용이라기엔 드문드문 깔려있는 데다, 아무도 주워가지도 않습니다.
 
그냥 돌덩어리라서 그런 걸까요?
 
시아록:여기선 흔한 걸까..? (슈슈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저거 주워가면 안 되겠지? 사람들한테 물어봐야할까?
 
슈테른:신기하네요, 마을엔 이런 건 없었는데... 장식인 것 같은데 바닥에 있는 이유가 뭘까요?
색깔도 가지각색이에요. 이렇게 많은 걸 보면, 일부러 떨어트린 걸까요? (마찬가지로 고개를 모로 기울인다.)
아이들은 알고 있을까요? 이게 뭔지.
 
시아록:음.. 한 번 물어볼까?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뭔가 흔한 물건이라서 저기 바닥에 있는 거라면.. 음...
 
슈테른:음, 그럼 제가 가서 물어볼래요. 상어의 이빨보다도 얇고, 유적지에서 본 둥근 석판과도 다르게 생긴 물건이라니 궁금하잖아요.
여러분, 혹시 이것들 주워가도 괜찮나요? 여기 엄청 많은데...
 
시아록:으음.. 그럼 같이 가자.
(쪼르르 너를 따라가서 기웃거린다.)
 
아이들은 그 말에 서로에게 물줄기를 쏘아대던 것들도 멈추고 이쪽으로 다가옵니다.
 
아이들:앗, 그거 주우면 안 돼요!
맞아요, 사람들이 일부러 던져놓은 거니까 주워가면 안 된다고 그랬어요.
엥, 난 저번에 아무도 안 볼때 슬쩍해갔는데? 너네도 간식비 모자랄 땐 그냥 주워다 써, 어차피 관리하는 사람이 다 가져간단 말이야.
 
시아록:그렇구나. 그럼 주워가면 안 되겠네.
 
아이들:이건 이 곳의 화폐에요. (작은 돌조각 하나를 주워 들어보인다.) 그리고 이 분수대에는 행운의 동전이라고 해서 저기 바구니에 던져넣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미신이 있거든요!
다 가져가면 혼나겠지만, 한두개 주워가는 것 정도는 아무도 뭐라고 안 해요! 특히 1센트짜리들은요.
 
시아록:오, 그렇구나. 화폐... (한 아이가 들어보인 것을 가만히 보다가 문득 생각난 듯 주머니에서 아까전에 주웠던 것을 꺼내보인다.)
(사람 얼굴이 그려져있는 종이조각이다.) 그럼 이건 뭐야?
 
아이들:10유로짜리잖아요. 여기 지폐 볼 줄 몰라요?
모를 수도 있지. 여행 온 거랬잖아!
 
시아록:아, 이것도 화폐구나. 응. 좀 멀리서 와서 몰랐어.
알려줘서 고마워. (종이조각을 챙기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아이들:네! 재밌게 구경하다 가세요! (손을 흔들곤 다시 놀이에 열중한다.)
 
아이들의 말을 듣고 당신은 분수대에서 주운 돌조각과, 아까 주운 종잇조각을 이리저리 살펴봅니다.
 
... 자세히 보니 비슷한 문자가 그려져있긴 한데, 이게 같은 '화폐'라니 믿기지 않습니다. 어디에 쓰는 건지도 모르겠고.
 
'분수대'라는 이 장치에 던져넣을 정도면 아마도 흔한 모양이에요.
 
시아록:화폐가 뭔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물으면 이상할 거 같지..?
 
슈테른:... 1센트는 뭐고, 10유로는 뭘까요? 지상 세계는 너무 어려워요.
숫자가 더 크면 좋은 것 같긴 한데, 둘이 무슨 차이인 거지... 아이들에게 계속 물어보기에도 미안하고요..
 
시아록:그치... 그냥 나중에 어디다 내볼까?
그럼 사람들이 알려줄 거 아냐..?
 
슈테른:좋아요. 그럼 누구한테 보여주지...
아직 안 둘러본 가게도 있으니까, 저기 있는 사람한테 보여줄까요?
 
시아록:응응. 그렇게 하자. 아까 들은 수리점? 이란 곳도 한 번 찾아보구
 
슈테른:너무 헤매기 전에 금방 찾으면 좋을 텐데. (그렇게 말하며 다른 노점상 앞으로 가 선다.)
 
시아록:(얼른 당신을 따라 걸어간다.)
 
넓은 천 위에 물건 몇 개가 초라하게 올려진 게 전부인, 다소 소박한 노점상.
 
[바스락거리는 것], [딱딱하고 도돌도돌한 것], [반짝이고 동그란 것] 등등... 많은 게 보입니다.
 
물론 모두 생소한 것들 뿐입니다. 물건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주인이 넌지시 말을 겁니다.
 
노점상 주인:뭐, 관심가는 거라도 있으슈?
 
시아록:음, 이거 뭐예요? (그래도 반짝거리는 것들이라 눈이 간다.)
 
노점상 주인:왼쪽에서부터 에메랄드, 루비, 토파즈, 심지어는 진주까지! 보석이란 보석은 다 모아놨지.
물론 전부 진짜 보석이고! 깨지지 않게 조심히 다뤄.
 
시아록:오, 그래요? (솔직히 말을 해도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진주가 뭔지는 아니 구분하기 쉬울 거 같다.)
 
노점상 주인:자, 반지는 110유로, 목걸이는 100유로 50센트라고. 게다가 전부 반값세일 중이야! 어때, 하나 살 텐가?
 
반지와 목걸이 말고 하나도 못 알아듣겠습니다. 말만 통한다고 다가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군요...
 
시아록:(뭔지 모르는 걸 사도 될까? 조금 걱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반짝이는 것들이 당신의 시선을 잡아끕니다. 아까 본 조명 장치보다도 훨씬 화려하네요. 어떻게 이런 걸 만든 걸까요?
 
지상 문명에 신기해하고 또 낯설어하며, 자세히 살펴봅니다. 시아록, 관찰 판정.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6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전부 근사한 돌처럼 보이는데... 음?
 
하지만 숱한 진주를 만져본 당신은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 진주, 완전히 가짜네요. 조개가 주는 진주들은 절대 이런 모양이 아니었거든요.
 
...이 사람에게서 무언가 사도 되는 건지 의문이 듭니다.
 
시아록:어.. (가짜인 걸 눈치채고는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입을 우물거렸다.) 그.. 이쁘긴 한데, 지금 마음에 드는 건 없네요.
 
노점상 주인:그래? (입맛을 쩝 다시다가) 그럼 이것들도 한 번 봐봐. 전부 팔기 아까울 정도로 좋은 것들이라고!
 
시아록:하하.. 괜찮아요. 잘 봤습니다. (인사하고는 슈슈의 손을 잡고 노점상에서 나왔다.)
으음.. 저거 진주가 가짜였어..
 
슈테른:시아록도 봤어요? 반짝이는 돌이나 오돌토돌한 조각은 좀 신기했는데, 생각해보면 우리 뭘 어떻게 얻어야 하는지도 모르네요.
더 이상 진주랑 교환하기에도 어렵고. 게다가 아직 '수리점'이라는 곳에 찾아갈 방법도 모르겠고.
아까 길을 잃으면 누구에게 찾아가라고 했었죠...?
 
시아록:응, 그렇지.. (잠시 고민한다.)
어.. 경찰..? 지구대? 라고 했던 거 같은데
외곽인가 바깥쪽에 있다고 했지 않아?
 
슈테른:그럼 도시 바깥쪽으로 가 볼까요? 길이 복잡해서 자신은 없지만, 이 쯤으로 나왔었죠, 우리. (손을 잡고 건물 사이로 당신을 이끈다. 맞닿은 손이 저릴 만큼 차갑다.)
 
시아록:좋아. (네 손을 꼭 잡고 간다. 차갑다고 걱정하면 괜찮다고 말할 게 뻔했기 때문에, 가만히 열을 전달하든 꼭 잡을 뿐이었다.)
 
길을 걷다 보면, 몇 차례 고래처럼 우는 커다란 수레가 몇 번이나 우리 곁을 지나가고...
 
바쁘게 뛰어가는 사람과 부딪힐 뻔 하다 보면 도시 외곽 쪽으로 나옵니다.
 
가만히 서서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세상에!
 
하늘이 아까보다 붉은 색으로 변해 있습니다. 언젠가 봤던 불가사리보다 더 빨갛네요.
 
저 '하늘'이란 것도 어딘가 아픈 걸까요?
 
동시에 주위가 조금 어둑해지는 걸 보면, 이 곳에 바뀌지 않는 건 없는 듯 합니다. 움직이지 않는 것도.
 
하늘의 누런 빛은 어느새 다른 것에 가로막힙니다. 앞에 누군가 서 있습니다.
 
???: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곧 밤이 되니 신속히 귀가하시길 바랍니다.
 
사람 두엇이 우리를 가로막네요. 이 사람이 그 도시 방위대인가 하는 건가 봅니다.
 
시아록:밤이요? 아, 그.. 수리점을 물어보려고 했는데.. 지금은 안 되는 건가요? (밤이라는 처음 듣는 단어에 잠시 어리둥절해 했다.)
 
???:수리점이요? 길 안내라면 제가... 아, 젠장. (이마를 한 번 쓸어내린다.)
지금 여기서 움직이면 안 되거든요. 일단 이 지도라도 가져가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시아록:아, 어. 네, 감사합니다..?
 
???:아시겠디면 어서 도시 안쪽으로 돌아가십시오. 외곽 근처에 계시다간 목숨을 보장할 수 없으니.
 
시아록:아, 네. 감사합니다.
(목숨을 보장 못한다고..? 그 얘기에 조금 겁이 났다.)
 
잘은 모르겠지만, 도시 외곽은 엄청 위험한가 봅니다.
 
혹시나 도시 밖이 위험한 거라면, 도시 밖 출신이 이상한 것도 이해가 가고요.
 
"왜" 위험한지 묻기에는 그들은 너무 바빠 보입니다. 자세히 보면 칼이나 몽둥이 같은 걸 들고 있는 걸요.
 
어쩐지 저들이 제일 무서워보인다고 생각하며, 당신은 냉큼 손을 잡고 그들에게서 멀어집니다.
 
그리고, 도시 안으로 들어왔을 때...
 
그 사건은 일어납니다.
 
공습
 
어느덧 사방이 어둑어둑합니다.
 
거리에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진 기둥 위, 초롱보다 높게 매달린 빛이 서서히 켜지고 번뜩이는 가운데,
 
여러분은 해가 지는 걸 바라봅니다.
 
새빨간 것이 하늘을 붉고 노랗게 물들이다가 그 끝부터 차츰 검푸르게 물들어갑니다.
 
노랗던 하늘이 이제 푸르게 덮이며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런 광경은 태어나서 처음 보네요.
 
슈테른:꼭 바다 같아요.
 
시아록:그러게.. 하늘이란 바다같은 걸까? (하늘을 올려다보며 신기해한다.)
 
일렁이며 넘실대는 색깔들은 파도치던 해변을 생각나게 합니다.
 
중간에 멍게처럼 동동 뜬 해도 신기하고. 아, 이제 그마저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쉬워하지 말라는 듯 반대편에서 무언가 떠오릅니다. 해와는 전혀 다른데, 마찬가지로 동그란 모양입니다.
 
하얗고 창백합니다. 군데군데 얼룩이 져 있고요. 저게 뭘까요?
 
똑바로 바라보아도 '해'라는 것처럼 눈이 부시지도 않네요.
 
슈테른:저건 뭘까요?
음... 어디서 봤던 것 같은데. (천천히 주머니를 뒤져 본다.)
 
시아록:그러게.. 이상하게 생겼네. 그래도 저게 있어서 좀 밝은 거 같아.
 
슈테른:사방에 있는 등불보다는 작아 보이는데, 이것들만큼 밝고 커요.
우리는 하늘에 한 번도 닿아본 적이 없는데, 저건 떨어지지도 않고 둥둥 떠 있네요.
저기서 살면 어떤 기분일까요?
 
시아록:저기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여기 숨쉬는 것도 매마른데..
더 불편하지 않을까?
 
슈테른:계속 떠 있으려면 힘들 것 같기는 해요. 저 넓은 곳에 혼자만 있으려니 외롭기도 하고.
또 다른 바다같아서 신기했는데, 마냥 좋지도 않나 봐요...
 
아, 떠오른 것을 바라보다 보면 이제야 기억이 납니다. 저게 뭐였는지!
 
그러니까... 시아록, 지능 판정.
 
시아록: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해와 쌍을 이루는 것. 지상에서 아침이 가고 밤이 찾아드면 떠오르는 것.
 
그래요, 달입니다. 부화하기 직전 물고기 알도 아니고 커다란 진주도 아닌 달.
 
조금 전에 해가 졌으니, 이제 달의 시간인 거네요.
 
리키 씨는 사람들은 '밤'이라는 게 찾아오면 잠에 든다고 말했습니다.
 
어둑어둑하기도 하고, 수리점을 찾는 건 내일을 기약하면 되지만... 집도 없는데 어디서 잠을 청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해가 떨어진 것뿐인데 부쩍 쌀쌀해진 기분이고요. 슈슈 또한 안색이 좋지 않아 입술이 파랗고, 창백합니다.
 
시아록:슈슈.. 우리도 자야겠다. 어디서 자지.
 
생각해보면 우리는 집도. 먹을 것도 두고 왔는데...
 
이제부터 어쩌지? 막막함을 느끼면...
 
 
이 곳은 시시각각 변하는 것들로 둘러싸인 곳입니다.
 
그리고 도시 또한 변화를 피할 수는 없었던 걸까요.
 
세상이 밤으로 뒤덮이고, 주변이 어두워짐과 동시에... ...
 
돌연 요란한 경보음이 울립니다.
 
도시 여기저기에서, 귀를 찢을 듯이 울리는 신호에 고막이 따끔거리고 멍멍합니다.
 
가뜩이나 인적이 드물던 거리에는 어느새 혼란이 휘몰아칩니다.
 
아니, 어쩌면 이 모두 처음부터 예견된 일이었을지도 모르죠.
 
그리고 모른 척 하지 말라는 것처럼 그것은 밀려옵니다.
 
“비켜, 비켜!” “저리 가!”
 
모두가 다급하게 뛰고 있지만, 동시에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 분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바닷가를 보고 있습니다.
 
심상치 않은... 경보소리보다도 요란한 파도소리가 들리더니, 해일처럼, 이쪽을 향해 거세게 달려오는 큰 파도가 보입니다.
 
아니, 파도가 아닙니다. 물이 씻겨져 내려간 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거대한, 적어도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어떤 것.
 
얼굴이 있어야 할 부분은 그저 우둘투둘한 덩어리가 있을 뿐입니다. 교묘하게 생긴 붉은빛이 덩어리 가운데에서 번쩍입니다.
 
선과 도형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구조, 산호와 비슷하게 생긴 무늬입니다.
 
저건 대체 뭐지? 생각하고 있을 때쯤이면 누군가 외칩니다.
 
“브리니클이야!”
 
브리니클...? 그것이 이쪽을 향해 밀려옵니다. 끼익, 드드득거리는 소리가 귀를 찌르고 머리를 울립니다. 전원 이성 판정.
 
 
슈테른:
SAN Roll
기준치: 65/32/13
굴림: 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시아록:
SAN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2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전원 이성 1 감소.
 
재난과도 같은 상황 앞에서, 당신의 이성이 경고합니다.
 
‘브리니클’이라 불리는 돌덩어리 한 체가 점차 가까워져 옵니다.
 
생각보다 빠르지 않았던 건 브리니클이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손에 닿는 모든 것들을 삼켜냈기 때문이죠.
 
마치 몸 전체가 입인 것처럼, 건물의 무너진 잔해든 나무 한 그루든 미처 도망치지 못한 불우한 희생자든 간에...
 
브리니클은 집어 들어 제 몸 안에 꾸역꾸역 밀어 넣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은 짐작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자신들도 저들처럼 될 것이라고.
 
당신은 땅을 박찹니다.
 
익숙해지면 바람을 가르고, 땅을 힘껏 디디며 달려가는건 물속에서의 이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다리를 움직여 가까스로 브리니클이라는 것과 한껏 거리를 벌립니다.
 
이 정도면 괜찮을 거예요. 브리니클의 속도가 더욱 느려졌거든요.
 
마치, 다른 먹을 걸 발견했다는 듯이.
 
그런데 말이에요. 놓고 온 게 있지 않나요?
 
옆이 조용합니다.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뒤를 돌아보면 슈테른이 넘어져 있습니다. 마녀의 집에서처럼 석상처럼 굳어 넘어져있습니다.
 
저주가 심해진 건지는 몰라도 상태가 안 좋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속수무책인 그를 향해 브리니클이 다가옵니다. 거대한 손이 다가오는 게, 당신에게도 느껴집니다.
 
그는 얼어붙어 있다가 겨우 입을 움직여 무엇인가 외칩니다.
 
슈테른:도망쳐요!
 
어떻게 하죠? 도망칠까요, 시아록?
 
시아록:(당신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눈가가 일그러졌다.) 널 두고 뭘 도망쳐! (달려서 슈슈에게로 향합니다.)
 
여기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뭍 위까지 올라온 의미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요.
 
뛰어요. 당장 죽을 위기에 처하더라도 소중한 것을 온몸으로 붙잡으세요. 시아록, 민첩 판정.
 
시아록: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7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있는 힘껏 슈테른을 낚아채다시피 일으키고 거대한 재난에게서 물러서면,
 
사방에 튄 돌 파편과 건물의 잔해로 볼이 따끔따끔해지는 게 느껴집니다.
 
죽을 위기는 피했지만, 여기서 다시 도망칠 여유는 없다는 게 문제일까요.
 
시아록:(당신을 구하겠다고 열심히 달려서인지 아니면 당신의 위험에 많이 놀란 것인지 당신을 꼭 끌어안고 눈이 커진 채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쾅―! 브리니클의 팔이 바닥을 힘껏 두드립니다.
 
이제 브리니클의 불길한 붉은 빛이 여러분을 똑바로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거대한 두 개의 팔이 다가옵니다. 퇴로를 차단하는 듯이.
 
공포에 짓눌려, 겨우 서로를 꽉 감싸는 것밖에는 못 하고 있을 무렵.
 
“이쪽이에요!”
 
어린 티가 나는, 낭랑한 목소리가 난 것은 그때였습니다.
 
돌 하나가 툭, 브리니클의 얼굴이 있을 부분을 딱 때리고 떨어집니다.
 
고작 그것뿐인데도 골렘은 고개를 돌려 반응합니다.
 
여러분을 향한 손도 우뚝 멎습니다. 도망치려면 지금입니다!
 
 
로브를 걸친 그 사람이 돌을 딱 때리면 정확히 브리니클의 얼굴 부근을 때립니다. 딱! 붉은빛이 점등합니다.
 
저건 마치... 혼란스러워하는 것만 같아요. 저 돌덩어리에게도 감정이 있다면요.
 
“뛰세요! 뒤 돌아보지 말고!” 그가 외칩니다.
 
따라오라는 듯이, 망설이지도 않고 한 방향으로요.
 
시아록:어, 어. 네! (슈슈를 그대로 안아든 채로 달리기 시작한다.)
 
건물과 건물 사이, 좁게 난 골목길을 질주합니다. 손바닥만 한 밤하늘이 위로 뻗어있습니다.
 
둘은 숨을 들이키곤 달립니다. 추격의 시작입니다!
 
*골목길을 달리며 랜덤한 위험 요소를 만나고 적절한 판정에 성공하면 앞으로 넘어갑니다.
 
브리니클과의 거리는 그닥 멀지 않습니다. 만약 3번 이상 실패한다면... ...
 
슈테른:
(To GM)rolling 1d100
 
(
65
 
)
 
 
=
65
 
로브를 쓴 이가 이끄는 대로 달리면, 이 골목은 좀 복잡하군요.
 
곳곳에 새우의 껍질처럼 단단하고 길다란 무언가가 뻗어 있습니다.
 
미로같은 도시를 골목 하나에 몰아넣는다면 이럴까요?
 
게다가 쓰레기며 건물 파편이 여기까지 있네요.
 
아무래도 전부 피해가야겠습니다. 민첩 보통 성공 이상이어야 성공합니다.
 
시아록: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84
판정결과: 실패
 
마음과는 다르게 어딘가에 발이 걸려, 하마터면 넘어질 뻔 했습니다.
 
슈테른:
(To GM)rolling 1d100
 
(
22
 
)
 
 
=
22
 
복잡한 골목을 빠져나오면, 다행히 이곳은 비교적 멀끔합니다.
 
하지만 뒤에서 무언가가 뜯어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지상은 이렇게도 무시무시한 곳이었나요. 정말 먼 여행을 떠나온 게 잘한 일일까요.
 
하지만 이 길처럼 인생도 일방통행이라 뒤로 돌아갈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아까부터 크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킵니다. 시아록, 정신력 판정.
 
시아록: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8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그래요, 꼼짝없이 죽을 뻔한 상황에서 도움을 받은 것부터가 천운인걸요.
 
다리에 풀리려는 힘을 다잡고 다시 달립니다. 브리니클이 내는 소음이 점점 멀어집니다.
 
슈테른:
(To GM)rolling 1d100
 
(
72
 
)
 
 
=
72
 
다음 골목은 건물 사이사이로 빛이 슬금슬금 빠져나오는 게 보입니다.
 
그러고 보니, 점점 밝아지는 것 같지 않나요? 이 도시.
 
하지만 빛과 함께 주변의 장치나 쓰레기들이 발을 잡습니다.
 
아무래도 전부 피해가야겠죠. 시아록, 민첩 판정.
 
시아록: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6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얼마를 달렸을까요.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걸 느끼며 발을 움직이면...
 
아, 뒤가 조용합니다.
 
브리니클이라는 게 돌아간 건지,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린 건지는 몰라도...
 
이제 눈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졌습니다. 이만큼 뛰었으면 된 거겠죠.
 
*충분한 거리를 벌려 도주 성공. 추격을 종료합니다.
 
 
숨을 겨우 고르고 있으면 바로 앞에서 목소리가 들립니다.
 
"두 분 다 괜찮으세요?" 아, 아까 그 어린 목소리입니다.
 
목소리가 들린 쪽을 돌아보면, 빨강, 노랑, 분홍, 파랑... 산호처럼 선명하고 예쁜 색색의 불빛이 반짝입니다.
 
꽤 높게 세워진 벽 앞에.
 
(고속도로 가장자리에 둘린 울타리와 같은 모양새입니다. 여러분은 고속도로를 모르겠지만요.)
 
시아록:(말을 건 사람을 쳐다보며 눈을 깜빡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그러고는 곧장 슈슈를 쳐다본다.) 슈슈는 괜찮아?
 
슈테른:전 괜찮아요. 시아록이야말로 괜찮아요? 아까 넘어질 뻔 했잖아요, 떨어지는 건물 부스러기에 맞을 뻔도 하고...
 
시아록:그정도는 괜찮아. 엎어질 뻔한 거지 넘어진 건 아니라서. 진짜 괜찮은 거지? (아까 전 넘어진 당신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살핀다.)
 
슈테른:정말 시아록 덕분에 살았어요. 일어나려고 했는데, 도저히 몸이 말을 듣지 않아서... ...
(두려움 때문인지 추위 때문인지 몸을 부르르 떨다가) ...가서 상처 치료도 하고 푹 쉬셔야 해요. 한동안 저 안고 뛰느라 무리하셨잖아요.
전 괜찮아요. 그보다 아까 그건...
 
???:이 앞으론 안전지대에요.
 
로브를 둘러쓴 이가 말합니다.
 
???:물론 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건 부자들뿐이라, 가난한 이들은 저것들의 습격에 벌벌 떨며 하루하루 연명할 뿐이죠.
 
시아록:(당신을 여전히 살피다가 안전지대라는 말에 이름모를 누군가에게 시선을 돌렸다.)
안전지대? 부자..?
 
???:...? 네. 브리니클은 이 장벽 안까지 넘어오진 못하거든요. 뚫리더라도 이렇게 깊숙이까지 오는 일도 거의 없고.
어떻게 되려나 했는데 결국 무사히 살아남으셨네요. 근데 두 분 다 왜 그렇게 얼빠진 표정이세요?
 
시아록:..저 여기는 처음 와서, 저런 건 처음 봤어요. 브리, 니클,..?
 
???:...네? 브리니클을 처음 보신다구요...?
어디서 오셨는데요? 그럼 저건... 아니, 일단 이곳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알고 오신 거죠?
 
시아록:아뇨. (우물쭈물하면서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뒷목을 덮어쓴 로브 위로 긁적이더니) ...그냥 휘말린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당신들 정체가 뭐에요?
 
시아록:그냥 다른 곳에서.. 여행 온 거예요. (당황한 채로 어물거린다.)
 
???:아무리 멀리서 왔어도 브리니클을 모르는 사람은... 아니, 안전지대에서 왔다면 그럴 수도... (혼란스러운 듯 중얼거리다가)
...아니,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일단 들어가서 마저 얘기하죠. (로브를 흩날리며 벽 앞에 선다.)
 
시아록:(어디로 가요?
(벽 앞에 선 사람을 빤히 쳐다보다가 물었다.)
 
???:안전지대요. 아까 말했듯이 부자들 말고는 이 장벽을 넘는 건 꿈도 못 꾸지만...
저한텐 수가 있으니까.
 
시아록:아, 그래요?
 
하늘을 찌를 듯 뻗은 단단하고 흠집 없는 벽은 넘어갈 엄두조차 안 납니다.
 
이런 곳인데 무슨 수가 있는 걸까요? 시아록, 관찰력 판정.
 
*패널티 다이스로 판정해주세요!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372517
+2: 극단적 성공
+1: 어려운 성공
  0: 어려운 성공
―1: 어려운 성공
―2: 어려운 성공
 
희미하게, 아래에서부터 불어오는 공기의 순환을 느낍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작은 개구멍이 나 있습니다.
 
일종의 비밀통로 같은 거겠죠.
 
???:여기 이 구멍 보이세요? 사이로 잘 비집고 들어오세요.
몰래 들어가는 거니 큰 소리 내시면 안 돼요. 그리고 옷 매무새도 좀 단장하시고요.
저 안에서 그런 옷차림으로 돌아다녔다간 의심 사는 건 금방이에요. 부자들한테도 보는 눈은 있으니까.
 
시아록:아, 네. (어설프게 고개를 끄덕이고 개구멍을 들여다본다.)
 
옷매무새를 단장하라는 게 무슨 말이지? 일단 여러분은 급한 대로 자신의 외투를 꽉 여매 봅니다.
 
안에 입은 수중 인류의 옷이 드러나지 않도록 가리고 나면, 그는 영 시원찮은지 먼지를 툭툭 털어주고 소매를 잘 접어줍니다.
 
???:...잠깐만요, 옷 거꾸로 입으셨잖아요.
 
시아록:네?
 
???:지금 발견해서 다행이지... 일단 벗어보세요.
 
그는 슈테른의 외투까지 고쳐입혀 주고는, 흡족한 눈치로 손을 털곤
 
그동안 답답했는지 로브를 벗어 넘깁니다.
 
빛나는 네온사인 아래 그의 얼굴이 드러납니다.
 
당신과 슈테른은 그만 숨을 삼킵니다.
 
믿을 수 없네요.
 
이건 앗! 하고 소리칠 수밖에 없는 광경입니다.
 
???:......?
 
그야, 저 아이.
 
슈테른과 얼굴이 똑같았으니까요.
 
시아록:(눈이 있는대로 커져선 슈슈와 이름 모를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슈슈에게 작게 속삭였다.) 슈슈.. 저 사람 얼굴..
 
슈테른:(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실례라는 것도 잊고 그의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본다.)
...세, 세상에...
동생이 있었다면... 저랬을까요? (떨리는 목소리로 얘기한다.)
 
???:(거울을 보는 것처럼 닮은 모습에 눈을 크게 뜨고 굳어 있다가) 이건...
완전히... 도플갱어 수준이네요.
 
시아록:그, 그러게요. (저도 모르게 동의해버렸다. 슈슈는 바다 사람이니까 뭍의 사람이랑 상관없을 텐데..)
 
???:그 말대로 가족...일까요. 서로 미처 모르고 살았던? (착잡한 표정으로 제 머리를 헝클어트린다.)
...출신이 어디세요? 얼마나 멀리 떨어져있는지 가늠해볼 테니까.
 
시아록:어.. 진짜 멀어요. 엄청... 그래서 신기한 거예요.. (냉큼 둘러댄다.)
 
???:(얼굴 위로 떠오르는 수많은 물음표를 손으로 덮으며 크게 한숨을 들이쉰다.) 아니에요, 대체 제가 뭔 소릴 하는 건지, 사람 둘을 세워놓고....
이만 들어가요. 이 안쪽은 훨씬 따뜻하고 안전하니까.
 
시아록:어, 네. 진짜 고마워요. 앞에 위험한 거 없는 거죠? 슈슈부터 들어갈래?
 
슈테른:저부터 들어갈게요. 들어오실 때 붙잡아드릴 수 있게...
...그리고, 감사... 합니다. (지나치게 닮은 사람에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하고는 구멍 사이로 들어간다.)
 
시아록:안 잡아줘도 돼. 슈슈가 안전한 곳에 먼저 들어갔으면 하는 거니까.
(안으로 들어가는 너를 가만히 본다.)
 
무릎을 구부려 개구멍 쪽을 들여다보면, 장벽 안쪽으로는 평화로운지 얼마간 소음이 없습니다.
 
그리고 안쪽에서 그의 손이 쑥 하고 내밀어집니다. 잡고 들어오라는 듯.
 
시아록:안 잡아줘도 돼. (얼른 구멍 속으로 기어들어가 가까워진 당신의 손을 한 번 톡 쳤다.)
 
슈테른: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필요없다는 대답에도 당신을 일으키고는 천천히 손을 잡아온다.)
그런데 여기는...

 

 
안전지대
 
개구멍을 통과하자, 그곳은 빛의 도시였습니다.
 
네온사인보다 더욱 화려한 불빛이 벽 안쪽을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시아록:(당신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듯 벌떡 일어나 손을 잡고 함께 주변을 둘러본다.)
 
한 집 건너 한 집마다 불이 안 켜진 가게가 없고, 사람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즐거운 여흥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관심도 두지 않는 것 같네요.
 
시아록:바깥은 그렇게 정신없었는데... 여긴 아무일도 없다는 거 같네..
 
슈테른:평온하네요. 아까 전 일들은 모두 남일이라는 것처럼.
(갑자기 찾아든 평화에 긴장이 탁 풀리는지 잠깐 비틀거린다.)
 
시아록:(비틀거리는 당신에 깜짝 놀라 붙잡았다.) 괜찮아? 어디 아파? 많이 피곤해?
 
슈테른:뭍에 올라오고 나서부터 계속 정신이 없어서... 잠깐 힘이 풀렸어요. 놀라게 했다면 죄송해요.
살아남은, 거죠. 저희...
 
시아록:괜찮다면 다행이지만.. 손도 계속 차갑고.. (쭈물쭈물 당신의 손을 만진다.) 응, 살아남았지. 아까 진짜 놀랐다, 그치?
 
슈테른:손 많이 차가워요? 너무 시리면 안 잡아도 괜찮아요. 혼자 걸어도 되니까... 계속 머무를 곳도 없이 돌아다녔다면 많이 불안했을 텐데 이렇게 안전한 곳으로 들어와서 다행이에요, 그것도 함께요. (분명 같은 온도였는데, 어느새 유독 따스하게 느껴지는 손을 볼에 가져다대며 살풋 웃었다.)
 
시아록:엄청 시리다는 게 아니고, 네 손이 확 차가워져서 걱정되서 그래.. (따뜻한 듯 손을 뺨에 대어보는 너를 보며 따라 미소 짓는다.)
 
슈테른:여기 있는 건물들은 또 엄청 알록달록하네요. 마치 산호 밭을 보는 것 같아요. 전에 필립 씨가 기르셨던 게 꼭 저랬었는데.
 
시아록:그러게 진짜 여기 들어와서 다행이야. 바깥이 좀 걱정이긴 하지만, 우리가 살아남는 게 우선이지.. (마지막 말은 당신에게만 작게 속삭였다.)
 
슈테른:그러게요... 바깥은 괜찮을까요. 그래도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아까 저분처럼 용감한 사람이 내쫓았을 지도 모르죠. 그랬으면 좋을 텐데.
 
시아록:응, 뭐.. 우리가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겠지..
 
슈테른이 그렇게 말하며 우리를 구해준 사람에게 눈길을 주면,
 
???:슬슬 움직일까요?
 
기다렸다는 듯 그가 팔짱을 풀고 옷을 탁탁 텁니다.
 
시아록:아, 네.
(고개를 얌전히 끄덕였다.)
 
???:음... 이동하기 전에 하나만 물어보자면,
다들 묵을 곳은 있으세요? 예약해둔 숙소라든가.
안전지대의 존재 자체를 모르셨으니 그것도 아니려나.
 
시아록:어..아뇨.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어요.
 
???:... 음......(미간을 좁히곤 고뇌하더니) 일단 제가 사는 곳으로 가요. 가서 이상한 짓 하시면 안 돼요? 두 분 다.
 
시아록:이상한 짓 안 해요! (화들짝 놀라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래도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아, 아뇨... 그럼 따라오세요. (불빛이 곳곳에 알사탕처럼 수놓인 도시를 걸으며 앞장선다.)
 
그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며 주위를 둘러보면,
 
건물 벽에 붙은 것들이 읽힙니다.
 
카지노, 바, 클럽, 레스토랑. 역시 읽을 수는 있는데, 뭐라는 건지 못 알아먹겠네요.
 
우리의 복잡한 심정과는 상반되게 걸어가는 내내 사람들에게서 웃음과 행복이 끊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아까 전보다 건물도 부쩍 높아졌네요. 시아록, 관찰력 패널티 판정.
 
시아록:
고고학
기준치: 1/0/0
굴림: 12670
+2: 대성공
+1: 대성공
  0: 대성공
―1: 실패
―2: 실패
(죄송해요, 고고학 눌렀어요 ;;;)
 
책미 (GM):???????????????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37496
+2: 극단적 성공
+1: 극단적 성공
  0: 어려운 성공
―1: 어려운 성공
―2: 실패
 
책미 (GM):아니 고고학을 눌렀는데 대성공.............?
 
시아록:(*바로 위에 있어가지구 잘못 눌렀어요. 눌리고 깜짝 놀랐네 ㅠㅠ)
(*억, 진짜네요.. 뭐지..?)
 
책미 (GM):아록이 오늘 주운도 정말........... 고속도로 벽만큼 높군요
엄청나다...
 
하늘:(*1을 가지고 대성공을 ...? 내새꾸지만 이상한 녀석... ㅋㅋㅋ)
 
가장 눈에 띄는 건 높이 솟은 건축물입니다.
 
많은 건물이 무척 높이 세워져있는데, 촘촘한 창문이 달려있습니다.
 
두 손을 다 꼽아도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숫자인데, 심지어 저마다 생긴 것도 제각각입니다.
 
어떤 건물은 표면에 현란한 색의 글씨와 그림이 잔뜩 새겨져있고, 선으로만 이어진 높은 탑도 눈에 띄네요.
 
???:한눈팔지 마세요.
 
시아록:아, 네.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가 화들짝 몸을 떨었다.)
 
그는 여러분을 이끕니다. 그 발이 비로소 멈추는 것은,
 
빛의 도시 안에서도 다소 어두운 (뒷골목에 비하면 아주 쾌적한 곳이지만요) 주택가 골목입니다.

 

 
높게 올라가라고 쌓은 돌을 밟고 올라가면, 현관문 뒤로 그의 집이 펼쳐집니다.
 
안은 평범한 가정집처럼 보입니다. 소지품이며 장치가 여기저기 널려 있습니다.
 
???:...일단 두 분 다 여기 앉으실래요? 서로 물을 게 많을 테니까.
 
시아록:아, 어.. 네... (지금까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가 이제야 경계심이 확 든다.)
 
???:(폭신하게 생긴, 넓게 편 조개같은 의자를 가리킨다. 제법 커서 셋 정도는 앉을 수 있을 것 같다.)
 
시아록:(우물쭈물하다가 슈슈를 데리고 의자에 앉는다.)
 
그는 한동안 말없이 앉아있다가,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는 듯 눈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겨우 입을 엽니다.
 
???:그... 일단 서로 통성명부터 할래요? 다들 서로가 누군지 모르니까.
전 노아에요. 보시다시피 여기서 살고 있고... 안전지대 안팎을 드나들며 심부름꾼 업무를 하는 게 주 임무에요.
 
시아록:노아.. (그의 이름을 한차례 중얼거리고) 그렇군요.
 
자신을 노아라고 소개한 그가 여러분에게 턱짓합니다.
 
시아록:저는 시아록이에요. 먼 외지에서 여행을 왔어요.
여기는 처음이고요..
 
슈테른: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프루헤 슈테른이라고 해요.
옆의 시아록과 함께 여행을 왔고, 노아...씨만 괜찮다면 편하게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시아록:그, 슈슈가 지금 조금 아파서.. 부탁하기 미안하지만 따뜻한 물 한잔만 받을 수 있을까요?
 
노아:아프시다고요? 어떤 곳이요?
혹시 전염병이라면, 죄송하지만 곤란해요. 저도 좀 어려운 상황이라.
 
시아록:아, 전염병은 아니에요. 저도 계속 같이 있었는데, 멀쩡하고요.
 
노아:(무언가 가늠하려는 듯 눈을 쳐다보다가) 일단 물은 갖다드릴 테니까 잠시만 기다리세요.
 
시아록:네, 그냥 여행이 길어서 지친 거예요.
 
노아:여길 여행하신 건 언제부터세요? 왜 오신 건지 물을 수 있을까요?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앞의 탁자에 유리잔 둘을 내려놓는다.) 이건... 손님 대접이라기엔 뭣하지만.
 
시아록:아,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였다.) 찾을 게 좀 있어서 왔는데요.. (어디까지 말을 해야 가늠하다가 그냥 얼버무리기로 한다.) 물건이 고장나서.. 수리점을 찾으려고 했어요.
 
노아:수리점을 찾으러 여기까지 오셨다고요...? 거짓말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아무리 재난상황이라지만 수리점이 없는 국가라니 들어본 적도 없어요.
 
시아록:아니요. 그, 여기까지 오는 길에 물건이 고장난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수리점 찾고 있었다는 말이었어요.
 
노아:(얼굴을 찌푸리며 대강 고개를 끄덕인다.) 그건 그렇다 칠게요.
그럼 저 사람... 슈테른 씨는 정체가 뭐죠?
 
시아록:슈슈가 왜요? 제가 어릴 때부터 같이 커왔는데요.
 
노아:솔직히 말하자면, 가족도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 닮은 얼굴이라니, 심지어 먼 친척이 있다는 말도 들은 적 없는데... 의아해서 그래요.
 
시아록:저희 입장에선 당신이 더 수상하고요.
당신은 우리가 그렇겠지만..
 
노아:정말 도플갱어를 만난거라면, 전 이렇게 죽는 거려나...
 
시아록:멀쩡한 걸 보니 괜찮겠죠..
 
노아:음, 그렇겠죠. 서로에게 서로가 의심스러운 상황인데...
 
시아록:그렇죠..
그래도 도와줘서 고마워요. 여기까지 데려와준 것도요.
 
노아:...다른 쪽으로 주제를 바꿔 볼게요. 단순히 지친 게 아니라 병세가 있으신 거면 병원에 데려가셔야 했던 거 아닌가요?
아니면 근처에 있는 보건소라도... 아, 다른 곳으로 옮겨갔으려나. 죄송해요, 아주 자세하게는 몰라서.
 
시아록:저도.. 여긴 자세히 몰라서요.
사실 여긴 처음 왔거든요.
 
노아:길을 모르시는 거면 데려다드릴 수는 있어요. 치료비가 조금 걸리겠지만...
그런데 멀리서부터 처음 온 것 치고는 짐이 거의... 없으시네요.
 
시아록:필요한 건 챙겨다니니 괜찮아요. (어깨를 으쓱이고는 슈슈를 바라봤다.) 내일 보건소, 병원에 가볼까?
 
슈테른:이 증세가 해결이 된다면... 우리가 어떻게든 방법을 알아내서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면 되잖아요. 가 보고 싶어요.
그런데 치료비는 뭔가요? 필요한 게 있으면 제가 준비해둘게요.
 
노아:(이마를 짚으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뱉는다.) 아뇨, 됐어요... 어차피 혈혈단신으로 오신 것 같고, 아픈 사람한테 일 시키는 것도 좀 그렇고.
가벼운 감기면 제 자금으로 때울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물론 그냥 드릴 순 없고 나중에라도 갚으셔야 해요.
 
시아록:어, 네. 알았어요. (도움을 준다는 말에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아:일단 앉아계세요. 밤이 늦었으니 저녁식사라도 같이 하죠. (일어서서 옮겨간 곳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그는 당차게 일어나선 약간 부드러운 덩어리와 뜨끈하고 허여멀건한 무언가를 내 옵니다.
 
체형으로 봐선 열댓살 정도의 어린아이인데, 이런 애가 먹을 것도 내 주고 병원도 데려가준다니 어쩐지 오묘한 기분이네요.
 
시아록:(내어온 먹을 것은 완전히 처음 보는 것이라 그저 멀뚱히 눈을 깜빡이며 쳐다본다.)
 
그러고보면, 어린아이 혼자 살기에는 다소 넓은 집이죠. 엄청난 부자라기엔 살림살이에서 가난이 묻어납니다.
 
노아:(그릇을 내민다.) 뭐라도 드세요. 필요 없으시면 치우고요.
 
시아록:아, 아니에요. 고마워요. 노아씨는 안 먹어요?
 
노아:저도 먹어야죠. 나름 넉넉하게 내왔으니까 식사하세요. (부드러운 무언가를 이빨로 뜯더니 국물을 떠 먹는다.)
그런데 그쪽 분... 슈테른 씨는 괜찮으세요? 누워서 쉬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시아록:슈슈, 조금 먹고 쉬는 게 낫지 않겠어?
 
슈테른:(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제안에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 그럴게요.
시아록도 너무 늦게까지 깨어있지 말고 쉬셔야 해요?
 
시아록:(당신의 옆에서 이것저것 챙겨주고는 노아가 먹는 걸 보고 따라한다.) 응, 그럴게. 슈슈야말로 푹 쉬어
 
슈테른은 부스스 일어나더니 노아가 부축하는 대로 방으로 들어갑니다.
 
집 구조가 참 특이하네요, 칸막이도 아니고 벽이 막고 있다니. 수중 세계에선 본 적 없는 모습입니다.
 
아무튼 문을 닫고 걸어오는 노아가 이야기합니다.
 
노아:...솔직히 고민이 많이 됐지만, 아프시다는 것만은 거짓말은 아닌 것 같으니까 여기서 지내게 해 드릴게요, 당장은 방도 남는 처지고.
 
시아록:고마워요. (여전히 경계심은 남아있긴 하지만,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다.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했다.)
 
노아:저랑 똑같이 생겼는데, 얼굴이 마냥 창백하니까 마음이 영 편찮아서 그런데, 어떻게 아프신 거에요? 증세가 어떻게 되죠?
그리고, 경비는 충분히 가져오신 거죠. 안전지대에선 돈만 있다면 뭐든 걱정은 없으니까...
 
시아록:몸이나 손이 많이 시려요. 몸이 안 좋아서 그런 거 같은데.. (일부러 많은 증상들을 얘기하진 않는다.)
네, 돈은 조금 있어요. (아까 아이들이 그림이 그려져있는 종이조각이 돈이라고 했고, 핫도그란 걸 살 때 진주를 내밀었을 때도 그걸 받아주었으니까 괜찮을 것이다)
 
노아:저체온증인가, 그럼 합병 증세가 있을 텐데... (혼잣말하며 가늠해보다가) 음, 자세한 건 내일 의사 선생님께 물어봐야겠죠.
 
시아록:네, 그렇게 해야할 거 같아요
 
노아:그럼 다행이네요. 식비까지 충당해드리기엔 저도 넉넉하지 않으니까...
 
시아록:그건 괜찮아요. (고개를 한차례 끄덕이곤) 노아씨도 이제 좀 쉬세요.
 
노아:그렇게 하죠. (넓찍한 의자에서 일어선다.) 같은 방에서 주무실 거죠? 저쪽이에요.
 
시아록:네, 감사합니다. (따라서 일어났다.)
 
노아:그럼 두 분이서 상의 좀 해 보세요. 앞으로 어떻게 할지. 제가 모든 걸 도와드릴 순 없으니까. (일어서서 등을 보이며 걸어간다.)
 
슈테른이 자고 있다는 방으로 들어가보면,
 
슈테른:시아록...?
 
그는 아직도 깨어있지만 조금 비몽사몽한 표정입니다.
 
시아록:아직 안 잤어? 얼른 자.
우리 이야기는 내일 해도 되는 걸.
 
슈테른:음, 빨리 자려고 했는데... 사방이 조용한 만큼 생각이 많아져서요.
밖에서 말소리가 들리던데, 무슨 얘기 했어요?
 
시아록:아니, 별 말 아니었어. 내일 병원에 가는 거 그런 걸 얘기했어.
슈슈, 얼른 자. 많이 피곤하지.
 
슈테른:...병원에서 고쳐준다면 좋을 텐데. (졸린 투로 차분하게 애기한다.)
 
시아록:그러게 말야. (당신에게 이불을 잘 덮어주고 살짝 토닥였다.)
 
슈테른:그래도 이렇게 도움을 받아서 다행이에요. 제대로 말해준 것도 없는데, 길 안내도 해주시겠다고 해서 놀랐거든요.
 
시아록:그러게. 좀 의심되긴 하는데, 그래도 친절하네.
 
슈테른:지금까지 본 사람 중 제일 따뜻하신 것 같으니까...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얼굴이 같은 건...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지만.
전 어릴 때의 기억이 없으니까, 노아 씨도 저도 서로 잊고 있었을지도 모르잖아요. 같이 있다 보면 기억이 나겠죠.
 
시아록:음, 그럴까.. (조금은 걱정되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슈테른:시아록도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한참 걷고 길도 찾고, 첫날부터 많은 걸 했잖아요.
 
시아록:나보단 슈슈가 고생 많이 했지.
난 튼튼하잖아. (당신에게 씩 웃어보인다.)
 
슈테른:덕분에 늘 신세지고 있죠. 노아 씨께도 잘 해명해주셨고... (볼을 긁적이다 마주 웃어준다.)
잘 자요, 좋은 꿈 꾸세요... (베갯머리에 몸을 뉘이고 스르르 눈을 감는다.)
 
시아록:응, 잘자. (당신이 잠드는 걸 가만히 보다가 확인한 뒤에 몸을 뉘였다.)
 
너무나 조용해서 조금은 낯선 밤이 깊어갑니다.
 
이곳에는 함께 봤던 클리오네의 불빛도, 성게 무리의 행진이나 해초의 춤도 없지만,
 
우리는 가까스로 일상을 영위합니다.
 
내일, 노아가 말하는 병원에 가면 무언가 달라질까요?
 
어떻게 됐든 슈슈와 함께 있다고 생각하며,
 
당신은 편안하게 눈을 감습니다.

 

 
아침, 의복과 식사
 
눈을 찌르는 선명한 기척에 당신은 눈을 뜹니다.
 
무언가 눈부신 조명이라도 켠 듯, 눈을 감고 있기가 힘드네요. 창가로 다가가 그것의 정체를 확인해보면,
 
아니나다를까, 어제 감쪽같이 사라졌던 해가 다시 떠올라 있습니다.
 
밤이 가면, 다시 아침이 찾아온다 했던가요. 아쉬워할 틈도 없이,
 
그렇게 갑자기 지상의 두 번째 아침이 밝았습니다.
 
 
여러분이 나란히 눈을 비비며 일어나면, 밖에서 노아가 아는 체를 해 옵니다.
 
노아:일어나셨어요, 두 분 다.
 
시아록:아, 안녕히 주무셨어요.
 
노아:... 잠깐만요, 괘, 괜찮으세요...?
 
네? 뭔 소리지?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몸이 좀 이상합니다. 전원 건강 판정.
 
슈테른:
건강
기준치: 50/25/10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시아록:
건강
기준치: 75/37/15
굴림: 2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그 말에 어리둥절해하며 팔을 긁고 있으면...
 
팔을 긁고 있다고요?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팔이 간지러운 것 같아요.
 
아니, 사실 온몸이 간지럽습니다. 특히 햇살과 닿은 부분 위주로 벌겋게 부어올라 있네요.
 
옆에 있는 슈테른은 피부에 물집까지 잡혀 있습니다. 피부가 벌건 것과는 반대로 인상은 더 시커매진 기분입니다.
 
시아록:(화들짝 놀라서 자신의 팔을 보다가 슈테른의 팔도 보았다. 굉장히 아프게 보여서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슈슈, 괜찮아? 많이 아플 거 같은데..
 
슈테른:따가워요... (자신의 팔을 매만지다가 괜히 건드렸다간 더 심해질 걸 우려하여 손을 놓았다.) 조금 화끝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 둘 다 이런 걸 보면, 햇빛에 닿아서 그런 걸까요? 다른 빛은 받아도 멀쩡했는데.
시아록도 팔 보여줘봐요. 괜찮아요? 병원 가면서 이것도 치료해달라고 해야 하나.
 
시아록:그러게.. 처음이라 그런가..(혼자 중얼거리고는 자신의 팔을 슈테른에게 보여준다.) 난 그래도 슈슈보다 심하진 않은 거 같은데..
 
슈테른:무언가 바를 게 있으면 좋을 텐데. (오면서 해초는 본 적이 없었다. 낯선 세계에 전에 본 것과 같은 건 없었으니까. 물결지는 해초 대신 날렵하게 피부를 베는 풀만이 존재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에 한숨을 쉬며 손을 꼭 쥐었다.)
 
한창 난처해하고, 심각해져 있으면 노아가 끼어듭니다.
 
노아:화상...인 것 같은데요. 햇빛 알레르기가 있으세요?
 
시아록:햇빛 알레르기요..?
 
노아:미리 말씀해주시지, 커튼이라도 쳤을 텐데요.
체질 때문에 햇빛에 피부가 드러나면 두드러기 같은 게 올라오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시아록:아.. 그렇구나..
 
노아:이건 미처 생각을 못 했는데... 일단 응급처치라도 해 드릴까요?
 
시아록:어, 네. 그래주시면 감사하고요.
어떻게 하면 되나요?
 
노아:어떻게 할 건 없고... 잠시만요. (구석에서 하얀 상자를 들고 온다.)
일하면서 다치는 일이 숱해서... 물론 레지스탕스 분들만큼은 아니지만, 아무튼 치료에는 능숙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노아는 두 사람의 피부에 뭔가 발라주고, 심하게 따끔거려 피가 나는 부위에는 시원한 감촉의 천조각을 붙여 줍니다.
 
노아:이대로 낮 시간까지만 이러고 계세요.
음, 햇빛에 약하시다면 모자를 쓰거나, 옷을 꼼꼼히 입어야 할 텐데...
그 두 옷, 사오신 거에요?
아니다, 맞춰볼게요. 주워오신 거죠? 아니면 벼룩시장에서 사 오셨든가.
 
시아록:(옷 얘기에 잠시 눈이 동공지진으로 흔들렸다.)
어, 그.. 네.. 맞아요.. (우물우물 대답했다.)
 
노아:그럴 것 같았어요. 밝은 곳에서 보니까 헌옷인 티가 나네요. 저분이 걸치신 옷은 또 너무 작아보이고.
 
슈테른:(무언가 들켜버린 느낌에 괜히 입고 있던 외투를 꽉 여맨다...)
 
노아:으음... 이런 건 계획에 없었는데...
...일단 잠시만요.
 
노아는 한동안 고뇌하더니 입을 엽니다.
 
노아:우선 오늘 계획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일단 밖에서 돌아다녀야 하니 피부를 가려줄 옷을 새로 사고, 병원을 찾아본 다음에, 점심거리를 살 거에요.
 
시아록:네.. (얌전히 듣는다.)
 
노아:밤에는 저도 일을 맡아야 하니까, 낮동안 이 모든 걸 끝내야 해요. 아시겠죠?
 
시아록:네, 그럴게요.
 
노아:...음, 그럼 두 분 다 씻고 계세요. 준비되면 부를 테니까.
 
할 말이 없어졌는지 노아는 어색하게 자리를 비켜줍니다.
 
슈테른:...저, 있잖아요 시아록...
 
시아록:응? 왜?
 
슈테른:...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머리 묶고 이만 갈까요?
 
시아록:왜 그래? 할 얘기 있으면 해도 되는데..? (당신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머리는 묶어야하지만..
 
슈테른:...괜찮아요, 지금이 아니어도 말할 때는 있을 테니까... (머리끈을 손에 쥐며 쓰게 웃는다.) 나름 지상 세계를... 그것도 멸망한 줄만 알았던 문명을 탐색할 기회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가 봐요.
 
시아록:으응, 그래. (고개를 끄덕이며) 편할 때 얘기해. (꼼지락거리며 머리를 묶기 시작한다.) 그러게. 진짜 다 멸망한 줄 알았는데.. 엄청 발달한 거 같아.. 나중에 바다로 돌아가서 얘기하면 다들 놀랄 거 같은데.
 
슈테른:오히려... 우리보다 더 발달한 것 같지 않아요? 일일히 주문을 외우지 않아도 끄고 켤 수 있는 등불이라거나, 어디서든 상대와 연락할 수 있는 장치라든가... 수중 세계에선 없었는데.
우린 뭍에서 숨을 못 쉬니까 지금까지 몰랐던 거겠죠? 어떤 것들은 정말 집에 안고 가고 싶네요.
 
시아록:그러게.. 바다에서도 다들 편하게 생활하게 갖고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주변을 둘러보며 집 안의 도구들을 본다.) 마녀가 약을 준다고 해도 다들 여기 와서 사는 건 불편할 거 같고..
 
슈테른:우리 힘으로 장치를 구하면 마을로 가져가봐요. 남은 사람들끼리 머리를 맞대면 우리 물건으로 만들 수 있을 지도 모르고...
 
시아록:좋아,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자.
 
슈테른:무엇보다 저주를 푸는 게 먼저겠지만요. 그럼 갈까요? (천으로 뒤덮인 손을 내민다.)
 
시아록:응 ( 고개를 끄덕이고 당신의 손을 잡았다.)
 
천이 한 번 감싸고 있어서인지 그의 손은 어제보다는 덜 시립니다.
 
그 천 덕분에 조금이라도 따뜻해졌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밖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생각해보면, 오래 전 멸망했다던 지상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번성한 걸까요?
 
사람들이 저주에 걸린 이유는? 마녀의 말은 정말 사실일까요? 지금쯤 수중 세계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요?
 
만약에, 수중 세계마저 멸망한다면 우리는 어떡해야 할까요?
 
대답을 내놓기 힘든 의문들이 스쳐갑니다. 앞서가는 노아도 생각이 많은지 말이 없습니다.
 
둘... 아니 셋은 함께 도시를 헤쳐나가기로 합니다. 각자의 생각을 그림자처럼 짊어진 채.
 
 
노아:여기에요.
 
그렇게 말하며 노아가 멈춰선 곳은, 한 허름한 지하실 입구입니다.
 
옷 가게를 몇 군데나 지나치길래 그런 곳에 들어가려나 싶었는데, 아주 오산이었죠.
 
애초에 생활이 넉넉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쇼핑할 여유가 있을 리가.
 
지하로 향하는 계단은 해구만큼이나 깊습니다. 밟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계단은 무르고 위태로워 금방이라도 아래로 꺼질 것 같습니다.
 
얼마나 내려갔을까요? 드디어 낡아빠진 문에 다다릅니다.
 
문을 열자, 동시에 빠져나오는 약간의 퀴퀴한 향과 한 움큼의 먼지가 지나간 뒤에야 그 너머에 있는 게 보이네요.
 
작은 평수의 가게에는 빽빽하게 옷들이 쌓여 있습니다.
 
재질을 가늠할수 없는 의복들은 화사하기도, 따뜻해 보이기도 합니다. 상태가 약간 안 좋아보이는 걸 제한다면.
 
노아는 여러분을 내버려 두고 계산대에 앉은 노인 앞으로 가서 무언가 속삭입니다.
 
노인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손가락을 4개 내밀고, 노아는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을 8개 내밉니다.
 
무언가 흥정하는 것 같습니다.
 
그 뒤에도 한참 입씨름을 하더니, 마침내 노아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돌아옵니다.
 
시아록:(눈을 깜빡이며 노인과 노아를 쳐다본다.)
 
노아:인당 4벌씩 고르세요.
 
시아록:어, 그럼 옷 고르는 것 좀 도와줄 수 있어요..? 잘 몰라서..
 
노아:...? 튀링겐주의 옷이라고 해도 별 거 없어요. 오신 곳에서도 다 똑같이 파는 옷들뿐인데요.
그리고 여러분이 입을 옷인데 여러분이 고르셔야죠.
 
시아록:으음... (바다엔 이런 옷이 없다보니 난감해한다.)
 
한참 알록달록한 옷을 뒤지며 난감해하다가, 기다리다 못해 한숨을 쉬는 노아에 얼른 뭐라도 꺼내 봅니다.
 
노아에겐 우리가 그냥 옷을 결정 못하는 사람으로 보였겠죠. 답답할지도요.
 
시아록:
기준치: 80/40/16
굴림: 85
판정결과: 실패
 
*1d1000 다이스를 굴려주세요.
 
시아록:
rolling 1d1000
 
(
865
 
)
 
 
=
865
 
뒤적거리다 꺼내든 그 옷은...
 
세상에! 검은 색의 쭉쭉 늘어나는 재질의 장갑입니다.
 
아니, 다시 자세히 보니 장갑이 아니네요. 팔 부분만 길고, 손은 아예 드러내는 옷입니다.
 
애초에 이거 팔에 끼우는 건 맞을까요?
 
시아록:어음.. (자기가 봐도 이건 아닌 거 같다. 주섬주섬 집어넣는다.)
 
다시 집어넣고 뒤져봐도 온통 낯선 옷들뿐입니다.
 
우리와는 옷 구조 자체가 다른 것 같아요. 해삼과 불가사리가 다르게 생겼듯이.
 
기다리다 지쳤는지 노아가 끼어들어 참견합니다.
 
노아:그냥 종류별로 똑같은 거 골라드릴게요. 사이즈만 맞으면 문제없죠?
 
시아록:아, 네..
 
노아:(옷을 연신 몸에 대 보고 무언가 척척 골라주더니 팔에 떡하니 얹어준다.) 저기 탈의실 있으니까 가서 입어보세요.
안 맞거나 마음에 안 들거나 질이 너무 안 좋으면 얘기하시고.
 
시아록:네.. 고마워요. (노아가 건내주는 옷을 받아 탈의실이라는 곳으로 들어가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나온다.)
 
각자 건네받은 옷으로 갈아입고 나와 봅니다. 전원 행운 판정.
 
슈테른:
기준치: 45/22/9
굴림: 9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시아록:
기준치: 80/40/16
굴림: 66
판정결과: 보통 성공
 
생각해보면 노아가 말한 것들은 문제도 아닙니다.
 
그야 우리, 이것들은 어떻게 입는 건지 하나도 모르잖아요.
 
열심히 의논해가며 구멍에 팔다리를 끼워넣고 끙끙대다 보면...
 
겨우 우리에게 맞는 옷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노아:... 끝났다......
 
한 군데만 들렀는데 노아는 부쩍 지쳐 보입니다.
 
그야 제법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요. 서로 옷을 바꿔입거나, '셔츠'와 '바지'라는 걸 바꿔입는다거나.
 
처음 옷을 입고 나온 노아의 표정이 아직도 잊히질 않습니다.
 
지상의 옷은 왜 이리 불편하나 싶었는데 잘못 입은 것 뿐이었다니. 제대로 입고 나면 옷은 착 달라붙긴 해도 잘 맞고 편안합니다.
 
지하 상가 밖으로 나오면, 슈테른이 잠시 당신을 부르더니 고개를 숙여보라고 합니다.
 
시아록:응? (당신의 부름에 쪼르르 다가가 고개를 숙입니다.)
 
슈테른:(들고 있던 모자를 쇽 씌워준다.) 이거, 아까 가지고 나왔어요.
노아 씨가 준 건 3벌이었고, 한참 고민하다 물어봤는데 머리에 쓰는 거라고 하셔서... 얼굴도 가리면 좋을 것 같아서요.
 
시아록:(씌워준 모자에 잠시 놀란 듯 눈이 커졌다가 이내 당신의 말을 듣고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고마워. 그렇구나.
 
슈테른:(안 떨어지도록 잘 고정해준 뒤) 아...
생각해보니 시아록이 머리에 뭘 써본 걸 본 적이 없는데, 이렇게 해 보니까 잘 어울려요.
들고 와서 다행이네요. 하나 더 갖고 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우리, 그... 가, 같은 옷차림으로 다니는 거잖아요. (말할 수록 목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시아록:그러게. 그럼 같이 쓰고 다니면 좋은데. (당신의 말에 방긋 웃는다.) 그럼 다음에 같이 가질 수 있는 게 있으면 하자!
 
슈테른:(조금 쑥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저 걸음을 재촉한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다음에는 드디어 병원에 가기로 했었죠.
 
그런데 앞서가던 노아는 손목을 확인하더니, 갑자기 걸음을 멈춥니다.
 
노아:저, 생각보다 옷가게에 오래 있느라(여기서 잠깐 한숨을 내쉬고는)... 점심 때가 다 됐는데요,
일단 식사부터 미리 해결하는 게 어떨까요? 병원 가는 게 급하지만 않다면요.
 
시아록:아, 밥먹을 시간이군요. 슈슈는 어때? 밥 먹고 병원에 갈까?
 
슈테른:그, 그렇게 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조금 긴장한 자세로 답한다.)
 
노아:그래요? 그럼 두 분끼리 식사하고 오세요. 전 빵으로 때워야 해서.
 
시아록:빵으로만 때우신다고요? 왜요..?
 
노아:여기 전부 시장거리니까 다 드시고, 여기 아인 광장에서... 2시까지 만나는 걸로 해요.
어... (그런 걸 왜 묻냐는 표정으로) 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요?
 
시아록:어, 많이 바쁘세요?
아니면 같이 먹어요. (아직 먹을 거리를 잘 모르니 불안하다.)
 
노아:아뇨, 말한 대로 저녁에만 바쁜데... 그냥 대강 때우는 게 습관이라.
아, 참. 먼 곳에서 오셨죠. 으음... (눈가를 찌푸리며 뒷목을 긁다가)
알겠어요. 오늘 하루는 알려드릴게요. 이 거리에 맛있는 집이 많으니까.
아니면, 따로 드시고 싶던 음식이라도 있으세요?
 
시아록:고마워요. 이래저래 도움을 받네요.
아니요. 여기 음식은 잘 몰라서.. 추천해주시면 잘 먹을 수 있어요. 그리고 슈슈는 고기는 못 먹어서.. 그런 류가 많은 곳이면 좋겠어요..
 
노아:채식... 하신다고요? (어색한 표정으로 흠칫하다가) 음, 네... 독일은 비건식당이 잘 조성되어 있으니까... 한 번쯤 먹어볼 만 하죠.
여긴 공업도시라 또 다르긴 하지만, 그 쪽으로는 잘 알아요. 저도... 같으니까.
 
시아록:... 노아씨도 고기 안 드세요?
(조금 놀란 듯하다.)
 
노아:... 그랬었죠, 옛날엔.
아무튼 아까처럼 딴 길로 새지 말고 잘 따라오세요. (등을 돌려 시장 골목으로 이끈다.)
 
시아록:네. 잘 따라갈게요.
 
온갖 점포와 사람들을 지나칩니다.
 
여기,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인파가 어마어마합니다. 온 세상 사람들을 다 여기다 끌어모았나 싶을 정도로요.
 
수중 마을의 아이부터 어른까지 다 모아도 이만큼은 안 될 텐데 말입니다.
 
개중에는 큰 목소리로 파는 것을 홍보하는 사람도, 아까 노아처럼 흥정하느라 티격대는 손님도 보입니다.
 
이것만큼은 수중에서의 시장과 닮아 있네요, 잡아온 걸 팔 때의 칼릭스 씨가 꼭 저렇게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냈었으니까요.
 
노아는 음식점으로 들어서서 여러분을 앉히더니, 메뉴판을 보여줍니다.
 
노아:스테이크나 구이는 이쪽에 따로 있고, 주식은 전부 채식메뉴니까 아무거나 고르세요.
 
시아록:(보여주는 메뉴판을 빤히 본다. 봐도 사실 이름과 음식을 매치하기란 어렵다.) 으음, 노아씨는 어떤 거 먹을 거예요?
 
노아:음, 추천하라면 전 브루쉐타나 감자 타코, 가지 채소구이나 크림 빠네 파스타요.
 
시아록:(메뉴 이름을 들었지만, 상상되지 않는 음식에 눈만 잠시 깜빡였다.) 그럼 그 중에서 고르면 되겠네요.
 
노아:넷 다 맛있게 해 주시니까 믿고 고르세요. 육류도 시키실 거면 칠리 콩스테이크가 제일 부담 없으실 거고요.
 
시아록:저 그럼 그걸로 할래요. 칠리 콩 스테이크. 슈슈는 어떤 거 먹을래? 앞에 말해주신 거 다 채식메뉴고.. (슈테른을 돌아보며 묻는다.)
 
슈테른:(분명 읽히는 문자인데 어쩐지 외계어를 해독하는 느낌이다. 사진을 보고 겨우 모양새를 추정해냈다.) 음... 저는 이걸로 해도 될까요?
 
노아:크림 빠네 파스타요? 그거랑 스테이크 하나... 제가 주문해드릴 테니까 기다리세요.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다가간다.)
 
어떻게든 메뉴를 정하고, 몇 분인가 기다리면 따끈한 음식이 차려집니다.
 
역시나 모르는 재료 뿐이지만요. 뭔가 둥그런 멍게같은 게 솟아오른 음식과, 물컹한 듯 하면서도 약간 단단한 갈색의 무언가가 접시 위에 올라와 있습니다.
 
둘이 굳어 있으면 노아가 이제 익숙해진 듯 각각 뚜껑을 열어주고, 칼을 쥐여줍니다.
 
그것들의 정체는, 당신의 것은 바삭한 무언가가 씹히는 고깃덩어리고(하지만 비리지도 않고, 핏물도 없이 따끈합니다) 슈테른의 것은 어제 먹은 빵이라는 것에 들어있는 면 요리라고 합니다.
 
식감도, 맛도 생경하지만 그의 말대로 맛은 있는 것 같아요. 노아는 둘을 구경하며 같이 나온 빵이라는 걸 먹고 있습니다.
 
노아:...그런데 두 분,
계산할 돈은... 들고 나오셨죠?
 
시아록:(조용히 주머니에서 어제 아이들에게 화폐라고 들었던 종이조각을 꺼내 노아에게 보여주었다.)
 
노아:(종이를 받아들곤 얼굴을 찌푸린다.) 총 15유로라서 이걸론 모자라요. 5유로 더 주세요.
 
시아록:으음.. (우물거리다가 진주를 하나 꺼냈다.) 지금 그 화폐가 없어서.. 진주밖에 없어요.
 
아까 이미 꺼냈는데, 남은 진주를 들고 왔던가요?
 
시아록:
기준치: 80/40/16
굴림: 2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진주로 지불할 수 있으니까 괜찮아! 라며 주머니를 뒤졌는데...
 
... ... 이럴 수가!
 
없습니다!
 
어제 도망쳐오면서 어디에 다 떨어트려버린 걸까요? 아니면 노아의 집에 두고 나왔을지도 모릅니다.
 
하여튼 중요한 사실은, 이제 우리는 큰일났습니다.
 
모자란 가격을 어떻게 지불하면 좋을까요?
 
시아록:(주머니에 있는 줄 알았는데...! 모자란 건 어떡하지.. 우물쭈물 한참 고민합니다.)
 
노아:...왜, 왜 그러세요? 설마 없으신 건 아니죠?
 
슈테른:(식사도 하다 말고 심각한 표정으로 노아를 바라본다.) 없는, 것 같은데요...
혹시... 신세지고 있는 차에 죄송하지만 모자란 만큼 빌릴 수는 없을까요?
 
노아:(얼굴을 감싸쥔다. 어쩐지 두 배로 낡아보인다.) 없으니까 그렇죠...............
애초에 그만큼 돈이 있었으면 저도 메뉴를 시켰겠죠, 빵만 먹는 이유가 뭔데요?
 
시아록:미안해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
 
노아:전... 생각 좀 하고 있을 테니까 두 분이서 해결해보세요. (이마를 짚고 가게 밖으로 나간다.)
 
노아는 매정하게 밖으로 나가버립니다. 우와, 큰일났다.
 
시아록:으음, 어떡하지.. (슈슈를 쳐다본다.) 분명히 진주 좀 주워서 주머니에 있는 줄 알았는데.. 없네..
 
하지만 노아를 원망하기에는, 지금까지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순전히 우리 책임이기도 하고요.
 
옆의 슈테른은 고개를 숙이며 고민에 빠졌다가, 갑자기 고개를 듭니다.
 
슈테른:아! (손뼉을 짝 친다.) 가격을 약간 깎아달라고 하는 건 어때요?
아, 아까 노아 씨나 다른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흥정을 하면...
 
시아록:깎아달라고 하면 그렇게 해줄까..?
 
슈테른:그것 말고는 잘 모르겠어요. 가격을 줄여달라고 하거나, 화폐라는 것 말고 다른 것으로 지불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아요.
 
시아록:음.. 우리 다른 걸로 지불할 수 있을까..? (이리저리 주머니를 뒤져본다.)
 
주머니를 아무리 뒤져보아도 손에 잡히는 건 얼룩이 진 은색 목걸이뿐입니다.
 
이게 돈이 될지는 모르겠네요.
 
아무튼 병원에 가려면 이 곳을 빠져나가야만 할 겁니다. 어떻게 할까요?
 
*제시한 것 외에도 다양한 방법에 적절한 판정을 곁들이세요.
 
뭐든 성공하면 무난하게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시아록:일단.. 깎아달라고 해보고, 안 되면 이거라도 같이 지불할까.. (은색 목걸이를 보여준다.)
 
슈테른:그래 볼까요?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먹던 걸 정리하고 카운터로 간다.)
 
여러분은 결국, 주인과 담판(?)을 짓기로 합니다.
 
그리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주인 앞에서 가격을 깎아달라고 부탁해야 합니다.
 
부탁하는 방법은 아주 다양할 텝니다. 말 외에도 다양한 것으로 주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죠.
 
혹은 약간의 재치로 주인의 호감을 사 보너스 다이스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판정을 선언하고 자유롭게 판정하세요.
 
*진짜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민첩 판정으로 재빨리 주인의 마음을 훔칩니다, 같은 거 해도 됩니다.
 
시아록:(일단 한 번 말을 해보기로 한다.) 그.. 주인님? (이렇게 부르는 게 맞을까..?) 정말 죄송한데, 저희가.. 여행 중인데.. 나올 때 돈을 10유로? (아까 노아에게서 들은 화폐의 단위를 얘기한다.)밖에 그 묵는 곳에서 안 가지고 나왔어요.. 어떻게 깎을 수 없을까요? (우물쭈물하며 말을 한다.)
말재주
기준치: 25/12/5
굴림: 39
판정결과: 실패
 
주인:아니, 손님. 저희도 높지 않은 가격에 드리는 건데 갑자기 이렇게 깎아달라고 말씀하시면 곤란하신데요.
 
주인은 당황스러운 듯 얘기합니다. 아무래도 힘들 것 같습니다...
 
시아록:아, 음.. 그렇죠.. (잠시 울상이 된다.)
(바다에선 막내라서 다들 이것저것 들어줬는데.. 어른들한테하듯 애교...음, 같은 거라도 해야하나...) 어.. 조금만 정말 깎아주시면 안 될까요? 아니면 나중에 묵는 곳에서 챙겨서 다시 올게요..
매혹
기준치: 15/7/3
굴림: 66
판정결과: 실패
(어쩌지.. 한참을 고민한다. 한 번 더 설득이나 동정심밖에 없는 거 같기도 하고.. 뭔가 기절시키기도 그렇고..) 너무 멀리서 와서 그러는데 정말 안 될까요.. 그, 50유로가 부족하다고 하던데.. (시무룩해져서 얘기해본다.)
외모
기준치: 60/30/12
굴림: 64
판정결과: 실패

아니면 알바라도 시켜주시면 안 될까요..?

 
주인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시큰둥하게 일관하다가, 알바를 해주겠다는 말에 귀찮음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엽니다.
 
주인:그래요? 뭘 해주시려고요?
 
시아록:그. 주방일을 도와드린다던가.. 청소라던가..
 
주인:(한숨을 깊게 내쉬더니) 알았어요, 깎아줄 테니까 그만 좀 하세요!
 
시아록:정말 죄송해요.. 돈을 부족하게 가지고 나온 줄 몰랐어요..
 
주인:(꽁한 표정으로 10유로를 받아들곤) 그럼 주방일이나 좀 도와줘요.
 
시아록:네네,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였다.)
 
주인:저기 있는 은색 냄비 보여요? 저게 감자 삶는 물인데,
나 대신 밖에 가지고 가서 3번만 버리고 오면 보내드릴게.
이것도 많이 봐드린 거에요. 5유로면 30분은 일해야 하는데, 어휴!
 
시아록:진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할게요.
 
그 말을 듣고 보면, 팔이 거의 다 담궈질 만큼 깊고 커다란 냄비가 보입니다.
 
...아, 그렇죠. 식당이니까 조리도구도 죄다 커다란 것들 뿐일 텐데.
 
아무래도 힘을 좀... 많이 써야겠습니다. 시아록, 근력+건강의 복합 판정입니다. 각각 3번씩 굴립니다.
 
슈슈랑 같이 들면 보너스 다이스를 받지만,
 
대신 안색이 안 좋은 사람에게 일을 시켜야 합니다.
 
시아록:(일단 냄비를 혼자 들어본다.)
근력
기준치: 75/37/15
굴림: 70
판정결과: 보통 성공
건강
기준치: 75/37/15
굴림: 81
판정결과: 실패
 
낑낑거리며 드는 데에는 성공했는데, 이거... 너무 무겁습니다.
 
가게 밖까지 이고 가다가 한 번 놓칠 뻔 했습니다. 다행히 물은 근처에 무사히 버렸지만요.
 
가게 밖에서 (아직도) 생각 중이던 노아가 눈을 마주치곤 경악합니다.
 
노아:...뭐, 뭐 하세요?
 
시아록:응? 아, 모자라는 건 알바하기로 했어요.
다행히 그렇게 하라고 해주시더라고요.
금방하고 올게요! (노아에게 외치곤 조르르 다시 가게로 들어갔다.)
 
다시 가게로 돌아가면, 주인이 감자를 삶곤 두 번째 냄비를 내밉니다.
 
시아록:(다시 냄비에 손을 올렸다.)
근력
기준치: 75/37/15
굴림: 62576
+2: 극단적 성공
+1: 극단적 성공
  0: 보통 성공
―1: 보통 성공
―2: 실패
근력
기준치: 75/37/15
굴림: 1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건강
기준치: 75/37/15
굴림: 43
판정결과: 보통 성공
 
끙차! 그래도 한 번 들어봤다고 아까보단 좀 수월한 느낌이 듭니다.
 
물을 버리며 자연스럽게 흐르는 땀을 닦아냅니다.
 
시아록:마지막까지 잘해야지. (물을 버리며 혼자 중얼거린다.)
 
무사히 냄비를 가지고 귀환하면, 주인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마지막 냄비를 줍니다.
 
생각보다 일 잘 하네, 라고 중얼거리면서요.
 
시아록:(주시는 마지막 냄비를 다시 들어올리기 위해 손잡이를 잡았다.)
근력
기준치: 75/37/15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건강
기준치: 75/37/15
굴림: 6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책미 (GM):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z
 
하늘:(*여기서.. 대실패...????!!!!)
(*얘 오늘 주운이..)
 
손잡이를 잡고, 들어올립...
 
들... 들어... 들...
 
...아니! 들리질 않습니다! 팔에 힘이 안 들어갑니다!
 
팔이 미역처럼 흐느적거리며 힘없이 미끄러집니다. 주인은 보다 못해 그냥 자기가 하겠다고 나섭니다.
 
당신들은 다시는 손님으로 안 받겠다는 이갈이가 섞인 말과 함께요...
 
시아록:아까 힘을 너무 뺐나.. (한숨을 쉬고 다시 냄비 손잡이를 낑낑 거리며 잡아보다가 주인에게 밀려났다.)
 
잘은 모르겠지만, 폐를 끼친 것 같죠. 그래도 당신은 노력했습니다.
 
계산을 마친 여러분은 한동안 멋쩍은 표정으로 있다,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가게를 터벅터벅 나섭니다.
 
이 가게에 두 번은 못 오겠다고 생각하면서요...
 
슈테른의 치료
 
좌충우돌 끝에 무사히 식사를 마치고 거리로 빠져나온 노아 일행.
 
배도 채웠겠다, 우리는 본격적으로 슈슈의 치료를 맏길 병원을 찾기로 합니다.
 
노아는 손가락 세 개를 척 내밀며 얘기합니다.
 
노아:안전지대 안의 병원은 총 세 곳이 있어요.
세인트 병원, 고운 사랑 병원, 잭슨 의원.
셋 중에 어디를 제일 먼저 가고 싶으세요?
 
시아록:거기 가서 진료받으려면 그 뭔가 필요한 게 있나요?
 
노아:필요한 거라면.. 무엇보다도 돈이죠. 다른 게 있겠어요?
아까 금전을 집에 두고 왔다고 하셨죠. 그럼 다시 돌아가야 하려나...
 
시아록:으음. 그렇죠..?
지금 갖고 있던 건 다 썼어요..
 
노아:알겠어요, 그럼 다시 데려다드릴 테니까 챙겨서 나오세요.
 
우리는 먼 길을 되돌아옵니다. 두 번째로 맞는 현관이 조금은 친숙하네요.
 
오는 길에 슈테른이 몇 번 비틀거리기에 부축해주기도 했습니다. 병원에 갈 때까지는 버텨야 할 텐데요.
 
아무튼 짐더미를 뒤져 봅니다. 시아록, 행운 판정.
 
*기회는 총 세 번이며, 극단적 성공 이상이 나와야 합니다.
 
시아록:음.. 있겠지..?(혼자 중얼거린다.)
기준치: 80/40/16
굴림: 46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 많던 진주가 어디를 갔는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도 바닥을 긁어모으면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요? 재판정입니다.
 
시아록:(당황해서는 한 번 더 뒤적인다.)
기준치: 80/40/16
굴림: 3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 뒤에서 노아가 기다리는 게 기다립니다. 그래도 더 뒤져봐야 합니다!
 
재판정입니다.
 
시아록:
기준치: 80/40/16
굴림: 8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가방을 탈탈 털어보면...
 
아니나다를까, 숨어있던 꼬마 진주가 툭 하고 떨어집니다!
 
손톱만한 그것을 재빨리 잡아채곤 품에 소중히 넣어둡니다.
 
기쁜 발걸음으로 거실로 나가면, 노아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묻습니다.
 
노아:...저, 그 남은 돈이라는 게 정확히 얼마에요?
 
시아록:아.. (어물거리다가 손을 펴 진주를 보여준다.) 이건데.. 그 돈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노아:...???? 이거 설마... 천연 진주에요?
 
시아록:맞아요. 천연진주..
 
노아:어디서 이런 걸... 가져다 팔면 적어도 200유로는 나올 텐데요...?
 
시아록:그래요?
 
노아는 한참 놀라는 눈치입니다. 대체 여러분을 만나고 몇 번째로 놀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리기도 합니다.
 
노아:하지만 도시 의사들은 돈으로 지불하는 걸 더 좋아할 테니까, 돈으로 바꿔가야겠어요.
이 정도면 치료비는 충분해요. ...근데, 설마 이게 전재산은 아니시죠...?
 
시아록:어.. (잠시 동공이 방황하다 당신의 말에 긍정한다.)지금은 그래요..
 
노아:(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뱉어낸다.) 빨리 일거리를 찾든 하셔야겠네요, 진료비 말고도 약값이나 식비를 계속 지불해야 하니까.
그건 일단 나중에 생각하고, 두 분 다 절 따라오세요. (도시를 향해 척척 앞장선다.)
 
시아록:네.. (고개를 끄덕이고 당신을 따라간다.)
 
보석상에 진주를 가져다 팔고, 손에 돈을 쥔 채로 우리는 병원을 향합니다.
 
노아:그래서, 아까랑 질문은 같아요. 세 병원 중에서 어디가 제일 끌리세요?
다르게 설명해드리자면, 크고 유명한 병원. 착한 의사가 있는 병원, 똑똑한 의사가 있는 병원 세 후보가 있어요.
 
시아록:어, 그래요? 음..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럼 똑똑한 의사가 있는 병원...?
그 사람이 더 잘 봐주지 않을까요?
 
노아:좋아요, 그럼 잭슨 의원으로 가 봐요. 큰길에는 차도 많이 지나다니니까 앞 잘 보시고요. (사람이 빽빽한 대로변으로 나간다.)
 
잭슨 의원은 도심에 있는 아주 작은 병원입니다.
 
시아록:(차... 그게 뭘까.. 혼자 생각하며 슈슈와 따라간다.)
 
규모와는 달리 수준 높은 수술은 대부분 이곳에서 이루어진다고 하네요. 그래서 작은 병동 안에 손님들이 다닥다닥 몰려 있습니다.
 
병은 이 곳 의사들이 제일 잘 고쳐줄지도요.
 
시아록:사람이 많네..
 
노아:이 병원은 유명하니까 그럴 만도 하죠. 사람이 정말 많은 병원은 이것의 두 배는 돼요.
대기표도 뽑았으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털석 앉아서 순서를 기다리고는, 나머지 둘에게도 앉으라고 눈짓한다.)
 
시아록:(눈치를 보며 노아를 따라 슈슈와 함께 앉았다.)
 
30분 정도 순서를 기다리면 슈테른의 이름이 불립니다.
 
호명하는 진료실로 따라 들어가면, 의사가 이리저리 슈테른의 상태를 검진합니다.
 
회색 머리카락을 아래로 길게 땋은 의사는 검진 결과를 보더니 길게 한숨을 내쉽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 보네요. 하지만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닐 겁니다."
 
시아록:그럴까요.. (옆에서 긴장한 채 서있다.)
 
"예. 다른 병원에 가도 저희보다 많은 정보를 얻긴 힘들 테니, 자세한 검사를 할수 있도록 이곳에 조금 더 머물러주시겠습니까?”
 
그는 다행히 슈테른을 치료해주겠다고 답합니다.
 
...다만 그의 그늘진 눈가에서 약간의 호기심이 느껴진다면, 기분 탓일까요?
 
시아록:어, 감사합니다. 근데 엄청 오래 머물지는 못할 거예요.
증상을 완화시킬만한 방법이 있을까요?
 
"있을 겁니다. 있고말고요. 희귀병에도 듣는 약은 있는 법입니다."
 
"그걸 찾는 게 저와 이 환자분의 일이고요."
 
시아록:어, 으음. 네.. (얌전히 고개를 끄덕인다.)
 
의사는 슈테른의 양손을 턱 잡고는 치료에 대해 설명해줍니다.
 
우선 입원해서 경과를 지켜보고 검사를 동원하는 게 어떻냐고 제안합니다. 그 내용을 들어보면…….
 
세상에, 슈테른의 몸을 실험체로 제공한다고요? 이 의사는 미친 게 틀림없습니다!
 
시아록:아, 아뇨. 입원은 무리에요!! (식겁해서 소리쳤다.)
 
슈테른:(얘기를 듣는 내내 곤란한 표정을 지우지 못한다.) 정말 다른 방법이 없나요...?
치료받을 수 있다면 기쁘겠지만 그런 건...
 
둘의 반응이 영 부정적이면, 의사는 미친 사람처럼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환자분이 잘못될 확률은 높습니다. 어쩌면 돌이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르죠.
 
하지만 말입니다, 이게 새로운 병이라면 당신 하나의 희생으로 몇십만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이게 만약 전염병이라면 당신이 이 병을 퍼뜨린 시발점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저는 의사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낄 뿐입니다!”
 
시아록:거기까진 필요없어요. (좀 질린 표정으로 의사를 보며 슈슈를 슬쩍 잡아당겨 자신의 뒤로 숨겼다.)
 
그 말을 들은 시아록과 슈테른, 경악 또는 죄책감으로 인해 정신력 판정.
 
슈테른:
정신
기준치: 65/32/13
굴림: 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시아록: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5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슈테른은 아까보다 더 안 좋아진 표정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시아록:그 진료는 감사했어요. (슈슈의 손을 잡고 얼른 진료실 밖으로 나간다.)
 
하지만 당신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집중이 잘 안 됩니다. 이 일을 한동한 떠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직후의 판정에 패널티 다이스 하나가 붙습니다.
 
슈테른:(병동을 빠져나오며 혹시 모르니 시아록의 몸 상태도 살핀다.) 시아록, 저처럼 몸이 안 좋다거나... 차갑지는 않으시죠?
아닐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전염병이면 안 되니까...
 
시아록:으응. 나는 괜찮은 거 같아. (자신은 멀쩡한 거 같다.)
난 괜찮으니까 슈슈도 아프면 꼭 얘기해줘야 돼?
우리 다른 병원가야할까?
 
슈테른:(안색을 이리저리 살피고선 안심하며 얼굴을 떨어트린다.) 꼭 그럴게요.
으음, 아까 그 병원에선 해결된 게 없었으니까 다른 곳도 가 보는 게 좋겠어요.
... 근데 노아 씨, 여기 의사라는 분들은 다들 저러시나요?
아까 진료받으면서 좀 기분나빴거든요. 제 몸 상태를 살피는 게 아니라 구경하는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시아록:맞아.. 의사 좀 많이 이상했어요.
 
노아:아... (머리를 긁적인다.) 저런 의사들은 무시하면 돼요. 제가 봐도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던걸요.
... 하지만 진료 결과만은 믿을 만 해요. 저 병원 의사들은 오진이 없기로 유명하니까...
 
시아록:그, 너무 똑똑해서 미친 거 같기도 하고...
 
노아:그 어떤 병도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건... 정말 전례 없는 병에 걸리신 걸지도 모르죠.
그런 병인데 약이 있을까요?
...음, 다른 병원도 마저 들러보고 생각하죠. 이제 두 곳 남았네요.
크고 유명한 병원, 착한 의사가 있는 병원. 어디가 좋으세요?
 
시아록:그럼 착한 의사가 있는 곳이요.. 여기 의사 너무 이상하고 좀 무서웠어요..
(진저리를 치며 몸을 떨었다.)
 
노아:알겠어요, 그럼 고운 사랑 병원으로 가죠.
 
노아의 발걸음을 따라오면, 도심 외곽에 있는 중간 크기의 건물에 도착합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현재 환자를 가장 많이 수용하고 있다는군요.
 
인망 높은 의사가 있어 어떤 환자든 내치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고 합니다.
 
노아:여긴 의사가 정말 친절하기로 유명하니까 아까같은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걸요.
다행히 손님도 별로 없고... 곧 들어가겠네요.
 
시아록:네, 고마워요.
 
아까와 같이 의사 앞에 슈테른을 내어 주면, 그의 상태를 검진한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습니다.
 
“전혀 모르겠습니다. 비슷한 증세의 다른 병은 몇 종류 알고 있지만, 역시 이런 건 본 적이 없네요….
 
하지만 아주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며 의사가 간호사에게 턱짓을 하면, 간호사가 진료실 뒷편의 문을 엽니다.
 
“이 기도실에서 3일만 단식하며 신께 치료를 부탁드린다면 분명 괜찮아질 거예요.”
 
시아록:네..?
 
그렇게 말하는 간호사의 눈에는 번들번들한 광기가 실려 있습니다.
 
세상에, 이 의사도 미쳤잖아요?!
 
시아록:(신은 또 무슨 소리야..? 단식이라고? 아픈 애를 데려다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온다.)
 
슈테른과 노아도 어느새 얼굴을 감싸거나, 머리를 싸매고 있습니다.
 
어째 가는 곳마다 잘못 걸리는 걸 보면 오늘은 날이 아닌 걸까요.
 
시아록:...여기 사는 사람들은 이런 병원을 믿고 다니는 거예요? (어이없는 듯한 목소리가 노아에게 닿는다.)
 
노아:아... 친절한 병원이라고 들었는데 허위광고였나봐요... (어이를 잃고 뒷목을 잡으며 넘어갈 뻔한다.)
 
시아록:노아씨도 처음 와봤나 보네요.. (한숨을 쉬며 고개른 내저었다.)
 
노아:어쩐지 손님은 적은데 입원 환자들이 그렇게 많나 했죠.
대체 환자들을 가둬서 무슨 짓을 하시는 거에요?
 
그가 그렇게 말하면 곳곳에서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우리를 순순히 보내주지 않겠다는 듯, 어느새 당신의 뒤에는 신도로 보이는 간호사와 의사들이 퇴로를 막고 있습니다.
 
정말 가지가지 하는 군요...... 아무래도 무력을 동원해야겠습니다.
 
시아록:
비무장
기준치: 25/12/5
굴림: 73
판정결과: 실패
피해: 6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82
판정결과: 실패
 
좀비처럼 쇄도하는 의료진들―아니 미친 사이비 집단을 떼어내고 달립니다.
 
달리는 와중에도, 올가미처럼 몇 번이나 얽혀듭니다.
 
그런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탈출한 셋의 행보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죠.
 
한참 거친 숨을 몰아쉬던 노아는 이야기합니다.
 
노아:...여, 여기까지 왔으면 좀 그만 따라와라......
 
시아록:병원들이, 헉, 왜 다 이모양..이람!
 
노아:어쩜 저렇게 집요, 헉, 하지? 브리니클에게 쫓길 때보다 무서웠다니까요, 허억...
 
슈테른:다... 다들 괜찮으세요? (허리를 꺾다시피 숙인 채 작게 얘기한다.)
 
시아록:으.. 진짜. (헉헉, 밭은 숨을 몰아쉬며 열심히 뛴다.)
슈슈, 야말로! 헉, 괜찮아?!
 
슈테른:전 괜찮아요! 헉... 아직 더 뛸 수, 있으니까...
 
그렇게 열심히 뛰다 보면, 다행히 더 이상 뒤따라오는 그림자가 보이지 않습니다.
 
제대로 따돌린 모양이죠. 기껏 찾아갔는데 고생만 잔뜩 했습니다.
 
노아:(한숨을 쉬며 무릎을 구부린다.) ...그만, 갈까요?
 
시아록:다행히 도망은.. 헉, 쳤네.. (벽을 짚고 서서 숨을 고른다.)
 
노아:하아, 그보다 치료는 어떡하죠, 아직 아무 처방도 못 받았는데...?
제가 듣기에도 증상이 꽤 특이하던걸요. 젋은 사람이 손발이 뻣뻣한 경우도 희귀하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남긴 했는데, 들리고 싶으세요? 진짜로...?
 
시아록:으음.. (되묻는 말에 진짜로 고민되기 시작했다.) 내가 제안한 의견은 다 이상했으니까..
슈슈는 어떡할래? 한 곳에 더 가볼까?
 
슈테른:
(To GM)rolling 1d2
 
(
2
 
)
 
 
=
2
 
슈테른:...다른 병원도 이러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잖아요...
치료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런 경험을 다시 하고 싶지는 않아요.
안전지대 밖에는 보건소라는 것도 있다고 하셨죠? 그런 곳에서는 도움을 못 받나요?
 
시아록:그럼, 그럴까. (당신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보건소? (고개를 갸웃거렸다.)
 
노아:보건소요? 못 받는 건 아니지만... 그런 곳은 전문 인력... 도 물론 있지만, 주로 응급처지 위주로 해서...
정밀 검사가 필요한 슈... 슈테른, 씨 같은 상황이면 도움이 안 될 거라고 봐요.
그래도 혹시 모르죠, 최전선에서 가장 많은 환자들을 수용하는 숭고한 사람들이니 좋은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도.
...이미 며칠 전에 이 도시를 떠나버렸다니까 문제죠. 이런 상황에서 환자들은 어느 나라에나 차고 넘치는걸요.
 
시아록:그럼 슈슈의견을 따를래요. 오늘 내선택은 다 꽝인 거 같으니까..
 
노아:하아, 저야말로 아무리 부자양반들이나 돌보는 의사라고 해도 저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이상한 곳을 소개해서 미안해요.
 
시아록:그 부자양반들이 이상한 게 아닐까...
괜찮아요. 많이 도와줬잖아요, 지금도 도와주고 있고.. 그냥 고마워요.
 
노아:흐음, 이런 환자를 데리고 보건소까지 이동하기에도 힘들고...
...음, 사실.
아는 의사가 한 분 있어요. 그 사람이라도 괜찮으면 가 보실래요?
거긴 저도 치료받았던 곳이니까 적어도 방금같지는 않을 거에요, 좋은 사람이니까.
 
시아록:음, 괜찮다면 좋아요.
슈슈는 어때?
슈슈가 진료받는 거니까 슈슈가 결정내리는 게 더 나을 거 같아.
 
슈테른:(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노아 씨가 신뢰할 만한 병원이라면...
가 볼래요, 가서 치료받고 싶어요. (자기도 모르게 긴장했는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시아록:슈슈가 괜찮다고 하니까 같이 갈래요. (긴장한듯 보이는 당신의 손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노아:좋아요, 그 병원이면 저도 좀 더 오래 지켜볼 수 있을 테니까...
병원은 외곽지대에 있으니까 길 잃지 않게 잘 따라오세요. (아까처럼 앞장선다.)
 
확실히, 낙담한 건지 힘든 건지 말수가 점점 적어지는 슈테른을 보고 있노라면 최후의 방법이라도 시도해보고 싶어집니다.
 
여러분은 노아를 따라 다시 먼 걸음을 떠납니다. 걷고 걸어, 외곽지대로 나갈 때까지.
 
무면허 의사, 이오리 테일러
 
노아가 이끈 그 병원은 크지도, 유명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발 디딜 곳 없이 좁아터진데다 술병도 굴러다니고 있었죠.
 
이오리:노아, 어서 와. 또 어디 다쳤... ...
어라, 손님?
 
시아록:(병원이라고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내부를 보며 눈만 데굴 굴렸다.)
 
자신을 이오리 테일러라고 소개한 여자는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고 끈나시에 지저분한 의사 가운만 걸친 채 세 사람을 반깁니다.
 
이오리 테일러는 착해 보이지도, 똑똑해 보이지도 않으며, 굳이 꼽자면 한량이나 백수 같은 인상입니다.
 
드러난 맨팔과 목에는 새까만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오리:그래서, 셋 중에 누가 치료받고 싶은 거죠?
아니면 셋 다?
 
노아:여기 이 분이요. (슈테른을 손바닥으로 가리킨다.)
아까 안전지대의 병원들을 한참 돌아다녔는데 다 허탕쳤어요. 오히려 잡히지 않아서 다행이지... (자기도 모르게 양팔을 쓸어내린다.)
 
이오리:도시의 의사들이란 다 그렇지.
 
시아록:...원래 그래요?
 
셋의 험난한 경험담을 듣자, 이오리는 유쾌하게 웃으며 대답합니다.
 
이오리:다들 돈만 좋아하니까. 자칭 좋은 의사들도 알고 보면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
 
시아록:그렇구나.. 그 사람들 진짜 이상했는데..
 
이오리:뭐, 면허도 없는 내가 전문직을 평가하려니 이상하지만.
이런 돌팔이라도 괜찮다면 내가 진료해주마. 이리 오겠니?
 
이오리가 슈테른을 부르면, 망설임 끝에 당신의 손을 놓고는 진료실로 따라들어갑니다.
 
당신도 들어가려고 하면 노아에 의해 붙잡힙니다.
 
노아:닥터 테일러는 환자 외의 사람이 진료실에 있는 걸 싫어하세요.
 
시아록:아.. 음..
(그치만 슈슈가 걱정되서 절로 미간이 모인다.) 괜찮은 거죠..?
 
노아: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으니까 우선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거에요.
비록 무면허 의사라지만, 제가 보기에 실력은 따라올 자가 없다고 봐요. 장비들도 나름 있을 건 다 있고.
 
시아록:으음.. 그래요. (조금 불안하지만 노아를 믿기로 한다. 사실 여기까지 낯선 사람을 도와주기란 쉽지 않으니까.)
 
노아:레지스탕스의 모두가 믿고 자기 몸을 맡기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전전긍긍할 필요 없어요.
적당히 앉아서 기다리세요, 연신 힐끔거리시는 걸 보니 뭐라도 찾고 싶으신 것 같지만...
 
작은 병원의 대기실에는 노아와 당신만 남습니다. 담담한 공기 속에서, 간단한 조사가 가능합니다.
 
좁은 병원에는 크게 볼 건 없지만, 시선을 잡아끄는 것들이 있습니다.
 
허름한 시멘트 벽에는 액자가 걸려있고, 작은 소파 밑에는 대기하며 볼 수 있도록 준비된 잡지가 몇 권 있습니다.
 
시아록:그럼 조금만 둘러봐도 될까요? 진료실은 안 갈게요.
 
노아:소란피우지만 않으면 뭘 하시든 상관없어요, 화낼 사람도 없고.
 
시아록:고마워요. (인사를 하고 벽에 있는 액자로 향한다.)
 
액자에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웃으며 어깨동무하고 찍은 사진들이 걸려있습니다. (당신은 사진이 뭔지 모르겠지만요)
 
사람들은 하나같이 상처투성이지만, 그럼에도 환한 얼굴로 웃고 있습니다.
 
자세히 살피면, 이오리 테일러를 포함한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있네요.
 
시아록:..다들 웃고 있네. 아플 거 같은데.. 아까 이오리란 사람도 있네.. (혼자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한다.)
 
노아:레지스탕스 결성 기념 단체사진이에요. (뒤에서 불쑥 나타나선 답한다.)
꽤 오래 전 일이죠. 저 사람들 사이에 저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시아록:(뒤에서 나타난 당신에게 놀라 움찔 몸을 떨었다.) 레지스탕스.. 레지스탕스는 정확히 뭐 하는 사람들이에요.? (듣긴 했지만, 자세히는 모르겠다.)
 
노아:인류의 영역에 범람하는 브리니클들을 저지하고, 도시를 지키기 위해 집단적으로 움직이는... 군인 같은 사람들이에요.
다른 나라는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제일 피해와 혼란이 큰 튀링겐주에는 레지스탕스의 본부가 세워졌죠.
이곳, 공학도시 예나Jena에요.
 
시아록:그렇구나.. (어제 브리니클을 보았으니 다행히 말들이 이해가 된다.)
 
노아:먼 곳에서 오셨다 하니 모르실 것 같은데, 독일은 지금 무정부 상태거든요. 브리니클의 침입을 막을 만한 정부도, 공안도, 경찰도 없어요.
사실 독일뿐만의 문제도 아니지만. (팔짱을 끼고 한숨을 내쉰다.) 그래서 많이 의문스러웠던 거에요, 하필 이런 시기에 브리니클이 도처에 깔린 이 곳까지 여행오셨다고 하니까.
 
시아록:독일..
 
노아:아니면 찾고 있는 게 혹시 브리니클이에요? 그럼 실컷 볼 수야 있을 텐데.
 
시아록:(당신의 말에 잠시 제 발 저린 듯 움찔거렸다.)
브리니클은 아니에요..
 
노아:그런가요. (턱에 손을 짚고 잠시 침묵한다.)
...저, 정말 어처구니없는 소리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혹시 여러분은 브리니클의 일족인가요?
 
시아록:네? (화들짝 놀라더니 고개를 격하게 저었다.) 브리니클 일족이라뇨..! 그런 거 아니에요!
 
노아:안전지대를 모르실 순 있어요. 구역을 따로 나눠 빈부갈등을 조성하는 나라는 여기 말고도 미국밖엔 없으니까.
하지만 그 밖에도 화폐의 개념이나, 여러가지 모르기 힘든 걸 물어보신 것도 걸리고...
 
시아록:그... (잠시 우물쭈물거린다. 먼저 혼자 얘기해도 될까? 슈슈랑 의논도 안 하고?)
 
노아:무엇보다 천연 진주는 지금 거의 구할 수 없거든요. 진주가 바다에서 나오는 거야 다들 알죠. 하지만 브리니클들이 뻔히 버티고 서 있는데, 누가 제 목숨을 진주에 던지겠어요.
...마지막으로 인간은 그렇게 차가울 수 없어요. 그래서...
 
노아가 한참 얘기하던 차에, 타이밍 좋게 진료실의 문이 열립니다.
 
시아록:(당신의 말을 듣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다가 진료실문이 열리는 소리에 시선이 돌아갔다.)
 
슈테른의 검진이 끝난 모양이죠. 이오리는 판때기를 들고 무언가 적으며 이야기합니다.
 
이오리:너희, 어디서 왔니?
 
시아록:네?
 
이오리:(미약한 의구심이 깃들어있는 목소리로 말한다.) 얘기 들었어.
희미하지만 팔뚝과 목덜미에 아가미의 흔적이 있어. 체온도 일반 사람보다 조금 낮고, 혈액 농도도 차이가 나더구나.
...바다, 에서 왔다고 들었는데, 그게 정말이니?
 
시아록:(말이 이어질수록 눈동자가 지진을 일으키다가 잠시 심호흡을 했다.)
그.. (노아를 힐끗거리다가) 맞아요.
노아씨도 같이 들어주실래요?
 
노아:...네? 에? 어, 네... (지상의 문명을 처음 마주했던 시아록과 슈테른 같은 표정을 짓는다.)
 
시아록:그.. 이건 비밀로 해주세요. 여기선 저희는 특이한 거 같으니까.. 저랑 슈슈는 바다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에요.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저흰 옛날에 지상이 멸망해서 바닷속으로 도망쳐 살아남았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지상은 여전히 멸망해있어서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줄 알았어요. (슬쩍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갑자기 바다 속에서 이상한 상황?이라고 해야하나, 여튼 슈슈의 지금 같은 증세가 바닷속 사람들한테 일어나기 시작했거든요.
그게 전염되는지는 몰라요. 그치만 제가 제일 슈슈랑 오래 있는데, 전 멀쩡한 걸 보면 전염병은 아닐 거예요. (자신의 생각을 말하며 노아와 이오리가 걱정할지도 모르는 부분을 짚었다.) 일단은 병이라고 생각해서 그걸 치료,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여튼 치료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걸 마녀님한테 듣고, 지상에 올라왔어요.
저흰 지상이 처음이고 아무것도 몰라요. 여기 도달한 것도,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걸 가리키는 나침반이 여기 도착하니까 빙글빙글 돌면서 고장난 것처럼 움직여서예요.
(겨우 말을 끝내고는 심호흡을 했다.) 노아씨는 아무것도 모르는 저희를 지금까지 도와줘서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당신이 긴 이야기를 마치면, 이오리는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빼며 이야기합니다.
 
이오리:그래, 말해줘서 고맙구나. 지상이 멸망했다는 건 금시초문이지만... 우리는 바다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모르니까 뭐라고 말을 얹을 수는 없지.
하지만 네 말대로 함부로 밝히지는 않는 게 좋겠구나, 네 말대로라면 여럿의 바다에 사는 사람들이―수중 인류가 존재한다는 거잖니?
인류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어. 브리니클을 무사히 몰아내고 다시금 평화를 되찾느냐, 아니면 기어코 바다 아래로 수장되어 버리느냐... 그러니 지상이 멸망했다는 얘기는 가급적 하지 않는 게 좋겠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말이야.
 
사람이 수중 호흡을 한다는 건 지상의 상식으론 도저히 불가능한 일일 터입니다.
 
더군다나 의사인 이오리라면 그것이 얼마나 허황한 이야기인지 잘 알 테고요.
 
하지만 바다의 자식들이 바로 앞에 뻔히 존재하는데 차마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상 인류가 아님을, 수치와 기록이 증명하고 있으니까요.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오리:노아도 나도 묻고 싶은 게 많겠지만, 우선 환자의 상태에 대해 말해줄게.
 
시아록:아, 네. 감사합니다.
 
이오리:일단은, 나도 저런 증세는 처음 봐.
이건 병들었다고 말하기도 이상해. 명확한 원인이 없거든. 신체 기관도 문제가 없고.
그래서 간단하게 혈액 검사를 해봤는데…… 직접 보렴.
 
그렇게 말하며 그가 건네는 것은 작은 종이입니다.
 
적포도주색 배경에 불규칙한 무늬가 그려져있습니다.
 
꼭 복잡한 산호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생긴 걸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시아록, 관찰 판정.
 
*패널티 판정으로 부탁드립니다!
 
시아록:
관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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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기억났습니다. 어젯밤, 골렘의 이마 위 불빛이 이런 모양으로 빛났습니다.
 
하지만, 이게 왜 슈테른의 피에서...?
 
이오리:혈액 성분을 촬영한 사진이야. 검사를 더 해봐야겠지만……
보다시피, 혈액속 입자가 브리니클의 징표와 닮았지?
 
이오리는 슈테른의 혈액 성분이 그것와 똑같은, 눈 결정 모양이라고 말합니다.
 
시아록:네, 그렇네요...
 
그러고 보니 저주가 시작된 것도 바다에 스노가 내리면서부터였죠.
 
이오리:본인 말론 브리니클에 물리거나 접촉한 적이 없다는데, 짚이는 구석이 있니?
 
시아록:그.. 바다에, 저 결정?처럼 생긴 스노가 내렸어요...
그런 건 처음이었거든요
 
이오리:스노? 바다에 스노라면...
마린 스노우 말이구나.
바다 생물의 사체가 눈처럼 내리는 거니까 진짜 눈 결정과는 구조가 다르겠지만……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어.
 
시아록:그런 게 있구나..
 
이오리는 사뭇 진지하게 답합니다. 바닷속에 사람도 사는데 눈이라고 안 내리겠어요.
 
시아록:저도 같이 봤는데.. 멀쩡해요. 괜찮은 걸까요?
 
이오리:그럼 저 아이의 증상은 바다에 마린 스노우가 내리고부터 시작된 거지? 다른 수중 인류도 그 증상이 나타난 것 같은데, 맞니?
 
시아록:맞아요..
 
이오리:글쎄, 네 말대로 노아도 함께 다녔는 데 멀쩡한 걸 보면, 전염되는 병은 아닌 것 같구나.
지금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그 눈이 직접적인 원인이 아닐까.
 
시아록:(자신이 그렇게 얘기하긴 했지만, 의사에게 확답을 들으니 안도감이 듭니다.)
 
이오리:확실히 지금까지의 정황을 보면, 유감스럽지만 너도 예외는 아닐 거야, 그렇지?
 
시아록:그렇죠...? 같이 검사해야 할까요?
 
이오리:수중 인류에 대해 막 밝혀진 참이야. 현재로서는 정보가 너무 없고. 당장 치료하기는 무리야.
그래도 최대한, 상태가 악화되지 않도록 노력해보마.
 
시아록:네, 감사합니다. (이오리의 말에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오리:불안하다면 너도 검사를 맡아 봐도 된단다. 하지만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있어.
 
시아록:안 받아도 된다면 괜찮아요..
 
이오리:저 아이를 치료하고 싶다면 네가 활약해줘야 한단다. 들어보겠니?
 
시아록:어, 네.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슈슈를 치료할 수 있다는데 뭘 못하겠는가.)
 
이오리:레지스탕스 본부에 가서, 골렘에 관해 알아보렴.
마린 스노우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지상 인류는 브리니클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 잘 아니까.
특히나 그들에게 저항하는 레지스탕스들이라면 모르는 게 없을 테고.
 
시아록:제가 거기에 가도 괜찮다면 다녀올게요.
 
이오리:슈테른의 증상과 브리니클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관이 있어 보이니까. 수중 인류의 눈으로 보면 눈에 띄는 점들이 있겠지.
그리고 레지스탕스 견학은― 저기 있는 노아가 잘 시켜줄 거야.
 
이오리가 턱짓으로 가리킨 노아는 조금 미심쩍어 보이기도, 얼떨떨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여간 우리의 의중을 살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오리:저 아이는 몸 상태가 안 좋아져서 함부로 바깥을 돌아다니기 위험하니, 한동안 입원하는 게 좋겠구나. 몇 가지 검사도 더 해봐야 하고.
그러기 전에 잠깐 인사하고 오겠니?
 
시아록:아.. (같이 움직이긴 힘들구나.) 네, 그렇게 할래요.
 
당신이 자리에서 일어서면, 이오리가 진료실의 문을 열어줍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어느덧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슈테른이 있습니다. 창백한 안색은 당장 눈을 감을 것처럼 위태롭습니다.
 
시아록:(얼른 진료실 안으로 들어간다.)
슈슈, 많이 아팠어? 지금도 많이 아파?
(당신의 곁에 다가갔다.)
 
슈테른:아, 시아록. (보고 싶었던 상대가 다가오자 얼결에 일어서서 붙잡는다.)
의사선생님이 저 보고 입원하라고 하세요, 그리고 말씀하시는 걸 보니 이상한 분은 아닌 것 같고...
 
시아록:(자신을 붙잡는 당신을 지탱한다.)
응, 나도 설명 들었어. 그런 거 같더라. (잠시 말을 고르다가) 슈슈 입원하고 있으면 나는 잠시 선생님이 말한 해결책 찾으러 다른 곳에 다녀올 거야.
얼른 다녀올테니까 슈슈는 의사선생님 말씀 듣고 여기 있어. (당신의 머리카락 끝을 남은 한손으로 만지작거린다. 떨어지기 조금 불안해하는 듯하다.)
 
슈테른:결국 어디에서도 저주를 풀 방법은 못 찾았네요... 진료를 받으면 방법을 찾고, 금방 바다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생각치도 못한 결과가 나왔어요. 혈액에서 브리니클의 증표가 나오다니...
 
시아록:그러게.. 그런 건 생각도 못했는데.
우리 스노 이후로 다들 그런 거 같지.. 스노에 브리니클같은 게 있었던 걸까?
(확신은 없는 듯한 목소리로 얘기한다.)
 
슈테른:해결책이요? 저도 따라가고 싶은데,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도 하시고 괜히 저주가 더 악화되면... 콜록, 콜록. (기침 한 번에도 온몸이 휘청거린다. 마치 바람 앞의 촛불 같다.)
스노... 정말 스노가 저주의 원인일까요? 하지만 누가 우리에게 이런 저주를...
어쩌면 스노가 브리니클이 부서진 파편이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자세한 건 의사선생님도 모르신다고...
 
시아록:(기침하는 당신을 보며 표정이 무너져내렸다. 당신의 기침이 잦아들 때까지 등을 쓰다듬었다.) 그러게... 바다는 바다대로 문제고, 지상은 지상대로 문제네.. 이게 무슨일 일까..
 
슈테른:시아록은 그걸 알아내러 가시는 거죠?
 
시아록:응, 선생님이 그러는데 거기가면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거래.
 
슈테른:그렇구나... 그럼 그 레지스탕스라는 곳에 다녀오시는 거죠.
 
시아록:응, 거기엔 브리니클에 관한 게 많은 가봐.
 
슈테른:조심해서 다녀오세요. 혼자 보내서 죄송해요... 도움이 되고 싶은데, 당장은 제 몸 가누기에도 벅차서...
 
시아록:아니야, 그게 왜 미안해. 괜찮아. 슈슈는 편하게 좀 쉬고 있어.
안그래도 몸 안 좋은데, 움직이느라 고생했잖아.
 
슈테른:그래도 테일러 선생님께서 고쳐주시겠다고 약속해주셨으니까, 빨리 나아서 전처럼 시아록이랑 산책하고 싶어요.
아직 다 발견하지 못한 지상의 음식도, 신기한 장치들도... 저주의 치료법도 무사히 발견하면, 같이 바다로 돌아가서 쉴 수 있겠죠.
 
시아록:응응, 나도 슈슈 빨리 나을 수 있게 가서 단서 꼭 찾아올게.
그러고 이것저것 지상에서 보고 바다로 돌아가자.
 
슈테른은 결연하면서도 조금 애틋한 표정으로 끄덕이고는, 당신의 머리에 씌인 모자를 고쳐매 줍니다.
 
시아록:(모자를 정리해주는 당신의 손길에 슬쩍 웃다가 당신을 한 번 꾹 안습니다.) 얼른 돌아올게. 슈슈도 좀 푹 쉬고 있어. 몸이 편해야 얼른 나을 수 있으니까.
 
한동안의 작별은 포옹으로 기념합니다. 마주 안아오는 슈테른의 몸은 평소보다도 힘이 없고 말라 있지만, 그렇기에 당신은 더욱 꽉 안고 말았습니다.
 
슈테른:얼른 나을게요. 편히 쉬면서 의사선생님 말대로 하면 분명 괜찮아질 거에요.
(어깨 너머로 찰랑이는 머리를 손으로 빗어준다. 건드릴 때마다 물결지는 모양은 물에서 늘 보았던 것이라 조금 그리운 눈이 된다.) 다녀오세요.
 
이제 슬슬 떠날 시간인데, 당장 몇 시간 후면 돌아와서 만날 수 있을텐데도 어쩐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마녀 앞에서 쓰러졌던 그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석상처럼 굳어 넘어진 그때와 지금이 겹쳐지면 어쩌나, 초조해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있으면 아무것도 나아질 테니, 당신은 차라리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합니다.
 
당신이 창백한 슈테른의 얼굴을 쓸며 잘 자라고 말해 주면, 그제야 그는 편안하게 눈을 감습니다.
 
이 모습을 바닷속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집에서 볼 수 있기를,
 
당신은 바라게 되었습니다.
 
 
노아와 당신은 이오리의 제안에 따라 레지스탕스 기지로 가기로 합니다.
 
그러고 보면 노아는 저녁에 일하러 가야 한다고 했는데, 괜찮은 건가? 싶으면...
 
노아:...우연의 일치네요. 마침 이번 일거리는 레지스탕스에서 받아오기로 되어 있었거든요.
가는 길이니 마침 잘 됐어요. (거기가 아니라 이 쪽 골목이요, 능숙하게 복잡한 미로같은 골목에서 길을 안내한다.)
 
한참 말이 없던 노아가 문득 얘기합니다.
 
노아:...저, 아까는... 의심해서 죄송했어요.
브리니클의 일족이냐니 정말 터무니없는 소리였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닌가, 출신이 같으니 어느 정도는 맞다고 해야 하나...
 
시아록:네?
아.. 괜찮아요. 저희도 제대로 설명 안 했고요..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노아:아무튼 어디서 왔는지, 왜 왔는지 하나도 몰라서 의심도 많이 되었는데...
그런... 사정이 있으실 줄은 정말 몰랐어요.
 
시아록:뭍은 처음이라.. 이것저것 걱정이 많았거든요.. (머슥하게 뒷목을 매만졌다.)
 
노아:수중 인류... 수중에도 브리니클이 있었나요? 한참 쫓겼을 때 표정이 꼭 낯선 걸 보는 듯한 눈치셔서...
아주 깊은 안전지대나, 지하에서 살다 오신 줄 알았어요, 처음에는.
 
시아록:브리니클은 처음 봤어요. 수중생활은 멀리 나가면 위험하다고 어른들이 못 가게 하시거든요. 사냥하시는 분 외에는 멀리 안나가고, 거기다 저흰 마을에서 막내라 위험한 일들도 안시키세요.
바다도 넓으니까 어딘가에는 브리니클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노아:바다, 바다에도 사람이 살 수 있다니... 그 분이나 당신... ... 시아록, 씨는 인어같은 건가요? 아가미가 달려 있다든가.
아니다, 처음 지상의 땅을 밟으셨을 때 여러분도 딱 그런 심정이셨겠군요. 뭍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니, 하는.
 
시아록:(노아의 반으에 잘게 웃었다.) 맞아요.저흰 진짜 지상이 전부 멸망한 줄 알았거든요.
 
노아:수중에는 인간과 해양생물들이 같이 살았던 거지요, 혹시 타종족과도 말이 통했나요? 인간을 공격하는 개체도 있었을 테니 사냥꾼은 마을을 지키는 우두머리 같은 사람이었을 거고...
...바닷속에도 브리니클이 있다니, 그거 무서운데요. 그럼 해안 근처에 따로 서식지가 있는 건가...? 아무 데서나 사는 게 아니라니...
(이야기를 듣고 궁금증이 폭발했는지 지금까지 중에서 제일 입을 바쁘게 움직인다. 조금 신난 눈치다.)
 
시아록:아가미는 있어요. 인어가 뭔지는 잘 모르겠네요. 여기 올라올 때 마녀님이 지상에서도 활동할 수 있게 해주셔서 호흡할 수 있는 거예요.
전 바다에서 저희 마을에서만 살아서 다른 곳에도 마을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잠시 생각하다가) 바다에선 사실 브리니클을 본 적이 없으니 사실 추측일 뿐 잘 모르겠지만요..
 
노아:인어는... (잠시 생각하려는 듯 발걸음을 멈춘다.) 지상에 널리 퍼진 민담에 나오는 존재인데요. 상반신은 사람의 것이고 다리부터는 물고기의 것이라, 바다 근처에서 고개를 내밀고 인간을 관찰하거나 홀린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인어라, 익숙합니다. 당장 마녀의 초대장을 받았던 그 이야기책도 인어 공주에 관한 것이었잖아요.
 
심지어 설명을 들어보니 외관 묘사는 완전히 같네요. 사람을 홀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아록:아.. 그건가.. 인어.. 하반신이 물고기인 인어는 본 적 없어요.
다들 저희처럼 다리가 있는걸요.
바다는 엄청 넓으니까 있을 수도 있겠죠?
 
노아:그 마녀라는 분은 말 그대로 마녀인 거죠...? 마법을 쓸 수 있고 만물의 진리에 능한.
 
시아록:만물의 진리에 능한 거까진 제가 잘 모르겠지만... 어, 지상에선 마법을 사용할 수 없나요? (의아한 듯 물었다.)
 
노아:... 수중 인류가 지상에서 숨을 쉬게 할 수 있다면, 반대로 지상 인류가 바닷속에서 숨을 쉬게 할 수도 있을까요? (팔짱을 끼고 머리를 이리저리 굴린다.)
 
시아록:마녀님은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안 될 수도 있지만요. 바다에 가보고 싶어요?
 
노아:아... 그럼 이 도시보다 작은 규모의 공동체였겠네요, '마을'이 지상 세계의 '마을'과 비슷하다면... 지상에는 사람이 많아서, 놀라셨을 지도 모르겠어요.
브리니클... 브리니클에 대해서는 못 들어보신 거죠? 저도 기본적인 정보는 알려드릴 수 있어요. 모르실 거라곤 생각도 못 해서 말로 꺼내진 않았지만...
 
시아록:맞아요. 그냥 작은 마을 수준이에요. 지상엔 사람도 많고 넓고.. 다른 것들도 이것저것 되게 많은 거 같아요. 음식도 완전히 다르고...
브리니클에 대해 설명해주면 좋죠. 조금 많이 궁금해요.
 
노아:인어가 바다 어딘가에 정말로 있다면... 꼭 만나보고 싶네요. 환상 속 신비로운 존재니까요. 물론 옆에 계시는 당신도, 충분히 놀랍지만요.
마법이요? 책에서야 등장하는 개념이지만 어떻게 쓰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마법사라곤 한 명도 없었고... 수중 인류는 마법도 쓸 수 있나요? 정확히 어떤...?
직접 가 볼 수만 있다면, 수중 세계라는 건 어떤 모습일 지 궁금해요. 위험해질 지도 모르겠지만... 기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죠.
 
시아록:전 지상의 당신들이 더 놀랍지만요. (조금 웃었다.) 음.. 마법이라고 해봤자 대단한 건 못해요. 전혀. 전 물을 조금 움직이는 정도고.. 큰힘을 낼 수도 없거든요. 그리고 작은 불빛 정도?
딱히 뭘 크게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에요.
바다 속은 여기보다 훨씬 덜 발달된 곳이라.. 실망할 거 같은데요...
 
노아:그렇죠, 문화나 생활 양식, 나는 재료 자체가 다르니... 바닷속에는 불도 없으니까 열을 이용한 조리도 힘들었을까요?
브리니클. 브리니클은 흔히 말하는 골렘같은 형상이에요.
어느 날부턴가 해일과 같은 파도와 함께 등장해서, 지상의 모든 것들을 입속으로 쓸어담고 있죠.
사람, 건물, 나무... 생물과 무생물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쓸고 가면, 지상은 완전히 쑥대밭이 되어 버려요.
희생자가 수도 없이 많아요. 브리니클 때문에 지구의 전체 인구가 20% 줄었다는 통계도 있어요... 단순한 금액 피해도 놀라우리만큼 크고.
 
시아록:..오...(직접보긴 했지만, 무언가 상상도 안 가는 스케일이 속절없이 놀라움만을 내뱉었다.) 갑자기나타난 거면 언제부터 나타난 건데요..?
 
노아:무엇을 노리는지, 왜 인류를 절멸시킬 기세로 모든 걸 삼키는지는 모르겠어요. 시기는... 글쎄요. 몇십 년쯤 되었으려나...
 
시아록:오래 되었네요.. 진짜 한 번도 본 적 없어서...
이번에 처음 본 게 다고..
나타나는 규칙같은 거라도 있어요?
 
노아:그것들은 바다에서 와요, 아주 차고 단단해서 인류는 그걸 브리니클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주위의 모든 것을 서늘한 죽음으로 몰아가는 폭풍같은.
규칙이라, 보통 이틀에 한 번 정도, 꼭 밤에만 해안가에서부터 올라와요.
 
시아록:브리니클이 그런 뜻이군요. 이틀에 한 번이요?! 그렇게 자주 올라온다고요..?
(너무 위험한 거 아닌가..싶어서 눈만 동그래졌다.)
 
노아:몇 번을 파괴해도, 아침까지 버텨서 단념시키고 돌려보내도... 다음 날쯤 되면 그것은 다시 올라와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럼요, 정부가 혼란 속에 무너지고 단체 행동이나 시위가 일어났을 정도니 그게 지상에 끼친 폐해가 얼마나 되는지 잘 알 수 있죠.
이틀에 한 번이면 안전한 편이에요. 하루에 한 번 올라오는 경우도 있어요.
 
시아록:... 지상은 엄청 위험하네요.. 바닷속에선 저희가 멀리 나가지 않아서인지 몰라도 외부로 나가는 사람들도 그렇게 위험한 건 있다고 얘기하진 않았거든요..
브리니클이 얼마나 많길래...
 
노아:...사실은 어떤 거대한 힘 같은 게 작용해서, 우리가 파괴해도 인간이 바다에 침수시킨 자원으로 재구성되어 다시 기어올라올 거라는 추측도 있어요. 안전지대라는 건 그래서 존재하는 거에요.
(아득한 장벽을 바라본다.) 진즉에 브리니클과의 싸움을 포기한, 배부른 부자들이나 겁쟁이들의 구역이죠. 브리니클은 바다에서 오니까 저 장벽을 넘을 일이 거의 없어요. 안쪽으로 갈 수록 안전하기도 하고.
...얘기가 길어졌네요. 이런 상황이지만, 레지스탕스가 곳곳에서 열일하고 있으니 밤에만 조심하면 괜찮을 거에요. 마저 걸을까요?
 
시아록:그렇구나.. 그럼 밖에 있는 사람들은 안으로 들어올 수 없어요? 밖에 너무 위험하던데... (어제 겪었던 일을 떠올리고는 몸서리쳤다.)
네, 일단 가요. (고개를 끄덕인다.)
 
노아:돈이 있어야 들어가든 하죠. 땅값이 높기도 하고, 부자들은 자존심 하나는 하늘보다 높아서 돈 없는 사람들이 들어오려고 하면 쫓아내 버려요.
 
시아록:돈.. 어제 그거 말이죠..
 
노아:아, 네. 뭔가요?
어제 가지고 계시던 그거 맞아요, 딱딱하고 납작한 동전과 가벼운 화폐. 돈은 처음 보셨을 텐데 어떻게 알아보셨어요?
아닌가? 수중 세계에도 화폐가 있었나요? 왠지 우리랑 다르게 조개나 미역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네요.
 
시아록:아뇨.. (도리도리 고개를 내저었다.)
그냥 일 도와드린 게... 마지막까지 제대로 못한 게 생각나서..
어제 그 밖에서 아이들이 가르쳐주더라고요.
돈도 처음 봤지만, 저희보단 어린애들도 처음 봤어요.
화폐는 없고 그냥 물물교환 정도예요. 마을도 작다보니 서로서로 돕는 정도고요..
 
노아:아, 친절한 아이들이네요. 인구 수가 적다면 아이들도 적을 수밖에 없죠... 그런 마을에 전염병이라니.
...집채만한 냄비를 혼자 들어서 옮기시길래 처음엔 대체 무슨 일인가 했죠. 분명 계산을 하라고 보냈는데...
 
시아록:맞아요.. 그래서 걱정이 좀 많이 돼요. 이런 건 처음이거든요.
아.. 돈이 좀 부족해서.. 일을 도와주면 .. 그정도로 해주시겠다고 하셔서.. (멋쩍어 하며 웃었다.)
 
노아:전염병... 전염병이라기보단 꼭 저주 같네요. 수중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병이라니.
자원이 한정적이라면 차라리 물물교환이 낫죠. 우리랑 생활 방식 자체가 다르군요, 거창한 건 아니어도 마법도 있고...
 
시아록:저주.. 같나요? (더 심각해진 얼굴이 시무룩해졌따.)
 
노아:책 같은 서적이나 기록도 있었나요? 수중 인류끼리 주고받는 역사서라든가. 그럼 발생 연도를 추정할 수 있을 텐데...
물 속이니까 그런 건 무리였을까요.
 
시아록:그런 건.. 별로 없어요.. 있어도 몇 개 없구요.
(마을 내 박물관이라고 이래저래 모은 물건들을 떠올렸지만 역시 별건 없는 걸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노아:음... 평범한 병일까요? 수중에 마린 스노우가 내린 날부터 증상이 나타났다면... 사실은 마린 스노우가 아닌 병균이나 바이러스였다거나... (이것저것 상상하며 중얼거린다.)
하지만 지상 인류에게 옮은 적도 없고, 전염성도 아니고... 수중 인류에게만 퍼지는 독이나 저주 같은 게 아니었을까요?
 
시아록:(당신의 말을 멀뚱히 듣고 있다.)
 
노아:그런가요, 아쉽네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며 턱에 손을 얹는다.)
음, 아무튼 말씀 감사해요, 수중 인류래서 처음엔 의아했는데 덕에 궁금한 게 해결됐어요, 들어보니 거짓말도 아닌 것 같고.
 
시아록:어, 처음엔 말 안했을 뿐이지 거짓말 아니에요!
 
노아:(한참 얘기하다 보면, 어느새 외곽 근처의 무너진 건물 쪽이다.)
여기에요, 레지스탕스 본부기지.
 
시아록:(거짓말을 초반에 조금 했긴 했지만 그냥 묻기로 했다.)
아, 그래요? (무너진 건물을 쳐다봤다.)
 
노아:알아요, 이제 정말 의심 안 할게요. 하지만 거짓말도 조금은... 하긴 해야겠는데요.
당장 저만 해도 얘기를 듣고 의구심을 가졌는데, 조금만 예민한 사람이라면 바다에서 왔다는 걸 눈치챌 지도 모르니까.
 
시아록:아... 네..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어차피 지상 사람이 만들어내는 얘기가 더 그럴 듯 할 것이다.)
 
노아:특히 지상에서 자주 통용되는 개념―돈, 정부, 국가 같은―의 뜻을 물으려면 더 수상해 보일 거고...
차라리 이런 변명은 어떨까요? '브리니클에게서 도망치다가 머리를 잘못 맞아서 충격으로 기억을 잃었다.' 같은...
 
시아록:...그런 변명으로 가능해요...?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당신을 쳐다봤다.)
 
노아:...별론가? 아무튼 궁금한 건 우선 저나 이오리 씨께 묻고 모른다고 하면 다른 분께 물어보세요.
그, 그런 경우가 아주 없다고도 할 수 없잖아요...? (어이없다는 표정에 뒷목을 긁적인다.)
 
시아록:알았어요. 그냥 노아씨랑 이오리씨께 묻는다고 할게요.
 
노아:...네. (괜히 민망해져서 혼자 거칠게 땅을 박찬다.)
그럼, 소개할게요, 이 다 쓰러진 건물이...
 
레지스탕스
 
울긋불긋한 하늘 아래 무너진 건물이 제법 처참합니다.
 
이게 브리니클에 저항하는 군사기지라니, 애초에 사람이 살 수는 있는 건가...?
 
여기까지 오면서 브리니클의 침입으로 쑥대밭이 된 건물도 종종 있었습니다.
 
이 건물도 비슷한 사정으로 이렇게 된 걸까요?
 
불도 들어오지 않아 사방이 어둑하고 으슥한데, 노아는 자꾸만 안쪽으로 깊이 들어갑니다.
 
드문드문 상자가 쌓여 있어, 몇 번인가 넘어질 뻔하기도 했죠.
 
그렇게 제일 깊은 곳까지 들어가면, 벽에는 은색 문이 있습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처음 보는 곳인데도 기시감을 느끼노라면 노아의 손가락이 옆에 있는 버튼을 달칵 누릅니다.
 
노아:레지스탕스 본부는 지하에 있어요. 여기서 보이는 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에요.
브리니클들은 살아있는 걸 주로 쫓아오니까... 이렇게 다 무너져 있으면 눈에 띄지도 않거든요.
그 점을 역이용해서 우리는 밖으로는 폐허만 보이는, 이런 기지를 만들었어요.
 
시아록:아, 그렇구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오면서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랬군요.
 
띵. 경쾌한 소리와 함께 자동으로 문이 열립니다.
 
양쪽으로 벌어진 공간에 타면순서대로 숫자가 쓰인 작은 판이 보입니다.
 
B5. 판 하나를 누르면 골렘과 비슷한 붉은 빛이 점등합니다.
 
손짓 한 번에 불을 키다니, 전혀 그런 기미가 없었는데 노아도 사실 마법사였던 걸까요?
 
우우웅.
 
문이 닫히고, 이상한 소리가 나고, 불빛이 깜빡이고, 아래로 떨어집니다.
 
시아록:그, 노아씨. 이건 뭐예요? (신기한 상황에 당신에게 묻는다.)
 
느린 속도긴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 방이, 공간 자체가 움직이고 있어요. 점점 끝없이 아래로 내려갑니다.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물으면 노아가 답합니다.
 
노아:아, 모르시겠구나. 엘리베이터라고 하는, 인간들을 싣고 위아래로 움직이는 기구에요.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지하 5층에 도착해요.
 
시아록:와.. 이런것도 있군요. (무척 신기해하며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방이라기에도 민망할 만큼, 사람 여럿이 탈 만한 빈틈만을 남겨둔 공간.
 
덜커덩, 하고 공간이 내려앉는 소리가 들리고,
 
「지하 5층, 지하 5층입니다.」
 
무미건조한 음성과 함께, 공간이 열립니다.
 
열린 틈으로 노아는 익숙하게 내립니다.
 
주변을 둘러보다 겨우 발걸음을 떼고 밖으로 나가면, 한눈에 봐도 복잡한 경관이 펼쳐집니다.
 
어지럽다고 해야 할까요? 넓은 공간에 사람 여럿이 바쁘게 돌아다니며 무언가 들고 이동하거나 자기들끼리 얘기하고 있습니다.
 
꼭 지상 세계에 처음 올라왔을 때의 충격과 같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모두가 같은 옷을 입고 있고,
 
모두 저마다의 상처를 달고 있다는 점일까요.
 
노아:사람이 좀 많죠? 여기가 바로 지하기지에요.
본부는 크게 홀, 회의실, 무기고, 식당, 숙소로 나뉘고요. 전 정식 대원은 아니라 갈 수 있는 곳에는 한계가 있다지만...
 
시아록:네네.
 
노아:그래도 레지스탕스 분들과 1, 2년 본 것도 아니니까 잘 얘기하면 들여보내 주실 거에요. 어디부터 가 보실래요?
 
시아록:(여전히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 그럼 말씀하신 순서대로? 홀이란 곳부터 가요.
 
노아:홀이란 건 별 건 없어요. 엘리베이터에서 딱 나오자마자 보이는, 여기 트인 공간이에요. (인파의 한가운데 서서 얘기한다.)
또 회의실은 말 그대로 작전 회의나 재정에 대한 업무를 보는 곳이고, 무기고는 인간들이 골렘을 소탕할 때 쓰는 무기를 보관해두는 곳이에요. 둘 다 함부로 들어갈 순 없고, 대장의 허가가 필요하죠.
대장은 지금쯤 뭐 하시려나... 이따가 그 분도 소개해드릴 테니까 지금은 다른 곳부터 살펴봐요. 지금쯤이면... 배식 시간이니까 식당에 사람이 넘치려나.
아, 우리 저녁도 안 먹었죠? 마침 잘 됐네요, 절 따라오세요. (식당이라고 하는 곳으로 성큼성큼 발을 옮긴다.)
 
시아록:네. (당신의 말을 멍하게 듣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당신을 따라간다.)
 
“어어, 노아 왔냐. 오늘은 왜 이렇게 늦었어?”
 
“배식 다 끝나간다. 안 뛰면 식판 바닥을 긁어야 할걸.”
 
“노아! 이따 내 군번줄 좀 찾아다오. 도통 보이질 않는다.”
 
식당 입구 쪽에서 쏟아져나오는 사람들이 노아에게 친숙하게 말을 겁니다. 레지스탕스 사람들과 아는 사이라는 말은 사실이었나 보죠.
 
시아록:(노아에게 말을 거는 수많은 사람들에 혼자 우물쭈물거리며 노아의 등 뒤에 붙었다.)
 
노아는 대강 대답하며 당신을 식당 안쪽으로 데려갑니다. 그리고 한 바퀴를 휘 둘러보더니 가장 덩치가 큰 남자에게 대장은 어디 있냐고 묻습니다.
 
덩치가 큰 사람: 대장? 부자 나리들 등치러 갔지. 전투 개시 전에는 올 거다.
 
노아:아, 하필이면 그 날이구나... 얘기할 게 있었는데.
 
시아록:(부자? 등쳐? 전투? 혼자 어리둥절하며 대화를 듣는다.)
 
노아: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아록 씨, 저흰 배식 받으러 가요. (익숙하게 이끈다.)
 
좀 더 걸어가면, 아마도 음식...일 무언가가 쌓인 배식통과 식판이 보입니다. 노아는 식판 하나를 쥐여주며 이야기합니다.
 
노아:아까 혼란 속에 시위가 일어나고 무력한 정부가 와해되어 버렸다고 이야기했죠?
 
시아록:네, 그랬죠..
 
노아:브리니클과의 전투에 참전하는 레지스탕스에게 자금을 대 줄 국가가 없어졌으니, 우리는 대신 안전지대 안의 부자들을 스폰서... 아니, 후견인 삼아 돈을 뜯어내... 아니 갈취... 아니 협상해요. (거친 말이 튀어나오는 통에 여러 번 고친다.)
그런 일은 대장이 도맡아서 하시니까... 안전지대 안쪽까지 들어갔다 오시려면, 뵙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거에요. 오늘 밤까지야 오시겠지만.
 
시아록:네...? ( 험악한 말들을 듣다가 멍청해졌다.)
어어.. 네...
 
노아:번거로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어요. 돈이 없으면 당장 이런 것도 못 받고, (식판을 톡톡 두드린다.) 무기를 마련하거나 건물을 보수하거나 대원들을 치료하는 것도, 아무것도 못 하니까요.
 
시아록:여긴 돈이 중요한 거 같아요.. 이래저래..
 
노아:수중 세계는 자원이 조금 희박하니까 물물교환이 성행했죠? 우리는 오히려 자원이 잉여하는... 아니 남는 통에 더 많이 가지려고 싸웠어요.
그러다 겨우 합의점을 찾은 게 돈을 통한 거래고... 돈이 있으면 생활 전반의 문제는 해결되니까 거의 돈이 최고라고 봐도 무방하기는 해요.
 
시아록:아.. 그렇군요. 수중엔 사람도 적고 하니까.. 물자도 그렇게 풍부하진 않아서..
여기 생활을 저희가 다 나와도 어렵겠어요. (작게 웃었다.)
 
노아:지상이랑 수중은 천지 차이니까 적응하는 것도 큰일이겠죠...
여기 있는 건 사람들 먹으라고 잔뜩 해둔 음식이에요. 먹을 만큼 가져가면 돼요.
여기... 이건 감자에요. 레지스탕스의 주식이죠. (갈색의 포슬포슬한 덩어리를 집게로 집어 식판에 놓았다.)
 
시아록:어.. (처음보는 음식에 잠시 당황하다가 노아가 손에 들려준 식판 위에 얹어주는 걸 보고 안심했다.)
 
노아:이건 토마토 스튜라고, 야채를 쑹덩쑹덩 썰어넣은 국물이고... (음식을 하나하나 설명해주기 시작한다.)
 
시아록:(사실 토마토니 야채니 설명해줘도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설명을 얌전히 들었다.)
 
먹을 만큼의 양을 식판 위에 늘어놓고, 노아가 알려주는 대로 식탁에 가 앉으면 맛있는 향기가 솔솔 올라옵니다.
 
저절로 입에 침이 고이는…… 고소하고 따뜻한 냄새에요.
 
이미 식사 시간의 끝물인지 사람이 몇 명 없습니다. 우리에겐 다행이군요. 방금 같은 대화를 사람들 앞에서 했다간 다들 이상하게 봤을 테니까요.
 
포근포근하게 찐 감자, 옥수수가 박힌 갈색 빵, 채소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푹 끓인 토마토 스튜.
 
마지막으로 육즙이 뜨끈하게 흐르는 소시지 하나. 평범한 식단이지만 모두 당신에겐 낯선 조합입니다.
 
노아:사람이 얼마 없는 건 좋은데... 그만큼 음식도 다 떨어져가네요. 더 늦었다면 정말 바닥만 긁을 뻔 했어요.
...음, 낯설겠지만... 이상한 음식은 아니니까 한 번 드셔보세요.
 
시아록:네에.. (낯선 음식을 내려다보다가 감자라고 설명해준 걸 한 입 물었다. 처음 먹어보는 맛이지만 나쁘지 않아서 우물우물 먹기 시작한다.)
 
익히고 끓인 음식은 모두 날 것과는 전혀 다른 맛을 냅니다.
 
피비린내도 없고 바닷물 특유의 짠맛도 훨씬 적습니다. 조금 밍밍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어요.
 
혀가 뜨끈하게 데워지는 감각이 식사할 때 맛볼 수 있는 느낌이었다니! 하나하나 생소하게 느끼고 음미하며 당신은 식기를 움직입니다.
 
시아록:바다에서 먹은 건 다 그냥 먹는 거라서.. 이렇게 먹는 건 이제 두번째네요. 어제 먹은 걸 포함해서..
(생각보다 잘 먹고 있다.)
 
노아:그쵸. 수중 인류가 먹기엔 어떤가요? 좀 괜찮아요?
저, 그러고 보면 바닷속에서는 식사할 때 주로 뭘 먹나요? 먹을 게 없으면 주변에 자라는 해초같은 걸 뜯어먹고 그러나...?
 
시아록:응, 괜찮아요. 따뜻한 게 신기하기도 하고요.
 
노아:(촉촉하게 찐 감자와 함께 스튜 국물을 중간중간 떠먹어가며 얘기한다.)
 
시아록:해초랑 생선같은 걸 먹어요. 그래서 이런 음식들은 신기한데, 생각보다 괜찮네요.
 
노아:그럼 익힌 음식이 없는 대신 생선 종류가 무척 다양했겠네요. 생선이라...
신기하네요. 전 브리니클 때문에 태어나서 한 번도 생선을 먹어본 적이 없어요. 사실 웬만한 부자들이 아니고서야, 생선을 직접 잡아서 길러오는 짓은 잘 못 하죠.
그냥 바다에 대해서 잘 몰라요. 책으로만 접해서 어떤 곳인지만 대충 이해하고 있을 뿐이지...
 
시아록:아, 생선을 먹어본 적이 없군요. (늘 먹는 거라 상대의 말이 신기하다. 자신이 이런 음식이 신기한 것과 비슷한 거겠지.) 저희도 바다 속에서만 생활해서
여기 올라와서 바다 봤을 때는 신기했어요.
 
노아:그렇구나, 바닷속에서만 사셨으니 해변을 못 보셨겠군요. 저희가 해안만 보고 그 아래 심해는 못 보는 것처럼.
 
시아록:그렇죠. 뭔가 보는데 웅장한 느낌이었어요.
 
노아:그럼 마린 스노우 말고는, 평생 눈이나 비 같은 것도 안 내렸겠네요. ...나중에 비가 오는 줄도 모르고 나가서 쫄딱 젖어 돌아오시면 어쩌지...
 
시아록:비..? 눈?
물은 늘 곁에 있으니까요.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노아:아, 하늘에 있는 구름... 아까 오면서 노랗게 뜬 것들 있죠. 거기서 물이나 얼음 결정이 내리는 현상을 우리는 비, 눈이 온다고 얘기해요.
영국이라고 저―쪽에 있는 나라에선 그 현상이 매일 보일 정도로 흔해요. 다른 쪽으로 가면 아예 안 오는 곳도 있고...
 
시아록:그런게 내려요? 역시 지상은 신기하네요..
 
노아:그렇죠. 비도 눈도 없고 브리니클도 안 나타났다면... 수중 세계는 정말 평화로운 곳이었겠어요.
음... 묻고 싶은 게 많지만 이러다간 정말 끝도 없겠죠? (식판을 정리하곤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머진 천천히 물어볼게요. 급한 일도 아니니까.
 
시아록:음.. 해류라던가.. 상어, 라던가는 위험해요.. 마을에서 멀리 나가면 뭐가 있는지 모르니 위험하기도 하고요. 미지란 무섭죠..
(작게 웅얼거리며 함께 심판을 정리해 일어났다.)
 
노아:다 드셨으면 일어나세요. 대장은 좀 있다 오실 테니까 숙소라도 구경시켜 드릴게요.
 
노아와 함께 다 먹은 식판을 싱크대라는 곳에 담궈두고, 우리는 숙소를 구경하기로 합니다.
 
방문이 복도를 따라 쭉 늘어져 있고, 팻말에 이름과 함께 식별번호가 쓰여 있습니다. 노아는 아직 방을 배정받지 못했다네요.
 
노아:...저도 조금만 더 크면 들어오고 말 거에요, 레지스탕스.
좀 더 큰 작전도 돕고 싶은데 다들 어리니까 안 된다고...
 
그 마음은 아주 모르는 건 아니죠. 어릴 때 위험하다며 바깥으로 가는 건 막은 것과 비슷한 맥락일 겁니다.
 
노아는 방문을 열어 안을 대충 구경시켜 줍니다. 안에 침대라고 하는 게 탑처럼 쌓여 있습니다.
 
시아록:아.. 위험하긴 할 거니까요.. (브리니클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엥? 침대가요? 쌓여 있다고요?
 
잘못 본 게 아닙니다. 침대가 두 층으로 높게 쌓여 있어, 각각 한 사람씩 들어가 잠을 잔다고 하네요.
 
세상에! 윗층에 있는 침대가 무너지기라도 하면 어떡하죠?
 
침대 또한 자세히 보면 수중 인류의 것과 하나도 닮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석판 위에 등이 아프지 말라고 미역으로 짠 카펫을 덮어놓으면 끝이었는데...
 
여기는 매트리스에, 이불에, 담요에... 참 복잡하게도 생겼네요.
 
방문을 닫고 다시 홀로 돌아가는 길에,
 
"노아! 대장 왔다."
 
누군가 반가운 소식을 알립니다. 그 대장이라는 사람이 돌아왔나 봐요.
 
노아가 손을 잡고 발걸음을 서두릅니다. 홀의 어딘가, 사람들이 조금 몰려있는 곳에...
 
유진:나를 찾았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레지스탕스의 대장, 유진이 서 있습니다.
 
첫인상은, 우선 덩치가 무척 큽니다. 이 홀에서 제일 키가 큰 사람이라 대장인 건가? 싶을 정도로요.
 
하지만 우람하거나 험악해 보이지는 않는, 딱 적당한 크기입니다.
 
무슨 용건이냐고 단촐하게 묻는 말씨는 표정만큼이나 딱딱합니다. 한눈에도 피곤해 보이는 낯이기도 하고요.
 
유진은 노아와 그 옆에 선 당신을 번갈아 바라봅니다. 노아는 둘째치고 그에게 당신은 낯선 존재일 테니까요. 자기소개라도 해야 하나?
 
시아록:(노아에게 소개 받아야 한다고 듣긴 했지만, 낯선 사람에게 어쩔 수 없이 낯가림이 일었다. 자신을 쳐다보는 레지스탕스의 대장을 보며 우물거렸다.) 그, 어.. 이오리씨가 부탁해서 노아씨랑 왔는데요.. 시아록이라고 합니다..
 
노아:그게... (있는 사실 그대로를 말할 수는 없으니 적당히 일부만을 골라 이야기한다.) 이 분이 데려오신 동료의 혈액에서 브리니클의 징표와 같은 모양의 입자가 발견되었거든요.
전염병이라든가, 그런 게 돈 것도 아니고 브리니클과의 접촉도 없던 걸 제 눈으로 확인했는데 그런 게 검출된 게 마음에 걸려서...
혹시 브리니클에 대한 정보를 조사하다 보면 원인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저희 둘이 이렇게 찾아왔어요.
시아록 씨는 나쁜 사람은 아니니 걱정 마세요, 혹시나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유진:(대강의 사정을 듣고는, 중간중간 걸리는 단어에 눈을 찌푸린다.) 브리니클의 징표……
 
그는 짐짓 심각해진 표정으로 이야기하더니, 어딘가로 여러분을 이끕니다.
 
유진:그게 사실이라면... 단순히 부수고 삼키는 게 전부가 아니란 말이군요.
곤란한데…… 일단 들어가서 얘기합시다.
 
가볍게 혀를 찬 뒤, 어딘가로 향하는 문을 열어줍니다. 옆에 딸린 팻말에는 '회의실'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중요한 안건에 대해 회담하는 곳. 노아도 이 곳엔 처음 와 보는지 조금 긴장한 눈치입니다.
 
문에는 손잡이도 홈도 없는데, 놀랍게도 문틀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꾹 누르자자동으로 열립니다.
 
안은 상당히 엉망진창입니다.
 
길고 커다란 테이블에는 온갖 종이가 널브러져 있고,
 
시아록:(갑자기 열린 문에 당황했지만, 안을 보고 더 당황했다.)
 
벽 대신 색색의 글씨와 그림으로 뒤덮인 하얀 판이 펼쳐져 있습니다.
 
바닥에도 사람 키만 한 서류 더미가 쌓여 있고요.
 
거듭 느끼는 거지만, 지상 세계는 참 복잡한 곳입니다...
 
유진:편한 곳에 앉으십시오. (테이블의 서류를 대강 정리하고는, 장갑을 고쳐 쓴다.)
 
그 말에 아무 의자나 끌어다 앉으며, 허둥지둥 주위를 둘러봅니다.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86
판정결과: 보통 성공
 
하얀 판에 그려진 그림 중, 어딘가 눈에 익은 것이 있습니다.
 
 
둥근 알 아래에 많은 선으로 연결된 수레……
 
혹은 지붕을 거꾸로 뒤집어둔 것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매달린 이상한 그림입니다.
 
도통 처음 보는 형태인데 왜 이렇게 낯익은지 모르겠어요.
 
시아록:(어쩐지 낯익어 보이는것에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문을 품고 자리에 앉자마자, 노아의 입에서 질문이 튀어나갑니다.
 
노아:대장, 저건 뭐에요? 무기는 아닌 것 같은데...
 
유진:비행선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조금 낯설겠군요.
저것을 이용하면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습니다. 레지스탕스에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비밀 병기죠.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해도 그닥 실감은 나지 않습니다. 그게 왜 좋은 건지도 잘 모르겠고.
 
그렇게 답한 대장은 이제 당신 쪽을 돌아보곤 묻습니다.
 
유진:방금 전의 이야기가 사실입니까? 사람의 피에서 브리니클의 징표가 나왔다는.
브리니클에 대해서라면, 대장으로서 알고 있는 건 모두 답하겠습니다.
 
시아록:네, 이오리씨가 확인하신 거니까 맞을 거예요.
 
유진:닥터 테일러... 소견서는 따로 받으셨습니까? 그게 있다면 조금 더 정확히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소견서? 그게 뭐지, 하고 있으면 옆에서 노아가 친절히 덧붙여줍니다.
 
노아:의사가 처방전처럼 써 주는 서류에요. 이 환자에게 어떤 증상이 있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 같은 걸 기록한...
우린 못 받았으니까, 우선 지금 파악한 상황을 얘기하면 되지 않을까요, 증상 같은...
 
시아록:아.. 네..
손발이 차가워지고.. (바닷물이 달게 느껴진 건 말하면 안되겠고..) 또, 몸이 안 좋아졌고요.. 그리고 이오리씨가 혈액 검사했는데 거기서 브리니클 증표같은 게 나왔다고 했어요.
신체기관엔 딱히 이상이 없다고 하셨거든요..
 
슈테른에게 나타난 증상에 대해, 이오리는 '브리니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얘기했죠. 어쩌면, 브리니클 자체가 그 증상의 원인일 지도 모른다고.
 
브리니클에 대한 정보를 듣다 보면, 수중 인류의 입장으로 들었을 때 익숙하거나 눈에 띄는 얘기가 나올지도 모른다고도 얘기했습니다.
 
털어놓다 보면 당신은 잠깐 고민하게 됩니다. 우리가 수중에서 왔다는 걸 이 사람에게도 털어놓아야 할까요?
 
생각이 드는 사이에 유진은 고심하더니 입을 엽니다.
 
유진:손발이 차갑고, 브리니클의 증표가 나왔다...
제가 알기로는 브리니클은 원거리 공격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사람에게 손발이 차가워지는 증상을 발병시킬 수도 없고.
브리니클과의 일절 접촉도 없었는데, 혈액에서 징표가 발견되었다라... 환자와 직접 얘기하는 건 지금으로서는 곤란합니까?
 
시아록:그.. (우물쭈물하다가 노아에게 들리만하게만 작게 속삭였다.) 노아씨.. 대장님은 믿을만 해요..?
 
노아:? (시아록의 물음에 마찬가지로 귀에 입을 댄다.) 네, 브리니클에 대해 제일 잘 아는 게 대장일 걸요. 함부로 정보를 술술 뱉는 분도 아니시고.
 
시아록:(노아의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다가 결심했다.) 저 말씀드릴게 있는데.. 다른 사람한테는 얘기하지 말아주실래요?
아, 노아씨는 이미 이오리씨와 함께 들었어요. (유진을 보며 얘기한다.)
 
유진:함부로 입을 열지 않을 테니 말씀하십시오. (자세를 고쳐 앉곤 얘기한다.)
 
시아록:저.. 사실 그 환자인 슈슈랑 저는 원래 바다, 그러니까 수중세계에서 사는 사람이거든요..
(믿을지 아닐지는 불안하지만 지금까지 많이 도와주었던 노아가 믿을만하다고 하고 도움을 받아야 하니 확실히 털어놓기로 한다.)
그래서 이 병인지 저주인지 모를 걸 풀기 위해서 올라왔어요. 사실 저희는 지상이 모두 멸망한 줄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브리니클이란 것도 어제 처음 알았어요.. 전염되지는 않는 거 같은데.. 바다에서 마린스노우란 게 내린 뒤로 저희 마을 사람들에게 같은 증상이 일어나고 있어요.. 저는 멀쩡하지만요..
(약간 횡설수설하며 설명했다.)
 
수중 세계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증상들. 앞뒤 맥락을 들은 뒤에야 유진은 무언가 알겠다는 눈으로 답합니다.
 
유진:(수중 세계라는 상상도 못한 단어의 등장에 눈이 커지다가도 금세 평정을 되찾는다.) 그건... 놀랍군요. 바닷속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 뿐더러, 브리니클도 나타나지 않았다라.
수중 인류에게 내린 병, 혹은 저주... 수중 세계가 존재한다는 게 사실이면, 그 곳도 멸망을 향해 가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유독 어두운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목소리가 무겁게 바닥으로 떨어진다.)
 
유진은 다시 자세를 고치며, 양 팔꿈치를 책상 위에 대더니 이야기합니다.
 
유진:실제로 먼 과거에, 지상이 멸망한 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때 침몰한 사람들이, 물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진화한 걸지도 모르겠군요.
 
노아:네?!
 
노아도 처음 듣는 이야기인지 의문에 찬 음성이 울립니다.
 
시아록:정말요..? (지상이 멸망했다는 얘기가 실제라니)
 
지상이 멸망했다는 게 정말 헛된 이야기는 아니었던 걸까요?
 
그게 브리니클과 무슨 상관인지 생각하며 들으면, 유진은 말을 마저 잇습니다.

핸드아웃: 과거의 멸망

지상 인류는 먼 옛날 멸망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레지스탕스는 브리니클의 침략과 관련이 있으리라고 추측 중이다.

멸망 이전의 인류는 훨씬 더 발전하고 번영했다. 지금과 같은 작은 도시가 아니라 거대한 국가를 이뤘고 이 땅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과학과 기술, 의학도 현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러나 한 번 멸망한 이후 기록과 유적 대부분이 소실됐다.


우리는 과거의 멸망을 버텨낸, 지상의 남은 인류다.


 
세계니, 멸망이니, 인류니... 모두 조금은 멀게 느껴지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보다 우리가 거창한 존재였음에 놀랐을 지도요.
 
아무래도 브리니클은 하루이틀 인류를 공격한 건 아니었나 보죠. 인류를 한 번 쓰러트리고, 다시 범람하려 하고 있다면.
 
그렇다면... 시아록, 지능 판정.
 
시아록: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91
판정결과: 실패
 
이제야 이해가 갑니다. 어째서 멸망했다던 지상이 이렇게 번화한지.
 
과거의 멸망을 겪으며 지상 인류와 수중 인류로 나뉜 거군요.
 
더 먼 과거의, 멸망하기 전의 지상이었다면 슈테른과 마을 사람들의 병을 고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노아:세, 세상에... (이번만큼은 시아록과 딱 같은 표정으로 조금 벙쪄 있다. 상상도 못 한 정보인 듯.)
하지만 지금까지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였잖아요. 과거에 대한 기록이 전부 소실되어 버렸다면, 이런 정보는 어디서...?
 
시아록:(노아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그런 반응이리라고 예상했는지, 유진은 여상한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유진:브리니클에게서 입수했습니다.
 
무척 예외의 출처를요.

핸드아웃: 브리니클

 

대략적인 상상도

단단한 돌과 철로 만들어진 골렘. 얼음처럼 차가우며 생물과 무생물을 가리지 않고 삼킨다. 삼켜진 것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밤이 되고 달이 뜨면 도시의 경계로 쳐들어온다. 브리니클의 표면은…… 과거를 기록한 석판이다.


 
시아록:어.. (예상치도 못한 대답에 눈이 동그래졌다.)
 
과거의 기록이 남아 있는 유일한 석판의 출처. 살아 움직이는 재앙...
 
점점 알 수가 없어집니다. 대체 브리니클의 정체는 뭘까요?
 
왜 슈테른은 그런 무시무시한 것에 관련되어버린 걸까요.
 
유진:얼마 전에 알게 됐습니다. 그 표면에 적힌 것들이 단순한 무늬나 문양이 아니더군요. 과거를 기록한 석판이었던 겁니다.
상태가 온전하지 않아서 해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전혀 이해할 수없는 내용도 많지만...
일단 현재까지 알아낸 바로는 그렇습니다. 현재 레지스탕스 대원 중 일부는 이것들의 해석과 운용에 몰두하고 있는 중입니다.
비행선 설계법도 석판에 기록돼 있었고요. 과거의, 멸망 전의 인류는 이미 비행선을 개발하고 그 원리까지 자세히 기록해뒀던 겁니다.
...왜 다름아닌 석판에 기록이 남아있으며, 그것이 브리니클이라는 골렘의 형태로 뭉쳐 인류를 공격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아록:석판이.. 브리니클이라니... (너무 예상외의 일이라 얼떨떨했다.)
 
유진:말씀하신 환자분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내용도 현재까지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더 많은 브리니클을 격파하고 석판의 해독에 성공한다면,
어쩌면 돌파구가 보일 지도 모릅니다.
그것 또한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일 겁니다. 원한다면 석판의 파편을 내드리죠.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시아록:네, 감사합니다. (최대한 도움을 주겠다는 말에 일단 고마웠다. 솔직히 믿기지도 않은 말을 했는데 저렇게 침착하게 믿어주고 도움까지 준다고 한다.)
 
당신이 기꺼이 수락하면, 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여러분을 회의실 밖으로 이끕니다.
 
"대장!"
 
따라 나가려는 차에, 어쩐지 다급해 보이는 사람이 한 명 들어옵니다.
 
"안전지대에서 연락이 왔어요. 협상에 관해 용건이 있다는데... 직접 받아보셔야겠어요."
 
낮게 욕을 지껄인 유진은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말하곤 자리를 비웁니다.
 
대장은 참 바쁜 사람인가 봅니다. 이렇게 시간을 내서 대화를 해 준 게 고마워지는군요.
 
한참을 빈 회의실에 남아 있으면, 노아가 소곤거려옵니다.
 
노아:...아까 그랬죠, 지상이 브리니클 때문에 한 차례 멸망했다고.
 
시아록:네, 그러셨죠.
 
노아:그럼 멸망 전 사람들이 남긴, 브리니클의 기원에 대한 기록도 석판에 남아있을까요?
...사실 머리가 조금 복잡해지네요. 석판에, 과거의 기록이라...
음, 그야말로 심해만큼 깊은 유적지에 빠진 느낌이에요. 심오하다고 해야 하나, 막막하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브리니클에 대해서는 많이 알아낸 것 같아요.
 
시아록:그러게요.. 어제는 정신없어서 그게 석판인지도 몰랐는데 말이에요.
레지스탕스 사람들은 대단하네요.
 
노아:대체 누가 그 석판을 짊어지고 와서, 해독할 생각까지 해낸 걸까요...
 
시아록:그러게 말이에요..
 
노아:지금 해독된 내용이라도 빨리 읽어보고 싶네요. 어쩌면 실마리를 발견할 지도 모르고.
 
시아록:다른 것도 중요하겠지만... 슈슈가 얼른 나을 수 있는 방법이 적힌 석판이 얼른 발견되서 해석되면 좋겠어요.
 
노아:수중 인류에게는 그게 제일 중요한 용건이겠죠...
막막하기는 하지만, 희망이 보이는 것 같으니 다행이네요.
그러고보니까 저 회의실은 진짜 처음 들어와봐요. 온통 서류 더미네요...
기밀 문서를 이렇게 함부로 다루진 않을 테니, 살짝 읽어봐도 되려나...?
 
시아록:음.. 그렇겠죠? 대장님도 우릴 두고 간 걸 보면..
 
그러고보면 유진에게서 듣지 못한 정보도 있을 것입니다. 회의실을 한 번 찾아볼까요?
 
간단히 둘러보는 건 괜찮을 텝니다. 살필 만한 건 크게 세 가지입니다. 서류 더미, 하얀 판, 테이블.
 
시아록:(둘러보다가 특이한 하얀 판에 다가갔다.)
 
매끄러운 하얀 판에는 비행선의 설계도와 브리니클의 해부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붉은색으로 표시된 관절이 급소인 것 같습니다.
 
밑에는 작게 추가 설명이 덧붙어져 있습니다. '붉은 관절은 이음새다. 불로 지지면 무너진다.'
 
시아록:브로니클을 무너뜨리는 방법이랑 비행선이구나... (어차피 저걸 혼자 할 수도 없을 터다. 들여다보던 하얀판에서 떨어져 서류더미를 보았다.)
 
바닥에 가득하게 쌓인 서류 더미는 언어가 같아 읽는 데 어려움은 없습니다.
 
하지만 군데군데 낯선 단어가 있네요. 시아록, 모국어 판정.
 
시아록:
언어(모국어)
기준치: 50/25/10
굴림: 4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주 먼 옛날, 인류가 막 도시를 이루기 시작했을 때부터 브리니클은 침략해왔다.]
 
[훨씬 전에는 이 땅의 대부분이 인류의 영역이었다. 지금으로서는 거진 절반이 바다에 잠겨버렸지만.]
 
[이대로 인류는 브리니클과 바다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마는가?]
 
브리니클과 인류에 대한 문서입니다.
 
확실히, 브리니클과 인류의 멸망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게 맞나 보군요.
 
심지어 까마득한 오래 전부터 등장했다니, 둘의 싸움은 제법 오래된 모양입니다.
 
시아록:대장님 말대로.. 브로니클 때문에 멸망한 게 맞나보네..
 
노아:제가 체감하던 세월과는 차원이 다르네요. 이렇게까지 오래 됐다니.
 
시아록:그러게요.. 브로니클은 엄청 오래되었나봐요. 그럼 그 때의 브로니클은 더 오래된 역사가 새겨진 석판이었겠죠.. (확인한 서류를 두고는 테이블을 살폈다.)
 
온갖 종이가 널브러져 있습니다. 브리니클에 관한 정보, 비행선 제작 계획……
 
좀 더 새로운 정보는 없을까요? 시아록, 자료조사 판정.
 
시아록: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60
판정결과: 실패
 
으음... 파도처럼 물밀듯이 떠밀려오는 서류들을 대충 팔로 치워내 봅니다.
 
드러나는 가장 가까이 있는 종이에 익숙한 이름이 보입니다. 이오리.
 
 
시아록:이게 소견서인가...?
유리 크시슈토프... 병명 확인 불가... 콜드 슬립..?
(진단서를 쭉 읽어내리다가 콜드슬립에 어리둥절해졌다.)
 
노아:... 유리 크시슈토프...?
돌아가신 게... 아니었나? (제법 심각한 기색으로 중얼거린다.)
시아록 씨, 콜드 슬립이... 뭔지 아세요? (의아한 얼굴로 물어온다.)
 
시아록:아니요. 저도 처음 봐요. (고개를 내저었다.) 여기 이오리 테일러라고 적혀있는데 여쭤보면 알려주실까요?
 
노아:음, 콜드 슬립이 뭔지도 모르겠지만... 이 치료를 받은 사람도 의문이에요.
유리 크시슈토프, 유리 씨는... 대장의 여동생이거든요.
어릴 때부터 유독 몸이 약하셨어요. 어느 순간 안 보이시기에, 행방을 물으니 돌아가셨다고...
 
시아록:아.. 그래요?
콜드 슬립... 나중에 이오리 선생님한테 한 번 여쭤봐요..
 
노아:후유증 및 불상사 발생 확률... 이라고 했으니까, 적어도 죽이는 건 아니겠죠?
대장은 알고 계실 테니까, 한 번 물어봐야겠어요.
 
시아록:대장님께 여쭤보려고요?
 
노아:네, 이오리씨네 병원은 여기서 조금 머니까...
그리고 여동생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도 궁금하고요. 대장이 이걸 그냥 하지는 않으셨을 텐데...
 
시아록:그.. 좋지 않은 일이라면 안 좋을 거예요.. 아픈 사람이 친한 사람이면 좀..
 
노아:하지만, 전 대장과 오랫동안 아는 사이었으니 물어볼 권리가 있다고요.
혹시 이게, 그... 슈테른? 씨를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는 힌트일지도 모르잖아요.
 
시아록:그.. 그래요. 그럼 좋겠지만..
 
노아는 끄덕이며 서류를 다시 접어 종이 사이에 끼워넣습니다.
 
둘이 한동안 서류 하나를 붙잡고 심각하게 옥신각신하다 보면,
 
유진:가시죠.
 
때마침 다시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유진이 들어옵니다.
 
...조금 고민이 됩니다. 노아는 굳이 물어보겠다는 듯한 눈치지만...
 
혹시 안 좋은 상처를 건드릴 바에야 침묵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노아를 말리는 게 좋을까요?
 
시아록:(아픈 슈슈가 있으니 직접 물어본다는 게 괜히 신경 쓰였다.)
노아씨, 진짜 물어볼 거예요? 이오리씨한테 물어보는게 낫지 않아요? ( 작게 노아에게 속삭였다.)
 
노아:음... 이오리 씨한테 물어보면 좋겠어요? 직접 묻는 게 신경쓰여서 그러시는 거에요?
...어떤 점에서요?
 
시아록:보호자가 대장님일 거 아니에요. 콜드슬립이 썩 좋은 방법이 아니라면 기분이 좀 그럴 거예요..
 
노아:그러니까 더더욱 묻고 싶은 건데요. 썩 좋은 방법이 아니라면 왜 지금껏 은폐하고 있었는지...
...알았어요. 굳이 과거 일을 꺼낼 필요도 없겠죠.
 
노아는 따라오라는 듯 한 번 눈짓을 주더니,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유진을 따라 나갑니다.
 
비석과 과거의 기록, 인류의 멸망, 바다와 지상, 비행선, 브리니클...
 
수많은 정보를 한번에 입수해서인지 머릿속에 복잡하지만,
 
그 덕택에 현재의 지상 인류에 대해 굉장히 많이 알아낸 느낌입니다. 시아록, 교육 특성치 +5. (마스터가 합니다)
 
비석을 파헤치다 보면, 수중 인류의 멸망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나올까요?
 
그건 아직 모르겠지만,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회의실을 떠납니다.
 
과거의 기록
 
유진:시간을 지체시켜서 미안합니다. 석판의 기록을 보여드리겠다고 했었죠. 저를 따라오십시오.
 
유진은 어딘가… 깊은 저 너머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러고 보면, 브리니클에게서 수집한 석판을 보여주겠다 했었나.
 
대체 지상 인류의... 그것도 멸망하기 전 기록이란 어떤 내용일까요?
 
당신은 조금 긴장하며 여러 문턱을 거치고, 옆에 있는 노아와 함께 내부로 진입합니다.
 
그렇게 어딘가로 들어서면, 무언가 가득 들어찬 창고같은 곳을 지납니다.
 
옆에 있던 노아는 이곳이 무기고라고 설명합니다. 대장의 허가 없이 들어올 수 없다는 두 번째 공간.
 
우리는 하루 안에 그 공간을 모두 둘러봤군요. 이 정도면 레지스탕스 견학 한 번 제대로 한 것 같네요.
 
어쨌든 이곳은 알 수 없는 무기들이 가득한 방입니다.
 
수중 인류가 사용하던 죽창에 비하면 다소 연약해 보입니다. 날카로운 날도, 창도 없는걸요.
 
어떤 무기는 오히려 끝은 뭉툭하고, 구멍도 뚫려 있습니다.
 
브리니클은 그토록 거대하고 강인하고... 어떤 공격에도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고 했었는데, 정말 이걸로 이길 수 있는 걸까요?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유진이 선반을 몇 칸 자유자재로 움직입니다.
 
달칵, 덜커덩, 쿵, 탁.
 
집채만큼 커다란 조개껍데기가 여닫히는 것 같은 소리가 납니다.
 
그러면 곧 안쪽의 선반 하나가 드드득, 무거운 몸을 움직여 공간을 엽니다.
 
선반 몇 칸만 움직였을 뿐인데 새로운 방이 또 나타났습니다. 사실 유진도 마법사였던 걸까요?
 
노아도 큰 소리와 신기한 구조에 덩달아 놀랍니다. 무얼 보려주려고 이렇게 깊숙이 데려가는 걸까요.
 
끝없이 펼쳐진 내부로 향합니다. 계속, 계속.
 
선반 안으로 들어가자 쿵. 순식간에 어둠이 내려앉고, 확 불이 켜지더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아까 지하로 내려오면서 탔던 그것처럼요!
 
공간이 마구 덜컹거리는 요상한 느낌을 견디며 도착한 곳에는, 보관실이라는 팻말이 붙어있습니다.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보면, 역시 비범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듯 합니다.
 
얼마나 내려온 건지 천장은 까마득하게 높고, 상하좌우 어디를 둘러봐도 선반이 가득합니다.
 
끝을 모르고 치솟은 선반은 온통... 석판으로 가득차 있고요.
 
마치 은밀한 지식의 보고를 마주한 느낌이네요. 그 장대함에 잠시 숨이 막힙니다.
 
...그래서 어디부터 둘러봐야 하지? 감도 잡히지 않으면 유진히 간략히 설명을 덧붙입니다.
 
유진:이 책상 위에 놓인 것이나, 선반에 놓인 석판을 자유롭게 꺼내 보시면 됩니다.
 
시아록:어, 아무거나요..?
 
유진:보관소의 석판은 크게 세 분류로 갈립니다.
이쪽은 해석이 끝난 거고, 이쪽은 해석 중인 거...
그리고, 저기 놓인 건 해석이 끝났지만 이해할 수 없거나 해석 자체가 불가능한 겁니다. (각각 왼쪽, 가운데, 오른쪽을 가리킨다.)
높은 곳에 있는 석판을 꺼내시려면 사다리를 사용하되, 위험하니 다른 이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시아록:아, 네. 감사합니다.
 
유진:맨 끝, 가장자리 쪽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부위, 보통 머리를 보관합니다.
원래는 잔여물을 갑옷이나 방패로 쓸 방법을 연구하던 건데…… 지금은 보시다시피.
 
유진은 내키는 만큼 둘러보라는 말을 끝으로 가장자리 쪽으로 갑니다. 브리니클의 징표는 주로 머리 부분에 있으니까요.
 
혈액에서 브리니클의 징표가 추출되었으니, 무언가 연결점이 있는지 찾으려는 모양입니다.
 
크게 세 구역의 석판을 둘러볼 수 있겠네요. ...하나하나가 엄청난 크기라 도서관에서처럼 떨어트리면 정말 큰일나겠지만요!
 
시아록:..어디부터 가지.. (보관실을 어림잡아 둘러보다가 아득해졌다.) 그래도.. 해석이 끝난 곳부터 가보는 게 맞겠지?
(유진이 가리킨 왼쪽으로 향한다.)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석판을 들어 보면...
 
이건... 브리니클과 마주했을 때는 긴급 상황이라 몰랐는데,
 
이 석판, 크기도 모양도 아주 익숙합니다. 이거 분명, 도서관에 전시되어 있던 책들이잖아요?
 
어쩐지 비슷하다 했더니, 바다에서도 이런 게 가득했죠.
 
여기에도 수중 마을의 것과 똑같은 게 있다니, 조금 신기한 마음으로 책을 꺼내들면 글쎄요, 내용만큼은 처음 보네요.
 
「바다는 지구 표면의 70.8%를 차지한다. 평균적인 염도는 약 3.5%로 순수한 물과 달리 짠맛을 내며…….」
 
……바다에 관한 설명이 있습니다. 지구가 뭐지?
 
시아록:내용은 전혀 다르네..? 염도?... (석판을 둘러보다가 전혀 모를 단어들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다른 석판도 좀 뒤져볼까.. (주변의 다른 석판도 살폈다.)
 
「한 쌍을 이루는 해와 달. 달은 매일 밤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저 그 빛을 조금씩 파먹히다가도, 또 일정한 주기로 조금씩 차오른다.」
 
「달이 그림자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때를 '보름'이라고 칭하며, 예로부터 인간은 그것을 길한 징조라 여겨 왔다...」
 
달, 이라면 분명 하늘에 떠오르는 창백한 덩어리였죠.
 
내내 하늘에 떠 있으려면 외롭고 힘들 것 같다고, 슈테른과 얘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시아록:(달에 관한 글을 읽다가 괜히 혼자 있을 슈슈가 생각났다. 이오리 선생님이 봐주시더라도 계속 봐줄 수도 없을 거고..) 근데 브리니클에 대한 건 딱히 없네.. 그게 중요한 건데.
하나만 더보고 해석중인 곳으로 가봐야지. (해석된 다른 석판을 들었다.)
 
「그것은 석판을 그 자신의 몸체로 삼는다. 매일 밤 기어올라와서는 모순적이게도 인류의 기록을 심은 몸으로 또 다른 인류의 역사를 함몰시킨다...」
 
「달이 피고 지는 것이 곧 그들의 출몰과 쇠락을 의미함이라.」
 
그 밖에도 역사서처럼 숭고한 말투로, '그것'은 단체 행동을 하지만 소통, 협력하지는 않는다는 내용이 쓰여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이 석판은 모두 인류와 관련된 것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럼 이 많은 석판은 대체 누가 기록한 걸까요?
 
인류는 대체 이 석판을 어떻게 발견했고... 또 그것은 왜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다준 걸까요.
 
수많은 글자가 비망록처럼 형형하고 또 처절하게, 딱딱하고 차가운 석판 위를 지나갑니다. 그것을 쓸고 있으면 몸 속에 의문이 가득차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노아:어떤 내용이에요?
 
복잡한 심경으로 서 있으면 문득 노아가 쭈뼛거리며 다가옵니다.
 
집중하고 있는데 끼어드는 건 미안하지만, 읽고 있는 게 궁금하긴 하다는 눈치입니다.
 
시아록:(작게 한숨을 쉬다가 노아를 쳐다보았다.) 바다가 염도 어쩌고랑 달 이야기랑 마지막에 본 건 브리니클에 관한 거였어요.
다른 건 중요한지 모르겠지만, 마지막은..역사가 새겨진 석판을 몸체로 하는 브리니클이 인류를 멸망시킨다는 이야기와 달이 피고 지는 것이 곧 그들이 출몰과 소멸의 의미한다고 적혀있네요.
달이란 게 지면 브리니클도 소멸했다가 다시 만들어지는 걸까요? (단어를 그대로 받아들여 당신에게 이야기 한다.
 
노아:음... 그건 아마 비유법일 거에요. 브리니클은 꼭 밤에만 나타나니까... 달이 뜰 때쯤 밀려왔다가 해가 뜰 때쯤이면 썰물처럼 빠져나가죠.
왜 밤에만 나타나는지는 몰라요. 브리니클들은 다 야행성이라서 그런가? (머리를 긁으며 이야기한다.)
 
시아록:음.. 아, 궁금한게 있는데..
달이 떠서 브리니클이 오면.. 달이 사라지면 브리니클은 어디로 가요?
거기다 여기 달 이야기에 달이 밤에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져서 그 빛을 조금씩 파먹히다가도 또 일정한 주기로 조금씩 차오른다고 적혀있는데..
그럼 달이 사라질 때도 있어요?
(궁금한 것을 당신에게 와르르 쏟아냈다.)
 
노아:어디로 가냐고요? 직접 본 적이 없어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듣기로는 때가 되면 알아서 바다 쪽으로 돌아간다는 것 같아요.
하지만 아무리 밤이 짧아도, 그것들의 습격을 한 번 받고 나면 도시는 난리가 나죠. (한숨을 쉰다.)
정말 가끔 가다가 있어요. 지구의 그림자가 달과 완전히 겹쳐질 때가... 월식이라고 하는데요.
그 때는 달이 보이지 않아요. 하늘에서 사라지죠. 저도 지금까지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일정 주기로 달이 뜨기는 하는데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을 때도 있고.
 
시아록:그렇구나.. 그럼 그 월식이라는 거 말고, 달이 보이지 않을 때, 그럴 때도 브리니클이 올라와요?
 
노아:월식일 때는 모르겠지만, 달이 보이지 않을 때도 브리니클은 출몰했었어요.
게다가 말이 밤에 나타나는 거지, 꼭두새벽에야 나타날 때도 있고, 아예 초저녁부터 쳐들어오... 아니 침입해올 때도 있어서, 사실상 제멋대로에요.
많은 때에 달이 떠오를 때쯤 나타나긴 하지만.
 
시아록:그럼 규칙도 없네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우리 아직 해석 중인 곳에도 가봐요.
 
노아:해석이 완료된 것보단 확실히 해석 중인 게 곱절은 되네요... 퍽 오래 걸리나. (가운데에 산더미처럼 쌓인, 알 수 없는 언어를 늘어놓은 석판을 들여다본다.)
 
「■의 위엄에 대항하려면 그에 합당한 마■을 지불해야 한다. 그 위엄의 ■%에 달해야 ■■ 조건을 충족하며, 마음을 부추기기 위해서…….」
 
알 수 없는 이야기가 쓰여있습니다. 이론적이고 교과서적인, 딱딱한 내용이네요.
 
시아록:해석이 쉽진 않겠죠.. (해석중인 석판을 들여다보지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건 실생활에는 영 쓸모가 없죠. ...음?
 
이 글, 무언가 위화감이 드네요... 그냥 착각인가? 지능 판정입니다.
 
시아록: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6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 맞아요. 이 말투, 무언가 익숙합니다.
 
이런 줄글 형식, 수중 마을에서 교과서처럼 배우던 내용과 완전히 같잖아요.
 
후대에 전달하기 위해 누군가 기록해둔, 가르침보다는 일종의 선언문 같은 내용.
 
온갖 주문이 주를 이루었고, 지금 알고 있는 마법도 이런 석판에서 배웠습니다.
 
...글자가 부식되어 있어서, 완전히 습득하지 못하는 게 흠이네요.
 
시아록:마법같은 걸 설명해둔 걸까...?
(혼자 작게 중얼거렸다.)
 
노아:마법이라면 전에 말했던 그거 말이에요? 수중 인류만 쓸 수 있다던...
...거창한 건 못 한다더니 언뜻 보기에도 엄청 거창해 보이는데요...
 
시아록:네에.. (노아에게 작게 얘기했다.) 이런 거.. 바닷속에도 있는데, 석판에 적힌 글씨 말투?가 비슷해요.
아니에요. 진짜 거창한 건 못해요.
 
노아:바닷 속에도 이런 게 있다고요?!(놀란 나머지 목소리를 높였다 황급히 속닥인다.) 그럼 이 마법도 쓸 수 있어요?
 
시아록:음. 글자가 다 제대로 적힌 게 아니어서..
못할 거 같아요..
 
노아:...그 말인즉슨, 수중 인류도 이런 석판을 본 적이 있다는 거네요.
아, 하긴. 수중과 지상으로 인류의 서식지가 갈렸다고 했으니까... 그 문명의 잔해인 석판이 바닷속에도 있을 만 하네요.
 
시아록:그렇겠죠?
 
노아:아직 못 써요? 글씨가 더 온전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다른 것도 볼까요?
 
시아록:이건 못 쓸 거 같아요. 네, 다른 것도 한 번 살펴봐요.
 
책상 위에 놓인 다른 석판을 드르륵, 꺼내어 봅니다.
 
「빛이 있으라! 빛이 ■으라! ■이 있으라!
 
■■이자 끝이여, 문명의 ■■이자 소■이여, 질서이자 ■■이여!
 
나 몸을 던져 그대에게 닿으리.」
 
「■■ ■■■의 입김께서 지■에 당도하시는 그 날, 모든 ■■에 축복 있으라.」
 
...오, 이건 정말로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네요.
 
무언가를 열렬히... 찬미하는 것 같은 내용입니다. 보고 있으면 머리가 조금 울리는 것 같아요...
 
시아록:...(피곤한 듯 고개를 내저었다.) 이건 마법은 아니에요.. 뭔가 좀.. 기분 나쁜 거 같기도 하고..
 
노아:읽고 있으면 좀 어지럽기도 하고... 누군가가 남긴 기록에게 이런 말 하는 건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기분 나쁜 내용이네요, 그렇죠?
 
시아록:그러게요... 진짜 이상한 내용이고요.. 이건 저리 좀 치워둬요.. (멀리 석판을 밀어버렸다.) 다른 거나 하나 더 볼까요?(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화는 곧 생명의 몸부림. 껍■을 깨고 ■■를 갈망하는 어린 것의 ■악.」
 
「또는, 판■라의 상자. ■■가 그것을 열었다.」
 
이번에는 아주 짧고, 그래서 더 모르겠는 글입니다.
 
읽다 보면 문득 지쳐버릴 지도요. 작은 글씨를 읽느라 눈은 아픈데, 읽어도 원체 뭔 소리인지 모르겠으니.
 
시아록:음.. 무슨 말인지 이것도 모르겠네요. 진짜 다 해석이 되어야 하나봐요.
해석이 안 된 곳도 가봐야 할까요,
 
노아:해석이 다 끝나도 무슨 말인지 모를 것 같은데...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온통 복잡한 내용으로만 가득 차 있다.)
음... 해석이 끝났지만 이해할 수 없는 거면 적어도 이것보단 읽을 만하지 않을까요? 글의 보존 상태 자체는 좋을 테니까...
 
시아록:음.. 그럴까요?
그럼 그냥 한 번 다 둘러봐요.
 
노아:안 읽는 것보단 뭐든 읽어두는 게 좋죠. 좀 복잡하긴 해도, 이런 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 건 정말 흔치 않은 기회니까.
생각지도 못한 단서가 숨어있을 지도 모르잖아요. (몸을 돌려 오른쪽 구역으로 가 본다.)
 
시아록:그래요. (고개를 끄덕이고 노아를 따라 오른쪽 구역으로 향한다.)
 
「차갑고, 어둡고, 희고, 축축한 것.
 
아무것도 없는 것. 땅에 내리는 재앙.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
 
시작. 원초의 시대. 영원한 손실. 무無로 회귀하는 것.
 
태어난 것이 멸망을 가져오고 죽은 것이 저주를 내린다.
 
인류가 자초한 재앙.」
 
이건... 뜻밖에도 익숙한 문장입니다. 도서관에서 읽은 그 글줄이네요.
 
시아록:똑같은 글이네요.. 저 이거 저희 마을 도서관에서 봤어요. 근데 무슨 말이지는 여전히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
 
노아:네? 정말요? 똑같은 내용의 석판을 찾아내다니, 이건...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요?
...유감이네요... 저도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시아록:그러니까요.. 자주 봤지만.. 하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일단 바다에도 똑같은 게 있다는 게 중요한 거겠죠?
다른 석판도 좀 볼까요?
 
노아:음... 땅에 내리는, 인류가 자초한 재앙......?
재앙이라면 브리니클을 말하는 걸까요? 이 땅에서 재앙과 가장 밀접한 게 바로 그것인데.
...이래서 해석이 안 된다는 거였구나. 뭐라고 설명 좀 더 써달라고... (머리를 감싸쥐며 바로 옆의 석판을 끌어다본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갈수록 극한에 치닫는다. 가장 깊은 곳에 가장 귀한 것이 몸을 숨기고 있다.
 
인류는 깨닫는다. 달콤한 선악과. 미혹과 향락의 과실...
 
그러나 도외시해서는 안 되리, 끝을 모르는 탐욕은 언젠가 그만한 절망을 가져올 것이다.」
 
가장 깊은 곳에 가장 귀한 것이 있다. 이 말은 수중 마을에서도 그럭저럭 통용하는 법칙입니다.
 
그야 포악한 거대 물고기들의 동굴을 뒤져도 안쪽으로 들어갈 수록 좀 더 귀한 것이 나오고, 희귀한 것은 전리품이라며 비싸게 팔렸으니까요.
 
대개는 고작 비늘이나(하지만 몸이 워낙 커서 비늘도 손바닥만 했죠) 잡다한 쓰레기, 먹다 남은 뼈나 잔해가 전부였지만,
 
간혹가다 다시 볼 수 없는 예쁜 돌이 나와서, 저도 모르게 눈을 뗄 수 없었던 때가 있었죠.
 
...하지만 뒤의 설명들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인류랑 과실이랑 대체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건지.
 
노아:이건...
채굴에 대해서 쓴 걸까요? 탐욕스런 사람들이 꼭 갱도를 파헤치곤 하니까.
 
시아록:채굴?
그게 뭐예요?
 
노아:모든 땅 아래가 그런 건 아닌데, 지하에는 간혹 귀중한 보석이나 석유같은 천연 자원이 묻혀있기도 하거든요.
진주처럼 조개가 만들어내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보석이 땅에서 돌을 캐면 나와요.
그리고 보통은, 더 깊게 묻혀있는 보석이 훨씬 희귀하고 예뻐서 사람들은 끝도 없이 아래를 파헤치곤 하죠.
탐욕에 눈이 멀어 아주 깊숙이까지 들어갔다가 다시는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어쩌면 그런 사람들에게 충고하는 내용일지도.
 
시아록:와.. 땅에서 돌을 캐면 보석이 나와요? 신기하네요. 저희 마을에도 비슷한 의미가 있긴 한데요. 거대 물고기 동굴의 안쪽을 살피면 희귀한 게 많다고요. 근데, 그런 물고기들은 워낙 포악해서 아무나 들어갈수도 없고, 들어가도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걸까요. (가만히 눈을 깜박이다가) 그런 거 같기도 하네요.
 
노아:아...! 우리랑 제법 비슷하네요. 하긴 바다는 정말 미지의 영역이고, 우리보다는 개척도 덜 되었다고 했으니까... 동굴을 탐사했다가 무언가 발견하면 보물이라고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닐지도요.
지상 인류, 수중 인류 가릴 것 없이 전부 관통하는 말 같은걸요... 탐욕에 눈이 멀지 말라고.
심오한 내용이었어요. 여기 석판이 안 그런 게 더 드물긴 하지만.
 
시아록:그러게요.. 다 약간 말을 꼬아둔 거 같고...
다른 석판 하나 더 챙겨봐요. (주변의 다른 석판을 살폈다.)
 
「하늘이 무너져내리던 날, 만물이 움틀대는 혼돈으로 뒤덮였다.」
 
「그것을 보시더니 신성한 자들이 우리를 가엾게 여겨 시꺼먼 혼돈을 한 데 넣어 봉인하더라.」
 
무언가의... 계시록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신성한 자' '혼돈' 등의 단어를 보면, 창세기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시아록은 계시록이나 종교를 모르겠지만)
 
하늘이 무너져내리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어쩐지 큰일이 날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떠받드는 한 하늘은 내려앉지 않는다고 하니, 그걸로 괜찮지 않을까요.
 
시아록:하늘은 무너져내리는 거예요? (석판을 읽다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노아를 쳐다봤다.)
 
노아:어......... (제일 난해한 내용을 만나자 고민이 길어진다.)
이것도 아마... 비유법이 아닐까요? 아니면 특정 종교의 창세기를 다루고 있다거나...
하늘이 갑자기 무너질 일은 없어요. 그것도 나름 자기만의 힘으로 버티고 있는 거라...
 
시아록:종교가 뭐예요?
 
노아:...근데 이런 내용이 왜 석판에 남아 있지...?
 
시아록:하늘이 안 무너진다면 다행이지만요..
 
노아:아, 절대적이거나, 초월적인 존재를 믿고 숭배함으로써 삶의 진리나 방향 같은 걸 서로서로 이끌어주는 문화를 종교라고 해요.
인류가 아직 과학으로도 밝혀내지 못하는 것에는 그런 초월적인 존재가 개입했다고 믿기도 해서, 각 종교마다 보통은 창세기가 있어요. 우리는 아직 지구와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르니까...
우리는 이해할 수 없더라도 강대한 힘을 가진 존재가 세상을 만들었다고 보고 그 과정을 설명한 걸 창세기라고 하거든요. 이건... 꼭 그것의 한 종류 같기도 하네요.
 
시아록:(뭔가 엄청난 말에 멍하게 당신의 말을 들었다.)
 
노아:보통 아무것도 없는 폐허나 멸망을 겪은 잔해에서 새로운 세상이 탄생하니까... (우리 지상 인류도 그렇고요, 라고 덧붙인다.)
하지만 그렇다면 의문인 게, 특정 종교의 교리가 왜 석판에 있느냐는 거죠.
...아닌가? 다 제 착각일까요? 아, 정말 하나도 모르겠어요. 이 석판들... (책상 위에 쓰러지듯 양팔을 턱 얹는다.)
 
시아록:그 종교라는 곳에서 석판을 만들었다고 해도 그게 브리니클이 되는 건 이상한 일이겠죠..? (그냥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그냥 내뱉었다.)
근데 우리가 배웠던 마법에 대한 내용도 있으니까.. 말이 안 되는 거겠죠..
 
노아:그렇죠. 단순히 종교 관련 내용은 아닌 것 같아요. 비슷하긴 해도...
 
시아록:그렇죠.. 진짜 뭘까요. 이게...
 
노아:머리가 복잡하네요... 기록해둘 거면 좀 친절히 설명해주지, 이게 무슨 소리람... (끄으응, 소리를 내며 주저앉다가도 일어난다.)
음, 결국 당장의 소득은 브리니클에 대한 것밖에 없었네요.
움직일 때의 목표는 같지만 서로 협동은 하지 않는다라... 레지스탕스 전술에 반영하면 큰 도움이 되겠어요.
 
시아록:그러게요. 그건 지상에 도움이 되겠어요.
아까 그 브리니클 머리가 있다는 곳에 같이 가보지 않을래요? 거기에 그 브리니클 증표같은 게 새겨져있다니까 한 번 보고 싶어요.
 
노아:아, 그 마법도요. 도움이 되려나 모르겠지만, 나중에 해석이 끝나면 다시 둘러봐요, 대장한테 졸라서... (조를 틈도 없이 바쁘신 게 흠이지만, 이라고 덧붙인다.)
좋아요. 마침 대장도 불러와야 하고. (유진이 걸어갔던 구석으로 간다.)
 
구석에는 기록이 남지 않은 딱딱한 머리들만 남아 있습니다.
 
하나하나 시뻘겋게 빛났을 핵은 회색으로 시들어 있고, 그 가운데에 복잡한 무늬가 떠올라 있습니다.
 
얼핏 보면 부채산호처럼 보이는 그것은 눈 결정 모양이랬던가요.
 
슈테른의 혈액에서도 꼭 저런 모양의 입자가 있었습니다... 만, 역시 아직 모르겠어요. 브리니클에게 무슨 짓을 당해서 슈테른은 얼어가고 있는지.
 
애초에 슈테른과 그 많던 마을 사람들은, 브리니클에게 공격당하긴커녕 마주친 적도 없었는데.
 
그런데도 둘 다 눈 결정을 품고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는 점만이 닮았습니다. 불현듯 병상에 앉아있던 그가 떠오릅니다.
 
지금쯤 잘 있을까요? 이오리의 치료가 효과가 있을까요? 걱정이 됩니다.
 
박물관에 온 사람처럼 브리니클의 머리 부분을 살피고 있으면 유진이 다가와 얘기합니다.
 
유진:원하는 만큼 둘러보셨습니까?
 
시아록:네, 둘러봤어요. 근데 역시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둘러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진:이 곳에서의 정보가 환자분을 치료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잠시 제 손목을 살피더니) 곧 달이 떠오를 시간이니 이만 안전지대로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밤이 되면 곧 브리니클들이 바다에서 몰려온다고 했던가.
 
시아록:감사합니다.. 벌써 달이 떠오를 시간이구나..
 
짧은 조사였지만, 이것만으로도 수많은 정보를 얻었습니다. 시아록, 역사+5 교육+5.(마스터가 합니다)
 
약간의 긴장감을 안은 채,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갑니다.
 
지상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 당신은 생각합니다.
 
이 지상에서 맛보는 수많은 지식들을 슈테른도 같이 접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얼마간은 슈테른과는 정반대로 쓴맛을 입에 머금고 있었습니다.
 
Good night, See you again
 
도시의 밤. 머리 위로 창백한 달이 뉘엿뉘엿 떠오릅니다.
 
사위가 어두운 것도, 밤의 추위도 이제는 익숙합니다. 걸쳐진 옷이 두꺼워 끄덕도 없는 걸요.
 
당신은 석판의 감촉을 상기하며 노아를 따라 기지 밖으로 나옵니다.
 
작고 반질반질한, 그저 눈처럼 차가운 돌.
 
그 브리니클의 것이라기엔 자그맣고, 부서져 있던 것들.
 
알 수 없는 일투성이에요.
 
멸망한 줄 알았던 지상은 생존자가 치열한 전쟁을 이어가고 있고,
 
저주의 근원이라 생각했던 얼음 공주는 한낱 돌조각에 불과하다니.
 
정말 비석들로 슈테른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걸까요? 의구심이 듭니다.
 
노아는 자연스럽게 앞장서서 걷다가 문득 묻습니다.
 
노아:병원에 들릴 거죠?
 
시아록:네, 들릴 거예요.
 
노아:병원으로 가려면 지름길이 따로 있으니까... 좀 좁은 골목이긴 해도 절 따라오세요.
이제 곧이니까.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브리니클이 침입해 오기까지, 그리고...
...
 
노아를 따라 다시 찾은 이오리네 병원은 어쩐지 아까보다 훨씬 바빠 보입니다.
 
별로 환자도 없는데 간호사들이 장부를 체크하고, 의료기기를 옮기고,
 
미리 붕대며 치료제를 준비해놓고 복도에까지 간이 병상을 세워둡니다.
 
이오리:곧 붐빌 거야. 병실이 부족해서 방문 앞까지 침대를 놔도 꽉 찰걸.
브리니클이 오면 사상자도 같이 오니까. 오늘은 환자가 적었으면 좋겠다, 라고 매일 바라는 게 우리들 일상이지.
 
시아록:아...
(브리니클을 떠올리니 입술이 꾹 다물립니다.)
 
이오리는 팔짱을 끼며 주변을 돌아보더니 우리를 맞아줍니다.
 
이오리:좀 바쁠 때긴 해도, 아직 경보는 안 울렸으니까 괜찮겠지...
갑자기 천장이 흔들려도 놀라지 마렴. 바로 위에 브리니클이 지나가면 좀 흔들리는 편이야.
대피해야 할 정도는 아니니 걱정은 말고. 
 
시아록:네.. 저 슈슈한테 가봐도 괜찮을까요?
 
이오리:친구를 보러 온 거니?
슈테른이라면 저쪽 방에 있단다. 다만 조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이오리의 말에 머릿속이 다시금 쿵, 쿵 울리기 시작합니다. 마음 속에도 브리니클이 온 것처럼 머리가 차가워집니다.
 
노아와 당신을 병실로 안내하며 이오리는 말을 잇습니다.
 
이오리:치료제도, 응급처치도 듣지 않는다. 신체상의 원인이 보이지 않는 건 여전하고. 마땅히 듣는 치료제조차 없는데 맥박은 계속 떨어지고 있어.
결국 할 수 있는 건 사과밖에 없어서 미안하구나. (똑똑, 방 문을 노크하더니 끼익 열고 들어간다. 문틈으로 싸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다시 찾은 병실. 여전히 침대 밖으로 나오지 못한 슈테른이 누워 있습니다.
 
누가 찾아왔는지도 모르는지 눈은 감은 상태입니다.
 
이오리:슈테른, 일어나 보렴, 친구 왔다.
 
하지만 이오리가 어깨를 흔들어도 그는 미동이 없습니다.
 
손발은 여전히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 있고, 얼굴은 바싹 마르고 질려서는 생기라는 걸 찾기가 힘듭니다.
 
...자는 거겠죠? 황급히 확인해보면 숨은 멀쩡히 쉬고 있습니다.
 
사람 놀래키지 좀 말라고 해 주고 싶은데 눈을 뜨지 않습니다.
 
시아록:슈슈?
(작게 당신을 불러본다.)
 
이오리와 당신이 아무리 불러도, 그는 오랫동안 눈을 뜨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기다린 만큼이나, 아주 오래.
 
두 눈이 움찔거리는가 싶더니 금세 열린 것은 한순간이었습니다. 천천히 일어나는 몸을 새하얀 환자복이 덮고 있습니다.
 
슈테른:... ... 시아록...? (방금까지 꿈나라에 빠져 있었는지, 초점이 흐릿하고 목소리는 잠겨 있다.)
 
시아록:응, 나야. 자고 있었어? (당신의 침대 옆에 앉아서 당신을 들여다본다.)
 
슈테른:(멍하게 고개만 끄덕인다.) ...음, 지금 언제에요? 정신없이 자서 잘 모르겠는데...
 
시아록:레지스탕스 본부에 다녀와서 바로 왔어. 얼마 안 지났어. 몸 많이 안 좋아? (걱정어린 목소리가 당신에게 닿았다.)
 
슈테른:아, 레지스탕스. 브리니클... 에 대해서 알아보러 가셨었죠. 많이 찾아봤어요?
아뇨, 괜찮은데 조금... 졸려서... (고개가 힘없이 고꾸라진다. 침대 등받이에 힘없이 기댄다.)
 
시아록:으응.. 브리니클에 대해선 다 알아봤는데..
많이 졸려? (걱정된다는 듯 네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침침했던 시선에 빛이 돌아오며, 그는 바늘이 관통한 손으로 앉은 자세를 조금 옮겨 당신과 마주보게 앉습니다.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네요. 이런 사람 앞에서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요,
 
아직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고...
 
슈테른:어떤 게 있었어요? 저도 같이 가고 싶었는데, 한동안 무조건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콜록, 콜록.
 
시아록:응 푹 쉬어야지..
 
슈테른:으음... 졸린 건가? 모르겠어요. 멍해요... 잠이 덜 깼나 봐요. (자꾸 힘이 빠지려는 몸을 일으켜세운다.)
 
시아록:이것저것 많이 알아왔어. 브리니클이 옛날 역사가 적힌 석판인 거랑 거기에 적힌 걸 해석하고 있더라 거기서..
아니야, 조금 더 누워있어. 일어나려고 안 해도 돼. (당신을 다시 침대에 눕힌다.)
 
슈테른:그렇구나, 브리니클이... ... (말이 좀처럼 길게 이어지지 못하고 끊기거나 느릿느릿해진다.) ... 해석된 건 어떤 내용이었어요?
석판... 우리 도서관에도 많았는데. 잡아 옮기려면 무거웠겠네요...
 
시아록:맞아. 우리 도서관에 있던 거랑 똑같은 것도 있었어..
 
슈테른:...저 지금 누으면... 잠들 것 같아요. 시아록이랑 더 얘기하고 싶은데...
 
시아록:음.. 그래
그래도 너무 버티고 있지는 말아.
 
슈테른:네... (쓰다듬는 손에 머리를 맡기곤 스르륵 눈을 감는다.)
 
시아록:(당신을 보며 한숨을 참으며 입술을 말아물었다.)
 
슈테른:(몇 번을 더 콜록이더니, 이오리에게 시선을 돌린다.) 선생님, 저 더 자도 될까요?
... ... 수 있을까요? (웅얼대는 발음이 삑삑거리는 바이털 사인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이오리:...그래, 우선은 푹 쉬렴. 또 일이 있으면 깨워 줄게.
환자가 쉬고 싶다니까 일단 일어나자꾸나. (둘을 데리고 병실 밖으로 나온다.)
 
시아록:(이것저것 얘기해주고는 싶지만 너무 피곤해보여서 이오리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불을 끄고 침대 앞에서 일어나려니, 어쩐지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습니다.
 
척 보기에도 상태가 좋지 않아 보입니다. 아픈 몸으로 뭍까지 강행군을 견디느라 더 쇠약해졌던 걸까요?
 
물에서는 그렇게 반짝이던 슈슈가, 죽은 산호처럼 창백해져서 침대에 누워있는 걸 보면 어쩐지 목이 매이는 것 같습니다.
 
이오리는 당신을 진료실로 끌고 오더니, 손을 잡고 얘기합니다.
 
이오리:...솔직히 말하자면, 정말 힘들 수도 있어.
깨어있는 슈테른을 보는 게 오늘이 마지막으로 될 지도 몰라. 활력 징후도 바닥을 기고 있고.
치료제가 없다면... 하다못해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벌 수는 없을까.
 
시아록:.. 어떻게 하면 슈슈가 괜찮아질까요? 브리니클을 보러 갔다왔는데.. 너무 알 수 없는 말만 가득했어요....
 
이오리:(의사로서 시름이 이만저만이 아닌 듯 얼굴을 덮고 한숨을 쉰다.)
레지스탕스에서도 별 말이 없었니? 아니면, 석판에도 별 말이 쓰여 있지 않아서겠구나.
지상 인류는 할 수 있는 걸 다 했어. 그런데도 저런 상태면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는데...
정말로 다른 방법은 없었니?
 
시아록:달이 뜨면 브리니클이 떠오른다는 거랑..
브리니클은 예전부터 나타나서 계속 인류를 멸망시켜나간다고 했었고..
해석 중인 건 제대로 말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해석이 안 된 것 중에 저희 마을에 있던 거랑 똑같은 게 있었어요.
그리고 아래로 아래로 깊숙한 곳에 귀중한 게 있다고 적힌 것도 있었는데.. 치료제가 거기에 있을까요?
노아씨가 종교? 라고 한 것의 말 같은게 있다고도 했어요..
 
이오리:그래, 열심히 찾아봤구나. (손을 모은 채 한동안 생각에 잠긴다.)
 
시아록:확인해볼 수 있는 건 다 봤어요.
머리는 글이 적혀있지 않다고 하던데..
 
이오리:안타깝지만. 그 정보 중에서 치료책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지금 치료제를 찾기엔 너무 늦었고, 종교의 힘을 빌려도... 아니, 무엇을 해도 나아질 거라고 장담을 못 하겠구나.
...정말 그것뿐이니? 레지스탕스에서 말해준 것은.
 
노아:...둘 다 왜 그래요?
 
노아는 답답한지 갑자기 사이를 가로막고는 얘기합니다.
 
노아:전 알아요, 유리 씨가 더 이상 레지스탕스에 안 나오기 전까지 꼭 저랬었어요. 이오리 씨도 알잖아요, 전담 의사였으니까.
 
시아록:아.. 맞아.. (브리니클 생각만 하다가 잊었다.)
 
노아: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면 늦는다고요. 치료제는 없어도 일단 뭐든 해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지금 한숨쉴 때가 아니잖아요.
 
시아록:그.. 갑자기 생각난 건데.. 진단서를 하나 봤어요.
유리씨 동생에 대한 거라고 하던데, 콜드슬립은 뭐예요?
 
유리 크시슈토프, 진단서, 입원... ...
 
어지러운 기억 사이에서 그 단어를 꺼내면, 이오리는 무심코 숨을 삼킵니다.
 
이오리:...봤구나, 그 서류.
그래, 노아 말대로 지금은 앉아서 좌절할 때가 아니지.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니까...
...설명해줄 테니까 잘 들으렴. 지금 저 아이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건 너희뿐이야.
 
시아록:네..
 
이오리:콜드 슬립은…… 말 그대로야, 냉동 수면.
살아있는 사람을 얼려서 보관하는 거지.
 
시아록:그게 가능해요?
 
이오리:브리니클의 석판에서 알아냈어. 그렇게 만들면 생체 활동이 완전히 멈춰서, 늙지도 병이 진전되지도 않고 얼어붙은 채 영원히 잠들 수 있어..
현대 의학으로 도저히 치료할 수 없는 환자에게 제안할 수 있는 방법이야. 하지만...
 
이오리는 무거운 숨을 뱉더니 입을 엽니다.
 
이오리:유리가 콜드 슬립에 들어가고 난 뒤, 한 번도 유진이 웃는 걸 본 적이 없어.
 
시아록:..그거 괜찮은 거예요?
 
이오리:생각해 봐. 잠들었다곤 하지만, 우리가 깨우지 않는 한 일어날 수 없어.
대화를 나눌 수도, 손을 잡을 수도, 인사를 할 수도 없지.
치료법이 언제 개발될지도 미지수지. 슈테른을 콜드 슬립 장치에 넣는 건 정말 유예책일 뿐이야.
만약 네가 죽을 때까지 치료법을 찾지 못하면...
... 네 손으로 직접 보내야 할 지도 몰라.
 
시아록:...
 
기약 없는 일방적인 기다림.
 
치료법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깨어날 수 없다니, 그건 대체 얼마나 긴 시간일지.
 
노아도, 당신도 깨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유리가 죽었다고 거짓말한 이유를.
 
눈을 깜빡이지도, 무언가 먹고 마시지도, 웃고 떠들 수도 없이 그토록 오랜 시간을 그저 잠든 사람을……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슈테른이 잠든 사이에도 당신은 계속 자랄 테고, 뒤처지기 시작한 시간은 다신 따라잡을 수 없을 겁니다.
 
영원한 간격을 남기겠죠. 그 지워지지 않는 틈은 맞물리지 못하고 삐걱거려,
 
둘의 사이에는 금이 생길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정말 치료법을 개발해서 그를 되살리면,
 
슈테른은 정말 기뻐할까요? 모두가 고생해서 지탱해준 자신의 목숨을 보고서?
 
속이 마구 울렁이며 안에서 울컥거리는 무언가가 빠져나올 것만 같습니다.
 
마지막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왜 뭍까지 올라왔는데. 슈테른을 구하려고, 함께 돌아가려고,
 
뭍에는 방법이 있다고 해서 그런 거였는데…… 아직 아무것도 해보지 못했는데.
 
시아록:.... 제가 할 수 있는 게 더 있어요? 레지스탕스 건물에선 별로 못 찾은 거 같아요.. 다른 방법이 있으면 찾아보고 싶어요.
아니면 나중에 브리니클이 올 시간에 나가보는 게 좋을까요?
 
복잡한 심정으로 뭐라도 찾아보려 몸을 일으키면, 이오리의 손목에 달린 팔찌 같은 게 울립니다.
 
이오리:호출이야. 슈테른이 우릴 부르고 있구나.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생긴 모양이야. 가 보겠니?
 
시아록:아, 네...
 
무력감과도 닮은 감정 속에서 허우적대며 당신은 걸어갑니다. 숨이 조금 막혀오는 게, 약을 삼키지 않고 뭍 밖으로 나오면 꼭 이런 느낌일까요.
 
병실에 다시 들어가면, 콜록대는 소리가 여러분을 맞이합니다.
 
병실 안을 맴도는 긴장감이 담긴 침묵 사이를 삐, 삐, 삐... 검은 배경에 초록색 선이 가로지르고.
 
이오리:괜찮니?! 정신 차려, 일어나 보렴!
 
경보 소리와도 비슷한 음이 급박하게 울립니다. 마치 정말 얼마 안 남았다는 것처럼.
 
뭐라도 더 해 보고 싶은데, 위로는 이미 브리니클들이 몰려왔을 것이고...
 
게다가 당신은 압니다. 더 이상 레지스탕스에서 찾을 수 있는 건 없을 거라고.
 
슈테른:(두 눈이 힘없이 뜨인다. 얼굴에는 방금 전과는 달리 잠의 기색은 조금도 없다. 지금의 그는 졸리다기보다는, 눈을 뜰 힘이 없는 것 같다.)
 
시아록:(어느 때부터인지 모르지만 숨이 한참 멈추었다가 슈테른이 눈을 잠시 뜨고 나서야 깨달은 듯 그제야 저도 호흡이 돌아왔다.)
슈슈.. (당신의 이름을 부르지마 한참 작은 목소리가 어느새 옅게 쉬었다.)
 
슈테른:... ... (손을 더듬어오더니 꽉 잡는다. 놓지 않을 것처럼 강한 힘이 들어가다가도 어느새 금방 풀려 버린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혹은 못 하는 그를 보면 당신은 깨닫습니다.
 
수중 인류는 특히나 본능에 강합니다. 조금만 달라져도 그 기색을 금방금방 알아차리죠.
 
그런 수중 인류가, 떠날 때를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지금, 그는 건네려는 걸지도 몰라요. 마지막 남은 힘을 끌어모아서,
 
마지막 인사를.
 
방금 전까지는 뭐라도 해야만 한다는 욕구가 치솟았는데, 이렇게 약해진 그를 눈 앞에 두니 이제는 뭘 하면 좋을 지 모르겠습니다.
 
머리가 새하애지는 것 같아요. 눈 앞이 흐릿해지더니 어느새 무언가 흘러내립니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작별 인사 대신 할 말이 있습니다.
 
눈 앞의 그에게 콜드 슬립에 대해 얘기할지, 이대로 다시 눈을 감겨줄지는 당신이 선택할 일입니다.
 
시아록:(한참을 말을 잇지 못하다가 슈슈가 누운 침대 머리맡에 무릎 꿇고 앉아 당신과 얼굴을 맞대었다.) 슈슈, 내가 ... 내가, 치료법 찾아올테니까, 잠시만 잠들어 있을래? 그렇게 자고 있으면 너무 추울 거란 거 아는데, 내가 금방.. 금방, 알아올게. 괜찮을까?
 
슈테른:(팔을 겨우 움직여 목을 감싸안는다. 피부 위로 이제는 익숙해진 창백한 체온이 스친다.) ... 괜찮아요.
 
시아록:추운 거 싫을 텐데.. 미안해. (당신을 마주 끌어안고 자겍 속삭였다.)
 
슈테른:둘이서, 신기한 장치를 고향에 가져가보기로 했잖아요. ... 그럼 리키 씨나... (작은 목소리였지만 제일 가까이 있는 당신에게는 닿았다.) 아니면, 마을 사람들끼리 힘을 합쳐서 우리도 같은 걸 만들 수 있을 지도 모르고...
...그리고 생소하고 어지러운 게 잔뜩 있는 거리를 걸으면서, 바다에는 없던 것도 입어 보거나 먹어 보고...
그리고, 저주를 풀 방법을 찾으면... 같이 가자고 했잖아요. 집에.
 
시아록:응.. 맞아. 그렇게 하기로 했어.
 
슈테른:(당신의 어깨에 얼굴을 묻으면, 옷이 젖어든다.) 전 괜찮아요. ...말했잖아요, 몇 번이나... 괜찮다고...
 
시아록:나을 수 있는 방법 내가 얼른 찾아올게. 지상 구경도 하고, 이것저것 먹기도 하고 입어보기도 하고.. 나중에 마을에 쓸 수 있는 것도 찾아보고.. 그렇게 하자..
 
슈테른:몸은 평소보다 추웠지만, 그럴 때마다 시아록이 계속 옆에 있어줬으니까 전 괜찮았어요.
그러니까 많이 차가워져도, 괜찮을 거에요.
저 때문에 마음껏 둘러보지도 못했으니까, 다 나으면... 다 나으면 좀 더 멀리까지 가 봐요. 지상 세계는 넓고, ... 저 너머에 아직 우리가 모르는 게 잔뜩일 테니까...
 
시아록:응, 그렇게 하자. 나도 네가 빨리 낫게 치료법 찾아올게..
 
슈테른:... 방법이 없는 거죠. 계속 아무것도 못 해서... 미안했어요.
...제가 깊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도, 옆에... 있어줄 거에요?
 
시아록:당연하지! 옆에 있을 거야.
 
슈테른:그거면 됐어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당신을 껴안는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조금 더 강하게.)
많이 보고 싶을 거에요, 그렇죠.
...이오리 씨, 시아록이 말한 거, 콜록.
저는 괜찮으니까, 뭐든 해 주세요.
 
이오리는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했는지, 무거운 표정으로 슈테른의 침대를 옮겨 병동 안쪽의 어딘가로 데려갑니다.
 
복도의 안쪽으로, 안쪽으로 들어가면, 가장 구석진 방에는 이상한 기계가 있습니다.
 
투명한 유리와 차가운 철로 만든 원형 캡슐.
 
처음 보는 기기를 조작하며 이오리는 묻습니다.
 
이오리:정말 괜찮겠어?
 
묻는 목소리가 먹먹합니다. 콜드 슬립은 치료 방법이 아니라 유예에 불과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오리:브리니클의 저주는 전례도 없는 특이 케이스야. 치료법이 있을지 없을지,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 보장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치료법을 발견하더라도, 콜드 슬립 후유증을 얻을 수 있고.
……다시 물을게.
그래도 괜찮아?
 
슈테른:(고개가 조금 움틀거린다. 미약하지만 확실한 의사 표현. 아주 차가운 잠에 빠져도 꺾이지 않을.)
 
시아록:치료법은.. 제가 찾아낼 거예요.. (슈테른의 뺨을 얕게 쓰다듬었다.)
 
둘이 마음을 굳히면, 이오리도 더 이상 말리지 않고 기계의 뚜껑을 엽니다.
 
그곳에 누운 슈테른의 안색은 이미 하얗게 질릴 대로 질려, 밀랍 인형처럼 보입니다.
 
이 캡슐이 닫히면 그는 길고 긴 잠에 빠질 겁니다.
 
죽음과 잠은 구성 성분이 무척 비슷해서, 어쩌면 죽은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죠.
 
시아록:(슈테른이 누운 캡슐을 가만히 내려보다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슈테른:(쏟아지는 눈물을 하염없이 닦아내가다 결국 자기도 팔에 고개를 묻는다. 흐느끼는 소리가 둘의 사이에 가득 찬다.)
(한참 숨을 헐떡이다가, 겨우 팔을 뻗어 당신의 얼굴을 닦아준다.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가도 목이 매여서 하지 못한다.)
... 있잖아요, 어제처럼 잘 자라고 말해 주실래요? (한참을 말을 고르다 꺼낸 것은, 조금 뜬끔없는 소리였다.)
그럼 내일도 일어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따뜻한 햇살을 맞으면서...
오래... 잘 건데, 이렇게 울기만 하는 건... 흐윽, 싫어요...
 
시아록:(뜬금없는 소리였지만 울음으로 말리는 목소리로 울음을 참으며 말했다.) 응, 미안해. 잘 자고, 나중에 일어나서 같이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하자.. (당신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얘기했다.)
 
마지막까지 따뜻한 위로가 얼굴을 덮으면, 슈테른은 웃고 맙니다.
 
마지막 순간에 우는 얼굴은 너무 형편없을 테니까.
 
꽉 쥔 손은 아직 잠들지 않았는데도 한겨울 심해보다 차갑습니다.
 
그러니 한 가지 안심해도 좋은 건, 이 잠이 그에게 너무 춥지 않으리라는 걸까요.
 
...

 

 
인사가 끝나면 제일 먼저 손을 놓아야 합니다. 덩달아 차가운 체온이 옮은 손끝이 허합니다.
 
그러면 일련의 과정은 아주 매끄럽게 진행됩니다.
 
슈테른이 눈을 감고, 캡슐의 뚜껑이 내려오고,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투명한 유리 너머로 푸른 물이 넘실거리고……
 
「콜드 슬립을 가동합니다.」
 
낯선 목소리가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잠을 예고합니다.
 
수면 아래, 슈슈의 얼굴 위로 물무늬가 일렁입니다.
 
그건 수중에서 늘 보던 모습이라서, 그래서 당신은 조금 더 그리워지고 말았습니다.
 
END 2. Good night in the Abyss
 
KPC 로스트? 탐사자 생존
 
슈테른은 지금부터 콜드 슬립에 들어갑니다. 3부에선 노아와 시아록이 함께 시나리오를 진행합니다.
 
슈슈는 깨어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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