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단맛

[아록슈슈] Marine Snow Ball

퍄퍙책미 2022. 6. 12. 05:01

KPC 프루헤 슈테른     PC 시아록

날짜 2021.06.24 ~ 2021.07.09

플레이타임 총 21시간

원문 시나리오 링크     https://dear-heresy.postype.com/post/8881932

 

 

※아래 내용은 플레이로그입니다. 시나리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므로 열람에 주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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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란 물이 넘실거립니다. 뺨에 닿는 수온은 영하 1도.
 
그러나 심해란 늘상 그런 날씨이므로 특별할 것도 없습니다. 눈을 들면 익숙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이곳은 깊고 깊은 바닥. 파도도 치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는 수중.
 
촘촘하게 짠 레이스처럼 아름다운 무늬로 일렁진 해파리가 유유자적 떠다니고, 점점이 빛나는 플랑크톤이 화려한 빛으로 장막을 그리는 곳.
 
깜빡. 커다란 눈동자가 시아록의 얼굴을 한가득 가립니다.
 
한 발 물러서면, 거대한 오징어입니다.
 
향유고래를 웃도는 크기, 사람의 얼굴만한 눈동자, 하염없이 기다란 다리까지.
 
시아록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오징어는 곧 먹을 수 없다는 듯 몸통을 양쪽으로 가로저으며 유유히 떠납니다.
 
떠나는 오징어의 반투명한 표면이 물살을 따라 오색 빛으로 흔들립니다. 이 깊은 바다에 빛이라곤 한 점 닿지 않는데도 어떻게 이리도 반짝거릴까요.
 
슈테른:시아록, 뭘 그렇게 보고 계세요?
 
어느새 정신이 팔려 있으면 당신 옆에 있던 슈테른이 뭘 보는지 궁금한 듯 기웃거리다가, 다시 앞을 향합니다.
 
슈테른:아, 이럴 때가 아니에요. 마저 걷는 게 좋겠어요.
 
시아록:응? 아, 아무것도.. 그래!
 
손목을 잡은 슈테른은 마음이 급한지 당신을 잡아당깁니다. 그럴 때마다 손에 든 초롱이 덩달아 흔들립니다.
 
아, 그러고 보니 그곳에 가는 중이었죠.
 
헤엄치지 못하는 슈테른의 보폭에 맞춰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밀어내는 부력 탓에 서둘러도 속도는 영 나아지지 않습니다만, 어쩔 수 없습니다. 슈테른은 조금만 헤엄쳐도 금세 숨을 허덕이곤 하니까요.
 
헤엄치지 않으면 한참 걸어야 하는 거리지만, 슈테른이 그곳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곧잘 그곳에 갑니다.
 
슈테른:정체가 뭘까요, 거기는.
이것저것 잡동사니가 많은 곳이니까, 뒤지다 보면 뭐라도 기억날까요?
 
시아록:으음.. 그럴까? 슈슈는 기억을 찾는게 좋은 거지? 자주 보면 뭔가 기억날 수도 있으려나? (슈슈처럼 기억을 잃는 감각은 느껴본 적이 없어서 잠시 생각해봤지만,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 움직였다.)
 
슈테른:네, 지금까지 몇 번을 뒤졌는데 별로 소득은 없었지만요...
그래도 이 좁은 바다마을에서 유독 동떨어진 곳 같아서... 가는 건 즐거워요.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며 걷다 보면 드디어 그곳에 도착합니다.
 
멀리서 보아도 한 눈에 들어오는 높다란 세 개의 절벽.
 
물고기도 지나지 않고, 산호초도 피어나지 않는 캄캄한 곳. 끊임없이 순환하는 물살마저 잠잠하니 침묵하는.

핸드아웃: 심해의 아틀란티스

 

먼 옛날의 문명이 침몰한 곳, 지상 인류의 유적지입니다. 헤엄치면 지척이지만, 걸어가기엔 제법 거리가 있습니다. 길목에 종종 흉포한 백상아리가 출몰하므로 어른들은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합니다.


 
거의 집처럼 친숙한 장소입니다. 이쯤 뒤졌으면 여기 있는 물건은 모두 파악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에요.
 
그럼에도 슈테른은 질리지도 않는지 오늘도 물건을 뒤지는 데에 여념이 없습니다.
 
[세 개의 절벽]이 둘러싼 중앙은 텅 빈 가운데, 모래 위로 모습을 드러낸 [이상한 물건들]이 보입니다.
 
저 끝에 희게 드러난 건 오랜 시간에 걸쳐 삭아버린 물고기와 사람의 뼈로 쌓은 무덤이고요. 어째선지 창문이 난 [지붕]도 보입니다.
 
시아록:여긴 몇 번을 봐도 진짜 이상해.. (물건을 뒤지는 네 곁에서 주변을 한 번 크게 둘러본다.)
 
절벽을 중심으로 고요한 물결이 흐릅니다. 해류도 이곳만은 피해가는 걸까요? 희미하게 들어오는 빛도 거대한 절벽이 전부 가리고 있습니다.
 
물고기와 인간의 유해가 뒤섞인 이곳은 커다란 무덤 같기도 하네요.
 
:아틀란티스에는 많은 물건이 쌓여있습니다. 세 개의 절벽이상한 물건들, 그리고 창문이 난 지붕을 조사할 수 있습니다.
 
시아록:슈슈, 주변에 좀 봤어? 나 저기 지붕에 가보고 싶은데.
 
슈테른:지붕이요? (들고 있던 차갑고 딱딱한 정체불명의 동그란 무언가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고 손을 툭툭 턴다.) 마침 저도 궁금했어요.
입구가 있을까요? (벌떡 일어나더니 지붕 쪽으로 걸어간다.)
 
시아록:(네가 내려놓는 것에 잠시 눈길을 흘렸다가 널 바라본다.) 그러게. 입구 없으면, 다른데로 들어가면 되지. 창문 있는 거 같았어. (너를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사다리꼴 모양의 커다란 지붕입니다. 여기저기 찌그러졌는데, 표면에 커다랗게 이름이 쓰여있습니다.
글씨는 부분부분 지워졌지만, 선과 선을 이어보면 어렵지 않게 뭐라고 쓰여있던 건지 추측 가능합니다. 아틀란티카.
 
잠시 근처를 돌아보고 있으면 어딘가 이곳저곳 찔러보던 슈테른이 반색합니다.
 
슈테른:시아록, 여기에요. 들어갈 곳을 찾았어요.
 
뭘 하나 했더니 한자리를 오래 파고 있던 모양입니다. 제법 깊은 구덩이 안쪽으로, 지붕에 난 구멍이 보입니다.
 
시아록:빠르네, 벌써 찾았어?
(네가 보여주는 지붕에 난 구멍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슈테른:(고개를 끄덕여 답변을 대신한다.) 이 정도 크기면 시아록도 들어갈 수 있죠? (크게 티가 나진 않지만 조금 뿌듯한 얼굴로 말하더니 앞장서서 들어간다.)
 
시아록:앗, 넌 너무 빨라. (네가 앞장서 들어가는 걸 보고 조르르 따라간다.)
 
먼저 무작정 들어가는 그에게 이끌려 어쩔 수 없이 지붕 내부로 향합니다.
 
그래봐야 지붕인데, 뭔가 있을까 싶어 구멍 안으로 들어가면...
 
웬 걸요. 텅 비어 있거나 꽉 막히지 않고, 사용하는 공간처럼 꾸며져 있습니다.
 
천장은 바깥에서 본 것보다 높은데, 양쪽으로 펼쳐지는 계단이 매달려있네요.
 
바닥에는 날카롭고 투명한 조각이 산산이 부서져 있고요.
 
시아록:조심해야겠다. 공간이... 꽤, 넓네?
 
슈테른:(잘 가라앉지 않는 몸을 억지로 휘적여 발을 딛는다.) 여기도 온전한 게 없네요. 여기저기 깨져 있고.
밖에서 보이던 것보다 훨씬 넓어 보여요. 이런 공간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시아록:여기만 멀쩡하면 그것도 이상할 거 같아. (잘 가라앉지 못하는 너를 바닥 가까이로 잡아 내린다.)
바깥도 이상한데, 안은 더 이상하네..
 
그런데... 고개를 들어보면 그런 게 문제가 아닙니다. 이리저리 무너진 기둥 사이로 양탄자가 흘러내리고, 찌그러진 소파가 거꾸로 떠다니고 있거든요.
 
마치 위아래가 뒤집힌 것처럼요.
 
슈테른:집?이 참... 특이하네요.
뭍의 사람들은 지붕에 살면서 천장을 걸어다닌 걸까요?
 
시아록:(가만히 주변을 보다가 뒤집힌 거 같은 집안 몰골을 보고는 반사적으로 인상을 썼다.) 그러게...? 육지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다 거꾸로 걸어다닌 거야?
 
슈테른:다른 건 몰라도 저라면 카펫을 바닥... 아니 천장에 깔려고는 하지 않았을 텐데.
시아록 말대로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는 곳이네요. 거꾸로... 걸어다녔으면 발이 아니라 머리로 걸어다닌 걸까요? (감이 잡히질 않는지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다가, 제자리에서 소파를 박차고 빙글 돈다.)
 
몸을 위아래로 빙글 뒤집은 슈테른이 어기적거리며 헤엄치더니 잡은 것은, 포크입니다.
 
우리가 쓰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양에, 훨씬 매끄럽고 단단한 물질로 이뤄져 있지만요. 돌을 깎은 것도 아닌데 휘어지지도 않는다며 슈테른은 신기해합니다.
 
슈테른:산호도 돌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차갑고 매끄럽고 단단한 걸까요. 뭍의 사람들은 어쩌면 마법사였을지도 몰라요.
우리도 마법은 쓰지만, 그런 것보다도 훨씬 엄청난 일을 했을지도.
 
시아록:그건 또 어디서 찾았어? (네 옆에 다가와 신기한 듯 들여다본다.)
그러게, 신기한 물질이다. 육지에는 이런 게 더 있을까? 우리보다 더 대단한 마법을 썼으면 어떤 거였을까..? (궁금증이 증폭된듯 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슈테른:여기 근처에 떠다니고 있던데... 아. (바닥에 있던 테이블을 가리키더니 뭔가 발견했는지 새로운 걸 손에 쥔다.) 이건 또 뭘까요, 석판...? 이렇게까지 동그랗고 예쁜 석판은 처음 봐요.
한 개도 아니고 겹겹이 쌓여 있는데, 어디에 쓰던 걸까요?
뭍에 올라가볼 수만 있으면 직접 확인해보고 싶네요. 지금은 이런 흔적만을 겨우 기대할 수 있겠지만...
 
시아록:응? 석판? (잠시 쳐다보다가) 그러게.. 진짜 육지에선 뭘 어떻게 하고 생활했길래 이런 게 있담..? (손가락으로 콕콕 찔러본다.)
 
둥글넓적한 석판?을 찔러보면 매끄러운 표면이 손톱과 부딪혀 땡땡, 소리를 냅니다.
 
시아록:이거 이상한 소리도 나네. 석판 맞나..?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밖에도 온갖 잡동사니들이 주변을 부유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게 있을까요?
 
시아록:다른 곳도 둘러볼까? 저기 계단 쪽도 가보고 싶고..
 
슈테른:(이상한 석판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덩달아 계단 쪽을 돌아본다.) 계단이 있다는 건 이어지는 공간이 있다는 건데... 여기, 평범한 지붕은 아니었나 봐요.
... 직접 보는 게 궁금증 해결하기엔 제일 낫겠죠. 올라가볼까요?
 
시아록:응, 괜찮으면 가보자! (냉큼 고개를 끄덕이고, 이번엔 먼저 나서서 계단쪽으로 향한다.)
 
:계단을 끝까지 다 올라도 문은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찌그러진 은색 상자가 놓여있네요.
상자는 아주 커다랍니다. 사람이 몇 명은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네요.
상자의 중앙에 긴 틈이 있지만, 손잡이는 없습니다. 문이 아닌 걸까요? 아니면 뭍에선 이런 문을 쓰는 걸까요?
 
시아록:이거 뭐지..? (덩그러니 놓여진 것 같은 은색 상자에 조금 어리둥절해졌다. 주변을 돌며 관찰해보지만, 아무것도 모르겠다.) 만져보면 알 수 있으려나..? (슬쩍 검지만 세워 손을 뻗었다.)
 
:만져보면, 아주 차가운 감촉이 손끝에 감깁니다. 아까 봤던 포크랑 비슷한 재질일지도 모르겠네요. 수중 세계의 것들과는 사뭇 다르게 아주 매끄럽습니다.
 
시아록:아까 포크랑 비슷한 재질..? (손가락 끝으로 슬쩍 문지르다가 손을 뗐다.) 근데 이거 어떻게 사용하는 거지, 열리나? (상자 중앙의 긴 틈을 가까이 들여다본다.)
 
:별어진 틈 사이로 희미하게 새어든 초롱의 빛이 실선을 그립니다. 하지만 그 밖에는 전혀 보이지 않네요. 아무래도 좀 더 열어봐야겠습니다.
틈이 벌어져있으니 더 벌리면 열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아록:밀어보면 열릴까? (틈에 슬쩍 손가락을 걸쳐 들어올리듯 밀어본다.)
 
:손으로 당겨서 열어보려고 하면 꿈쩍도 하지 않네요. 밀어봐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언가 방법이 없을까요?
 
시아록:으음.. 뭘하면 열릴까? 갖고 있는 것도 없는데.. (괜히 상자를 노려본다.) 슈슈는 어떻게 생각해? 다른데 가서 뭘 가져오면 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슈테른:어떻게 여는 걸까요? (시아록 못지 않게 내부가 궁금한지 틈을 한참 들여다보다 갑자기 소매를 걷고 끙끙대기 시작한다.)
근력
기준치: 45/22/9
굴림: 73
판정결과: 실패
... 아, 안 열리네. 이게 아닌가...
사이에 손을 넣고 벌리니까 틈이 조금 더 벌어진 것 같기도 한데, 지렛대가 있으면 도움이 될까요?
 
시아록:그럴까? 아니면 내가 한 번만 더 해볼까? 슈슈는 힘없으니까.
(다시 상자 틈에 손을 넣고 벌려보려고 한다.)
근력
기준치: 75/37/15
굴림: 4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정확히 어떻게 벌리나요? 아까처럼 위로 당기거나 눌러서 미나요?
 
시아록:(위로 들어올려보려고 합니다.)
 
:아무리 당겨도 꿈쩍하지 않습니다. 다른 방향으로 힘을 줘보는 건 어떠신가요?
사이에 손을 넣고 틈을 벌렸을 때 문이 움직였다는 것에 주목하세요.
 
시아록:(틈을 벌리듯이 양손에 힘을 준다.)
 
:힘을 단단히 주고 양옆으로 밀어 봅니다. 시아록, 근력 판정.
 
시아록:
근력
기준치: 75/37/15
굴림: 66
판정결과: 보통 성공
 
:양옆으로 벌리자 그제서야 문이 끼기긱 소리를 내며 열립니다. 불을 비춰 보면 내부는 텅 빈 채, 사람의 유골과 화려한 옷자락만 늘어졌습니다.
벽에는 어째선지 숫자가 나란히 쓰여 있고…… 시아록, 관찰력 판정.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4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뭐야, 이게..?
 
:어떤 유골의 목덜미에서 목걸이가 반짝거립니다.
 
시아록:(반짝거리는 물건에 절로 시야가 간다.) 목걸이네? (슬쩍 만져본다.)
 
:목걸이를 걷으면 아주 작은 은색 고리들이 찰랑거리며 끌려 나옵니다. 끝에 매달린 건 동그란…… 이건 뭘까요?
 
시아록:슈슈, 이거 봐. (네게 목걸이에 달린 동그란 걸 보여준다.) 이게 뭘까?
 
슈테른:...? (목걸이를 손으로 몇 번 닦아냈다가, 이상함을 느끼고 손을 뗀다.) 진주는 아닌 것 같은데... 이건 대체 뭘까요?
이 얼룩은 지워지질 않네요. 꼭 부화하기 직전 물고기 알 같아요.
 
:그 말을 듣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은색 원의 안쪽에 거뭇한 얼룩 같은 게 묻어 있습니다. 여기저기 흠집도 있네요.
 
시아록:그렇네.. 뭐지? (같이 생각해봐도 모르는 건 역시 모르겠다.)
얼룩은.. 지워지도 않고, 진짜 이상하다. 우리 챙겨가볼까?
 
슈테른:(미심쩍어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시아록이 챙겨가실래요? 이거 빛에 닿으면 반짝거리거든요. (불빛을 앞에 대어 은색의 무언가가 빛나는 걸 보여준다.)
 
시아록:응, 좋아! (반짝이는 걸 보면서 냉큼 고개를 끄덕이고 챙겼다.) 다른 건 뭐 없나? 뼈랑.. 옷이 다인가?
 
:사람의 유해와 나풀거리는 옷 말고는 특별한 건 없어 보이네요.
뭍의 사람들 건 옷도 특별한지, 우리가 입은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정교합니다. 이런 건 대체 어떻게 만드는 걸까요? 가죽도 아니고 해초도 아닌 부들부들한 재질은 폭신하기까지 합니다.
아마도 목 부근에 달렸을, 해파리처럼 출렁거리는 무언가는 부채산호처럼 펼쳐집니다.
 
시아록:옷도, 육지 사람은 좀 다르네. 슈슈말처럼 대단한 마법사라서 이것도 마법으로 만든 걸까? (옷자락을 손가락으로 문질러본다.)
 
:우리가 입은 옷보다 훨씬 부드럽고 흐느적거리는 재질입니다. 원한다면 챙길 수도 있습니다.
 
시아록:음.. 굳이 뼈에서 옷을 벗기고 싶진 않으니까... (금세 손을 떼고는 너를 본다.) 더이상 다른 건 딱히 볼 거 없네.. 딴데 가볼까? 아까 거기 다 둘러보고 온 건 아니니까.(올라왔던 계단 아래를 가리킨다.)
 
슈테른:아직 물건들은 다 보지도 못했죠. 이만 나갈까요?
거꾸로 걸어다니는 것도 모자라 이렇게 텅 빈 상자 안에서 살다니, 역시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시아록:그러게.. 육지 사람들은 정말 알 수가 없다. (네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절레 내젓고는 계단아래로 앞서 걷기 시작했다.)
 
:계단 아래로 다시 내려가면, 바닥에 이리저리 널부러져 있는 잡동사니들이 눈에 띕니다. 뭐가 이렇게 많은 걸까요.
찾는 물건이 있다면 뒤져볼 수 있겠습니다. 아무거나 막 집어볼 수도 있고요.
 
시아록:진짜 뭐 많다. (잡동사니들 앞에 주저앉아 아무거나 집어들어본다.)
 
:손에 걸리는 걸 끌어당겨보면... 조금 누런색의 대왕조개입니다!
조개치고는 네모난 물건을 열어 보면, 안은 텅 비어 있습니다...
그런데, 공간이 제법 넓습니다. 어른은 몰라도 어린애면 안에 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시아록:음. 이렇게 큰데 안에 아무것도 없네. 이거 조개 맞나?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옆으로 밀어낸다.) 또 다른 건.. (다시 무언가를 집어들었다.)
 
:새파란 공 같은 무언가가 기다랗게 휜 뼈대와 비슷한 것에 매달려 덜렁덜렁 돌아갑니다.
 
시아록:이건 또 뭐야? (들고 슬쩍 흔들어본다.)
 
:덜렁덜렁 흔들면 흔드는 대로 빙글빙글 돌아가네요. 어떻게 쓰는 걸까요?
다시 내려놓으면, 뼈대 밑에 달린 받침대 같은 것 덕분에 세워지네요.
세워놓고 자세히 보면, 공에도 얼룩 같은 게 있습니다. 군데군데 초록색의 무늬같은 게 있는데, 녹조라도 낀 걸까요?
 
시아록:(처음 보는 물건에 빤히 쳐다보지만, 역시 아무것도 모르겠다.) 육지 사람들은 진짜 이상한 것만 만들어다 썼네. 딱히 도움되는 것도 아닌 거 같은데... (세워진 그것을 그대로 두고는 다른 것도 뒤져본다.)
 
:이번에 손에 걸린 것도 아까 대왕조개만큼 커다랍니다.
 
시아록:이건 또 뭐지? (커다란 무언가를 만져본다.)
 
:산호랑 비슷하게, 곡선으로 매끄럽게 휜 뼈대 같은 것이 중심의 원을 두르듯 삥 둘러싸고 있고, 그 끝에는 반짝이는 보석같은 게 하나씩 달려 있습니다.
중앙에 있는 원에는 사슬도 달려 있습니다. 이게 뭘까요?
 
시아록:반짝이는 게 달려서 좋긴 한데... 으으음.... (반짝이는 것에 아까보다 관심을 가지며 이리저리 살펴보지만 알 수 없다. 슬쩍 사슬을 당겨본다.)
 
:사슬을 당기면 그것이 질질질 끌려옵니다. 들어올려 보면 이 커다란 게 흔들리지도 않고 안정적으로 들리네요.
사슬 끝에는 갈고리가 달려 있어, 어딘가에 매달 수도 있어 보입니다.
 
시아록:이걸 어디다 쓰지..? (집에 가서 걸어둘까 생각 했다가 크기를 생각하고는 이내 내려두었다.) 슈슈, 슈슈는 뭐 발견한 거 있어?
 
슈테른:아, 시아록. (이쪽은 이쪽대로 한참 열중하고 있었는지 반응이 한 발 늦는다.) 부르셨어요?
전 책이랑, 이런 걸 찾았는데... 뭔지 잘 모르겠어요.
 
시아록:뭔데? (자신이 봤던 건 전부 밀어두고, 너에게 다가갔다.) 책이랑, 이건 뭐지?
 
:책은 오랫동안 부식되어 읽을 수 있는 몰골은 아닙니다. 거기다 언어도 전혀 모르는 무언가로 적혀 있네요.
 
시아록:책은 못 읽겠네. (책 상태를 보더니 네 손에서 가져가 바닥에 내려둔다.)
 
:옆에 든 것은 보라색의 어떤 것인데 입구가 무언가로 막혀 있습니다. 원통형으로 동그란 그것은 한 쪽 옆면에 이빨처럼 삐죽한 걸로 둘러싸인 구멍이 있네요.
 
시아록:진짜 이상한 것들 뿐이야... (네가 들고 있는 것을 가만히 쳐다봤다.)
 
슈테른:이것도 다른 것들처럼 안은 텅 비었어요. (구멍으로 조심조심 손을 넣다가 흠칫한다.)
기준치: 45/22/9
굴림: 92
판정결과: 실패
 
시아록:괜찮아? (흠칫한 네게 덩달아 놀라 너를 살핀다.)
 
:그 말을 하자마자 슈테른의 손 위로 새빨간 직선이 그어집니다. 벌어진 상처 위로 피가 고입니다.
 
슈테른:아, 아파라...
이건 만지지 않는 게 좋겠어요. 멋대로 만져서 이빨에 물렸나 봐요. (들고 있던 것들을 얌전히 내려놓는다.)
 
시아록:조심해야지, 정말... 상처 치료할 거 있나? (네 손을 붙들고 어쩔 줄 몰라한다.)
 
:상처를 치료하려면 시아록이 아는 한 해초를 감아두는 게 제일 빠릅니다. 여기엔 해초는커녕 생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으니 밖으로 나가는 게 좋겠습니다.
 
시아록:(치료방법을 떠올리다가 네게 말한다.) 슈슈, 밖에 나가자. 여기 별것도 없는 거 같고. (눈으로만 주변을 살피고는) 상처치료부터 하는 게 좋으니까. 그리고 피냄새 맡고 상어가 오면 큰일이야. (잡은 네 손을 당긴다.)
 
슈테른:상어... (마냥 안전하지 않은 장소임을 알고 있기에 안색이 조금 창백해진다.) 얼른 치료하면 괜찮겠죠? 좀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제가 부주의했어요. (시아록이 위험해질 게 걱정스럽다는 눈치로 이끌리는 대로 밖으로 나간다.)
 
시아록:얼른 치료하면 괜찮을 거야. 나가면 해초부터 찾아야겠다. (너와 함께 밖으로 나와 상처치료를 위한 해초를 찾는다.)
 
:유적지 주변에는 해초가 없다시피 합니다. 잘 찾아봐야겠네요. 시아록, 관찰력 판정.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4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치료하기에 적당한 해초가 있네요. 손으로 몇 개 당겨서 툭, 툭 끊어 손에 쥐면 준비 끝입니다.
 
시아록:해초 찾았다. (얼른 가서 해초를 끊어와 네 손가락에 감아 묶었다.)
 
슈테른:아, 감사해요... (치료받은 곳을 손으로 매만진다.) 다음부턴 조심할게요.
나온 김에 다른 곳도 둘러볼까요? 여기 밖에도 잡동사니가 쌓여 있고, 저기 있는 절벽도 아직 안 둘러봤는데.
 
시아록:응, 조심해. 특히 슈슈는 약하니까! (고개를 끄덕이고는) 응, 다른데도 가보자. 저 잡동사니들 좀 살펴보고 절벽으로 가볼까?
 
슈테른:좋아요. 아까 본 물건들이랑 비슷한 것도 있을까요? (잡동사니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여러분은 바닥에 널부러진 잡동사니들 근처로 다가갑니다. 이제는 여기저기 망가지고 부식되어 제 모습을 간직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바닥에는 깨진 상자, 찢어진 솜뭉치, 정체를 알 수 없는 길고 딱딱한 기둥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습니다.
성한 것을 찾기가 어렵네요. 시아록, 관찰력 판정.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3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짤막한, 검은색 원형 통을 틈새에서 끄집어냅니다.
 
시아록:이건 좀 멀쩡한 거 같네. (꺼낸 검은색 원형 통을 네게 보여준다.)
 
슈테른:그러게요, 깨진 곳도 없고...
어떻게 쓰는 걸까요? 앞뒤로 막혀 있는데.
 
시아록:그러게.. 이게 뭐지? (들고서 이리저리 둘러본다.)
 
:한 손에 들어오는 짧은 통입니다. 소금 모래를 담는 통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뚜껑도 바닥도 없습니다. 안은 텅 비어 있고요. 뭘 담을 수가 없겠는데?
 
시아록:그냥 텅 비어있네..? 이거 어디다 쓰지. 뭔가 담을 수 있을 거 같긴한데.. 일단 챙겨둘까..?
 
슈테른:텅 비었는데 왜 앞뒤로 막아뒀을까요? 뚜껑이라도 달린 건 아닐까요? 잡아당기면 열리려나...? 일단 챙겨가요.
 
시아록:그러게. 잡아당기면 열리나? 내가 챙겨둘게.
 
:검은색 통을 주머니에 넣고 나면 아직도 앞에 쌓여있는 많은 물건들이 보입니다.
더 뒤져볼까요? 행운 판정입니다.
 
시아록:다른 건 뭐가 있을까? 이렇게 멀쩡한 거 조금 더 있으면 좋겠는데.
기준치: 80/40/16
굴림: 6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상자를 발견했습니다. 작은 손잡이가 달려있고, 뚜껑을 열면 아주 작은 사람 모형이 서로 손을 잡고 있습니다.
옆면에 열쇠처럼 생긴 딱딱한 무언가가 구멍에 꽂혀 있습니다.
 
시아록:와, 이거 신기하게 생겼네. 이거 봐봐. (네게 내밀어 보인다.) 사람 모양 같은 것도 잘 만들어져있어!
 
슈테른:상자... 장난감 같은 걸까요?
사람 모형은 뺄 수 있... (중앙에 있는 사람 모형을 잡아당겨 본다.) 아, 안 꺼내지네요. 이게 뭘까요?
 
시아록:그러게. 뭐지? 옆에 열쇠같은 것도 있는데. 이거 빠질까? (잡아서 당긴다.)
 
:아무리 세게 당겨도 빠지지 않습니다. 그럼 돌리면 어떨까요?
 
시아록:안 빠지네. 으음... 열쇠니까 돌려보면 되나..?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조심히 돌려본다.)
 
:열쇠처럼 생긴 딱딱한 막대기를 잡고 돌리면, 끼기긱 하고 돌아가는 소리가 납니다.
 
시아록:오, 돌아간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돌아가니 신기한 듯 하다.)
 
:손을 떼니 상자에서 띠링, 띵 띵 하는 예쁜 소리와 함께 사람 모형이 빙글빙글 회전합니다. 뭍의 사람들은 이런 걸 갖고 놀았던 걸까요?
 
슈테른:우와, 저 이런 소리는 처음 들어봐요.
고래의 목소리와도, 자갈이 밟히는 소리와도 달라요. 구슬끼리 부딪히는 것 같기도 한 소리네요...
 
시아록:(갑작스런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들고 있는 걸 본다.) 나도... 이런 건 처음 들어봤어.. 근데 듣기 좋다.. 이것도 가져가자!
 
슈테른:좋아요. ... 저, 혹시 제가 챙겨도 될까요? 집에 두고 싶은데...
 
시아록:응! 그래, 슈슈 줄게. 나도 듣고 싶으면 슈슈 집에 놀러가면 되니까! (네게 내민다.)
 
슈테른:가, 감사해요. (소중히 받아들곤 품에 챙긴다.)
나중에 종종 들으러 오세요. 어차피 바로 옆집이지만... 아, 잘 하면 제 방에서 돌려도 시아록 집에서도 들릴지도...
아무튼, 온전한 물건을 많이 발견해서 다행이에요. 더 찾아볼까요?
 
시아록:그러게, 그럴지도 모르겠다!
좋아, 좀 더 뒤져보자.
(잡동사니 앞에 다시 쪼그리고 앉아 뒤적거린다.)
 
:다시 물건 더미를 헤쳐 봅니다. 시아록, 행운 판정입니다.
 
시아록:
기준치: 80/40/16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손에 들려나온 것은 얇고 긴 막대기입니다.
안은 텅 비었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10개의 구멍까지 뚫려있습니다. 불량품인가?
 
시아록:구멍나있네..? 뭐할 때 쓰는 거지? ( 막대를 들고 휙휙 휘둘러본다.)
 
:휘둘러보면 구멍 사이로 물이 슉슉 들어오고 나가는 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많은 구멍은 왜 뚫려있는 걸까요?
 
시아록:슈슈! 이거 봐, 흔드니까 물 나오면서 뽀글거리는데? (막대를 한 번 더 흔들어 보여준다.)
 
슈테른:우와, 정말이네요. (이건 또 무슨 용도인지 고민하다가, 구멍 사이로 공기방울이 뽀글거리는 걸 보곤 신기해한다.)
이것도 뭍의 사람들이 가지고 놀던 걸까요?
 
시아록:그럴지도? 장난감 같기도 하고..? 그래도 꽤 멀쩡한 거 같지?
 
슈테른:그렇네요. 뭘 담을 수 있을 것 같진 않고. 으음... 챙기는 게 좋으려나...
아, 시아록. 제가 신기한 거 보여드릴까요? (막대기를 달라는 듯 손을 내민다.)
 
시아록:응? 응! (네 손에 막대기를 올린다.)
 
슈테른:(막대기를 아까처럼 휘두르더니, 동시에 생긴 10개의 작은 방울을 보며 정신을 집중한다.)
(그러자 공기방울들이 동시에 손톱만한 크기에서 손바닥만한 크기까지 커지더니, 종내에는 자기들끼리 합쳐져 얼굴만하게 커지곤 터져버린다.)
...휴, 오랜만에 쓴 건데 성공했네요. (손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는 시늉을 한다.)
 
슈테른, 마력 1과 이성 1 감소.
 
시아록:(공기방울이 점점 커지는 것과 같이 눈도 점점 커지다가 터지는 것에 놀란 듯 눈이 몇번 깜빡였다.) 우와, 뭐야?! 신기하다!
 
슈테른:전에 책에서 배웠어요... <커다란 풍선>이라는 마법이에요.
아까 공기방울을 보니까 갑자기 생각나서... 시아록한테는 보여준 적 없죠?
 
시아록:응, 처음 봤어. 신기하네!
 
슈테른:재밌었다면 다행이에요. (바닥에 막대기를 내려놓으려다 멈칫한다.)
혹시 이것도 가져가고 싶어요?
 
시아록:음, 챙겨가볼까? (막대를 가만보다가 집어들었다.) 나중에 쓸모없으면 버리지, 뭐.
 
슈테른:(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더 찾아볼래요? 이렇게 신기한 게 더 있으면 좋겠어요.
 
시아록:응, 좋아. 두어번만 더 뒤져보자.
 
:아까처럼 팔을 걷고 손에 잡히는 걸 꺼내 봅니다. 시아록, 행운 판정.
 
시아록:
기준치: 80/40/16
굴림: 3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원형의 딱딱한 틀을 가느다란 실들로 촘촘히 꿰맨 물건입니다. 교차하는 실들 사이로 여러 도형이 이루어져 보기에는 예쁘네요.
그 밑으로 작은 구슬이나 털 같은 것도 달려 있습니다.
 
시아록:앗, 이거 예쁘다. (번쩍 들어올려 네게 보여준다.)
 
슈테른:이게 뭐에요? 그물망...?
뜰채라기엔 예쁘네요. 꼭 장식품 같아요.
 
시아록:그물이라고 하기엔 작은데..? 막 여기 밑에 뭐 달려있기도 하고.. 슈슈 말대로 장식품 같다.
 
슈테른:장식품이면 어디에 다는 걸까요? 허리에 다는 건가...? (몸 이곳저곳에 뜰채같은 장식품을 대 본다.)
(잠시 그러다 잘 모르겠다는 듯 다시 내려놓는다.) 이것도 챙길래요? 이건 제가 들게요.
 
시아록:그래. 아니면 집에 걸어두지 뭐. 그냥 봐도 예쁜걸.
 
슈테른:알겠어요. (장식품을 손에 들었다.)
물건도 많이 챙겼으니 이만 갈까요? 다른 곳도 둘러봐야죠.
 
시아록:응, 좋아. 그럼 아까 절벽 가볼까?
 
슈테른:좋아요. 저 절벽도 뭍에서 온 걸까요? 아니면 원래부터 있었을까요.
어느 쪽이든 이상해 보여요. (남은 한 손으로 시아록과 손을 잡고 절벽 쪽으로 걸어간다.)
 
:절벽은 높이 솟아 유적지에 세 점을 찍고 있습니다.
심해에서 저절로 깎인 절벽과는 달리 표면이 매끄러운데, 어떤 것은 구멍이 숭숭 뚫려있고 어떤 것은 글씨와 그림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어떤 것은 앙상하니 뼈대만 남았습니다.
구멍이 뚫린 절벽글씨와 그림이 붙은 절벽뼈대만 남은 절벽이 눈에 띕니다.
 
시아록:별 생각 없었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진짜 이상하게 생긴 절벽이네..? 어디부터 보지. (절벽을 기웃기웃 쳐다본다.)
 
:절벽은 서로 높이도 천차만별입니다. 구멍이 뚫린 절벽은 낮고, 뼈대만 남은 절벽은 훨씬 높습니다.
 
시아록:슈슈, 우리 낮은 절벽부터 볼까? 저기 구멍뚫린 거!
 
슈테른:좋아요. 여기도 구멍 사이로 들어갈 수 있으려나... (절벽 쪽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세 개의 절벽 중 가장 낮은 절벽은 시아록의 키와 엇비슷한 수준입니다.
모래 아래에 묻힌 건 얼마나 될까요? 언젠가, 슈테른과 한참을 파 보았지만 결국 끝을 보지 못했었죠.
표면에 커다란 구멍이 숭숭 뚫려있습니다.
 
시아록:(네 손을 잡은 채로 절벽 앞에 다가갔다.) 별로 높지도 않고... (제 키와 가늠해보고는) 구멍은 왜 뚫려있을까? (구멍 안을 들여다본다.)
 
:구멍은 고래의 아가리만큼이나 커다랗습니다. 하지만 단면 주위는 무척 날카롭습니다.
안으로는 창창한 어둠이 펼쳐져 있습니다. 초롱으로 비춰 보아도 별다른 건 보이지 않네요.
 
시아록:별로 크지도 않은데, 구멍만 크네.. 안에 잘 보이지도 않고.. (잠시 생각하다가) 안에 들어가는 건 위험해보이고.. 나 빛만 만들어서 안에 넣어볼까? (어떻게 생각하냐는 듯 너를 쳐다본다.)
 
슈테른:빛을 만든다고요...? 마법으로요?
저도 안쪽은 궁금한데... 그럼 그렇게 해 봐요.
 
시아록:응, 마법! 뭐 많이 비춰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보일걸!
(손을 앞으로 내밀고 집중하는 듯 하자 이내 작은 빛덩어리가 손바닥 위에 생겼다. 그걸 앞으로 밀어 구멍 안으로 보낸다.)
 
시아록, 마력 1과 이성 1 감소.
 
:빛망울을 구멍 안으로 들여보내면 안쪽이 듬성듬성 보입니다. 여러 장의 그림이 벽에 붙어 있습니다.
 
시아록:안에 그림 있네...? (생각지도 못했다는 표정이다.)
 
:그런데 무척 크고 사실적입니다. 그림이 아니라 창문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아요. 뭘 저렇게 붙여둔 걸까요?
그림의 밑으로는 커다란 의자가(의자치곤 엄청 길어서 꼭 침대같지만) 놓여있습니다. 이번에는 뒤집혀있지 않고 똑바로 세워져있네요.
 
시아록:(빛덩어리가 비추는 공간을 보다가 너를 쳐다본다.) 안에 위험한 건 그렇게 안 보이긴 하는데.. 들어가서 볼까..?
 
슈테른:안쪽이 위험한 게 문제가 아니라 들어가고 나오기가 힘들어 보여요. 표면에 가시만 없었어도 아까처럼 들어가볼 수 있을 텐데.
(가시를 손으로 쓸어 본다.) ...이거, 아까 손에 상처 냈던 그거랑 비슷한 감촉이네요. 같은 재질일까요? 그러고 보니 모양도 비슷하고...
 
시아록:그런가.. 그럼 들어가기 좀 그렇네. (따라서 슬쩍 가시를 만져본다.) 음.. 자세히 보고 싶긴 한데.. 그냥 좀 더 살펴보고 다른 곳 가자. 또 다치면 안 좋으니까.
 
슈테른:좋아요. 그림이나 마저 구경할까요?
저건 뭘 담은 걸까요. 온통 초록색인데, 해초랑은 또 다르게 생긴 게 몇 겹이나...
위는 뾰족한데 아래는 둥그네요. 저것도 식물의 일종일까요?
 
시아록:응? 으음... 식물이라기엔 이상한 거 같은데.. 잘 모르겠다. (빤히 쳐다보며 고개만 갸웃거린다.)
 
슈테른:저도요. 저런 모양은 처음 보는데... 저런 거에도 잘못하면 베일까요?
그 옆에 있는 건... ... 어, 이 절벽이랑 비슷한 게 그려져있어요.
저것 좀 보세요. 기둥처럼 솟은 걸 뭔가 네모난 게 촘촘히 둘러싸고 있어요. 저게 뭘까요?
꼭 기다란 물고기를 둘러싼 비늘 같아요.
 
시아록:그런가? 육지에는 저런게 있었던걸까? (그림을 봐도 잘 모르겠다.) 진짜 이해할 수 없는 것들만 있네!
 
슈테른:뭍의 것들은 바닷속 것들이랑 비슷한 게 하나도 없나 봐요. 어째 하나같이 모르는 것들 뿐이네요...
같은 인간인데 생활하는 환경이 이렇게까지 달랐다니... 음, 다른 절벽도 볼까요?
 
시아록:그러게.. 육지랑 바닷속은 많이 다른가봐. (의문투성이인 것들에 고개를 까딱이다가) 그래, 다른 절벽도 보러 가자!
 
슈테른:이번엔 뭘 볼까요? 음... 전 글씨가 적힌 절벽부터 보고 싶어요.
이건 저희도 읽을 수 있어요, 보세요. (글씨들을 가리킨다.)
 
시아록:글씨? (네가 가리킨 걸 쳐다본다.)
 
:중간 높이의 절벽 표면에는 글씨 말고도 그림이 다닥다닥 붙어있습니다.
글씨는 일자 반듯한가 하면 화려하고, 화려한가 하면 아기자기하니 색도 알록달록, 모양도 가지각색입니다.
게다가 크기는 전부 손바닥보다 커다랗고요.
이렇게 큰 글씨를 전부 다른 필체로 쓰고 가다니, 어떤 사람일까요?
하지만 물에 불거나 찢어진 구석이 많아 글씨는 제대로 읽기가 어렵습니다. 시아록, 모국어 판정.
 
시아록:여기도 아까처럼 그림이 많네.
언어(모국어)
기준치: 50/25/10
굴림: 1
판정결과: 대성공
 
:오후, 케이, 전문, 차, 504, 은, 자, 디지, 서, 스, 오, 클……
몇 가지 글자는 제대로 읽을 수 있지만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람의 이름 같지도 않고, 순서대로 나열해봐도 문장이 완성되지는 않네요.
 
시아록:음.. 읽히긴 하는데. 이상한 말인데..?
 
슈테른:... 우리랑 같은 말 쓰는 거 맞아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시아록:그러게 이상한 말밖에 없네. (따라 소리내어 읽어보지만, 아무런 감도 잡히지 않는다.)
 
슈테른:(역시 한참을 끙끙대다가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림도 볼까요? 여기저기 붙어있는데.
 
시아록:응, 그림도 마찬가지 일지도 모르지만.. 글자보단 낫겠지! (글자에서 시선을 떼 그림을 쳐다본다.)
 
:그림도 형태가 흐릿하게 얼룩진 건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그린 것 같긴 합니다. 이목구비는 온통 뭉개져 누구의 초상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림은 꽤 여러 점으로 액자도 없이 절벽에 딱 붙어있습니다. 벽 위에 그린 건가?
시아록, 감정 또는 예술/공예 판정.
 
시아록:그림도 마찬가지이긴 하네. 잘 보이지도 않고..
예술/공예 Roll
기준치: 5/2/1
굴림: 59
판정결과: 실패
 
:척 보기에도 훌륭한 그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뭍에는 대단한 화가가 있었나 봐요.
이 글씨들은 작품의 제목이 아닐까요?
 
슈테른:아까 봤던 그림들이랑은 또 다르네요.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이 많았던 걸까요?
우리는 그림은 고사하고 글씨 쓰는 것도 힘든데...
 
시아록:그러게.. 육지에선 그림그리는 거나 글쓰는 게 훨씬 편했나봐. (그림과 글자들을 자세히 한 번 더 관찰하고는)
 
:열심히 들여다봐도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 너무 오래된 것들이라 온통 흐릿해서 읽는 것도 간신히 더듬어야 보입니다.
 
시아록:역시 모르겠네.. 더 둘러볼 거 있을까? 없으면 우리 다른 절벽도 가보자.
 
슈테른:(고개를 젓는다. 이 쪽도 딱히 발견한 건 없는 듯.) 그러는 게 낫겠네요, 더 볼 것도 없고...
저거 말이죠? (뼈대만 남은 절벽을 가리킨다.) 가까이서 보니까 높은 절벽이네요. 아래로 파묻힌 게 대체 얼마나 될까요...
 
시아록:흠.. 엄청? 전에 파봤을 때도 한참이었으니까..? (고개를 기울였다가 이내 네 손을 붙잡고 함께 남은 절벽으로 다가간다.)
 
:세 개의 절벽 중 가장 높은 절벽입니다. 아래는 얇고, 위로 갈수록 넓어집니다.
고개를 들어도 까마득하니 꼭대기를 볼 수 없습니다.
대체 어디까지 뻗은 걸까요? 설마 저 위의 수면 너머까지 올라가는 건 아닐까요? 조금 궁금해집니다.
위로 헤엄치다 보면 끝이 보일까요?
 
시아록:진짜 높네. 처음에 건 내 키 정도밖에 안 되었었는데.. 저게 바다 밖에 있는 걸 수도 있겠다. (고개를 꺾어 까마득한 높이를 바라보다가) 수영해서 올라가봐도 한참 걸리겠지?
 
슈테른:바다 밖에요? 그 정도로 높은 거에요?
(한계까지 고개를 들쳐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에 천천히 뒷걸음친다.) 끝이 있기는 할까요...
 
시아록:그치..? 엄청 높은 거 같아.
올라가보기는 좀.. 겁나니까 그냥 주변이나 살펴보자.
 
슈테른:그래요? 전 조금 궁금한데. 그래도 무서우면 구경만 해요.
이건 다른 절벽에 비하면 엄청 얇네요.
 
시아록:으응.. 그리고 올라가더라도 높이는 못 올라갈 거 같고..?
그러게, 엄청 얇다. (손으로 만져본다.)
 
:만져보면 역시 차갑고, 딱딱하고, 매끄럽습니다.
그런데 감촉은 다른 절벽보다 훨씬 미끄럽네요. 이건 또 다른 재질로 만들어진 걸까요?
 
시아록:이것도 이상한 느낌이야. 뭐하나 같은 게 없네..? 바닷속 물건은 다 거기서 거기 같은데..
 
슈테른:바닷속 물건도... 어떤 건 꺼끌꺼끌하면 어떤 건 흐물흐물하고 어떤 건 미끈미끈하잖아요.
전 오히려 뭍의 물건이 거기서 거기인 것 같기도 해요. 하나같이 단단하고 매끄럽잖아요.
 
시아록:그래도 한정적이잖아..? 이런 건 바다에서 못 본 거 같은데.. 뭐, 돌아다니는 범위가 좁긴 하지만..!
그런가..? (네 말을 듣고 갸웃거리다가) 근데 이건 뭐로 만들었길래 단단하고 매끄럽지?
 
슈테른:그렇죠... 우린 이게 어떤 건지도 모르고, 다룰 줄도 모르잖아요.
으음, (노크하듯이 주먹을 쥐고 깡깡, 쳐 본다.) 소리 울려요... 일단 돌은 아닌가봐요.
돌도 아니고 산호도 아닌데 이렇게 매끄럽고 윤기가 난다니... (그야말로 미지의 세계다. 알아낼 게 없다 싶어 손을 뗐다.)
 
시아록:(깡깡, 소리를 듣고는 더 알 수 없다는 얼굴 표정이 되었다.) 흐음.. 그러게.. 다른 건 뭐 없는 거 같지..? (얇은 절벽을 둘레둘레 둘러보고 네게 다시 돌아온다.)
 
:절벽을 다시 살펴도 역시 아까 전이랑 똑같습니다.
뭐 알아낸 건 없지만, 신기한 경험이었네요.
 
슈테른:지붕도 둘러봤고, 절벽도 다 봤으니까... 이제 다 살펴본 거죠?
 
시아록:응, 다 봤어!
이제 돌아갈까?
 
슈테른:네, 어...
근데 저희, 뭘 두고 오지 않았어요?
 
시아록:두고 온 거..? (잠시 생각하는 듯 눈을 굴린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눈앞을 밝힌 건 초롱이 아니라 당신이 만들어낸 빛망울이었습니다.
 
본능적으로 주변을 살피면, 저쪽 바위에 기대어 놓여진 초롱이 보입니다. 가는 길에 초롱이 없었으면 큰일났겠네요. 휴!
 
시아록:아! 초롱.. 음. 잊고 있었다. (얼른 가서 주워들었다.)
 
다시금 초롱을 손에 쥔 그 때, 초롱이 반짝거립니다.
 
길게 한 번, 짧게 한 번, 길게 한 번, 짧게 한 번.
 
길게 한 번, 길게 한 번, 길게 한 번.
 
길게 한 번, 길게 한 번.
 
짧게 한 번.
 
잠시 쉬고,
 
길게 한 번, 길게 한 번, 길게 한 번.
 
길게 한 번, 짧게 한 번.
 
고장난 것처럼 깜빡이는 초롱을 본 순간, 어떤 기억이 뇌리를 스칩니다.
 
“아들, 오늘 집 좀 들릴게. 반찬 싸갈 테니까 집 잘 지키고 있어야 한다?”
 
“시아록, 괜찮으면 이거 베키한테 전해 줄래? 내가 다리를 다쳐서…”
 
“너희들, 내일 양어장 일 도와주기로 한 거 잊지 않았지?”
 
그간 무작정 맡았던 일들이요!
 
하필이면 엄마의 자취방 방문과 심부름과 일손 돕기로 한 날이 겹칠 건 또 뭐람! 오늘은 모처럼 바빠지겠네요!
 
Come on!
 
쉬지 않고 꺼졌다 켜지는 초롱이 마치 빨리 길을 떠나라는 듯 재촉하는 듯 합니다.

핸드아웃: 초롱 신호

 

수중 인류는 커다랗고 투명한 해파리의 껍질을 잘 꿰매 그 안에 마법으로 만든 초롱을 밝힙니다. 가족 간에는 서로의 초롱을 멀리서도 깜빡거릴 수 있습니다. 초롱이 빛나는 길이와 횟수로 무전기처럼 가벼운 의사소통이 가능합니다.


 
시아록:큰일났다! (깜빡이는 초롱을 멍하게 보다가 불현듯 떠오른 기억에 빽 소리를 질렀다.) 슈슈, 엄마랑 다른 사람들이 우리 찾나봐! 얼른 집에 가야해! (네 손을 잡고는 허겁지겁 움직이기 시작했다.)
 
슈테른:네?? 가, 갑자기 무슨...
자, 잠깐만요. 같이 가요! (발을 몇 번 헛디디다 간신히 시아록의 보폭에 발을 맞춘다.)
 
두 사람은 유적지를 뒤로 하고 마을로 돌아갑니다.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유적지는 멀어져 하나의 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뭍은 어떤 곳일까요? 기억하는 이도, 구전되는 이야기도 없고, 모든 기록은 물 아래에 가라앉으며 소실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흔적인 이 유적지조차…… 더 오랜 시간이 지나면 모래로 쌓은 무덤이 되고 말겠죠.
 
슈테른:... 시아록, 좀 갑작스러운 말이긴 한데...
혹시 뭍에 올라가보고 싶지 않아요?
 
시아록:뭍에..? (정말 갑작스러운 네 말에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어, 궁금하긴 하지..? 막상 올라가라고 하면 무서울 거 같긴 한데.. 역시 궁금하긴 해.
 
슈테른:동감이에요. 무섭긴 한데 궁금하고, 직접 보고 싶고...
어디 물 밖에서도 숨을 쉴 수 있게 해 주는 마법 같은 건 없을까요. (한숨을 폭 쉰다.)
(잠시 생각에 빠져있는 듯 하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 내쳐버린다.) 아, 이럴 때가 아니었죠! 마저 가요.
 
시아록:응? 그래!
 
생각도 잠시, 두 사람은 다시 길을 떠납니다.
 
어두운 길바닥을 초롱 불빛에 의지해 가노라면 콧잔등에 부드러운 것이 톡 떨어집니다.
 
그러나 감각은 분명한데 만져도 손에 묻어나는 게 없습니다.
 
톡, 톡, 톡. 착각이 아니라는 것처럼 그것들은 뺨에, 어깨에, 손등에 떨어집니다.
 
손등에 떨어진 그 부드러운 것은 희고 알갱이가 눈에 보이는 먼지 같습니다. 그러나 먼지와 달리 불기도 전에 스르르 녹아 사라지고 맙니다.
 
슈테른:...??
이게... 뭘까요? 모래도 아니고, 먼지라기엔 너무 잘 바스라지는데...
시아록은 뭔지 아세요?
 
시아록:아니, 나도 처음 보는데...? (고개를 들어 위에서 떨어지는 것을 쳐다본다.)
 
고개를 들면 출처를 알 수 없는 하얀 먼지가 대이동 하는 물고기 떼처럼 소복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유적지에도 온통 이상한 것 뿐이었고, 바쁜 일이 한 번에 겹치질 않나, 갑자기 먼지가 잔뜩 내리질 않나...
 
정말 이상한 하루라고 생각하며 길을 마저 걷습니다.
 
차갑지 않고, 부드럽고, 눈에 보이지만 흔적도 남지 않는.
 
아직 눈의 이름을 알지 못할 때 맞은 첫눈이었습니다.
 
우당탕탕 돌아가는 하루
 
허겁지겁 돌아오느라, 말미잘이 몸을 흔들고 조개가 달그락 좋은 소리를 연주하고 초롱 아귀가 반갑게 머리를 들이미는 것도 전부 지나쳐야 했습니다.
 
돌아온 마을의 풍경은 여전합니다. 백 명 남짓이 사는 작은 마을. 아이들은 더 없고, 나이 터울이 제법 지기 때문에 또래랄 것은 슈테른뿐입니다.
 
친구(라고는 해도 열 살은 차이나지만)가 맡긴 물건은 시아록의 주머니에 잘 들어있습니다.
 
살을 발라 먹고 남은 조개껍데기로 포장한 것입니다. 내용물이 뭔지는 모르겠네요. 분명 베키 씨에게 전해달라고 했었죠.

핸드아웃: 오늘의 할 일

 

• 칼립스 씨의 생선 옮기기(2시간 소요)
• 베키 씨에게 물건 전달하기(30분 소요)
• 뒷마당의 미역 빗기(1시간 소요)


 
할 일을 정리해 보니, 예상보다 유적지에서 너무 정신을 팔린 탓에, 시간이 빠듯하네요.
 
엄마가 마지막 식사할 때쯤 온다고 했으니 적어도 그 때까진 집에 돌아가야 할 텐데! 그뿐인가요, 집도 치워둬야 하고, 미역을 안 빗은 걸 들켰다간 또 된통 혼날지도 모릅니다.
 
마지막 식사까지 남은 시간은 약 3시간입니다. 어떻게 하지?
 
시아록:할게 엄청 많네... 칼립스씨 생선 옮기는 거랑 물건 전달하는 거랑 뒷마당 미역 빗는 거..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꼽으며 해야할 일을 되새긴다.)
 
할 일이 산더미입니다. 뭐부터 해치우는 게 좋을까요?
 
시아록:물건부터 전달하고, 생선 옮기고, 뒷마당 미역 빗으면 될 거 같은데.
 
슈테른:할 일이 그렇게 세 개에요? 심부름이랑 일손 돕는 건 저도 기억나요.
 
시아록:응, 거기다 나중에 엄마도 온다고 했어.
 
슈테른:근데 그게 오늘이었을 줄이야... 그럼 베키 씨네 집부터 들려야겠네요?
헉... 또 혼나겠네요, 정리 하나도 안 했는데...
 
시아록:응, 베키씨 집부터 가자.
나도 그래.. 집 청소 안 했는데.. 엄마한테 혼날 거야.. (조금 시무룩해졌다.)
 
슈테른:... 어쩔 수 없죠. 맡은 일부터 빨리 해결하고 빨리 치우면 될 거에요.(마찬가지로 축 처진 목소리로 말한다.)
 
행선지를 결정하고 베키 씨네 집 쪽으로 발을 뻗으려 하면, 뒤에서 누군가 두 사람을 부릅니다.
 
필립:거기 시아록이랑 슈테른 아니니.
 
마을의 가장 나이 많은 어르신, 필립 씨입니다. 그는 오늘도 여전히 사이가 좋다며 흐뭇해하곤 이렇게 묻습니다.
 
필립:오늘 박물관에 새 전시품이 들어왔다던데, 거기 가니?
 
시아록:(자신들을 부른 필립씨를 쳐다본다.) 박물관에 새 전시품 들어왔어요?! 아.. 보고 싶긴 한데, 그건 아니에요. (고개를 설레 내젓고는) 부탁받은 일들이 있어서 거기 가는 길이에요.
 
슈테른:오늘은 모처럼 바빠요. 어장 일도 도와야 하고, 물건도 전해줘야 하고, 집도 치워야 하고...
박물관... 마침 가려고 했는데, 소식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필립:허허, 부지런히들 사는구나. 이거 먹으련?
 
필립 씨는 그렇게 말하며 꽃소금을 내밉니다. 짭짤한 맛이 일품인, 수중 마을의 사탕쯤 되는 간식입니다.
 
시아록:아, 감사합니다! (사양없이 냉큼 받아든다.)
 
그런데 꽃소금을 건네받으려고 하면, 어느새 필립 씨의 손에서 꽃소금을 담은 주머니가 흘러내려 바닥에 쏟아집니다.
 
필립 씨는 실수인 것처럼 미안하단 인사와 함께 새 꽃소금을 건넵니다. 그리고 말하길,
 
필립:나이를 먹으니 관절이 예전 같지 않아. 자꾸 뻣뻣하구나.
아무렴, 가서 하던 일 마저 하려무나.
 
필립 씨는 천천히 멀어집니다. 오늘따라 조금 불안정해 보이는 걸음걸이입니다.
 
슈테른:(걱정스러운 얼굴로 꾸벅 인사를 하고는 옆을 돌아본다.) ... 시아록, 저도 하나만 주실래요?
왠지 오늘따라 먹고 싶어서요.
 
시아록:응. (당연히 나눠먹을 생각이었으므로 너에게 꽃소금을 건넨다.)
 
슈테른:(꽃소금을 한 움큼 입안에 털어넣고는 손을 닦아낸다.) ...휴, 그럼 이제 진짜로 갈까요? 베키 씨네 집으로요.
 
시아록:(네가 먹는 걸 보고는 자기도 꽃소금을 집어 먹었다.) 응, 가자!
 
두 사람은 종종걸음으로 베키 씨네 집으로 향합니다.
 
문에 대고 똑똑 노크하면, 왼쪽 눈에 긴 흉터를 가진 붉은 머리의 여성이 어깨로 문을 밀고 나옵니다.
 
두 손은 흥건하게 피투성이입니다.
 
베키:아, 혹시 아이ㄴ……
…음? 너희들이 왜 여기 있지.
 
시아록:부탁받은 물건 전달하러 왔는데.. 손 괜찮으세요? (베기씨의 피투성이 손을 보고, 조금 질린 얼굴이 되었다.)
 
베키:아아, 내 피는 아니니 걱정 마라. 그보다 어떤 물건이지?
분명 아이나에게 맡겼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아이나라면... 익숙한 이름입니다. 그야 당신에게 이 심부름을 맡긴 장본인이었으니까요.
 
분명 다리를 다쳤다고 했었죠.
 
시아록: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이아나가 다리를 다쳐서 물건 전달해달라고 저희한테 부탁했거든요. (잘 챙겨두었던 조개껍데기에 포장된 물건을 건낸다.) 이거예요. (그리고 다시 한 번 피투성이인 베키의 손을 보고는 어떡하지, 하고 생각했다.)
 
베키:그래? 부탁받고 대신 전해주러 온 거였군… 고맙다.
지금 손이 더러워서, 물건은 식탁 위에 놔두면 된다.
아, 이러고 있을 게 아니지. 별로 좋은 꼴은 아니지만 들어와.
 
그렇게 말하며 베키 씨는 둘을 집안으로 안내합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백상아리의 사체가 묶여 있습니다.
 
한창 해체 작업 중이었는지 여기저기 붉은 자국이 튀었습니다. 배에 작살이 꿰뚫렸습니다.
 
베키 씨는 마을의 몇 안 되는 사냥꾼입니다. 슈테른을 구해낸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작살로 쓰고자 상어의 이빨을 분리하며, 여상하게 묻습니다.
 
베키:프루헤, 아직 뭔가 기억나는 건 없고?
 
슈테른은 어김없이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기억났다면 진작에 말했을 겁니다.
 
시아록:(집 안에 물건을 놓아두며 커다란 백상아리의 사체를 쳐다보고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 뒤 베키의 말에 슈슈를 쳐다보고 아무말 하지 않았다. 슈슈의 기억에 대해선 자신이 따로 얹을 수 있는 말은 없으니까.)
 
베키:그런가... 아쉽게 됐군.
 
특유의 높낮이 없는 톤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던 찰나,
 
푹. 날카로운 소리가 납니다.
 
베키:아.
 
한 박자 늦은 신음과 함께요.
 
손바닥에 상어의 이빨을 반쯤 박은 베키 씨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당신에게 부탁합니다.
 
베키:거기 약초가 좀 있을 텐데, 주겠나.
 
시아록:아, 네. (주변에서 약초를 찾아 얼른 베키에게 건낸다.) 괜찮으세요?
 
슈테른:베키 씨... (옆에서 충격받은 표정으로 바라본다.) ... 무리하지 마세요.
 
베키:괜찮아. 그냥 조금... 다쳤을 뿐이야. 죽을병 걸린 사람처럼 보지 마라.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약초를 손에 발라 직접 응급처치한다.)
 
시아록:그래도 아픈 건 아픈 거잖아요. 조심하세요. (응급처치하는 걸 보다가) 뭐 도와드릴 일 있어요?
 
베키:아니, 괜찮다.
 
그렇게 말하던 베키 씨는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어버립니다. 혹시 할 말이 더 있는 걸까요?
 
:대인 기능 판정으로 베키 씨와 대화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궁금한 걸 물어볼 수도 있겠죠.
 
시아록:뭔가 저희한테 더 하고 싶은 말 있으세요?
말재주
기준치: 25/12/5
굴림: 23
판정결과: 보통 성공
 
베키 씨는 당신의 말에 잠시 고민하더니 어물쩡 입을 엽니다.
 
베키:아니... 별 건 아니고.
사실, 정말로 아프지 않아. 정확히는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리 나라도 백상아리의 이빨이 박히면 고통스러워하는데 말이지. 문제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거다.
사냥을 하다 보면... 크게 무리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손발이 뻣뻣해지거나 감각이 무뎌질 때가 있어.
은퇴할 때가 된 거겠지.
 
하지만 베키 씨는 이제 겨우 30대에 들어섰는걸요. 어울리지 않는 약한 소리입니다.
 
시아록:언제부터요? 갑자기요? 거기다 베키씨 아직 젊으시잖아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베키: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어느 순간부터 이랬다, 는 감상이야.
나도 그게 의문이다. 좀 더 활동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시아록:어... 뭔가 다른 일은 없었고요..? (뭔가 원인을 찾아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일은 처음 들어보고 잘 모르는 것투성이라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것밖에 안 된다.)
 
베키:다른 일?
... 으음, 이상하게 느껴지는 일이 하나 더 있기는 하지.
요즘 들어 가끔씩, 바닷물이 달더군.
 
시아록:어떤 건데요?
바닷물이 달다고요?
 
베키: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단 맛이 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말이지.
 
시아록:(상상해본 적 없는 말에 잠시 아연해졌다.)
 
듣고도 실감이 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바닷물에서 어떻게 단 맛이 나죠?
 
한 움큼 바닷물을 먹어봐도 그저 밍밍한 맛밖에 안 나는걸요.
 
베키:...아, 너무 오래 잡아뒀나. 가는 길에 저거, 대신 열어주지 않겠나?
한동안 손은 못 쓸 것 같아서 말이다. 더 묻고 싶은 건 없고?
 
시아록:아, 네. 아뇨.. (고개를 잠시 내저었다.) 필요한 일 있으면 부르세요.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하며 문을 열었다.)
 
나가는 길에 슈테른이 대신 조개 껍데기를 열어줍니다. 안에는 멍게 절임이 들어있습니다.
 
베키 씨는 물건을 맡긴 아이나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해달라며 두 사람을 배웅합니다.
 
슈테른:(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꾸벅 인사하고, 돌아서는 베키 씨가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계속 쳐다보았다.)
... 시아록, 아까 얘기 어떻게 생각하세요?
 
시아록:글쎄... 무슨 일이람. 아까 이상한 먼지같은 것도 내렸는데.. 이상한 일만 일어나는 거 같아. (작게 한숨을 폭 쉬었다.)
 
슈테른:... 전 베키 씨가 걱정돼요.
전에 베키 씨가 사냥나가실 때 몰래 따라가본 적이 있는데, 그 땐 집채만한 백상아리를 맨 손으로 때려잡으셨어요. (함성을 질렀다가 들켜서 호되게 혼났다고 덧붙였다.)
그러니까... 아무리 베키 씨가 실력이 떨어지셨다고 해도 벌써부터 은퇴를 생각하시는 건 너무 이상해요.
 
시아록:앗, 그런 적 있어? (잠시 놀랐다가) 그렇지.. 베키씨, 사냥도 잘하시고 해체도 잘 하시니까. 거기다 아직 30대고 한창 일할 때잖아.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람. (제 상식을 벗어난 일들은 대체 어떻게 처리해야하는 걸까. 생각해보지만, 딱히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니 모르겠다.) 일 다하고 조금 알아볼까? 아무것도 알아낼 수 있는 게 없을지도 모르지만... (너를 쳐다본다.)
 
슈테른:(시아록의 말에 하나하나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손발이 뻣뻣해지는 건 그렇다치고 몸에 감각이 없다니, 어떻게 된 걸까요.
으음... 일 다 하고 마지막 식사도 하면 다들 자러 가잖아요. 내일 동네를 좀 돌아다니면서 알아보는 게 좋겠어요. 마침 갈 곳도 있고.
 
시아록:그래. 내일은 부탁받은 일도 없고, 약속같은 것도 없으니까. 오늘 일 다하고, 내일 한 번 알아보자.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 일을 떠올린다.) 이제 칼립스씨한테 가서 생선 옮기는 거 도와드려야겠다.
 
슈테른:아, 그래야죠. 지금 시간이...
 
이런,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마지막 식사까지 앞으로 두 시간 남짓입니다.
 
슈테른:헉... 이만 갈까요? 칼립스 씨네 집으로.
(그렇게 말하며 시아록의 손을 잡고 이끈다. 손에서 초롱이 덜렁덜렁 흔들린다.)
 
칼립스 씨의 집에 도착하면 텅 비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기다리다 지친 칼립스 씨가 이미 어장에 나간 모양입니다!
 
어장까지 달리자! 전원 민첩 판정입니다.
 
슈테른:
민첩
기준치: 40/20/8
굴림: 69
판정결과: 실패
 
시아록: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6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칼립스 씨네 어장으로 가는 길은 그리 익숙하지 않습니다.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걷다 보면 표지판과 함께 저 멀리 칼립스 씨가 보입니다. 아, 다행히 맞게 왔나 보네요.
 
칼립스:어이, 거기! 어서들 와.
젊은 놈들이 벌써부터 이렇게 굼떠서야 되겠어?
 
마을 외곽, 어장에 도착하면 인상도 덩치도 좋은 어부 칼립스가 두 사람을 반깁니다.
 
털털하고 화끈한 구석이 있는 성격으로,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이기도 합니다.
 
어장의 형태는 양식장과 비슷합니다. 넓은 돌을 쌓아 그 안에 생선을 몰아넣고, 촘촘히 꿰맨 그물로 위를 덮습니다.
 
어장 안을 헤엄치는 물고기들은 등은 까맣고 배 쪽은 은빛입니다. 제법 날쌘 물고기 중 하나입니다.
 
칼립스:자, 자. 오늘부터 축양해야 해서 손이 많이 가.
옆 어장에 물을 갈아뒀으니 생선을 잘 잡아서 이쪽으로 옮겨다오.
 
예상은 했지만 역시 보통 일은 아니네요... 그래도 도와주기로 하기도 했고, 마을에 어부는 칼립스 씨 하나뿐이라 일손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시아록:그것만 하면 되는 거죠? (어장 안의 날쌘 물고기를 쳐다본다.)
 
칼립스:엉. 잘 하면 뽀너스도 얹어줄 테니까 신중하게들 해. 실수로 다 놓쳐버리지 말고.
 
어장 안에 헤엄치는 생선은 183마리입니다.
 
도망치는 걸 하나씩 손으로 붙잡아 옆 어장에 옮기려면…… 두 시간은 꼬박 걸리겠네요.
 
:시아록, 생선과 5번 민첩 대항입니다.
 
시아록: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95
판정결과: 실패
 
생선:
민첩
기준치: 50/25/10
굴림: 1
판정결과: 대성공
 
시아록:와 진짜 물고기 너무 많잖아요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5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생선:
민첩
기준치: 50/25/10
굴림: 1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시아록: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79
판정결과: 실패
 
생선:
민첩
기준치: 50/25/10
굴림: 90
판정결과: 실패
 
시아록:힘들어!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2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생선:
민첩
기준치: 50/25/10
굴림: 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책미 (GM):(세상에)
 
하늘:(생선 너무 빠른 거 아닌가요..?)
 
책미 (GM):(그러니까요...)
 
시아록:아, 정말!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82
판정결과: 실패
 
생선:
민첩
기준치: 50/25/10
굴림: 2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시아록:미역.. 빗을 수 있을까...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6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생선:
민첩
기준치: 50/25/10
굴림: 53
판정결과: 실패
 
:조심조심, 정확하게 생선을 옮겼습니다. 소요 시간 30분 차감.
 
당신은 겨우 183마리의 물고기를 전부 옮겼습니다.
 
시아록:하... 힘들었다... (땀을 훔치며 주저앉았다.)
 
앉아서 쉬고 있으면 저쪽에서 마찬가지로 일을 다 끝낸 슈테른이 걸어옵니다.
 
슈테른:시아록, 아까 보니까 계속 끙끙거리던데 무슨 일 있었어요?
 
시아록:물고기 잡는 게... 자꾸 도망가고, 떨어뜨리고.. 빠지고... 힘들었어... (진이 다 빠진 채로 당신에게 괜히 칭얼거린다.)
 
슈테른:아, 물고기 옮기는 일 하셨구나...
...네? 그럼 설마 하나하나 잡아서... 옮기신 거에요?
 
시아록:응... (옆 어장으로 옮긴 물고기들을 노려본다.)
 
슈테른:...... 대단하세요, 전 눈으로도 못 쫓겠던데, 너무 빨라서...
제가 한 것도 쉽지는 않았어요. 어장에 낀 이끼를 하나하나 청소해야 했거든요.
 
시아록:슈슈는 청소했구나... 힘들었겠다.
 
슈테른:그래도 잘 하면 칼립스 씨가 뭐라도 더 주시겠죠... 수고하셨어요. (마찬가지로 진이 다 빠진 손으로 안아준다.)
 
오랜 시간 작업하느라 뻐근한 허리를 두드리고 있으면 칼립스 씨가 무언가 건넵니다.
 
시아록:슈슈도 수고했어.
 
뼈를 바르고 손질해둔 생선 한 바구니입니다. 일부러 넉넉하게 얹어줬다고, 칼립스 씨는 얘기합니다.
 
시아록:오, 뼈도 발라져있네. 감사합니다.
 
칼립스:뭘, 둘 다 고생했다! 잘 들어가.
 
힘들었지만, 보답으로 받은 걸 보니 그닥 나쁘지 않네요! 당신은 슈테른과 함께 집으로 향합니다.
 
마지막 식사까지 30분 정도 남았습니다.
 
슈테른:어떡하죠? 30분 안에 청소할 수 있으려나...
아, 그게 문제가 아니라... 미역도 빗어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시아록:...미역부터 빗자.. 청소는... (작게 한숨을 쉰다.) 엄마한테 혼나는 거 외에 뭐.. 있겠어...? 슈슈도 그냥 우리집에 와있어. 슈슈집은 안 보여주면 안 혼날거야? (자신없는 말투로 얘기한다.)
 
슈테른:(끄덕...) 아니면 변명거리라도 생각해둘까요? 덜 혼나게요...
 
시아록:오늘 일이 많았다고..?
 
슈테른:... 물론 거짓말은 나쁜 거지만... 오, 늘은 유독 일이 많았잖아요.
심부름도 하고 일도 했다고 하면 잘 했다고 칭찬해주시지 않을까요?
 
시아록:그럴까...? (여전히 자신없는 듯하지만, 좀 솔깃한 기분이다.)
 
슈테른:그, 그러면... 심부름도 멀리 다녀왔고, 일도 열심히 해서 늦었다고 해요.
유적지에 다녀온 건... 숨기는 게 좋겠어요.
 
시아록:응, 그렇게 하자. 매번 가지말라고 하는데, 갔다고 얘기하면 엄청 혼날 거야..
 
슈테른:좋아요. ... 일단 미역부터 빗을까요? 둘이 같이 하면 좀 더 수월할 거에요.
 
시아록:응, 좋아. (너와 함께 뒷마당으로 향한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뒷마당의 미역을 빗습니다.
 
하늘하늘 흔들리는 미역은 식사 반찬으로도 쓰고, 끈으로도 쓰고, 커튼으로도 씁니다.
 
매우 유용한 녀석이에요. 그러니 서로 엉켜 끊어지지 않도록 꾸준히 빗질해 줘야 하죠.
 
전원 손놀림 판정.
 
슈테른:
손놀림
기준치: 10/5/2
굴림: 79
판정결과: 실패
 
시아록:
손놀림
기준치: 25/12/5
굴림: 94
판정결과: 실패
 
분명 열심히 빗었는데... 뭐가 잘못되었던 걸까요?
 
아직도 미역은 서로의 몸을 열심히 꼬고 있습니다. 온통 엉킨 그것은 풀어내기도 막막하네요.
 
그럼에도 일단 힘을 줘서 미역을 빗으면... 미역이 끊어져버립니다.
 
시아록:아... 끊겼다... (끊긴 미역을 들고 약간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바닥에 후두둑 떨어지는 미역을 떨리는 손으로 주워보면... 총 70개를 끊어먹었네요.
 
오……. 들키면 죽었다.
 
시아록:큰일났다......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래도 둘이 같이 했더니 아슬아슬하게 마지막 식사 전에는 끝낼 수 있었습니다.
 
남은 건 증거인멸 정도네요.
 
슈테른:......
이거... 어떻게 할까요? (미역을 한가득 들고 있음...)
 
시아록:땅에 묻을까...? (자신의 손에도 미역이 한가득이다.)
 
슈테른:... 좋은 생각이에요.
얕게 파서 묻으면 금방 드러날 텐데... 시아록, 혹시 집에 삽 있어요?
 
시아록:어... 있지 않을까..? (잘 모르겠다. 자취방의 물건들을 떠올려본다.)
 
:시아록, 지능 판정입니다.
 
시아록: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아...! 기억납니다. 정확히 이틀 전 11시 39분경에 삽을 사용했다가 상자 옆에 기대어 놓았습니다!
 
시아록:있다!! (삽이 어딨는지 기억이 나 얼른 집으로 가 삽을 가져왔다.)
 
삽을 챙겼으니 당신은 망설일 것도 없이 땅을 파 끊어먹은 미역을 묻어버립니다.
 
휴! 증거인멸 끝! 이제 남은 건 엄마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 뿐입니다.
 
 
한바탕 끊어먹은 미역을 파묻고, 바닥에 널린 잡동사니들을 적당히 안 보이게 가려두다 보면...
 
여러분이 기다리든 기다리지 않았든, 똑똑 소리가 들립니다.
 
엄마...겠지요. 문을 열까요?
 
시아록:엄마? (문을 조심히 연다.)
 
엄마:아들, 잘 지냈어? (열린 문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잠시 집안을 둘러보더니 들어온다.)
 
시아록:어, 응. 잘 지냈지. (아까 전의 사고들을 머릿속에서 애써 지워내며 엄마가 들어오도록 비켜섰다.)
 
엄마:(문을 닫고 집안으로 들어서고는, 슈테른을 발견하고 반색한다.) 어머, 어디 있나 했더니 여기 있었구나.
마침 잘 됐네. 이거 좀 가져가련? 오랜만에 해봤는데 너무 많이 해버렸지 뭐야. (그렇게 말하며 멍게 절임 한 보따리를 들어 보여준다.)
 
슈테른:아, 감사합니다. 전 괜찮아요. 멍게를 못 먹어서...
 
한창 둘이 대화하고 있는 걸 들으면... 순간 뭔가 이상한 낌새가 듭니다.
 
무언가 잊고 있지 않나요? 기분 탓인가?
 
시아록:뭘 또 그렇게 많이 했어..? 슈슈 원래 멍게 못 먹잖아. (툴툴거리며 멍게절임을 받아냈다.)
 
엄마:그러게 말이다. 나이가 먹으니 이런 것도 조절을 못 해서야 원...
 
시아록:근데 ..그러고보니 아까 엄마가 우리 부르지 않았어....?
 
엄마:아까 초롱 신호로 부른 거 말이니?
 
시아록:응, 그거.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잠깐 부탁할 게 있어서 부른 건데, 너희 둘 다 여기저기를 뒤져도 보이질 않더라구.
그러고 보니 아침 일찍부터 둘 다 어딜 나간 거니? 베키 씨도, 필립 씨도 못 봤다고 하시던데.
 
시아록:아... (잠깐 눈을 데굴 굴리다가 나간 걸 들키면 혼날 게 뻔하기에 거짓말 하기로 한다.) 어, 슈슈랑 잠시 산책, 갔지..?
 
엄마:대체 어디까지 나갔길래 보이지를 않니? 상어한테 쥐도 새도 모르게 물려가기라도 한 줄 알았다, 얘.
어디까지 갔다왔길래 그래? 엄마가 너 있을 만한 곳은 전부 찾아봤는데. 박물관에도 도통 보이질 않고...
 
... 1차 위기입니다! 적당한 롤플레이나 대인기능 판정으로 미심쩍어하는 엄마를 설득할 수 있습니다.
 
시아록:
말재주
기준치: 25/12/5
굴림: 42
판정결과: 실패
아니.. 뭐 조금 앞에...?(우물쭈물거린다.)
 
최대한 그럴듯하게 변명하고 싶은데, 어째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고 얼버부리게만 됩니다.
 
엄마는 영 미심쩍어하는 눈치로 둘을 응시합니다.
 
우스갯소리로 엄마가 모르는 건 없다는 말도 있죠. 어디까지 들킬지 무섭습니다.
 
아무튼 엄마는 잠깐 있다 갈 생각인 듯 식탁에 앉아 주변을 둘러봅니다.
 
엄마:그런데 아들, 방이 이게 뭐니? 너만 있는 것도 아니고 모처럼 슈테른도 왔는데 좀 더 잘 치워뒀어야지. 이게 다 뭐니, 이게. (잔소리를 하며 물건 몇 개를 치워준다.)
 
시아록:아, 나중에 치울게. 오늘 부탁받은 일도 바빴단 말이야..! (엄마 손에 치워지는 물건을 황급히 뺏어 구석에 냅다 박아둔다.)
 
엄마:그래? (손을 털며 일어나려다 어딘가로 시선을 고정한다.) 이거 원래 집에 있었니?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못 보던 게 있네.
 
그렇게 말하며 엄마가 꺼내든 것은... 아까 유적지에서 주워온 구멍 뚫린 막대기입니다!
 
하나면 모를까, 그 뒤에는 얼룩진 원형의 은목걸이도 있습니다!
 
아뿔싸, 미리 치워둘 걸! 저걸 깜빡했네요!
 
엄마:새것치고는 낡았는데, 혹시 주워왔니...?
 
시아록:어.. 전에 주워왔는데.. 어디서 주워왔는지 잊어버렸네. 하하.... (화들짝 놀라선 호다닥, 치워버리며 구석에 다시 던져버린다.)
 
엄마:...흐음, 그래?
 
엄마는... 무언가 귀신같이 알아챈 눈치입니다.
 
시아록:아, 왜! 엄마, 멍게절임 갖다주러 온 거야? (적반하장으로 벌컥 성내며 외친다.)
 
엄마:응, 전해주는 김에 겸사겸사 잘 지내는지 얼굴 좀 보려고 왔더니... 영 시원찮네?
 
시아록:오자마자 잔소리하니까 그렇지...
 
사실 너무 수상하게 굴기는 했죠. 유적지에서 주워온 물건도 들켰고, 행선지도 엄청 어물거리면서 잘했으니... 아무것도 모르는 게 이상합니다.
 
엄마는 화내지도 않고 잠시 가만히 서서 둘을 응시할 뿐입니다. 폭풍전야같네요.
 
엄마:... 후, 그래. 잔소리하는 엄마는 싫다 이거지? 이 어미는 이만 가보련다.
 
다행히 엄마는 팔짱을 끼고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잘 넘어간... 건가?
 
시아록:그런 건 아니고... (괜히 멋쩍게 툴툴거린다.)
가려고?
 
엄마:응, 식사 준비 하는 도중에 왔으니까 이만 가 봐야지.
아무튼 둘 다 위험한 짓 좀 하지 말고. 요즘 마을 분위기가 영 이상하니까.
 
엄마는 그렇게 말하더니 손을 흔들어주곤 유유히 집을 떠납니다.
 
우와... 살았다.
 
시아록:응, 조심히 가. (함께 손을 흔들어주고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슈테른:안녕히가세요... (옆에서 허리를 숙여 인사하더니, 엄마가 보이지 않을 무렵에 털썩 주저앉는다.)
... 다, 다리에 힘 빠져요.
 
시아록:나도 많이 긴장했어.. (바닥에 주저앉은 너를 벌떡 일으켜 의자에 앉혔다.)
 
슈테른:하아아... 안 혼나서 다행이에요. 정말로...(가슴을 쓸어내린다.)
... 긴장 풀리니까 배고파요. 시아록은 오늘 받은 거 드실 거에요?
 
시아록:그러게.. 별로 속은 거 같지도 않지만.... (엄마의 행동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음. 그렇지? 슈슈도 여기서 밥 같이 먹을래? 슈슈 먹을만한 것도 있을 거야!
 
슈테른:... 무서웠어요, 어머님.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를 부르르 떤다.)
아, 잠시만요. 식재료라면 집에 있는데... 잠깐 가서 가져올게요.
아... 밥 먹고 나면 또 청소해야 하려나... (허리를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시아록:음, 그래. 나도 다른 거 차려놓을게.
나도 청소해야지. 저거 정리도 좀 하고.. (구석에 던져놓을 걸 손으로 가리켰다.)
 
슈테른:...이번에야말로 잘 숨겨두셔야 해요. 누가 발견 못 하게... (터덜터덜 문 밖으로 나간다.)
 
시아록:응 그래야겠다.. (네가 나간 걸 보고는 구석에 있는 물건을 주섬주섬 주워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바탕 소동이 지나가고 난 자리는 조금 어지럽지만 고요합니다. 차근차근 정리하다 보면 정신없던 집도 어느새 본래 모습을 되찾네요.
 
당신은 슈테른이 자리를 비운 사이 익숙한 손길로 마지막 식사를 준비합니다. 찬장에서 식기며 먹고 남은 미역을 꺼냅니다.
 
대강 탁자 위에 늘어놓고 나면 간단한 준비는 끝입니다.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또 뭘 할까요?
 
시아록:음.. 청소랑 식사준비도 끝났고.... 뭔가 더 할 게 있던가..? (잠시 생각에 잠긴다.)
 
딱히 생각나는 건 없습니다. 오늘 할 일은 전부 끝냈는 걸요.
 
하지만 그렇기에 하고 싶은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모처럼의 자유시간인걸요.
 
시아록:(생각해봐도 별로 할 게 없다는 걸 알아채고는 식탁 의자에 앉아 축 늘어졌다.) 오늘 진짜 너무 고생했다. 슈슈 올 때까지 기다릴까? (작게 중얼거리고는 아까 다녀온 유적지에 대해 떠올린다. 떠올려봤자 알 수 있는 것도 없지만.)
 
시아록, 지능 판정.
 
시아록: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11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유적지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던 곳입니다. 지금은 많은 것이 묻혀 사람들의 발길도 거의 끊겼지만, 처음 발견되었을 때는 다들 뭐라도 챙겨가려고 우글우글 걸음을 향했었죠.
 
그러고보니 슈테른이 그곳을 처음으로 찾은 이유는 기억 때문입니다. 이곳저곳을 닥치는 대로 뒤지다 보면 뭔가 기억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향했던 유적지가 어느새 정기적으로 들리는 장소가 되어 버렸었죠.
 
나쁠 건 없습니다. 유적지에는 신기한 게 많고, 둘 다 그런 걸 헤집는 건 좋아했으니까요. 지금도 슈테른은 정말 아무것도 기억해내지 못한 걸까요?
 
문득 생각에 빠져 있으면 문이 열립니다.
 
슈테른:시아록, 가지고 왔어요.
 
시아록:아, 왔어? (하던 생각을 끊고 퍼뜩 고개를 들었다.) 여기 앉아.
(제 옆을 가리키며 의자를 빼냈다.)
 
그렇게 말하며 내려놓는 것은 통에 담긴 가지각색의 식재료입니다. 보통 해초라 하면 미역만 떠오르는데, 그는 어디서 공수해오는 건지 알록달록한 풀때기들을 담아서 온다니까요.
 
슈테른:아, 감사해요. (당신이 빼준 의자에 털석 앉는다.)
 
시아록:뭔가 엄청 많네..? (처음 보는 해초? 같은 것들에 눈이 동그래졌다.)
 
슈테른:네, 전에 탐방 갔다가 뭔가 이것저것 발견해서...
다 미역이랑 비슷해보이면서도 달라요. 이건 좀 더 짭짤하고, 이건 식감이 특이하고...
 
시아록:탐방하다가 발견했다고? 그거 그냥 먹어본 거야? (놀란 기색으로 널 쳐다봤다.)
 
슈테른:혹시나 해서 소량만 뜯어먹어보고 문제 없는 것들만 들고 온 거에요.
혹시 몰라서 다른 분들한테도 물어봤는데, 으음... 괜찮을 것 같다고는 하더라고요.
 
시아록:그래도 위험하잖아. (네 어처구니 없는 행동력에 슬쩍 미간이 찌푸려졌다.)
 
슈테른:매번 한 가지 해초만 먹으면 질려서 그렇죠. (괜히 투정부린다.)
 
시아록:그건 그렇지만, 위험하다고. 먹고 큰일났으면 어쩌려고?
 
슈테른:그래서 조금만 먹어본 건데요... (타박하는 말에 할 말이 없는 듯 눈을 피하며 어깨를 움츠린다.)
저 그리고 나름 조심하고 있어요... 다 이 근처에 자라던 것들이에요. 위험하다고 해서 북쪽으로는 가지도 않았는데...
 
시아록:하.. (네 움츠린 어깨에 결국 크게 한숨을 쉬고는) 그래도 다음부터 그러지 마? 이번에야 운 좋아서 그런 거지... 다음엔 괜찮을 거란 보장이 어딨어. 지금 그래도 여러개 되니까 다른 건 시험 안 해볼 거지?
 
슈테른:그, 조금 무모하다고는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름 가려서 들고 온 걸요.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기에 눈치를 잠깐 보더니 한숨을 쉰다.) 다음부턴 안전하다는 해초만 따 올게요... 약속이에요.
 
시아록:그래! 다음엔 하지마.
그래도 그건 입에 맞아?
 
슈테른:네, 제 입에는 맞아요. 시아록한테도 나눠주고 싶은데...
아, 여기요. (통을 뒤적거리더니 요상한 모양의 해조?를 내민다.) 이건 안전하다고 그랬어요. 이게 뭐랬더라? 포...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드셔보실래요?
 
시아록:응. (네게 확답을 받았으니 더이상 타박할 생각은 없는 듯 네 말을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내민 해초를 집어 우물, 먹어본다.)
 
해초를 씹으면... 뭔가 입안에서 토도독 터집니다.
 
맛은 좀 더 달콤한 것 같기도, 짭쪼롬한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나쁘지 않네요. 해초 중에 이런 것도 있던가?
 
시아록:(알던 해초라고는 미역밖에 없었는데, 생각지 못한 새로운 맛에 조금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맛있네.
 
슈테른:그렇죠? 원래는 모양이 예뻐서 장식품으로 쓰려던 건데, 먹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줄기가 아니라 끝에 구슬처럼 달려있는 걸 먹는 거더라고요. 입에 맞으시다니 다행이에요.
참, 어머님이 주신 멍게 절임은 무슨 맛이에요? 전 먹질 못해서.
 
시아록:응, 맛있었어. 신기하네. 꽤 다양한 맛이 나구나.
아, 이거..? (멍게절임을 잠시 봤다.) 으음... 뭔가 그냥 먹으면 비린데, 엄마가 절여놓으면 괜찮더라고? 약간 쌉싸름..하면서 조금 단맛 나.
 
슈테른:그렇구나... 음식도 다 맛이 가지각색이네요. (그렇게 말하더나 해초를 마저 입에 넣는다.)
 
두 사람은 한참 마지막 식사에 집중합니다.
 
미역과 멍게 절임, 아까 받은 생선 몇 마리까지. 오랜만에 반찬도 여러 개 차려 놓고 식기를 움직이다 보면 슈테른이 묻습니다.
 
슈테른:시아록, 혹시 그거 들었어요?
 
시아록:응? 뭘? (우물먹다가 널 바라본다.)
 
슈테른:오늘 밤... 이었나? 밤에 꼭 창문을 보고 있으라던데요, 뭔가가 지나간다고...
그게 뭐였는지는 정확히 못 들었는데, 뭔가... 예쁘다고 하더라고요. 괜찮으면 같이 보실래요?
 
시아록:응? 아니 못 들었는데.. (들은 적 없는 소식에 어리둥절해하던 것도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같이 보자!
 
슈테른:사실 그거 말인데요... (아까 전에 약속한 것도 있어서 한참을 말을 꺼내지 못하다가,) 밖에... 나가서 직접 보고 싶어서요.
위험한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요... 일단 집 근처에만 있다가, 혹시나 싶으면 돌아오면... 안 될까요?
 
시아록:밖에? 밖 어디? 밤에 너무 멀리 나가면 위험할 거야. 완전히 집 근처라면 괜찮아.
 
슈테른:밖에... 정확히는 뒷뜰 쪽이요. 뭐가 보일지도 모르는데 집 안에서 보면 혹시나 놓쳐버릴까봐...
집 근처에서만 볼게요. 정말로요. 그래도 괜찮아요?
 
시아록:음.. 그정도는 괜찮겠지. 혼자 어디 가지마?
 
슈테른:그럼요. 이따 어두워질 때쯤에 나가요, 소화도 시킬 겸...
 
시아록:좋아.
 
당신이 좋다고 말해 주자 슈테른은 기쁜 기색으로 접시를 비워갑니다.
 
식사의 시간도 점점 저물어 갑니다. 이만 뒷정리를 할까요?
 
시아록:먹은 거 정리하고, 좀 있다 나가자. (다 먹은 식기를 들어올리며 네게 얘기한다.)
 
슈테른:(알았다는 듯 끄덕거리며 먹은 통을 정리하고, 차곡차곡 쌓아 두손으로 든다.)
시아록, 그릇 씻을 거에요? 마침 저도 한 번 씻으려고 하는데, 저한테 주시면 씻어 올게요.
 
시아록:아냐, 내가 씻을게. 네 거도 줘.
 
슈테른:안 돼요. 저 안 닦고 그냥 둬서 씻을 게 얼마나 많은데요.
그럼 그냥 각자 씻어요. 이 앞에서 잠깐 씻다 올까요? 마침 물살도 시원할 텐데.
 
시아록:음, 그래. 같이 가자.
 
식사를 한 뒤에 매번 그릇을 닦을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사방이 물인걸요.
 
그래도 가끔씩은 씻어둬야 만에 하나 그릇이 상할 일이 없어집니다. 보통 집안보다는 집 밖에 그릇을 가져가 털어내듯 닦습니다.
 
오랜만에 좀 닦아 볼까요? 시아록, 손놀림 판정.
 
시아록:
손놀림
기준치: 25/12/5
굴림: 88
판정결과: 실패
 
글쎄요... 닦고는 있는데 모양새가 영...
 
그래도 안 닦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생각하며 당신은 꿋꿋하게 그릇을 닦습니다.
 
한편 옆에 있던 슈테른은...
 
시아록:(닦고 있는 자신의 눈에도 영 시원찮은 걸 알면서 꿋꿋하다.)
 
슈테른:
손놀림
기준치: 10/5/2
굴림: 24
판정결과: 실패
 
...이쪽도 다를 것 없이 서툰 손길입니다.
 
그래도 미끈거리는 점액질이 떨어져나가고, 그릇들이 반질반질해지면 기분은 좋네요.
 
그릇을 전부 정리하고 나면, 마침 밀려오는 물살이 손을 닦아줍니다.
 
다 씻은 그릇들을 찬장에 집어넣고, 한숨 돌리고 있으면 몸 이곳저곳이 뻐근합니다.
 
오늘은 나름대로 바쁜 날이었으니까요. 특히 재빠른 물고기들을 집어넣는 작업이 제일 힘들었고요.
 
아, 생각해보니 박물관도 가보고 싶고, 물건을 맡긴 아이나한테 소식도 전해 줘야 하는데...
 
지금은 늦은 시간이라 다들 잠들었을 테니 내일을 기약해야겠네요.
 
침대에 걸터앉아 쉬고 있으면 슈테른이 문득 당신을 부릅니다.
 
슈테른:시아록, 슬슬 나가 볼래요?
 
시아록:응. (뻐근한 어깨를 한 번 돌리고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어서 네게 다가갔다.)
 
밖에 무슨 대단한 게 있다고 소문이 퍼졌을까요. 나갔다가 찬물결만 맞고 돌아오는 건 아닐까요.
 
그런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당신은 슈테른과 집을 나섭니다. 혼자였다면 소식조차 듣지 못했을 테고, 밖에 나가지도 않았을 텐데.
 
바닷물은 차갑지만 옆에 맞잡은 손이 있어 무섭지는 않습니다. 두 사람은 뒷마당을 조금 걸어가 적당한 곳에 앉습니다.
 
슈테른:... 그러고 보니까 정말 아무것도 듣지 못했는데, 뭐가 보일까요?
시아록은 뭐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저는 아까 낮에 본 그 이상한 먼지만 아니면 다 좋을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진짜 상어가 나타나서 우리를 물어가는 것도 사양이고요.
 
시아록:글쎄.. 뭐가 나올지는 상상도 안 가는 걸. 주변에 뭔가 예쁜 게? 맞나? 여튼, 지나갈 거라고는 듣지도 못했고.
상어만 아니면 돼, 상어만.. (고개를 설래 내젓는다.)
 
슈테른:무서운 것만 아니면 좋겠어요. 이왕이면 물고기 떼였으면 좋겠는데...
특히 전에 봤던 건 은색으로 반짝반짝 빛나서 예뻤잖아요.
 
시아록:아, 물고기 떼.. 그러게, 비늘이 예쁜 거면 보기 좋겠다. (주변을 잠시 두리번 거린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머나먼 바다 저편을 응시합니다.
 
생각하고 보면 이 마을은 참 좁아요. 건너건너에 이웃들의 집이, 그들이 켜둔 초롱이 따뜻하게 길을 밝혀주는 걸요.
 
얼마나 기다렸을까요? 바닷물이 작게 일렁입니다. 마치 무언가 온다는 신호를 보내주는 듯.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금 떨궜던 고개를 들면...
 
저쪽에서, 작게 무언가 반짝입니다.
 
자세히 보면 해파리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한 무언가가 해류와 함께 바다를 쓸고 지나갑니다. 팔랑거리는 모양새는 꼭 날개라도 달린 듯합니다.
 
하얗고 투명한데, 안쪽에는 진한 선홍빛 점을 품고 있는. 수십 마리가 함께 펄럭이며 바닷물을 수놓습니다. 그러니까... 저게 뭐였더라?
 
책에서 봤던 것 같은데... 시아록, 지능 판정.
 
시아록: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78
판정결과: 실패
(멀리서 보이는 반짝이는 무언가에 자세히 보려고 눈을 가늘게 떴다. 열심히 생각해보지만, 지금 당장 떠오르는 게 없다.)
뭐였지, 저거..?
 
클... 어쩌구였는데, 플랑크톤? 그거랑은 좀 다른 것 같지만요.
 
아무튼 한눈에 보아도 작습니다. 멀리 있어서 거의 흰 점들처럼 보이는 그것들은 천천히, 천천히, 바닷물을 가르고 지나갑니다.
 
빛이라고는 한 점 들지 않는 이곳에 별이 찾아든 것 같네요.(여러분은 별을 모르겠지만요) 찬란하고도 우아한 자연의 흐름은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벅차오르는 느낌이 듭니다.
 
시아록:예쁘네... (시선이 절로 천천히 지나가는 것들을 따라간다.)
 
슈테른:
교육
기준치: 50/25/10
굴림: 1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클리오네라는 거에요.
 
시아록:아.. 클리오네. 맞아. (네 말을 듣고 책에서 본 게 조금 떠올랐다.)
 
슈테른:아귀의 불빛처럼, 바닷속에서도 스스로 반짝이는 생물들이라고 들었어요. 이렇게 잔뜩 지나가는 건 저도 처음 보는데... 근사하네요.
 
시아록:그러게.. 많이 지나가니까 엄청 예쁘네..
 
슈테른:우리들이 초롱을 들고 우르르 지나가면 저런 느낌일까요? 우리는 클리오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어쩌면 저 클리오네들도 다함께 생활하는 개체들일지도 몰라요.
직접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앉아서 제 무릎을 끌어안더니 다시 눈 앞의 광경에 집중한다.)
 
유유히 떠다니던 그것들은 점점 자취를 감춥니다. 기다린 시간에 비하면 짧지만, 그래도 멋진 광경이었어요.
 
조금 아쉽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한참을 앉아있다 보면 옆에서 슈테른이 당신을 부릅니다.
 
슈테른:다 지나간 것 같고, 늦었는데 이만 돌아갈까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더니 당신에게 잡고 일어나라는 듯 손을 내민다.)
 
시아록:아, 응. (고개를 끄덕이고 네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섰다.) 집에 들어가자.
 
두 사람은 다시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합니다. 사방은 고요하고 잔잔해서, 당신은 조금 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각자의 집 앞에 서서, 슈테른은 손을 흔듭니다.
 
슈테른:시아록, 오늘 고생 많았어요. 유적지에도 같이 가 주셔서 감사해요.
... 즈, 즐거웠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뭐가 민망한지 집으로 쑥 들어가버린다.)
 
시아록:아, 응! 잘자! (아직 제대로 답도 못했는데, 집으로 쏙 들어가버린 너에게 들릴 정도로 조금 큰 소리로 일단 답하고는 문이 닫힌 걸 잠시 바라보다가 저도 집으로 들어갔다.)
 
마침내 모든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부자리를 정돈하고 누우면, 집이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하게 느껴지네요.
 
분명 오늘따라 피곤했기 때문이겠죠. 당신은 깊은 잠을 청합니다.
 
 
깜빡, 깜빡.
 
당신은 눈을 뜹니다. 오랜만에 푹 잤는지, 일으키는 몸이 개운합니다.
 
얼마나 잤는지는 모르겠지만, 밖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말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서는 적어도 두 번째 식사 전이겠죠.
 
오늘도 새로운 하루의 시작입니다. 집을 나서기 전 간단한 준비를 할까요?
 
시아록:오늘 할 일이 뭐 있지?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나 잠시 생각하고는 씻으러 간다.)
 
어디 보자... 오늘의 할 일은,
 
... 없습니다! 굳이 꼽자면 심부름을 시킨 아이나에게 물건을 전했다고 말해주는 것 정도네요.
 
또 새로운 물건이 들어왔다던 박물관도 신경쓰이구요.
 
시아록:아, 나중에 슈슈랑 갔다가 박물관 가보면 되겠다! (오늘의 일을 떠올리고는 호다닥 준비해 집을 나선다.)
 
당신이 기지개를 펴며 집을 나서면, 바로 옆에서 슈테른이 하품을 하며 나란히 걸어나옵니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를 돌아봅니다. 그는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건넵니다.
 
슈테른:아, 안녕하세요.
안녕히 주무셨어요?
 
시아록:안녕, 슈슈! 잘 잤어? 나 엄청 잘 잔 거 같아. 어제 일이 많아서 그랬나, 완전 푹 잤어.
 
슈테른:피곤하셨나 보네요...
전 어제 본 클리오네 떼가 자꾸 눈앞에서 어른거려서... 제대로 못 잤어요.
 
시아록:맞아, 클리오네 엄청 예뻤지!
(어제 밤의 환상적이었던 광경을 떠올려 신난 음성이다.)
 
슈테른:으음... (아직 잠이 깨지 않은 기색으로 눈을 비빈다.) 피곤하지만 할 건 해야죠.
걷다 보면 잠도 깰 거에요... 시아록은 어디 가는 길이에요?
 
시아록:어제 베키씨한테 물건 전해준 거, 이아나씨한테 말해주고 박물관 가려고. 슈슈한테 같이 가자고 하려고 했어. 어때?
 
슈테른:아, 맞다. 박물관만 신경쓰고 있었는데 중요한 걸 빠트릴 뻔 했네요.
당연히 같이 가야죠. 저 머리만 묶고 나올게요...
 
슈테른은 잠시 집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가 준비를 마치고 다시 나옵니다.
 
좋아요. 어디로 갈까요?
 
시아록:이아나씨한테 가자.
 
슈테른:저 아이나 씨 집은 잘 모르는데... 그, 저쪽 바윗가 근처였던가요? (어딘가를 가리킨다.)
.. 걷다 보면 나오겠죠. 시아록이 앞장서세요.
 
시아록:응! (네 손을 잡고 앞장 서서 걷기 시작한다.)
 
아이나 씨의 집은 바위와 암석이 길 한턱에 놓여 찾아가기도 힘들고, 물살도 거센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런 곳에 사는 걸 보면 그도 참 별종입니다. 문을 열면 헤실헤실 웃는 분홍색 곱슬머리의 여성이 여러분을 반겨줍니다.
 
아이나:시아록! 이랑 그 때 봤던 시아록 친구구나. 어서 와~
 
아이나 씨는 슈테른을 제외하면 당신과 나름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이입니다.
 
시아록:안녕, 이아나씨!
 
전에 그의 집 입구를 막아버린 바위를 치워주었고, 그 댓가로 아이나가 바위 틈에서 반짝이는 돌을 건네주었었죠.
 
그 뒤로 당신과 아이나는 종종 부탁을 들어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아이나:아, 미안해. 손님이 왔는데 대접도 못 하구. 지금 내가 다리가 이래서 말야~
 
그렇게 말하며 아이나는 해초를 칭칭 감고 부목을 댄 다리를 보여줍니다.
 
시아록:그런 건 알고 있는걸! 어제 맡긴 거 베키씨한테 갖다줬어!
 
아이나:아, 물건 전해줬구나! 고마워~ 역시 든든하다니까!
 
시아록:이아나씨는 다른 건 부탁할 거 없어? 다리도 그렇고.
 
아이나:응, 없어! 그거 전해주러 여기까지 온 거야?
아, 하나 신경쓰이는 게 있는데 말야, 언니는 건강해?
 
아이나와 베키는 자매 사이입니다. 하지만 둘의 사는 곳이 너무도 달라 서로 분가했습니다.
 
아이나는 베키 씨의 동생입니다. 그리고 그 못지 않게 위험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바위나 모래 틈에 묻힌 반짝이는 돌을 찾아낸다고 하던가요. 보...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명칭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이번에 다리를 다친 것도 바위에 다리를 끼어버려서라고 했었죠.
 
시아록:어.. 베키씨... (어제 들었던 이야기를 해야하나 잠시 고민하지만, 이아나씨는 가족이니까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얘기한다.) 걱정을 얹어주는 거 같아서 좀 그렇긴 한데, 베키씨 뭔가.. 감각이 잘 안 느껴진다고 하더라.. 괜찮은지 모르겠어.
 
아이나:으응??? 감각이 잘 안 느껴진다구??
무슨 말이야, 그게? 언니는 아직 젊은걸. 아니면 뭐 잘못 먹은 거 아니야?
 
시아록:그러니까. 베키씨 아직 젊은데, 그거 때문에 은퇴해야하나 생각도 하시더라. 그리고 바닷물이 가끔 달다고 했어... 이아나씨는 주변에 그런 얘기 들은 거 있어?
(걱정어린 표정으로 이아나씨를 쳐다본다.)
 
아이나:바닷물이 달아?? (처음 소식을 들은 시아록과 같이 오랫동안 끙끙거리다가,) 아니, 모르겠는데?
으음~ 그러고 보니 나야말로 몸에 힘이 없어~ 며칠 앉아만 있었더니 느물느물해진 느낌이야~ (그렇게 말하며 팔다리를 허우적거린다.)
 
시아록:그건 그냥 안 움직여서 그런 거 아니야? 맨날 일하러 나가다가 쉬고 있으니까. (이아나를 보며 어깨를 으쓱인다.) 그래도 아프니까 좀 쉬고 있어.
 
아이나:응, 그래야겠다! 역시 네가 보기에도 며칠 더 쉬어야겠지? 그렇지?!
소식 전해줘서 고마워. 언니한테는 다리가 다 나으면 따로 찾아가서 물어봐야겠다!
 
시아록:그래, 나랑 슈슈는 가볼게.
안녕, 다음에 봐. (이아나에게 손을 흔들고, 슈슈의 손을 잡고 이아나의 집을 나선다.)
 
아이나:웅! 나중에 봐, 둘 다!
 
물건도 전해줬겠다, 당신은 뒤를 돌아 집 근처로 돌아갑니다.
 
슈테른:... 저, 근데 있잖아요.
 
시아록:응? (너를 쳐다본다.)
 
슈테른:베키 씨는 왜... 손발의 감각이 없어지신 걸까요?
시아록은 혹시 그런 경험 없어요? 손발에 힘이 없다든가, 물이 달다든가...
 
걸음을 계속하다 보면 그가 묻습니다. 아이나의 얘기를 듣고 떠오른 거겠죠.
 
시아록:으응..(잠시 생각해보고는) 난 없는데. 그러게, 무슨 일일까. 박물관 다녀와서 나중에 조금 조사해볼까? 뭐부터 알아봐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슈테른:아마 괜한 걱정이겠지만, 아이나 씨도 몸에 힘이 없다고 하니까 괜히 신경쓰여서...
지나가면서 다른 분들한테도 물어볼까요? 혹시 그런 일은 없는지.
 
시아록:그렇긴 하지. 좋아. 그렇게 하자. 이게 병이거나 하면 큰일날 거야.
 
슈테른:(걱정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럼, 일단 박물관부터 가 봐요.
 
시아록:응. 일단 박물관 가자.
 
슈테른:새로 들어온 게 있다니 기대되네요... 어쩌면 유적지에서 봤던 게 있을지도 몰라요. 리키 씨도 거길 둘러보실 테니까.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잡고 있던 손을 끌어 함께 박물관으로 걸어간다.)
 
박물관에는 유적지에서 발굴된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라곤 해도 쓸모를 아는 이가 없으니 그럴싸한 추측은 없지만요.
 
게다가 규모도 아주 작습니다. 우리가 보아온 박물관을 생각하지 마세요. 이건 그러니까, 교내 전시회만도 못한… 길거리 좌판 정도의 구성입니다.
 
작품을 만지지 말라는 안내원도 없고, 접근 금지 팻말도 없고, 작품명도 없습니다.
 
정말 책상과 물건밖에 없는, 조촐한 구성입니다.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더 많아요.
 
자유롭게 둘러보고, 물건을 자세히 살펴보려면 관찰 판정입니다.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건... 뭘까요? 굉장히 오묘하게 생긴 갈색의 무언가가 있습니다.
 
가장자리는 하나도 각진 것 없이 온통 울퉁불퉁하고, 사람처럼 머리와 몸통과 팔다리가 나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인간과 닮았냐 하면 글쎄요. 우리는 비늘 덕에 미끈미끈하고 우둘투둘한데, 이건...
 
온몸이 무언가로 덮여 있습니다. 미늘이라기엔 뭉툭하고, 잘 꺾이네요. 그렇다고 머리카락이라기엔 너무 짧고 두껍습니다.
 
무엇보다 이건 너무 작아요. 품 안에 꼭 들어옵니다. 들어보면 주제에 돌처럼 무겁지만요.
 
시아록:이건 뭘까...? (슬쩍 집어들어 이리저리 보고는 슈슈에게 가까이 보여준다.) 슈슈는 이거 어떻게 생각해?
 
슈테른:... 어, 이게 뭘까요?
이게 팔이고, 이게 다리인가...? 으음, 뭔가 앉아있는 자세네요.
이 딱딱한 건 또 뭐지...? 얼굴에 이상한 점 같은 게 박혀 있어요.
 
그러고 보면, 얼굴... 이라기엔 너무 큰 덩어리 쪽에 검은 점이 세 개 박혔습니다.
 
그 중 두 개는 비교적 위에, 하나는 아래에 박혀 있는데 남은 하나는 훨씬 크고 딱딱하네요.
 
시아록:그러게. 이상하다 진짜. 사람? 같은 모양새이긴 한데.. 눈, 코? 같은 건가?
 
슈테른:이게... 코라고요? 이렇게 납작한데도요?
 
시아록:뭐.. 육지 살던 사람들은 그렇게 생겼을 수도 있지 않을까...?
 
슈테른:하긴, 세상은 넓고 어종은 많으니까... 이, 이렇게 생긴 물고기는 본 적 없지만요.
 
시아록:생각해보면 육지에서 살면 이런 비늘이랑 아가미 필요없을지도 모르니까!
 
슈테른:사람... 일까요? 뭍에 살던...? (더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전 그래도, 온몸이 이렇게... 보드라운? 걸로 덮인 건 싫어요.
무척 더울 것 같잖아요... 물은 차가우니까 그렇다고 쳐도.
 
시아록:그러게, 그건 나도 싫을 거 같아. (웃고는 다시 제자리에 내려다 두었다.)
 
당신은 이상한 갈색 덩어리를 책상 위에 내려둡니다.
 
더 살펴보려면 관찰 판정, 다 둘러봤다 싶으면 지능 판정.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2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다른 건 뭐 없나?
 
이건... 굉장히 동그랗고 납작합니다.
 
가장자리가 조금 찌그러졌지만, 그래도 몸을 부풀린 복어도 이것만큼 동그랗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동시에 고리 모양의 뼈대만 남아있고, 질감도 특이합니다.
 
안쪽을 만지면 아주 딱딱하고 단단한데, 바깥쪽을 만지면 말미잘에 누운 듯 폭신합니다.
 
물건은 품에 넣기엔 조금 크지만, 팔을 벌리지 않고도 두 손으로 쥐어지는 크기입니다.
 
그리고, 어제 주웠던 장신구?처럼 이것도 이리저리 꼬인 뼈대 같은 게 있네요. 대체 어디에 쓰던 걸까요? 이건 장식이라기엔 너무 무거운데 말이에요.
 
시아록:이건 뭐지? 엄청 동그랗게 생겼네. 생각보다 무겁고.. (손으로 들고 아래 위로 움직여본다.)
 
아래 위로 움직이면... 제법 묵직합니다! 그것 말고는 잘 모르겠지만요.
 
시아록:육지엔 이상한 물건들 뿐이다. 그치? 뭐할 때 사용했을까? 장식하기엔 너무 무거운데
 
슈테른:...? (물건을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역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뭍의 사람들은... 대체 뭘 만든 걸까요?
지금까지 본 것도 충분히 이상했는데 이건 더하네요. 장식도 아니고 도구도 아닌 것 같은데 무겁기만 하다니...
아니면 동그라니까 어딘가에 끼우는 걸까요? 어제 본 그 하얀 석판처럼요.
아, 그 석판... 들고 나올 걸 그랬나.
 
시아록:아, 어제 그거.. 들고다니긴 무거울 거 같아서 그랬는데. 그럴 걸 그랬나? (생각해보지만, 지금으로선 어쩔 수 없는 거 같다.) 시간 되면 나중에 유적지에 가서 가져올까?
 
슈테른:어, 정말요? 괜찮으시겠어요? (그렇게 물으면서도 기쁜 기색을 감추질 못한다.) 좋아요, 그럼... 같이 가요.
저도 두 개는 들 수 있으니까, 제가 알아서 챙길게요.
 
시아록:응, 이번엔 그것만 목표로 가면 좀 괜찮을 거 같은걸! 석판 무거우면 내가 들래! 다른거 뭐 더 챙길게 있나 싶긴 하지만. (어제 둘러보았던 물건들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슈테른:으음, 바로 직후에 가는 건데 새로운 게 있을까요... 못다 살펴본 건 있을지도 모르지만요.
알겠어요. 더 둘러볼 거에요?
 
시아록:한 번만 더 둘러보면 끝날 거 같은데!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3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건... 역시 딱딱하네요. 대다수의 뭍의 물건처럼 말이에요.
 
드물게도 책상 밑에 해설판이 붙어 있습니다. 들어서 읽어 보면...
 
'아마 초음파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는 도구였던 것 같다. 신호를 받아들이기 위한 장치가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라고 적혀 있고, 그 말대로 긴 막대기가 달려 있습니다. 이게 그 신호를 받아들이는 장치인 걸까요?
 
시아록:헤, 설명이 있네. 근데 초음파로 신호? (긴 막대를 만져본다.)
 
긴 막대는 세게 쥐면 부러질 듯 가늘게 쭉 뻗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신호를 받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애초에 초음파인데 이런 장치까지 필요한가? 뭍의 사람들은 귀가 안 좋았던 걸까요? 
 
물건은 손잡이도 달려 있고 나름 구색을 갖추었습니다.
 
위쪽에 각진 무언가가 있는데 누르면 조개를 열었다 닫는 것마냥 달칵, 달칵 소리가 납니다.
 
네 번째의 그 각진 무언가를 누르면, 세상에!
 
물건의 앞부분? 뚜껑? 같은 게 열립니다. 신기하네요. 상자였던 걸까요?
 
시아록:열렸다! (깜짝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슈테른:.... 이것도 역시 뭔지는 모르겠는데... 신기하네요.
여기다 뭘 넣고 다닌 걸까요? 텅 비었는데.
 
시아록:그러게, 뭘 넣었을까? (열린 안쪽의 크기를 가늠해본다.)
 
크기는... 오묘합니다. 손바닥보단 작고, 조개보단 크네요.
 
넣는 곳은 각져 있어, 무언가 끼워넣는 구멍처럼도 보입니다.
 
시아록:뭔가 들어간다고 해도 엄청 뭔가.. 한정적일 거 같아. 이런 크기 물건이 뭐있지..?
 
슈테른:집에 이렇게까지 딱딱하게 각진 물건은 없었던 것 같은데...
들어가는 것도 아마... 뭍의 물건이지 않을까요?
 
시아록:그렇겠지.. 뭔가 역시 제대로 알 수 있는 건 없네!
 
슈테른:(끄덕이는 것으로 수긍한 뒤 물건을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어, 그러고 보니 새로 들어왔다는 건 어디 있을까요?
 
그 말을 듣고 생각해봅니다. 시아록, 지능 판정.
 
시아록: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84
판정결과: 실패
 
필립 씨는 분명히 새로운 유물이 들어왔다고 했죠?
 
한 바퀴를 둘러봐도 평소와 다를 것은 없는데…… 어디에 있는 거지? 아직인가?
 
시아록:으음.. 필립씨가 새로 유물 들어왔다고 하셨던 거 같은데.... 슈슈는 기억나? (주변을 둘러보지만, 헷갈리는 듯 하다.)
 
슈테른:저도 잘 모르겠는데... 아직 리키 씨가 연구중이신 걸까요? (고개를 갸웃거린다.)
 
생각에 잠겨 있으면 뒤에서 두 사람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리키:아, 반가워요, 단골손님들.
 
바로 박물관 담당자인 리키 씨입니다.
 
시아록:아, 리키씨.
 
리키:오늘 새로 들어온 유물을 보러 온 거죠? 마침 준비하던 중이었어요.
 
알이 없는 둥근 안경을 쓴 리키 씨는 뭍의 세계를 동경해서 두 사람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유적지에서 오랜 시간을 보냅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게 무슨 재미인지 모르겠다고 말하지만요.
 
리키:여러분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이런 거에 영 관심이 없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리키 씨가 내미는 건 몇 장의 그림입니다.
 
손바닥만 한 그림이 그려진 종이는 여태 만져본 것과 다르게, 쭈글쭈글하거나 흐물흐물하지 않고 뻣뻣한데다 매끄럽네요.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덕분에 안쪽의 그림도 제법 선명합니다.
 
첫 번째 그림은 하늘색 배경에 흰색…… 덩어리가 떠다닙니다. 이게 뭐지?
 
해파리 같기도 하고, 물거품 같기도 한 덩어리는 모양도 크기도 모두 제각각입니다.
 
게다가 가운데에는 희고 둥근 구멍이 뚫려있습니다. 색칠을 하다 만 건가?
 
시아록:이게 이번에 발견한 새 유물이에요? (리키가 내민 물건을 자세히 쳐다본다.)
그림이 되게 잘 보인다. 신기하네요. (매번 흐물해진 종이 탓에 제대로 그림을 본 적이 없다. 구멍을 가리키며) 이건 뭐예요?
 
리키:맞아요, 총 세 장의 그림인데...
이 그림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우선 쭉 볼래요?
 
시아록:네, 볼래요.
 
리키:이 구멍은, 구멍이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을 가릴 만큼 눈부신 것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그럼, 여기 두번째 그림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그림을 넘겨 보여줍니다. 두 번째 그림은 불그스름한 주홍색으로 칠한 배경에 샛노란 반원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습니다.
 
아, 며칠 전에 봤던 뿔산호의 색이 딱 저럤었죠. 아주 강렬하고, 알록달록하니 붉어서 보는 게 즐거웠습니다.
 
반원은 바닥에 바짝 붙어 그려진 탓에 원래 반만 있는 건지, 완벽한 동그라미였는지 모르겠네요.
 
시아록:첫번째 그림이랑 이어지는 거예요? (알록달록한 색들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리키:맞아요. 겉으로 보기엔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기록이 있었어요. 우선 세 번째 그림도 볼래요?
 
시아록:응, 보여주세요.
 
리키:그럼 잘 봐요. (세 번째 그림을 펴 보여준다.)
 
세 번째 그림은 남색 배경에 새하얗고 새파란 점들이 톡톡 찍혀있습니다. 빛나는 물고기의 비늘 같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 아주 조금 남은 손톱이 그려져 있습니다.
 
어라, 그런데 이 손톱, 얼룩덜룩하네요…….
 
은색의 그것을 바라보고 있자니 무언가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슈테른:... 전 잘 모르겠어요.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데, 이 세 그림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 거에요?
 
시아록:(슈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리키의 대답을 기다린다.)
 
두 사람의 어리둥절한 눈빛에 리키 씨는 목을 큼큼, 가다듬고는 입을 엽니다.
 
리키:이건, 뭍에서만 볼 수 있는 하늘이에요.
물 위에는 하늘이 있고, 해가 뜨고, 달이 지며 낮과 밤을 가른대요.
(첫 번째의 구멍을 가리키며) 이게 해고, (세 번째의 얼룩진 동그라미와 파란 점들을 가리키곤) 이게 달. 이건 별이에요.
달은 모양이 여러 가지로 그려지더라고요. 손톱 모양도 있고 둥근 모양도 있고. 여러 개인 게 아닐까요?
 
하늘, 해와 달과 별. 낮과 밤…….
 
추상적이기만 합니다. 머리 위의 풍경이 시시각각 변한다면 불안해서 어떻게 살죠?
 
이런 것들을 지고 살다니, 그러다가 어느 날 뚝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한단 말이에요?
 
시아록:뭔가.. 무섭네.. 육지는 원래 그런 거예요?
 
슈테른:왜, 어떻게 변하는 거에요? 바다는 언제든 똑같은 광경인데. 계속 바뀌는 거에요?
 
리키:자세한 건 나와있지 않지만, 뭍의 사람들은 이런 하늘을 지고 살아왔다고 해요.
바다 위에는 뭍이 있고, 뭍 위에는 하늘이 있고. 그것들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사람들을 풍요롭게도, 멸망 직전까지 내몰기도 한 것이 그 하늘이라는 건데...
 
시아록:하늘을 지고 살았다고요? 엄청 무거웠겠다. 그러고 어떻게 일상생활을 하지? 거기다 멸망 이유가 하늘이라니... 육지는 무서운 곳이네요. (조금 질린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
 
리키:뭍의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우리보다도 갑절은 더 튼튼한 팔다리가 있었을지도 모르죠. 하늘을 떠받들 수 있도록!
하늘이 멸망을 가져다줬다고 나와있는 책도, 전혀 다르게 적혀있는 책도 있어요. 멸망을 맞은 이유는 어쩌면 한 가지가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시아록:으음.. 그런가요. 그래도 들으니까 육지에는 별로 나가고 싶진 않네요. 육지에 올라가자마자 하늘을 짊어져야 할 거 잖아요. 육지 사람들이 우리보다 훨씬 튼튼했다면 우린 큰일나겠어요..
 
리키:우리들이 궁금해 죽을 것 같아도 뭍에는 나가지 않는 건, 숨을 못 쉬는 것도 있지만 그런 이유도 있죠.
잘못하면 우리마저 멸종해 버릴 지도 모르니까요! 오, 그런 건 사양이에요. 저는 조금 더 뭍의 흔적을 좇고 싶어요.
아, 그리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들도 있어요, 여러분도 어제 봤죠?
물고기 알보다, 진주보다, 어쩌면 모래보다 훨씬 가볍고 먼지같은 것들.
 
시아록:어제 그 먼지 같은 거..?
봤어요.
 
리키:똑같지는 않겠지만, 뭍에도 비슷한 게 있어요. 스노라고 부른대요.
 
슈테른:뭍에, 비슷한 게 있다고요...?
 
시아록:스노? (리키의 말을 한 번 따라 읊고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슈테른:스노...? (어디서 들어본 건 아닌가 기억을 뒤져봤지만 전혀 모르겠는지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 스노, 라는 게 내렸는데... 내리다가 감쪽같이 사라졌어요. 그건 뭐였을까요?
플랑크톤의 시체들이 가라앉는 광경도 그것과는 달랐어요. 우린 한 번도 그걸 본 적이 없어요...
 
시아록:맞아... 요즘 좀 주변이 이상한 거 같아요.
 
리키:오, 사실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마 스노,가 내리다가 바다에까지 들어온 게 아닐까요?
 
시아록:그게 바다까지요..? 괜찮은 건가...
 
리키:스노는 아주 차갑고 하얗고 부드럽고, 또 가볍다고 했어요. 얼추 비슷하지만, 우리가 본 스노는 바닥에 쌓이지 않았죠.
지상에 스노가 내리면, 뭍의 모든 것들이 하얗게 되곤 했대요.
레―라는 것도 있어요. 위는 뾰족하고 아래는 동그란 모양이에요.
황홀하지 않아요? 내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시아록:레? 그건 또 뭐예요..? (고개를 갸웃거리다 마지막 리키의 말에 고개를 내젓는다.) 그래도 바다 밖에 올라갈 생각은 하지 마요. 위험하다고요.
 
리키:밖으로!
 
리키 씨는 뭍의 것들이 신기하고 황홀한 듯 어린아이처럼 눈을 빛냅니다. 목소리가 언제나처럼 들떠 있습니다.
 
리키:사실 뭍으로 올라가는 건, 전에 한 번 시도해보았어요. 올라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머리가 멍하고 숨이 막혀서 다시 가라앉고 말았지만요.
오, 평생 선망의 대상인 그곳은 우리의 발길이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이에요...
 
시아록:네? 올라가 본 거예요? (경악어린 표정으로 리키를 쳐다보았다.)
 
리키:레― 라는 건 기록상으로는 차갑고, 따갑다고 전해져요.
하지만 어떤 때는 시원하고, 어떤 때는 성분이 지독해서 맞기만 해도 머리카락이 빠진다고들 하더라고요.
하늘에서 그런 게 내린다니 직접 보고 싶었죠! 하지만 수면 위로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힘이 빠지고 말았어요...
 
한참을 신나게 떠들던 리키 씨의 목소리는 점점 잦아집니다. 그도 슬슬 목이 아팠던 걸까요.
 
리키:아무튼, 설명은 여기까지에요. 더 궁금한 거 있어요?
 
시아록:음.... 별 건 없어요. 근데 이건 어디서 구했어요? 그 유적지?
 
리키:예, 정확히는 유적지에 있던 상자에서!
상자는 또 우리가 알던 것과 달라요. 입구는 좁은데, 딱딱하게 각져 있고, 누르면 움푹 패이더라고요.
차라리 주머니를 닮았다고 할 정도였지만, 그 안에서 이런 것들이 발견되었을 때는 정말이지 거대 진주를 캔 기분이었어요.
 
시아록:그렇구나. 이번에 새로 발견한 유물은 그게 다예요?
 
리키:네. 이게 전부네요.
또 놀러와요, 다음엔 더 신기한 유물이 기다릴 거에요.
 
시아록:네, 그럴게요. 보여주고 설명해줘서 고마워요!
 
슈테른:오늘도 감사했어요.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이 등을 돌리듯 리키 씨도 발을 돌립니다. 소중한 꿀단지를 아는 것마냥 유물을 두 손에 꼭 쥐고 저쪽으로 사라집니다.
 
여러분은 박물관 앞으로 나옵니다. 이제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차에...
 
꼬르륵.
 
누군가의 배가 허기를 알립니다. 그러고 보면 둘 다 첫 번째 식사도 거르고 여기까지 왔었죠.
 
시아록:아, 배고프네..
밥 먹으러 가자.
 
슈테른:저도요... 온몸에 힘 빠져요.
어제 먹던 거 그냥 드실래요? 아니면 식재료를 얻어 볼까요?
 
리키:오, 둘 다 식사하러 가나요?
 
둘이서 그렇게 얘기하고 있으면 뒤에서 리키 씨가 걸어나옵니다.
 
시아록:네, 밥 먹으려고요.
 
리키:여태 박물관에만 있느라 바람 쐬러 나왔는데...
나도 뭘 좀 먹어야겠... 음?
 
리키 씨는 말을 하다 말고 입맛을 다십니다. 그리고 이야기합니다.
 
리키:요즘 물이 종종 달지 않아요?
자꾸 단맛이 느껴진단 말이에요. 새우를 먹을 때처럼요.
 
시아록:네? 아뇨...? (고개를 내저으며 베키씨에게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어... 리키씨 손발이 둔하거나 하진 않고요...? (어물쩍 물어본다.)
(갑자기 이렇게 알아보려던 상황을 리키가 얘기해줄 줄은 몰랐다.)
 
리키:(의외의 말이었는지 평소보다 커진 눈으로 얘기한다.) 네, 네... 어떻게 알았어요?
요즘 하도 땅을 팠더니, 손발이 좀 뻣뻣하더라고요.
 
시아록:그렇구나... (머슥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키:(의아했는지 고개를 기울였지만, 그냥 물어본 거라고 생각했는지 이내 고개를 돌린다.) 마침 생각난 김에 새우를 좀 먹어볼까요.
둘 다, 새우 좋아해요? 나한테 오면 나눠줄 수도 있어요.
 
시아록:전 좋아해요. 슈슈는 못 먹을 거 같은데, 저 조금만 챙겨주세요.
 
리키:음, 그럼 잠깐만 기다려요.
아니지, 조금 있다 다시 올래요? 지금 당장은 못 구하고, 이따 새우잡이가 돌아오면 구해다 줄게요.
 
시아록:음, 네 그럴게요. 언제쯤 오면 돼요?
 
리키:글쎄... 대충 마지막 식사 전에는 와요. 딱 그맘때쯤이면 그들도 돌아오니까.
 
시아록:음, 알았어요! 그럼 나중에 봐요. (손을 흔들고 슈슈를 데리고 박물관을 나선다.)
 
둘은 리키 씨와 인사하고 다시 길을 걷습니다.
 
그러고 보면, 리키 씨를 기다리면서 뭘 하면 좋을까요?
 
시아록:음.. 우리 할 거 없는데, 잠시 유적지 가서 석판만 챙겨올까? 거기까지 다녀오기엔 좀 오래 걸리려나?
 
슈테른:할 일도 없는데 지금 갔다오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럼 유적지로...
 
슈테른은 말하다 말고 뭔가 떠올랐는지 아, 하고 탄성을 냅니다.
 
슈테른:시아록, 혹시 달리기 시합 할래요?
진 사람은 상대가 원하는 거 하나 들어주기. 어때요?
 
시아록:응? 달리기 시합? 갑자기? (의아한 듯 눈이 동그래져서 너를 쳐다본다.)
 
슈테른:(끄덕거리며 말을 잇는다.) 전에도 가끔 했었잖아요. 내기는 안 했지만요.
 
시아록:어. 음.. 상관은 없지만. (얼떨떨해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슈테른:그럼 셋 둘 하나 하면 뛰는 거에요.
셋, 둘...
하나! (말하자마자 달리기 시작한다.)
 
유적지까지 달리기 시합입니다. 건강 대항 판정입니다.
 
시아록:
건강
기준치: 75/37/15
굴림: 3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슈테른:
건강
기준치: 75/37/15
굴림: 5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얼떨떨한 상태에서도 발은 착실히 움직여 목적지에 다다릅니다.
 
생각해보면 시합을 하면 둘 다 승부욕 때문인지 평소보다 발이 빨리 움직였죠. 심심할 때면 숨바꼭질을 하거나, 이걸 했습니다.
 
뒤에서 한 발 늦은 슈테른이 천천히 걸어옵니다. 지쳤는지 숨을 헐떡이네요.
 
슈테른:아... 많이 뛰어봤으니까 이번에야말로 이길 줄 알았는데....
 
시아록:괜찮아? (몇 번 숨을 몰아쉰 후, 금방 숨을 되돌리고는 지친 듯한 네 등을 두어번 토닥인다.)
 
슈테른:... 괜찮아요... (잠시 당신의 팔을 담고 숨을 내쉬다 다시 바로 선다.) 그래도 평소보단 빨리 왔네요.
제가 졌으니까... 뭐 해드릴까요? 나중에 부탁하셔도 괜찮아요.
 
시아록:으음.. 지금 생각나는 건 없는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나중에 있으면 할게.
 
슈테른:(고개를 끄덕여 수긍한다.) 그럼 이제...
석판 가지러 가야죠. 어디서 봤었더라...
 
시아록:어디서 봤지? 여기저기 돌아다녔더니.. 음..
 
함께 머리를 맞댑니다. 전원 지능 판정.
 
시아록: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6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슈테른:
지능
기준치: 55/27/11
굴림: 57
판정결과: 실패
 
슈테른은 여전히 갈피를 못 잡은 표정이지만, 당신은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분명 지붕 안에 있었죠? 은색 상자와 함께 말이에요.
 
시아록:아, 그 뭔가 뒤집혀있던 지붕에 있었다! (퍼뜩 생각이 난 듯 네게 얘기한다.)
 
슈테른:아, 맞다. 그랬었죠! (기억난다는 듯 손벽을 짝 친다.)
아, 맞아요. 거기서 목걸이도 발견하고, 실수로 손도 다쳤었잖아요. 기억 나요.
그럼 지붕 안으로 들어가야겠죠? 구멍 쪽으로 가요. 제가 앞장설게요.
 
시아록:응. (고개를 끄덕이고는 너와 함께 지붕으로 향한다.)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 구멍 안으로 들어가면...
 
여전히 그 기묘한 내부가 펼쳐집니다. 바닥이 천장이고, 천장이 바닥이네요.
 
그 속에서 하얀 석판 몇 개가 보입니다. 서너 개 정도는 온전하게 남아 있고, 나머지는 흠집이 남거나 갈라졌습니다.
 
슈테른:아, 다행이다... 아직 남아있네요. 못 찾으면 어쩌나 했는데.
(석판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두 개만 챙긴다.) 전 이거면 됐고, 시아록은 뭐 찾는 거 있어요?
 
시아록:음, 아니... 그때 많이 뒤져본 거 같고.. 그것만 챙기면 괜찮을 거 같아!
 
슈테른:(알겠다고 말하며 석판을 두 손으로 받치듯 쥐며 걸어간다.) 그러고 보니 여기도 꽤 넓네요.
정말 집이었을까요? 한 사람이 살기에는 넓어 보이는데.
 
시아록:맞아, 크긴 커. 흠.. 여럿에서 같이 살았을까?
 
슈테른:아마 그럴 것 같은데, 침대가 하나도 없는 게 좀 걸려요.
저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걸까요? 아니면 뭍의 침대를 못 알아본 걸까요?
... 아무튼 이만 가요. 이만큼 서둘렀으니 돌아갈 땐 걸어도 되겠죠.
 
시아록:여긴 넒으니까 다 못 봐서 그럴 수도 있고.. (어깨를 으쓱이고는 네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응, 이제 돌아가자.
 
슈테른:(끄덕이며 한 손에 초롱을 들더니 멈칫한다.) ... 어제처럼 깜빡이지는 않죠? 초롱.
 
시아록:응, 그렇진 않는 거 같아. (초롱을 한 번 들여다본다.)
딴데 샌 것도 아니고 바로 챙겨서 나왔으니까 괜찮을 거야.
 
슈테른:그럼 시간도 지났으니까 리키 씨한테 다시 가 봐요.
그러고보니 리키 씨... 괜찮으시려나... (중얼거리며 시아록의 손을 잡고 다시 마을 쪽으로 돌아간다.)
 
유적지를 다녀온 걸 들키지 않게 조심조심 걸어와 평소처럼 지나가면,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습니다.
 
리키 씨는 약속대로 새우를 한 상자 구해왔습니다. 회색빛의 새우들은 껍질은 딱딱해도 속살은 부드럽습니다.
 
리키:오, 둘 다 왔어요?
자, 어디. 얼마나 줄까요? (새우를 이리저리 헤집더니 묻는다.)
 
시아록:적당히요? 많이 주시면 잘 먹을 거고요? (장난스럽게 얘기하며 이를 들어내고 웃었다.)
 
리키:그럼 어디... 이 정도면 될까요? (한주먹만 한 큼직한 새우를 열 마리 정도 주머니에 넣는다.)
 
시아록:네, 그정도면 돼요. 고마워요.
 
리키 씨는 새우 주머니를 단단히 묶어 시아록에게 건넵니다.
 
그러나 웃는 얼굴은 한순간에 굳어집니다. 주머니가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리키:아, 미안해요. 요즘 손이 영... 아까도 말했죠? 좀 뻣뻣해서요.
 
그러더니 새우에 상처는 없을 거라며 다시 주머니를 쥐여줍니다.
 
... 묘하게 기시감이 듭니다.
 
시아록:괜찮아요? (주머니를 받으며 걱정스레 묻는다.)
 
리키:괜찮아요, 이 정도야...
아까 잘못해서 꽃게한테라도 물렸나 보네요, 손에 힘이 다 풀리고. 하하.
 
시아록:으음.. 조심하세요. (절로 살짝 미간이 찌푸려졌다.)
 
리키:걱정 말아요. 생활하는 데 크게 불편한 정도는 아니니까...
둘 다 잘 들어가요. 새우 맛있게 먹어요!
 
리키 씨는 그렇게 말하며 두 사람을 배웅해줍니다. 흔들어주는 손이 오늘따라 뻣뻣해 보이는 건 착각일까요?
 
슈테른은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조심스레 입을 엽니다.
 
슈테른:... 시아록.
역시 뭔가 이상하죠?
 
시아록:응.. 베키씨랑 증상 비슷하지? 사실 전에 필립씨도 저 증상 아닐까?
 
슈테른:... 필립 씨도.
맞아요, 필립 씨도... 분명히 그러셨잖아요.
나이가 들어서인지 관절이 영 뻣뻣하다고...
 
시아록:응.. 좀 이상하지..?
 
슈테른:... 어떻게 된 걸까요. (심각한 표저으로 눈을 찌푸리고 있다.)
같은 마을에서 세 명이나 같은 증상이 나타나다니...
 
시아록:더 있을 수도 있겠다..
 
슈테른:이게 병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베키 씨처럼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은 다칠지도 몰라요.
제일 마음에 걸리는 건 아이나 씨 정도인데... 어떻게 하면 좋죠?
 
시아록:으음... 일단 알아보자. 뭔가 공통점 같은 게 있을지도 몰라.
 
슈테른:무엇부터... 어디서 알아볼까요?
우선 베키 씨네 집부터 가볼까요? 괜찮으신지 확인도 할 겸이요.
 
시아록:응, 그렇게 하자.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뭔가 특이한 일이 있었는지도 한 번 물어보자.
 
손발이 뻣뻣해지는 사람들. 우리는 알 수 없는 바다의 단내.
 
우리는 이 현상이 병인지, 치료법이나 해결책은 있는지, 사람들의 상태는 괜찮은지 알고 싶었지만...
 
몇 번을 물어도 아무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입모아 말했습니다.
 
아무런 징조도 없고, 왜 이렇게 됐는지도 모르겠다고요.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상황이 그저 기우이길 바라면서요.
 
그리고, 시간은 물결처럼 흘러 한 달이 지났습니다.
 
한 달 후
 
변화가 없고 잔잔하던 수중 세계에는 하나둘 파문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못 본 눈이 두 번, 세 번, 네 번 내리고,
 
바닷물이 다디달다는 사람들이 나오질 않나, 점점 손발이 뻣뻣해진다는 사람들이 늘어나질 않나.
 
별거 아닌 순간들은 점차 늘어나고 확산되며...
 
죽음의 징조가 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가령, 베키 씨는 손끝이 뻣뻣할 뿐 아니라 손가락을 전혀 굽히지 못하게 되어 사냥을 그만뒀고,
 
리키 씨는 계속 단맛이 난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첫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약 일주일 전입니다.

핸드아웃: 수중 마을의 변화

 

수중 마을의 현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처음에는 손, 발, 혀와 같은 신체 말단이 뻣뻣해진다.
• 바닷물이 달게 느껴진다.
• 증상이 시작되면 얼마 후 온몸이 얼어붙어 사망한다.
•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 뒤로 몇 번 더 스노가 내렸다.
• 시체는 우선 마을 외곽 공터에 두었다.


 
걱정되는 마음에 몇 번이고 부모님을 찾아가거나 연락해봤지만, 다행히 안 좋은 소식은 없었습니다.
 
시아록과 슈테른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은 아무런 증상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오늘로 눈이 내리기 시작한 지 정확히 한 달 째입니다.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기에 마을 사람들끼리 회의를 열기로 했습니다.
 
마을 회의에는 어른과 아이가 모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수중 마을의 대표이자 필립 씨의 딸인 마리아 씨는 아직 수척한 얼굴로 이렇게 말합니다.
 
마리아: 이렇게 단기간 내에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건 처음이에요.
원래대로라면 죽은 자의 시체는 공동묘지에 묻겠지만, ... 수가 너무 많아요.
……더는 그럴 수 없어요.
그렇다고 시체를 계속 이렇게 공터에 두다간 온갖 바다 생물들이 그 냄새를 맡고 몰려올 테고, 더 큰 악수로 돌아올 겁니다.
 
...
 
...
 
마을 회관에는 일순 침묵이 흐릅니다.
 
아무도 쉬이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몰아치는 죽음 앞에서.
 
마땅한 해결법을 찾지 못했는지 정적만이 감돌다 보면... 마리아 씨는 오래도록 뜸을 들인 후에야 제안합니다.
 
마리아: 아버지에게… 유적지에서 조금만 더 가면 파도의 계단이 있다고 들었어요.
물살이 강한데다가 역류하는 곳이라, 휩쓸리면 뭍으로 뱉어낸다더군요.
…….
 
몇 번을 심호흡하고, 괴로운 듯 주먹을 꾹 쥐더니.
 
마리아: 시체를 그 계단에 눕혀요.
 
시체를 뭍으로 버리더라도, 산 사람들은 살아야지요.
 
말하지 않았으나 모두가 짐작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회관의 그 누구도 충격을 감추지 못합니다.
 
시체를 뭍으로 보내면, 산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보고 싶을 때 어디로 가야 좋단 말인가요?
 
심지어 뭍은 멸망한 곳이잖아요.
 
그런 곳에 죽은 사람을 보낸다는 건 어쩐지 버리겠다는 것처럼 들립니다.
 
바다에서 났으니 바다로 돌아가는 게 당연한데 말이에요…….
 
어떤 사람들은 벌써부터 훌쩍이거나, 황급히 제 옆자리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의 안위를 확인합니다.
 
슈테른:......
 
슈테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제까지 내내 침묵하고 있더니 안 좋은 표정으로 당신의 손을 잡아옵니다.
 
그 체온이 평소와 같은지 확인하기 말이에요.
 
시아록:(잡아온 네 손을 꼭 마주 잡았다.)
 
혹시라도 차가워져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는 날에는 곁의 사람을 뭍으로 보내야 할 것이고,
 
그렇다는 건 곧 영원한 이별을 맞이함을 뜻하겠죠.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
 
회의가 파하고, 문을 나서는 사람들은 제각각 우울을 맡습니다.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침묵하고, 누군가는 가슴을 치고……
 
그사이 눈물이 달아 놀라거나 손가락이 굽어지지 않아 두려워 떨면서.
 
당신 또한 이만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돌을 삼킨 듯 발걸음이 평소보다 무겁습니다.
 
사람들의 결정은 합리적이기는 합니다. 시체는 더 이상 바다 마을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냄새가 퍼지지 않는 곳까지 나르는 것도 고역이고요...
 
그럼에도 입에서 쓴 맛이 납니다. 옆에 있는 슈테른도 마찬가지인 듯 당신 쪽을 돌아보더니 얘기합니다.
 
슈테른:... 조금만 걷다 갈까요?
 
시아록:응, 그럴까... (네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응하자 그는 마을 어귀의 언덕까지 당신을 이끕니다.
 
조용한 바닷속, 거품이 터지는 소리가 유난히도 잘 들립니다.
 
때때로 물고기 몇 마리가 침묵 사이를 파고들며 지나갑니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언덕은 경치를 구경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입니다. 기분 전환이 하고 싶을 때마다 둘이서 이 쪽을 걷곤 했죠.
 
그러나 여느 때와는 다르게 언덕 아래에는 컴컴한 마을이 자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슈테른:... 시아록, 아까 있잖아요.
... ...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합니다. 혼란스러워서 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건지.
 
슈테른:... 아니에요.
 
시아록:왜? 할말 있으면 해도 돼..
 
슈테른:... 그냥... 뭐라고 해야 좋을까요?
자꾸 회의장을 나오면서부터 정말 그게 최선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요.
...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깨친다.) 그보다 시아록, 혹시나 저주 관련해서 증상이 나타나면 불길해도 꼭 말해요.
 
시아록:응, 꼭 얘기할게.
사실 나도 회의장에서 그게 최선일까 하고 생각했어. 그런데 대안은 아무것도 생각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반대한다고 해결될 수 없는 거니까.. 그냥 아무말도 못했어.. (조금 어두워진 표정으로 멋쩍게 입꼬리를 올렸다.)
 
슈테른:... 맞아요.
알아요, 아는데... 그게 최선이라는 걸 아는데도 어쩐지 숨이 막히는 것 같아서...
(한숨을 방울방울 내쉰다.) 이렇게 슬퍼해봐야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오지는 않지만요.
 
시아록:(따라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슈슈도 어디 아프거나 이상 있으면 꼭 얘기해야 돼?
 
슈테른:물론이죠. 꼭 얘기할게요.
 
혹시나 네가 저주에 걸리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마음은 같습니다.
 
원인도, 해결도 모르는 저주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 사실을 떠올리면 마음이 더 무겁게 가라앉습니다.
 
잠시 그렇게 앉아있으면, 물고기 몇 마리가 와서는 볼을 간질이고 지나갑니다.
 
눈으로 그들을 쫓다 보면 슈테른이 문득 얘기합니다.
 
슈테른:... 아까 그런 얘기가 생각났어요. 얼음공주 이야기.
 
시아록:응? 얼음공주 이야기..? 그게 뭐야?
 
슈테른:저주라고 하니까 생각난 이야기에요.

핸드아웃: 얼음공주 이야기

 

먼 옛날, 뭍에는 ‘겨울’이란 게 있었대요. 엄청 추운 거 말이에요. 지금도 바닷물이 유난히 차가워지는 시기가 있는 것처럼, 뭍에서도 같았던 거죠. 아주 추운 날이면 사람들은 얼음공주가 온다고 생각했대요. 얼음공주가 오면, 하늘(또 다른 바다랑 비슷한 거래요.)이 바다랑 맞닿은 부분부터 푸르게 변해 버린다고.
공주는 정말 예쁘다고 해요. 해파리보다 더 투명하고 새하얗다고요. 하지만 얼음 공주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 차디차게 얼어붙어 버린대요. 소라 껍데기처럼 단단해져서 부서지지도 않는다는 거죠. 그래서 얼음공주가 오는 날엔 꼭 집안에 있어야 한대요.


 
"어쩌면... 다들 죽기 전에 얼음공주를 만났던 걸지도 몰라요." 그가 가만가만 속삭입니다.
 
그 말을 들으면 어쩐지 설득력 있게 느껴집니다. 완벽히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요.
 
죽은 이들은 마지막 순간 얼음공주를 보았을까요.
 
두려웠을까요, 아니면 경외로웠을까요…….
 
지금은 아무도 모릅니다.
 
시아록:만약에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얼음 공주는 뭍이 아니라 바다에도 올 수 있는 걸까? 왜 갑자기 여기까지 왔을까? 그냥.. 이야기인 게 맞을까?
(가만히 네 이야기를 듣고는 생긴 의문점을 천천히 내려놓는다. 답을 크게 원하는 게 아닌 듯 의문을 뜻하는 말끝은 낮고 작기만 하다.)
 
슈테른:고민해봤는데...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뭍에도 찾아온 얼음공주니까, 바다에도 찾아올 수 있는 걸지도 몰라요.
책에서 처음 그 얘기를 봤을 때는 분명 얼음공주가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주변이 서늘한 걸 보면... 바다 마을에도 겨울이 온 걸까요?
 
시아록:그런가..? 그 눈이란 것도 오고 있고... 리키 씨가 그건.. 뭍에서 내리던 거랬지?
 
슈테른:맞아요. 바다에 내리는 스노랑은 비슷하지만 다른 거라고...
그 스노도 바다에 퍼진 저주랑 무언가 관련이 있는 걸까요. ... 뭐라도 알고 싶네요.
 
시아록:뭘 찾아보면 알아낼 수 있을까? 그러고보니 슈슈는 얼음공주 이야기는 어디서 알았어?
거기 주변에서 뭐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슈테른:도서관에서 꺼내왔던 책에 나와있었어요.
요즘은 주로 도서관에 있거든요. 안 그래도 무언가 발견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게 몰두하다 보면, 어느새 목적도 잊고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좋은 건지는 모르겠네요, 라고 덧붙인다.)
... 피곤하진 않으세요? 이만 돌아갈까요? (평소보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얘기하더니,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시아록:그래, 돌아가서 좀 쉬자. 나중에 도서관 갈 때 나도 같이 갈래.
(너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잡고 가자는 듯 손을 내미는 슈테른의 얼굴은 평소보다 약간 삭아 보입니다.
 
이런저런 걱정이 쌓이기도 했을 거고, 무엇보다 지친 것 같아요. 하긴, 슈테른은 체력이 약하니까.
 
시아록:(내미는 네 손을 꽉 잡았다.) 많이 피곤해?
 
슈테른:아뇨, 가서 좀 자면... (말을 하다 말고 하품을 한다.) 자다 보면 괜찮아질 거에요.
 
당신이 그 손을 잡으면, 언제나와 같이 따뜻한 온기가 전해집니다.
 
온기는 당신을 안심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하죠.
 
지금은 괜찮을 거예요. 어쩐지 그런 확신이 듭니다.
 
조만간 이 현상을 타파할 방법을 찾아낼지도 모르고요. 다 같이 힘을 합친다면요.
 
아니면 도서관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죠. 이 세상 어디보다 책이 많은 곳인걸요.
 
두 사람은 가만가만 집으로 돌아갑니다.
 
또 하루가 저물어갑니다.
 
장례 행렬
 
다음 날, 몸을 일으키면 어쩐지 주변이 시끄럽습니다.
 
무슨 일일까요?
 
창문으로 바깥을 살펴보면, 어쩐지 길가에 있는 사람들이 평소의 배 이상으로 많습니다.
 
뭘 하는 걸까요.
 
시아록:무슨 일이지..?
 
집에만 있으면 알 수 없습니다. 간단한 채비를 하고 밖으로 나가 볼까요.
 
시아록:(외투를 챙겨입고, 물건을 조금 챙겨 밖으로 나간다.)
 
집을 나서면 밖에는 처음 보는, 낯선 풍경이 펼쳐집니다.
 
터벅터벅,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수레를 끌며 갑니다.
 
수레엔 무언가 잔뜩 실려 있고, 흰 천으로 덮여 있어 내용물을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굳이 안을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바다를 떠나는 중이라는 걸요.
 
보통의 장례식이었다면 마을 사람들은 길 양옆에 늘어서 말미잘이나 산호 조각 등을 물에 띄우며 애도를 표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습니다. 죽은 이들의 가족만이 한 구석에서 소리 죽여 울고 있을 뿐이에요.
 
수레를 끄는 이들의 표정도 공포와 슬픔이 어려 있습니다.
 
우는 가족이 따라가려 하지만 이내 제지당합니다. 이렇게 떠나면 영영 볼 수 없겠죠.
 
물에서 죽은 이들은 물에서 다시 태어납니다. 그러나 뭍으로 가버린다면 돌아오지 못할 거예요.
 
적어도 수중 마을의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어떤 기분인가요. 두렵나요? 슬픈가요? 저들을 애도하고 싶나요? 아니면 그저 떠나보내고 싶나요.
 
행렬은 천천히 이어집니다.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있나요?
 
시아록:(무언가 해줄 수 있는 게 있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어서 더 슬퍼졌다. 그저 집에 잠시 들어가 원래의 장례식처럼 산호조각을 가져 나와 물에 띄웠다.)
 
산호조각을 물에 흩뿌리면, 그것들은 물결에 실려 행렬을 따라갈 것 같다가도 금방 가라앉습니다.
 
그래도 이것으로, 조금이라도 더 그들이 좋은 곳으로 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묫자리도 없는 행렬이지만 그들이 누울 곳이 조금이라도 편안하기를.
 
애도의 뜻을 담아 그러고 있으면, 누군가의 곡소리가 들립니다.
 
시아록, 듣기 판정.
 
시아록: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5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저주가 퍼지고 있는 거야! 눈이 내리면 저주가 온다고 했어!”
 
울고 있는 가족 중 한 사람의 목소리입니다.
 
그는 다소 패닉했는지, 당신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을 쏟아냅니다.
 
저주가 퍼지고 있다고요. 드물게 눈이 내릴 때마다,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고요.
 
이것은 불행이며 재앙이라고. 우리는 모두 저주에 묻혀 얼어버리고 말 것이라고...
 
그가 당신의 손목을 힘껏 쥐고 호소합니다. 기분 탓인지 그 손이 참으로 차갑습니다.
 
……불행이며 재앙이라니, 정말일까요? 시아록, 이성 판정.
 
시아록:
SAN Roll
기준치: 69/34/13
굴림: 81
판정결과: 실패
 
시아록, 이성 1 감소.
 
어쩐지 기분이 안 좋아져 쓴 표정을 짓고 있으면, 곧 그 사람은 다른 마을 사람들의 만류 하에 자리를 옮깁니다.
 
“이 사람아, 아무리 그래도 젊은 사람 앞에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다들 힘들 때니 정신 단단히 차리게.”
 
사람들은 당신에게, 너무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위로합니다.
 
너도나도 머리를 쓸어주거나 따뜻한 말을 건넵니다. 사람들은 낙담했을지언정, 희망을 잃지는 않았으니까요.
 
시아록:네, 괜찮아요. (쓰게 웃으며 모두의 위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수레가 마을을 벗어나고, 주변의 모두는 자리를 벗어나 각자의 장소로 돌아갑니다.
 
남아있는 건 어느새 당신뿐이네요. 얼마나 서 있었을까요?
 
누군가 당신의 어깨를 톡톡 두드립니다.
 
시아록:응?
 
슈테른:저에요, 시아록.
 
돌아보면 슈테른입니다. 아까 한창 행렬이 이어질 때는 없었던 것 같은데...
 
슈테른:괜찮아요?
시아록을 찾고 있었는데 여기 와 보니까 혼나는 것 같아서... 무슨 일 있었어요?
 
시아록:아, 아냐. 나 안 혼났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슈테른:혼난 게 아니라구요? 그럼 아까 그 사람들은 왜...
다들 표정이 안 좋아 보이셔서요. 무슨 일이에요?
 
시아록:그.. 장례.. 하러 가는 길이라서.. 다들 좀, 안 좋으신가봐..
 
슈테른:아... 뭍으로 가는 길이었나요.
하긴 장례 행렬이니까...... 그럼 시아록도 배웅해주신 거에요?
 
시아록:응, 내가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지만.. 그냥 산호조각이라도 같이 보내면 뭔가 좀 편하지 않을까 해서.. (너를 향해 멋쩍게 웃었다.)
 
슈테른:(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그렇게 갑작스럽게 가 버릴 줄은 몰랐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저도 밖에 나와 있을걸 그랬네요.
 
시아록:아냐, 봤으면 괜히 우울해졌을지도 몰라. 그리고 나도 밖이 소란해서 잠시 본 거 뿐이야.
 
슈테른:... (뭐라고 더 말하지는 않고 그저 당신의 손을 거머쥔다. 맞닿은 손은 늘 그랬듯 따뜻하다.)
참, 시아록. 제가 어제 그 얘기 했잖아요. 도서관을 뒤져보고 있다는 얘기.
이대로 손 놓고 있는 건 답답해서 책장을 무작정 넘겨 보다가... 무언가 신경 쓰이는 걸 찾았어요.
보여주고 싶어요. 같이 가실래요?
 
시아록:응. (네 손을 맞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도서관에 가보자.
 
두 사람은 도서관으로 터벅터벅 걸어갑니다. 슬슬 모두가 잠에서 깰 시간인데도, 거리는 그저 조용하기만 합니다.
 
다들 경계하는 듯 문을 꽁꽁 닫고, 초롱 산호도 돌보지 않은 채 바닥에 굴리고 있으니까요.
 
닫힌 건 비단 문뿐만이 아니라,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모두 굳은 얼굴로 저주를 경계하고 있을 뿐입니다.
 
걷다 보면, 슈테른은 가만가만 입을 엽니다.
 
슈테른:뭍으로 간 사람들도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물에서 죽은 이들은 물에서 다시 태어납니다. 이는 자연의 순환이며 바다의 법칙입니다.
 
생명을 가득 품은 보물 창고인 이곳은 죽음의 무덤이 되기도 하니까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시아록:글쎄... 우리도 바다에 내려오기 전까지는 원래 뭍에서 살았다고 들었는걸.. 언젠가 만나게 되지 않을까?
 
슈테른:... 언젠간 만난다, 라.
그러게요, 또 어디선가 볼 수 있을까요... 꿈에서라도.
마음이 이어져 있다면 괜찮을지도 몰라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네요.
바다가 아주 넓어도 같은 물속에 있는 것처럼.
바다 위로 가버려도, 그리움이 남는다면 가라앉을 수 있을 거라고…….
 
걸음이 멈추고 말이 끊깁니다.
 
둘의 앞엔 도서관이 있습니다.
 
 
도서관
 
도서관이라고 해서, 박물관과 사정이 다르지도 않습니다.
 
물 아래에서 종이로 된 책은 축축하게 젖고, 찢어져 형체도 남지 않으니까요.
 
이곳엔 얼마 안 되는 지식을 보존하기 위해, 빳빳하게 편 해초나 무른 석판 등에 날카로운 것으로 글씨를 새긴 종류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사서도 없습니다.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도서관 한구석엔 잡동사니가 쌓여 있기도 하네요.
 
슈테른과 당신이 유적지에서 주운 책을 여기에 보태기도 한다는 건, 서로만의 비밀입니다.
 
슈테른:잠시만요. 여기 어디 있었는데……
 
그는 책장 구석으로 걸어갑니다.
 
꽤 시간이 걸릴 듯하니, 그동안 다른 책들을 구경해도 좋을 거예요. 실용서가 많긴 하지만요.
 
시아록:(네가 책장으로 다가가는 걸 보다가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다.)
 
주변에는 책이 아주 많습니다. 하나하나가 묵직하네요.
 
아무거나 뽑아서 읽어볼까요? 시아록, 자료조사 판정.
 
시아록: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2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슈테른이 얘기한 얼음공주 이야기를 찾습니다. 들은 것과 크게 다르진 않네요.
 
얼음공주는 성격이 나빠 자신을 똑바로 보는 이들을 할퀴어버린다는 문장이 하나 더 적혀 있을 뿐입니다.
 
시아록:왜.. 쳐다본다고 할퀸다는 거지..? (조금 의아해졌다.)
 
의아한 얼굴로 책을 들고 있으면, 슈테른이 웬 오래된 석판덩어리를 들고 다가옵니다.
 
슈테른:찾았어요. 이거에요!
 
그렇게 말하며 내민 책을 받아들면...
 
이게 뭔가요, 제목도 적혀 있지 않고, 글씨가 마모되어 잘 읽기 힘들기도 합니다.
 
이야기라기보단 예언 같이 들리기도 하네요. 시간을 들여 더듬더듬 읽어보면...

핸드아웃: ?????

 

차갑고, 어둡고, 희고, 축축한 것.
아무것도 없는 것.
땅에 내리는 재앙.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
시작. 원초의 시대.
영원한 손실. 무無로 회귀하는 것.
태어난 것이 멸망을 가져오고
죽은 것이 저주를 내린다.


 
시아록:이게 뭐야..? (석판에 적힌 글을 읽어보았지만,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슈테른:으음... 뭘 말하고자 하는 건지는 모르겠어요.
이야기라기보단 예언 같아요. 그것도 지금 상황과 맞아떨어지는.
이걸 보세요. 차갑고, 어둡고, 희고, 축축한 것...
이거, 스노랑 비슷한 것 같지 않아요?
 
시아록:으음.. 이게 스노를 뜻하는 거면.. (자신이 아닌 슈슈가 해석한 걸 생각하며 그 아래 글들을 다시 읽어본다.) 으으음... (역시 아무것도 모르겠다.)
 
슈테른:아닌가...? 제가 보기엔 스노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한데...
시아록 생각은 어때요?
(스스로도 긴가민가한듯 의견을 구해온다.)
 
시아록:응.. 그거 같아. 지금 우리한테 일어난 변화는 스노가 유일하고..? 여기 쓰인 것에 시작이라면 스노가 맞지 않을까?
 
슈테른:시작... 뭐가 시작된다는 걸까요.
스노가 내리면, 원초의 시대가 펼쳐진다는 건가...?
 
시아록:원초의 시대가 뭐지? 사람들이 바다에 들어오기 전을 말하는 거야? (석판의 말은 너무 두루뭉실하고 어렵다.)
 
슈테른:원초의 시대... 맞아요, 인류는 원래 육지생물이었으니까...
근데 그게 스노와 관련이 있을까요? 눈이 내리면, 원초의 시대가... 으음... (수수께기를 푸는 듯 골머리를 썩힌다.)
... 일단 첫줄 아래로, 아무것도 없는 것. 땅에 내리는 재앙...
이것들도 아마... 스노를 말하는 것 같아요.
 
시아록:응? 그것도?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슈테른:왜냐하면 다른 것들과는 다르게, 우리가 봤던 스노는 쌓이지 않고 바로 없어졌잖아요.
 
시아록:아.. 그렇구나.
 
슈테른: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한다는 건... 눈에 보이긴 해도 허상처럼 실체가 없다는 걸지도 몰라요.
아무리 모래만큼 작은 것이라도 손에 만져지는데, 그건 아무런 감촉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땅에 내리는 재앙이라니... 이건 무슨 말일까요?
 
시아록:땅에 내리는 재앙... 재앙..? 내리는 건 지금까지 스노밖에 없었는 걸.. 그걸 재앙이라고 봐야 하는 거야..?
 
슈테른:... 그, 그렇게 되겠죠, 역시...
하지만 스노가 왜 재앙인 걸까요? 정말 스노가 저주를 불러온 걸까요?
석판에 직접 '저주'라는 말이 나와있는 게 좀 걸려요... 스노가 내릴 때 자체는 아무런 일도 없었는데, 왜...
 
시아록:그러게.. 근데, 스노가 내리기 전부터 사람들이.. 바닷물 달게 느끼고 하지 않았어..? 그 전부터 스노가 내렸나..?
 
슈테른:... 으음...
스노가 내린 것과, 바닷물이 달게 느껴진 것... 둘 중에 뭐가 먼저였죠?
 
시아록:그러게.. 좀 헷갈려.. (미간을 찌푸리고 열심히 생각하지만, 오래 지난 일이라 모르겠다.)
 
:정확한 선후관계를 따지고 싶다면 적절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이를테면 자료조사 판정으로 관련된 책이 없는지 뒤져본다든지, 지능 판정을 통해 머릿속에 묻혀있던 기억을 떠올린다든지.
아니면 밖으로 나가 굳어있는 사람들에게 대인기능 판정으로 말을 이끌어낼 수도 있습니다. 자유롭게 선언하고 행동하세요.
 
시아록: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1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보려 끙끙, 열심히 머리를 굴려본다.)

 
베키 씨와 마지막으로 했던 대화가 떠오릅니다. 그 대화가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에요.
 
그의 말로는, 일단 두 현상의 시작점이 비슷하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했죠.
 
시아록:음.. 베키씨가 처음 말했던 때랑 스노가 온 게 비슷했던 거 같아.. 슈슈는 어떻게 생각해?
 
슈테른:
지능
기준치: 55/27/11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으음... (머릿속을 뒤져본다. 베키 씨의 얼굴까지 그리다 보면 갑자기 그리운 표정이 된다.)
비슷하다고는 했는데, 사냥 중에 그 스노라는 걸 보셨다고도 한 것 같아요. 그 때 베키 씨는 멀쩡하셨으니까, 아마...
 
시아록:그럼.. 스노가 먼저 시작이구나.. (네 말에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석판에 적힌게 스노를 뜻하는 게 맞으면.. 이게 맞는 거겠네.. (석판을 검지로 톡톡 두드린다.)
 
슈테른:아마... 그렇겠죠.
하지만 이걸 안다고 해서, 우리가 스노를 멈출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아.
 
그의 말에 그제서야 깨닫습니다. 이거, 해결 방법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잖아요.
 
이래서야 시간 낭비를 한 셈입니다.
 
슈테른:...으음, 처음 찾을 때만 해도 대단한 발견을 한 줄 알았는데...
스노에 대한 얘기만 있고, 전부 거의 예언하는 글이잖아요. 무언가 힌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시아록:으음.. 그러게. 다른 사람들한테 보여줘도, 뭔가.. 제대로 해결책도 없을 거 같고..
 
슈테른:...하지만 이로써 확실해졌네요.
스노는 저주와 함께 온다는 게요.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고 답답했던 그때보다는 나아요. 이걸 같이 읽고 나니 조금은 실마리가 잡혔어요.
태어난 것이 멸망을 가져오고 죽은 것이 저주를 내린다는 건...
무너지기라도 한다는 걸까요, 이 세상이.
 
시아록:세상? 바다가..? 바다가 무너지면 어디로 가야해..? (조금 멍한 표정으로 널 바라본다.)
 
슈테른:...... (잠시 이맛살을 구긴다.)
아니에요, 불길한 소리 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이 석판은 해독하면 할 수록... 진실을 대가로 두려움을 얻는 느낌이네요.
... 다른 재미있는 얘기라도 볼래요? 도서관엔 이런 거 말고도 다양한 책과 기록이 있는 걸요.
 
시아록:(고개를 흔들고는) 그래, 이건 너무 어두운 얘기 밖에 없어.. 그래도 이건 우리 따로 챙겨두자. 좀 걱정되니까.. (석판을 한 번 쳐다보고 너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슈테른:가져가고 싶다면 상관은 없지만... 무거우실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 차라리 숨겨둘까요? 아무도 못 보게요.
 
시아록:그게 좋겠다. 무겁기도 하니까 숨겨두자. 어디다 숨겨두지? 아까 슈슈가 꺼냈던 곳에 두면 될까?
 
슈테른:잠시만요, 그것보다는 책과 책 사이에 숨기거나...
이런 벽 틈새에 넣어두는 게 나을 거에요. (구석에 간 균열을 헤집어 적당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시아록:그런가. (네가 만들어둔 공간을 보더니 거기에 석판을 넣었다.)
 
영차. 석판을 밀어넣으면 벽의 일부인 것처럼 자연스럽습니다.
 
이로써 이 내용은 우리만 아는 일이 되겠지요. 슈테른은 벽을 잘 다듬어 석판을 완벽하게 숨기더니 당신을 돌아봅니다.
 
슈테른:다른 책도 보실래요? 동화책 같은 거.
그런 거라도 보면 마음이 좀 가라앉을 거에요.
 
시아록:좋아. 계속 우울한 일만 있었으니까 그런 거라도 읽으면 괜찮을 거 같아. 슈슈는 괜찮아?
 
슈테른:저야 괜찮죠. 마침 기분 전환할 거리도 필요했고.
전에 봤던 것 중에 재미있는 게 있었는데... 잠시만요.
 
그렇게 말하며 그는 앞쪽 책장 어딘가를 뒤집니다.
 
혹시 책 제목을 둘러보고 싶다면 관찰 판정, 뽑아보려면 자료조사 판정입니다.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6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실용서와 소설이 섞여 있습니다. 기록은 주로 후대에 정보와 응용법을 남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실용서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지만요.
 
'초롱 신호 언어의 모든 것', '미역의 새로운 조리법', '야생 물고기 백과사전'... 지루해요!
 
시아록:(책장을 뒤적이는 슈슈 뒤에서 책 제목을 훑어봤지만, 재미있는 건 보이지 않고 지루하기만 하다.) 슈슈, 찾았어?
 
슈테른:아, 잠깐만요. 여기...
아, 이거에요. '해파리와 함께 춤을'.
 
그렇게 말하며 그는 얇은 해초를 엮은 책을 들어올립니다.
 
표지에 뭔가 그려져 있는데... 관찰 판정으로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슈테른은 그림을 보더니 뒤늦게 "아마 해파리 그림일 거에요."라고 덧붙입니다.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99
판정결과: 실패
 
일단 저건 해파리라고 쳐도... 옆에 있는 건 뭔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표지를 넘겨보면, 다행히 큼지막한 글자가 알아보기 쉽게 쓰여있습니다.
 
 
어느 언덕 어귀에 호기심 많은 여자아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어느 날 길을 걷다 무서운 해파리를 발견했습니다. 하늘하늘하게 흔들리는 다리가 바위에 끼어 아파 보였습니다.
 
그것을 보고 처음에는 도망치려 했지만, 결국 바위를 밀어 해파리를 구해주었습니다.
 
해파리는 크게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나를 도와줘서 고마워. 너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은데 바라는 게 있니?"
 
아이는 말했습니다. "저는 투명해지고 싶어요!"
 
그 말에 크게 놀란 해파리가 이유를 물었고, 아이는 눈을 빛내며 설명했습니다.
 
"저는 아직 어려서 멀리까지 나가면 맨날 혼난단 말이에요. 저도 해파리 씨처럼 자유롭게 헤엄쳐보고 싶어요!"
 
해파리는 아이의 말을 이해하고, 자신의 힘없이 흔들리는 다리를 내밀었습니다.
 
아이가 그 다리를 덥썩 잡자, 정말로 아이는 자신의 몸이 가벼워진다고 느꼈습니다.
 
아무도 그들을 발견하지 못했고, 엄마 앞을 빙글빙글 돌아다녀도 혼나지 않았습니다. 아이와 해파리는 즐거운 산책을 했습니다.
 
알록달록한 산호와 맹수를 이기는 작은 물고기 떼들을 신나게 구경했습니다.
 
처음으로 모험한 세계는 아름다워서, 아이는 몇 번이고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고마워요!"
 
아이는 해파리와 함께 바다를 누볐던 그 기억을, 언제까지고 소중히 간직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납니다. 투명해진 채 바닷속을 모험하는 이야기라, 허무맹랑하지만 아주 나쁘지도 않네요.
 
시아록:뭔가 귀여운 이야기네. 옆에 해파리 그림 옆에 있던 게 아이인가?
 
슈테른: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주인공이잖아요.
제가 이 소설을 쓴 사람이었어도 해파리랑 아이는 꼭 표지에 넣었을 거에요.
이건 누가 쓴 이야기일까요? 바닷속에 살던 누군가가 남긴 걸까요?
 
시아록:그러게, 바다얘기니까 바다에 사는 누가 쓴 게 아닐까?
해파리랑 투명해져서 여기저기 놀았다는 거 아이한테 엄청 기억에 남고 추억이 되었겠지.
(아까의 울적한 기분은 어디갔는지 기분 좋게 웃었다.)
 
슈테른:...어, 그러게요?
처음엔 누군가 지어낸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직접 겪은 일을 쓴 걸지도 몰라요. 잊지 않고 간직하기 위해서...
그런 거라면 근사한 추억이네요. (조심스레 책을 덮었다.)
 
집중할 거리가 생기자 아까의 찝찝하고 싱숭생숭한 기분은 어느새 날아갑니다.
 
시아록, 이성 1 회복.
 
그가 책장에 다 읽은 동화책을 꽂아넣고 있으면...
 
돌연 물살의 흐름이 바뀝니다.
 
건물 안을 채우는 온화한 물살이 거센 출렁거림으로 변합니다.
 
바로 근처를 거대한 물고기가 지나가는지도 모르겠어요.
 
시아록:(갑자기 바뀐 물살에 화들짝 놀라 눈이 커진다. 곁에 있던 슈슈를 붙잡았다.)
 
보통 때라면 뭐가 찾아왔는지 구경하러 가자며 들떴을 테지만, 지금은...
 
슈테른:조심해요!
 
그렇게 말하며 슈테른은 당신을 감싸안습니다. 시아록, 행운 판정.
 
시아록:
기준치: 80/40/16
굴림: 71
판정결과: 보통 성공
 
툭, 머리 위로 빳빳한 해초 묶음이 떨어졌습니다. 누군가의 식량이었을까요?
 
한창 파문이 지나가고 나면, 소란 틈에 책 한 권이 떨어져있는 게 보입니다.
 
한 번 읽어볼까요?
 
시아록:뭐가 지나간 거지? 깜짝이야.. 슈슈는 괜찮아? (물살이 잠잠해지자 주변을 잠시 두리번거린다.)
(바닥에 떨어진 책을 발견하고 주워들었다.) 슈슈, 이거 떨어져있다.
 
슈테른:(긴장으로 뻣뻣해진 몸을 풀며 천천히 자세를 갈무리했다.) 전 멀쩡해요. 시아록이야말로 괜찮아요?
어, 이게 무슨 책이에요? 꽤 두꺼운데.
 
시아록:응, 난 괜찮아. 슈슈도 괜찮아서 다행이야. (널 보고 웃고는 책을 보여준다.) 글쎄, 안에 한 번 볼까!
 
슈테른:좋아요, 이것도 우연인데 읽어봐요. 무슨 내용일까요...
 
둘은 책장에 등을 기대고 앉아 책장을 넘깁니다.

핸드아웃: 바다 마녀 이야기

 

(전략) 어린 인어는 바다 마녀를 만나기 위해 바닷속 왕궁을 떠나, 마녀가 사는 소용돌이로 향했습니다. 마녀가 사는 소용돌이 근처엔 꽃이나 풀은커녕 생명은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습니다. 벌거벗은 잿빛 모래땅만이 가득했을 뿐이었습니다. 어린 인어는 모래땅을 지나, 온갖 기괴한 것이 자라는 낯선 숲으로 들어섰습니다. 반은 동물이고 반은 식물인 나무와 꽃들이 있었는데, 그것들은 꼭 백 개의 머리가 자라난 뱀처럼 보였습니다. (중략)
 
인간과 동물의 뼈로 만들어진 집에 바다 마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바다 마녀는 물뱀에게 음식을 먹이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요. 저주를 풀고 싶은 거지요?”
인어가 긍정하자, 마녀가 인어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정말 어리석군요. 당신 마음대로 한 행동이 결국 당신을 슬픔에 빠트릴 거예요.” 그리고 마녀는 어린 인어가 누릴 수 있는 것을 말했습니다. 빼앗길 것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아주 끔찍하고도 매혹적인 제안이었습니다.
“이 모든 걸 당신이 짊어지겠다면 저는 당신을 도와드리죠.”
어린 인어는 마녀의 제안에 응했습니다. “■■■■ ■ ■ ■■■” (이 부분은 흐려져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자 마녀는 만족스러운 듯이 활짝 웃으면서 당신을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필요하다면 소용돌이를 찾아. 그 중심에서 기다릴게.”
당신은 마녀의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시아록:저주..? 소용돌이?
 
슈테른:반은 동물이고 반은 식물인... 뱀처럼 생긴 것...
이런 이야기도 있구나... 마녀라는 게 정말 있을까요? 조금 으스스해요.
 
시아록:그러게.. 괜히 저주라고 하니까 아까 본 석판 생각나.
(괜히 찝찝한 기분에 콧잔등을 찡그렸다.)
 
슈테른:그러게요... 이거 꼭 우리 얘기 같아요.
... 솔직히 말하자면 저주를 풀 수 있다면 마녀에게라도 찾아가보고 싶어요. 계약의 대가가 좀 크긴 하지만...
 
시아록:그치, 여기 가려진 얘기는 뭘까? 대가가 너무 크다면 좀 무섭긴 하지만.. 정말 마녀가 있어서 물어볼 수 있다면 나쁘진 않을 거 같아.
 
슈테른:이 가려진 말은... 인어가 한 말이겠죠? 뭐라고 했을까요, 궁금하네요...
계약 조건도 이 밑에 나와있잖아요. 가재랑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기기...
... 어려운지도 잘 모르겠네요. 가재한테 양해만 구하면 될 것 같은데. (작게 웃음을 흘린다.)
 
시아록:가재랑 가위바위보해서 이기기? 어디에?
가재는 가위만 낼 거 같은데!
 
슈테른:네? 여기 있잖아요. (책 밑부분을 가리킨다.)
 
그 말을 듣고 다시 책을 들여다보면...
 
소용돌이를 찾으라는 말이 전혀 다른 내용으로 바뀌어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가재랑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는 게 계약 조건이라고 나와 있네요.
 
... 뭘까요? 그새 책이 바뀌기라도 했나? 기묘한 느낌에 시아록, 이성 판정.
 
시아록:
SAN Roll
기준치: 69/34/13
굴림: 40
판정결과: 보통 성공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똑같네요. 처음 본 내용은 뭐였을까요?
 
마치 책이 당신에게 말을 걸었던 것만 같았어요.
 
시아록:가재.. 왜 아까는 못 봤지..? (아까 다른 글이 적혀있었던 거 같은데.. 잠시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해보지만, 다시봐도 여전히 가재와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라는 문장 뿐이다.)
 
물론 당신도 가벼운 마법을 쓸 수 있지만, 저주를 푸는 마법에 대해선 듣도 보도 못했는데...
 
마녀라면 알고 있을까요? 마녀잖아요.
 
시아록:바다에 마녀가 있을까..?
(괜히 찜찜한 기분으로 말을 해본다.)
 
슈테른:마녀라... 잘 모르겠어요. 아이들을 겁주는 말에서밖에 못 들어봤는데...
시아록은 어떨 것 같아요?
 
시아록:글쎄... 바다는 넓으니까... 있을지도 모르지? 만약 있다고 한들 우린 찾으러 멀리 나갈 수도 없는 걸..
(어깨를 올렸다 내렸다.) 그치만 만약 진짜 있어서 뭔가 부탁하기엔 마녀는 뭔가 무서울 거 같아..
 
슈테른:글로만 읽었을 때도 오싹할 정도면... 직접 만났을 땐 벌벌 떠느라 아무 말도 못 할 지도요.(작게 쓴웃음을 지었다.)
바다 어딘가에 있다고 치면 어디서 살까요? 거친 모래에 마수같은 숲이면... 북쪽이려나?
어쩐지 어울리네요. 지금은 잔뜩 황폐해져서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잖아요. 저도 북쪽은 가본 적 없는걸요.
 
시아록:소용돌이라고 했으니까.. 바다에 소용돌이가 어디쯤 있을까? (아직도 소용돌이는 강렬하게 머리에 남아있다.)
 
슈테른:소용돌이? 그런 말이 있었어요?
왜 전 못 봤지...? 놓쳤나 봐요.
 
시아록:으응.. (잠시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황폐해진 곳이니까 슈슈 말대로 북쪽일지도 몰라.
나도 북쪽은 가본 적 없어.
 
슈테른:그 소용돌이라는 거 마녀를 찾아갈 힌트일지도 모르겠어요.
소용돌이라... 으음.
 
각자 방법을 궁리해봅니다. 전원 지능 판정.
 
시아록: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2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슈테른:
지능
기준치: 55/27/11
굴림: 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소용돌이는 불규칙적으로 생겨납니다. 찾고 싶다고 해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다만, 이 근방에는 불안정하게 흐르는 해류가 있습니다. 운이 좋다면 그곳에 소용돌이가 발생할지도 모르죠.
 
분명, 마을의 북쪽이었어요.
 
슈테른:으음, 역시 북쪽 말곤 없지 않을까요? 찾아가본 적은 없지만 확신이 들어요.
 
시아록: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슈테른:정말요? 그럼 거의 확실하겠네요. 그보다 소용돌이의 끝에 정말로 마녀가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전설을 실제로 확인하는 느낌일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존재한다면 놀랄 것 같아요.
 
시아록:으음... 모르겠어.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의 마녀는 무서우니까... 그래도 밑져야 본전인데 한 번 찾아가볼까..? (아직 완전히 마음을 정한 건 아닌지 괜히 입을 우물거렸다.)
 
슈테른:저야... 궁금하긴 한데, 잘 모르겠어요.
그 끝에 마녀가 있을지 확실한 것도 아니고, 북쪽에 갔다가 안전하게 돌아올지도 미지수고...
 
시아록:그렇지..? (그치만 저주가 걱정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으으음... (고민하는 듯 애꿎은 입술만 열심히 괴롭힌다.)
 
고민하며 끄으응 소리를 내던 찰나, 한 번 더 주변의 물이 출렁거립니다.
 
또다시 거대한 물고기가 지나가는 걸까요.
 
이번에는 훨씬 더 집요하고, 강합니다.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어 몸이 붕 뜹니다.
 
슈테른:...! (반사적으로 시아록의 팔을 잡는다.)
 
시아록:(깜짝 놀라며 잡아온 슈슈의 손을 꽉 잡았다.)
 
책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모든 책장에서 튀어나온 책과 잡동사니들이 섞여 공중을 위험하게 쏘다닙니다.
 
쿵,
 
개중 하나가 책장에 부딪힙니다.
 
저항할 수 없는 강한 물살에 겨우 서로를 잡고 버티는 둘을 비웃듯, 낡고 무거운 책장이 슈테른을 향해 기울어집니다.
 
동작이 느린 그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마지막으로 눈을 질끈 감습니다.
 
슈테른을 구하겠다면 민첩 판정입니다.
 
시아록: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3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다행히 그를 무사히 끌어당겨 머리를 감쌌지만, 그 반동으로 콩 넘어져 벽에 부딪힙니다.
 
... 벽에 박은 팔꿈치를 문질러 갈무리하고 나면, 슈테른이 오느새 당신과 벽 사이에 가둬져있는 게 보입니다.
 
숨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입니다.
 
슈테른의 놀라고 당황한 얼굴이 바로 지근거리에 있습니다. 크게 다치진 않은 것 같아요.
 
다행이지만, 충격을 받은 터라 곧바로 일어나기가 어렵습니다.
 
물의 떨림이 잔잔해진 걸 보니 거대한 물고기는 완전히 지나간 듯 하네요.
 
시아록:(가까운 거리에 깜짝 놀란 듯 눈이 두어번 깜빡였다.) ..괜찮아? (더듬거리며 너에게 말한다.)
 
슈테른:... 괘, 괘, 괘, 괜찮... (말하다 말고 붉어진 얼굴을 옆으로 돌려 갈무리한다.) ...아요.
그... ... 죄송해요. 순간 몸이 굳, 어서...
시, 아록이 아니었다면 다쳤을 거에요. (평소의 평이한 어조와는 다르게 높고 거친 톤으로 말한다.)
 
시아록:(귓바퀴가 빨개지긴 했지만, 가까워서 못 봤을 것이다.) 아, 아냐...그 물이 갑자기.. 괜찮으면 다행이고.. (여전히 어투는 더듬거릴 뿐이다.)
 
슈테른:... 그, 그러게요, 이번에도 아까 그 물고기가 지나간 걸까요?
아, 아무튼 이만... 일어날까요? 아, 쏟아진 책들도 채워야 하는데... (애써 화제를 돌려본다.)
 
시아록:으응, 그래.. (뻘뻘거리며 굳은 동작으로 슈슈를 일으키고, 자신도 일어났다.)
 
조금 민망한 기분으로 슈테른의 손을 잡아 일으키면...
 
기분 탓인지 손까지 빨개진 것 같......
 
어라, 잠깐만요. 그가 원래 이렇게 차가웠었나요?
 
이상하잖아요. 꼭 얼음을 만진 것처럼.
 
슈테른은 얼음이 아닌데. 하지만 이 딱딱하고 차갑고 뻣뻣한 손은, 정말로 얼음 마냥……
 
두근두근, 다시 심장이 뜁니다.
 
필경 설렘만은 아닐 거예요.
 
시아록:슈슈... 손이 차가워.. (당황과 설렘은 어느새 가신 얼굴이 가라앉았다. 너의 손을 양손으로 잡아 만져본다.) 손 괜찮아? 뻣뻣하지 않아?
 
슈테른:...네? 손이요...? (당신의 말에 황급히 자신의 손을 만지작대지만, 별로 이상을 느끼지 못했는지 다시 고개를 든다.) 잘 모르겠는데요...
...아, 시아록, 손 뜨거워요. (양손으로 잡아오자 그제야 이상함을 느낀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 아니면, 제가 차가운... 걸까요?
 
시아록:으음.. (괜히 네 손을 주물렀다.) 아까 네 손도 따뜻했단 말이야.
 
슈테른:...으음, 하지만 아까 밀려온 물살 때문에 주변 온도가 내려가서 손이 식은 걸수도 있어요.
확실히 공기가 더 서늘해졌는걸요. 가끔 이래요. 차가운 것 말고는 뻣뻣하다거나, 단맛이 난다거나... 그런 것도 없고요.
움직이다 보면 괜찮아질 거에요. 어떻게 할까요? 마녀를 찾아가야 할까요...?
 
시아록:음.. 그렇다면 다행이긴 한데... (작게 한숨을 쉬고 입을 우물거리다가) 역시 마녀를 찾아가볼까?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찾아가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슈테른:저주... (하루종일, 계속 입에 걸리는 단어를 다시 우물거린다.) 저주는 계속 우리 삶을 죄여오고 있어요.
분명 위험에 빠질 지도 모르니 준비를 단단히 해야겠지만... 그렇게 해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면야 찾아가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어요.
시아록이 간다면 저도 갈래요. 어떡할까요?
 
시아록:으응.. (잠시 마녀를 찾아갈 위험도와 슈슈, 그리고 저주가 한꺼번에 머릿속에 떠올라서 뒤엉켰다. 잠시간 고민하다 슈슈를 두고 가는 게 더 불안할 것을 깨달았다.) 그럼.. 준비 단단히 하고 갈까?
 
슈테른:(잠시 고민하다가도 당신의 말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일단 집으로 돌아갈까요? 필요한 것들을 가지고 나와야겠어요.
 
 
여러분은 고심하던 끝에 결국 마녀를 찾아가기로 합니다.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는 알 수 없더라도.
 
그리고, 출발 전에 잠깐 집에 들렀습니다.
 
챙기고 싶은 게 있다면 자유롭게 준비해 볼까요. 제법 긴 여정이 될 지도 모르고, 아주 위험한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시아록:으음, 뭐 챙기지. 일단 초롱은 챙기고, 유적지에서 주워왔던 것도 챙길까? (집안을 뒤적이며 주워든다.)
석판은 들고가기 너무 무거울까? ( 너를 바라보며 묻는다.)
 
슈테른:으음... 저희가 주워온 게 뭐가 있었죠?
전 소리가 나는 상자랑, 그물망처럼 생긴 장식을 들고 왔던 건 기억나는데.
 
시아록:그 얼룩진 은색 목걸이랑 석판이랑.. (집안을 뒤져 더 찾아온다.) 그 구멍 뚫린 막대기 같은 거?
 
슈테른:으으음... 짐은 최소화하거나, 봇짐처럼 싸들고 가는 게 좋을지도요.
가뜩이나 북쪽은 사람도 여럿 실종된 적 있을 만큼 해류가 거센 곳이니까요. 괜히 난리 통에 잃어버리면 더 속상할 거에요.
 
시아록:음. 석판은 너무 무겁겠지...? 일단 목걸이는 가볍고 챙겨가도 괜찮을 거 같고. 슈슈네 있는 상자도 두고가도 괜찮을 거 같아!
 
슈테른:석판... 들고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무거운 건 마찬가지에요.
 
시아록:석판 그럼, 가지고 갈까? 다른 건 굳이 필요할까나...
 
슈테른:차라리 필사를 해서 가져가는 편이... (기록할 때 쓰는 날카로운 막대를 잡으려다 흠칫한다.) ... 아니에요.
지금 하려면 한참 걸리겠죠. 다른 건...
목걸이야 목에 걸면 되지만, 나머지 것들은 집에 두고 갈까요?
 
시아록:음.. 그래! 그렇게 하자. 석판은 좀 아쉽긴 한데...
 
슈테른:그럼 전 이거 들고 갈게요. (아까 도서관에서 주운 해초 더미를 쥐어든다.)
무언가 묶기에도 좋고, 다치기라도 하면 이걸로 급하게나마 치료할 수 있겠죠.
... 또 챙길 게 있을까요? 도구라든가.
 
시아록:응, 먹을 것도 챙겨가야 할까?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으려나..? 음.. 몸을 보호할만한 거..?
집에 있나...
 
슈테른:먹을 건... 정 배고프면 해초라도 먹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정 불안하시면 뒷마당에 있는 미역을 몇 줄기 따갈까요? 나름 비상식량이잖아요, 그것도.
몸을 보호할만한 게... 있을까요?
 
시아록:해초도 먹을 수 있으니까 그것만 챙겨가자. 짐 많아지면 힘들 거 같고? 그러게, 집에서 쓰는 거라곤 적을 때 쓰는 막대랑.. 포크나 칼..?
 
슈테른:포크나 칼은 잘못하면 찔릴 수도 있어요. 조금 덜 날카롭고 휘두를 수 있는 게...
삽은 어떠세요? 땅 팔 때도 쓸 수 있을 것 같고...
 
시아록:오, 좋다. 응, 그럼 삽은 내가 가져갈게.
 
슈테른:(고개를 끄덕이며 한 손에는 해초를, 한 손에는 결의를 든다.) ...미리 당부하지만 부디 조심하세요. 힘들면 꼭 말씀하시고요.
잘못하면... 조난당할 수도 있으니까요. 위험한 상황이 와도 일단 침착해요. 제가 옆에 있을 테니까.
 
시아록:응, 슈슈도 힘들면 얘기해야돼? 나야 튼튼하지만, 슈슈는 약하니까.
(자신을 걱정하는 너를 보고 어쩐지 기특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웃었다.)
 
슈테른:(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짐도 다 챙겼으니까... 정말로 출발할까요?
 
시아록:응, 가자. (걱정되긴 하지만, 아직 닥치지도 않은 일에 너무 걱정하지 않기로 하고는 네 손을 잡았다.)
 
여러분은 정말로 집에서 나와 길을 떠납니다. 신발끈도 단단히 동여매고요.
 
마을의 북쪽으로 가는 길은 꽤나 멀어서 한참을 걸어야 합니다. 걷는 김에 주변을 둘러보면...
 
여전히 마을은 이상할 만큼 조용할 뿐입니다. 한 달 전, 저주가 찾아들지 않았을 때의 일상이 이제는 꿈처럼 아득하네요.
 
우리는 저주를 풀어낼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쩐지 기묘할 만큼 확신합니다.
 
마을에 어떤 흐름이 찾아들어도 우리는 계속 함께할 수 있을 거라고요.
 
그렇기에 맞닿은 손이 아직 시려워도, 당신은 계속 걷습니다.
 
슈테른:전에 책에서 본 적이 있는데...
 
침묵이 지겨웠는지 그가 말을 꺼냅니다.
 
시아록:응?
 
슈테른:바다 마녀는 사실 어린아이를 꾀어내서 잡아먹는 나쁜 사람이라는 얘기도 있었어요.
사실 존재 자체가 불분명해서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북쪽은 위험한 곳이니까, 애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 아닐까요?
으음, 그래도 진짜 바다 마녀가 존재한다면 잡아먹히거나 하진 않겠죠... 저흰 다 컸으니까요.
 
시아록:으음.. 그치만 책에선 음... 어린 인어를 잡아먹으려고 하진 않았던 거 같은데... 아닌가? 결말이 제대로 없어서.. (네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책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맞아, 우린 어린애라고 하기엔 컸으니까!
잡아먹히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
 
아까 읽은 책을 떠올려보아도... 소용돌이를 찾으라는 내용 전후로는 딱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한참 있었던 소동 때문에 읽을 정신이 없기도 했고, 설령 다 읽었어도 까먹었겠죠.
 
슈테른:... 맞아요. 인어는 잡아먹으려고 하진 않았으니까 대화는 통하지 않을까요?
뭐든간에 직접 확인해야겠지만요. (계속 가자는 듯 손을 잡아 이끈다.)
 
시아록:맞아. 뭘 대가로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이끄는 대로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대화하며 걷다 보면 슬슬 인간이 쌓은 것들이 줄어들고 인적이 드물어집니다.
 
초롱이 비추는 것이 암석과 물밖에 없어질 때쯤에는, 기분 탓인지 주변도 어두워진 것 같네요. 으스스해요!
 
잘 걷다 보면 옆에서 걷던 슈테른이 갑자기 멈춰서더니,
 
슈테른:... ...
시아록, 있잖아요...
...
 
시아록:응? 왜?
 
슈테른:... 아니에요. 이럴 때가 아니죠. 마저 가요. (말을 끝낸 직후 입을 꽉 닫아버린다.)
 
시아록:응? 왜 무슨 일인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너를 쳐다본다.)
 
한참 심각한 표정으로 서 있더니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며 다시 걸음을 재촉합니다.
 
아마 북쪽의 소용돌이와 관련해 뭔가 말하려다 말았겠죠. 평소보다 말수가 많은 걸 보니 퍽 긴장한 모양입니다.
 
그 앞으로 한 발짝 더 디디면, 이제 비로소 바위조차 보이지 않게 됩니다.
 
마녀를 찾아서
 
사람들이 엉성하게 세워둔 울타리를 넘고 얼마나 걸었을까요.
 
그 사이 허허벌판인 줄 알았던 북쪽 땅에도 있던 집을 몇 개 지나쳤습니다.
 
비록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라, 지붕이 없거나 벽이 허물어져 있어 마치 거대한 괴물이 물어뜯은 것처럼 보이지만요.
 
시아록:여기도 집이 있네...
(무너진 집들을 눈으로만 훑으며 신기해하며 얘기한다.)
 
슈테른:한때는.
먼 옛날에, 우리가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쯤엔 북쪽까지도 마을이 쭉 이어져 있었대요.
그러다가 갑자기 해류 때문에 거진 절반이 황폐화되고, 버려진 땅이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 문득 생각난 건데, 어쩌면 전 여기 출신이었을지도 몰라요.
 
시아록:아.. 그렇구나. (네가 여기 출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에 그저 눈으로만 훑었던 광경을 좀 더 세세하게 쳐다봤다.)
아무도 없는 마을은 좀 쓸쓸하네.
 
슈테른:...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농담이었으니까요.
그냥 만에 하나 여기서 살았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요. 구색도 못 갖춘 조상님 집에 살다가 해류에 휩쓸려서 기억을 다 잃었다든가...
 
시아록:그럴 수도 있지. 슈슈, 아직은 기억 못 하니까. 여기서 정말 살았던 거라면 그래도 슈슈가 살았던 곳을 보게 된 거네.
 
슈테른:...말하다 보니까 제법 그럴듯한 것 같기도 하네요. 아무튼 여기도 한때는 누군가의 보금자리였겠죠...
전 여기 처음 온 것 같은데... 말씀처럼 어쩐지 쓸쓸하게 느껴져요.
그런 걸까요? 여기가 고향이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기분이 묘해요.
 
시아록:나도 여기는 처음이지만, 음... 여기가 만약 고향이더라도 기억에만 조금 남기고 털어버려. 어차피 슈슈가 계속 살 곳은 나랑 있는 마을이니까!
 
슈테른:... 맞아요.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가 무슨 소용이겠어요. 지금은... 바다 마을의 일원이니까 됐어요.
 
시아록:좋아! 그럼 더 가볼까. (네 손을 잡아 끌며 앞으로 향한다.)
 
걸으면 걸을 수록 들쭉날쭉 높낮이가 다르게 치솟은 지형이 점점 평평해집니다.
 
해초도, 암석도, 심지어 그 흔하디흔한 물고기조차 자취를 감춘 곳.
 
바야흐로 완전한 평지입니다.
 
바닥에는 버석한 모래만 허름한 융단처럼 깔려있습니다. 마치 타다 남은 재처럼 칙칙한 색깔입니다.
 
여기가 맞나요? 시아록, 지능 판정.
 
시아록:여긴가?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93
판정결과: 실패
 
... 재판정 가능합니다!
 
여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인적이 드물어도 너무 드물지 않나요?
 
이제 와서 돌아가자니 앞이 까마득해도 너무 까마득하지만요...
 
시아록:으음... 여긴 아닌 거 같지..? (너를 쳐다보며 의견을 구한다.) 조금 더 안에 들어가볼까?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43
판정결과: 보통 성공
 
방향을 살피다 보면 갑자기 책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마녀가 사는 소용돌이 근처엔 꽃이나 풀은커녕 생명은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습니다. 벌거벗은 잿빛 모래땅만이 가득했을 뿐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맞게 온 것 같네요.
 
시아록: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거 보니까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책의 이야기처럼 해초도 무엇도 없는 텅 빈 모래벌판을 본다.)
 
슈테른:지금까지 방향은 안 헷갈리고 잘 왔으니까 아마 맞을 거에요.
좀 더 걸어가봐요, 우선은.
 
시아록:응, 좀 더 가보자.
 
재해의 지역, 심해에 존재하는 죽음의 땅이 다름아닌 이곳일지도요.
 
어쩌면 사람이 살지 않는 심해의 모든 구역은 이렇게 삭막할지도 모르죠.
 
이렇게까지 생명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 곳은 둘 다 처음입니다. 좋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신선하기는 합니다.
 
유독 잘 꺼지는 모래더미를 걷다 보면...
 
발밑이 푹 꺼지는 느낌과 함께 땅이 무너져 내립니다.
 
침식으로 인해 생긴 구덩이가 아닙니다. 이건…….
 
슈테른:바다귀신?!
 
그가 비명처럼 외칩니다.
 
일명 ‘개미지옥’을 만드는 개미귀신과 비슷한 개체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바다귀신은 그 크기가 비정상적으로 크다는 거겠죠!
 
물고기는 물론이고 사람을 잡아먹기도 합니다. 무엇이라도 잡으려고 허우적대 봅니다.
 
시아록, 민첩 판정.
 
시아록: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하지만 발버둥은 하등 소용이 없어집니다. 이곳은 황야니까요. 해초는 물론이고, 바위조차 보이지 않는...
 
지탱할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둘은 그저 무력하게 빨려 들어갈 뿐입니다.
 
회오리의 중심에는 고개를 빼꼼 내민 무시무시한 형상의 애벌레가 보입니다.
 
평생 심해에 살아 나비가 되지 못하는 애벌레는 몇백 년 동안 몸집을 키워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되었습니다.
 
이대로 꼼짝없이 빨려들어가나, 눈을 질끈 감고 있으면...
 
돌연 바닥에 가라앉아있던 모래들이 우수수 날아가기 시작합니다.
 
두 사람을 잡아먹기 위해 입을 벌리던 바다귀신조차 몸서리를 떨며 구멍 안으로 숨고, 빨아들이던 소용돌이가 멎습니다.
 
아, 살았다. 산 건가...? 행운이라 기뻐하기에 앞서, 섬뜩한 느낌과 동시에 본능이 경고합니다.
 
무언가 온다!
 
누가 먼저 잡았던가요? 슈테른의 손을 생명줄처럼 단단히 붙잡으면, 주변이 점점 어두워집니다.
 
슈테른:...시, 아록.
(죽을 고비를 넘겼으나 안심할 틈도 없다는 듯 몰아치는 폭풍에 입술을 깨문다.) 서로 잃어버리지 않게 꽉 잡아야 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손을 절대로 놓으면 안 돼요. 알겠죠?
(목소리도, 손도 형편없이 떨린다. 다가오는 무언가를 짐작하지 못하기에 더더욱.)
 
시아록:응, 알았어. (네 말을 가만히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네 손을 꽉 잡았다.)
 
잊었나요. 이곳은 북쪽이라는 걸. 모든 생명의 보금자리를 휘젓고 집들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악명 높은 해류가 밀려옵니다.
 
무너질 것처럼 흔들리는 지면에 시아록과 슈테른은 몇 번인가 손을 놓칠 뻔 합니다.
 
그래도, 다시 찾아내 기어코 손을 거머쥡니다. 이번에는 두 손으로.
 
세계를 순환하는 거대한 바다, 그 흐름을 바꾸는 가혹한 물의 폭풍에 우리는 어쩌지 못하고 삼켜집니다.
 
거스를 수 없는 섭리이자, 재해 그 자체. 당신은 몸을 감싸는 터질 것 같은 압력에 눈도 뜨지 못하고 아주 빠른 속도로 떠내려갑니다.
 
몇 분간 휘말려 생과 사의 여로에서 오락가락하던 순간,
 
시아록, 행운 판정.
 
시아록:
기준치: 80/40/16
굴림: 93
판정결과: 실패
 
해류의 흐름이 크게 바뀝니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둥글게 원을 그리는 것처럼,
 
작은 먹이를 삼킨 회오리는 채찍처럼 휘갈기며 두 사람을 전에 없이 낯선 곳에 데려갑니다.
 
날카로운 무언가가 뺨과 팔을 할퀴고 지나갑니다.
 
처음에는 바늘에 쓸린 정도, 그다음부터는 뾰족한 송곳에 긁히는 듯 한 아픔이 찾아옵니다.
 
슈테른:...!
 
점점 더 많이, 점점 더 아프게!
 
가시덤불 사이를 벌거벗은 채 전속력으로 달려 나가는 것처럼 피부가 따갑고 얼얼해, 두 사람은 반사적으로 양팔을 들어서 몸을 보호합니다.
 
"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통에 찬 신음이 터져나옵니다. 그러나 첨예한 고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슈테른:
(To GM)rolling 1d100
 
(
43
 
)
 
 
=
43
 
어느새 둘 다 어딘가에 세게 부딪힙니다.
 
쾅! 몰아치는 격통에 눈물이 찔끔 납니다. 아파라...
 
시아록, 체력 1점 차감. 슈테른, 체력 3점 차감.
 
하지만 덕분에 해류에 저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지독한 폭풍도 조금만 있으면 위세를 잃고 잠잠해지겠지요. 전원 근력 판정.
 
시아록:
근력
기준치: 75/37/15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슈테른:
근력
기준치: 45/22/9
굴림: 33
판정결과: 보통 성공
 
둘 다 아까 부딪힌 바위를 콱 잡고, 세계의 흐름을 거스릅니다.
 
얼마나 버텼을까요, 물의 흐름은 잠잠해지더니 곧 멎어듭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폭풍에 휩쓸렸다는 건 곧 전혀 모르는 곳으로 이끌렸을지도 모른다는 거니까요.
 
얼마나 휩쓸린 건지, 여긴 어디인지... 뒤늦게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면.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주변을 기이할 정도로 크고 단단하게 자란 해초가 빽빽하게 덮고 있기 때문입니다.
 
뾰족한 해초 가시들에 찔리고, 몸통에 부딪혀 성한 곳이 없지만, 일단... 목숨만은 건졌습니다.
 
적어도 해초가 우리를 잡아먹진 않을 테니까요. ...그렇죠?
 
시아록:슈슈, 괜찮아? (다친 곳이 쓰린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쓰고 있지만, 걱정되는 눈빛으로 너를 살핀다.)
 
슈테른:시아록, 괜찮...! (거센 기침을 두어 번 방울방울 뱉어낸다. 목이 조금 갈라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외친다.) 괜찮아요?!
 
시아록:슈슈는 괜찮아? 나야 이정도는 괜찮아. 우리 가져온 해초 있어? 조금 치료하면 좋을 거 같은데..
 
슈테른:놓쳐버린 거 아닐까요, 아까 해류에 휩쓸릴 때...
으... 우리 소지품이 어디 있죠?
 
두 사람은 각자의 손을 살핍니다. 전원 행운 판정.
 
슈테른:
기준치: 45/22/9
굴림: 1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시아록:
기준치: 80/40/16
굴림: 5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삽과 해초 묶음 둘 다 제대로 쥐고 있습니다. 다만... 난리 통에 서로 바꿔쥐고 있지만요!
 
슈테른:다, 다행이다... 둘 다 잘 있네요.
 
시아록:그러게, 그 와중에도 안 잃어버렸다.
 
슈테른:그럼... 제가 치료해 드릴 테니까 가까이 오세요. (삽을 달그락, 내려놓는다.)
부딪힌 부분이 어디세요?
 
시아록:내가 아니라 슈슈가 먼저 해야하는 게 아닐까?
(해초를 달라며 손을 내민다.)
 
슈테른:저, 저는... 아, 아야. (미처 삼키지 못한 신음이 튀어나온다.)
그럼 여기다 좀 감아주실래요? (해초를 건네고, 몸을 뒤척이더니 왼쪽 발목을 앞에 놓는다.)
 
시아록:응. 많이 아파? (미간을 조금 찌푸린 채로, 받은 해초로 일단 네가 내민 왼발목에 단단히 감아 고정하고 다른 상처가 있는 곳에 동여맸다.)
 
슈테른:괘, 괜찮아요. 좀 따가워서... (꽉 감을 때마다 아픈지 몇 번 이맛살을 구긴다.)
시아록이야말로... 얼굴이 많이 상했어요. 이곳저곳 생채기도 났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약이라도 들고 올걸.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꼴을 하고 걱정을 토한다.)
 
시아록:난 슈슈보다 튼튼하니까 괜찮아. (습관처럼 어깨를 으쓱이다가 역시 조금은 쓰린지 잠시 움찔 움직임을 멈췄다.) 그래도 이정도면 다행이지. 아까 진짜 위험했으니까.. 근데 슈슈는 발목이 그래서 걸을 수 있겠어? 좀 업어줄까?
 
슈테른:그래도요... 몸이 튼튼해봐야 부딪히면 다 아프잖아요. 이번엔 제가 치료해 드릴게요. 어디가 아프세요?
아... (방금 전의 상황을 떠올리고는 공포에 가까운 막막한 표정을 짓는다.) 사, 살아남았네요, 저희...
살았어요... 그렇게 위험했는데. (안도의 한숨을 쉬더니 몸이 무너진다.)
 
시아록:그렇지. 수고했어. (네 머리를 쓰다듬고, 옆에 앉았다.) 조금만 쉬다가 갈까? 아까 무서웠지..
 
슈테른:... ... 네. (힘없이 상체를 눕힌 채 쓰다듬어주는 손을 만끽한다.) 당황하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해 놓고...
막상 제가 다 긴장하느라 몸이 뻐근해졌네요. 조금만... 이러고 있어요.
 
시아록:다들 그 때는 당황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나도 엄청 당황했어..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리고 잠시 한숨을 쉬었다.)
그래 좀 쉬었다 가자.
 
슈테른:(눈을 감은 채 흉부만을 오르락내리락하더니 조곤조곤 입을 연다.) 저는...
아무리 북쪽이 위험하다고 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나 봐요.
그러고보니 여긴 어딜까요? (누운 채로 고개를 움직여 이곳저곳을 살핀다.) 해초가 엄청 많은데.
 
시아록:나도, 엄청 안일하게 생각했는지도 몰라. 그러니까 너 데리고 여기까지 오고.. (한숨을 내뱉기보다 삼키고는 머리속을 정리하듯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조금 괜찮아진 낯빛으로 주변을 네 말에 둘러본다.) 그러게. 아까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는데, 여기는 해초가 많네.
 
슈테른:해류는... 마을에서 맞는 것처럼 그저 볼을 간질이는 정도일 줄만 알았어요. 아무리 세 봐야 도서관에서 몰아쳤던 그 정도일 줄 알았어요.
이렇게, 사람까지 쓸고 지나가는 폭풍일 줄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붕 뜨는 느낌은 두 번 다시 체험하기 싫었다.)
저야말로 미안해요. 위험한 곳에 괜히 오자고 해서... (유독 쓴 표정을 짓는다.)
 
시아록:아냐, 괜찮아. 나도 같이 오자고 했으니까. (누워있는 네 손을 토닥인다.)
강한 해류는 이렇게 무서운 거였네. 앞으로 해류는 조심해야겠다, 그치? (아까의 공포스런 분위기를 상쇄해보고자 슬쩍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슈테른:여기 있으면 아무리 거센 해류도 우릴 더 데려가진 못할 걸요. 사방 팔방을 전부 해초가 들이막고 있으니까요.
그러고보니 해초 종류가... 엄청 다양하네요. 누가 키우는 건가...?
 
시아록:음, 난 해초는 잘 몰라서... (주변을 두리번거려보아도 특징이 크게 다른 해초 말고는 잘 모르겠다.)
 
슈테른:특히 이건... 이 붉은 해초는 찐득찐득해서 잘만 바르면 상처도 깨끗하게 낫거든요. 얼굴이나... 싫으면 아까 다친 곳에라도 발라드릴게요.
 
시아록:그래, 발라줘. (쓰리긴 쓰렸던 듯 네게 얼굴과 생채기가 난 팔다리를 내민다.)
 
슈테른:(해초를 잔뜩 따서 근처에 있는 돌로 진액이 나올 때까지 짓이겼다.)
(어느새 우리처럼 잔뜩 생채기가 나 성한 곳이 없어진 해초를 꽉 쥐고 와서는 상처에 펴바른다.)
간지러워도 조금만 참으세요. 금방 나을 테니까.
 
시아록:응. (네가 바르는데 불편하지 않게 평소와 달리 고개를 끄덕이지 않고 입으로만 대답했다.) 슈슈도 발라야 하지 않아?
 
슈테른:저는... (쓸린 볼을 만지작대다 어물어물 내뱉는다.) 그, 그럼... 대신 발라주실래요? 시, 시아록이 괜찮다면요.
 
시아록:응. (네가 전부 해초의 진액을 발라주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이고는 네 생채기에 살살 펴 발랐다.)
 
슈테른:(간지러운지 얼굴이 몇 번 들썩이다가도 겨우 입술을 꽉 물어 참는다.)
 
해초를 이용해 급한 대로 응급처치를 끝냈습니다.
 
시아록, 체력 1 회복. 슈테른, 체력 2 회복.
 
슈테른:아... 다 된 것 같아요. 감사해요, 치료해주셔서.
덕분에 아까보다 훨씬 낫네요. (허리를 일으키고는 앉은 채 다리를 툭툭 턴다)
 
시아록:좋아. 이제 좀 괜찮아진 거 같지. (널 보고 씩 웃는다.)
 
슈테른:네. 충분히 쉬셨으면... 슬슬 움직일까요?
 
시아록:응, 이제 가볼까... 근데 여긴 어디람..
(조금 난감하게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슈테른:여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돌아갈 길이 있을 거에요. 아마도...
 
주변에는 해초만 넘실거릴 뿐입니다...
 
 
해류의 폭풍에 휩쓸려 도착한 이곳은 머리 위를 넘실거리는 해초가 사방으로 뒤덮인 곳.
 
빛도 물결도 들어오지 않는 이곳은 방향을 가늠할 수조차 없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해초가 비어있는 땅을 이어보면 꼭 길처럼 연결됩니다.
 
찝찝하지만 다른 길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길을 더듬어 앞으로 나아갑니다.
 
유독 찐득거리는 모래를 발로 헤치며 걷다 보면...
 
어디선가 단조로운 가락의 노래가 들려옵니다.
 
본능적인 공포에 주변을 둘러본다면, 양쪽에 드리운 해초 숲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소리는 차츰차츰 가까워집니다.
 
소용돌이의 중심은 마녀의 집 ♪
 
해류는 빙글빙글 소용돌이를 만들고 ♪
 
소용돌이는 빙글빙글 바다를 돌고 돌아 ♪
 
꿈을 꾸는 사람을 태우는 특급 열차 ♪
 
열차를 타야 도착할 수 있는 이곳은 ♪
 
소용돌이의 중심, 꿈꾸는 마녀의 집 ♪
 
소리가 더없이 가까워졌다고 생각될 즈음, 갑자기 앞이 어두워집니다.
 
뭔가 있나요? 시아록, 관찰력 판정.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84
판정결과: 보통 성공
 
―!
 
눈 앞을 뭔가가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뭔가 지나갔는지도 모를 뻔했네요.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흉측하게 아가리를 벌린 심해어의 머리 수백 개가 달린 거대한 해초가 심해 생물의 촉수처럼 유연하게 흐물거립니다.
 
이런 걸... 괴물이라고 하던가요. 시아록, 이성 판정.
 
시아록:
SAN Roll
기준치: 69/34/13
굴림: 84
판정결과: 실패
 
시아록, 이성 1 감소.
 
귀를 긁고 지나가던 소리는 순식간에 멀어집니다. 그 순간...
 
전원 정신력 판정.
 
슈테른:
정신
기준치: 75/37/15
굴림: 99
판정결과: 실패
 
시아록: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1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우리 앞에 놓인 것은 분명 해초의 숲이었습니다. 그런데...
 
해초가 어쩐지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초롱의 빛마저 삼켜버리는 무수한 해초들이 목숨을 조를 듯 위협적으로 일렁입니다.
 
어떤 해초는 심지어 초롱의 불빛을 흉내내어 생물을 꾀어내려 하기도 합니다.
 
저 해초들에게 잡히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살 수는 있을까요?
 
이제는 해초들마저 우리를 노리는 것 같습니다.
 
슈테른:...... 시아록.
뛸까요?
 
시아록:응.. 뛰자.(위협적이게 보이는 해초를 질린 눈으로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네 손을 잡고는 뛰기 시작한다.)
 
둘은 이 죽음의 숲을 박차고 달립니다. 다리를 움직여 달아나는 도중에도 머리는 굴러갑니다.
 
시아록, 지능 판정.
 
시아록: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36
판정결과: 보통 성공
 
‘반은 동물이고 반은 식물인 나무와 꽃들이 있었는데, 그것들은 꼭 백 개의 머리가 자라난 뱀처럼 보였습니다.’
 
책에 그렇게 나와 있었으니, 이곳은 마녀의 숲이 맞습니다.
 
직접 보니 생각보다 훨씬 이상하고... 끔찍합니다. 같은 바다 속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네요.
 
해초들은 우리를 놀리기라도 하는 듯 서로의 몸을 꼬며 노래를 시작합니다.
 
아, 이건 분명히... 유적지에서 들어본 소리입니다.
 
정확히는 유적지에서 주운 열쇠를 돌리면 소리가 나는 상자에서 나는 그 소리네요. 그 때는 신비롭고 듣기 좋았던 음색이,
 
섬뜩한 멜로디에 씌워지자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습니다.
 
이 해초들은 대체 정체가 뭘까요. 아까 그 기분 나쁜 노랫소리는 또 뭐고요.
 
노래를 자꾸 듣다 보니 손발이 해초에 감긴 듯 흐느적댑니다. 점점 지치네요...
 
어쩐지 잠이 오는 것 같아요...
 
아, 여기서 잠들면 안 되는데... 몸을 가누기가 힘듭니다.
 
이대로 드러누워서 잠을 청하면 모든 게 편해질 것만 같습니다...
 
시아록, 정신력 판정.
 
시아록:
정신
기준치: 70/35/14
굴림: 55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 순간 꿈에서 깨는 듯이 퍼뜩 정신을 차립니다.
 
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더라...?
 
비틀거릴 여유도 없이 옆에 있던 슈테른이 당신을 부축하고는 계속 달립니다. 저 앞에 무언가가 보입니다.
 
기이한 형상의 그것은 집이라고 하기에도 어렵지만, 우리의 목적지가 바로 저기입니다.
 
이 바다에서 가장 현명하고 가장 사악한 마녀의 집이요.
 
마녀와의 조우
 
마녀의 집은 세워진 곳 못지않게 그 건물도 특이합니다.
 
벽면의 새하얀 결은 매끄럽고도 단단해 그 어떤 해류나 지진이 찾아와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마을에 있는 집 중 어떤 것도 이렇게까지 매끄럽진 않은데 말이에요.
 
외벽부터 지붕, 창문까지... 전부 생전 처음 보는 소재입니다. 이런 것도 마법일까요?
 
슈테른:이렇게까지 단단한 집이라니 신기하네요...
전에 유적지에서 본 그 절벽들 못지않은 것 같아요.
 
시아록:아까부터 하나도 정신이 없네.. (정신차리려는 듯 머리를 한 번 흔들었다.)
그러게. (그 뒤 주변을 제대로 보고는 네 말에 동의했다.)
신기하게 생겼다.. 여기가 마녀의 집일까..?
 
슈테른:... 무서웠죠, 오는 길도...
특히 그 노랫소리는 정말 듣기 힘들었어요. 악몽을 꾸는 기분이었죠..
 
시아록:응, 그렇게 놀라서 달리는데 왜 잠이 왔는지 모르겠어..
노랫소리 때문이었을까..
 
슈테른:쓰러지시려는 줄 알고 깜짝 놀랐어요...
 
시아록:슈슈가 잡아줘서 다행이었어.. 고마워.
 
슈테른:거기서 시아록까지 쓰러졌으면 정말... 울었을 지도 몰라요.
 
시아록:응, 미안해.. (네 머리를 토닥여준다.)
 
슈테른:아니에요, 무사해서 다행이죠, 어쨌든...
책에서 본 마녀의 집도 이렇게 생겼으니까... 아마 맞게는 온 것 같아요.
... 문 열까요?
 
시아록:어... 한 번 노크해볼까..? (조금 겁나는 것 같기도 하다.)
 
슈테른:노크한다고 열어줄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사, 살짝만 두드려볼게요.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굳은 손을 열심히 움직여 똑 똑 노크한다.)
 
굳게 닫힌 문은 그 작은 두드림만으로 쉽게 열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어서 오세요."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문이 저절로 열립니다. 두 사람의 방문을 예상하던 것처럼 말이에요!
 
시아록:헉! 진짜 있다..! (깜짝 놀라 작게 속삭이듯 비명을 질렀다.)
 
문을 연 사람이 있을 자리에조차 아무도 없습니다. 순간 환청을 들은 줄 알았다니까요.
 
문을 열고 들어오면, 바닷속에서 가장 영리하고 가장 사악한 마녀가 보입니다.
 
마녀:이 곳에 손님은 오랜만이네요. 용케 잘 찾아오셨군요.
 
집안은 평범한 가정집입니다. 마녀는 푹신한 소파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는지 손에 책이 들려있네요.
 
시아록:아, 안녕하세요..
 
슈테른:저... 마녀님이 맞으신가요?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확인해보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이 사람을 마녀라고 불러도 될까요?
 
상상하고 그리던 마녀와는 정반대의 분위기입니다.
 
30대 중후반의 여성은 차분한 검은 머리카락을 아래로 묶고, 안경을 쓴 채 새하얀 가운을 걸쳤습니다.
 
그 안에 입은 정신 사나운 무늬의 에스닉 원피스는 바닥까지 내려옵니다.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그 ‘눈’입니다.
 
홍채도, 동공도, 한 층의 색깔이나 어둠도 없이 그저 새하얗기만 한 눈은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습니다.
 
바로 앞에 적힌 활자나, 우리조차도. 텅 빈 새하얀 눈이 가늘게 접힙니다.
 
마녀:세간에서는 저를 마녀라고 부른다지요?
누군가는 저를 마법사라고, 누군가는 저를 과학자라고 부른답니다. 마녀 역시 제 또 다른 이름이자 직업일 뿐이에요.
 
시아록:그렇군요.. 어, 이름은 없으시고요..?
 
마녀:마녀라는 호칭이 있는 이상, 이름이 중요할까요.
당신들이 누구인지 알아요. 시아록과, 옆은 프루헤 슈테른... 맞나요?
 
시아록:그치만 그건 호칭이지, 이름은 아니니까요.. (갑자기 불린 이름에 눈이 동그래졌다.)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마녀:마법이 있다면 불가능하거나 불편한 일이 크게 줄어들지요.
여러분이 내 영역에 들어왔을 때부터 계속 지켜보고 있었답니다. 마녀답게, 예지의 힘이 있는 수정구슬로...
... 농담이에요. 일개 마녀에게 그런 귀한 게 있을 리가요. 하지만 마법으로 알아낸 건 맞답니다.
 
시아록:그렇구나... (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마녀를 쳐다본다.)
 
마녀:과학을 이용하면 누가 무엇을 위해 찾아왔는지는 몰라도, 대략적으로 추측할 수는 있답니다.
 
시아록:과학이요?
 
마녀:아, 손님이 왔구나, 하고요. 당신들이나 다른 길을 잘못 든 생물들처럼 방해물이 있으면, 해류를 거스르려는 힘이 작용하니까요.
과학도, 마법도 결국은 같은 결을 띠고 있어요.
끊임없는 연구와 계산, 위대한 선인들께서 주고받은 담론을 거쳐 이루어낸 인류의 업적이며, 경이로 가득찬 지식,
그 핵을 지혜라는 자성을 이용해 끌어낸 결과물이죠.
 
시아록:으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진 않는 듯 잠시 고개를 기울였다.)
 
마녀:(예상한 반응인 듯 여상하게 이야기한다.) 여러분을 이곳으로 이끈 해류에 관해 이야기해볼까요.
제가 쓸 수 있는 약간의 마법과 과학의 조합으로 그 방향을 바꿀 수 있게 된 것뿐, 그 외에 대단한 힘을 사용하는 건 아니랍니다.
이 해류를 조종하기 위해, 수년간의 연구가 필요했죠. 
마법과 과학의 공통점은, 둘 다 인내심을 가지고 탐구하면 진리를 파헤칠 수 있다는 점이에요. 마법도 과학도 항상 순리와 법칙에 따라 작용하니까요.
 
시아록:그 무서운 해류가.. 마녀님이 하신 거군요.. (많이 무서웠던 듯 좀 원망적인 표정으로 쳐다본다.)
 
마녀:(굳어있던 건 언제고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게 재미있는지 깔깔 웃는다.) 후후, 믿었나요?
순진하긴... 거짓말이에요.
그 해류가 이끄는 곳에 저의 집을 지었을 뿐이죠. 일개 인간이 그런 힘을 낼 수 있을 리가요.
하지만 제게 부푼 희망을 품고 찾아온 누군가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줄 힘이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에요.
원하는 게 있죠? 당신들을 여기까지 제발로 걸어들어오게 만든 무언가가.
 
시아록:그렇구나.. (아니라는 말을 듣고 슬쩍 치켜올라갔던 눈매가 내려앉았다.)
어.. 우리 마을에 저주? 라고 해야 하나. 그런게 생겼는데.. 사람들이 많이, 많이 죽어서요.. (목소리가 우물거리며 침울해졌다.)
 
마녀:저주라...
무슨 저주인지 설명을... 아니, 그럴 필요 없겠군요. 무엇인지 알겠어요. (두 사람을 지긋이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어째서 제가 마녀라고 불리는지 알고 계시는가요? 뾰족하게 가시처럼 솟은 모자도, 특유의 새까만 옷도, 소름돋게 만드는 사악한 웃음도 달고 있지 않은데 말이에요.
사람들은 원래 ‘압도적인 것’에 공포심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너무 똑똑한 사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유능한 사람,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알게 된 사람…… 전부 저를 부르는 명칭이죠.
 
그 말을 듣고 내내 침묵하던 슈테른이 천천히 마녀에게 다가갑니다. 단정한 바닥을 딛고 나아가는 걸음걸이가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시아록:어... 왜 똑똑하고 많은 걸 아는 걸 왜 무서워해요..? (약간 멍청한 표정으로 마녀를 쳐다봤다.)
슈슈? (다가가는 너를 보고 깜짝 놀라 불렀다.)
(얼른 네 뒤를 따라간다.)
 
슈테른:그, 그럼...
마녀님은 알고 계시나요? 우리 마을의...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습니다.
 
발을 헛디딘 슈테른은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집니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석상이 홀로 서지 못해 쓰러진 것처럼, 그는 다시 일어서지 못합니다.
 
시아록:슈슈! (깜짝 놀라 너를 붙잡아 일으킨다.) 슈슈? 슈슈! 괜찮아? 왜 그래? 어?
(당황한 듯 너를 붙잡고 네 이름만 부른다.)
 
마녀:... 놀라는 걸 보니 어떻게 된 건지 알겠네요.
(모든 것을 꿰뚫어볼 듯한 눈으로 쓰러진 그를 응시하더니, 이마에 손을 가져다댄다.)
알고 있던 게 아니었나요?
 
시아록:손이 차가워진 건 알고 있었는데, 아니 그래도..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빨리 진행된 건 아니었는데.. 증상 있으면 얘기해주기로 했는데.. (당황한 듯 어쩔 줄 몰라하며 두서없이 말을 이었다.)
 
마녀는 당신의 말을 듣더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슈테른을 두 손으로 들어올립니다.
 
마녀의 처방
 
마녀는 이제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몸을 작은 방에 데려가 눕힙니다.
 
마녀는 명료하게 말합니다.
 
마녀:저주에 걸린 거에요.
 
어쩌면 알아차릴 기회는 이전에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선고가 위태로운 추측을 사실로 바꾸는 마지막 조각이었을지도 모르죠.
 
마녀:잠시 정신을 잃었을 뿐이에요. 곧 깨어나겠지만……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게 좋겠어요. 이 아이는 유난히 침식이 빠르네요.
 
바로 지척에서 얘기하는데도 슈테른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누워있을 뿐입니다. 온기가 떠나버린 몸은 싸늘한 시체처럼 느껴집니다.
 
마녀는 그렇게 말하곤, 정체 모를 파이프를 입에 가져다 댑니다.
 
동그란 끝에서 회색 가루가 퍼지고, 물에서 처음 맛보는 씁쓸한 향이 납니다.
 
시아록:그럼 풀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파랗게 질린 얼굴로 마녀에게 절박하게 붇는다.)
 
마녀:저주를 풀 방법이라...
 
마녀는 나직하게 웃으며 우아하게 파이프를 흔듭니다. 이어지는 대답은 단호합니다.
 
마녀:미안하지만 저는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네요.
비유하자면 저주는 해류. 바다보다 더 큰 세계를 유영하는 거대한 힘이랍니다.
일개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어요.
아직 당신의 목숨이 온전한 것에 감사하세요.
 
시아록:할 수 있는 게 전혀 없어요? 뭐라도요? 약도? 그렇다면 어차피 모두 죽는 거예요?
그럼 내 목숨이 온전한 것에 무슨 감사를 하라는 거예요?
어차피 슈슈도, 나도, 부모님이랑 마을 사람들도 다 저주로 죽는다면요?
 
마녀:어쩌면 당신도 저주에 먹혀 목숨이 사그라들 지도 모르죠.
어쩌면 아무런 시도도 효과를 보지 못해, 결국 남아있는 수중 인류마저 전멸할 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전혀' 방법이 없다고는 할 수 없죠. 과학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도, 0%에 달하는 가능성도 없으니.
그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이 아이는.
 
마녀는 안다는 건지 모른다는 건지 모호한 답을 내놓더니, 다시 입에 파이프를 머금습니다.
 
달콤한 물은 도대체 어떤 맛일까요. 이 세상을 둘러싼 물은 차고 쓰고 시리기만 해요.
 
시아록:전혀 방법이 없는 게 아니면 방법이 있어요? 뭐라도 해볼게요. 알고 있는 게 있다면 알려주세요.
 
마녀:글쎄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대가로, 계속해서 회의적인 태도로 일관할 뿐이다.)
저주를 풀기 위해 정말 '무엇이든' 할 수 있나요? 뼈가 깎이고 온 몸이 짓눌리는 고통을 견딜 수 있나요?
이 해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힘들 거에요. 어쩌면 죽을지도 모르죠.
아직 당신에겐 그런 결의가 없는 것 같은데요.
 
시아록:할 수 있어요. 무서운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고 슈슈도 누구도 없이 혼자 있는 건 더 무서우니까. (여전히 파랗게 질려있고 슈슈의 손을 붙잡은 손도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포기하는 건 바보같다고 생각한다.)
 
마녀:흐음...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 얼굴로 당신을 응시할 뿐이다.)
그럼, 이렇게 생각해 봐요. 저주가 풀린다고 정말 모든 일이 해결될까요?
죽은 사람이 돌아올까요? 저주가 진행되던 사람들이 정말로 씻은 듯이 나을까요?
기껏 저주를 해결했더니, 또 다른 재난이 닥쳐 또 다시 벼랑 끝으로 몰린다면?
당신의 노력이 아무런 쓸모를 갖지 못하게 되더라도 정말 괜찮나요?
제 앞에서 거짓말하려거든 당장 나가는 게 나을 거에요. (위협적인 자세를 취하며 숨결이 닿을 만큼 코앞까지 당신을 밀어붙인다. 마치 거대한 괴수가 으르렁대는 것 같다.)
 
시아록:(당신의 말도 위협적인 자세에도 더 질린 표정에 조금 물러났다. 그렇다고 도망가지는 않았다.) 이미 죽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건 사실이고, 다음에 재난이 또 올 수도, 제가 덧없는 희망으로 이러는 걸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게 있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일어날 거니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멍청한 거잖아요. 다음에 일어날 일은 다음에 또 알아서 할 일이에요. 나는 하나로도 벅찬데 다음까지 신경 쓸 여유도 없어요.
 
마녀:저주를 푸는 데 얼만큼의 세월이 걸릴 거라고 생각하나요?
어쩌면 너무 늦게 풀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결과를 맞을 수도 있어요.
어쩌면 모든 사람이 저주에서 벗어나도, 당신 혼자서 그 저주를 품고 가야 할 지도 모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라도 시도하고 싶나요?
 
시아록: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할래요. 어차피 그렇게 똑똑한 것도 아니고.
거기까지 많은 생각을 하면서 별로 움직여본 일도 없는 걸요..
 
마녀:...흐음. (아까의 협박하는 듯한 태도는 어디가고 자세를 갈무리한다.)
마지막으로 당신처럼 열렬한 감정을 느낀 게 언제인지 모르겠네요.
실망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사실 마녀가 아닙니다.
하지만 마녀는 분명히 있었어요. 징그러운 뼈로 만든 집에서 물뱀에게 먹이를 주었고, 별처럼 아름다운 눈을 대가로 인어 공주를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죠.
지금은 내가 마녀라고 불리는 이상……. 나를 찾아왔으니, 도와주어야겠지.
물론 대가는 받아낼 거야. (내뱉는 말은 슈테른의 몸보다도 싸늘하다.)
 
시아록:애초에 대가가 없다고 생각지도 않았어요..
내가 줄 수 있는 대가가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슈테른은 여전히 죽은 듯이 잠들어 있습니다. 마녀는 그 앞에서 팔짱을 끼더니 재차 되묻습니다.
 
마녀:정말로, 저주를 풀고 싶나요?
정말로?
 
시아록:(마녀를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아록이 긍정하자, 마녀가 말했습니다.
 
마녀:방금 전의 말에 거짓은 없어요.
당신의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몰라요. 목숨을 걸더라도 실패할지 모르죠.
 
그리고 마녀는 시아록이 누릴 수 있는 것을 말했습니다. 빼앗길 것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아주 끔찍하고도 매혹적인 제안이었습니다.
 
마녀:이 모든 걸 당신이 짊어지겠다면 도와드리죠.
 
시아록:좋아요, 도와주세요.
 
마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당신의 눈을 손으로 덮습니다.
 
순간 시야가 흔들립니다. 눈은 제대로 보이지만, 맺히는 상은 겹치지 못하고 둘로 갈라집니다. 어지럽습니다.
시아록은 지금부터 '관찰력' 기능치를 사용할 때마다 패널티 다이스 1개를 받습니다.
이것은 3부까지도 계속 적용됩니다.
당신의 가장 소중하고, 가장 유능한 것. 이것이 마녀에게 바치는 대가, 인어 공주의 상실― 목소리입니다.
 
무언가 가져오느라 잠시 사라졌던 마녀가 나타나고, 마침내 당신의 앞에 놓인 것은 세 가지 물건입니다. 마녀는 웃으며 읊조립니다.
 
마녀:슈테른을 구하고 저주를 풀기 위해선 뭍으로 떠나야 해요.
길고 험난한 여정이 되겠죠. 이건 두 분을 위한 선물이랍니다.
나침반, 인간이 되는 약, 그리고 해독제를 드리겠어요.
 
시아록:(물건들을 잠시 보다가) 인간이 된다고요?
뭍으로 나간다고요?
 
마녀:뭍으로 나가, 저주를 해결할 방법을 찾으세요.
 
시아록:(예상치 못한 얘기들에 당황하고 놀란 듯 하다.)
뭍에 나가야 하는구나.. (다소 얼떨떨하기는 했으나 별로 무를 생각은 없다.)
 
마녀:인간이 되는 약을 마시면 뭍에서도 숨을 쉴 수 있게 됩니다.
파도의 계단에 눕기 전에 두 사람이 나눠 마시면 돼요.
나침반은 가야 할 곳으로 안내할 겁니다. 언제나 지니고 계세요.
 
시아록:슈슈는.. 사람이 되어서도 저주가 계속 진행되나요?
(걱정섞인 눈빛이 슈슈에게 닿았다.)
 
마녀:풀어내지 않는 한 저주는 계속해서 근처에 머무르겠죠. 죽음도요.
 
그리고 마녀가 엄숙하게 경고합니다.
 
마녀:해독제는 때가 오기 전에 결단코 열어서는 안 됩니다.
 
충분히 숙성이 필요한 약이라, 섣불리 열었다간 모든 걸 망칠 거라고 말하는 목소리는 숫제 겁을 주는 것처럼 들립니다.
 
시아록:(슈슈를 데리고 뭍에 가는게 과연 안전한가를 열심히 셈해보지만, 애초에 마을을 떠나올 때 슈슈와 약속한 것도 있다.)
그럼 열 수 있는 때는 어떻게 알게 되는데요?
 
마녀:때란 이미 정해졌으되 아직 정해지지 않은 순간.
도착했을 때 비로소 직감할수 있죠.
해독제가 필요하게 되는 때가 올 거예요. 그때 뚜껑을 여세요.
 
시아록:..마녀님 말은 어렵네요. 알았어요.. (물건을 빤히 보다가 챙겼다.)
 
모든 것을 시아록에게 쥐여준 마녀는 당신을 지켜보다가 등을 돌린 채 혼잣말을 중얼거립니다.
 
시아록, 듣기 판정.
 
시아록: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결국 당신은, 내게 그분을 구할 기회를 주셨던 거군요……."
 
그 한 마디는 비탄에 잠긴 것 같기도, 허무함을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마녀:분명히 아플 거고, 분명히 괴로워지겠죠.
 
내내 잠잠하던 해류가 술렁입니다. 집안의 중심에서부터 소용돌이가 꽃처럼 피어오릅니다.
 
이것이 거대한 해류의 끝이자 시작임을 직감합니다.
 
마녀:여러분은 지상의 가장 쓴맛을 입안 가득 머금을 거예요.
필연적으로 시작점으로 되돌아오기만을 고대하게 되겠지만.
 
어느덧 슈테른을 안아 든 마녀는 당신에게 다가옵니다.
 
마녀:……기적적으로 불행해지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줄래요?
 
목소리는 차츰차츰 잦아듭니다.
 
마녀:사실, 저...
 
희미한 말은 물거품이 되어 보글보글 올라갑니다. 더 높은 곳으로, 더 먼 곳으로.
 
시아록:좋아요. 그럴게요. (작게 들리는 말에 뒤늦게 대답했다.)
 
시아록과 슈테른을 부드럽게 감싼 해류는 문 밖을 빠져나와 어딘가로 향합니다.
 
두 사람을 이곳으로 안내한 물결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입니다.
 
어딘가 따뜻하고, 다정하고, 쓸쓸한 열차는 해초의 숲을 벗어나 머나먼 길을 떠납니다.
 
두 사람을 발견한 해초의 숲 주민 해초들은 손을 흔들어줍니다. 그 모습이 무섭게 느껴져도 상관 없이요.
 
슈테른:... 으......
 
해류에 탑승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로소 그가 깨어납니다.
 
시아록:슈슈? 괜찮아?!
 
슈테른:... 물이 달아요.
이게 이런... 의미였구나...
 
시아록:(네 말에 화들짝 놀란 듯 쳐다본다.) ...그렇구나.. 다른 불편한 곳은 없고..?
 
슈테른:...... 숨겨서 미안해요. 증상이 나타나면 바로 말해주기로 했는데...
 
시아록:으응.. 그, 내가 멋대로 마녀랑 얘기했는데.. 저주를 풀려면 지상에 가야 한대. 슈슈도 같이 가게 되었는데, 멋대로 결정해서 미안.
 
슈테른:손발이 뻣뻣해진 건 도서관에서 나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어요. 그 전까지는 정말... 추워서인줄만 알았는데.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죠.
당장 마녀를 찾아가는 데 집중해야 할 당신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설마 쓰러질 줄은...
아... 지금은 괜찮아요. 아까보다 훨씬 몸 가누기도 편하고...
 
시아록:그렇구나. 나같아도 그랬을지도 몰라. 저주 걸렸다고 누가 믿고 싶겠어.
그래도 괜찮다고 하니까 다행이네..
 
슈테른:마녀랑요? 정말로... 부탁을 들어주신 거네요.
지상에...? 하지만 뭍은 이미 멸망했잖아요.
제가 같이 가는 건 괜찮아요. 하지만 뭍에서 어떻게 저주를 풀어요?
저희는... 뭍에선 숨쉴 수도 없다고 했잖아요. 정말 괜찮을까요?
 
시아록:(마녀에게서 받았던 물품을 꺼내 보여준다.)
이건 인간이 되는 약이고, 이건 뭘 찾을 수 있는 나침반, 이건 해독제래.
인간이 되는 약은 반반 나눠마시면 뭍에서 숨 쉴 있을 거래. 해독제는 바로 열면 안 된다고 했고.. 숙성이 필요하대.
나침반으로 뭍에서 저주를 풀 수 있는 걸 찾으란 얘기인 거 같아..
 
슈테른:... 세상에.
아무리 마녀라고는 해도, 어떻게...
... 뭍이 궁금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뭍에서도 숨쉴 수 있는 마법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설마 이런 이유로, 이런 방식으로 올라가게 될 줄은... 몰랐어요.
 
시아록:그러게.
신기하긴 하지.
 
슈테른: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그런 거겠죠...
이 해류는... 어디로 가는 거에요? 위로 올라가나요?
 
시아록:그 유적지 지나서 파도의 계단? 거기.. 갈 거 같은데.
지상에 올라가려면 그 길 밖에 없고? 파도의 계단에 눕기 전에 약을 먹으라고 했어.
 
슈테른:그렇구나...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시아록:응. 지금은 아픈데 정말 없는 거야?
 
슈테른:그럼 이렇게 된 김에 경치 구경이라도 해요. 심해 위로 올라가는 건 처음이잖아요.
... 걱정받을 정도는 아니에요. 우리에겐 지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잖아요.
 
시아록:응.. 그래도 아프면 얘기해야 돼. 네가 괜찮아야 같이 갈 수 있는 거라고.
 
슈테른:그럼요. 나중에 엄살부린다고 뭐라고 하지나 마세요.
(진실을 털어놓고 마음이 놓인 듯 가벼운 어조로 말한다.)
 
시아록:아픈 걸 아프다고 하는데 그게 왜 엄살이야? 좋아, 그러니까 다 얘기해줘야 해.
 
슈테른:(고개를 끄덕이며 반사적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어, 시아록. 저기 좀 봐요! (그렇게 말하며 아래를 가르킨다.)
 
두 사람이 대화하고 있으면, 해류는 유적지의 위를 지납니다.
 
그가 가리킨 것은 성게 무리입니다. 떼를 지어 걸어가던 작은 성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조개껍데기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누가 더 근사한 모자를 썼나 비교하던 성게들은 해류를 타고 날아가는 시아록과 슈테른을 발견했는지, 제자리에서 쫑쫑 뛰며 두 사람을 따라옵니다.
 
물론, 성게의 속도보다는 두 사람을 태운 해류가 훨씬 더 빨랐으므로 성게 떼는 순식간에 점들의 행진이 되어 멀어집니다.
 
슈테른:(쓴웃음이 아닌 편안한 웃음을 지으며 멀어지는 점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
 
시아록:귀엽네..
 
슈테른:그렇죠.
 
해류의 손님은 시아록과 슈테른뿐만이 아닙니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열대어 떼가 탑승하기도 하고, 길을 잘못 든 심해어가 시아록의 머리 위에 올라타기도 합니다.
 
이 모든 환상적인 광경을 뒤로하고 떠난다 생각하니, 어쩐지 바다가 두 사람에게 작별 인사를 보낸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아록:이렇게 멀리 와 본 건 처음이라서.. 바다가 이런 풍경이라곤 생각지도 못했어.
 
슈테른:저도요. 저렇게 화려한 열대어들은 책으로만 봤었는데...
 
시아록:신기하다..
 
슈테른:직접 눈으로 보다니 운이 좋았어요.바다는... 생각보다 넓네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고요.
 
시아록:그러게. (바다를 한 번 더 둘러본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물과 그 속을 색색이 채우는 다양한 생물들을 보며 잠시 눈을 뗴지 못한다.)
 
슈테른:언제까지고 그리워할 풍경이 되겠네요. 바다를 떠나고 나면요...
뭍으로 가는 길이었죠. 저희 진짜 뭍으로 가는 거 맞죠...
다시 볼 수 있을까요. (편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는다.)
 
시아록:다시 볼 수 있을 거야!
 
슈테른:그럼 기다릴게요, 다시 바다로 돌아갈 날을.
시아록이 말한 거니까 믿어야죠.
 
그렇게 대화하고 있으면, 두 사람은 어느새 파도의 계단에 다다릅니다.
 
파도의 계단
 
가뿐하게 파도의 계단에 도착해 주위를 살피면, 계단, 이라는 말처럼 정말 높다란 비탈길이 있었어요.
 
비탈길 아래는 이보다 더 깊은 해구처럼 보였습니다. 아래로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는 게 좋겠죠.
 
시아록:나 파도의 계단은 처음 와 봐.. (깊고 아득한 아래를 보다가 반대편의 윗길로 쳐다본다.) 저 위로 올라가면 지상이라는 걸까?
 
슈테른:저도요. 정말 지상으로 향하는 계단 같네요...
물살이 세서 사람을 그대로 지상으로 뱉는다고 했으니까, 저 위에 강한 흐름이 있는 게 아닐까요?
 
시아록:그렇겠지? 위로 좀 걸어 올라가야 하나? 그냥 여기쯤에 누우면 되는 건가?
 
슈테른:좀 더... 위로 올라가봐요.
이곳은 지형이 워낙 울퉁불퉁해서... 좀 더 눕기 적당한 곳을 찾는 게 좋겠어요.
 
시아록:응, 그래. 조심히 올라가자.
 
두 사람이 높다란 비탈길을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그곳은 그저 작고 우묵한 평지와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손을 높이 드는 것만으로도 가파른 물살이 손가락 사이를 거세게 스치고 지나간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키가 더 컸으면 분명 단번에 휩쓸리고 말았을 겁니다.
 
맹렬하게 몰아치는 물살을 느끼던 슈테른이 입을 엽니다.
 
슈테른:시아록, ... 무섭지 않아요?
 
시아록:여기구나... 저 해류, 얼마전에 겪은 거처럼 위험할까..? (잠시 몰아치는 해류를 올려다보다가 너를 쳐다보았다.)
그야 전혀 모르는 곳으로 가는데다 아픈 너까지 데려가려니까 겁나고 무섭긴 한데, 괜찮아.
저주 풀려고 올라가는 거잖아.
너도 있고.
 
슈테른:어쩌면... 그것보다도 거칠지도 몰라요.
여기서 지상으로 한번에 올라가는 거잖아요. 이번에야말로 몸이 쑥 뽑히는 느낌일지도 모르죠.
 
시아록:그럴까.. 손 잡고 가도 괜찮을까?
(위험할 것이 분명한 해류를 떠올리며 손잡고 있다가 더 위험해지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슈테른:시아록이 그렇게 말해주시니까 어쩐지 두렵다는 생각도 사라지네요.
일이 수틀려서 중간에 물고기에게 먹혀버리거나, 뭍이 아닌 전혀 다른 바다를 표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막막했는데...
같이 있다면 뭐든 할 수 있겠죠. ... 아까 해류에서도 손 잡느라 위험하진 않았으니까 괜찮을 거에요.
(약간 멈칫하고 있던 당신의 손을 끌어다 단단히 쥐었다.) 떨어지는 게 전 더 무서우니까요.
 
시아록:응. (고개를 끄덕이고 네 손을 꽉 잡았다. 다른 손으로 인간이 되는 약을 꺼냈다.) 음, 일단 먼저 마셔볼게?
(약을 잠시 노려보다가 절반쯤 들이켰다.)
 
그래요. 무사히 뭍에 도착한다는 법은 없는걸요. 설령 도착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이 딱 맞게 돌아가진 않을 터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함께니까 괜찮을 겁니다.
 
마음의 준비를 끝낸 두 사람은 인간이 되는 약을 나눠먹습니다. 물고기의 내장보다,새우의 머리보다 쓰디쓴 맛입니다.
 
우리의 앞날을 예고하는 걸지도 모르죠.
 
슈테른:...쓰네요, 이거. 달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시아록:그러게.. 음.. (인상을 쓰고 혀를 몇 번 낼름거리다가 입을 닫았다.) 맛없다.
 
슈테른:그래도 이걸로 뭍을 볼 수 있다면... (잠시 뜸을 들인다.) 저주를 풀 수 있다면 싼 값이죠.
... 계단에 누울까요? 이제.
 
시아록:응. (네 손을 여전히 꼭 잡은 채 얌전히 누웠다.)
 
많은 말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주변의 말미잘들이 불안하게 떨립니다.
 
큰 물결이 다가오고 있네요. 우리는 바다에서 태어나고 바다에서 자란 아이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슈테른의 손은 여전히 차갑고 뻣뻣하지만, 힘껏 잡으면 아주 희미한 온기가 전해져옵니다.
 
아직은 늦지 않았어요.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슈테른:...준비됐어요?
 
시아록:응. 슈슈도 준비됐어?
 
고개를 돌리면, 눈이 마주칩니다. 그 시선은 다정하고 차분합니다.
 
슈테른:...네!
 
둘의 대답이 혀끝에서부터 밀어내진 그 순간, 바다도 여러분을 거세게 밀어냅니다.
 
입을 꾹 다무세요. 하마터면 혀를 깨물지도 모르니까요!
 
거대한 롤러코스터에 탄 것처럼(물론 여러분은 롤러코스터가 뭔지 모를 테지만요.) 몸이 사정없이 흔들립니다.
 
윙윙거리는 이명, 아플 정도로 힘껏 쥔 손, 목이 홱 꺾였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발끝이 뻣뻣해지다 못해 쥐가 날 것 같습니다.
 
중압을 이기지 못하고 눈앞이 까맣게, 하얗게, 다시 까맣게 점멸합니다.
 
"괜찮■■. 물 위■서 다시 만■■."
 
그것은 누구의 목소리였을까요? 이내 모든 것이 어두워집니다.
 
 
지상의 경계
 
……철썩, 철썩.
 
파도 소리가 잠든 정신을 깨웁니다.
 
눈을 뜨면 두 사람은 모래사장에 누워있습니다.
 
밀물과 썰물이 뺨 위로 올라왔다 내려가기를 반복합니다.
 
아, 지상이다. 비로소 실감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면 달라진 풍경이 보입니다.
 
바닷속에서는 들을 수 없던 요란한 물소리가 들립니다.
 
전신을 감싸던 물 대신 서늘한 바람이 목덜미를 스쳐 지나갑니다.
 
슈테른:... 여기가...
지상...?
 
시아록:여기가 뭍이구나.. (뭔가 전혀 상상도 못한 풍경을 보며 멍하게 서있다.)
 
슈테른:... 뭔가 기분이 이상해요.
몸이 더 무거워진 느낌이기도 하고...
 
시아록:으응.. 뭔가 주변에 물이 없는 것도 이상해...
 
슈테른:아무것도 없는데 자꾸 뭔가가 피부를 간질이고 지나가요...
 
시아록:응, 그러게. 뭐지, 이게? (주변에 손을 뻗어봤자 물처럼 묵직하게 손가락 사이를 타고 흐르는 것은 없다. 그저 가볍게 무언가가 스쳐지나갈 뿐.)
 
슈테른:모래는, (쭈그려 앉아 젖은 모래를 손에 쥔다.) 여기에도 있구나... 바다에만 있을 줄 알았는데, 뭍에도 깔려있다니...
이러고 있으니까 아직도 바다 속에 있는 것 같아요... 소리는 훨씬 시끄럽지만.
 
시아록:땅은 바다든 뭍이든 똑같은가봐.
(모래를 밟자 바다속과는 달리 자박자박 소리가 나서 좀 신기하다.)
 
슈테른:몸이 무거운 건 저 하늘을 받치느라 그런 걸지도 몰라요. 지상 사람들은 모두 하늘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고...
아, 하늘에 구멍이 뚫려 있어요. 저것 좀 보세요! (하늘에 있는 새하얗고 얼룩진 동그라미를 가리킨다.)
 
시아록:(네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고개가 들렸다. 새하얀 무언가가 떠다니는 걸 보고 눈이 동그래졌다.) 뭍에는 이상한게 많구나. 바다랑 전혀 다른데도 뭐가 떠있네.
 
슈테른: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는 걸까요. 갑자기 떨어질까봐 무섭네요...
... 아, 아...... (어딘가로 고개를 돌리더니 눈이 크게 떠진다.)
 
시아록:그러게.. 하늘 바치고 있는 것도 무거운데, 저게 떨어질 것도 걱정해야할까..?
응? 왜 그래?
 
그를 따라 고개를 돌리면.
 
발치에, 떠밀려온 시체들이 숨 쉬는 법을 잊고 고요히 버려져 있습니다.
 
익히 아는 얼굴들입니다.
 
다소 무섭던 사냥꾼과 꽃소금을 쥐여주던 장로님, 수다스럽던 박물관장...
 
장례 행렬에 실려 온 시체를 목격한 두 사람, 이성 판정.
 
시아록:
SAN Roll
기준치: 68/34/13
굴림: 60
판정결과: 보통 성공
 
슈테른:
SAN Roll
기준치: 74/37/14
굴림: 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시체들은 쓸쓸하고 외롭게 버려져 있습니다. 보고 있으면 심장이 조여드는 기분이 들어 눈을 돌리고 싶어집니다.
 
시아록:아... (낮게 탄식을 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그들을 바라보았다.) 바다에 돌아가지도 못했는데, 여기라도 묻을까..?
 
슈테른:(아픈 얼굴로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다.) 무덤이라도 만들어요. 조금이라도 편안하도록...
 
시아록:그래, 그러자.
 
슈테른:... 시아록. 혹시 삽 아직 갖고 있어요?
 
그 말을 듣고 확인해보면, 손에 무언가 들려있긴 하네요. 시아록, 행운 판정.
 
시아록:
기준치: 80/40/16
굴림: 88
판정결과: 실패
 
삽은 없고 애꿎은 해초 묶음만 들려있네요. 그래도 이건 이것 나름대로 쓸모가 있겠죠.
 
할 수 없이 손으로 모래를 파내야겠습니다.
 
시아록:잃어버렸나봐. 어쩔 수 없네.. (손으로 모래를 파냅니다.)
 
두 사람은 모래를 파내어 이제는 성한 곳이 없는 시체를 묻습니다.
 
이렇게나마 가는 길이 더 편안해지길 바라며.
 
슈테른은 옆에서 생명의 은인인 사냥꾼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부드러운 모래로 얼굴을 덮어줍니다.
 
당신도, 마지막 인사를 합시다.
 
시아록:잘가요.. (잠시 모래 언덕을 손으로 두어번 두드린다.)
 
모래 무덤으로 망자를 애도한 뒤 일어나면,
 
선물인지 바위와 모래 여기저기에 진주가 섞여있습니다.
 
멸망했다고 알려진 지상에 진주를 품은 조개들이 살아남았을 줄은 몰랐네요.
 
반짝거리는 구슬들은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고, 또 어딘가 그립습니다.
 
시아록:진주..? 여기에 진주가 있을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슈테른:그러게요. 다행히 조개는 여기저기 살아남았나 봐요...
몇 개 가져갈까요?
 
시아록:그런가봐. 뭍에서 보니까 또 다른 거 같네.
응, 몇 개 챙겨가자. 나중에 집에 장식으로 둘 수 있을지도 몰라.
 
슈테른:(고개를 끄덕이며 옷 주머니에 진주 한 움큼을 넣는다.)
그러고 보니 새로 집을 지어야겠네요.
그 전에... 어디로 가면 좋죠? 여긴 진주밖에 없는데...
 
시아록:음, 나침반으로 한 번 볼까?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려준다고 했으니까.
(챙겨뒀던 나침반을 꺼낸다.)
 
나침반을 확인하면 바다와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가리키는 방향을 보면…… 저 멀리 흔들리는 빛무리가 눈에 띄네요.
 
초롱 아귀의 불빛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현란하고 화려한 빛입니다.
 
슈테른:우와...
뭐가 저렇게 반짝이는 걸까요.
 
시아록:저건 뭐지...? (눈을 몇 번 깜빡인다.) 엄청 예쁘다...
 
슈테른:전에 봤던 물고기 떼나, 클리오네 떼보다도 훨씬 밝고, 훨씬 선명해요.
뭐가 있을까요? 걸어가보고 싶어요.
 
시아록:좋아. 나침반도 그 쪽을 가리키기도 하고. 그래도 바다처럼 초롱아귀같은 거일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자.
 
슈테른:좋아요.
천천히... 천천히 다가가봐요. (반짝이는 빛을 담은 눈으로 당신의 손을 잡고 걷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빛을 향해 걸었습니다.
 
신기루처럼 한참을 걸어도 통 가까워지지 않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슈테른의 보폭에 맞춰 천천히 걷는 건 시아록에게 이미 익숙한 일이니까요.
 
그저 저 빛에 다다르면 이 저주가 마법처럼 풀리기를 바랄 뿐입니다.
 
춤추는 해파리도, 나팔 부는 고래도 없이 그저 먼 하늘과 단단한 땅, 황금빛 모래가 고작인 곳.
 
멸망했다던 지상은 말마따나 한참을 걸어도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오래도록 둘이었습니다.
 
 
END 1. Outside the Marine snow ball
 
탐사자, KPC 생존
 
두 사람은 멸망한 지상에 도착합니다.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 빛무리에 도착하기 위해 끝이 보이지 않는 광야를 꼬박 하루나 걸었을 겁니다.
 
그 빛은 대체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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