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른:(꽃소금을 한 움큼 입안에 털어넣고는 손을 닦아낸다.) ...휴, 그럼 이제 진짜로 갈까요? 베키 씨네 집으로요.
시아록:(네가 먹는 걸 보고는 자기도 꽃소금을 집어 먹었다.) 응, 가자!
두 사람은 종종걸음으로 베키 씨네 집으로 향합니다.
문에 대고 똑똑 노크하면, 왼쪽 눈에 긴 흉터를 가진 붉은 머리의 여성이 어깨로 문을 밀고 나옵니다.
두 손은 흥건하게 피투성이입니다.
베키:아, 혹시 아이ㄴ……
…음? 너희들이 왜 여기 있지.
시아록:부탁받은 물건 전달하러 왔는데.. 손 괜찮으세요? (베기씨의 피투성이 손을 보고, 조금 질린 얼굴이 되었다.)
베키:아아, 내 피는 아니니 걱정 마라. 그보다 어떤 물건이지?
분명 아이나에게 맡겼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아이나라면... 익숙한 이름입니다. 그야 당신에게 이 심부름을 맡긴 장본인이었으니까요.
분명 다리를 다쳤다고 했었죠.
시아록: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이아나가 다리를 다쳐서 물건 전달해달라고 저희한테 부탁했거든요. (잘 챙겨두었던 조개껍데기에 포장된 물건을 건낸다.) 이거예요. (그리고 다시 한 번 피투성이인 베키의 손을 보고는 어떡하지, 하고 생각했다.)
베키:그래? 부탁받고 대신 전해주러 온 거였군… 고맙다.
지금 손이 더러워서, 물건은 식탁 위에 놔두면 된다.
아, 이러고 있을 게 아니지. 별로 좋은 꼴은 아니지만 들어와.
그렇게 말하며 베키 씨는 둘을 집안으로 안내합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백상아리의 사체가 묶여 있습니다.
한창 해체 작업 중이었는지 여기저기 붉은 자국이 튀었습니다. 배에 작살이 꿰뚫렸습니다.
베키 씨는 마을의 몇 안 되는 사냥꾼입니다. 슈테른을 구해낸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작살로 쓰고자 상어의 이빨을 분리하며, 여상하게 묻습니다.
베키:프루헤, 아직 뭔가 기억나는 건 없고?
슈테른은 어김없이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기억났다면 진작에 말했을 겁니다.
시아록:(집 안에 물건을 놓아두며 커다란 백상아리의 사체를 쳐다보고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 뒤 베키의 말에 슈슈를 쳐다보고 아무말 하지 않았다. 슈슈의 기억에 대해선 자신이 따로 얹을 수 있는 말은 없으니까.)
베키:그런가... 아쉽게 됐군.
특유의 높낮이 없는 톤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던 찰나,
푹. 날카로운 소리가 납니다.
베키:아.
한 박자 늦은 신음과 함께요.
손바닥에 상어의 이빨을 반쯤 박은 베키 씨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당신에게 부탁합니다.
베키:거기 약초가 좀 있을 텐데, 주겠나.
시아록:아, 네. (주변에서 약초를 찾아 얼른 베키에게 건낸다.) 괜찮으세요?
슈테른:베키 씨... (옆에서 충격받은 표정으로 바라본다.) ... 무리하지 마세요.
베키:괜찮아. 그냥 조금... 다쳤을 뿐이야. 죽을병 걸린 사람처럼 보지 마라.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약초를 손에 발라 직접 응급처치한다.)
시아록:그래도 아픈 건 아픈 거잖아요. 조심하세요. (응급처치하는 걸 보다가) 뭐 도와드릴 일 있어요?
베키:아니, 괜찮다.
그렇게 말하던 베키 씨는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어버립니다. 혹시 할 말이 더 있는 걸까요?
:대인 기능판정으로 베키 씨와 대화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궁금한 걸 물어볼 수도 있겠죠.
시아록:뭔가 저희한테 더 하고 싶은 말 있으세요?
말재주
기준치:
25/12/5
굴림:
23
판정결과:
보통 성공
베키 씨는 당신의 말에 잠시 고민하더니 어물쩡 입을 엽니다.
베키:아니... 별 건 아니고.
사실, 정말로 아프지 않아. 정확히는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리 나라도 백상아리의 이빨이 박히면 고통스러워하는데 말이지. 문제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거다.
사냥을 하다 보면... 크게 무리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손발이 뻣뻣해지거나 감각이 무뎌질 때가 있어.
은퇴할 때가 된 거겠지.
하지만 베키 씨는 이제 겨우 30대에 들어섰는걸요. 어울리지 않는 약한 소리입니다.
시아록:언제부터요? 갑자기요? 거기다 베키씨 아직 젊으시잖아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베키:언제부터인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어느 순간부터 이랬다, 는 감상이야.
나도 그게 의문이다. 좀 더 활동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시아록:어... 뭔가 다른 일은 없었고요..? (뭔가 원인을 찾아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일은 처음 들어보고 잘 모르는 것투성이라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것밖에 안 된다.)
베키:다른 일?
... 으음, 이상하게 느껴지는 일이 하나 더 있기는 하지.
요즘 들어 가끔씩, 바닷물이 달더군.
시아록:어떤 건데요?
바닷물이 달다고요?
베키: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단 맛이 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말이지.
시아록:(상상해본 적 없는 말에 잠시 아연해졌다.)
듣고도 실감이 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바닷물에서 어떻게 단 맛이 나죠?
한 움큼 바닷물을 먹어봐도 그저 밍밍한 맛밖에 안 나는걸요.
베키:...아, 너무 오래 잡아뒀나. 가는 길에 저거, 대신 열어주지 않겠나?
한동안 손은 못 쓸 것 같아서 말이다. 더 묻고 싶은 건 없고?
시아록:아, 네. 아뇨.. (고개를 잠시 내저었다.) 필요한 일 있으면 부르세요.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하며 문을 열었다.)
나가는 길에 슈테른이 대신 조개 껍데기를 열어줍니다. 안에는 멍게 절임이 들어있습니다.
베키 씨는 물건을 맡긴 아이나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해달라며 두 사람을 배웅합니다.
슈테른:(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꾸벅 인사하고, 돌아서는 베키 씨가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계속 쳐다보았다.)
... 시아록, 아까 얘기 어떻게 생각하세요?
시아록:글쎄... 무슨 일이람. 아까 이상한 먼지같은 것도 내렸는데.. 이상한 일만 일어나는 거 같아. (작게 한숨을 폭 쉬었다.)
슈테른:... 전 베키 씨가 걱정돼요.
전에 베키 씨가 사냥나가실 때 몰래 따라가본 적이 있는데, 그 땐 집채만한 백상아리를 맨 손으로 때려잡으셨어요. (함성을 질렀다가 들켜서 호되게 혼났다고 덧붙였다.)
그러니까... 아무리 베키 씨가 실력이 떨어지셨다고 해도 벌써부터 은퇴를 생각하시는 건 너무 이상해요.
시아록:앗, 그런 적 있어? (잠시 놀랐다가) 그렇지.. 베키씨, 사냥도 잘하시고 해체도 잘 하시니까. 거기다 아직 30대고 한창 일할 때잖아.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람. (제 상식을 벗어난 일들은 대체 어떻게 처리해야하는 걸까. 생각해보지만, 딱히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니 모르겠다.) 일 다하고 조금 알아볼까? 아무것도 알아낼 수 있는 게 없을지도 모르지만... (너를 쳐다본다.)
슈테른:(시아록의 말에 하나하나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손발이 뻣뻣해지는 건 그렇다치고 몸에 감각이 없다니, 어떻게 된 걸까요.
으음... 일 다 하고 마지막 식사도 하면 다들 자러 가잖아요. 내일 동네를 좀 돌아다니면서 알아보는 게 좋겠어요. 마침 갈 곳도 있고.
시아록:그래. 내일은 부탁받은 일도 없고, 약속같은 것도 없으니까. 오늘 일 다하고, 내일 한 번 알아보자.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 일을 떠올린다.) 이제 칼립스씨한테 가서 생선 옮기는 거 도와드려야겠다.
슈테른:아, 그래야죠. 지금 시간이...
이런,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마지막 식사까지 앞으로 두 시간 남짓입니다.
슈테른:헉... 이만 갈까요? 칼립스 씨네 집으로.
(그렇게 말하며 시아록의 손을 잡고 이끈다. 손에서 초롱이 덜렁덜렁 흔들린다.)
칼립스 씨의 집에 도착하면 텅 비어 있습니다.
아무래도 기다리다 지친 칼립스 씨가 이미 어장에 나간 모양입니다!
어장까지 달리자! 전원 민첩 판정입니다.
슈테른:
민첩
기준치:
40/20/8
굴림:
69
판정결과:
실패
시아록: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6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칼립스 씨네 어장으로 가는 길은 그리 익숙하지 않습니다.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걷다 보면 표지판과 함께 저 멀리 칼립스 씨가 보입니다. 아, 다행히 맞게 왔나 보네요.
칼립스:어이, 거기! 어서들 와.
젊은 놈들이 벌써부터 이렇게 굼떠서야 되겠어?
마을 외곽, 어장에 도착하면 인상도 덩치도 좋은 어부 칼립스가 두 사람을 반깁니다.
털털하고 화끈한 구석이 있는 성격으로,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이기도 합니다.
어장의 형태는 양식장과 비슷합니다. 넓은 돌을 쌓아 그 안에 생선을 몰아넣고, 촘촘히 꿰맨 그물로 위를 덮습니다.
어장 안을 헤엄치는 물고기들은 등은 까맣고 배 쪽은 은빛입니다. 제법 날쌘 물고기 중 하나입니다.
칼립스:자, 자. 오늘부터 축양해야 해서 손이 많이 가.
옆 어장에 물을 갈아뒀으니 생선을 잘 잡아서 이쪽으로 옮겨다오.
예상은 했지만 역시 보통 일은 아니네요... 그래도 도와주기로 하기도 했고, 마을에 어부는 칼립스 씨 하나뿐이라 일손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시아록:그것만 하면 되는 거죠? (어장 안의 날쌘 물고기를 쳐다본다.)
칼립스:엉. 잘 하면 뽀너스도 얹어줄 테니까 신중하게들 해. 실수로 다 놓쳐버리지 말고.
어장 안에 헤엄치는 생선은 183마리입니다.
도망치는 걸 하나씩 손으로 붙잡아 옆 어장에 옮기려면…… 두 시간은 꼬박 걸리겠네요.
:시아록, 생선과 5번민첩대항입니다.
시아록: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95
판정결과:
실패
생선:
민첩
기준치:
50/25/10
굴림:
1
판정결과:
대성공
시아록:와 진짜 물고기 너무 많잖아요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5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생선:
민첩
기준치:
50/25/10
굴림:
1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시아록: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79
판정결과:
실패
생선:
민첩
기준치:
50/25/10
굴림:
90
판정결과:
실패
시아록:힘들어!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2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생선:
민첩
기준치:
50/25/10
굴림:
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책미 (GM):(세상에)
하늘:(생선 너무 빠른 거 아닌가요..?)
책미 (GM):(그러니까요...)
시아록:아, 정말!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82
판정결과:
실패
생선:
민첩
기준치:
50/25/10
굴림:
22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시아록:미역.. 빗을 수 있을까...
민첩
기준치:
70/35/14
굴림:
6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생선:
민첩
기준치:
50/25/10
굴림:
53
판정결과:
실패
:조심조심, 정확하게 생선을 옮겼습니다. 소요 시간 30분 차감.
당신은 겨우 183마리의 물고기를 전부 옮겼습니다.
시아록:하... 힘들었다... (땀을 훔치며 주저앉았다.)
앉아서 쉬고 있으면 저쪽에서 마찬가지로 일을 다 끝낸 슈테른이 걸어옵니다.
슈테른:시아록, 아까 보니까 계속 끙끙거리던데 무슨 일 있었어요?
시아록:물고기 잡는 게... 자꾸 도망가고, 떨어뜨리고.. 빠지고... 힘들었어... (진이 다 빠진 채로 당신에게 괜히 칭얼거린다.)
슈테른:아, 물고기 옮기는 일 하셨구나...
...네? 그럼 설마 하나하나 잡아서... 옮기신 거에요?
시아록:응... (옆 어장으로 옮긴 물고기들을 노려본다.)
슈테른:...... 대단하세요, 전 눈으로도 못 쫓겠던데, 너무 빨라서...
제가 한 것도 쉽지는 않았어요. 어장에 낀 이끼를 하나하나 청소해야 했거든요.
시아록:슈슈는 청소했구나... 힘들었겠다.
슈테른:그래도 잘 하면 칼립스 씨가 뭐라도 더 주시겠죠... 수고하셨어요. (마찬가지로 진이 다 빠진 손으로 안아준다.)
오랜 시간 작업하느라 뻐근한 허리를 두드리고 있으면 칼립스 씨가 무언가 건넵니다.
시아록:슈슈도 수고했어.
뼈를 바르고 손질해둔 생선 한 바구니입니다. 일부러 넉넉하게 얹어줬다고, 칼립스 씨는 얘기합니다.
시아록:오, 뼈도 발라져있네. 감사합니다.
칼립스:뭘, 둘 다 고생했다! 잘 들어가.
힘들었지만, 보답으로 받은 걸 보니 그닥 나쁘지 않네요! 당신은 슈테른과 함께 집으로 향합니다.
마지막 식사까지 30분 정도 남았습니다.
슈테른:어떡하죠? 30분 안에 청소할 수 있으려나...
아, 그게 문제가 아니라... 미역도 빗어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시아록:...미역부터 빗자.. 청소는... (작게 한숨을 쉰다.) 엄마한테 혼나는 거 외에 뭐.. 있겠어...? 슈슈도 그냥 우리집에 와있어. 슈슈집은 안 보여주면 안 혼날거야? (자신없는 말투로 얘기한다.)
슈테른:(끄덕...) 아니면 변명거리라도 생각해둘까요? 덜 혼나게요...
시아록:오늘 일이 많았다고..?
슈테른:... 물론 거짓말은 나쁜 거지만... 오, 늘은 유독 일이 많았잖아요.
심부름도 하고 일도 했다고 하면 잘 했다고 칭찬해주시지 않을까요?
시아록:그럴까...? (여전히 자신없는 듯하지만, 좀 솔깃한 기분이다.)
슈테른:그, 그러면... 심부름도 멀리 다녀왔고, 일도 열심히 해서 늦었다고 해요.
유적지에 다녀온 건... 숨기는 게 좋겠어요.
시아록:응, 그렇게 하자. 매번 가지말라고 하는데, 갔다고 얘기하면 엄청 혼날 거야..
슈테른:좋아요. ... 일단 미역부터 빗을까요? 둘이 같이 하면 좀 더 수월할 거에요.
시아록:응, 좋아. (너와 함께 뒷마당으로 향한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뒷마당의 미역을 빗습니다.
하늘하늘 흔들리는 미역은 식사 반찬으로도 쓰고, 끈으로도 쓰고, 커튼으로도 씁니다.
매우 유용한 녀석이에요. 그러니 서로 엉켜 끊어지지 않도록 꾸준히 빗질해 줘야 하죠.
전원 손놀림 판정.
슈테른:
손놀림
기준치:
10/5/2
굴림:
79
판정결과:
실패
시아록:
손놀림
기준치:
25/12/5
굴림:
94
판정결과:
실패
분명 열심히 빗었는데... 뭐가 잘못되었던 걸까요?
아직도 미역은 서로의 몸을 열심히 꼬고 있습니다. 온통 엉킨 그것은 풀어내기도 막막하네요.
그럼에도 일단 힘을 줘서 미역을 빗으면... 미역이 끊어져버립니다.
시아록:아... 끊겼다... (끊긴 미역을 들고 약간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바닥에 후두둑 떨어지는 미역을 떨리는 손으로 주워보면... 총 70개를 끊어먹었네요.
오……. 들키면 죽었다.
시아록:큰일났다......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래도 둘이 같이 했더니 아슬아슬하게 마지막 식사 전에는 끝낼 수 있었습니다.
남은 건 증거인멸 정도네요.
슈테른:......
이거... 어떻게 할까요? (미역을 한가득 들고 있음...)
시아록:땅에 묻을까...? (자신의 손에도 미역이 한가득이다.)
슈테른:... 좋은 생각이에요.
얕게 파서 묻으면 금방 드러날 텐데... 시아록, 혹시 집에 삽 있어요?
시아록:어... 있지 않을까..? (잘 모르겠다. 자취방의 물건들을 떠올려본다.)
:시아록, 지능 판정입니다.
시아록: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아...! 기억납니다. 정확히 이틀 전 11시 39분경에 삽을 사용했다가 상자 옆에 기대어 놓았습니다!
시아록:있다!! (삽이 어딨는지 기억이 나 얼른 집으로 가 삽을 가져왔다.)
삽을 챙겼으니 당신은 망설일 것도 없이 땅을 파 끊어먹은 미역을 묻어버립니다.
휴! 증거인멸 끝! 이제 남은 건 엄마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 뿐입니다.
―
한바탕 끊어먹은 미역을 파묻고, 바닥에 널린 잡동사니들을 적당히 안 보이게 가려두다 보면...
여러분이 기다리든 기다리지 않았든, 똑똑 소리가 들립니다.
엄마...겠지요. 문을 열까요?
시아록:엄마? (문을 조심히 연다.)
엄마:아들, 잘 지냈어? (열린 문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잠시 집안을 둘러보더니 들어온다.)
시아록:어, 응. 잘 지냈지. (아까 전의 사고들을 머릿속에서 애써 지워내며 엄마가 들어오도록 비켜섰다.)
시아록:응, 이번엔 그것만 목표로 가면 좀 괜찮을 거 같은걸! 석판 무거우면 내가 들래! 다른거 뭐 더 챙길게 있나 싶긴 하지만. (어제 둘러보았던 물건들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슈테른:으음, 바로 직후에 가는 건데 새로운 게 있을까요... 못다 살펴본 건 있을지도 모르지만요.
알겠어요. 더 둘러볼 거에요?
시아록:한 번만 더 둘러보면 끝날 거 같은데!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3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건... 역시 딱딱하네요. 대다수의 뭍의 물건처럼 말이에요.
드물게도 책상 밑에 해설판이 붙어 있습니다. 들어서 읽어 보면...
'아마 초음파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는 도구였던 것 같다. 신호를 받아들이기 위한 장치가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라고 적혀 있고, 그 말대로 긴 막대기가 달려 있습니다. 이게 그 신호를 받아들이는 장치인 걸까요?
시아록:헤, 설명이 있네. 근데 초음파로 신호? (긴 막대를 만져본다.)
긴 막대는 세게 쥐면 부러질 듯 가늘게 쭉 뻗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신호를 받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애초에 초음파인데 이런 장치까지 필요한가? 뭍의 사람들은 귀가 안 좋았던 걸까요?
물건은 손잡이도 달려 있고 나름 구색을 갖추었습니다.
위쪽에 각진 무언가가 있는데 누르면 조개를 열었다 닫는 것마냥 달칵, 달칵 소리가 납니다.
네 번째의 그 각진 무언가를 누르면, 세상에!
물건의 앞부분? 뚜껑? 같은 게 열립니다. 신기하네요. 상자였던 걸까요?
시아록:열렸다! (깜짝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슈테른:.... 이것도 역시 뭔지는 모르겠는데... 신기하네요.
여기다 뭘 넣고 다닌 걸까요? 텅 비었는데.
시아록:그러게, 뭘 넣었을까? (열린 안쪽의 크기를 가늠해본다.)
크기는... 오묘합니다. 손바닥보단 작고, 조개보단 크네요.
넣는 곳은 각져 있어, 무언가 끼워넣는 구멍처럼도 보입니다.
시아록:뭔가 들어간다고 해도 엄청 뭔가.. 한정적일 거 같아. 이런 크기 물건이 뭐있지..?
슈테른:집에 이렇게까지 딱딱하게 각진 물건은 없었던 것 같은데...
들어가는 것도 아마... 뭍의 물건이지 않을까요?
시아록:그렇겠지.. 뭔가 역시 제대로 알 수 있는 건 없네!
슈테른:(끄덕이는 것으로 수긍한 뒤 물건을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어, 그러고 보니 새로 들어왔다는 건 어디 있을까요?
그 말을 듣고 생각해봅니다. 시아록, 지능 판정.
시아록: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84
판정결과:
실패
필립 씨는 분명히 새로운 유물이 들어왔다고 했죠?
한 바퀴를 둘러봐도 평소와 다를 것은 없는데…… 어디에 있는 거지? 아직인가?
시아록:으음.. 필립씨가 새로 유물 들어왔다고 하셨던 거 같은데.... 슈슈는 기억나? (주변을 둘러보지만, 헷갈리는 듯 하다.)
슈테른:저도 잘 모르겠는데... 아직 리키 씨가 연구중이신 걸까요? (고개를 갸웃거린다.)
생각에 잠겨 있으면 뒤에서 두 사람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리키:아, 반가워요, 단골손님들.
바로 박물관 담당자인 리키 씨입니다.
시아록:아, 리키씨.
리키:오늘 새로 들어온 유물을 보러 온 거죠? 마침 준비하던 중이었어요.
알이 없는 둥근 안경을 쓴 리키 씨는 뭍의 세계를 동경해서 두 사람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유적지에서 오랜 시간을 보냅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게 무슨 재미인지 모르겠다고 말하지만요.
리키:여러분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다른 사람들은 이런 거에 영 관심이 없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리키 씨가 내미는 건 몇 장의 그림입니다.
손바닥만 한 그림이 그려진 종이는 여태 만져본 것과 다르게, 쭈글쭈글하거나 흐물흐물하지 않고 뻣뻣한데다 매끄럽네요.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덕분에 안쪽의 그림도 제법 선명합니다.
첫 번째 그림은 하늘색 배경에 흰색…… 덩어리가 떠다닙니다. 이게 뭐지?
해파리 같기도 하고, 물거품 같기도 한 덩어리는 모양도 크기도 모두 제각각입니다.
게다가 가운데에는 희고 둥근 구멍이 뚫려있습니다. 색칠을 하다 만 건가?
시아록:이게 이번에 발견한 새 유물이에요? (리키가 내민 물건을 자세히 쳐다본다.)
그림이 되게 잘 보인다. 신기하네요. (매번 흐물해진 종이 탓에 제대로 그림을 본 적이 없다. 구멍을 가리키며) 이건 뭐예요?
리키:맞아요, 총 세 장의 그림인데...
이 그림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우선 쭉 볼래요?
시아록:네, 볼래요.
리키:이 구멍은, 구멍이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을 가릴 만큼 눈부신 것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그럼, 여기 두번째 그림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그림을 넘겨 보여줍니다. 두 번째 그림은 불그스름한 주홍색으로 칠한 배경에 샛노란 반원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습니다.
아, 며칠 전에 봤던 뿔산호의 색이 딱 저럤었죠. 아주 강렬하고, 알록달록하니 붉어서 보는 게 즐거웠습니다.
반원은 바닥에 바짝 붙어 그려진 탓에 원래 반만 있는 건지, 완벽한 동그라미였는지 모르겠네요.
시아록:첫번째 그림이랑 이어지는 거예요? (알록달록한 색들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리키:맞아요. 겉으로 보기엔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기록이 있었어요. 우선 세 번째 그림도 볼래요?
시아록:응, 보여주세요.
리키:그럼 잘 봐요. (세 번째 그림을 펴 보여준다.)
세 번째 그림은 남색 배경에 새하얗고 새파란 점들이 톡톡 찍혀있습니다. 빛나는 물고기의 비늘 같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 아주 조금 남은 손톱이 그려져 있습니다.
어라, 그런데 이 손톱, 얼룩덜룩하네요…….
은색의 그것을 바라보고 있자니 무언가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슈테른:... 전 잘 모르겠어요.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데, 이 세 그림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 거에요?
시아록:(슈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리키의 대답을 기다린다.)
두 사람의 어리둥절한 눈빛에 리키 씨는 목을 큼큼, 가다듬고는 입을 엽니다.
리키:이건, 뭍에서만 볼 수 있는 하늘이에요.
물 위에는 하늘이 있고, 해가 뜨고, 달이 지며 낮과 밤을 가른대요.
(첫 번째의 구멍을 가리키며) 이게 해고, (세 번째의 얼룩진 동그라미와 파란 점들을 가리키곤) 이게 달. 이건 별이에요.
달은 모양이 여러 가지로 그려지더라고요. 손톱 모양도 있고 둥근 모양도 있고. 여러 개인 게 아닐까요?
하늘, 해와 달과 별. 낮과 밤…….
추상적이기만 합니다. 머리 위의 풍경이 시시각각 변한다면 불안해서 어떻게 살죠?
이런 것들을 지고 살다니, 그러다가 어느 날 뚝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한단 말이에요?
시아록:뭔가.. 무섭네.. 육지는 원래 그런 거예요?
슈테른:왜, 어떻게 변하는 거에요? 바다는 언제든 똑같은 광경인데. 계속 바뀌는 거에요?
리키:자세한 건 나와있지 않지만, 뭍의 사람들은 이런 하늘을 지고 살아왔다고 해요.
바다 위에는 뭍이 있고, 뭍 위에는 하늘이 있고. 그것들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사람들을 풍요롭게도, 멸망 직전까지 내몰기도 한 것이 그 하늘이라는 건데...
시아록:하늘을 지고 살았다고요? 엄청 무거웠겠다. 그러고 어떻게 일상생활을 하지? 거기다 멸망 이유가 하늘이라니... 육지는 무서운 곳이네요. (조금 질린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
리키:뭍의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우리보다도 갑절은 더 튼튼한 팔다리가 있었을지도 모르죠. 하늘을 떠받들 수 있도록!
하늘이 멸망을 가져다줬다고 나와있는 책도, 전혀 다르게 적혀있는 책도 있어요. 멸망을 맞은 이유는 어쩌면 한 가지가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시아록:으음.. 그런가요. 그래도 들으니까 육지에는 별로 나가고 싶진 않네요. 육지에 올라가자마자 하늘을 짊어져야 할 거 잖아요. 육지 사람들이 우리보다 훨씬 튼튼했다면 우린 큰일나겠어요..
리키:우리들이 궁금해 죽을 것 같아도 뭍에는 나가지 않는 건, 숨을 못 쉬는 것도 있지만 그런 이유도 있죠.
잘못하면 우리마저 멸종해 버릴 지도 모르니까요! 오, 그런 건 사양이에요. 저는 조금 더 뭍의 흔적을 좇고 싶어요.
아, 그리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들도 있어요, 여러분도 어제 봤죠?
물고기 알보다, 진주보다, 어쩌면 모래보다 훨씬 가볍고 먼지같은 것들.
시아록:어제 그 먼지 같은 거..?
봤어요.
리키:똑같지는 않겠지만, 뭍에도 비슷한 게 있어요. 스노라고 부른대요.
슈테른:뭍에, 비슷한 게 있다고요...?
시아록:스노? (리키의 말을 한 번 따라 읊고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슈테른:스노...? (어디서 들어본 건 아닌가 기억을 뒤져봤지만 전혀 모르겠는지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 스노, 라는 게 내렸는데... 내리다가 감쪽같이 사라졌어요. 그건 뭐였을까요?
플랑크톤의 시체들이 가라앉는 광경도 그것과는 달랐어요. 우린 한 번도 그걸 본 적이 없어요...
시아록:맞아... 요즘 좀 주변이 이상한 거 같아요.
리키:오, 사실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마 스노,가 내리다가 바다에까지 들어온 게 아닐까요?
시아록:그게 바다까지요..? 괜찮은 건가...
리키:스노는 아주 차갑고 하얗고 부드럽고, 또 가볍다고 했어요. 얼추 비슷하지만, 우리가 본 스노는 바닥에 쌓이지 않았죠.
지상에 스노가 내리면, 뭍의 모든 것들이 하얗게 되곤 했대요.
레―라는 것도 있어요. 위는 뾰족하고 아래는 동그란 모양이에요.
황홀하지 않아요? 내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시아록:레? 그건 또 뭐예요..? (고개를 갸웃거리다 마지막 리키의 말에 고개를 내젓는다.) 그래도 바다 밖에 올라갈 생각은 하지 마요. 위험하다고요.
리키:밖으로!
리키 씨는 뭍의 것들이 신기하고 황홀한 듯 어린아이처럼 눈을 빛냅니다. 목소리가 언제나처럼 들떠 있습니다.
리키:사실 뭍으로 올라가는 건, 전에 한 번 시도해보았어요. 올라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머리가 멍하고 숨이 막혀서 다시 가라앉고 말았지만요.
오, 평생 선망의 대상인 그곳은 우리의 발길이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이에요...
시아록:네? 올라가 본 거예요? (경악어린 표정으로 리키를 쳐다보았다.)
리키:레― 라는 건 기록상으로는 차갑고, 따갑다고 전해져요.
하지만 어떤 때는 시원하고, 어떤 때는 성분이 지독해서 맞기만 해도 머리카락이 빠진다고들 하더라고요.
하늘에서 그런 게 내린다니 직접 보고 싶었죠! 하지만 수면 위로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힘이 빠지고 말았어요...
한참을 신나게 떠들던 리키 씨의 목소리는 점점 잦아집니다. 그도 슬슬 목이 아팠던 걸까요.
리키:아무튼, 설명은 여기까지에요. 더 궁금한 거 있어요?
시아록:음.... 별 건 없어요. 근데 이건 어디서 구했어요? 그 유적지?
리키:예, 정확히는 유적지에 있던 상자에서!
상자는 또 우리가 알던 것과 달라요. 입구는 좁은데, 딱딱하게 각져 있고, 누르면 움푹 패이더라고요.
차라리 주머니를 닮았다고 할 정도였지만, 그 안에서 이런 것들이 발견되었을 때는 정말이지 거대 진주를 캔 기분이었어요.
시아록:그렇구나. 이번에 새로 발견한 유물은 그게 다예요?
리키:네. 이게 전부네요.
또 놀러와요, 다음엔 더 신기한 유물이 기다릴 거에요.
시아록:네, 그럴게요. 보여주고 설명해줘서 고마워요!
슈테른:오늘도 감사했어요.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이 등을 돌리듯 리키 씨도 발을 돌립니다. 소중한 꿀단지를 아는 것마냥 유물을 두 손에 꼭 쥐고 저쪽으로 사라집니다.
여러분은 박물관 앞으로 나옵니다. 이제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차에...
꼬르륵.
누군가의 배가 허기를 알립니다. 그러고 보면 둘 다 첫 번째 식사도 거르고 여기까지 왔었죠.
시아록:아, 배고프네..
밥 먹으러 가자.
슈테른:저도요... 온몸에 힘 빠져요.
어제 먹던 거 그냥 드실래요? 아니면 식재료를 얻어 볼까요?
리키:오, 둘 다 식사하러 가나요?
둘이서 그렇게 얘기하고 있으면 뒤에서 리키 씨가 걸어나옵니다.
시아록:네, 밥 먹으려고요.
리키:여태 박물관에만 있느라 바람 쐬러 나왔는데...
나도 뭘 좀 먹어야겠... 음?
리키 씨는 말을 하다 말고 입맛을 다십니다. 그리고 이야기합니다.
리키:요즘 물이 종종 달지 않아요?
자꾸 단맛이 느껴진단 말이에요. 새우를 먹을 때처럼요.
시아록:네? 아뇨...? (고개를 내저으며 베키씨에게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어... 리키씨 손발이 둔하거나 하진 않고요...? (어물쩍 물어본다.)
(갑자기 이렇게 알아보려던 상황을 리키가 얘기해줄 줄은 몰랐다.)
리키:(의외의 말이었는지 평소보다 커진 눈으로 얘기한다.) 네, 네... 어떻게 알았어요?
요즘 하도 땅을 팠더니, 손발이 좀 뻣뻣하더라고요.
시아록:그렇구나... (머슥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키:(의아했는지 고개를 기울였지만, 그냥 물어본 거라고 생각했는지 이내 고개를 돌린다.) 마침 생각난 김에 새우를 좀 먹어볼까요.
둘 다, 새우 좋아해요? 나한테 오면 나눠줄 수도 있어요.
시아록:전 좋아해요. 슈슈는 못 먹을 거 같은데, 저 조금만 챙겨주세요.
리키:음, 그럼 잠깐만 기다려요.
아니지, 조금 있다 다시 올래요? 지금 당장은 못 구하고, 이따 새우잡이가 돌아오면 구해다 줄게요.
시아록:음, 네 그럴게요. 언제쯤 오면 돼요?
리키:글쎄... 대충 마지막 식사 전에는 와요. 딱 그맘때쯤이면 그들도 돌아오니까.
시아록:음, 알았어요! 그럼 나중에 봐요. (손을 흔들고 슈슈를 데리고 박물관을 나선다.)
둘은 리키 씨와 인사하고 다시 길을 걷습니다.
그러고 보면, 리키 씨를 기다리면서 뭘 하면 좋을까요?
시아록:음.. 우리 할 거 없는데, 잠시 유적지 가서 석판만 챙겨올까? 거기까지 다녀오기엔 좀 오래 걸리려나?
슈테른:할 일도 없는데 지금 갔다오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럼 유적지로...
슈테른은 말하다 말고 뭔가 떠올랐는지 아, 하고 탄성을 냅니다.
슈테른:시아록, 혹시 달리기 시합 할래요?
진 사람은 상대가 원하는 거 하나 들어주기. 어때요?
시아록:응? 달리기 시합? 갑자기? (의아한 듯 눈이 동그래져서 너를 쳐다본다.)
슈테른:(끄덕거리며 말을 잇는다.) 전에도 가끔 했었잖아요. 내기는 안 했지만요.
시아록:어. 음.. 상관은 없지만. (얼떨떨해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슈테른:그럼 셋 둘 하나 하면 뛰는 거에요.
셋, 둘...
하나! (말하자마자 달리기 시작한다.)
유적지까지 달리기 시합입니다. 건강 대항 판정입니다.
시아록:
건강
기준치:
75/37/15
굴림:
3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슈테른:
건강
기준치:
75/37/15
굴림:
5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얼떨떨한 상태에서도 발은 착실히 움직여 목적지에 다다릅니다.
생각해보면 시합을 하면 둘 다 승부욕 때문인지 평소보다 발이 빨리 움직였죠. 심심할 때면 숨바꼭질을 하거나, 이걸 했습니다.
뒤에서 한 발 늦은 슈테른이 천천히 걸어옵니다. 지쳤는지 숨을 헐떡이네요.
슈테른:아... 많이 뛰어봤으니까 이번에야말로 이길 줄 알았는데....
시아록:괜찮아? (몇 번 숨을 몰아쉰 후, 금방 숨을 되돌리고는 지친 듯한 네 등을 두어번 토닥인다.)
슈테른:... 괜찮아요... (잠시 당신의 팔을 담고 숨을 내쉬다 다시 바로 선다.) 그래도 평소보단 빨리 왔네요.
제가 졌으니까... 뭐 해드릴까요? 나중에 부탁하셔도 괜찮아요.
시아록:으음.. 지금 생각나는 건 없는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나중에 있으면 할게.
슈테른:(고개를 끄덕여 수긍한다.) 그럼 이제...
석판 가지러 가야죠. 어디서 봤었더라...
시아록:어디서 봤지? 여기저기 돌아다녔더니.. 음..
함께 머리를 맞댑니다. 전원 지능 판정.
시아록: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65
판정결과:
보통 성공
슈테른:
지능
기준치:
55/27/11
굴림:
57
판정결과:
실패
슈테른은 여전히 갈피를 못 잡은 표정이지만, 당신은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분명 지붕 안에 있었죠? 은색 상자와 함께 말이에요.
시아록:아, 그 뭔가 뒤집혀있던 지붕에 있었다! (퍼뜩 생각이 난 듯 네게 얘기한다.)
슈테른:아, 맞다. 그랬었죠! (기억난다는 듯 손벽을 짝 친다.)
아, 맞아요. 거기서 목걸이도 발견하고, 실수로 손도 다쳤었잖아요. 기억 나요.
그럼 지붕 안으로 들어가야겠죠? 구멍 쪽으로 가요. 제가 앞장설게요.
시아록:응. (고개를 끄덕이고는 너와 함께 지붕으로 향한다.)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 구멍 안으로 들어가면...
여전히 그 기묘한 내부가 펼쳐집니다. 바닥이 천장이고, 천장이 바닥이네요.
그 속에서 하얀 석판 몇 개가 보입니다. 서너 개 정도는 온전하게 남아 있고, 나머지는 흠집이 남거나 갈라졌습니다.
슈테른:아, 다행이다... 아직 남아있네요. 못 찾으면 어쩌나 했는데.
(석판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두 개만 챙긴다.) 전 이거면 됐고, 시아록은 뭐 찾는 거 있어요?
시아록:음, 아니... 그때 많이 뒤져본 거 같고.. 그것만 챙기면 괜찮을 거 같아!
슈테른:(알겠다고 말하며 석판을 두 손으로 받치듯 쥐며 걸어간다.) 그러고 보니 여기도 꽤 넓네요.
정말 집이었을까요? 한 사람이 살기에는 넓어 보이는데.
시아록:맞아, 크긴 커. 흠.. 여럿에서 같이 살았을까?
슈테른:아마 그럴 것 같은데, 침대가 하나도 없는 게 좀 걸려요.
저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걸까요? 아니면 뭍의 침대를 못 알아본 걸까요?
... 아무튼 이만 가요. 이만큼 서둘렀으니 돌아갈 땐 걸어도 되겠죠.
시아록:여긴 넒으니까 다 못 봐서 그럴 수도 있고.. (어깨를 으쓱이고는 네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응, 이제 돌아가자.
슈테른:(끄덕이며 한 손에 초롱을 들더니 멈칫한다.) ... 어제처럼 깜빡이지는 않죠? 초롱.
시아록:응, 그렇진 않는 거 같아. (초롱을 한 번 들여다본다.)
딴데 샌 것도 아니고 바로 챙겨서 나왔으니까 괜찮을 거야.
슈테른:그럼 시간도 지났으니까 리키 씨한테 다시 가 봐요.
그러고보니 리키 씨... 괜찮으시려나... (중얼거리며 시아록의 손을 잡고 다시 마을 쪽으로 돌아간다.)
유적지를 다녀온 걸 들키지 않게 조심조심 걸어와 평소처럼 지나가면,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습니다.
리키 씨는 약속대로 새우를 한 상자 구해왔습니다. 회색빛의 새우들은 껍질은 딱딱해도 속살은 부드럽습니다.
리키:오, 둘 다 왔어요?
자, 어디. 얼마나 줄까요? (새우를 이리저리 헤집더니 묻는다.)
시아록:적당히요? 많이 주시면 잘 먹을 거고요? (장난스럽게 얘기하며 이를 들어내고 웃었다.)
리키:그럼 어디... 이 정도면 될까요? (한주먹만 한 큼직한 새우를 열 마리 정도 주머니에 넣는다.)
시아록:네, 그정도면 돼요. 고마워요.
리키 씨는 새우 주머니를 단단히 묶어 시아록에게 건넵니다.
그러나 웃는 얼굴은 한순간에 굳어집니다. 주머니가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리키:아, 미안해요. 요즘 손이 영... 아까도 말했죠? 좀 뻣뻣해서요.
그러더니 새우에 상처는 없을 거라며 다시 주머니를 쥐여줍니다.
... 묘하게 기시감이 듭니다.
시아록:괜찮아요? (주머니를 받으며 걱정스레 묻는다.)
리키:괜찮아요, 이 정도야...
아까 잘못해서 꽃게한테라도 물렸나 보네요, 손에 힘이 다 풀리고. 하하.
시아록:으음.. 조심하세요. (절로 살짝 미간이 찌푸려졌다.)
리키:걱정 말아요. 생활하는 데 크게 불편한 정도는 아니니까...
둘 다 잘 들어가요. 새우 맛있게 먹어요!
리키 씨는 그렇게 말하며 두 사람을 배웅해줍니다. 흔들어주는 손이 오늘따라 뻣뻣해 보이는 건 착각일까요?
슈테른은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조심스레 입을 엽니다.
슈테른:... 시아록.
역시 뭔가 이상하죠?
시아록:응.. 베키씨랑 증상 비슷하지? 사실 전에 필립씨도 저 증상 아닐까?
슈테른:... 필립 씨도.
맞아요, 필립 씨도... 분명히 그러셨잖아요.
나이가 들어서인지 관절이 영 뻣뻣하다고...
시아록:응.. 좀 이상하지..?
슈테른:... 어떻게 된 걸까요. (심각한 표저으로 눈을 찌푸리고 있다.)
같은 마을에서 세 명이나 같은 증상이 나타나다니...
시아록:더 있을 수도 있겠다..
슈테른:이게 병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베키 씨처럼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은 다칠지도 몰라요.
제일 마음에 걸리는 건 아이나 씨 정도인데... 어떻게 하면 좋죠?
시아록:으음... 일단 알아보자. 뭔가 공통점 같은 게 있을지도 몰라.
슈테른:무엇부터... 어디서 알아볼까요?
우선 베키 씨네 집부터 가볼까요? 괜찮으신지 확인도 할 겸이요.
시아록:응, 그렇게 하자.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뭔가 특이한 일이 있었는지도 한 번 물어보자.
손발이 뻣뻣해지는 사람들. 우리는 알 수 없는 바다의 단내.
우리는 이 현상이 병인지, 치료법이나 해결책은 있는지, 사람들의 상태는 괜찮은지 알고 싶었지만...
몇 번을 물어도 아무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입모아 말했습니다.
아무런 징조도 없고, 왜 이렇게 됐는지도 모르겠다고요.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상황이 그저 기우이길 바라면서요.
그리고, 시간은 물결처럼 흘러 한 달이 지났습니다.
한 달 후
변화가 없고 잔잔하던 수중 세계에는 하나둘 파문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못 본 눈이 두 번, 세 번, 네 번 내리고,
바닷물이 다디달다는 사람들이 나오질 않나, 점점 손발이 뻣뻣해진다는 사람들이 늘어나질 않나.
별거 아닌 순간들은 점차 늘어나고 확산되며...
죽음의 징조가 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가령, 베키 씨는 손끝이 뻣뻣할 뿐 아니라 손가락을 전혀 굽히지 못하게 되어 사냥을 그만뒀고,
리키 씨는 계속 단맛이 난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 맛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첫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약 일주일 전입니다.
핸드아웃: 수중 마을의 변화
수중 마을의 현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처음에는 손, 발, 혀와 같은 신체 말단이 뻣뻣해진다. • 바닷물이 달게 느껴진다. • 증상이 시작되면 얼마 후 온몸이 얼어붙어 사망한다. •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 뒤로 몇 번 더 스노가 내렸다. • 시체는 우선 마을 외곽 공터에 두었다.
걱정되는 마음에 몇 번이고 부모님을 찾아가거나 연락해봤지만, 다행히 안 좋은 소식은 없었습니다.
시아록과 슈테른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은 아무런 증상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오늘로 눈이 내리기 시작한 지 정확히 한 달 째입니다.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기에 마을 사람들끼리 회의를 열기로 했습니다.
마을 회의에는 어른과 아이가 모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수중 마을의 대표이자 필립 씨의 딸인 마리아 씨는 아직 수척한 얼굴로 이렇게 말합니다.
마리아: 이렇게 단기간 내에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건 처음이에요.
원래대로라면 죽은 자의 시체는 공동묘지에 묻겠지만, ... 수가 너무 많아요.
……더는 그럴 수 없어요.
그렇다고 시체를 계속 이렇게 공터에 두다간 온갖 바다 생물들이 그 냄새를 맡고 몰려올 테고, 더 큰 악수로 돌아올 겁니다.
...
...
마을 회관에는 일순 침묵이 흐릅니다.
아무도 쉬이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몰아치는 죽음 앞에서.
마땅한 해결법을 찾지 못했는지 정적만이 감돌다 보면... 마리아 씨는 오래도록 뜸을 들인 후에야 제안합니다.
마리아: 아버지에게… 유적지에서 조금만 더 가면 파도의 계단이 있다고 들었어요.
물살이 강한데다가 역류하는 곳이라, 휩쓸리면 뭍으로 뱉어낸다더군요.
…….
몇 번을 심호흡하고, 괴로운 듯 주먹을 꾹 쥐더니.
마리아: 시체를 그 계단에 눕혀요.
시체를 뭍으로 버리더라도, 산 사람들은 살아야지요.
말하지 않았으나 모두가 짐작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회관의 그 누구도 충격을 감추지 못합니다.
시체를 뭍으로 보내면, 산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보고 싶을 때 어디로 가야 좋단 말인가요?
심지어 뭍은 멸망한 곳이잖아요.
그런 곳에 죽은 사람을 보낸다는 건 어쩐지 버리겠다는 것처럼 들립니다.
바다에서 났으니 바다로 돌아가는 게 당연한데 말이에요…….
어떤 사람들은 벌써부터 훌쩍이거나, 황급히 제 옆자리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의 안위를 확인합니다.
슈테른:......
슈테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제까지 내내 침묵하고 있더니 안 좋은 표정으로 당신의 손을 잡아옵니다.
그 체온이 평소와 같은지 확인하기 말이에요.
시아록:(잡아온 네 손을 꼭 마주 잡았다.)
혹시라도 차가워져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는 날에는 곁의 사람을 뭍으로 보내야 할 것이고,
그렇다는 건 곧 영원한 이별을 맞이함을 뜻하겠죠.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
회의가 파하고, 문을 나서는 사람들은 제각각 우울을 맡습니다.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침묵하고, 누군가는 가슴을 치고……
그사이 눈물이 달아 놀라거나 손가락이 굽어지지 않아 두려워 떨면서.
당신 또한 이만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돌을 삼킨 듯 발걸음이 평소보다 무겁습니다.
사람들의 결정은 합리적이기는 합니다. 시체는 더 이상 바다 마을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냄새가 퍼지지 않는 곳까지 나르는 것도 고역이고요...
그럼에도 입에서 쓴 맛이 납니다. 옆에 있는 슈테른도 마찬가지인 듯 당신 쪽을 돌아보더니 얘기합니다.
슈테른:... 조금만 걷다 갈까요?
시아록:응, 그럴까... (네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응하자 그는 마을 어귀의 언덕까지 당신을 이끕니다.
조용한 바닷속, 거품이 터지는 소리가 유난히도 잘 들립니다.
때때로 물고기 몇 마리가 침묵 사이를 파고들며 지나갑니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언덕은 경치를 구경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입니다. 기분 전환이 하고 싶을 때마다 둘이서 이 쪽을 걷곤 했죠.
그러나 여느 때와는 다르게 언덕 아래에는 컴컴한 마을이 자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슈테른:... 시아록, 아까 있잖아요.
... ...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합니다. 혼란스러워서 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건지.
슈테른:... 아니에요.
시아록:왜? 할말 있으면 해도 돼..
슈테른:... 그냥... 뭐라고 해야 좋을까요?
자꾸 회의장을 나오면서부터 정말 그게 최선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요.
...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깨친다.) 그보다 시아록, 혹시나 저주 관련해서 증상이 나타나면 불길해도 꼭 말해요.
시아록:응, 꼭 얘기할게.
사실 나도 회의장에서 그게 최선일까 하고 생각했어. 그런데 대안은 아무것도 생각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반대한다고 해결될 수 없는 거니까.. 그냥 아무말도 못했어.. (조금 어두워진 표정으로 멋쩍게 입꼬리를 올렸다.)
슈테른:... 맞아요.
알아요, 아는데... 그게 최선이라는 걸 아는데도 어쩐지 숨이 막히는 것 같아서...
(한숨을 방울방울 내쉰다.) 이렇게 슬퍼해봐야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오지는 않지만요.
시아록:(따라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슈슈도 어디 아프거나 이상 있으면 꼭 얘기해야 돼?
슈테른:물론이죠. 꼭 얘기할게요.
혹시나 네가 저주에 걸리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마음은 같습니다.
원인도, 해결도 모르는 저주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 사실을 떠올리면 마음이 더 무겁게 가라앉습니다.
잠시 그렇게 앉아있으면, 물고기 몇 마리가 와서는 볼을 간질이고 지나갑니다.
눈으로 그들을 쫓다 보면 슈테른이 문득 얘기합니다.
슈테른:... 아까 그런 얘기가 생각났어요. 얼음공주 이야기.
시아록:응? 얼음공주 이야기..? 그게 뭐야?
슈테른:저주라고 하니까 생각난 이야기에요.
핸드아웃: 얼음공주 이야기
먼 옛날, 뭍에는 ‘겨울’이란 게 있었대요. 엄청 추운 거 말이에요. 지금도 바닷물이 유난히 차가워지는 시기가 있는 것처럼, 뭍에서도 같았던 거죠. 아주 추운 날이면 사람들은 얼음공주가 온다고 생각했대요. 얼음공주가 오면, 하늘(또 다른 바다랑 비슷한 거래요.)이 바다랑 맞닿은 부분부터 푸르게 변해 버린다고. 공주는 정말 예쁘다고 해요. 해파리보다 더 투명하고 새하얗다고요. 하지만 얼음 공주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 차디차게 얼어붙어 버린대요. 소라 껍데기처럼 단단해져서 부서지지도 않는다는 거죠. 그래서 얼음공주가 오는 날엔 꼭 집안에 있어야 한대요.
"어쩌면... 다들 죽기 전에 얼음공주를 만났던 걸지도 몰라요." 그가 가만가만 속삭입니다.
그 말을 들으면 어쩐지 설득력 있게 느껴집니다. 완벽히 맞아떨어지지는 않지만요.
죽은 이들은 마지막 순간 얼음공주를 보았을까요.
두려웠을까요, 아니면 경외로웠을까요…….
지금은 아무도 모릅니다.
시아록:만약에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얼음 공주는 뭍이 아니라 바다에도 올 수 있는 걸까? 왜 갑자기 여기까지 왔을까? 그냥.. 이야기인 게 맞을까?
(가만히 네 이야기를 듣고는 생긴 의문점을 천천히 내려놓는다. 답을 크게 원하는 게 아닌 듯 의문을 뜻하는 말끝은 낮고 작기만 하다.)
슈테른:고민해봤는데...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뭍에도 찾아온 얼음공주니까, 바다에도 찾아올 수 있는 걸지도 몰라요.
책에서 처음 그 얘기를 봤을 때는 분명 얼음공주가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어요.
주변이 서늘한 걸 보면... 바다 마을에도 겨울이 온 걸까요?
시아록:그런가..? 그 눈이란 것도 오고 있고... 리키 씨가 그건.. 뭍에서 내리던 거랬지?
슈테른:맞아요. 바다에 내리는 스노랑은 비슷하지만 다른 거라고...
그 스노도 바다에 퍼진 저주랑 무언가 관련이 있는 걸까요. ... 뭐라도 알고 싶네요.
시아록:뭘 찾아보면 알아낼 수 있을까? 그러고보니 슈슈는 얼음공주 이야기는 어디서 알았어?
거기 주변에서 뭐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슈테른:도서관에서 꺼내왔던 책에 나와있었어요.
요즘은 주로 도서관에 있거든요. 안 그래도 무언가 발견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게 몰두하다 보면, 어느새 목적도 잊고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좋은 건지는 모르겠네요, 라고 덧붙인다.)
... 피곤하진 않으세요? 이만 돌아갈까요? (평소보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얘기하더니,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시아록:그래, 돌아가서 좀 쉬자. 나중에 도서관 갈 때 나도 같이 갈래.
(너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잡고 가자는 듯 손을 내미는 슈테른의 얼굴은 평소보다 약간 삭아 보입니다.
이런저런 걱정이 쌓이기도 했을 거고, 무엇보다 지친 것 같아요. 하긴, 슈테른은 체력이 약하니까.
시아록:(내미는 네 손을 꽉 잡았다.) 많이 피곤해?
슈테른:아뇨, 가서 좀 자면... (말을 하다 말고 하품을 한다.) 자다 보면 괜찮아질 거에요.
당신이 그 손을 잡으면, 언제나와 같이 따뜻한 온기가 전해집니다.
온기는 당신을 안심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하죠.
지금은 괜찮을 거예요. 어쩐지 그런 확신이 듭니다.
조만간 이 현상을 타파할 방법을 찾아낼지도 모르고요. 다 같이 힘을 합친다면요.
아니면 도서관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죠. 이 세상 어디보다 책이 많은 곳인걸요.
두 사람은 가만가만 집으로 돌아갑니다.
또 하루가 저물어갑니다.
장례 행렬
다음 날, 몸을 일으키면 어쩐지 주변이 시끄럽습니다.
무슨 일일까요?
창문으로 바깥을 살펴보면, 어쩐지 길가에 있는 사람들이 평소의 배 이상으로 많습니다.
뭘 하는 걸까요.
시아록:무슨 일이지..?
집에만 있으면 알 수 없습니다. 간단한 채비를 하고 밖으로 나가 볼까요.
시아록:(외투를 챙겨입고, 물건을 조금 챙겨 밖으로 나간다.)
집을 나서면 밖에는 처음 보는, 낯선 풍경이 펼쳐집니다.
터벅터벅,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수레를 끌며 갑니다.
수레엔 무언가 잔뜩 실려 있고, 흰 천으로 덮여 있어 내용물을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굳이 안을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바다를 떠나는 중이라는 걸요.
보통의 장례식이었다면 마을 사람들은 길 양옆에 늘어서 말미잘이나 산호 조각 등을 물에 띄우며 애도를 표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습니다. 죽은 이들의 가족만이 한 구석에서 소리 죽여 울고 있을 뿐이에요.
수레를 끄는 이들의 표정도 공포와 슬픔이 어려 있습니다.
우는 가족이 따라가려 하지만 이내 제지당합니다. 이렇게 떠나면 영영 볼 수 없겠죠.
물에서 죽은 이들은 물에서 다시 태어납니다. 그러나 뭍으로 가버린다면 돌아오지 못할 거예요.
적어도 수중 마을의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어떤 기분인가요. 두렵나요? 슬픈가요? 저들을 애도하고 싶나요? 아니면 그저 떠나보내고 싶나요.
행렬은 천천히 이어집니다.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있나요?
시아록:(무언가 해줄 수 있는 게 있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어서 더 슬퍼졌다. 그저 집에 잠시 들어가 원래의 장례식처럼 산호조각을 가져 나와 물에 띄웠다.)
산호조각을 물에 흩뿌리면, 그것들은 물결에 실려 행렬을 따라갈 것 같다가도 금방 가라앉습니다.
그래도 이것으로, 조금이라도 더 그들이 좋은 곳으로 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묫자리도 없는 행렬이지만 그들이 누울 곳이 조금이라도 편안하기를.
애도의 뜻을 담아 그러고 있으면, 누군가의 곡소리가 들립니다.
시아록, 듣기 판정.
시아록: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5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저주가 퍼지고 있는 거야! 눈이 내리면 저주가 온다고 했어!”
울고 있는 가족 중 한 사람의 목소리입니다.
그는 다소 패닉했는지, 당신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을 쏟아냅니다.
저주가 퍼지고 있다고요. 드물게 눈이 내릴 때마다,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고요.
이것은 불행이며 재앙이라고. 우리는 모두 저주에 묻혀 얼어버리고 말 것이라고...
그가 당신의 손목을 힘껏 쥐고 호소합니다. 기분 탓인지 그 손이 참으로 차갑습니다.
……불행이며 재앙이라니, 정말일까요? 시아록, 이성 판정.
시아록:
SAN Roll
기준치:
69/34/13
굴림:
81
판정결과:
실패
시아록, 이성 1 감소.
어쩐지 기분이 안 좋아져 쓴 표정을 짓고 있으면, 곧 그 사람은 다른 마을 사람들의 만류 하에 자리를 옮깁니다.
“이 사람아, 아무리 그래도 젊은 사람 앞에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다들 힘들 때니 정신 단단히 차리게.”
사람들은 당신에게, 너무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위로합니다.
너도나도 머리를 쓸어주거나 따뜻한 말을 건넵니다. 사람들은 낙담했을지언정, 희망을 잃지는 않았으니까요.
시아록:네, 괜찮아요. (쓰게 웃으며 모두의 위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수레가 마을을 벗어나고, 주변의 모두는 자리를 벗어나 각자의 장소로 돌아갑니다.
남아있는 건 어느새 당신뿐이네요. 얼마나 서 있었을까요?
누군가 당신의 어깨를 톡톡 두드립니다.
시아록:응?
슈테른:저에요, 시아록.
돌아보면 슈테른입니다. 아까 한창 행렬이 이어질 때는 없었던 것 같은데...
슈테른:괜찮아요?
시아록을 찾고 있었는데 여기 와 보니까 혼나는 것 같아서... 무슨 일 있었어요?
시아록:아, 아냐. 나 안 혼났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슈테른:혼난 게 아니라구요? 그럼 아까 그 사람들은 왜...
다들 표정이 안 좋아 보이셔서요. 무슨 일이에요?
시아록:그.. 장례.. 하러 가는 길이라서.. 다들 좀, 안 좋으신가봐..
슈테른:아... 뭍으로 가는 길이었나요.
하긴 장례 행렬이니까...... 그럼 시아록도 배웅해주신 거에요?
시아록:응, 내가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지만.. 그냥 산호조각이라도 같이 보내면 뭔가 좀 편하지 않을까 해서.. (너를 향해 멋쩍게 웃었다.)
슈테른:(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그렇게 갑작스럽게 가 버릴 줄은 몰랐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저도 밖에 나와 있을걸 그랬네요.
시아록:아냐, 봤으면 괜히 우울해졌을지도 몰라. 그리고 나도 밖이 소란해서 잠시 본 거 뿐이야.
슈테른:... (뭐라고 더 말하지는 않고 그저 당신의 손을 거머쥔다. 맞닿은 손은 늘 그랬듯 따뜻하다.)
참, 시아록. 제가 어제 그 얘기 했잖아요. 도서관을 뒤져보고 있다는 얘기.
이대로 손 놓고 있는 건 답답해서 책장을 무작정 넘겨 보다가... 무언가 신경 쓰이는 걸 찾았어요.
보여주고 싶어요. 같이 가실래요?
시아록:응. (네 손을 맞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도서관에 가보자.
두 사람은 도서관으로 터벅터벅 걸어갑니다. 슬슬 모두가 잠에서 깰 시간인데도, 거리는 그저 조용하기만 합니다.
다들 경계하는 듯 문을 꽁꽁 닫고, 초롱 산호도 돌보지 않은 채 바닥에 굴리고 있으니까요.
닫힌 건 비단 문뿐만이 아니라,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모두 굳은 얼굴로 저주를 경계하고 있을 뿐입니다.
걷다 보면, 슈테른은 가만가만 입을 엽니다.
슈테른:뭍으로 간 사람들도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물에서 죽은 이들은 물에서 다시 태어납니다. 이는 자연의 순환이며 바다의 법칙입니다.
생명을 가득 품은 보물 창고인 이곳은 죽음의 무덤이 되기도 하니까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시아록:글쎄... 우리도 바다에 내려오기 전까지는 원래 뭍에서 살았다고 들었는걸.. 언젠가 만나게 되지 않을까?
슈테른:... 언젠간 만난다, 라.
그러게요, 또 어디선가 볼 수 있을까요... 꿈에서라도.
마음이 이어져 있다면 괜찮을지도 몰라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네요.
바다가 아주 넓어도 같은 물속에 있는 것처럼.
바다 위로 가버려도, 그리움이 남는다면 가라앉을 수 있을 거라고…….
걸음이 멈추고 말이 끊깁니다.
둘의 앞엔 도서관이 있습니다.
도서관
도서관이라고 해서, 박물관과 사정이 다르지도 않습니다.
물 아래에서 종이로 된 책은 축축하게 젖고, 찢어져 형체도 남지 않으니까요.
이곳엔 얼마 안 되는 지식을 보존하기 위해, 빳빳하게 편 해초나 무른 석판 등에 날카로운 것으로 글씨를 새긴 종류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사서도 없습니다.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도서관 한구석엔 잡동사니가 쌓여 있기도 하네요.
슈테른과 당신이 유적지에서 주운 책을 여기에 보태기도 한다는 건, 서로만의 비밀입니다.
슈테른:잠시만요. 여기 어디 있었는데……
그는 책장 구석으로 걸어갑니다.
꽤 시간이 걸릴 듯하니, 그동안 다른 책들을 구경해도 좋을 거예요. 실용서가 많긴 하지만요.
시아록:(네가 책장으로 다가가는 걸 보다가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다.)
주변에는 책이 아주 많습니다. 하나하나가 묵직하네요.
아무거나 뽑아서 읽어볼까요? 시아록, 자료조사 판정.
시아록: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2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슈테른이 얘기한 얼음공주 이야기를 찾습니다. 들은 것과 크게 다르진 않네요.
얼음공주는 성격이 나빠 자신을 똑바로 보는 이들을 할퀴어버린다는 문장이 하나 더 적혀 있을 뿐입니다.
시아록:왜.. 쳐다본다고 할퀸다는 거지..? (조금 의아해졌다.)
의아한 얼굴로 책을 들고 있으면, 슈테른이 웬 오래된 석판덩어리를 들고 다가옵니다.
슈테른:찾았어요. 이거에요!
그렇게 말하며 내민 책을 받아들면...
이게 뭔가요, 제목도 적혀 있지 않고, 글씨가 마모되어 잘 읽기 힘들기도 합니다.
이야기라기보단 예언 같이 들리기도 하네요. 시간을 들여 더듬더듬 읽어보면...
핸드아웃: ?????
차갑고, 어둡고, 희고, 축축한 것. 아무것도 없는 것. 땅에 내리는 재앙.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 시작. 원초의 시대. 영원한 손실. 무無로 회귀하는 것. 태어난 것이 멸망을 가져오고 죽은 것이 저주를 내린다.
시아록:이게 뭐야..? (석판에 적힌 글을 읽어보았지만,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슈테른:으음... 뭘 말하고자 하는 건지는 모르겠어요.
이야기라기보단 예언 같아요. 그것도 지금 상황과 맞아떨어지는.
이걸 보세요. 차갑고, 어둡고, 희고, 축축한 것...
이거, 스노랑 비슷한 것 같지 않아요?
시아록:으음.. 이게 스노를 뜻하는 거면.. (자신이 아닌 슈슈가 해석한 걸 생각하며 그 아래 글들을 다시 읽어본다.) 으으음... (역시 아무것도 모르겠다.)
슈테른:아닌가...? 제가 보기엔 스노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한데...
시아록 생각은 어때요?
(스스로도 긴가민가한듯 의견을 구해온다.)
시아록:응.. 그거 같아. 지금 우리한테 일어난 변화는 스노가 유일하고..? 여기 쓰인 것에 시작이라면 스노가 맞지 않을까?
슈테른:시작... 뭐가 시작된다는 걸까요.
스노가 내리면, 원초의 시대가 펼쳐진다는 건가...?
시아록:원초의 시대가 뭐지? 사람들이 바다에 들어오기 전을 말하는 거야? (석판의 말은 너무 두루뭉실하고 어렵다.)
슈테른:원초의 시대... 맞아요, 인류는 원래 육지생물이었으니까...
근데 그게 스노와 관련이 있을까요? 눈이 내리면, 원초의 시대가... 으음... (수수께기를 푸는 듯 골머리를 썩힌다.)
... 일단 첫줄 아래로, 아무것도 없는 것. 땅에 내리는 재앙...
이것들도 아마... 스노를 말하는 것 같아요.
시아록:응? 그것도?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슈테른:왜냐하면 다른 것들과는 다르게, 우리가 봤던 스노는 쌓이지 않고 바로 없어졌잖아요.
시아록:아.. 그렇구나.
슈테른: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한다는 건... 눈에 보이긴 해도 허상처럼 실체가 없다는 걸지도 몰라요.
아무리 모래만큼 작은 것이라도 손에 만져지는데, 그건 아무런 감촉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땅에 내리는 재앙이라니... 이건 무슨 말일까요?
시아록:땅에 내리는 재앙... 재앙..? 내리는 건 지금까지 스노밖에 없었는 걸.. 그걸 재앙이라고 봐야 하는 거야..?
슈테른:... 그, 그렇게 되겠죠, 역시...
하지만 스노가 왜 재앙인 걸까요? 정말 스노가 저주를 불러온 걸까요?
석판에 직접 '저주'라는 말이 나와있는 게 좀 걸려요... 스노가 내릴 때 자체는 아무런 일도 없었는데, 왜...
시아록:그러게.. 근데, 스노가 내리기 전부터 사람들이.. 바닷물 달게 느끼고 하지 않았어..? 그 전부터 스노가 내렸나..?
슈테른:... 으음...
스노가 내린 것과, 바닷물이 달게 느껴진 것... 둘 중에 뭐가 먼저였죠?
시아록:그러게.. 좀 헷갈려.. (미간을 찌푸리고 열심히 생각하지만, 오래 지난 일이라 모르겠다.)
:정확한 선후관계를 따지고 싶다면 적절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이를테면 자료조사 판정으로 관련된 책이 없는지 뒤져본다든지, 지능 판정을 통해 머릿속에 묻혀있던 기억을 떠올린다든지.
아니면 밖으로 나가 굳어있는 사람들에게대인기능판정으로 말을 이끌어낼 수도 있습니다. 자유롭게 선언하고 행동하세요.
시아록: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1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보려 끙끙, 열심히 머리를 굴려본다.)
베키 씨와 마지막으로 했던 대화가 떠오릅니다. 그 대화가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에요.
그의 말로는, 일단 두 현상의 시작점이 비슷하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했죠.
시아록:음.. 베키씨가 처음 말했던 때랑 스노가 온 게 비슷했던 거 같아.. 슈슈는 어떻게 생각해?
슈테른:
지능
기준치:
55/27/11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으음... (머릿속을 뒤져본다. 베키 씨의 얼굴까지 그리다 보면 갑자기 그리운 표정이 된다.)
비슷하다고는 했는데, 사냥 중에 그 스노라는 걸 보셨다고도 한 것 같아요. 그 때 베키 씨는 멀쩡하셨으니까, 아마...
시아록:그럼.. 스노가 먼저 시작이구나.. (네 말에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석판에 적힌게 스노를 뜻하는 게 맞으면.. 이게 맞는 거겠네.. (석판을 검지로 톡톡 두드린다.)
슈테른:아마... 그렇겠죠.
하지만 이걸 안다고 해서, 우리가 스노를 멈출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아.
그의 말에 그제서야 깨닫습니다. 이거, 해결 방법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잖아요.
이래서야 시간 낭비를 한 셈입니다.
슈테른:...으음, 처음 찾을 때만 해도 대단한 발견을 한 줄 알았는데...
스노에 대한 얘기만 있고, 전부 거의 예언하는 글이잖아요. 무언가 힌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시아록:으음.. 그러게. 다른 사람들한테 보여줘도, 뭔가.. 제대로 해결책도 없을 거 같고..
슈테른:...하지만 이로써 확실해졌네요.
스노는 저주와 함께 온다는 게요.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고 답답했던 그때보다는 나아요. 이걸 같이 읽고 나니 조금은 실마리가 잡혔어요.
이런 벽 틈새에 넣어두는 게 나을 거에요. (구석에 간 균열을 헤집어 적당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시아록:그런가. (네가 만들어둔 공간을 보더니 거기에 석판을 넣었다.)
영차. 석판을 밀어넣으면 벽의 일부인 것처럼 자연스럽습니다.
이로써 이 내용은 우리만 아는 일이 되겠지요. 슈테른은 벽을 잘 다듬어 석판을 완벽하게 숨기더니 당신을 돌아봅니다.
슈테른:다른 책도 보실래요? 동화책 같은 거.
그런 거라도 보면 마음이 좀 가라앉을 거에요.
시아록:좋아. 계속 우울한 일만 있었으니까 그런 거라도 읽으면 괜찮을 거 같아. 슈슈는 괜찮아?
슈테른:저야 괜찮죠. 마침 기분 전환할 거리도 필요했고.
전에 봤던 것 중에 재미있는 게 있었는데... 잠시만요.
그렇게 말하며 그는 앞쪽 책장 어딘가를 뒤집니다.
혹시 책 제목을 둘러보고 싶다면 관찰 판정, 뽑아보려면 자료조사 판정입니다.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6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실용서와 소설이 섞여 있습니다. 기록은 주로 후대에 정보와 응용법을 남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실용서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지만요.
'초롱 신호 언어의 모든 것', '미역의 새로운 조리법', '야생 물고기 백과사전'... 지루해요!
시아록:(책장을 뒤적이는 슈슈 뒤에서 책 제목을 훑어봤지만, 재미있는 건 보이지 않고 지루하기만 하다.) 슈슈, 찾았어?
슈테른:아, 잠깐만요. 여기...
아, 이거에요. '해파리와 함께 춤을'.
그렇게 말하며 그는 얇은 해초를 엮은 책을 들어올립니다.
표지에 뭔가 그려져 있는데... 관찰 판정으로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슈테른은 그림을 보더니 뒤늦게 "아마 해파리 그림일 거에요."라고 덧붙입니다.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99
판정결과:
실패
일단 저건 해파리라고 쳐도... 옆에 있는 건 뭔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표지를 넘겨보면, 다행히 큼지막한 글자가 알아보기 쉽게 쓰여있습니다.
―
어느 언덕 어귀에 호기심 많은 여자아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어느 날 길을 걷다 무서운 해파리를 발견했습니다. 하늘하늘하게 흔들리는 다리가 바위에 끼어 아파 보였습니다.
그것을 보고 처음에는 도망치려 했지만, 결국 바위를 밀어 해파리를 구해주었습니다.
해파리는 크게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나를 도와줘서 고마워. 너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은데 바라는 게 있니?"
아이는 말했습니다. "저는 투명해지고 싶어요!"
그 말에 크게 놀란 해파리가 이유를 물었고, 아이는 눈을 빛내며 설명했습니다.
"저는 아직 어려서 멀리까지 나가면 맨날 혼난단 말이에요. 저도 해파리 씨처럼 자유롭게 헤엄쳐보고 싶어요!"
해파리는 아이의 말을 이해하고, 자신의 힘없이 흔들리는 다리를 내밀었습니다.
아이가 그 다리를 덥썩 잡자, 정말로 아이는 자신의 몸이 가벼워진다고 느꼈습니다.
아무도 그들을 발견하지 못했고, 엄마 앞을 빙글빙글 돌아다녀도 혼나지 않았습니다. 아이와 해파리는 즐거운 산책을 했습니다.
알록달록한 산호와 맹수를 이기는 작은 물고기 떼들을 신나게 구경했습니다.
처음으로 모험한 세계는 아름다워서, 아이는 몇 번이고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고마워요!"
아이는 해파리와 함께 바다를 누볐던 그 기억을, 언제까지고 소중히 간직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납니다. 투명해진 채 바닷속을 모험하는 이야기라, 허무맹랑하지만 아주 나쁘지도 않네요.
시아록:뭔가 귀여운 이야기네. 옆에 해파리 그림 옆에 있던 게 아이인가?
슈테른: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주인공이잖아요.
제가 이 소설을 쓴 사람이었어도 해파리랑 아이는 꼭 표지에 넣었을 거에요.
이건 누가 쓴 이야기일까요? 바닷속에 살던 누군가가 남긴 걸까요?
시아록:그러게, 바다얘기니까 바다에 사는 누가 쓴 게 아닐까?
해파리랑 투명해져서 여기저기 놀았다는 거 아이한테 엄청 기억에 남고 추억이 되었겠지.
(아까의 울적한 기분은 어디갔는지 기분 좋게 웃었다.)
슈테른:...어, 그러게요?
처음엔 누군가 지어낸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직접 겪은 일을 쓴 걸지도 몰라요. 잊지 않고 간직하기 위해서...
그런 거라면 근사한 추억이네요. (조심스레 책을 덮었다.)
집중할 거리가 생기자 아까의 찝찝하고 싱숭생숭한 기분은 어느새 날아갑니다.
시아록, 이성 1 회복.
그가 책장에 다 읽은 동화책을 꽂아넣고 있으면...
돌연 물살의 흐름이 바뀝니다.
건물 안을 채우는 온화한 물살이 거센 출렁거림으로 변합니다.
바로 근처를 거대한 물고기가 지나가는지도 모르겠어요.
시아록:(갑자기 바뀐 물살에 화들짝 놀라 눈이 커진다. 곁에 있던 슈슈를 붙잡았다.)
보통 때라면 뭐가 찾아왔는지 구경하러 가자며 들떴을 테지만, 지금은...
슈테른:조심해요!
그렇게 말하며 슈테른은 당신을 감싸안습니다. 시아록, 행운 판정.
시아록:
운
기준치:
80/40/16
굴림:
71
판정결과:
보통 성공
툭, 머리 위로 빳빳한 해초 묶음이 떨어졌습니다. 누군가의 식량이었을까요?
한창 파문이 지나가고 나면, 소란 틈에 책 한 권이 떨어져있는 게 보입니다.
한 번 읽어볼까요?
시아록:뭐가 지나간 거지? 깜짝이야.. 슈슈는 괜찮아? (물살이 잠잠해지자 주변을 잠시 두리번거린다.)
(바닥에 떨어진 책을 발견하고 주워들었다.) 슈슈, 이거 떨어져있다.
슈테른:(긴장으로 뻣뻣해진 몸을 풀며 천천히 자세를 갈무리했다.) 전 멀쩡해요. 시아록이야말로 괜찮아요?
어, 이게 무슨 책이에요? 꽤 두꺼운데.
시아록:응, 난 괜찮아. 슈슈도 괜찮아서 다행이야. (널 보고 웃고는 책을 보여준다.) 글쎄, 안에 한 번 볼까!
슈테른:좋아요, 이것도 우연인데 읽어봐요. 무슨 내용일까요...
둘은 책장에 등을 기대고 앉아 책장을 넘깁니다.
핸드아웃: 바다 마녀 이야기
(전략) 어린 인어는 바다 마녀를 만나기 위해 바닷속 왕궁을 떠나, 마녀가 사는 소용돌이로 향했습니다. 마녀가 사는 소용돌이 근처엔 꽃이나 풀은커녕 생명은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습니다. 벌거벗은 잿빛 모래땅만이 가득했을 뿐이었습니다. 어린 인어는 모래땅을 지나, 온갖 기괴한 것이 자라는 낯선 숲으로 들어섰습니다. 반은 동물이고 반은 식물인 나무와 꽃들이 있었는데, 그것들은 꼭 백 개의 머리가 자라난 뱀처럼 보였습니다. (중략)
인간과 동물의 뼈로 만들어진 집에 바다 마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바다 마녀는 물뱀에게 음식을 먹이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요. 저주를 풀고 싶은 거지요?” 인어가 긍정하자, 마녀가 인어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정말 어리석군요. 당신 마음대로 한 행동이 결국 당신을 슬픔에 빠트릴 거예요.” 그리고 마녀는 어린 인어가 누릴 수 있는 것을 말했습니다. 빼앗길 것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아주 끔찍하고도 매혹적인 제안이었습니다. “이 모든 걸 당신이 짊어지겠다면 저는 당신을 도와드리죠.” 어린 인어는 마녀의 제안에 응했습니다. “■■■■ ■ ■ ■■■” (이 부분은 흐려져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자 마녀는 만족스러운 듯이 활짝 웃으면서 당신을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필요하다면 소용돌이를 찾아. 그 중심에서 기다릴게.” 당신은 마녀의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시아록:저주..? 소용돌이?
슈테른:반은 동물이고 반은 식물인... 뱀처럼 생긴 것...
이런 이야기도 있구나... 마녀라는 게 정말 있을까요? 조금 으스스해요.
시아록:그러게.. 괜히 저주라고 하니까 아까 본 석판 생각나.
(괜히 찝찝한 기분에 콧잔등을 찡그렸다.)
슈테른:그러게요... 이거 꼭 우리 얘기 같아요.
... 솔직히 말하자면 저주를 풀 수 있다면 마녀에게라도 찾아가보고 싶어요. 계약의 대가가 좀 크긴 하지만...
시아록:그치, 여기 가려진 얘기는 뭘까? 대가가 너무 크다면 좀 무섭긴 하지만.. 정말 마녀가 있어서 물어볼 수 있다면 나쁘진 않을 거 같아.
슈테른:이 가려진 말은... 인어가 한 말이겠죠? 뭐라고 했을까요, 궁금하네요...
계약 조건도 이 밑에 나와있잖아요. 가재랑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기기...
... 어려운지도 잘 모르겠네요. 가재한테 양해만 구하면 될 것 같은데. (작게 웃음을 흘린다.)
시아록:가재랑 가위바위보해서 이기기? 어디에?
가재는 가위만 낼 거 같은데!
슈테른:네? 여기 있잖아요. (책 밑부분을 가리킨다.)
그 말을 듣고 다시 책을 들여다보면...
소용돌이를 찾으라는 말이 전혀 다른 내용으로 바뀌어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가재랑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는 게 계약 조건이라고 나와 있네요.
... 뭘까요? 그새 책이 바뀌기라도 했나? 기묘한 느낌에 시아록, 이성 판정.
시아록:
SAN Roll
기준치:
69/34/13
굴림:
40
판정결과:
보통 성공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똑같네요. 처음 본 내용은 뭐였을까요?
마치 책이 당신에게 말을 걸었던 것만 같았어요.
시아록:가재.. 왜 아까는 못 봤지..? (아까 다른 글이 적혀있었던 거 같은데.. 잠시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해보지만, 다시봐도 여전히 가재와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라는 문장 뿐이다.)
물론 당신도 가벼운 마법을 쓸 수 있지만, 저주를 푸는 마법에 대해선 듣도 보도 못했는데...
마녀라면 알고 있을까요? 마녀잖아요.
시아록:바다에 마녀가 있을까..?
(괜히 찜찜한 기분으로 말을 해본다.)
슈테른:마녀라... 잘 모르겠어요. 아이들을 겁주는 말에서밖에 못 들어봤는데...
시아록은 어떨 것 같아요?
시아록:글쎄... 바다는 넓으니까... 있을지도 모르지? 만약 있다고 한들 우린 찾으러 멀리 나갈 수도 없는 걸..
(어깨를 올렸다 내렸다.) 그치만 만약 진짜 있어서 뭔가 부탁하기엔 마녀는 뭔가 무서울 거 같아..
슈테른:글로만 읽었을 때도 오싹할 정도면... 직접 만났을 땐 벌벌 떠느라 아무 말도 못 할 지도요.(작게 쓴웃음을 지었다.)
바다 어딘가에 있다고 치면 어디서 살까요? 거친 모래에 마수같은 숲이면... 북쪽이려나?
어쩐지 어울리네요. 지금은 잔뜩 황폐해져서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잖아요. 저도 북쪽은 가본 적 없는걸요.
시아록:소용돌이라고 했으니까.. 바다에 소용돌이가 어디쯤 있을까? (아직도 소용돌이는 강렬하게 머리에 남아있다.)
시아록:손이 차가워진 건 알고 있었는데, 아니 그래도..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빨리 진행된 건 아니었는데.. 증상 있으면 얘기해주기로 했는데.. (당황한 듯 어쩔 줄 몰라하며 두서없이 말을 이었다.)
마녀는 당신의 말을 듣더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슈테른을 두 손으로 들어올립니다.
마녀의 처방
마녀는 이제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몸을 작은 방에 데려가 눕힙니다.
마녀는 명료하게 말합니다.
마녀:저주에 걸린 거에요.
어쩌면 알아차릴 기회는 이전에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선고가 위태로운 추측을 사실로 바꾸는 마지막 조각이었을지도 모르죠.
마녀:잠시 정신을 잃었을 뿐이에요. 곧 깨어나겠지만……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게 좋겠어요. 이 아이는 유난히 침식이 빠르네요.
바로 지척에서 얘기하는데도 슈테른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누워있을 뿐입니다. 온기가 떠나버린 몸은 싸늘한 시체처럼 느껴집니다.
마녀는 그렇게 말하곤, 정체 모를 파이프를 입에 가져다 댑니다.
동그란 끝에서 회색 가루가 퍼지고, 물에서 처음 맛보는 씁쓸한 향이 납니다.
시아록:그럼 풀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파랗게 질린 얼굴로 마녀에게 절박하게 붇는다.)
마녀:저주를 풀 방법이라...
마녀는 나직하게 웃으며 우아하게 파이프를 흔듭니다. 이어지는 대답은 단호합니다.
마녀:미안하지만 저는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네요.
비유하자면 저주는 해류. 바다보다 더 큰 세계를 유영하는 거대한 힘이랍니다.
일개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어요.
아직 당신의 목숨이 온전한 것에 감사하세요.
시아록:할 수 있는 게 전혀 없어요? 뭐라도요? 약도? 그렇다면 어차피 모두 죽는 거예요?
그럼 내 목숨이 온전한 것에 무슨 감사를 하라는 거예요?
어차피 슈슈도, 나도, 부모님이랑 마을 사람들도 다 저주로 죽는다면요?
마녀:어쩌면 당신도 저주에 먹혀 목숨이 사그라들 지도 모르죠.
어쩌면 아무런 시도도 효과를 보지 못해, 결국 남아있는 수중 인류마저 전멸할 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전혀' 방법이 없다고는 할 수 없죠. 과학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도, 0%에 달하는 가능성도 없으니.
그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이 아이는.
마녀는 안다는 건지 모른다는 건지 모호한 답을 내놓더니, 다시 입에 파이프를 머금습니다.
달콤한 물은 도대체 어떤 맛일까요. 이 세상을 둘러싼 물은 차고 쓰고 시리기만 해요.
시아록:전혀 방법이 없는 게 아니면 방법이 있어요? 뭐라도 해볼게요. 알고 있는 게 있다면 알려주세요.
마녀:글쎄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대가로, 계속해서 회의적인 태도로 일관할 뿐이다.)
저주를 풀기 위해 정말 '무엇이든' 할 수 있나요? 뼈가 깎이고 온 몸이 짓눌리는 고통을 견딜 수 있나요?
이 해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힘들 거에요. 어쩌면 죽을지도 모르죠.
아직 당신에겐 그런 결의가 없는 것 같은데요.
시아록:할 수 있어요. 무서운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고 슈슈도 누구도 없이 혼자 있는 건 더 무서우니까. (여전히 파랗게 질려있고 슈슈의 손을 붙잡은 손도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포기하는 건 바보같다고 생각한다.)
마녀:흐음...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 얼굴로 당신을 응시할 뿐이다.)
그럼, 이렇게 생각해 봐요. 저주가 풀린다고 정말 모든 일이 해결될까요?
죽은 사람이 돌아올까요? 저주가 진행되던 사람들이 정말로 씻은 듯이 나을까요?
기껏 저주를 해결했더니, 또 다른 재난이 닥쳐 또 다시 벼랑 끝으로 몰린다면?
당신의 노력이 아무런 쓸모를 갖지 못하게 되더라도 정말 괜찮나요?
제 앞에서 거짓말하려거든 당장 나가는 게 나을 거에요. (위협적인 자세를 취하며 숨결이 닿을 만큼 코앞까지 당신을 밀어붙인다. 마치 거대한 괴수가 으르렁대는 것 같다.)
시아록:(당신의 말도 위협적인 자세에도 더 질린 표정에 조금 물러났다. 그렇다고 도망가지는 않았다.) 이미 죽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건 사실이고, 다음에 재난이 또 올 수도, 제가 덧없는 희망으로 이러는 걸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게 있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일어날 거니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멍청한 거잖아요. 다음에 일어날 일은 다음에 또 알아서 할 일이에요. 나는 하나로도 벅찬데 다음까지 신경 쓸 여유도 없어요.
마녀:저주를 푸는 데 얼만큼의 세월이 걸릴 거라고 생각하나요?
어쩌면 너무 늦게 풀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결과를 맞을 수도 있어요.
어쩌면 모든 사람이 저주에서 벗어나도, 당신 혼자서 그 저주를 품고 가야 할 지도 모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라도 시도하고 싶나요?
시아록: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할래요. 어차피 그렇게 똑똑한 것도 아니고.
거기까지 많은 생각을 하면서 별로 움직여본 일도 없는 걸요..
마녀:...흐음. (아까의 협박하는 듯한 태도는 어디가고 자세를 갈무리한다.)
마지막으로 당신처럼 열렬한 감정을 느낀 게 언제인지 모르겠네요.
실망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사실 마녀가 아닙니다.
하지만 마녀는 분명히 있었어요. 징그러운 뼈로 만든 집에서 물뱀에게 먹이를 주었고, 별처럼 아름다운 눈을 대가로 인어 공주를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죠.
지금은 내가 마녀라고 불리는 이상……. 나를 찾아왔으니, 도와주어야겠지.
물론 대가는 받아낼 거야. (내뱉는 말은 슈테른의 몸보다도 싸늘하다.)
시아록:애초에 대가가 없다고 생각지도 않았어요..
내가 줄 수 있는 대가가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슈테른은 여전히 죽은 듯이 잠들어 있습니다. 마녀는 그 앞에서 팔짱을 끼더니 재차 되묻습니다.
마녀:정말로, 저주를 풀고 싶나요?
정말로?
시아록:(마녀를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아록이 긍정하자, 마녀가 말했습니다.
마녀:방금 전의 말에 거짓은 없어요.
당신의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몰라요. 목숨을 걸더라도 실패할지 모르죠.
그리고 마녀는 시아록이 누릴 수 있는 것을 말했습니다. 빼앗길 것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아주 끔찍하고도 매혹적인 제안이었습니다.
마녀:이 모든 걸 당신이 짊어지겠다면 도와드리죠.
시아록:좋아요, 도와주세요.
마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당신의 눈을 손으로 덮습니다.
순간 시야가 흔들립니다. 눈은 제대로 보이지만, 맺히는 상은 겹치지 못하고 둘로 갈라집니다. 어지럽습니다.
시아록은 지금부터 '관찰력' 기능치를 사용할 때마다 패널티 다이스 1개를 받습니다.
이것은 3부까지도 계속 적용됩니다.
당신의 가장 소중하고, 가장 유능한 것. 이것이 마녀에게 바치는 대가, 인어 공주의 상실― 목소리입니다.
무언가 가져오느라 잠시 사라졌던 마녀가 나타나고, 마침내 당신의 앞에 놓인 것은 세 가지 물건입니다. 마녀는 웃으며 읊조립니다.
마녀:슈테른을 구하고 저주를 풀기 위해선 뭍으로 떠나야 해요.
길고 험난한 여정이 되겠죠. 이건 두 분을 위한 선물이랍니다.
나침반, 인간이 되는 약, 그리고 해독제를 드리겠어요.
시아록:(물건들을 잠시 보다가) 인간이 된다고요?
뭍으로 나간다고요?
마녀:뭍으로 나가, 저주를 해결할 방법을 찾으세요.
시아록:(예상치 못한 얘기들에 당황하고 놀란 듯 하다.)
뭍에 나가야 하는구나.. (다소 얼떨떨하기는 했으나 별로 무를 생각은 없다.)
마녀:인간이 되는 약을 마시면 뭍에서도 숨을 쉴 수 있게 됩니다.
파도의 계단에 눕기 전에 두 사람이 나눠 마시면 돼요.
나침반은 가야 할 곳으로 안내할 겁니다. 언제나 지니고 계세요.
시아록:슈슈는.. 사람이 되어서도 저주가 계속 진행되나요?
(걱정섞인 눈빛이 슈슈에게 닿았다.)
마녀:풀어내지 않는 한 저주는 계속해서 근처에 머무르겠죠. 죽음도요.
그리고 마녀가 엄숙하게 경고합니다.
마녀:해독제는 때가 오기 전에 결단코 열어서는 안 됩니다.
충분히 숙성이 필요한 약이라, 섣불리 열었다간 모든 걸 망칠 거라고 말하는 목소리는 숫제 겁을 주는 것처럼 들립니다.
시아록:(슈슈를 데리고 뭍에 가는게 과연 안전한가를 열심히 셈해보지만, 애초에 마을을 떠나올 때 슈슈와 약속한 것도 있다.)
그럼 열 수 있는 때는 어떻게 알게 되는데요?
마녀:때란 이미 정해졌으되 아직 정해지지 않은 순간.
도착했을 때 비로소 직감할수 있죠.
해독제가 필요하게 되는 때가 올 거예요. 그때 뚜껑을 여세요.
시아록:..마녀님 말은 어렵네요. 알았어요.. (물건을 빤히 보다가 챙겼다.)
모든 것을 시아록에게 쥐여준 마녀는 당신을 지켜보다가 등을 돌린 채 혼잣말을 중얼거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