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단맛

[아록슈슈] Underwater Sweetness

퍄퍙책미 2022. 6. 19. 22:46

KPC 프루헤 슈테른     PC 시아록

날짜 2022.03.13 ~ 2022.03.27

플레이타임 총 25시간

원문 시나리오 링크     https://dear-heresy.postype.com/post/8882392

 

 

※아래 내용은 플레이로그입니다. 시나리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므로 열람에 주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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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4년간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진심으로 고군분투하는 탐사자를 짝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붙잡기에는 너무나 멀고, 바다에서 더욱 행복할 사람이기에 고백 한 번 못하고 자신의 마음을 포기하기로 합니다.

며칠 뒤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하기에, 탐사자에게는 미련을 떨치기 위해 일부러 차갑게 대하려고 합니다. (...를 의도했는데, 로그를 다시 읽어보니 그냥 투정부리는 걸로 보이네요;)

 

PC: 아마 노아를 싫어하거나 데면데면하진 않을 거 같아요. 엄청 친한 친구까지는 아니지만, 만나면 인사도 하고, 어느 정도 잡담도 하고 그런 지인 사이 정도가 될 거 같아요.

그 와중에 엄청바쁘지 않으면 매일 콜드 슬립에 빠진 슈슈를 만나러 가다가, 막상 해석(아직 해석만 할지 전투도 겸할지 정하지는 못했는데, 아마 전투까지 도와주는게 슈슈가 빨리 일어날 확률이 높다고 했으면 분명히 할거예요.)등의 너무나 바쁜 일로 슈슈를 만나러 못 가게 된다거나 또는 때때로 노아 보면서 아마 슈슈가 건강했다면 저렇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말 거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인 걸 알지만 가끔 드는 그런 생각을 못 멈추고, 그날은 슈슈가 잠들어있는 곳에 가서 기기에 기대 앉아서 밤샐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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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Team. Laputa
 
 
당신은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 아래를 걷고 있습니다.
 
왼쪽에는 슈테른, 오른쪽에는 노아가 함께합니다.
 
문득, 당신은 슈슈와 함께 처음 지상으로 올라온 날을 떠올립니다.
 
모든 게 신비로웠던 날을,
 
영원할 것 같았던 평화와 새로운 모험의 두근거림을.
 
아주 오래 전의 언약이 새삼스레 떠오를 만큼...
 
지금, 이 순간은 평화롭기 그지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여긴 어딜까요? 물 속이라기엔 공기가 무겁고, 지상이라기엔 부딪혀오는 바람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꿈이라는 걸까요.
 
온 세상의 평화를 모두 이 곳에 끌어다 모은 듯 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얼굴에 미소가 걸린 이유는 무엇보다도...
 
옆에 슈슈가 있어서겠죠.
 
문득 슈테른이 검지로 하늘을 가리킵니다.
 
그 손가락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면,
 
이 보입니다.
 
은화처럼 반짝이는 보름달은 오늘따라 유독 크고, 유독 아름답고,
 
유독 선명한 균열을 지니고 있습니다.
 
잠깐, 달에 저런 균열이 있었나요?
 
미세하던 금은 점점 벌어집니다.
 
도로 슈테른에게 고개를 돌리면, 슈테른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노아가 당신의 팔을 잡아당기며 무어라 외칩니다.
 
"―――!"
 
그 찰나 간에도 균열은 커집니다.
 
알에서 새가 부화하듯,
 
마침내 달의 껍데기를 깨고,
 
끔찍한 생물이 괴성을 내지르며 탄생하는 순간…….
 
시아록:어? (다른 것들에 놀랐던 것보다도 제 이름에 더 화들짝 놀랐다.)
 
몸이 힘없이 기우뚱, 옆으로 밀립니다.
 
어깨를 흔드는 손길에 당신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분주해 보이는 병원 안입니다.
 
화들짝 놀라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살펴보면,
 
눈앞에는 노아가 있습니다.
 
그날의 슈테른과 똑같은 나이로 성장한 그는, 당황한 눈빛으로 당신을 응시합니다.
 
노아:...피곤하신 건 이해하지만, 지금 잠드시면 어떡해요.
잠 깨게 물이라도 드실래요? (물병을 내민다)
 
시아록:어, 어..? (내가 잠이 들었나..? 멍한 얼굴로 노아를 올려다보다가 물병을 받았다.)
응.. (꿈이었나, 잠시 생각하다가 일단 목부터 축였다.) 고마워...
 
그래요. 이곳은 이오리의 병원, 대기실입니다.
 
깜빡 졸았나 봐요.
 
이런 곳에 찾아온 이유야 뻔하겠죠.
 
그런데 드물게 대기 줄이 길어서 잠시 눈을 붙였던 것 같기도...
 
꿈의 내용이 너무 강렬해서인지 자세한 건 기억나지 않네요.
 
뻑뻑한 두 눈을 주무르며 잠을 털어냅니다.
 
그러고보니 그 꿈...
 
시아록: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87
판정결과: 실패
 
꿈 속에서의 광경은,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것 같아요.
 
TV? 잡지? 아니, 아닙니다.
 
비교적 최근에도 이런 일이 있지 않았나요?
 
어쩐지 데자뷰가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이런 꿈을 꾼 게 한두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피곤해서 졸게 된 것도, 꿈자리가 사나워서였었죠.
 
당신이 이마를 짚으며 꿈에 대해 떠올리고 있으면 노아가 옆에서 얘기합니다.
 
노아:요즘 너무 무리하신 거 아니에요?
전쟁도 이제 막바지니까... 조금 더 쉬엄쉬엄 하셔도 괜찮을 거에요.
 
시아록:아냐. 그렇게 무리하는 것도 아니고.. 다들 바쁜 건 마찬가지인데.. 그래도 좀 자니까 낫다. (슬쩍 입꼬리를 올려 보이며 기지개를 켰다. 꿈은 어째 찝찝하지만, 마음속에 담아두기로 한다.)
 
노아:음, 알겠어요. 그래도 갓 입단하셨을 때보단 나아지셨으니 괜찮은 거라고 해야 하나...
그 땐 정말 과로로 같이 병원 신세 지게 되시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오늘은 뭐 하다 오셨어요? 역시 브리니클을 격파하러?
 
아, 그 말에 골렘을 생각하자 가벼운 두통이 번집니다. 지긋지긋한 돌덩어리들…….
 
시아록:그랬나...? (당신이 얘기하는 초반에 관한 건 잘 모르겠다. 그저 계속 마음이 초조했다.)
응. 브리니클 해치우고 왔어. (아까보단 낫다고 하지만, 떠오르는 돌덩이들에 피곤함과 짜증을 담아 뒷목을 주물렀다.)
 
노아:그랬죠. 그 때 이오리씨께 단단히 혼나시고 나서야 정신 차리셨잖아요...
 
시아록:그래도 그정돈 아니었어.. (괜히 민망하다.)
 
노아:요즘엔 브리니클도 이가 빠졌죠? 해변에서 올라오는 것도 얼마 되지도 않고... 이번에 비행선 타고 아예 본거지를 침공해버리면, 정말 다시는 브리니클을 볼 일이 없게 될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좀 힘내세요. (마찬가지로 어디선가 일하다 왔는지 어깨를 쭉 편다)
 
대충 시간을 보내며 숨을 돌리다 보면,
 
이오리:시아록?
 
시아록:네?
 
이오리가 당신을 부릅니다. 드디어, 병문안 시간인가 보네요.
 
이오리:네 차례잖니. 추울 텐데 얼른 들어오렴.
 
시아록:네. (어느새 이렇게 짧아졌나. 대답을 하고 병실로 들어간다.)
 
슈테른의 병문안
 
이오리가 부르는 대로, 몸을 툭툭 털고 병실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우우웅, 큰 소리를 내는 콜드 슬립 기계를 마주합니다.
 
그 안에 떠오른 그리운 얼굴이 당신을 반깁니다.
 
슈테른:......
 
...그게 표정이나 반응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요.
 
슈슈였다면 분명 고생했다며 맞아 주었겠죠.
 
하지만 그의 손발은 차갑게 굳어, 당신을 끌어안아 줄 수 없습니다.
 
기계 안에 꽁꽁 갇혀 있어 나올 수도 없지요.
 
그래도 분명히... ‘살아서’ 이곳에 존재합니다.
 
언제나처럼 유리 너머로 손을 겹치고, 인사를 남길까요.
 
시아록:(기계 안의 잠든 것 같은 너를 빤히 쳐다보았다.) 슈슈.. (이렇게 부른다고 들릴 확률은 한없이 낮지만, 그래도 살아있으니까. 마을과는 상황이 다르니까..) 나, 열심히 하고 올게. 조금만 더 기다려줄래. (평소처럼 유리 너머에 손을, 그리고 이마를 겹치고 너에게만 들리길 바라며 작게 속삭였다.)
 
4년이라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이 병실의 구조만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여느 날과 변함없이 당신과, 잠든 슈슈만을 담고 있습니다.
 
콜드 슬립 기계 안에서는 시간조차 얼어붙은 채입니다.
 
그건 당신 주위의 모든 것이 바뀌어가지만, 슈슈만은 그대로라는 뜻이죠.
 
애석하게도 당신 또한 예외가 되지는 못합니다. 벌써 우리의 나이가 네 살이나 벌어졌다니,
 
24살의 당신을 본 슈슈는 뭐라고 말할까요...
 
다시 깨어나도, 그의 반응마저 전과 같을까요.
 
당신을 보고도 그저 기뻐해줄까요...
 
시아록:(많은 사람들에게 들었다. 그 많은 앞으로의 상황과 변화, 그리고 서로 다르게 흐르는 시간들과 그리고 너와 나의 사이, 그 모든 걸 합해도 나는 그 무엇보다도 네가 깨어난 걸 무엇보다도 기뻐할 터다.)
 
그를 깊은 잠에 빠트린 건 미안했을지언정 후회스럽지는 않습니다.
 
그 끝에 함께할 수 있는 미래가 있다면, 지금 힘든 게 차라리 나을 테니까요.
 
물에 잠긴 건 슈슈지만, 당신 또한 바다에 빠진 듯합니다.
 
그리움과 슬픔, 애틋함, 죄책감, 고마움... 그 모든 게 색색의 산호처럼 자리한 바다 말이에요.
 
그렇게 몇 분을 수몰해 있었을까요? 이오리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의자에 앉습니다.
 
이오리:(차트를 뒤적거리며) 너도 알겠지만, 슈테른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어.
 
그는 손끝으로 겹쳐진 종이의 틈을 벌려 슈테른의 차트를 찾아냅니다.
 
시아록:정말요? (번쩍 고개를 들어 밝은 목소리가 되물었다.)
 
그 위에 그려진 그래프는 슈테른의 건강 상태로,
 
최근 들어 크게 향상되며 유의미한 수치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오리:(자신 있게 끄덕거리고는) 긴가민가했는데, 이제 확실해.
슈테른은 브리니클의 수가 줄어들수록 건강해지고 있어.
봐, 눈에 띄게 괜찮아지기 시작한 시기. 원거리 대포 도입과 맞물려.
 
시아록:다행이네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당신이 보여주는 차트를 살펴봤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과는 다르게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만큼 자신은 많이 자랐다. 이런 도표만 보더라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다음에 본거지만 정리된다면.. (그것으로 끝이길 바라지만, 그저 기대가 실망이 될까 말을 끝맺지 않았다.)
 
이오리:맞아. 어쩌면, 정말 어쩌면 말이지.
이대로 전쟁에서 승리하기만 하면 별다른 해결 방법을 찾을 필요 없이 깨어날 수 있을지도 몰라.
 
시아록:그럼 좋겠어요. (말 속에 간절한 바람을 담은 채로 상대에게는 가볍게 들리도록 이야기했다.)
 
이오리:그리고 이거. (다시 파일을 뒤적여 건강검진표를 한 장 꺼내든다)
네 검진 결과야. 역시 지상에 정상적으로 적응하고 있고,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이네.
체온이 평균보다 낮기는 하지만, 이것도 크게 심각한 수준은 아니야. 저체온증 증상도 나타난 적 없고.
 
시아록:아, 정말요? 그럼 된 거죠. (정말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자신의 건강함은 자신도 느끼니 딱히 그렇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이오리:그래. 분명 좋은 일이 생길 거야.
 
격려하듯 얹는 말의 무게는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이오리:자, 슬슬 병원 문도 닫아야 하니까 이만 가 보렴.
오늘은 숙소에서 잘 거지? (따라나오라는 듯 방을 나서며)
 
시아록:음, 네. ( 슬쩍 콜드캡슐을 바라보고, 이내 당신을 따라 나선다.)
 
병문안이 끝나고 밖으로 나가면, 노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잡지를 뒤적이며 요즘 소식을 찾던 그는 당신이 나오자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노아:아, 시아록. 슈테른 씨는 좀 어떠세요?
 
시아록:이오리 선생님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더라. 다행이지. (당신을 보며 웃다가 잠시 빤히 쳐다봤다. 지금 슈슈랑 나이대가 비슷한가? 제 의사와 상관없이 가끔 이렇게 떠오르는 생각은 걷잡을 수 없지만, 그게 그를 착각하는 건 아니라 그저 고개만 가볍게 흔들고 털어냈다.)
 
노아:정말요? 잘됐네요, 꾸준히 좋아지고 계신 것 같으니... 정말 조금만 있으면 자리도 털고 일어나시겠죠.
(말하다 말고 빤히 쳐다보는 눈에 고개를 기울인다) ...뭐 할 말이라도 있으세요?
 
시아록:으응, 아니야. 아무것도. 근데 노아는 뭐해? 나 기다렸어? (고개를 내젓고, 당신에게 장난을 걸며 물었다.)
 
노아:네? (질문이 새삼스러운지 눈만 깜빡이다가) 당연히 기다렸죠. 저희 아직 바쁘잖아요.
...으음, (얼버부리는 당신을 보며 고개를 숙인다.) 아무튼, 다행이네요.
 
짤막하게 덧붙이는 노아의 얼굴 위로 복잡한 표정이 스쳐 지나갑니다.
 
……착각이겠죠?
 
노아:오늘 사해로 가는 날이잖아요. (손짓으로 밖을 가리킨다)
 
시아록:그냥 장난이었지. (고개를 까딱이고는) 그렇지, 사해 가야지. 너무 바쁘네.
 
아, 벌써 사해로 가는 날이라니 그렇게 됐던가요...
 
정말 하루도 안 바쁜 날이 없는 것 같네요.
 
당신과 노아는 사해에서 캐낸 진주를 팔아 레지스탕스의 자금으로 쓰고 있습니다.
 
생계유지를 위한 자금이기도 하죠.
 
진주가 떨어질 때마다 주기적으로 사해를 찾아갑니다. 오늘처럼요.
 
지금은 저물녘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도시가 워낙 안전해졌고 방금까지 브리니클을 신나게 때려잡고 온 참이라 걱정은 되지 않습니다.
 
노아는 먼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섭니다.
 
노아:얼른 갔다와야 이만 쉬죠. (빠르게 걸음을 앞장선다)
 
당신 또한 그 뒤를 따르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말간 하늘 위로 달은 보이지 않습니다.
 
터무니없는 꿈일 뿐이지만, 어쩐지... 자꾸 신경 쓰입니다.
 
노아:...? 무슨 일 있어요?
 
덩달아 하늘을 향해 머리를 치켜든 노아는 당신에게 묻습니다.
 
시아록:아, 아냐. 그냥... 해가 저무네, 하고. 별일 아냐. (굳이 꿈이야기를 해가며 사람들을 걱정시킬 필요는 없다.) 우리 얼른 사해나 다녀오자.
 
노아:...별 일이 아닌 게 아닌 것 같은 표정이니까 그렇죠.
마침 가는 길이니까 신경쓰지 말고 얘기해보세요. 브리니클 때문은 아니죠?
 
시아록:에, 정말 별거 아닌데. (굳이 널 걱정시켜야 할까. 고민하다가 재촉하는 표정에 한숨을 쉬었다. 그 얼굴로 그러면 못이기는 게 당연하잖아.)
조금 이상한 꿈을 꿨거든. 고작 꿈이니까 그렇게 큰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꿈에 달이, 뭐라고 해야하지? 음... 그래, 알이 깨지는 것처럼 균열이 가는 걸 봤거든. 그래서 괜히 신경 쓰이는데, 아직 달 뜨지도 않았고.. (머슥하게 뒷목을 매만진다.)
 
노아:달에 균열이 갔다고요...? (고작 꿈 얘기를 덩달아 진지하게 고민하더니)
음... 지금까지 달에 무슨 일이 생겨서 멸망한 적은 없으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꿈은 반대라고도 했고...
그나저나 달이 부서지면 파도도 안 치게 되려나... ...아, 그건 안 되는데.
 
시아록:그냥 내 꿈이니까 진짜 그런 거 아닐 거라고 생각하니까 너도 너무 크게 신경쓰지마. 엄청 멀리 있으니까 부서진다고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당신의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었다.)
안 부서질 거니까 파도가 없어지는 일도 없을 겁니다. 자, 사해로 갑시다.
 
노아:(심각해지다 말고 고민을 깨는 소리에 걸음을 마저 재촉한다) 아, 알겠어요. 같이 가요!
 
사해의 진주
 
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사해에 도달하는 것도 금방입니다.
 
두 사람은 한걸음마다 버석버석 소리를 내며 사해의 해변을 걷습니다.
 
아름다운 황색 모래와 옥색 물, 죽음의 바다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풍경입니다.
 
심해와 연결된 통로이기 때문일까요?
 
무시무시한 심해어나 인간을 잡아먹는 물고기 등, 처음 보는 생명체가 나타나자
 
지상 사람들은 이곳을 두려워하며 가까이 오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신에겐 별로 무서운 일도 아닙니다만……
 
이상한 일이 있긴 했습니다.
 
새로운 시체가 올라오긴커녕,
 
다소 무섭던 사냥꾼과 꽃소금을 쥐여주던 장로님, 말이 많던 박물관장,
 
이웃집의 아저씨와 앞집의 아주머니까지.
 
이곳에 도착한 날 보았던 그들조차 없어졌습니다.
 
고르게 묻어주어, 미약하게라도 다시 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랐었는데...
 
정말 모래에 잡아먹히기라도 한 것처럼, 한 사람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파헤쳐봐도 진주만 나올 뿐입니다.
 
……물론 파도의 계단에 버려지는 시체가 없다는 건 희소식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왠지, 내키지 않습니다.
 
죽은 이들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
 
혹시나, 파도에 떠밀려 바다로 돌아간 걸까요?
 
왜 새로운 시체는 도착하지 않는 걸까요?
 
뭍으로 떠나온 사이 저주가 끝난 걸까요?
 
아니라면, 시체를 파도의 계단에 뉠 사람도 없이 모두…….
 
안 좋은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고개를 내젓노라면, 시아록, 관찰력 판정.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52
판정결과: 보통 성공
 
해변까지 떠내려온 하얀 조개를 하나 발견합니다.
 
표면이 반질반질하고 동그란 조개껍데기는 달을 연상시킵니다.
 
묵직한 게 분명 진주를 품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힘을 줘서 벌려보아도 열리질 않네요.
 
시아록:노아, 이거 진주 많을 거 같은데. 아무래도 안 열리네. 그냥 부술까? (조개를 들어 흔들며 당신을 불렀다.)
 
노아:안 열린다고요? 한 번 줘 보세요. 제가... (조개를 받아들고 몇 번 끄으으응 소리를 내는가 싶더니)
...음, 안 열리네요. 그래도 진주가 들었다니까, 일단 갖고 있을까요?
 
시아록:안 들어있을 수 있지만, 이 무게면 들어있을 거 같아. 그럼 챙겨가보자. 없으면 뭐, 어쩔 수 없는 거고 먹어도 되고.
이리 줘, 내가 챙겨갈게. (손을 내게 내민다.)
 
노아:시아록이 그렇다면야... 백에 백은 맞으셨으니까요. (내미는 손에 동그란 조개를 쥐여 주고) 알겠어요. 전 저 쪽에서 캐고 있을 테니까, 시아록은 마저 캐고 계세요.
(어깨에 맨 가방을 한 번 고쳐매고 발을 돌린다)
 
시아록:응, 다녀와. (조개를 받아 가방에 챙겨넣고 자신과 떨어져 진주를 주으러 가는 당신을 배웅했다. 당신이 쪼그려 앉아 줍는 걸 확인하고, 자신도 쪼그려 앉아 진주를 캐기 시작했다.)
 
진주는 몇 번이고 캘 수 있습니다.
 
땅을 파려면, 2d6 판정해서 같은 숫자가 나오면 성공합니다.
 
시아록:
rolling 2d6
 
(
1
 
+
6
 
)
 
 
=
7
 
영차, 영차!
 
열심히 파내고 또 파내면 손에 무언가 걸립니다.
 
주워들어 보면 이건... 산호로 만든 머리빗이네요.
 
이 색깔, 도시에서는 도통 볼 수 없는 화려한 발색이에요.
 
자연만이 머금을 수 있는 빛깔이죠. 조금 그립습니다.
 
여하튼, 마저 캐 봅시다.
 
시아록:이런 것도 있네..? (산호로 된 머리빗을 조금 의아하게 보다가 잘 안 부러지게 챙겨넣었다.)
rolling 2d6
 
(
2
 
+
2
 
)
 
 
=
4
 
착, 착, 착!
 
파내다 보면, 손에 작은 진주 하나가 걸려듭니다!
 
흠집이 조금 있긴 해도, 이 정도면 나무랄 데 없는 진주네요.
 
좀 더 캐 보려면 캐봐도 좋습니다.
 
시아록:(캐낸 진주는 당연하게 가방으로 넣었다.)
rolling 2d6
 
(
1
 
+
4
 
)
 
 
=
5
 
오, 진주를 잘 넣고 다시 파헤치자마자 무언가 또 잡힙니다.
 
주워들어 보면, 바위를 깎아 만든 칼입니다.
 
지상에는 훨씬 잘 들고 모양도 다양한 칼이 다양하지만,
 
심해 사람들은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바위칼을 썼었죠.
 
이걸로 생선 손질도 하고, 미역도 자르고, 기타 등등 뭐든지...
 
특히 칼립스 씨는 늘 손에 쥐고 있었죠. 칼립스 씨는 지금쯤 무사할까요?
 
시아록:(돌로 만들어진 칼을 보고 그리움에 잠긴다. 지상에선 이런 건 안쓰지만, 마을 사람들이 생각나는 건 변함없다. 칼립스씨는 강인하니까 괜찮겠지? 병이라는 게 건강하다고 찾아오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라도 생각해야 마음 편하다.)
(결국 돌칼은 버리지 못하고, 주머니에 챙겨 넣고 땅을 더 팠다.)
진주 더 나오면 좋겠는데.
rolling 2d6
 
(
2
 
+
4
 
)
 
 
=
6
 
지상에서도 순조롭게 정착한 당신이고,
 
이 곳에서 안정감을 느낄 때도 많지만...
 
그래도, 변함없는 고향은 역시 바다입니다.
 
이렇게 파도소리를 듣고 있을 때면 더욱 그리움을 떨치기가 힘들어지죠.
 
그래도 곧 돌아갈 수 있을 지도 모르잖아요.
 
바다로 돌아가는 거대한 걸음에 이바지하고자, 당신은 다시금 모래에 손을 집어넣지만...
 
이번에도 올라오는 건 그저 해파리 껍질 뿐이네요.
 
다행히 전류는 흐르지 않지만, 아무래도 전등에 씌우던 것 같습니다.
 
시아록:오늘은 진짜 수확없네. (괜히 고향만 떠오르는 물건들에 투덜거렸다.) 너무 늦으면 그런데.. 진주 좀 나오면 좋겠다.
rolling 2d6
 
(
6
 
+
1
 
)
 
 
=
7
 
...이번에는 튼실한 조개 하나가 걸려듭니다.
 
하지만 벌려보면 진주는 어디가고 속살만 탱글하네요.
 
구워먹으면 맛있긴 하겠어요.
 
시아록:으음.. (손에 들린 조개를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멀리 있는 노아를 부른다.) 노아! 진주 많이 캤어?
 
노아를 불러보면, 돌아오는 답이 없습니다.
 
어라? 일어나서 살펴보면 아예 시야에 보이질 않네요.
 
아주 멀리까지 나간 모양이죠. 저렇게 굳이 멀리까지 갔다는 건,
 
시아록:노아?
 
저 쪽도 아마 한창 허탕치고 있다는 거겠죠...
 
잠시 멍하니 서 있으면.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인간님...!"
 
소리가 들리는 방향은 등 뒤가 아닌, 사해 쪽입니다.
 
가냘픈 목소리는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고 있네요.
 
찾는 사람이라도 있는 걸까요.
 
시아록:인간님...? (당황해서 돌아본다.)
 
돌아보면, 물에 빠진 사람이 보입니다.
 
...아니, 잠깐만요. 물에 빠진 사람이라고요?!
 
이런 곳에 오는 게 우리 말고도 있었던 모양이죠??
 
어쨌든 구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황급히 다가가면...
 
물... 에 빠진 게 맞나? 너무 태연한 얼굴과 마주합니다.
 
아니, 다시 자세히 보니 평범하게 물에 빠진 사람이 아닙니다.
 
바위 위에 올라가 노래하듯 무언가를 부르는 목소리는 영롱하기 그지없고,
 
하반신은 어류의 것인 그 사람은... 인어가 아닐 리 없습니다!
 
당신을 응시하는 인어는 새까맣고 반짝이는 눈을 깜빡입니다.
 
밤하늘이 그대로 담긴 것처럼 아름다운 두 눈입니다.
 
그리고, 또…….
 
시아록:에.. 인어? (당황해서 눈만 깜빡였다. 심해에 살 때도 본 적 없는 거 같은데..)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2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당신은... 이 인어를 본 적이 있습니다.
 
너무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저 이목구비는 분명히...
 
예전에 만난 마녀의 것과 지나치게 닮아 있어요.
 
시아록:(갑자기 생각났다.) 마녀님..?
 
당신이 인어? 하고 불러준다면, 인어는 잠시 수줍어하더니 입을 엽니다.
 
인어:인간님, 이 쪽을 돌아봐주시다니 감사해요!
(그리고는 두 손을 모으고 묻는다.) 상냥한 인간님, 혹시 제 소중한 친구를 보지 못하셨나요?
 
시아록:어, 응. (인간이라고 자기가 불려도 되나 싶지만, 인간이 되는 물약을 먹을 걸 떠올리며 인어에게 다가갔다.)
소중한 친구? 누구..?
 
인어:아, 제 친구는 하얗고 반짝이는 몸체를 갖고 있어요. 아주 단단하지만 속은 여리답니다.
저처럼 낯을 많이 가려서... 모르는 사람 앞에서 절대 입을 열지 않아요. 헤헤. (수줍게 웃는다)
 
……그 설명,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과 노아가 기를 쓰고 열어버리려 했던 조개입니다.
 
시아록:...! (진주가 있을 거라고 챙겼던 조개가 떠오른다. 친구라는데 별 수 있나. 가방을 뒤져 아까의 흰 조개를 꺼낸다.) 이거?
 
인어:아, 아아...! (눈에 띄게 기뻐하며 조개를 받아든다) 틀림없어요! 어딜 갔던 거야, 레베카!
 
시아록:레베카... ( 조개의 이름인가, 작게 중얼거린다.)
 
그는 굉장히 기뻐합니다. ...조개한테 이름도 있나?
 
아무튼, 조개 역시 언제 그랬냐는 듯 벌컥 열리며 뻐끔뻐끔 즐거운 리듬을 탑니다.
 
안에 진주가 하나 들어있네요. 제법 큰 물건입니다.
 
시아록:아까는 그렇게 안 열리더니. (그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중얼거리다가 안의 진주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인어:하하, 레베카도 찾아줘서 정말 고맙대요! (바닷물이 뚝뚝 떨어지는 고운 손으로 조개를 살살 쓸어준다)
지상으로 올라오자마자 인간님을 만날 줄이야, 정말 반가워요!
 
시아록:으응, 그래. 그거 다행이네. (시선이 진주에서 떨어지질 못한다.)
 
인어:(당신이 계속 조개를 쳐다보는 걸 의문을 담아 지켜보다가) 아, 레베카의 진주는 정말 예쁘지 않나요?
 
시아록:응, 내가 본 진주 중에 제일 큰 거 같아.
 
인어:솜씨가 좋아서 금방금방 만든답니다. 제게도 몇 개 선물해 주었어요! (산호 장신구에 매달린 진주를 툭 건들이며)
 
친구를 돌려받아도 인어는 금세 돌아가지 않고 당신의 근처를 배회하며 구경합니다.
 
...뭔가 찾는 거라도 있는 걸까요?
 
시아록:(인어의 장신구를 보고 눈이 동그래졌다. 반짝이는 예쁜 물건엔 어쩔 수가 없다.)
왜 그래? 안 돌아가? 인간이랑 만나는 건 그렇게 좋은 게 아니야.
 
인어:아, 그, 그게...(우물쭈물해선 손으로 머리카락을 빙빙 꼬더니)
인간님, 혹시 저희 어디선가 만난 적 없나요?
 
시아록:어? 어... (마녀님과 같은 얼굴이긴 하지만, 정말 마녀일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와서 잊어먹은 건지, 정말 자신을 모르는 건지. 결국 조금 두루뭉술하게 얘기해보기로 한다.) 나도 어디선가 인어님을 본 거 같은데.. 왜?
 
인어:아, 역시 착각이 아니었나 봐요! 사실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어쩐지 기시감이 들어서...
 
시아록:으응, 근데 뭔가 물어볼 거라도 있어? 아님 찾는 거나.
 
왜 안 가고 있냐는 말에 인어는 고개만 갸웃거립니다. 퍽 순진한 얼굴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 마녀라기엔 다정하고 상냥한 성격이에요.
 
얼굴도 조금 더 앳되고, 눈동자도 반짝거리는걸요.
 
어쩌면 가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어는 전부 이렇게 생겼거나.
 
아무튼 인어는 마냥 즐거운 눈치로 말합니다.
 
인어:아, 또 다른 인간님과 이렇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무척 기뻐서요.
 
인어는 물장구를 치고는 묻지 않아도 재잘재잘 떠듭니다.
 
당신을 평범한 뭍의 인간으로 아는 모양입니다.
 
인어:어릴 적부터 뭍에 올라가 인간이 되고 싶었거든요. 두 다리로 걷는 건 어떤 느낌이에요? 헤엄치는 것과는 전혀 다르겠죠?
 
시아록:으응. 많이 다르지.. (위화감 같은 게, 라고 작게 말하고는) 왜 인간이 되고 싶었는데? (당신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인어:전 어렸을 때부터 쭈욱 인간을 동경했거든요. 파도 너머 지상 세계란 어떤지도 궁금했고요! (마냥 신나서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이야기한다)
그런데, 얼마 전 제 인생을 완전히 바꾼 일이 하나 있었죠.
여느 날처럼 얕은 바닷가에 나와있는데, 한 인간님이 바다에 빠져서 축 늘어져계신 거 아니겠어요!
제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셨을지, 아아, 상상도 하기 싫어요! 가엾은 인간님...
그래서, 그래서 그 분을 구해 편하게 앉혀드렸는데... 얼굴을 본 순간, 첫눈에 반해 버려서...
전 인어라서 인간님께 정체를 밝힐 순 없었어요. 그래도 제가 생각나시는 건지 가끔씩 바다로 나와계신답니다.
 
시아록:어, 그렇구나.
(얌전히 당신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인어:전 먼발치에서 그 분을 늘 지켜보고 있었거든요. (붉어진 고개를 끄덕인다)
부러워요, 나도 인간이었다면... 그분 앞에 당당히 나타날 수 있었을 텐데.
 
시아록:으음, 그렇구나. (인어가 지상에 나오는 일이 좋은 걸까.) 뭐, 가끔 여기 나오는 건 좋지만, 인간 앞에 오늘처럼 섣부르게 나오지마. 큰일날 수도 있으니까.
(지금까지 지상에 살면서 얼마나 많은 인간과 얼마나 다양한 인간들이 있는지 경험했다. 심해 마을과는 다르다. 인간은 누가 어떤 일을 할지 알 수 없다.)
 
인어:앗, 그렇지만... 꼭 한 번이라도 만나보고 싶었는 걸요.
그리고 혹시나 위험해진다면, 재빨리 집으로 돌아가면 못 쫓아올 거에요! 인간에게는 꼬리가 없으니까요. (희미한 달빛에도 찬란하게 반사하는 꼬리를 들어보인다)
그리고 마침 바다에 나오는 것 말고도 할 일이 생겼고요!
 
시아록:지상은 넓고, 바다도 넓어.. 언제 바다까지 돌아올거야? (순진한 인어를 보고 짧게 한숨을 쉬었다.)
할 일은 뭔데?
 
인어:(딱히 시키지 않아도 혼자 떠들 눈치지만, 물어봐 준다면 더욱 화색하며 입을 연다) 바닷 속에는 온갖 게 모여있는데, 그 중에서도 심해의 소용돌이 가운데에 소원을 들어주는 마녀가 산대요.
내내 망설였는데, 오늘 당신을 만나고 깨달았어요.
저는, 정말로 인간이 좋아요! 더는 미루지 않을래요!
 
인어는 당장이라도 마녀를 찾아갈 것처럼 들뜬 채, 당신을 올려다봅니다.
 
시아록:... (다른 사람이구나. 그렇게 인간이 좋은가. 자신도 많은 사람을 만났고, 좋은 사람도 만나봤지만.. 잘 모르겠다. 자신은 슈슈만 괜찮다면 바다로 돌아가고 싶은데.) 음, 그렇구나. 만날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마녀를 만나서 인간이 되면 날 찾아오던가. 며칠 뒤 올 건데 그때 되어서 여기로 오던가해. (바다의 사람이라면 역시 드넓은 고향의 사람이니 어쩐지 도와주어야 할 거 같다.)
 
인어:(두 눈이 순수하게 인간을 향한 호의로 반짝인다. 그 맹목적인 감정이 인간을 향한다니 조금 낯설지도 모르겠다) 간절한 마음은 소용돌이도 가를 수 있어요!
네, 제가 만약 인간이 된다면 당장 그 분을 쫓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겠지만, 그 전에 당신에게도 찾아올게요!
제게 또 인간님의 삶을 들려주세요. 저, 사실...
외로움을 잘 타거든요.
 
배시시 웃으며 내뱉는 말은...
 
시아록:음, 지금..?
 
분명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었던 게 아닌가요? 마녀 또한 자신을 찾아와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었습니다.
 
...이상한 느낌이에요. 시아록, 이성 판정.
 
시아록:
SAN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64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신이 혼란하거나 말거나 인어는 신나서 떠듭니다.
 
인어:그럼, 약속해 주시는 거에요? 언젠가 저와 또 만나 주시기로!
 
시아록:으응, 알았어. 만나면 이야기 해줄게. (이상한 기시감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약조를 맺으면, 인어는 목에 걸고 있던 펜던트를 벗어서 당신에게 내밉니다.
 
심해의 조각을 똑 잘라낸 듯 새파란 보석을 녹슨 은이 장식하고 있습니다.
 
지상의 큐빅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대단히 아름답네요.
 
인어:심해의 보석이에요. 영원히 샘솟는 축복이 담긴 수호석이랍니다.
부디 만남의 증표로 받아주세요.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시아록:어, 고마워. 이걸 나한테 줘도 돼? (예뻐서 덩달아 눈이 반짝이지만, 이렇게 귀한 걸 받아도 되나 싶다.)
 
인어:부디 받아주세요! 저랑 약속해주셨잖아요. (보석의 가치 따위는 상관않는 듯 꺄르르 웃고 있다)
 
시아록:으응, 고마워. 그럼 잘 받을게. (당신의 말에 팬던트를 손에 쥐었다.) 꼭 갖고 잇을 테니까, 다음에 만나.
 
약간의 찝찝함도 잠시, 눈부신 보석을 앞에 두면 마다할 생각도 없어집니다.
 
마치 윤슬 한 조각을 그대로 잘라온 듯 눈부신 광채는 눈을 멀게 합니다.
 
욕망에 솔직해지느라 떠오른 민망함을 삼키고 있으면,
 
노아:시아록, 회의 늦…… 헉.
 
반가운 불청객이 모래를 밟으며 나타납니다.
 
그리고 인어를 발견한 듯 헛숨을 들이키네요.
 
지상 인류에게 인어란 동화 속의 인물이니 매우 놀랐겠네요.
 
당신은 몇 번인가 보았습니다만...
 
시아록:아, 노아.. 어디 갔었어? (노아가 놀란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묻는다.)
 
노아:저, 저야 진주 캐고 있었죠...? 그러다가 연락을 받아서...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저 분은 대체 누구... 세요......?
너, 너무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계셔서 당연히 인간인 줄 알고 왔는데......
 
그가 놀라서 인어를 돌아보면, 인어도 아는 체를 합니다.
 
인어:아, 다 나으셨네요!
 
순수하게 감탄해 보이네요.
 
시아록:? 다 나았다? (노아와 인어를 번갈아본다.)
 
시아록: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다 나았다니?
 
그건 마치 노아가 병을 앓았다는 것처럼,
 
이전에 인어와 만난 적이 있었단 것처럼 들립니다.
 
노아는 전혀 모르겠단 얼굴인데도요.
 
그리고 침묵이 찾아옵니다. 셋 모두 의문으로 가득한 얼굴입니다.
 
감탄했던 인어는 눈가를 찌푸리고 자신의 입가를 매만집니다.
 
자신도 스스로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단 표정입니다.
 
인어:……어라, 처음 뵙는 분인데…… 제가 무슨 말을?
여러분이 너무 반가워서 그랬나 봐요. 어딘가 익숙해서…….
 
시아록:음, 그래요? ( 역시 이상하다, 고 생각하지만 긁어부스럼 만들지 않기로 할까..)
 
노아:...네, 네? (태어나서 인어라는 게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몰랐는데...? 설명이 필요하다는 눈으로 인어를 바라본다)
아, 아는 사이에요, 시아록...?
 
시아록:아니, 나도 금방 만났는데.
서로 그냥 낯이 익어서 그럴 뿐이야. (어깨를 으쓱이고는 인어를 쳐다본다.)
이제 돌아가세요, 인어씨. 그렇게 사람들 앞에 모습 보이지 말라니까요..
 
혼란스러워하던 인어는 알겠다는 말과 함께 서둘러 인사를 건네곤 조개와 함께 떠납니다.
 
뭍에 너무 오래 나와 있던 탓에, 비늘이 말라서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라고요.
 
맑은 물 아래로 인어가 멀어지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덧 시간이 훌쩍 넘어가 달까지 휘영청 떠올랐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시아록:시간이 많이 늦었네. 우리 돌아가자. (노아를 쳐다보며 말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한테 인어봤다고 말하지마.
 
노아는 채취한 조개를 가죽 주머니에 담고 매듭을 지은 뒤 가방에 밀어 넣습니다.
 
노아:아, 돌아가야죠... (어딘가 기운 없는 얼굴로 짐을 정리하고는)
......슈테른 씨랑 알던 사이에요?
 
인어가 정말로 만났더라면, 그건 노아가 아니라 슈슈였겠죠.
 
시아록:피곤해? (기운없는 얼굴을 보다가 당신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당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모양입니다.
 
……당신도 노아를 슈테른으로 착각한 경우가 더러 있었으니 말입니다.
 
시아록:잘 모르겠어.
슈슈랑 만나고서는 계속 같이 다녔으니까. 그 전에 만났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글쎄, 내가 기억하는 사람이랑 상당히 닮았지만, 그 사람과는 좀 행동이나 말이 달라서.. 모르겠어.
 
노아는 눈을 내리깔고 있습니다. 당신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무언가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들고 답합니다.
 
노아:...아뇨, 괜찮아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옆에서 물어보면 그제서야 애써 웃어보인다)
그런가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서로 닮은 사람을 봐서 착각한 모양이죠, 그렇죠. ...
 
시아록:왜 그래? 뭔가 문제있는 건 아니지? (뭔가 이상한 반응에 네 얼굴을 들여다본다.)
 
노아는 좀 가라앉은 것처럼 보입니다. 진짜 몸이라도 안 좋은 걸까요.
 
아니, 그만큼 단순한 일이 아님은 당신도 잘 압니다.
 
구태여 눈치를 살피려면 심리학 판정해도 좋습니다.
 
노아:...회의에 늦었다고 연락이 와서 부르러 온 거에요.
전 캐온 진주를 팔고 돌아갈 테니까 먼저 가 계세요.
...조금 오래 걸릴 거에요.
 
시아록:
심리학
기준치: 10/5/2
굴림: 82
판정결과: 실패
음, 그냥 같이 돌아가서 같이 팔자. 파는게 급한 것도 아닌데, 너 혼자 가지말고. (당신의 반응에 영 의아하다.)
 
노아:안 늦었을 테니까 지금이라도 가세요. 그냥 회의도 아니고... 브리니클들의 은신처에 대한 회의잖아요.
거기 당신이 빠져 있으면... 안 되잖아요.
 
노아는 입술을 꾹 물더니, 어울리지 않는 퍽 급한 발걸음으로 자리를 뜹니다.
 
시아록:야! 노아! (이상한 듯 당신을 크게 부르지만, 결국 잡지 못하고 회의실로 급하게 뛰어간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당신은 어렴풋이나마 깨닫습니다. 노아는 지금 불편한 겁니다.
 
자신에게서 사람들이 자신이 아닌 슈테른을 찾는 것이요.
 
여러 이유가 있겠죠.
 
자신이 슈테른의 대타처럼 느껴져서,
 
그토록 닮은 사람이 있다는게 찜찜해서,
 
깨어있는 자신보다 잠든 슈테른을 찾는 이들이 더 많아서…….
 
당신도 그렇지만, 노아도 마음이 편할 틈이 없는 듯 합니다.
 
그나저나, 인어랑 대화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뺏긴 모양이에요.
 
특히나 오늘 회의는 행선지를 정하는 것이라 불참하면 안 된다고 했었는데!!
 
당신은 별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그저 레지스탕스 본부로 뛰어갑니다.
 
하늘 위에 뜬 보름달만이 선명했습니다.
 
 
해안 절벽의 동굴
 
정말 해변에 오래 있긴 했던 모양입니다.
 
가장 빠른 길로 달려왔는데도 회의 시작 시각을 넘겨버렸네요.
 
뒤늦게 회의실로 들어가 봐도,
 
“늦었잖니.”
 
누군가의 타박만이 반겨줄 뿐입니다.
 
아쉽게도 회의는 이미 끝났습니다.
 
그래도 어딘가로 떠나는 듯 짐을 꾸리는 사람들이 보이고,
 
그들의 얼굴빛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걸 보면...
 
드디어 행선지가 정해진 모양이죠.
 
앞서 온 사람들이 당신의 어깨를 두들겨줍니다.
 
대원: 여어, 거 시아록이 왔냐.
뭐 하다 이렇게 늦었대?
 
시아록:아, 진주캐다가 좀 늦었어요. 회의 뭐였어요? 급하게 오긴 했는데.
 
대원1: 드, 드디어 브리니클 놈들을 쓰, 쓸어버리겠다던데...
 
대원2: 뭐, 자세한 건 회의 기록으로도 다 남겨뒀으니까 그거라도 읽어봐. 도움이 될 걸?
 
시아록:그래요? 알겠어요. (사람들에게 손짓으로 인사하고 회의실 안으로 더 들어섰다.) 다 나갔나?
 
회의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사람들은 진즉 떠났거나 각자 출정할 채비를 마친 참입니다.
 
테이블 위에 눈처럼 쌓인 서류 더미 사이로... 회의 기록이 보이네요.
 
시아록:오, 있다 있다. (탁자로 다가가 회의기록을 꺼냈다.)
 
보고서를 꺼내어 읽어보면...

핸드아웃: 회의 기록

 

비행선의 완성까지 하루만을 남기고 있는 지금, 탑재된 브리니클의 추적기가 처음으로 작동됐습니다. 마침내 그들의 본거지를 찾아낸 것입니다.
위치는 총 세 군데로, 각각 해안 절벽의 동굴, 얼음 호수의 동굴, 설원의 동굴입니다. 그 중 도시와 가장 근접한 해안 절벽의 동굴은 대부분의 개체가 파괴된 것으로 확인, 오늘 밤 탐사를 개시합니다.


 
밤... 이라고는 해도 새벽 느즈막히 출발할 예정이라고 나와 있네요.
 
당신이 읽고 있는 걸 보던 대원이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여주네요.
 
대원: 내일 밤에라도 브리니클들이 도시에 밀려올지도 모르잖아? 마침 한 번 쓸어버려서 안전해졌고...
무리하는 감은 있지만, 그래도 이 기회를 틈타 본거지를 샅샅이 뒤지자는 거지.
그래서 오늘 작전에는 체력이나 성적이 좋은 사람만 갈 거야. 나머지는 혹시 모르니 도시 방위를 맡고!
 
시아록:그렇군요. 그럼 다들 어디로 갈지 정해진 건 아니네요. (상세한 설명에 보고서에서 눈을 떼고 상대를 바라봤다.)
 
대원: 행선지나 파견 나가는 대원들이야 벌써 다 정해졌지.
으이구, 당사자가 돼서는 어디로 가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있으면 어떡해? 그러게 회의에 참가했었어야지.
 
시아록:바빴단 말이에요. 갑자기 회의해서 불러놓고..
(투덜거리며 보고서를 테이블에 내려뒀다.)
 
대원: 해안 절벽의 동굴로 간다더라. 그럼 수고해. (상큼하게 웃어주며 엄지를 척 든다)
 
시아록:고마워요.
(따라 엄지를 들었다.)
 
오늘 회의는 특히나 중요하다며, 되도록 모든 대원들의 참여를 장려했습니다.
 
그러니 마주치는 대원마다 잔소리를 늘어놓는 건... 그럴 만할지도요.
 
아무튼, 당신은 소탕 작전에 동원되는 대원 중 일부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다소 피곤한 감이 있지만, 그래도 브리니클과... 슈슈를 생각하면 오던 잠도 도망치듯 달아납니다.
 
그렇잖아요. 혹시나, 만에 하나라도...
 
슈슈와 수중 인류를 치료할 방법이, 은신 중인 브리니클의 석판에 적혀 있다면.
 
대원: 자, 자! 여러분, 뛰지 마시고 질서를 지키세요~
오늘 특식은 닭죽입니다!
 
생각에 잠겨 있으면 저 너머에서 주방장의 목소리와,
 
고소하고 맛있는 냄새가 당신을 쿡쿡 찔러 회의실에서 쫓아냅니다.
 
그래요, 뭘 하든 우선 잘 먹는 게 최우선입니다.
 
식사를 누리고, 오늘 있을 탐사에서도 힘을 내 볼까요?
 
물론 탐사를 원치 않는다면, 당신은 대원들을 배웅나가기만 할 수도 있습니다.
 
시아록:(맛있는 냄새와 닭죽이란 소리에 회의실을 나가 식당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대열에 끼었다.)
(오늘은 오전부터 지금까지 쭉 바쁘기도 했고, 배가 상당히 고프다.)
 
행렬에 끼어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식당에 들어서면...
 
식기의 달그락거리는 소리나 이곳저곳에서 수다를 떠는 소리가 장안을 꽉 채우고 있습니다.
 
레지스탕스에서 가장 생명력 넘치는 공간이라 호언장담할 수 있는 곳이죠.
 
모두가 편안하게 앞으로의 일에 대해 얘기하거나, 각자 안부를 묻거나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눕니다.
 
저 사람들이 도시의 방위를 최전선에서 지키고, 브리니클들의 본거지를 침략하러 간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어쨌든, 오늘의 식사는 바삭한 마늘빵과 에그 스크램블, 단호박 구이가 차례차례 올라옵니다.
 
거기에 특식이라는 닭죽까지 먹음직스럽게 식판에 담기네요.
 
야들야들하고 새하얀 속살은, 당장이라도 입에 넣어달라고 보채는 듯 광택을 자랑합니다.
 
마늘빵은 달달하니 맛있고, 계란은 푹신하고, 단호박 구이는 바삭해요.
 
메뉴가 온통 맛있는 걸로 보아, 주방장이 우리를 위해 힘 좀 쓴 모양입니다.
 
시아록:맛있겠다.. (이 와중에 호화로운 식사다)
 
이래뵈도 곧 목숨을 걸러 나가야 하니까요.
 
모두 말하지는 않지만, 내심 우리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랄 텝니다.
 
시아록:(음식에 집중해 먹으며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이 맴돌았다. 지상에 올라와서 많은 것을 배웠다. 문명과 문화와 지식과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배웠다. 그리고 더불어 전쟁의 끔찍함도 배웠다. 누군가가 죽어나가더라도 하나가 없어지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 것. 살기위해서 한다고 해도 그렇다. 그러나 그 일상 속에서라도 이렇게 다들 웃을 수 있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다시 한 번 시끌벅적한 식당 내부를 보며 저도 모르게 웃음 짓고 말았다. 그래서 한숨처럼 맛있다고 되뇌었다.)
 
브리니클과의 전쟁은, 인류와 브리니클 둘 중 한 명은 침몰해야만 끝이 나는 싸움입니다.
 
특히나 레지스탕스에는, 가진 사람보다 무언가 잃어버린 사람이 태반을 이루죠.
 
하지만 각자의 상처를 딛고, 서로에게 기대어 극복한 끝에...
 
모두가 힘든 현실에도 웃으며 버틸 수 있었고, 이렇게 전쟁의 끝을 보게 되는 순간까지 맞을 수 있던 거겠죠.
 
상처를 덕지덕지 달고도 즐겁게 웃는 사람들을 보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의 행복한 미래를 바라보는 그들을 보면...
 
당신도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이 곳 역시, 어느샌가 당신의 또 다른 고향이 되었으니까요.
 
입가에 묻은 마늘빵 부스러기를 털고 우유로 목을 축이면,
 
배가 통통해지는 게 느껴져요. 마음도 같이 채워진 듯 흡족합니다.
 
이 완벽한 식사에서, 하나 신경쓰이는 게 있다면...
 
옆에 늘(까지는 아니어도 제법 자주) 붙어 다니던 노아가 없다는 것 뿐이겠죠.
 
그러고보면 진주를 팔고 오겠다더니... 늦네요.
 
별 수 없죠. 그도 요즘 비행선을 정비하느라 바쁘다고는 했으니...
 
이따 새벽에 출정할 때까지 혼자서나마 시간을 보내야겠습니다.
 
시아록:많이 바쁜가. 밥 챙겨먹어야 하지 않나.. (식판을 갖다 놓으면서 걱정되지만, 노아도 이제 성인이고 간섭하면 싫으려나. 생각하다가 가기 전에 슈슈 만나고 가야지, 나가기 전의 당연한 루틴처럼 자연스레 발걸음이 슈슈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챙겨가야 할 게 있으면 나중에 물어보지, 뭐. )
 
레지스탕스 기지 밖으로 나가면, 밖은 벌써 깜깜나라입니다.
 
저 멀리 아스라한 네온사인 불빛이 물감을 떨어트린 듯 선명하게 빛을 내고,
 
머리 위로는 유독 크고, 유독 선명한 보름달이 구름을 타고 흘러갑니다.
 
곳곳에 있는 가로등만이 발 밑을 구분하게 해 주는 밤.
 
어둠의 장막을 파헤치며, 노아가 알려준 지름길로 곧장 병원으로 향하면...
 
병원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당신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오리가 진작 열쇠를 내놓았거든요.
 
불이 온통 꺼진 병원에는 적막이 내려앉아 있어서...
 
꼭 브리니클에게 삼켜진다면 이럴까 싶기도 할 정도로 어둡습니다.
 
시아록:(옛날 같았으면 이런 적막이나 밤은 무서웠을 텐데. 이미 익숙해져버려서 이런 건 생각보다도 무섭지도 않은 자신이 새삼스럽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슈슈가 있는 방으로 향한다.)
 
병원에 아무도 없다는 건 긍정적인 신호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밤 늦게까지도 응급 환자가 들어오던 병원이 이토록 조용하다는 건,
 
이제 브리니클의 습격으로 위험해지는 사람이 극히 적어졌다는 뜻이니까요.
 
...그러고 보면 이제 지상 세계에서 조심해서 다닐 필요도 없겠어요.
 
처음 올라왔을 때는 특히나 한 번 위기에 빠졌기 때문에 더더욱 조심하고 다녔는데...
 
이제 노아와 가끔 그랬던 것처럼, 슈슈와도 편안한 마음으로 지상 세계를 누빌 수 있겠네요.
 
그런 순간은 분명, 해롭지 않은 단맛으로 가득차 있을 거에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복도의 불을 켜고, 슈슈가 있는 방으로 들어서면.
 
여전히 들판처럼 완만한 바이털 사인을 그으며 잠들어 있는 슈슈가 있습니다.
 
떨어진 지 몇 시간쯤 되었을까 싶은데, 이렇게 보니 또 그립고 반갑네요.
 
시아록:안녕, 슈슈. 오늘은 어땠어? (네가 잠든 캡슐 앞에 코가 닿을 듯 가까이 다가가 작게 말을 걸었다.) 난 아까 너 만나고 진주 주으러 갔었어.
(주변을 두리번 쳐다보고 유리에 이마가 닿은 채로 더욱 작게 속삭였다. 그리고 우리가 바다에서 쓰던 산호빗도, 돌 칼도 주웠고, 또.. 인어도 봤어. 여기 올라와서 진짜 다 오랜만에 보는 거 있지.) 너도 얼른 깨서......, 같이 보면 좋겠다. 그치?
나 조금 있다가 브리니클 본거지에 갈 거야. 그게 없을 수록 네가 건강해진다니까, 좀 더 힘내서 하고 돌아올게. (홀로 조용히 유리 위를 손으로 더듬다가 이내 작게 미소지었다. 그게 아스라하게 느껴진다면 기분 탓일까?)
(그리고 너를 보며 잠시 서성이다가 다시 몸을 돌렸다.) 그럼 금방 다녀올게! (인사는 늘 활기차게 해야하는 것이다. 병실을 나서 기숙사로 돌아가 필요한 물건을 챙기기로 한다.)
 
슈슈에게서는 여전히 일절 돌아오는 반응이 없지만...
 
그렇기에 더욱 그 눈이 뜨이는 것을 보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콜드 슬립 기계는 얼음장처럼 차갑고, 유리는 기대기에는 한없이 딱딱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은 한동안 놓지 못하고 슈슈 대신 기계라도 두 팔로 더듬다가,
 
당신마저 얼음이 되기 전에 겨우 놓아줍니다.
 
물 때문일까요? 수면 아래 그가 어쩐지 흐려져 보입니다.
 
곧 무언가 넘쳐흘러 볼을 적시는 게 느껴져요.
 
미처 그것의 정체를 알아채기도 전에 하품이 잔뜩 나옵니다.
 
아무래도 출발하기 전에, 쪽잠이라도 좀 자 둬야 겠어요.
 
당신은 그 날 슈슈가 했던 부탁대로 잘 자라는 말을 남겨두고,
 
그 죽음과도 닮은 적막 안에 슈슈를 두고 나옵니다.
 
레지스탕스까지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기면, 배식은 막바지인지 식판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리고
 
광장에는 무언가 지시를 내리고 있는 대장이 보입니다.
 
저 한켠에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숙소도 있고요.
 
시아록:(너무 피곤하긴 하지만, 궁금한 걸 참을 수 없는 건 여전해서 피곤한 다리를 질질 끌고 대장에게 다가갔다.) 대장, 뭐해요? 나도 할 일 같은 게 있어요?
 
유진:...그 쪽 억지도 적당히 받아주는 게... 아, 오셨습니까.
 
시아록:(억지? 언뜻 들은 단어로 고개를 갸웃했지만, 얌전히 유진을 쳐다보았다.)
 
유진:(안전지대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는지 불편한 표정을 펴고 맞아준다. 그를 제법 오래 본 당신이라면 그게 유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환대라는 걸 알 것이다)
안전지대 쪽 투자자들과 씨름하던 중이었습니다.
안전지대 바깥이 살 만 해졌다면, 이제 돈 없는 어중이떠중이들은 좀 내보내도 괜찮지 않냐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해 오고 있어서...
 
시아록:하? (가만 듣고 있다가 벌컥 화가 났다.) 당연히 말도 안 되죠. 브리니클이 다 치워진 것도 아니고, 밖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는지도 모르는데 지금 사람들을 내보내자고요? 제정신이래요? (브리니클 한 번 제대로 해치워본 적 없는 사람들이 감히 어떻게 거기에 대고 왈가왈부 할 수 있나.)
 
유진:우리 쪽에서는 당연히 끝의 끝까지 거절할 거지만...
아마 안전지대 안쪽 구역을 자기들끼리 독차지하고, 마음껏 부를 축적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피곤한 낯으로 팔에 낀 주머니를 풀고는) 바로 오늘 새벽에 있을 작전에 대해서는 들으셨습니까?
 
시아록:..말도 안 되는 말이네요.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저들만 배부르는 게 무슨 좋은 일이란 말인가.) 대장이 고생 많네요. 진주 즙느라 회의에 늦어서.. 그래도 해안 절벽으로 제가 가는 건 알고 있어요. 뭔가 더 자세히 알아야 할 게 있으면...
 
유진:저는 이 도시가 더 안전해진다면 만족합니다. 허나... 투자자들 또한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으니, 대응책을 찾아야 할 시점일 테죠.
브리니클과의 전쟁이 끝나면 장벽을 무너트리는 방안도 준비 중입니다. 신정부 쪽에서는 오히려 환영하는 눈치더군요.
 
시아록:브리니클만 없다면 그것도 좋을 거 같아요. 땅은 넓으니까요.
 
유진:그러고 보니 노아는? (얘기를 들으며 등에 두른 무기를 내려놓는다)
알고 계시면 됐습니다. 충분히 쉬어 두십시오. 당신이라면 잘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아록:전 회의있다고 해서 달려왔고, 노아는 진주를 팔러 간다고 했는데... 그러고보니 저녁 식사 시간때도 못 봤네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노아를 찾아볼까요?
 
유진:괜찮습니다. 특별히 바쁜 일이 생긴 것일 수도 있으니. 노아가 돌아온다면 당신에게도 인사해놓으라고 얘기해두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볼일이 생겼는지 무기고 쪽으로 들어간다. 뒤에도 몇몇 고위 대원들이 따라 들어가는 게 보인다)
 
출전 전에 마지막으로 무기들을 정비하려는 듯합니다.
 
대장이 분주한 모습을 보면, 확실히 우리가 큰일을 하려고 한다는 게 실감이 나네요.
 
시아록:(떠나는 그들을 보다가 기숙사로 발을 돌렸다. 조금이라도 자고 나가는 게 컨디션에 좋겠지.)
 
그건 분명 과감한 시도겠지만, 성공한다면 분명 인류에게 위대한 도약을 쥐여줄 겁니다.
 
당신은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침대로 꾸물꾸물 들어갑니다.
 
아쉽게도 전기장판 같은 건 아직 없지만, 핫팩이나 온찜질용 수건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또 두꺼운 이불과 베개도요. 호화롭고 푹신한 침대는 없다지만,
 
당신에게는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처럼 느껴집니다.
 
늘 침대에 누우면서도, 쉴 수 없었던 나날이었으니까요.
 
온풍기를 틀어두느라 문은 열고 잡니다. 틈새로 환한 빛이 들어와, 벽을 타고 천장에까지 닿습니다.
 
천장에 낀 얼룩무늬가, 어쩐지 달을 떠오르게 합니다.
 
아, 그러고 보면 지금 잠들었다간 또 그 꿈을 꿀까요?
 
하지만 잠을 마다하기엔 당신은 너무 지쳤습니다.
 
이만 쏟아지는 수마를 받아들이고 몸을 맡기기로 해요.
 
...
 
...
 
 
얼마나 눈을 붙였을까요? 찌푸둥한 몸을 깨우며 일어나면 벌써 새벽 공기가 문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옵니다.
 
바깥은 쥐 죽은 듯 조용하고, 간간히 코 고는 소리가 복도에 울립니다.
 
동시에 아득한 저 너머에선 대원들끼리 의논하고, 무기를 챙겨드는 모습이 보이고요.
 
드디어 출전할 시간인 겁니다!
 
각자 무기와 짐을 챙긴 8명의 선발 대원들은 도시를 빠져나가,
 
절벽에 있는 브리니클의 본거지로 향합니다.
 
떨리기도, 두렵기도 하지만 레지스탕스 일원들의 표정에서 공포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또다시 한걸음, 승리에 가까워질 수 있을 테니까.
 
해안 절벽까지는 차를 타고 이동합니다.
 
작은 차에 구겨넣어지고 몸집을 불린 우리들을 보면,
 
꼭 작고 약한 심해어들이 뭉쳐서 거대한 형상을 만들던 게 생각납니다.
 
우리는 작지도 약하지도 않지만요!
 
절벽에 가까워질수록 기온이 낮아집니다.
 
따로 챙겨온 겉옷을 걸치며 창 밖을 살피면, 벌써 해안 절벽이 부쩍 가까워져 있습니다.
 
저 너머로 동굴의 입구가 보입니다. 미지의 세계를 숨기고 있는 듯 하고,
 
또 먹이를 찾아 입을 벌리는 고래같기도 합니다.
 
동굴의 입구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우리는 가슴의 떨림도, 바람도 거스르며 그 안으로 발을 들입니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얼음동굴처럼 뼛속까지 시린 추위가 찾아오겠죠.
 
동굴 안에서는 끝없이 소리가 울리고, 어두워서 서로를 잘 보지 못하게 됩니다.
 
대원: 전원, 대열을 정비한다! 안쪽으로 진입 준비!
무기부터 손에 들고 고개 숙여서 안으로 돌격!
 
하지만 몇 번이고 발을 맞춰 위험을 파헤친 우리잖아요. 뭉치기만 하면 무서울 건 없습니다.
 
앞에 선 대원의 지시에 따라 한 몸처럼 안을 향합니다.
 
시아록:
rolling 1d5
 
(
1
 
)
 
 
=
1
 
동굴의 초입을 밟다 보면, 추위에 어깨가 저절로 움츠러듭니다.
 
어디선가 자꾸만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울립니다.
 
“이건 뭐야, 물이야?”
 
그 사이에서, 누군가 물 웅덩이를 발견합니다.
 
앞서가는 대원의 지시로 우리는 잠시 멈춰서 그것을 살펴봅니다.
 
손전등으로 비춰 보면, 공교롭게도 그건 그냥 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고여있는 액체가 계속해서 꿈틀거리며 불길한 기운을 내뿜고 있거든요.
 
고작해야 물 소리가 이렇게 소름돋을 수 있던 것이었나요? 시아록, 이성 판정.
 
시아록:
SAN Roll
기준치: 70/35/14
굴림: 9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그것은 불길하게 일그러지고 수복하기를 반복합니다. 안에서 당장이라도 무언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형상이에요.
 
불길함에 시아록, 이성 1 감소.
 
누가 보기에도 위험해 보이는 웅덩이죠.
 
그러니 진작에 호기심을 버리고, 걸음이나 마저 재촉했으면 정말 좋으련만...
 
누군가 호기심에 못 이겨 손을 대고 맙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벌써 팔 하나가 다 뒤덮인 동료 한 명이 끌려가기 시작합니다!
 
말도 안 돼요. 정말로 저 웅덩이 안에 빠지기라도 하면...
 
"사, 살려줘!! 누가 좀 구해줘―!!!"
 
당신이라도 구하고자 나선다면, 근력 판정입니다.
 
시아록:
근력
기준치: 75/37/15
굴림: 7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영차! 혼신의 힘을 다해 기운껏 잡아당기면...
 
마침내 웅덩이에서 벗어나는 데에 성공합니다!
 
안도감을 느끼기도 전에, 꾸물거리던 웅덩이는 꾸물꾸물,
 
꾸물꾸물꾸물,
 
꾸물꾸물꾸물꾸물꾸물......
 
시아록:저게 뭐야... (결국 작게 얘기하고 말았다.)
 
기분나쁘게 요동치더니, 곧 동굴 바닥으로 스며들어 완전히 자취를 감춥니다.
 
... ...저기에 삼켜졌더라면, 아마 당신이 구해준 동료 또한...
 
눈앞이 아찔해집니다. 동료는 당신의 손을 붙잡고 몇 번이고 훌쩍입니다.
 
시아록:괜찮으세요...? (훌쩍이는 동료의 등을 몇 번 토닥였다.)
 
대원: 고, 고마워어...... 너, 너 아니었으면 나 정말... 으, 으흑......
꼬, 꼼짝없이 죽는 줄만.......이대로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리지 못하고, 흐흑.
으, 저게 잡아당긴 한쪽 팔이 아직도 얼얼해... 뻣뻣하고 힘이 없어. 왼팔이어서 다행이야...
 
시아록: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조금 추스르고 마음을 진정시켜 보세요. (곁눈질로 꾸물거리는 이상한 걸 확인하면서 그를 확인했다.) 잡아당겨서 그런 거예요? 아니면 저것 자체가 문제 있다고 생각하세요?
 
대원: 으, 응... 진정해볼 테니까...... (심호흡을 몇 번 하고는)
거의 빠질 정도로 잡아당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뻣뻣해질 건 또 뭐람...
아, 그리고 뭘 잘못 삼켰는지 단맛도 나는 것 같아. 아까 먹은 배식에서 단 메뉴가 있었던가? (입맛을 다시며)
 
시아록:단 게 있었따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맛이 남아있는 것도 ... (불안하게 당신을 쳐다본다.) 괜찮은 거 맞죠?
 
대원: 허헛, 너무 겁 먹어서 그랬나 봐... 진정해야지, 나도 참. 굳어서 뭘 하는 거람.
 
대원은 우는 소리를 내는 것도 잠시 척척 걷기 시작합니다.
 
익숙한 증상이라서인지 찝찝하고 불안한 느낌을 떨칠 수 없지만...
 
그래도 당장은 건강해 보여요. 당신도 따라갈까요.
 
시아록:진짜 이상있으면 말하셔야 해요, 돌아가시는 게 더 나을 수 있으니까요. 아니면 차에서 기다리시던가.. (결국 그를 따라가지만, 걱정된다.)
 
동료가 걱정되겠지만, 우선은 살아나가는 것에 집중합시다.
 
그래야 아픈 사람을 치료하든 할 수 있으니까요.
 
다시 길을 따라 걸으면... 1d5 판정합니다.
 
시아록:
rolling 1d5
 
(
4
 
)
 
 
=
4
 
이제 아까처럼 불길한 웅덩이는 사라집니다.
 
대신 해안 동굴이니만큼, 어딘가 아래에서 물이 흐르는지 졸졸거리는 소리와 함꼐,
 
동굴 천장에 물무늬가 일렁이는 게 보여요.
 
단단하고, 촘촘한 그것은 기분 탓인지 그물처럼도 보입니다.
 
그렇게 동굴 벽을 살피고 있으면... 앗, 시야에 무언가 걸립니다.
 
대원: 대장님! 여기 무언가 그려져 있습니다!
 
당신도 덩달아 살펴보면 그림이네요. 벽화...라고 해야 할까요?
 
브리니클들의 손짓발짓에 부서져 그닥 멀쩡한 꼴은 아니지만, 그래도 희미하게는 남아 있습니다.
 
이 깊은 곳까지 누가 들어와서 그린 걸까요.
 
시아록:(조금 멀리서 벽화를 쳐다본다.)
 
동그란 머리와 세모꼴의 길고 단단한 몸통.
 
그래요, 꼭 병정 그림이 벽을 따라 주욱 이어집니다.
 
그것들은 무언가 나르기도 하고, 부수기도 합니다.
 
그렇게 그림들의 행렬을 눈으로 좇다 보면... 이상한 장면을 발견합니다.
 
흰 알 앞에서 딱딱하게 생긴 병정들이 불타는 모습이요.
 
일사불란하게 세워진 병정들은 모두 똑같이 생겼는데,
 
하나같이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들고 있습니다.
 
불길에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기쁘게 여겨 분신하는 것도 같습니다.
 
...무슨 장면을 그린 걸까요? 지켜보고 있으면 머리가 아파집니다.
 
알 수 없는 두통에 시아록, 이성 판정.
 
시아록:
SAN Roll
기준치: 69/34/13
굴림: 3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어지럽고 불길한 벽화지만... 달리 해석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우선은 찜찜한 느낌을 덮어두기로 합니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내쉬면, 어느새 물그림자는 사라져 있습니다.
 
유일한 광원인 손전등 불빛도 오늘따라 희미하고,
 
이제 벽화의 모습은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네요.
 
...마저 걸을까요.
 
시아록:...계속 사라지지 않나.. (아까전의 물웅덩이고, 그림자도.. 입술만 꾹 말아물며 걸어가기 시작한다.)
 
벽화를 뒤로하고 다시 걷자면, 1d5 판정합니다.
 
시아록:
rolling 1d5
 
(
1
 
)
 
 
=
1
 
 
재판정 부탁드립니다!
 
시아록:
rolling 1d5
 
(
4
 
)
 
 
=
4
 
맨 끝에 앞장서서 걷던 유진이 발걸음을 멈춥니다.
 
덩달아 행진을 멈춘 레지스탕스 일원들이 그 앞으로 시선을 돌리자……
 
그 끝에는 기동을 멈춘 브리니클 더미들이 늘어져 있습니다.
 
동굴 안에 있으니 정말로, 돌덩어리들에 불과해 보이는 것들인데...
 
이것들이 지구의 역사를 몸에 담고 있으며 인류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다니.
 
새삼스럽게 놀라게 됩니다.
 
“당장 태워버리자.”
 
“잘못 태웠다가 동굴 안팎으로 불이 번지면 어떡해?”
 
“연기를 보고 브리니클들이 돌아오기라도 하면.”
 
그것을 본 대원들의 반응은 제각각입니다.
 
어떻게 하죠? 이대로는 쉬이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아요.
 
다들 조심스러워서인지... 목소리가 작습니다.
 
시아록:다가가서 확인해보기도 그렇겠죠.. ( 덩달아 목소리가 작다.)
 
대원1: 맞아, 다가갔다가 괜히 움직이면 어떻게 해.
 
대원2: 머리에 있어야 할 핵이 없잖아, 이 브리니클은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일 거야.
 
대원3: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차라리 모든 부위를 불태워 버리는 게 제일 안전하지 않아?
 
대원4: 그게 오히려 바깥의 무리를 불러들이면 어떡해?
 
대원1: 한 번만 확인해볼까? 이렇게 가만히 있다간 우리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
 
시아록:그치만 한 번쯤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요..
몇 사람만 정하고 가도.. 괜찮지 않나요? 다른 사람들이 엄호해주고.
 
대원2: 음, 좋은 생각이야. 내가 호위해줄 테니 나랑 가자.
 
얼결에 대원에 손에 이끌려 가까이 다가가면...
 
뚜벅, 뚜벅, 발걸음 소리가 심장소리만큼 크게 울리고.
 
차갑디차가운 돌덩어리들 앞에, 당신과 대원 한 명이 다가서는 찰나――
 
쾅―!!
 
멀리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립니다.
 
설마, 정말로 다른 브리니클들이 있던 걸까요?
 
동굴 안의 분위기는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얼어붙습니다.
 
대장, 유진이 바깥을 살펴보겠다며 먼저 나갑니다. 이 대원들 중 그만큼 유능하고 빠른 사람도 없으니까요.
 
시아록:... 대장이 올 떄까지 기다리는 게 낫겠죠.. (그 자리에 굳어 선 채, 유진이 나간 방향을 바라봤다.)
 
대원2: ...이 골렘들, 예상대로 전혀 움직이지 않아.
 
시아록:(목소리에 움찔 놀랐다가 브리니클을 돌아보았다.)
 
대원2: 하아, 더 자극한답시고 불을 붙이면 더 큰 화를 부르겠지? 불태우는 것 말고 달리 쓸모는 없으려나? (한숨 쉬며 말한다.)
 
시아록:가져가서 확인해보는 건 힘들겠...죠?
 
대원2: 글쎄, 저렇게 무거운데... 들고 갈 수 있겠어? (고개를 으쓱인다)
 
시아록:그건 그렇죠. 아니면 필기구 있으면 그림이나 메모해가도 될 거 같은데...
 
대원2: 석판이라도 해독해 보려고?
 
시아록:그거라도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걸 가지고 갈 수도 없고. 잘하면 다 태워야 하는데..
 
대원2: 난 솔직히 거기에 뭐 그렇게 쓸모있는 정보가 있나 싶지만, 그러고 싶다면야 너 좋을 대로 해.
탁본 재료는 우리 모두 항상 갖고 다니니까. 내 거라도 빌려줄게. (작은 가루와 물병을 내민다. 가루에 물을 붓고 반죽해 본을 뜨는 구조)
 
시아록:네, 제가 할게요. (당신에게서 재료를 받아 주섬주섬 탁본을 만들기 시작했다.)
 
침착하게 골렘 표면의 글자들을 담아가다 보면...
 
우르릉―
 
한 번 더, 동굴 표면이 들썩입니다.
 
이젠 정말로... 한계가 왔다는 느낌이에요.
 
밖에서 대원 몇 명이 당장 나가야 한다며 고함을 칩니다.
 
아, 이제 정말 조금만 있으면 다 뜨는 건데...
 
다급한 마음에 손이 자꾸 떨립니다. 시아록, 손놀림 판정.
 
시아록:
손놀림
기준치: 25/12/5
굴림: 64
판정결과: 실패
 
...!
 
앞에서 실수로 가루를 너무 많이 부은 탓에, 한 뼘 정도를 미처 탁본하지 못합니다.
 
석판 내용 일부분이 잘리면 차라리 해석을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가 나옵니다.
 
어쩔 수 없죠. 이것은 그만 두고 가는 편이 낫겠습니다.
 
시아록:(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급하게 자리를 떴다.)
 
마치 무너진 골렘들이 뒤에서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쩌적, 갈라지고 울리기를 반복하는 동굴을 겨우 빠져나오면...
 
단단하게 굳은 새벽바람이 우리를 맞습니다.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머리 위에 둡니다.
 
숨을 몰아쉬고 있으면, 시아록, 행운 판정.
 
시아록:
기준치: 80/40/16
굴림: 9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우르릉, 콰르륵―
 
번개 치는 소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커다란 소음이 귓가를 파고듭니다.
 
동굴 입구가, 완전히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잔뜩 금이 가서는, 입처럼 쩌억 벌려진 입구를 새하얀 돌조각들이 막아섰습니다.
 
기분 탓일까요? 툭 튀어나온 지형이 어쩐지 금이 간 알처럼 보입니다.
 
대원: 다들 무사하십니까?!
 
목소리는 아까 앞장서서 동굴을 나간 자의 것입니다.
 
놀라기는 해도 다급하지는 않은 어조로 보아, 다행히 별 일은 없었나 보네요.
 
조금만 더 늦장을 부렸다간 꼼짝없이 갇힐 뻔 했지만요...
 
대원은 브리니클이 나온 줄 알고 밖을 순찰했는데 다행히 아무것도 없었다며,
 
대신 주변 지형이 일부 무너졌으니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마저 길을 안내합니다.
 
시아록:어, 근데.. (따라가면서 균열이 간 지형을 몇번이고 바라본다.)
 
유진:모두 주목!
이만 조사를 마치고 레지스탕스 본부로 귀환한다.
동굴 파편에 다치지 않도록 주의하여 차에 타도록!
모두 수고했다. 이것으로 분명 유의미한 조사가 됐으니 편히 쉬도록. 이변이 있다면 꼭 나나 부대장에게 보고하도록 하고.
 
시아록:아.. (앞에 나서는 건 좋아하지 않는데, 한숨을 집어 삼켰다. 말해야 되나? 저게 진짜 알이고, 브리니클이 태어나는 거면...)
대장, 나 할 얘기있는데. 해도 될까..?
 
대장의 지시에 대원들은 저마다 안심한 눈치로, 또는 불안한 눈치로 차에 올라탑니다.
 
발을 떼지 못하는 당신을 유진이 들여다봅니다.
 
유진:무슨 일이 있나? (별 저항 없이 한 쪽 무릎을 숙인다)
 
시아록:응, 별일 아닐지도 모르는데, 저기.. 툭 튀어나온 지형 보여? 금 간 알 같아. (요즘 꿈을 계속 그런 걸 꿔서 신경 쓰이는 걸지도 모르지만..) 아무일 없으면 좋겠지만, 무슨 일이 있으면 늦으니까. 만약 괜찮다면 조사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지 않아요? 뭐, 결정은 대장한테 맡길게요.
 
유진:금이 간 알? (일어서서 무너진 곳을 살핀다)
확실히 그렇게도 보일 순 있지만... 안에 움직이는 브리니클은 없었으니 괜찮을 겁니다.
 
시아록:그렇지. 그냥 괜히 신경쓰여서 얘기해 봤어요. 아무일 없다고 판단한다면 괜찮아.
 
유진:어째서 갑자기 붕괴해버렸는지는 따로 조사대를 꾸릴 예정이었지만, 신경쓰인다면 잠시 정황을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아록:그럼 그냥.. 붕괴 원인 조사 때 같이 조금 조사하는 것정도로 난 좋은데..! 대장이 내리는 판단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유진:이 주변은 원래 지반이 약하고 거기다 몇천 년을 파도와 맞닿아 있었으니, 자연적으로 붕괴한 것에 더 가까울 거다. 그러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 얼마 후에 다시 뵙지. (차에서 등을 돌리고 동굴 쪽을 더 살펴보러 간다)
 
시아록:네. (얌전히 대답하고, 동굴쪽으로 향하는 그를 등 뒤로 두고 차에 올라탔다.)
 
차에 올라타 무너진 동굴 쪽을 다시 보면...
 
지금 와서 보니 그냥 평범하게 무너진 동굴일 뿐입니다.
 
대장이 말한 것도 그렇고... 확실히 꿈이 너무 불길한 탓에, 잠시 착각한 걸까요.
 
당신이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차는 우리를 태우고 멀어집니다.
 
본부에 도착하면, 이번 임무를 마친 대원들은 모두 피곤함을 호소하며 각자의 침실로 돌아갑니다.
 
갑자기 무너져서 불안한 기색을 내비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본거지에 브리니클이 하나도 없다니 정말 안전해졌다며 기뻐하는 사람도 있네요.
 
당신은 그들을 뒤로하고 다시 침대와 포옹하며 잠을 청합니다.
 
여전히 이부자리는 조금 서늘하고, 노아의 몫인 옆 침대는 비어 있습니다.
 
창백하게 뜬 보름달만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며,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눈을 뜹니다.
 
가물가물한 시야를 비집고 햇빛이 쏟아집니다.
 
몸을 일으켜보면 아침을 맞아 밝아진 당신의 기숙사가 눈에 띄어요.
 
오랜만에 푹 잤는지 몸도 개운합니다.
 
오늘은 그 꿈을 꾸지 않은 것 같아요.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다행입니다. 이만 일어날까요?
 
아니면 모처럼의 낮잠을 만끽해도 좋습니다. 얼음 호수의 동굴로 출발하는 건 늦은 오후니까요.
 
시아록:(햇빛이 쏟아지는 창문을 잠이 덜 깬 눈으로 쳐다봤다가 비척거리며 일어났다. 그 꿈을 꾸지 않아서인가 훨씬 기분도 몸상태도 좋다. 그래도 어제의 피곤함은 진득하게 들러붙어서 아직 반쯤 감긴 눈으로 천천히 양치를 하고, 느지막히 세수를 하고, 느릿하게 옷을 갈아입었다.)
(늦은 오후에나 떠날 거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중요한 게 있다. 슈슈에게 아침 인사를 하러 가야지. 머리도 대충 쓸어묶고는 방을 나섰다.)
 
자다 일어나 부숭부숭해진 머리를 쓸고, 여전히 당신이 독차지 중인 2인실을 나서려 하면...
 
문을 벌컥 열자 바로 앞에 인영이 보입니다.
 
노아:시아록?
 
반가운 얼굴입니다. 노아는 당신이 갑자기 나와서 놀랐는지 움찔거렸다가,
 
이내 표정을 가라앉히고 가방을 고쳐맵니다.
 
시아록:어, 노아? 안녕. 잘 잤어? (반사적으로 인사를 건냈다.)
 
노아:...안녕히 주무셨어요? 아직도 숙소에 계실 줄은 몰랐어요.
밖에서 점심 배식 중이에요. 이제 막 시작했으니까... 서두르셔야 따뜻한 음식을 드실 수 있을 걸요.
 
시아록:어, 벌써 점심이야? (아침인 줄 알았는데, 역시 피곤했나. 뒷목을 주무렀다.) 노아는 점심 먹었어?
 
노아:그럼요, 해가 중천인데요... ...어제 새벽까지, 작전에 나갔다 오셨다고 들었어요. 몸은... 괜찮으신 거죠.
전... 바쁜 일이 있어서. (숙소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가방만 풀고 고글만을 목에 매단 후 방 문턱에 발을 댄다)
 
시아록:응, 난 괜찮은데. (대답하다말고 급하게 떠나는 당신을 붙잡았다.)
그렇게 바빠?
 
노아를 좀 더 들여다보면 얼굴이 온통 퀭하고 푸석푸석합니다.
 
대체 새벽 내내 어디서 뭘 하다 온 걸까요?
 
노아:(가만히 당신의 대답을 듣고 있다가, 팔을 붙잡히면 얼굴을 살짝 찡그린다.)
...네, 바빠요. 비행선 시범 운행 중이라서요.
 
시아록:어제도 그래서 저녁에 없었어? 조금 쉬엄쉬엄해도 되지 않아? 너 얼굴에 피곤함이 덕지덕지야..
 
노아:...어제 제가 하던 말을 똑같이 하시네요.
그 때 뭐라고 하셨었죠? 다른 사람들도 바쁜 건 매한가지고, 무엇보다... 아직은 무리하는 것도 아니라고, 하셨던가요.
저도 같아요. (한 쪽 벽에 기대고는 눈가를 꾹꾹 누른다)
 
시아록:나랑은 다르지. 넌 기계 만지는데, 그런 건 정확도가 생명 아냐? 나야 그런 거 잘 못하니까 모르지만.. 그리고 넌 많이 컸지만, 여전히 어리고..
(이런 세계라도, 제 바닷속이 그러했듯 이곳에서도 그러했듯 연장자가 어린 사람을 지키는 건 당연하다.) 넌 좀 쉬어. 점심도 먹었어?
 
노아:(몸을 챙기라는 말에도 고집스럽게 고개만 젓는다.) 적어도 비행선 운행에 문제가 될 정도로 혹사하고 있지는 않으니까... 됐어요.
...오늘 비행선을 띄우기 전에 최종 점검에 들어가요.
 
시아록:그래도 점심 먹고 가. (여즉 잡고 있던 데 팔을 끌었다.)
 
노아:궁금하시면 구경 오셔도 된다고... 오필리아 씨가 그러셨어요.
전 됐어요. 이따... 뵈어요. (단호하게 팔을 내치고 방 밖으로 나가버린다)
 
챙겨주는 사람이 무안하게, 노아는 복도 저편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시아록:(노아가 멀어지는 걸 빤히 보다가 뒷목을 매만졌다. 어제부터 피하고 있는 거 같은데... 작은 한숨을 참았다.)
 
비행선을 살피러 가는 거겠죠. 도와주는 사람이야 많다지만 노아는 거의 유일한 비공정사이기는 하니까요.
 
예전에는 당신이 거절해도 아랑곳 않고 어울려오곤 했는데,
 
저 쪽에서 먼저 피하는 모습이 생소합니다.
 
당신이 고심하거나 말거나 시간은 흘러가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는 점점 작아집니다.
 
이런, 가만히 서 있다간 슈슈의 병문안은 고사하고 점심밥도 못 얻어먹겠어요.
 
시아록:어쩔 수 없지.. (점심을 얼른 먹고, 슈슈에게 가기로 마음먹고 발을 움직였다.)
 
당신은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식당으로 향합니다.
 
오늘 메뉴도 역시 조금은 특별해요.
 
이번에는 식판이 온통 버섯으로 도배가 되어 있거든요!
 
버섯 돼지갈비 구이, 버섯볶음, 양송이 스프, 버섯 카레까지...
 
폭탄이라도 맞은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요전에 피엘 씨가 버섯 인공 재배에 성공했다고 했던가요.
 
양식을 무사히 마치면 레지스탕스에 가장 먼저 보급해주겠다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많이 내놓을 줄은 몰랐죠.
 
하지만 어제와는 다르게 어쩐지 맛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몸은 분명 식당에 앉혔지만 당신의 정신은 외따른 곳에 가 있으니까요.
 
형식적으로 음식을 씹는 과정을 마치면, 당신은 다시금 이오리네 병원으로 향합니다.
 
다시 찾은 병원은 여전히 한가합니다.
 
아직 몰려올 시간대는 아닌가 보죠. 점심시간이기도 하고요.
 
이오리는 자리를 비워 자세한 건강상태를 들을 순 없지만,
 
그래도 슈슈가 있는 방은 잘 열려있어요.
 
병실은 평화롭습니다. 바깥의 분주한 사람들과는 멀어진 공간이라서인지
 
세상의 한구석을 뚝, 떼어놓은 듯 공기가 침체되어 있어요.
 
오늘은 조금 늦은 아침 인사를 건넵시다. 그리고,
 
당신이 줄 수 있는 희망에 대해서도 이야기합시다.
 
시아록:안녕, 슈슈. 난 오늘 되게 늦잠 잤어. 어제 일이 많아서 피곤했나봐. (어제 내가 생각보다 놀랐는지도 모르지만. 동굴이 무너져내렸던 걸 떠올렸지만, 입밖으로 꺼내진 않는다. 굳이 너를 걱정시킬 필요는 없다.) 그래도 꿈도 안 꾸고, 진짜 푹 잤어.
그리고 점심 먹고 오는 길인데.. 진짜 그 말로만 듣던 버섯 재배에 성공했는지, 온갖 게 버섯요리더라. 맛있긴 했지만. (네게 웃으며 얘기했다.) 오늘 오후에는 또 다른 브리니클 본거지에 갈 거야. 어제 간 곳은 깔끔하게 처리되었는데, (아마도, 라는 말을 목으로 넘겼다.) 그걸로 오늘의 너는 한층 더 건강해졌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네가 깨어날 날이 머지 않았겠지?
(잠시 너를 빤히 쳐다보다가 작게 깊은 숨을 내뱉었다.) 네가 깨어나기 전까지 좋은 꿈만 꾸고 있으면 좋겠어. (인사하기 위해 유리 위에 손을 얹었다.) 이제 가서 짐도 챙기고 해야겠어. 그럼 또 다녀올게.
 
당신이 내뱉는 진심은 늘 비슷했어요.
 
좋은 아침이야, 보고 싶었어.
 
아픈 곳은 없지. 내 하루는 이랬어. 내가 보던 풍경을 너도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애정의 언어는 반복되고, 그리움과 기대를 담은 인사는 어제와 드문드문 겹칩니다.
 
아니, 어제뿐만이 아니라 그저께, 혹은 1년, 아니 4년 전 처음으로 잠든 슈슈와 함께 아침을 맞았을 때부터...
 
당신의 언어는 반복되었을지도 몰라요.
 
그것은 희망의 표시입니다. 말은 되풀이되고, 잊혀지지 않은 마음은 올곧게 겹쳐지며,
 
간절한 바람을 애정으로, 신념으로 자라게 합니다.
 
그 사랑은 슈슈를 숨쉬게 하는 동시에,
 
어느새 당신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4년 전의 당신과 달라지지 않은 마음을 계속해서 노래하세요.
 
훗날 그것을 들은 슈슈가 안심할 수 있도록.
 
슈슈를 위해서, 그리고 당신을 위해서.
 
한동안 마음의 궤적을 덧그리며 닿지 않는 손으로 얼굴을 몇 번 매만지고 나면,
 
병원이 조금 소란스러워집니다. 손님이 온 모양이에요.
 
슈슈의 안색이 어제보다는 편안해 보이는 걸 위안 삼아, 오늘 하루를 시작합시다.
 
...
 
다시 레지스탕스 기지로 돌아오면, 시곗바늘은 오후 1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집합 시각은 오후 3시 30분. 얼마간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장내는 한산하지만 각자의 일로 바빠 보입니다. 곧 있을 출전에 대비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또 대장, 유진이 무사히 돌아왔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어제의 동굴 조사가 끝난 모양이에요.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할까요?
 
시아록:아, 대장 돌아왔구나. 어제 일 물어보러 가볼까.
 
대장의 소재지를 물어보면... 아직 회의 중이라는 것 같습니다.
 
대신 동행하던 대원들이 들고 온 보고서는 빌려볼 수 있다고 하네요.
 
시아록:회의, 어쩔 수 없네. 나도 보고서 주세요. (다녀온 사람들에게 부탁한다.)
 
어제 같은 작전을 수행해서인지 친숙한 얼굴들이 웃는 낯으로 보고서를 건넵니다.
 
읽어보면 어제 동굴이 붕괴된 것은 사고이며,
 
원인은 지진과 파도로 인한 주변 지반의 약화 때문이라고 합니다.
 
외부에서 갑작스럽게 충격을 받은 흔적도 있다고 한 걸로 보아,
 
브리니클 한 마리 정도는 근처에 있었을 거라는 분석도 있네요.
 
하지만 그게 동굴을 무너트리거나 사람들을 위협할 만큼의 힘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결국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였다는 뜻이죠.
 
별 일이 아니라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네요.
 
시아록:다행이네요. 이게 끝인 거죠? (보고서를 한 번 더 훑어보고 그들에게 건냈다.)
 
아, 당신이 미처 채집하지 못한 사료들은 일부나마 복구에 성공해, 현재 해석 중이라는 소식도 있습니다.
 
어제의 일에 얕은 미련도 갖고 있었는데... 다행이네요.
 
대원들은 그게 전부이며, 다치지 않은 게 기특하다며 등을 두드려줍니다.
 
이래뵈도 근육질로 덮인 팔이라, 손이 퍽 매서워요!
 
그 밖의 다른 특이사항은 없어 보입니다. 성공적인 수확 덕에 분위기도 좋고요.
 
일부는 정말로 인류가 브리니클과의 전쟁에서 이길 거라는 희망적인 추측을 내놓습니다.
 
시아록:으, 아파요.. ( 괜히 호들갑스럽게 두드려진 등을 매만지려고 노력하며 그들의 희망적인 추측이 어딘가 안도섞인 미소를 지었다.)
 
놀라울 만큼... 할 일이 없네요.
 
보관실에 들려보려고 해도, 지금은 한창 장비 점검 중이라 무기고에 들어가면 방해가 될 겁니다.
 
별로 할 일 없이 시간을 때우고 있으면, 문득 노아의 말이 생각납니다.
 
비행선 제작 담당인 오필리아 씨가, 한 번 구경와도 괜찮다고 했던가?
 
시아록:할 게 없네. 아까 비행선보러 와도 된다고 했으니까 갈까..
 
어떻게 할까요? 당신은 자유의 몸입니다.
 
시아록:(비행선을 보러 가기로 한다. 슈슈와 함께 바다로 돌아가면 그런 건 못 보겠지. 그리고 나중에 내가 알고 있으면 슈슈랑 같이 보면서 설명하기 쉬우니까..)
 
훗날을 위하여, 그리고 스스로의 호기심을 위하여.
 
당신은 비행선을 보러 가기로 합니다.
 
아틀란티카, 완성!
 
본부 뒤편의 공터로 나오면,
 
지금까지는 천막에 둘러싸여 아무에게도 공개되지 않았던...
 
거대한 풍선에 둥둥 매달린 배를 발견합니다.
 
레지스탕스의 최종병기, 비행선이죠.
 
그것은 화려하고 섬세한 금색의 톱니와,
 
구름만큼 새하얀 비행 장치와 날개,
 
그리고 철갑을 두른 듯 늠름하고 단단한 몸체를 자랑합니다.
 
당신보다 훨씬 앞서서 와서는, 그 위세를 먼저 올려다보는 인영이 있습니다.
 
익숙한 뒷모습이죠.
 
시아록:(뭔가 이래저래 말은 들었지만, 거의 제대로 완성된 비행선은 신기하기 그지없어서 멍하게 쳐다보기만 했다.)
 
말로만 듣던 것인데, 이렇게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니 신기합니다.
 
정말 이 거대한 게, 사람도 태우고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걸까요?
 
당신이 반쯤 멍하게 비행선을 구경하고 있으면,
 
누군가 아는 체를 해 옵니다.
 
오필리아: 어어? 이게 누구야~?
 
시아록:아, 오필리아. 구경하러 와도 된다고 해서..
 
오필리아: 시아록이 아니야, 어제 탐사는 잘 하고 온 거야?
이제 정말 완성이지! 내 평생의 역작이 될 거야!
이 녀석 좀 봐, 거대하고 또 근사하지 않니?
 
시아록:어제는 잘 다녀왔어요.
진짜 멋지네요. 이런건 생각도 못 했는데!
(호기심과 신기함에 눈이 반짝반짝하다.)
 
오필리아: 이 녀석의 등에 올라타, 도시를 내려다보는 걸 상상해봐.
다처럼 푸른 바람을 맞으며 쏜살같이 지나가는 광경을 떠나보내겠지!
~~ 누가 뭐래도 갑판은 내 차지야!
 
시아록:나도 같이 갑판에 올라가게 해줘요. (웃으면서 얘기한다.)
그래도 나는 거 빼곤 바다는 못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만요. ( 삐죽, 주머니애서 튀어나온 송곳처럼 바다에 대한 자부심을 이기지 못하고 순식간에 말해버렸다.)
 
오필리아는 자신의 작품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습니다. 진심을 다해 벅차는 마음을 내뱉는 그의 두 눈은 빛나고 있습니다.
 
오필리아: 하하, 너 하는 거 봐서 생각해보지 뭐! (어깨에 턱, 팔을 걸어온다)
아~ 누가 뭐래니. 하지만 하늘만큼 근사한 곳도 없단다, 얘야.
 
시아록:하늘도 근사하긴 하죠. 근데 언제 날아요?
 
오필리아: 바닷속에 이렇게 큰 배는 못 보내잖아. 하지만 하늘에는 얼마든지 이런 멋진 배를 띄울 수 있지!
거기다 물 대신 공기를 가르며 날 수도 있고 말이야!
시범 운행은 이미 마쳤으니, 너희들이 올라타면 안전 장치까지 풀고 정식 운행을 시작할 거야.
마침 딱 좋을 때에 왔네. 아마 이만큼 여유롭게 비행선을 구경하는 건 이제 마지막이겠지? 온 김에 실컷 봐 둬.
 
시아록:(당신의 즐거움 가득한 자부심 섞인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네요. 이제 뜨기 시작하면 이 비행선의 전부를 구석구석 자세히 볼 수는 없을 테니까요. (아직은 전체적으로 눈에 담고 싶어서 그 자리에 서서 비행선을 빤히 보다가 가까이 가기 전 물었다.)
비행선 만드느라 많이 바빴죠? 노아가 엄청 바쁘다고, 아까 점심도 안 먹고 가던데요.
 
오필리아: 아아, 맞아. 온 김에 노아 녀석 좀 데리고 가라. 어제 새벽부터 와서는 괜찮다는대도 죽치고 일만 했다니까?
우리가 일을 너무 많이 시켜서 문제라도 생긴 건가 싶었어, 진짜로.
바쁘기야 바빴지. 그래도 이제 준비는 다 끝났으니까! 다른 대원들한테도 구경 와도 된다고 좀 전해줘.
근데... 정말 귀신같네. 아직 구경 오라고 말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알아채고 이렇게 왔대? (기분이 나쁜 건 아닌지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시아록:역시.. (노아를 떠올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자기 이름이 언급되자 비행선만 꿋꿋하게 올려다보던 노아가 고개를 돌립니다.
 
노아:...
 
시아록:노아가 아까 말해줬어요. 오필리아가 보러 와도 된다고 했다길래.
 
이 쪽을 쳐다보다가, 얼른 다시 모른 척을 하네요.
 
시아록:(그대로 시선을 맞추듯 노아를 쳐다봤지만, 도망가버린 걸 보고 움찔, 미간이 찌푸려졌다.)
노아.
 
오필리아는 바빠서 누구한테 구경 오라고 전할 시간조차 없었다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노아는 분명...
 
노아는 뭔가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사람마냥 눈에 띄게 움찔하더니,
 
노아:...무슨 일이에요?
 
여전히 몸은 돌아보지 않은 채로 이 쪽을 흘겨봅니다.
 
시아록:(그런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오필리아에게 물었다.) 오필리아, 노아 빌려도 돼요? 비행선 설명도 노아한테 듣고 싶은데.
 
오필리아:흐응... 노아야 당장 할 일도 없고 한가하니까, 데려가주면 오히려 고맙지!
자, 자. 쑥스러워하지 말고. (노아의 손에 들려있던 걸레를 얼른 뺏어들고) 빨리 갔다 와.
 
노아:(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뻐끔댔다가 상대방이 너무 막무가내라 포기한다...)
...아, 음.
여...긴 무슨 일로 오, 셨어요? (높낮이 없고 빠른 어조로 중얼거리듯 말하며)
 
시아록:나 비행선 구경하고 싶은데 안내해줘. (이유없이 피하는 건 역시 기분 좋지 않다. 결국 한층 목소리가 낮아지고 말았지만, 위협적이진 않다.)
그리고, 노아가 초대한 거잖아. 사실. ( 작게 속닥이며 그를 쳐다봤다.)
 
노아:(비행선을 구경시켜달라는 말에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당신을 돌아본다)
(그 사실을 다시금 짚어주면 고개를 팍 숙이곤 갑자기 몇 걸음 성큼성큼 앞장선다) ...아, 아직 내부는 단장 중이라 못 보여드려요.
오, 오늘 치 식사도 요리하는 중이고, 비상 식량이나 구호 물품도... ...
 
시아록:응. (너를 따라가며 네 말에 귀기울인다.)
 
노아:...아무튼, 이 비행선은 총 3층으로 나뉘는데,
맨 밑의 지하 1층은 창고, 1층은 로비와 식당, 2층은 숙소...
그리고 3층 옥상은 갑판과 조종석이 있어요.
오늘 오후에 바로 출항한다고 했죠? 얼음 호수의 동굴로 향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시아록:응, 맞아. 그렇게 하기로 했지. (역시 나중엔 둘러볼 시간은 없으니까 주변을 둘러보았다.)
비행선 움직이는데 노아도 같이 가?
 
노아:이 비공정은 단순한 배의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대포같은 무기도 갖추고 있어요.
그래서... 정착하지 않아도 브리니클의 본거지를 바로 공격할 수 있을 거라고 해요.
비행선 덕분에, 이 전쟁도 정말 끝이 날지도 몰라요. (비행선 표면을 손으로 살살 쓸어내린다)
전 오늘 주조종사 역할이에요. 빠질 수야 없죠.
 
노아는 의외로 자부심있게 줄줄 설명을 잇습니다.
 
아니, 이렇게 말할 수 있으면서 지금까지 왜 그렇게 피해다닌 거람?
 
노아:전쟁이 끝나면, 이 세상도 정말 안전해지겠죠? 하루하루 다칠 걱정 없이 생활을 꾸려나갈 수도 있을 거고.
비행선을 타고 이번엔 출정이 아니라 여행을 해 볼 수도 있겠죠. (몸체에 어깨를 기댄다)
 
시아록:(가만히 당신의 이야기를 듣다가 시선을 맞췄다.) 그러게, 나중엔 여행용이 되면 좋겠어. 전쟁은 없는 게 맞으니까.
그런데, 노아. 나 하나 물어도 돼?
 
노아:(이 쪽을 힐끔 쳐다보다가 눈을 돌린다.) ...시아록은 이 전쟁이 끝나면, 레지스탕스 그만둘 거에요?
...아니에요. 대답하지 말아주세요. 알 것 같으니까. (두 눈을 꽉 감고 고개를 젓는다)
 
시아록:뭐야, 노아가 되묻는 거야?
음, 뭘 알 거 같은데?
 
노아:돌아갈 곳이 있잖아요?
(고개를 저어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내고) ...물어볼 건 뭔데요?
 
시아록:그렇지, 돌아갈 장소가 있긴 하지. (잠시 마을을 떠올렸다가 저도 모르게 눈가가 찌푸려졌다. 다들 괜찮겠지. 입밖으로 그 일을 꺼내는 건 무서워서 그냥 입을 다물고 털어냈다.)
응, 뭐.. 대답해줄지는 모르겠지만.. 어제 오늘 계속 피하고 있지? 시선도 맞추면 곧장 피해버리잖아. 나 뭐 잘못했을까?
 
노아:(팔을 모으며 고개를 숙인다. 생각에 잠긴 듯 침묵하고 있다가)
떠나실 때, ...짐은 두고 가실 거잖아요.
그럼 필요없는 것 중에서, 아무거나 하나만 던져주세요. ...뭐든.
 
시아록:... (당신 앞에 쪼그려 앉아서 너를 올려다 보았다. 한참을 도망쳐다니던 당신의 얼굴이 제대로 보인다.) 왜 내가 다 두고 갈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난 욕심 많아서 다 갖고 갈 거야. 하지만, 노아가 원하는 게 있다면 주고 갈게.
그래도 있잖아. 여긴 내 두번째 고향이라 다시 놀러올 수도 있다고.
 
노아:(그 말에 한 번 억눌린 숨을 터트리듯 내쉬고는) 하나 정도는 남기고 갈 수도 있잖아요?
계속 바다로 돌아가고 싶어했잖아요. 거기로 돌아가면 이제 지상 인류가 아니게 될 텐데 어떻게 돌아온다는 거에요...
...슈테른 씨가 깨어나는 것도 이제 금방이니까... 기분이 어떠세요?
 
시아록:글쎄, 내 성격에 하나도 안 두고 갈 거 같은데. (바닷속 집에 버리지 못하고 늘 이리저리 쌓여있던 물건들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원하는 거 꼭 얘기해.
내가 여기까지 올라오지 못한다고 해도 그때 인어씨처럼 만나면 되는 건데, 왜 날 못 오게 하려는 거야? (장난섞어 웃으며 손에 턱을 괴었다.)
......., 다들 사실 말이 많잖아. 깨어나도 시간이 너무 달라져있고, 관계의 변화도 심할 거고 어쩌고 저쩌고.. 그래도 깨어날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냥 기뻐. 다른 감정 아무것도 없이. 그냥, 기뻐.
 
대답을 들으면 침묵합니다.
 
그리고는, 문제가 없는지 좀 더 살펴봐야겠다며 일어서선 비행선 안으로 향합니다.
 
노아:...곧 출항이니까 좀 쉬어두세요. 괜히... 무리하지 말고.
 
노아는 비행선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습니다.
 
비행선의 굴곡을 따라 드리운 그림자가 유난히 어두컴컴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별 수 없이 돌아가려 하면, 여전히 등진 채 묻습니다.
 
노아:아직 모르시죠? 이 비행선의 이름.
비행선 아틀란티카에요.
 
시아록:아틀란티카. 응.
 
바닷속에 있다던 어느 왕국의 이름이라고, 노아는 작게 덧붙이곤 마지막 점검을 시작합니다.
 
아틀란티카, 어딘가 익숙한 울림입니다.
 
하늘을 헤엄칠 녀석에겐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고요.
 
……그러나 말마따나 피곤함이 앙금처럼 남은 탓일까요.
 
대답할 말이 없었던 탓일까요.
 
당신은 대답하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아틀란티카, 출항!
 
그리고 약속했던 3시 30분! 비행선 아틀란티카의 출항 준비가 끝납니다.
 
당신과 노아도 함께, 올라타려는 행렬 앞에 섭니다.
 
유진은 결연한 목소리로 레지스탕스 일원에게 선포합니다.
 
유진:전쟁의 막바지다.
이제 더는 브리니클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 안전한 밤이 올 거야.
 
무거운 목소리입니다. 마치 비행선에 대고 약조하듯이.
 
하늘만큼 커다랗고 결연한 다짐이죠.
 
사람들은 함께 기대감을 안고 비행선을 바라봅니다.
 
거대한 풍선과 선체는 유려한 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화려한 글씨로 새겨진 아틀란티카의 이름이 보입니다.
 
하늘을 바다처럼 유영할, 레지스탕스의 (그리고 오필리아 씨의) 역작입니다.
 
비행선에 오르면 로비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높은 천장과 양쪽으로 펼쳐지는 계단, 벽면에 난 작은 창문들.
 
이리저리 세워진 기둥 사이로 소파나 양탄자가 맵시좋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가 고고히 빛납니다.
 
계단을 오르면 엘리베이터의 문이 보입니다.
 
당신에게도 익숙한 물건이죠.
 
엘리베이터 옆에 붙은 지도를 보면, 내부 구조는 노아가 말한 대로입니다.
 
3층은 갑판과 조종석이, 1층에는 로비와 식당이 있고, 지하에는 창고도 있습니다.
 
아직 이륙 전이니 얼마든지 자유롭게 둘러봐도 괜찮다고 하네요.
 
시아록:창고부터 올라올까. 갑판이 그렇게 멋있다고 했으니까.. ( 오필리아의 말을 떠올리며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당신이 주변을 구경하겠다고 하면, 노아도 자연스럽게 동행합니다.
 
시아록: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84
판정결과: 실패
 
어제의 어두운 안색은 온데간데없습니다.
 
아무래도 기분 나쁜 건 다 풀린 모양이죠.
 
창고로 향하려 하면 두둥실, 비행선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소리 없이 조용하게 부유하는 감각이 매우 이상합니다.
 
지구에서 떨어져 나가, 달로 이끌려 가는 느낌이에요.
 
오오, 부유감이 낯선 몇몇 사람들이 주변을 붙잡곤 합니다.
 
노아 역시 익숙치 않은 듯 의자를 붙잡고 서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겐 익숙한 감각입니다. 물속에선 늘 이런 기분이었거든요.
 
노아:안 무서워요? (눈가를 좁히고 있다, 아랑곳않고 돌아다니는 당신을 보고 눈이 커진다)
 
시아록:응? 어, 하늘로 올라가니까 무서운가? 그치만.. 아직 밖도 잘 안 보이고, 괜찮아!
 
노아:으... 알겠어요. (멀미를 하는지 잠깐 머리를 짚고 서 있다가) 밖이 보이기 전에 얼른 내려가봐요.
 
시아록:음, 잡아줄까? (어지러워하는 거 같아 보이자 손을 내밀었다.)
 
노아:... ... 아뇨, 됐어요. (고개를 팩 돌리고 빨리 내려가기나 하자며 앞서간다)
 
시아록:응, 알았어. ( 결국 두 번 권하지 못한 채 손을 거둬들이고, 너를 따라 내려갔다.)
 
쫓기듯 지하로 내려가면, 창고에는 자질구레한 잡동사니부터 화약까지 다양한 물건이 있습니다.
 
얼음 호수에서 이루어질 첫 발포를 준비하는 레지스탕스 일원들이 분주히 뛰어다닙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방해하지 말라며 훠이훠이 손을 내젓습니다.
 
정신없어 보이는 사람들에 구석으로 슬금슬금 밀려나다 보면,
 
발치에 무언가 툭, 하고 걸립니다.
 
시아록:응, 뭐지? (발치를 내려다봤다.)
 
발 밑을 쳐다보면, 망원경이네요.
 
이걸로 먼 곳에 있는 것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다고 했었죠.
 
주워 볼까요?
 
시아록:(허리를 숙여 주웠다.) 노아, 여기 망원경 있어. 나중에 갑판에서 볼까?
 
노아:(창고에 그득히 쌓인 물건을 신기한 듯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이 쪽으로 몸을 돌리고는) 예상은 했지만, 이 곳에선 몇 달은 족히 먹고살 수 있겠네요.
하긴 사람이 많으니까... (저건 뭐 하는 물건이지, 눈으로 샅샅이 흝다가)
망원경이요? 누가 떨어트렸나 보네요... 우선 들고 가 봐요.
 
시아록:그래, (망원경을 챙겨넣고) 뭔가.. 너무 정신없어서 창고 제대로 보기 힘드네..
 
노아:당장 기지에 도착하는 대로 대포부터 발사해야 하니까, 단단히 준비해두는 거겠죠.
더 살펴볼 건... 없나 봐요.
(까치발을 들고 눈치를 살핀다.)
 
시아록:(까치발을 든 너를 보다가 같이 주변을 살폈다.)
 
좀 더 둘러보면, 더 이상 눈에 띄는 건 없네요.
 
제일 분주한 층이라서인지 찬찬히 살펴볼 마음의 여유를 덩달아 잃어버립니다.
 
이만 1층으로 올라가볼까요?
 
시아록:이제 일층에 올라가자. 뭔가 다른 사람들 방해하기도 그렇네.
 
노아:아, 네. (당신을 따라 계단을 밟는다)
 
1층은 로비와 식당으로 나뉩니다.
 
비행선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이기도 하죠.
 
시아록:식당에 가볼까? 거기 먹을 것 좀 있으면 너, 먹었으면 하는데.
 
노아:아... (식사 얘기를 꺼내면 입술을 꾹 물고 고개를 숙인다) 뭘 그렇게 걱정하세요.
 
시아록:그래도 잘 안 챙겨 먹으니까 걱정하는 거잖아.
 
노아:이 정도로 안 죽어요. 저, 튼튼하고... (궁시렁거리듯 내뱉으며 식당으로 향한다)
 
아직 식사 준비가 덜 됐는지 설익은 음식 냄새만 납니다.
 
식당에서는 주방장이 분주하게 칼을 놀리고 있습니다.
 
통통통, 소리에 맞춰 재료들이 이리저리 갈라지네요.
 
오늘 메뉴는 미트 스튜를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큼직큼직한 고기가 들어간 스튜는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일어요.
 
양은 또 얼마나 많은지 냄비 뚜껑이 채 덮이지도 않습니다.
 
작업대 앞에는 테이블들이 척척 놓여있습니다.
 
모든 테이블에는 냅킨과 반질반질한 포크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이곳저곳 살피다 보면, 어슬렁거리고 있던 우리를 알아챘는지
 
주방장 호버 씨가 테이블 쪽으로 나오네요.
 
호버: 이 비행선이 출항하는 걸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니...
떨리지 않니? 그간 고생했다, 얘들아.
 
그렇게 말하며 무언가 끓이는가 싶더니, 핫초코 두 잔을 내어 줍니다.
 
시아록:아, 감사합니다.
 
색이 진하고, 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여요.
 
노아:가, 감, 감사, 합... 자, 잘 먹을, 게요.
(말을 더듬으며 머그잔을 두 손으로 받아든다)
 
시아록:(노아가 받는 걸 보고 호록, 한입 마셨다.)
아, 맛있다..
 
입에 머금으면, 우선 가득한 초콜릿 향기가 혀를 즐겁게 합니다.
 
이건 아무 데서나 먹을 수 있는 핫초코가 아니죠.
 
너무 달지도 쓰지도 않아서 그야말로 쭉쭉 넘어갑니다.
 
한껏 삼키고 나면 따뜻한 우유에 몸이 데워지는 느낌이에요.
 
노아도 마시다 말고 볼에 머그컵을 대고 있습니다.
 
시아록:진짜 맛있어요. 따뜻하고.. (기분 좋아진 거 같은 노아를 보다가 웃으며 호버에게 말했다.)
 
호버: 고맙구나. 한 잔 더 마시련?
 
당신이 마다하지만 않으면 호버 씨는 남은 우유까지 전부 당신의 컵에 부어줍니다.
 
맛있는 걸 먹으니 벌써부터 힘이 나네요.
 
그리고는 다시금 요리에 집중합니다. 스튜를 태워먹으면 안 된다면서요.
 
기대감을 가지고 다른 곳도 둘러봅시다.
 
시아록:핫초코, 얻어마셔서 다행이네. 나중에 저녁은 꼭 먹어. (웃으며 얘기하고는 로비로 가자고 노아를 이끈다.)
 
당신이 기껏 친절한 말을 건네도 노아는 말이 없습니다.
 
아니, 호의는 호의로 받아들여 주면 어디가 덧나냐고요!
 
기분 나쁘라고 한 말도 아닌데요!
 
아무튼, 로비로 나가면 사람들이 북적입니다.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소파에 딱 달라붙어 있거나 기둥을 부여잡고 있습니다.
 
그새 적응한 사람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트럼프 게임을 즐기고 있네요.
 
시아록:아직도 다들.. ( 그나마 적응한 사람들을 보며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눈에 띄는 사람이 있나 살펴보려면 관찰력 판정합니다.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74
판정결과: 보통 성공
 
하지만 개중에서도 과하게 마음을 놓은 사람이 있는데...
 
바로 레지스탕스의 유명한 주당, 그리드 씨입니다!
 
구석진 곳에서 등을 돌리고 있는데,
 
뭘 하고 있나 했더니 어떻게 숨긴 건지, 포도주를 홀짝이고 있네요.
 
시아록:그리드, 또 술마시면 어떡해요. 이제 본거지로 가는 건데. 대장한테 혼나요. (그보다 위험해지는 게 걱정이지만.)
 
그리드: 어? 큼, 커흑.
거, 그, 뭐냐... 너희는 아무것도 못 본 거다.
트, 특히 주방장님이나 대장님한테는 꼭 비밀로 하고, 알았지?
 
시아록:못 본 척하는 게 문제가 아니거든요. 진짜..
여기까지 와서 술이냐고요. (툴툴대며 술을 뺏었다.)
르기 전에 그만 마셔요.
 
그리드: 어떻게 여기까지 와서 평생의 벗을 내동댕이칠 수 있다는 발이냐!
(술을 뺏기면 조금 서러운 얼굴이 된다...) 크흑, 분하다.
 
시아록:웃기지 마세요. 여기까지 왔으니까 마시지 않는 거라고요. 비행선이나 좀 구경하세요. 더이상 마시면, 진짜 이를 겁니다.
 
그리드: 다음에는 정말로 아무한테도 안 들키게 마실 거니까... 크흠, 큼.
아니, 안 마실게, 안 마신다고! (다급)
 
시아록:진짜죠? 이건 나중에 우리 본부에 내리면 돌려드릴게요.
(포도주를 잘 챙겼다.)
 
그리드: 어, 그렇지. 내가 너한테 어떻게 이기겠니... (아련하게 술병을 한 번 쓰다듬고 쓸쓸하게 다시 등을 돌린다)
 
시아록:비행선도 좀 구경하고 하세요.
 
포도주를 단단히 압수하고 나면, 그리드 씨는 울상을 지으며 무릎에 고개를 박습니다.
 
뭐, 그리드 씨야 항상 저랬으니까요...
 
아무튼 포도주를 뺏어들고 나면, 보라색 술병이네요.
 
대체 술을 저렇게 사랑해서 나중에 뭘 하겠다는 건지...
 
이 술병은 갖고 다니거나 대장님꼐 넘겨야겠습니다.
 
유진이 아마... 갑판에 있겠다고 했었죠?
 
시아록:이제 갑판이랑 조종석 가보면 되겠다.
갑판부터 갈까. 대장 거기있다고 들었는데. (노아를 돌아보았다.)
 
노아:이르실 건 아니죠? 그래도 약속했잖아요. (폐인마냥 널부러져 있는 그리드 씨...에게 시선을 두다가 이 쪽을 돌아본다)
아까 주운 망원경도 써 봐요.
 
시아록:뭐.. 이르진 않을 거야. 포도주 그냥 주웠다고 맡겨야 할지, 내가 챙기고 있어야 할지는 좀 고민이지만..
좋아, 망원경도 써보자.
 
노아:이 배에서 포도주를 몰래 챙겨올 사람이 그리드 씨 말고 더 있겠어요... 차라리 이따 주방에 몰래 넣어둬요. 그럼 주방장님이 요리 재료로라도 쓰실 수 있을 테니까.
(손에 망원경을 들고 3층으로 향한다.)
 
시아록:응, 알았어. 그럴게. (너를 따라 3층으로 간다.)
 
3층, 갑판에 올라가면 거센 바람이 휘몰아칩니다.
 
바람 소리가 힘차게 날갯짓하는 벌레처럼 귓속을 윙윙 울립니다.
 
지상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그저 평화롭기만 했는데,
 
실제로 다다르니 이토록 소란스럽군요.
 
하기야, 뭍도 올라오기 전에는 멸망한 줄 알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죠.
 
난간 위로도 아래로도 끝없이 펼쳐지는 하늘이 보입니다.
 
연신 감탄사를 흘리며 아래를 내려다보려 하면...
 
유진:위험하니 물러서십시오. 난간에 그렇게 기대면 안 됩니다.
 
어느새 걸어오는 유진에게 제재당합니다.
 
시아록:아, 대장.
 
노아:조심할게요. (얼른 물러나며 망원경을 꺼낸다)
이게 있으면 난간에 붙지 않아도 멀리까지 볼 수 있을 거니까 괜찮아요.
그것보다 이 망원경, 혹시 주인이 누군지 아세요? 아까 창고에서 주운 거거든요. (대장에게 망원경을 들어 보여주고)
 
유진:이건... (팔짱을 끼고 망원경을 응시하다가) 아니. 아마 비품일 겁니다.
사용하시고 제자리에 돌려 놓으십시오.
 
시아록:그렇구나. 그럴게요. 노아, 먼저 볼래?
 
노아:네, 잠시만요...(눈가에 망원경을 들여다대고)
 
떠다니는 구름, 푸르른 하늘, 흔들리는 바람.
 
물 속과 전혀 다르지만, 어딘가 비슷한 곳.
 
눈을 감고 숨을 들이켜면 짠 내음 없는 물비린내가 희미하게 느껴집니다.
 
구름도 사실은 물로 만들어진 걸지도 몰라요.
 
주변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노아는 이내 망원경을 쥐고 흔듭니다.
 
달칵, 착, 착, 착! 익숙하게 잡아 빼더니 목이 빠질 기세로 하늘과 땅을 눈에 담습니다.
 
노아:이걸로 보면 저 너머 집에 몇 명이 사는 지도 다 보여요. (다소 과장하며 빨리 보라는 듯 망원경을 쥐어 준다)
 
시아록:응, 고마워. (어쩐지 흥분한 거 같은 너를 보고 웃음을 참으며 망원경을 눈가에 가져갔다.)
 
아닌 척 하지만, 척 보기에도 신난 분위기는 숨기지 못합니다.
 
망원경을 눈에 달면, 확실히 맨눈으로 볼 때보단 훨씬 커다랗고 선명하게 보입니다.
 
비행선을 발견하고 손을 흔드는 사람들의 인영까지 보일 지경이라니까요.
 
모두 아틀란티카의 성공적인 비행을 바라고 있는 거겠죠.
 
손톱만큼 작아진 집집 마을이 꼭 미니어처를 보는 기분입니다.
 
시아록:오.. 신기하다.. ( 작게 중얼거리며 망원경 너머의 훨씬 가까워보이는 물체들을 보다가 눈을 뗐다.) 진짜 갑판 올라와 볼만하네.
 
노아:그러게요... 이렇게 안전지대의 철탑보다도 높은 곳에서, 아래의 풍경을 들여다볼 수 있는 날이 오다니.
 
시아록:그러게.. 이런 건 생각 못 해봤는데..
 
노아:바람이 아주 심하게 부는 게 흠이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광경이에요. 정말 또 다른 바다에서 헤엄치는 느낌이고...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를 한 손으로 잡아 정리했다.)
 
시아록:응, 심한 바람이랑 바꿀 수 없을 정도니까.
(바람에 날리는 머리를 귀찮다는 듯 그냥 넘기고 주변을 바라봤다.)
 
노아:(발 아래 펼쳐지는 낯선 도시를 들여다본다.) 저도 이렇게 아주 멀고 먼 곳까지 나와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멍하게 바람을 맞고 있다가 어느 순간 돌아본다) ...이만 들어갈까요?
 
시아록:지금 멀리 나와있는 거잖아. 이루어진 거지 않아?
( 돌아보는 너와 눈이 마주쳤다.) 응, 이제 조종석 가보자. 네가 조종한다고 했지.
 
노아:(주먹을 꽉 쥐고 고개를 돌린다) 이런 것보단 조금 더 자유로운 형태로... 아무도 절 모르는 곳에서, 다른 건 생각할 여유도 없게...
몸이 멀어지면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마지막 말은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속삭인다.)
 
시아록:응? 그런 게 좋아? 아무도 모르는 곳이나, 네가 처음 가보는 곳이나. 그런 곳은 외롭지 않을까?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결국 네 마지막 말은 바람에 흩날려 듣지 못했다.)
 
노아:...외로워도 괜찮아요. 그런 것쯤이야 몇 년이고 버텼으니까. (머리카락이 심하게 흩날려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네. (성큼성큼 걸어 조종석으로 들어간다)
 
조종석 문을 여는 노아를 보며 당신은 깨닫습니다.
 
노아가 조종해야 하는 비행선인데, 노아는 왜 여기 있죠?
 
비행선에 자동 운항 기능이라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과 교대했다거나?
 
달칵. 조종석의 문은 잠겨 있지 않습니다.
 
문고리를 돌리면 부드럽게 열립니다.
 
철문이 열리면 빼곡한 버튼들이 보입니다.
 
비행선을 떠오르게 하고, 풍선을 부풀게 하고,
 
방향을 바꾸거나 대포를 발포하는 다양한 버튼들이 현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중앙에는 정석적인 조타 핸들도 늠름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요.
 
그리고 조종석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어라?
 
그러고 보면 어제 노아가 운항에 집중해야 하니 말을 걸지 말라고……
 
……설마 하루 사이에 자동 운항 기능을 개발했을 리가 없겠죠.
 
반사적으로 고개가 돌아갑니다.
 
옆자리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종석에 앉아있어야 할, 그러나 그러지 않은.
 
여태 쫓아다니며 종알종알 말을 걸던 노아가 보이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휑합니다.
 
시아록:... 노아?
 
당신이 그를 부른 순간.
 
쿵!
 
커다란 소리와 함께 비행선이 흔들립니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추락이 시작됩니다.
 
시아록:(움찔 몸을 떨며 주변을 잡았다.)
 
땅을 향해 수직으로 떨어지는 비행선 안에서 당신은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앞과 뒤가 바뀌고, 오른쪽과 왼쪽이 돌아가며……
 
위와 아래가 거꾸로 뒤집힙니다.
 
겨우 붙잡은 조타 핸들이나 문고리도 이 재난 앞에선 속수무책입니다.
 
결국엔 당신을 허공으로 내던지고 말아요.
 
조종석 바깥으로 밀려 나와,
 
로비로 떨어지면서, 당신은 깨닫습니다.
 
흘러내리는 양탄자.
 
양쪽으로 펼쳐지는 계단.
 
부서진 날카롭고 투명한 샹들리에 조각.
 
구르고 쏟아지는 트럼프 카드와 포도주병,
 
반질반질한 포크와 찻잔들.
 
당신은, 이 풍경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보았으니까요.

핸드아웃: 심해의 아틀란티스

먼 옛날의 문명이 침몰한 곳, 지상 인류의 유적지입니다. 헤엄치면 지척이지만, 걸어가기엔 제법 거리가 있습니다. 길목에 종종 흉포한 백상아리가 출몰하므로 어른들은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합니다.


 


핸드아웃: 아틀란티카의 정체

그곳에 묻힌 지붕은 지상 인류의 마지막 병기, 아틀란티카였습니다. 침몰한 아틀란티카가 심해의 모래에 파묻힌 겁니다.


 
아뇨, 그렇지 않아요. 거꾸로 처박힌 탓에 그렇게 보였던 거죠.
 
찌그러진 은색 상자와 벽에 나란히 쓰인 숫자가 무엇인지, 이제는 압니다.
 
엘리베이터였어요.
 
틈을 열고 엿본 풍경을 기억하나요? 사람의 유골이 쌓여 있었습니다.
 
저절로 엘리베이터로 시선이 돌아갑니다.
 
아까, 누가 타고 있었더라?
 
유진? 호버 씨? 그것도 아니라면 오필리아 씨?
 
아니, 노아가 내리긴 했던가요?
 
거꾸로 쏟아지는 공기의 압박이 뻐근하게 갈비뼈를 누릅니다.
 
그리고,
 
...
 
헉,
 
커다랗게 숨을 들이쉬며 당신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식은땀이 이마며 손 안에 흥건합니다.
 
아직 새벽 초하루인지 어둑한 창밖으로 네온사인이 희미하게 들이칩니다.
 
또, 악몽입니다.
 
시아록:(벌떡 일어나 주변을 살피고, 아직 해도 뜨지 않았따는 걸 깨닫고,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숨이 너무 가빴다.)
아틀란,티카..
(손가락 틈새로 '그' 비행선의 이름이 새어나왔다.)
 
당신은 반사적으로 양손으로 얼굴을 감쌉니다.
 
아무리 막으려 해도 손틈 사이로 탄식이 흘러넘치고,
 
짙은 한숨이 새어나옵니다.
 
... 반사적으로 옆을 살펴보면, 노아는 없습니다.
 
돌아오지 않은 것 뿐이라는 걸 당신은 알지만...
 
그럼에도 그의 부재를 확인하면 헛숨을 삼키게 됩니다.
 
악몽일 뿐이었는데, 직접 겪은 일인 것처럼 몸이 무거워요.
 
시아록:
SAN Roll
기준치: 69/34/13
굴림: 48
판정결과: 보통 성공
 
하지만 단순히 꿈으로 치부하기엔…
 
몸이 으슬으슬 떨릴 만큼 생생해요.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막연한 불안감. 마치 아무것도 안 보이는 심해 터널을 걷고 있는 것처럼 두렵습니다.
 
시아록:(덮고 있던 이불을 걷고, 맨발로 바닥을 디뎠다. 지금은 신발을 신을 생각도, 아우터를 챙겨야겠따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무작정 확인하기 위해 방을 빠져나왔다.)
 
방을 빠져나와, 당신은 대원들의 안전을 하나하나 손으로 짚으며 확인합니다.
 
호버 씨, 오필리아 씨, 엘나스 씨, 타냐 씨, 유진, 요한 씨,
 
그리고, 그리고...
 
아무리 찾아봐도 노아만은 보이지 않아요.
 
그렇게 무작정 심연을 헤매던 당신은, 문득 스스로가 흙바닥을 밟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아, 알고 있어요. 이 오솔길.
 
슈슈가 있는 병원으로 통하는 곳이잖아요.
 
혼몽한 와중에도, 당신이 마지막으로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던 그 곳.
 
문득 위를 올려다봅니다. 저 너머로 평소와 같은 풍경이 보입니다.
 
휘영청 흰 달이 걸린 밤하늘, 화려하게 반짝이는 네온사인,
 
뾰족뾰족한 탑과 높이 솟은 건물들.
 
멀리서 들리는 폭음까지 여느 날과 전혀 다르지 않은데.
 
……당신은 이제 압니다.
 
진실은 거꾸로 보아야 알 수 있는 법임을.
 
그 풍경을 고스란히 거꾸로 돌리자,
 
비행선과 마찬가지로 당신이 이미 알고 있는 풍경이 드러납니다.
 
구멍이 뚫린 절벽. 글씨가 적힌 절벽과 뼈대만 남은 절벽까지.
 
오래 세월에 풍화된 그 절벽들은,
 
기실 도시의 아파트와 백화점, 철탑과 같은 평범한 건축물이었던 겁니다.
 
……그래요, 그러고 보니 그 지붕에도 그렇게 쓰여있었죠.
 
어쩐지 익숙한 이름이더라니.
 
아뇨, 유진이 틀렸습니다.
 
당신은 먼 과거, 지상 인류에게서 갈라져 나온 뿌리가 아닙니다.
 
그리하여 동시대를 살아가는 수중 인류가 아니라……
 
그들이 멸망한 후에 탄생한 수중 인류인 겁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단 건가요?
 
이들 모두가 이미 죽고 없는 사람이라는 것도, 충분히 충격적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이 모든 게 이미 멸망한 과거라면...
 
당신은 어떻게 이곳에 같이 있는 건데요.
 
시아록:(그 꿈이 너무 생생한 나머지, 이제는 뭐가 제대로 현실인지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기억들을 하나하나 되짚으면서도 그 무엇도 알 수 없었다. 머릿속으로 가능한 추측들이 두서없이 떠올랐으나, 쉽사리 인정하기도, 쉽지 않아서 머릿속은 하나씩 배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믿을 수밖에 없어서...)
(그러나 믿을 수가 없어서...)
 
두 손에 얼굴이 닿습니다.
 
당신도 모르는 새에, 혼란의 결정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려,
 
멸망했다던 과거의 땅에 부서져 흘러내립니다.
 
믿고 싶지 않지만,
 
이제는...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돼요.
 
왜냐하면, 이 지상에는 아직 슈슈가...
 
슈슈를 두고 왔잖아요.
 
...밀려드는 충격적인 진실에 시아록, 이성 판정.
 
시아록:
SAN Roll
기준치: 69/34/13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발걸음은 차분하게, 슈슈에게로 향하는 걸음을 반복합니다.
 
이러고 있으면 이명처럼 울리는 소리가 있습니다.
 
시아록: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34
판정결과: 보통 성공
 
마녀의 속삭임이 들립니다.
 
당신이 가야 하는 곳.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죠.
 
당신은 마녀가 보낸 해류를 타고,
 
마녀가 건넨 나침반을 쫓아 이곳까지 왔습니다.
 
아직 어디에 있을 텐데…….
 
시아록:나침반.. 해독제.. 분명히 잘 챙겨놨는데.. 방에.. (중얼거리며 다시 방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겁이 나서 슈슈를 확인할 수가 없다. 갔을 때 노아처럼 없다면.. 자신은 무너질 것이다.)
 
숙소로 돌아가면, 당신의 짐 안에 그것들이 얌전히 들어 있습니다.
 
인간이 되는 약은 먹고 버렸지만, 나머지 둘은, 손에 잡혀요.
 
한 번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트릴 뻔 했으나, 당신은 반사신경을 이용해 막아냅니다.
 
물건을 쥔 손이 덜덜 떨리는 게 느껴져요.
 
시아록:(덜덜 떨리는 손으로 어떻게든 꽉 부여잡고, 나침반을 들여다봤다.)
 
지상에 도착하자마자 고장나 빙글빙글 제자리를 돌던 바늘은
 
슈테른이 잠든 이후 멈추고 말았습니다.
 
마치 슈슈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것처럼.
 
그 말은 이런 뜻이었을까요?
 
멸망한 현재의 지상이 아니라,
 
문명이 융성히 발달한 과거의 지상으로 가야 한다고?
 
시아록:(나는 지금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나침반을 꽉 쥐고 입가에 가져갔다. 내가 여기 제대로 있는 거 맞아? 여기가 맞아? 슈슈와 마을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여기로 오는 게 맞아? 몇 번이고 작게 중얼거리며 답 없을 질문을 던졌다.)
 
동그랗게 모은 손 안에 샘물처럼 고이고 고이는 감정은, 아무리 토해내도 마르지 않습니다.
 
무심코 한 쪽 무릎이 무너져 땅에 닿습니다.
 
그 바람에 해독제를 떨어트릴 뻔 합니다.
 
시아록:(화들짝 놀라 해독제를 잡았다.)
아아...
(결국 다시 울음이 터져서 바닥에 이마를 붙였다.)
 
흐릿해지는 시야 사이로, 해독제가 든 병에 초점이 잡힙니다.
 
바다로 돌아가기 위한 해독제죠.
 
코르크 마개로 얌전히 잠겨 있습니다.
 
마녀의 경고가 떠오릅니다.
 
그러나, 때란 대체 언제란 말인가요?
 
지금? 아니면 내일?
 
아니면 브리니클과의 전투가 모두 끝난 그날?
 
아니, 이미 지나버린 거라면 어떡하죠?
 
잘못된 시대에 불시착한 기분입니다.
 
뭍에 처음 올랐을 때의 생경함과 비슷해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심해 동굴에 발을 딛는 것과 같고, 거친 북쪽의 해류에 휩쓸리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심장이 자꾸만 조여드는 기분이 들어서...
 
같은 공간을 사는 사람도, 같은 시간을 사는 사람도 하나 없다는 외로움.
 
그토록 구하고자 했던 이들은 모두 이미 죽은 자란 탈력감.
 
한데 섞이니 그것은 그리움의 색이 됩니다.
 
떠오르는 이름은 슈테른의 것입니다.
 
지독한 그리움이에요.
 
……사실 그리움이 아니라 향수병일지도 모르지만.
 
시아록:(나침반과 해독제를 챙겨 일어섰다. 아, 너를 꼭 봐야 할 거 같다. 이제는 두려움이 문제가 아니었다. 여즉 멎지 않은 눈물이 길을 이었다. 아직도 맨발임을 자각하지 못한 채 다시 방을 나와 밖으로, 오솔길로, 그리고 병원으로.)
 
몇 번이고 밟아본 길이잖아요.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헤맬 일은 없습니다.
 
당신은 큰 어려움 없이 병원에 도착합니다.
 
문은 당연하게도 잠겨 있습니다. 이오리가 준 것인데,
 
열쇠가 분명 주머니 어딘가에 있을 텐데.
 
그러고 보면 작고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당신의 맨발이 지독할 정도로 아프다는 것이요.
 
온통 긁히고, 짓눌리고, 찔려선 엉망입니다.
 
이 모습으로 간다면, 네가 걱정할 텐데...
 
하지만, 이런 고통마저 제대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당신을 짓누르는 깊은 슬픔이... 너무나 독해요.
 
손에 열쇠가 잡힙니다. 이젠 나보다 네가 더 병원을 자주 찾는 것 같다며,
 
닥터 테일러가 당신의 손에 선심쓰듯 쥐여준 것이죠.
 
그 이오리마저, '지금'은 멸망한 지상에 휩쓸려 같이 침몰했겠죠.
 
레지스탕스나 건물들, 이런 병원이나 골동품점, 광장. 그 무엇 하나 빠짐 없이
 
브리니클이... 쓸고 갔을 텝니다. 바다로 몰아갔을 겁니다.
 
어쩌면 그래서 비슷한 사람이 자꾸 눈에 띄었던 걸지도 몰라요.
 
이를테면 유진과 베키 씨, 리키 씨와 켈리 씨 같은.
 
물에서 죽은 인간들은 다시 물에서 태어난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멸망에 휩쓸려온 인간들이, 수중 세계에서 다시 태어난 걸지도 모르겠어요.
 
엘리베이터에서 보았던 백골의 허상을 지우며... 당신은 병실의 문을 엽니다.
 
지금 당장, 확인해야만 해요.
 
슈슈가 무사한지, 여전히 잘 있는지.
 
이곳의 사람들과 함께, 브리니클들에게 휩쓸려 가버린 건 아닌지...
 
콜드 슬립 기계에 손이 닿습니다. 손이 맞닿습니다.
 
슈슈는 지금도 눈을 감고 잠들어 있습니다.
 
시아록:아아..
 
닿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분명히... ‘살아서’ 이곳에 존재합니다.
 
시아록:(결국 또 다른 울음이 터졌다. 네가 여기에 있다. 여기에..)
 
얼음장처럼 차가운 콜드 슬립의 온도가, 오늘따라 당신을 끌어안아주는 것만 같습니다.
 
시아록:(차가운 유리 위로 닿은 양손은, 그 온도와 별반 차이가 없어서 어쩐지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약속처럼 이 자리에 있는 슈슈를 보면 눈물을 멈출 수가 없어집니다.
 
그래도 너는, 너만은 무사하구나.
 
살아서 온전히 이 곳에 있구나, 하고요.
 
슈슈가 깨어 있었다면, 이 눈물도 닦아 주었겠죠.
 
무슨 큰일이라도 있냐며 화들짝 놀라서는.
 
그리고 또 도서관에 가거나 동네를 산책하다 필립 씨 같은 어르신께 간식을 받거나 하며,
 
둘만의 추억으로 당신의 우울을 멈춰 주었겠죠.
 
당신은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을 정도로 콜드 슬립 기계에 몸을 붙입니다.
 
늘 보고 싶던 사람이지만, 특히나 오늘 가장 그리운 사람이니까요.
 
몸에 들어간 힘이 풀리면 제일 먼저 고통이 되돌아옵니다.
 
그것은, 당신에게서 무엇보다 귀중한 것을 빼앗기느라 같이 잃어버린 것입니다.
 
목이 메이는 기분에, 당신은... 당신은 눈을 감습니다.
 
슈슈와 같이 그 곁에 누워,
 
수중 세계에서 함께 잠들던 여느 떄처럼.
 
기계에서는 그리웠던 물 소리가 올라옵니다.
 
그래서 당신은, 정말로 집에 돌아왔다고...
 
슈슈를 찾아 돌아왔다고 착각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이미 지나간 날은 또다시 저물고 밝고,
 
어제였던 내일이 지나가면...
 
어제였던 내일
 
오늘은 정말로 아틀란티카의 첫 출항식입니다.
 
...당신이 아직도 이 소식에 기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어젯밤 꿈자리가 뒤숭숭하다 못해, 당신은 잠꼬대를 하다 이오리네 병원까지 맨발로 걸어와 잠들었지만...
 
공중에서 브리니클의 본거지를 격파하고 대승리를 가져올 날이라, 쉽게 미룰 수도 없습니다.
 
레지스탕스의 모두가 이 날을 손꼽아 기다렸는걸요.
 
이른 아침, 쪽잠을 잤는지 눈꺼풀이 무겁습니다.
 
온 몸은 뻐근하고, 머리는 먹구름이 잔뜩 낀 것마냥 멍하고...
 
마침 슈슈 옆에 있지도 못하고 떠나야 하니 더욱 서럽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몸을 잡아누르는 가장 큰 것은
 
몸에 남은 피로 같은 게 아니라, 이 곳이 이미 멸망한 지상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온몸이 젖어드는 듯한 탈력감을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할 수만 있다면 어제 본 것을 모두 못 본 것으로 하고 잊어버리고 싶은데,
 
당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섭니다.
 
당신은 크게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비행선의 결함을 확인하는 일과,
 
보관실에 가서 과거의 기록을 조사하는 것 말이에요.
 
이대로 아틀란티카가 침몰되도록...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나요.
 
시아록:(제 무력함과 한탄이 발목을 잡고 길게 늘어졌다. 일어나 디디는 발바닥은 생각지 못하게 너무 아파서 주저앉아 낑낑거리다가 소독제로 대강 씻어내고 그냥 붕대만 말았다. 곧 시선이 다시 콜드슬립 기기로 향했다. 한없이 서러운 웃음으로 작게 인사했다.)
금방 다녀올게.
(평소보다 훨씬 짧은 인사를 남기고 병실을 나섰다. 꿈에서 한없이 한없이 추락하던 비행선을 떠올렸다. 모든 게 뒤집혀 엉망진창으로 구르던 몸과 어쩐지 토악질 날 거 같던 정신.)
(과연 바꿀 수 있을까. 이 앞의 미래는 제가 경험해오던 모든 것이었는데. 바꿀 수 있을까. 바꿀수 없으면 어떡하지. 밀려오는 공포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해야지. 비행선으로 향했다. 역시 모두 살아돌아오는 것에 집중하자.)
 
엉망이 된 발을 덮은 붕대는 이리저리 뒤틀리고 어지럽게 꼬여 있습니다.
 
당신의 심상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고통에 가깝습니다.
 
호흡을 하는 단순한 행위조차 힘들어지는 순간도 옵니다.
 
그래도 당신은 꾸역꾸역 발을 옮겨, 아틀란티카가 있던 공터로 향합니다.
 
선착장에 찾아가면, 비행선의 제작 담당인 오필리아 씨와 대화 중인 노아가 보입니다.
 
심각한 얼굴로 무언가 대화 중이네요.
 
...사실 비행선에 결함이 있었다거나, 그런 걸까요?
 
시아록:(당신의 심각한 얼굴을 보면서 잠시 저도 모르게, 오늘도 날 피할까? 뜬금없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급하게 머리를 털어내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가까워질 수록 대화가 좀 더 자세히 들려옵니다.
 
마지막 점검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양이에요.
 
인기척을 느낀 두 사람이 동시에 돌아봅니다.
 
오필리아:어어? 이게 누구야~?
시아록이 아니야, 어제 탐사는 잘 하고 온 거야?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익살맞게 웃으며 팔짱을 껴 온다)
 
노아:...아.
 
시아록:(어제, 아니, 꿈과 비슷한 질문들. 무심코 인상을 썼지만, 당신들을 보고 최대한 미소 비슷한 것을 만들어냈다.)
어제는 잘 다녀왔죠.
노아랑 오필리아는 비행선에 매달려있었죠? 좀 어때요? 괜히 처음 탈 거라고 하니까 걱정되서.
 
오필리아:쭉 매달려 있긴 했지~. 그래도 이제 준비는 다 끝났으니까! 진짜 최종 점검만 하면 끝이야. (기지개를 쭉 켠다.)
 
시아록:둘 다 고생했겠네요. 점검할 때 나도 봐도 되요?
 
오필리아:시범 운행은 이미 마쳤으니, 너희들이 올라타면 안전 장치까지 풀고 정식 운행을 시작할 거야.
레지스탕스 전원이 타는 거니까 철저하게 테스트해보고 체크할 거니까 너무 걱정 마. 그런 것보다 비행선에 올라타면 누릴 수 있는 경치를 좀 상상해보라고!
이 녀석의 등에 올라타면, 바다처럼 푸른 바람을 맞으며 쏜살같이 지나가는 광경을 떠나보내겠지!
 
오필리아 씨는 약간 피곤해보이기는 해도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시아록:(또 비슷한 말. 당신의 피곤한 얼굴을 보다가 입을 다물었다.)
 
오필리아:점검하는 걸 보고 싶다고? 너도 내 평생의 역작에 푹 빠진 모양이구나?
 
시아록:아, 네. 그런 거죠.
 
오필리아:아마 이만큼 여유롭게 비행선을 구경하는 건 이제 마지막일 테니까, 온 김에 실컷 봐 둬~.
 
시아록:(제가 본다고 뭘 알겠냐마는, '그 때'처럼 나에게 안내해줄 노아라면 이상을 알아챌 수 있지 않을까.)
 
노아:...(저만치서 이 쪽을 지켜보며 눈을 찌푸리고 있다. 뭐가 거슬리는 건지.)
 
시아록:마지막 점검은 누가 해요, 오필리아?
(노아를 힐끗 확인하며 물었다.)
 
오필리아:제작자인 나랑 노아가 맡을 거야.
안 그래도 노아가 아침부터 급하게 들어와서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점검해보자고 해서. 뭐, 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시아록:그럼 노아랑 같이 다니면서 봐도 될까요? 점검. 노아를 방해하진 않을게요.
 
노아:...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점검하는 걸 보고 싶다니.
 
시아록:그냥, 구경. 안 될까?
 
노아:왜 그런 얼굴이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겁먹으실 필요 없어요. 몇 번이고 확인해봐도 별 이상은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이런 작전에 빠질 수는 없잖아요.
 
시아록:그냥 점검 따라 구경하겠다는 거잖아. 나 조용히 따라다닐 테니까, 응?
(괜히 꿈 얘기를 해가며 모두의 불안을 일으킬 필요는 없으니까, 그런 건 얘기하지 못한다.)
 
노아:편하게 구경하셔도 돼요. 편해 보이는 얼굴이 아니라 덧붙이는 거지.
 
시아록:안에 구경은 떠오르면 할래. 점검이 궁금한 거니까. 나, 그, 기계 같은 건 여전히 잘 모르잖아. 그런 게 보고 싶은 거니까.
(괜히 초조해져서 말이 빨라졌다.)
 
노아:알겠어요. 저랑 오필리아 씨가 꼼꼼히 살펴볼게요.
 
노아는 당신을 피하지는 않지만, 어딘가 결연한 낯으로 부품과 장치를 하나하나 점검하는 걸 보여줍니다.
 
처음 타보는 비행선이라 겁이 나는 건 이해하지만, 인류에게 돌파구가 될 비행선이 분명하니 너무 긴장하지 말라고도 덧붙이네요.
 
하지만 몇 번을 점검해도 결과는 같습니다.
 
모든 부품은 제자리에 있고, 모든 기관은 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눈으로도, 노아의 눈으로도 큰 문제가 없어 보여요.
 
애초에 비행선이 추락한 것도 비행사가 없어서였으니...
 
이번에야말로 노아를 바로 조종실로 보내면 괜찮을지도 몰라요.
 
시아록:억지 부려서 미안해. 그래도 점검하는 거 잘 봤어.
(모든 걸 확인했고, 노아도 '그 때'처럼 붙들지 않으면 괜찮을 거 같다고 생각하면서 왜 불안할까. 꿈은 여전히 눅진하게 달라붙어서 한기를 느끼게 했다.)
 
노아:...시아록.
(잠시 고개를 숙이고 말을 고르다가)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들어가서 좀 쉬세요.
지금 얼굴이 너무 안 좋아요.
곧 있으면 아침 배식도 끝나버릴 테니까 얼른 달려가셔야 해요.
 
노아는 명백히 걱정하는 눈치로 당신을 억지로라도 기지 내로 떠밀어 버립니다.
 
시아록:으응.. 노아도 같이 가자.
(차게 식은 손으로 네 손목을 슬쩍 잡아 당겼다.)
 
대체 지금 당신의 얼굴이 어떻길래 노아가 이럴까요?
 
당신이 같이 가 달라며 손을 잡아오면 노아의 눈이 흔들리더니,
 
노아:
(To GM)rolling 1d2 1. 간다 2. 안 간다
 
(
2
 
)
 
 
=
2
 
이내 고개를 저어 거절합니다. 아직 할 일이 남았다나 봐요.
 
정말 무슨 일이 있냐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되묻기도 합니다.
 
시아록:.... 진짜 같이 가면 안 돼?
(당신의 마지막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한 번 더 재촉했다.)
 
노아:(그 말에 숨을 삼킨다. 정말로 안 되냐고 묻는 두 눈이 일렁이는 것 같아서, 자신의 팔을 마치 동앗줄처럼 붙잡고 있는 게 보여서...)
...이런 모습으로 식당에 나타났다간 뭐 폭탄이라도 맞았냐며 놀림당할 것 같은데... (꾀죄죄한 얼굴을 비비며 결국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 준다)
아니다, 시선 끄는 건 피차 마찬가지겠네요. (당신의 얼굴을 보고, 보란 듯이 한숨을 한 번 쉬어준다)
 
시아록:응?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만 모로 갸웃거렸다.)
 
노아:두 말 하면 입 아프죠. (언뜻 보기에도 10년은 늙은 것 같다는 말을 농조로 던지고는 억지로 웃어 보인다)
오필리아 씨, 저 잠시만 자리 좀 비우고 올게요. 아마 오래 안 걸릴 거에요. (문을 열고 두 발을 식당으로 옮긴다.)
 
시아록:(당신의 말을 듣고도 여전히 이해 못한 얼굴로, 오필리아에게 손을 흔들고선 당신을 따라 식당으로 향했다.)
 
배식 시간도 끝물이라더니 식당 안에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묵묵히 식사를 입에 떠밀어넣을 뿐인 사람도 있는가 하면, 혼자서 넓은 공간을 다 채우는 목소리를 가진 사람도 있네요.
 
다들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야 오늘이 바로 출항하는 날이니까요.
 
이걸로 브리니클과의 싸움에서 새 국면을 맞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침 메뉴는 간단하게 숭늉, 치즈 베이컨 프렌치 토스트, 삶은 계란입니다.
 
구석에 녹차도 한가득 준비되어 있네요.
 
하지만 이런 상황에 식사가 입으로 잘 넘어갈 리가 없습니다.
 
시아록:(아직 멍한 정신으로 빤히 음식을 내려봤다. 갑자기 생각났다. 식사.. 다르지 않아? 착각인가...)
 
어제 먹은 건 점심이었죠. 지금 먹는 건 아침입니다.
 
이따 버섯으로 가득한 메뉴가 차려지리라는 걸... 당신은 서글프게도 알고 있어요.
 
노아:...악몽 꿨어요?
 
당신을 지켜보고 있었는지, 고개를 들면 노아와 눈이 마주칩니다.
 
당신의 평소 식사 습관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게 노아입니다.
 
평소같은 상태가 아니라는 건 한눈에 봐도 모를 수가 없을 겁니다.
 
시아록:(아, 점심이었다.. 아직도 정신이 없는 듯하다. 말을 걸어온 노아에게로 시선이 향했다.)
악몽.. 응... 으음, 아마도?
(그걸 단순하게 악몽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끔찍해서... 그러나..)
그런, 느낌이었던 거 같아. 일어나니까 하나도 기억 안 나더라고.
 
노아:전에 말했던 그 꿈... 꾼 거죠? 내용이 많이 안 좋았어요?
아침부터 옷도 제대로 안 걸치고, 퀭한 얼굴로 나오셔서는.
 
시아록:으음, 그런 건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뭔가 좀 끔찍했어. (얼버무리듯 설핏 웃었다.)
 
노아:단순한 꿈이면, 아침부터 왜 이러시는 건데요. (먹을 생각도 없는지 식기를 도로 내려놓았다. 쨍, 하고 금속끼리 부딪히는 차가운 소리가 당신의 가슴을 찌르는 듯하다)
 
시아록:(당신의 반응에 괜히 기가 죽어 고개가 절로 아래를 향했다.) 으응, 미안. 먹을게.
 
노아:...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그런... 끔찍한 꿈이었어요?
 
시아록:기억 안 날 정도로 끔찍한 꿈.....?이었을 걸.
(그러니까 얘기해줄 수 없다니까..)
 
노아:알겠어요. (여전히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당신을 보곤, 한숨을 쉬며 일어섰다)
전 먹을 생각이 없어서 일어난 거에요. 이제 좀 괜찮아지신 것 같으니까 가 볼게요.
 
시아록:먹고 가지.. (입이 우물거렸다.)
 
노아:...그렇게 세상 다 무너진 얼굴로 비행선에 대해서 걱정하고 계시는데, 주조종사로서 어떻게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있어요.
제가 더 꼼꼼히 점검해볼게요. 새로운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으니까.
(말은 그렇게 해 놓고선 앞에서 쉬이 발을 떼지 못한다)
 
시아록:(여전히 기가 죽은 채로, 토스트를 입가에 가져가 우물거렸다. 호버가 본다면 세상 맛없게 먹는다며 혼낼지도 몰랐다.)
 
노아:무슨 꿈이었는지는 몰라도,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악몽은 정말 악몽에 불과하고,
원래 꿈은 반대라는 일도 있잖아요. 별 일 없을 거에요.
여태껏 비행선을 관리하던 제가 하는 말이잖아요. 좀 믿어주세요. (어깨를 몇 번 두드려주곤 식당을 떠난다)
 
시아록:응.. (결국 식당을 떠나는 당신의 등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당신은 점토처럼 느껴지는 아침 식사를 삼키고, 마지막으로 녹차도 떠 마십니다.
 
오늘 아침에 쓴 메뉴라고는 없었는데, 왜 이렇게 입이 씁쓸한 걸까요.
 
냅킨으로 입을 닦고 다시 밖으로 나오면,
 
여전히 아침부터 활기가 넘치는 레지스탕스 사람들이 보입니다.
 
...당신은 막무가내로라도 보관실에 가서 석판을 뒤져볼 수 있습니다.
 
혹시나 석판에, 이 사태에 대해 뭐라도 적혀 있다면.
 
그런 희망에 매달려서 말이에요.
 
시아록:(아마도 비행선으로 브리니클을 전부 토벌할 생각에 신이 난 듯한 사람들을 보면서 급격하게 우울해졌다. 그저 사고로 사망한 사람들.. 이를 악물고, 그 활기에서 벗어났다. 멍청하게 함께 들뜨지 말고, 바꿀 방법을 얼른 찾아. 자신을 닦아세우며 석판과 과거의 기록을 확인하러 움직였다.)
 
당신은 레지스탕스 사람의 먹구름은 모두 짊어진 얼굴로 보관실로 향합니다.
 
무기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비밀 통로는 이제 익숙하게 열고 닫을 수 있습니다.
 
몇 번을 오간 곳인데요. 손톱이 닳을 기세로 열고 닫은 문입니다.
 
석판을 조사하며, 레지스탕스는 과거의 지상 인류가 아주 융성한 문명을 이루었단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의 과학과 역사, 기술을 연구하며 브리니클과의 전투에서도 점차 승기를 잡고 있죠.
 
그러나 그토록 대단했던 지상 인류가 왜, 어째서, 어떻게 멸망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브리니클이 어디서 무엇을 위해 등장했는지도요.
 
……정말 이 순간이 과거라면, 역사에서 힌트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레지스탕스 본부의 보관소로 내려가면,
 
석판을 정리하던 켈러 씨가 반갑게 당신을 맞습니다.
 
켈러: 어, 왔어요?
오늘도 따끈따끈한 석판이 많이 들어왔어요. 어제 토벌이 성공적이었다면서요?
잘 다녀왔어요? 뭔가 더 눈에 띄는 건 없었죠? (묘하게 붉어진 얼굴로 안경을 고쳐쓰며 말한다)
 
시아록:켈러, 안녕하세요.
어제 토벌, 네.. 잘 하고 왔죠. (순간 꿈과 어제가 헷갈렸으나, 토벌이란 말에 집중했다. 어딘가 들뜬 것 같은 당신을 보았다.)
기분 좋은 일 있어요?
 
오늘따라 켈러 씨의 기분이 좋아 보입니다.
 
석판에서 굉장한 사실을 알아내면 꼭 저런 얼굴이었죠.
 
당신이 먼저 말을 꺼내면 켈러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줄줄 잇습니다.
 
서두는 언제나 그렇듯 석판에서 굉장한 사실을 알아냈단 겁니다.
 
켈러: 저번 해안 절벽 탐사에서 회수한 석판인데, 이거 봐요!
여태까지 발견한 석판 중에 가장 대단한 단락 같아요.
 
시아록:뭔데요? (당신이 들이미는 석판을 바라보았다.)
 
가장 대단한 단락이라니.
 
그렇다면 지상 인류의 멸망이나 브리니클의 기원 같은 것도 알 수 있게 된 걸까요?
 
켈러 씨가 가리킨 석판을 읽어보면...

핸드아웃: 남극의 유물

먼 옛날,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던 인류는 나날이 터전을 넓혀 갔습니다. 여섯 개의 대주에 만족하지 않고 다섯 개의 대양, 아마존의 밀림, 사하라 사막까지……. 지구의 모든 곳이 인류의 정복지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미지란 없습니다. 그러던 중, 인류는 남극의 빙하 아래 묻힌 동굴을 발견합니다.
그곳은…… 모든 우주의 보고였습니다. 엄청난 유물과 지식이 산처럼 쌓여, 아무도 모르는 차갑고 어두운 곳에 묻혀 있었던 겁니다!
 가히 놀라운 발견이었습니다.


 
켈러:비행선이며 대포, 화약, 게다가 당신이 해독해 준 주문들까지. 여태 석판에 쓰여있던 것 중 굉장하지 않은 것이 없었잖아요.
그 대단한 과거의 인류마저 감히 ‘모든 우주의 보고’라고 부른 것들이에요.
얼음 호수의 동굴과 설원의 동굴까지 파괴하면 모든 석판이 모이겠죠?
그럼 우린 한 단계 더 발달한 문명과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거에요. 아아...!
 
꿈에 부푼 켈러 씨의 투명한 안경알이 반짝반짝 빛납니다.
 
시아록:아.. (눈으로 석판을 읽어내리면서 배웠으나, 이게 그렇게까지 대단한 건가. 뭔가 잘 모르겠다.)
그렇군요..
(자신에게도 석판은 많은 지식의 보고면서도 가끔은 끔찍하게 여겨진다.)
 
아, 그러고 보면 우리의 마지막 행선지인 설원의 동굴도 여기서 말하는 남극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인류가 한 번 깃발을 꽂은 곳에, 몇백 몇천 년의 시간을 넘어 다시금 우리가 발을 딛는 거지요.
 
켈러 씨가 이렇게 들뜬 것도 이해는 갑니다.
 
켈러:아무튼, 난 이제 남은 석판들과 데이트를 하러 가야겠어.
그럼 또 둘러보다 가요. (흥흥, 콧노래가 보관소를 울린다)
 
시아록:네, 전 좀 둘러볼게요.
 
켈러 씨가 작업실로 돌아가면 당신만 남습니다.
 
저 너머 천장 위까지 겹겹이 쌓여 벽을 이루는 석판을 뒤져볼 수 있겠습니다.
 
(팔만대장경이 석판으로 이루어졌다면 이럴까요? 당신은 팔만대장경을 모르겠지만요.)
 
꺼내서 읽어보려면 자료조사 판정합니다.
 
시아록: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41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다만 뒤져봐도 과거의 멸망이나,
 
시간 이동에 관한 내용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헛걸음한 걸까요?
 
무심코 뒷걸음질치다 보면, 발치에 석판이 하나 걸립니다.
 
시아록:석판이 왜 떨어져있지..? (천천히 석판을 주웠다.)
 
석판을 주워들면 무심코 그 위에 새겨진 내용이 눈에 들어옵니다.
 
「신의 위엄에 대항하려면 그에 합당한 마력을 지불해야 한다.
 
그 위엄의 일정 비율에 달해야 송환 조건을 충족하며, 마음을 부추기기 위해서……」
 
아. 당신이 제일 처음 보관소에 왔을 때 보았던 그 석판이군요.
 
그 사이에 많은 데이터가 모여서, 이 석판이 말하는 것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게 당신이 찾던 건 아니지만요.
 
더 찾아보고 싶다면 자료조사 재판정해도 좋습니다.
 
시아록: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73
판정결과: 실패
 
음... 특별히 눈에 걸리는 석판이 없네요.
 
그러다 선반 한가운데에 있는 툭 튀어나온 석판을하나 발견합니다.
 
시아록:(손을 뻗어 석판을 꺼냈다.)
 
아, 왜 튀어나왔나 했더니 이 석판만 세로로 꽂혀 있어요.
 
다시금 정방향으로 꽂으며 내용을 눈으로 훑습니다.
 
「차갑고, 어둡고, 희고, 축축한 것.
 
아무것도 없는 것.
 
땅에 내리는 재앙.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
 
시작. 원초의 시대. 영원한 손실.
 
무無로 회귀하는 것.
 
태어난 것이 멸망을 가져오고 죽은 것이 저주를 내린다.
 
인류가 자초한 재앙.」
 
이건 수중 마을에서도, 처음 보관소에 왔을 때도 읽었던 그 석판입니다.
 
찾던 것은 아니지만, 왠지 시선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태어난 것이 멸망을 가져오고 죽은 것이 저주를 내린다. 인류가 자초한 재앙...
 
……불길한 문구잖아요.
 
시아록:(괜히 싱숭생숭한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글귀를 보자니 기분만 나빠졌다. 짜증섞인 손으로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드르륵, 쾅! 손에 괜히 힘이 들어갑니다.
 
눈에 띈 석판을 다 읽고 사다리에서 내려오면,
 
(또) 석판 하나가 선반 한구석에 슬쩍 기대어져 있는 게 보여요.
 
다시 꽂아 넣기 위해선 똑바로 세우는 수밖에 없겠네요.
 
기울어진 석판을 세우자 그 안의 글줄이 보입니다.

핸드아웃: 차원의 관문

시전자는 원하는 어느 곳에든 이 관문을 그려 시공간을 건널 수 있습니다. 공간은 비교적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지만, 시간을 건너려면 특별한 마법 물건을 열쇠로 요구합니다.

• 필요한 만큼의 마력과 이성 1점을 지불합니다.
• 관문의 형태는 다양하며 시전자가 정합니다. 단순한 원부터, 복잡하고 커다란 마법진까지. 이미 존재하는 평범한 문에 만들 수도 있습니다.
•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선 일정한 말이나 몸짓, 열쇠가 필요합니다.


 
시아록:시공간? ... (생각보다 간단해 보이는 주문이지만, 필요한 게 많아 보인다.)
 
하지만 공간을 넘어갈 수 있다니. 지금의 당신에게는 필요한 주문일지도 모릅니다.
 
아주 만약 비행선에 무슨 일이 생겨도, 추락을 막을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비행선이 출발하기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습니다.
 
주문을 습득하고자 한다면, 미리 관문의 열쇠를 정해둡시다.
 
시아록:(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여기로 돌아오는 게 낫겠지.. 열쇠..) 뭘로 하지? (중얼. 입 밖으로 말이 새어나왔다.)
갖고 있는 거 중엔.. 들고 다닐 수 있는 게..
 
'열쇠'는 물건 말고도 몸짓이나 특정한 말 또한 가능합니다.
 
그래도 미리 생각해두는 게 좋겠죠. 위기가 닥친다면 정신이 없을 테니까요.
 
시아록:(음.. 말이 편한가. 그럼.. 돌아오기 위한 거니까.) 모두 집으로 돌아가자.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면 많이 쓰일 거 같고... (괜히 혼자 중얼거리다가 관문의 열쇠를 정했다.) 모두 집으로 돌아가자. 너무 긴 건 아니겠지.
 
*좋아요. 주문을 습득하여 시아록은 지금부터 원하는 때에 차원의 관문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특정한 공간에 만들 수도 있고, 몸 어딘가에 문양으로 그려 휴대하고 다닐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나름의 채비를 마치고 나면...
 
아틀란티카, 정말 출항!
 
약속했던 3시 30분! 비행선 아틀란티카의 출항 준비가 끝납니다.
 
곧 있으면 석양이 내릴 무렵이죠.
 
그리고 당신은 꿈과 똑같은 순서로 흘러가는 현실을 봅니다.
 
유진:전쟁의 막바지다.
이제 더는 브리니클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 안전한 밤이 올 거야.
 
유진은 결연한 목소리로 레지스탕스 일원에게 선포합니다.
 
무거운 목소리입니다. 마치 비행선에 대고 약조하듯이.
 
하늘만큼 커다랗고 결연한 다짐이죠.
 
사람들은 함께 기대감을 안고 비행선을 바라봅니다.
 
거대한 풍선과 선체는 유려한 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화려한 글씨로 새겨진 아틀란티카의 이름이 보입니다.
 
하늘을 바다처럼 유영할, 레지스탕스의 역작입니다.
 
꿈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비행선에 올라 바라본 로비의 풍경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의 상태를 걱정하던 노아가
 
조심하라는 당부와 함께 먼저 조종석으로 떠난 것을 빼면요.
 
호버 씨나 그리드 씨, 오필리아 씨의 당부로 당신은 미리 숙소를 배정받습니다.
 
몸이 안 좋으면 조금 쉬라는 눈치입니다.
 
당신은 미리 들어가 누워있을 수도, 두 번째로 비행선 내부를 눈에 새길 수도 있습니다.
 
어떡할까요?
 
시아록:나 그렇게 얼굴 안 좋은가.. (괜히 마른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가 아직도 이런 불안한 마음으로는 잠들 수도 없으니 그냥 한 번 비행선 내를 둘러보기로 한다.)
 
이번에는 다를 거야. 심장께에서 흘러나온 긴장이 팔을 타고 흘러 주먹을 만듭니다.
 
당신이 그러고자 한다면, 또다시 비행선 내부를 둘러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꿈과 똑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보지 않아도 당신은 알고 있어요.
 
호버 씨가 수고했다며 핫초코를 건네 주고, 그리드 씨는 몰래 숨겨온 포도주를 마시고,
 
창고는 분주하며, 갑판에는 유진이 있으리란 사실을.
 
기시감을 떨칠 수 없고 불안감을 버릴 수 없습니다.
 
…….
 
그러나 단 한 가지.
 
비행선은 추락하지 않고 무사히 나아갑니다. 그것만이 꿈과 다릅니다.
 
심해에서 지상으로, 지상에서 하늘로.
 
당신은 마침내 가장 깊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온 거예요!
 
당신을 태운 배는 마치 유영하는 고래처럼 새까만 밤하늘을 가로지릅니다.
 
위에는 약속처럼 보름달도 매달려 있고요.
 
경이로운 천공의 풍경이 당신을 맞이합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도시의 빛은 내려앉은 별이 반짝이는 것 같습니다.
 
다들 넋을 잃고 지켜봅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작아진 도시는 장난감 마을처럼 보입니다.
 
...
 
그렇게 몇 시간을 날았을까요?
 
마침내, 얼음 호수의 동굴에 다다릅니다.
 
유리 너머로 얼어붙은 호수와 차가운 동굴이 보입니다.
 
브리니클이 아직 활동하기엔 이른 시기라,
 
지금 폭파하면 완벽하게 해치울 수 있을 겁니다.
 
사람들은 떨리는 마음으로 창가에 붙어서거나 갑판 위로 올라갑니다.
 
원수의 마지막을, 우리의 강렬한 승리를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떨리는 찰나. 당신은 뭘 하고 있나요?
 
시아록:(꿈과 다르게 제대로 떠있다는 안도감에 차게 식은 숨이 내쉬어졌다. 주저앉고 싶은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창밖을 내려다봤다.)
 
작은 유리 창문으로 호숫가를 들여다보면,
 
유진:발포 준비!
 
유진이 커다란 소리로 지시하고,
 
일사불란한 움직임이 이어집니다.
 
지하에서 대기 중이던 레지스탕스 일원들이 화약을 나르고, 채웁니다.
 
조종석에서 발포 버튼을 누르면,
 
끼긱, 끼기긱. 새것 특유의 뻑뻑한 소리와 함께
 
선체의 구멍이 열리고 대포가 고개를 내밉니다.
 
유진:발사!
 
쾅!
 
요란한 폭음은 그 이후에 이어졌습니다.
 
덜컹, 짧은 흔들림과 함께 선체가 조금 뒤로 밀려납니다.
 
바닥에 떨어진 포탄들이 요란하게 폭발합니다.
 
붉고 노란, 노을보다 짙은 핏빛이 호수를 깨웁니다.
 
불길이 치밉니다.
 
호숫가 근처라 크게 번지진 못하겠지만,
 
동굴을 때려 부수고 브리니클을 노릇노릇하게 구울 정도론 충분할 겁니다.
 
그토록 오래 인류를 괴롭혔던,
 
어쩌면 과거의 인류조차 멸망으로 몰아넣었을 괴물들이...
 
스러지고 있습니다.
 
시아록:(이렇게 간단하게, 혹은 허무하게 모든 것이 끝나는 걸 그저 가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감정을 뭐라고 해야하는 걸까..)
 
브리니클은 화염을 안고 서서히 무너집니다.
 
머리 위에 명멸하던 빛은 꺼지고, 당신은 그 모든 풍경을 그저 눈에 담습니다. 시아록, 관찰력 판정.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93
판정결과: 실패
 
완전히 무너진 동굴의 잔해 사이, 드문드문 브리니클의 잔해가 보입니다.
 
죽어나자빠져, 그저 돌덩이에 불과한.
 
하늘을 향해 솟은 팔들이 묘비 같습니다.
 
죽어가는 브리니클의 얼굴 위로, 희미하게 불빛이 점멸합니다.
 
마치 마지막으로 힘을 끌어모으는 듯, 힘겨운 모양새.
 
짧게 한 번, 짧게 한 번, 길게 한 번, 짧게 한 번.
 
짧게 한 번, 짧게 한 번.
 
길게 한 번, 짧게 한 번.
 
짧게 한 번, 길게 한 번.
 
짧게 한 번, 길게 한 번, 짧게 한 번, 짧게 한 번.
 
짧게 한 번, 길게 한 번, 짧게 한 번, 짧게 한 번.
 
길게 한 번, 짧게 한 번, 길게 한 번, 길게 한 번.
 
...
 
고장난 것처럼 깜빡이는 불빛을 본 순간, 어떤 기억이 뇌리를 스칩니다.

핸드아웃: 초롱 신호

수중 인류는 커다랗고 투명한 해파리의 껍질을 잘 꿰매 그 안에 마법으로 만든 초롱을 밝힙니다. 가족 간에는 서로의 초롱을 멀리서도 깜빡거릴 수 있습니다.
초롱이 빛나는 길이와 횟수로 무전기처럼 가벼운 의사소통이 가능합니다.


 
지상에 온 후로 쓸 일이 없어 잊고 지냈던 초롱 신호입니다.
 
당신은 익숙하게 그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Finally!
 
고개를 돌려보면, 모든 죽어가는 브리니클이
 
같은 속도, 같은 길이, 같은 박자로 빛을 깜빡이고 있단 걸 알게 됩니다.
 
우연일 거예요. 그럼요.
 
브리니클이 초롱신호를 알 리가 없잖아요.
 
그저 고장이 나서 불규칙한 걸 당신이 착각한 거겠죠.
 
시아록:(우연이라 되뇌이면서도, 어쩐지 그 초롱신호와 같은 불빛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불길할까요? 그저 착각에 불과할 텐데도.
 
드디어, 라니, 마치 브리니클들이…….
 
이 순간― 죽음만을 바라온 것처럼.
 
시아록:어째서...? (저조차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을 물어보기 위함인지, 아니면 그저 무언가의 탄식인지 알 수 없는 말이 제 목을 긁고 나갔다.)
 
...당신이 반쯤 벙쪄있는 사이, 일은 순식간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몇몇은 하강해 석판을 회수, 벽화를 탁본하고 돌아왔습니다.
 
죽어가는 브리니클은 어떤 위험도 되지 못했고,
 
본부에 복귀하기까지 걱정했던 추락 사태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애써 준비해 둔 차원의 관문이 허튼 일이 되었지만……
 
그래도 안 좋은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 게 나은 법이니까.
 
시아록:(꿈과는 전혀 다르게 훌륭한 비행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너무 긴장을 하고 있었던 탓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일까? 땅을 딛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긴장이 탁 풀려서인지 어쩐지 맥이 빠진 느낌이에요.
 
다리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질 않습니다.
 
레지스탕스에는 아무런 일도 없어요. 그저 약속된 평화만이 있습니다.
 
내일 나갈 결전에서도 정말로, 승리를 거둔다면...
 
마침내 도시는 브리니클의 마수에서 벗어나는 거에요.
 
도시의 경계에 들어서면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립니다.
 
승전보를 알리는 아틀란티카가 유유히 선착장에 내립니다.
 
어깨를 툭툭 치는 손길이 느껴집니다. 돌아보면, 노아네요.
 
시아록:노아..?
 
노아:보세요, 아무 일 없었잖아요.
...그 뒤로도 몇 번인가 더 점검해보았어요. 이번 출항으로 아셨겠지만...
비행선은 안전해요. 그러니까 이제 겁 먹지 마세요.
아까 올라탈 때만 해도 하얗게 질리셔서... 정말 배를 멈춰야 하나 싶을 정도였다고요.
 
시아록:응.. 내가 너무 걱정이 많았지..
(당신에게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노아:아니면 멀미가 심해서 그러신 거에요? 멀미약 같은 걸 구비해둘 수 있게 준비할게요.
 
시아록:아니, 멀미는 안 해..
(도리도리 고개를 내저었다,)
 
노아:...비단 그런 이유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조금이라도 승선이 편해지면 좋으니까.
 
시아록:응... 고마워..
(이렇게 대답했으나..., 그러나 자신은 안다. 이 배가 훗날 결국은 제가 있는 깊은 바닷속까지 떨어져내릴 것임을. 자신은 알고 있다.)
(그게 고작 지금이 아니라는 것에 자신이 안도해야할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노아:(몇 번이고 안심해도 된다고 말해보아도 여전히 마음의 짐을 내려놓지 않는 모습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렇게 내가... 이 비행선이 부족했던가. 자책이 어깨를 짓누른다. 우울한 감상은 이런 상황에서는 독이 될 뿐이라 이만 내려놓고 당신을 본다)
...응?
시아록, 발이 왜 그래요?
 
시아록:(당신과 눈이 마주치자, 반사적으로 웃었다.)
응? 내 발? ( 신발 잘 신고 있지 않나?)
(시선이 아래로 향한다.)
 
발을 보면, 붕대가 신발구멍 위로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아까 너무 정신이 없던 나머지 제대로 고정하지도 못했었죠...
 
그동안 분주히 뛰어다닌 탓에 올이 잔뜩 풀려 있네요.
 
시아록:아.. 그러니까.. 조금 다쳐서...?
 
노아:...괜찮으세요?
여간 작은 상처가 아니라면, 붕대까지 감으셨을 리가 없잖아요.
 
시아록:.... 안 괜찮은 거 같아. (괜찮다고 얼버무리려다가 결국 툭, 내뱉었다. 후들거리며 주저앉을 거 같은 다리는 전부 발이 아파서라고 해야겠다. 그래, 그런 것이다.)
(피가 비쳤던 발이라고 한들, 고작 이깟 것에 다리가 무너져내릴 것 같은 기분이 들진 않겠지만.. 그래도 나는 너에게 응석부리고 말았다.)
(슈슈를 닮은 너에게.)
 
노아:언제부터였어요? ...좀 더 일찍 봤어야 했는데, 여유가 없어서...
밤이 깊어지기는 했지만, 이오리 씨께 가 봐요. 지금이라도 가면 치료해주실지도 모르니까...
...비행선에서도 내내 상처를 달고 돌아다니신 거죠? (바닥을 딛는 것도 힘겨워 보였던 건 전부 그런 이유에서였나... 침음을 삼키며 부축해온다)
 
시아록:그럴까.. 지금 가면 이오리가 있으려나. (멀거니 발을 내려다보다가 부축해오는 너를 바라봤다.) 발을 안 쓸 순 없으니까. (한 발을 들어 슬쩍 흔들어 봤다. 욱씬거리는 통감이 역시 이곳에 자신이 있다고 알리고 있었다.)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며칠만에 이렇게 무너진 자신이 어쩐지 어처구니 없었다. 많이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과는 다른 일인가 보다.)
 
노아:(쓴웃음을 짓는 당신의 얼굴이 떨리는 걸 피하지 않고 바라본다. 한동안 눈을 찌푸린 채로 그 얼굴을 살피다, 이내 두 번째로 나오려는 한숨을 삼키며 병원으로 향한다)
 
아픈 발을 데리고 병원으로 향하는 오솔길을 걷습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닌 둘이서.
 
별처럼 반짝이는 가로등 불빛이 내려앉고, 보름달은 먹먹한 구름에 가리워지는 밤입니다.
 
저 멀리 철탑에서 반짝이는 벌건 불빛이, 다시금 아까 그 광경을 떠오르게 합니다.
 
...괜찮을까요?
 
아니, 괜찮을 리 없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괜찮아야 합니다. 적어도 마지막을 볼 때까지는...
 
노아:(어색한 공기가 다시금 사이를 파고든다. 스스로 여기까지 끌고 나오기는 했지만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건지 모르겠다. 이오리는커녕 병원 문도 다 닫을 시간인데...)
(걸어가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말을 고르느라 몇 번 멈칫한다.) ...예전에, 비행선 이름을 지을 때 담당하던 사람들끼리 회의를 열었거든요.
 
시아록:응. (얌전히 네가 부축해주는 대로 따라 걸었다.)
 
노아:왜냐하면, 레지스탕스의 발돋움이 될 비행선인데 아무 이름이나 지어줄 수는 없잖아요.
 
시아록:그렇지.
 
노아:많은 의견이 나왔지만, 그 중에서도 하필이면 아틀란티카라는 이름이 채택된 이유가 있었어요.
 
시아록:그래? 왜?
 
노아:아틀란티카... 다른 말로 아틀란티스는 지금은 바다 아래에 가라앉았다는 전설의 대륙이거든요.
이상적인 국가였고, 지금 인류는 생각하지 못 할 만큼의 기술력도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져 버린 곳이잖아요.
 
시아록:(... 듣자마자 왜 굳이 그 이름으로 지었어, 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너의, 우리의 배가 그렇게 바다 깊이 가라앉았나.)
 
노아:(당신의 속내도 모르고 말을 잇는다) 하지만 듣자마자, 꼭 그 이름으로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아틀란티카라는 이름을 들으니, 멸망한 지상의 문명이 떠올랐거든요. 지금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 그 역사를 찾아볼 수 없다 해도... 결국은 인류의 재건을 돕고, 이렇게 비행선까지 구현하게 해 준.
 
시아록:... 그렇구나. ( 이미 지어진 배의 이름을 제가 떼를 쓴다고 바꿀 수는 없다.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어떤 감정이 목 뒤로 넘어갔다.)
 
노아:우리는 아틀란티카로 하여금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거에요. 우리를 위협하고 영원한 상실로 몰고 가던 브리니클을 몰아내고, 이제 다치거나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으니까. 이렇게 안전지대같은 장벽에 가로막히지 않고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이 될 테니까.
 
시아록:.... 그래.. (네게는 그 이름이 좋은 의미이지만, 역시 나는 아틀란티카라는 이름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노아:아틀란티카는 지금은 사라진 꿈이지만, 그렇게 무너진 꿈이라도 우리가 갈 수 있는 길로 이정표를 제시해 주죠.
 
시아록:(그 곳이 바다 깊은 곳에 가라앉은 이유가..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고 말았지만, 결국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노아는 그때 제시한 이름 있었어? 아틀란티카,는 듣고 그렇게 생각했다며?
 
노아:...인류의 재건뿐만 아니라 모든 게 그러할 지도 몰라요. 무너지고 끝나버린 꿈도 언젠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이 될 테니까.
... ... 그러니까, 이만 놓아줄 때가 온 거겠죠.
이름... 저는 방주 같은 걸 생각했는데, 은근슬쩍 저한테 유리한 이름을 붙이지 말라고 타박을 받았었죠. (작게 웃음을 터트린다.)
그래도 잘 어울리지 않아요? 방주.
 
시아록:아, 노아의 방주. (따라 웃음 소리를 내고 말았다.) 응, 나도 그게 더 좋은데. 방주. 아틀란티카보다 더.
훨씬, 나아.
(저도 모르게 강조하듯 말해버렸다.)
 
노아:(당신이 웃는 얼굴에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걷는다) 그렇죠? 음, 하지만 생각해보니 방주랑은 다르게 노가 없어서, 연료가 없으면 금방 멈출 텐데.
...하, 하늘에 뜰 수 있으니까 된 거겠죠? 언젠가 기술이 더 발달해서 정말 배도 되고 비행선도 되는 그런 게 나오면 좋겠어요.
(병원이 있는 건물의 지하를 따라 내려간다. 문은 굳게 잠겨 있다.)
...아, 이런.
 
시아록:그때의 물은 산보다 더 높게 올라왔다며? 그럼, 그쯤의 물높이나 비행선이 날아다니는 높이나 비슷한 거 아니야?
.. 괜찮아, 나 열쇠 있어. (주머니에 손을 넣어 열쇠를 꺼냈다.)
아가 대강 약 좀 발라줘.
 
노아:그런가...? (거기까지는 잘 모르는지 고개를 숙이다가)
알겠어요. (문을 여는 대로 부축하며 따라 들어간다.)
 
병원은 역시 쥐 죽은 듯 조용합니다. 간간히 입원 환자가 코를 고는 소리도 들려오네요.
 
세상은 모두 잠들어 있습니다.
 
진료실로 들어가 적당한 곳에 앉아 있으면, 노아가 선반을 뒤져 구급상자를 꺼내 옵니다.
 
신발을 벗기면, 당신의 생각보다 상처가 훨씬 큽니다.
 
붕대는 얼기설기 풀려 있고, 발은 멍과 생채기로 얼룩덜룩해져 있으니까요.
 
피가 배어나오던 상처는 모두 굳었지만, 여전히 낫지는 않아 만지기만 해도 따끔따끔합니다.
 
으, 역시 응급처치도 제대로 안 하고 돌아다닌 건 무리였어요.
 
당신이 이제야 제대로 보여준 상처를 마주한 노아는 깜짝 놀랍니다.
 
노아:...세상에.
어, 어쩌다가 발이 이렇게 됐어요...? 어제 갔던 탐사에서 위험한 일이라도 있던 거에요?
 
시아록:어? 어.. 그런 건 아니야. 그냥..
(어젯밤의 꿈과 그 일련의 과정은 얘기하기 쉽지 않아서 그저 머슥하게 웃으면서 뒷목을 매만졌다.)
 
노아: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음부턴 제대로 치료받고 돌아다니셔야 해요. 제대로 연고라도 발라두지 않으면 감염의 위험도 있고, 곪을 수도 있으니까.
 
시아록:응, 그럴게. 혼자 하려니까 안 쉽더라고. (네가 약을 발라주는 것을 가만히 보았다.)
 
노아도 이제 레지스탕스잖아요. 제 손으로 응급처치 몇 번쯤은 해 봤을 텝니다.
 
그 어렸던 애가 이만큼 자라선, 무기를 들거나 당신을 치료해주고 있다니...
 
감회가 새로울지도 모르겠어요.
 
노아:
응급처치
기준치: 60/30/12
굴림: 86
판정결과: 실패
(부, 붕대를 이렇게 감는 게 아닌가...?)
 
...그러나 그 손길은 영 엉성합니다.
 
제대로 하고 있는 건 맞겠죠?
 
아무튼 얼렁뚱땅 연고(맞게 바른 건지도 모르겠어요)를 바르고, 거즈를 붙인 뒤,
 
붕대까지 고정하고 나면 비로소 치료 끝입니다.
 
...붕대가 좀 헐렁하긴 하지만요. 아무래도 이따 다시 감아봐야겠어요.
 
이제 됐다며 노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문득 주머니에서 무언가 굴러떨어집니다.
 
시아록:(뭐지? 떨어진 것을 주워들었다.)
 
집어보면, 작은 구슬같은 그것은...
 
진주입니다. 사해에서 주운 그것인가 봐요.
 
노아는 진주를 보고 아는 체를 합니다.
 
노아:아, 그거 제가 주운 건데...!
아까 찾을 땐 없었는데, 어디 갔었어요?
 
시아록:어, 네 주머니에서 떨어졌는데? 여기. (네 손을 가져다 펴 그 위에 진주를 올려놓았다.)
 
노아:아... (잃어버린 줄만 알았는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진주를 받아들었다)
... (잠시 제 손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시아록. 이건 다시 바다에 돌려놓을까요?
 
시아록:응? 왜, 갑자기?
팔려고 가져온 거 아니었어? 그렇지만... 네가 그렇고 싶다면 그렇게 해.
 
노아:그, 비행선도 완성됐고, 어차피 전에 판 진주 덕에 자금은 충분히 모였고.
바로 내일 침공에 성공하면, 더 이상 군사 자금을 대지 않아도 되니까...
 
시아록:그것도 그렇네..
 
노아:그리고... (입을 꾹 물고 숨을 삼켰다가)
바다에서 온 것들은 다시 바다로 되돌아가야 하니까요.
바다에서 난 것은 모두 물을 닮아서, 어딘가에 머무르기보다는 자유롭게 흘러가야 한다고 해요.
 
시아록:그런가... 근데, 그렇게 안 해도 나중엔 바다로 결국 돌아가더라고. (지금껏 겪어본 바 그랬다. 결국 모든 것들은 바다로 돌아왔다.)
 
노아:그런가요. (말을 멈추고, 신발을 다시 신겨주고 신발끈까지 제대로 묶어준다. 다시 풀리지 않도록)
...말이 길어졌네요. 이만 돌아갈까요? 날이 늦었으니까.
 
시아록:(오늘은 너를 참 많이 들여다보는 것 같다. 시선이 네가 묶어주는 신발끈으로 향했다가 일어선 너를 올려다보았다.)
응, 돌아가자.
(그렇게 일어서다 문득 생각났다. 꿈이었던가 어제였던가, 아직도 헷갈리는 기억을 붙잡고 네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노아, 갖고 싶은 거 있어?
 
우리는 보름달 아래를 걷습니다.
 
왼쪽에는 슈슈...는 없지만, 오른쪽에는 노아가 함께합니다.
 
문득 당신은 뭍에 처음 올라오던 날을 떠올립니다.
 
모든 게 신비로웠던 날을,
 
영원할 것 같았던 평화와 새로운 모험의 두근거림을.
 
빈말로라도 평화롭다고 할 수 없는 밤입니다.
 
하지만 어둠에 잠긴 도시는 아주 고요합니다. 파도 치는 소리가 멀리에서 희미하게 흘러들어올 만큼.
 
노아는 사해의 해안선을 따라 걷다가 당신의 말에 흠칫합니다.
 
노아:갖고 싶은 거요...?
...어, ... 평화와 모험?
 
시아록:아니, 그거 말고. 내 물건 중에? 아니면 선물 같은 거.
(고개를 느릿하게 저었다.)
 
노아:당신 물건 중에서...? (여전히 바다 쪽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희미한 달빛이 윤곽선을 그리고 등은 그림자에 먹혀 있다)
......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송별회 날 선물로 주시려고요?
 
시아록:네가 원하다면, ..송별회... 그럴지도 모르겠네.
(너를 보다가 달을 올려다 봤다가 다시 바다로 시선이 향했다.)
 
노아:(...바다에서 온 것들은 물을 닮아서, 흘러가려는 속성이 있다고 했던가.)
...필요없는 것 중에서 아무거나 던져주세요, 뭐든.
 
시아록:(똑같은 말이다. 역시 어제였나, 아니면 꿈이었나..)
나한테 필요없는 건 없어, 그러니까 갖고 싶은 걸 나중에라도 말해.
 
노아:그런가요? 음, 그럼...
역시... 사진은 어때요? 전에 석판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계의 제작법을 발견했다고 했잖아요.
송별회 날 행복하게 웃는 얼굴을 사진에 담는 거죠. 그럼 당신의 물건을 뺏지 않아도 되지만, 추억은 남길 수 있으니까.
 
시아록:그래, 좋아. 사진..
 
노아:...갑자기 왜 이런 소리가 나오는지 모르겠네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당장 그 때까지 사진기를 만들 수 있는지도 모를 일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다)
음, 슈테른 씨도 같이 사진에 나오면 더 좋겠어요. 오래 만나지 못했지만, 제게도 왠지 가족처럼 느껴지는 분이니까.
 
시아록:응 .. 알았어. (작게 입김을 하, 불었다.)
그러게, 나도 그럼 좋겠어.
 
노아:...아, 바닷바람이 차죠. (손에서 어떤 감정과 함께 진주를 탁 털어냈다)
(해변에 던져넣으면 얕게 파문이 일더니 곧 파도가 진주를 데려간다)
...자, 됐네요. 이제 정말 돌아가요.
 
시아록:응, 가자. (너와 어깨를 맞춰 천천히 기숙사로 향했다.)
 
오늘따라 바람도 유난히 잠잠해요. 하늘은 흐릿하고요.
 
소음이라곤 모두 잡아먹힌 밤.
 
유독 조용한 틈이라 이런저런 생각이 마구 파고듭니다.
 
그러고 보면, 다시 바다로 돌아가도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바로 지척에, 아틀란티카와 인류 문명이 고스란히 파묻힌 유적지가 있는데 말이에요.
 
당신이 어떻게 이 자리에 서 있는지,
 
다시 그 날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요.
 
여전히 보름달은 떠 있고 세계는 어떤 답도 내놓지 않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이 형용하기 힘든 감정은 정말 지상세계가 평화로워진다고 사그라들까요.
 
매일 밤 어둠과 함께 고뇌가 이불처럼 덮이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도, 당신의 손안에 있는 주문이 힘이 되기를 바랄 뿐이에요.
 
당신은 고민이나 걱정거리마저 베개 밑에 묻어두고 잠을 청합니다.
 
좋은 꿈 꾸길.
 
 
과거를 걷는 시간
 
...그것도 모두 어제의 일입니다.
 
당신은 짧은 전투를 마치고 레지스탕스 본부로 귀환했습니다.
 
지금까지 아틀란티카가 다녀온 곳은 모두 완전 격퇴에 성공했지만...
 
다른 도시 지역에 잔당이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거든요.
 
다행히 동굴에서 본 것처럼 움직이지 못하는 개체였지만,
 
그래도 안전을 위해 핵의 붉은 빛을 꺼트렸습니다.
 
파악, 우지끈! 귓가에 브리니클이 무너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아직 선명합니다.
 
다행히 글씨가 새겨진 부분은 전부 본을 떴으니, 바로 해석에 들어갈 수 있을 거에요.
 
다만, 신경쓰이는 게 있다면...
 
깜빡, 깜빡.
 
브리니클의 핵이 다시 점멸했다는 것 정도일까요. 저 높은 빌딩 위에 매달린 붉은빛처럼요.
 
짧게 한 번, 길게 한 번, 다시 짧게 한 번...
 
...
 
하지만 당신이 해석하기도 전에, 불빛이 스위치를 내린 듯 팍 하고 꺼져버렸죠.
 
활자가 되지 못한 단말마는 결국 화마에 녹아 부서져내렸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브리니클의 개체수가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이 들렸거든요.
 
유진:내일은 드디어 마지막, 설원의 동굴로 간다.
모두 출전 전후로 체력을 보존하고, 무사히 생환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도록.
무너진 기지는 수복할 수 있지만, 인명 피해는 어떻게 해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명심하고.
 
유진도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었죠.
 
그런데 왜 승전보를 올리고 돌아온 당신이...
 
노아:시아록, 거기 뭐라도 있어요?
 
...왜 노아와 함꼐 교외에 나와 있느냐고요?
 
답은 간단해요. 얼결에 노아의 이사 준비를 돕게 됐거든요.
 
당신이 돌아오자마자 갑자기 발은 다 나았냐고 묻더니,
 
준비를 좀 도와달라고 했었죠.
 
노아:아, 이럴 때가 아니에요. 얼른 가야죠, 병원.
 
노아는 이번 전투가 승리로 끝나면,집을 비울 것이라고 합니다.
 
도시가 안전해진 만큼 예나를 떠나 다른 곳을 돌아보고 싶다면서요.
 
그런 노아가 첫 번째로 막무가내로 끌고 가는 행선지는....
 
이오리의 병원입니다.
 
시아록:(늘 제 발로 찾아오던 병원을 오랜만에 다른 사람에게 이끌려 병원에 왔다. 노아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가 물었다.)
병원에 왜?
(늘 슈슈를 보러 왔더니 다른 용건은 크게 생각나지 않았다. 다쳐도 슈슈를 보러 왔다가 이오리에게 잡혀 치료받았기에 더더욱 그랬다.)
 
노아:왜냐뇨, 당연히 악몽 때문이죠.
계속 안 좋은 꿈이 이어지면 수면에도 영향이 가고, 그럼 내일같은 큰 작전에서 무슨 차질이라도 생길 수 있잖아요.
이오리한테 진작 말했으면 수면제라도 처방해줬을 텐데... 왜 지금까지 안 간 거에요. (조금 속상해보이는 눈치로 타박하듯 묻는다.)
 
시아록:(저는 생각지도 못한 관점에 조금 놀라 눈이 동그래졌다.) 그런가.. 그러게, 그런 방법이 있는데..
(꿈을 꾸면 늘 자신을 다스리는데 급급해서 식은땀이 사라지고 나서 정신을 차리면 늘 그걸로 되었다 생각했다. 그리고 아마도, 꿈이야기를 해야할지도 모른다는 무의식적인 생각에 피한 건지도 모른다. 그럼 이제 마지막에 다가와 안심되어서 너에게 얘기한 걸까. 아니면 네가, 그 얼굴로, 털어놓으라 종용해서일까.)
 
노아:(티나지 않게 작은 한숨을 쉬고) 앞으로는 저도 없을 텐데 그러시면 어떡해요. 아플 때는 병원의 도움을 받으려고 해 보세요.
어차피 저 대신 걱정해주실 분도 있으니 안심해도 될 것 같지만.
 
시아록:(네 말에 돌아가면 이런 병원은 없는데. 라고 무심코 생각해버렸다.) 노아는 어디까지 여행갈 거야? 저 멀리? 나중에 돌아올 거야? (그 때는 자신이 없을 지도 모르지만, 그냥 네가 이 곳으로 돌아온다고 하면 좋을 거 같았다.)
 
노아:음... 사실 행선지같은 건 잘 모르겠어요. 아틀란티카의 항로를 참고하거나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직접 가 보려고요.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때는 호신용 무기라도 있으니까... (쓸 일이 없다면 좋겠지만요. 손에 들어오는 권총 하나를 툭툭 건드려보인다)
네, 저 멀리까지 가서, 돌아올 엄두가 안 날 만큼. 그렇게 오랜 세월을 보내고 싶어요.
여태 브리니클과... 레지스탕스에 들어가서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 떄문에 이 곳에 머물렀는데, 아직 가 보고 싶은 곳이 많으니까요.
아무도 절 모르는 곳에 가서 제 거처가 될 곳을 찾는다면... 그걸로 만족할 거에요. 음, 찾지 못한다면 꼼짝없이 여기로 돌아와야겠지만. (바람 빠지는 웃음을 흘린다)
 
시아록:그렇구나. (너는 여기를 떠나고 싶었구나. 어쩌면 너는 브리니클에 완전히 질려버린 걸지도 모르지. 저도 돌아가게 되면 브리니클을 생각하고 싶지 않을 거 같으니 이해는 된다.)
네가 원하는 대로 되면 좋겠네. (네가 돌아오면 좋을 거 같다고 막연히 생각해도, 너에게 그게 행복이 아니라면 나는... 네가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내 의사따위는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이 밖의 땅이 얼마나 넓은지 모르겠지만, 네가 머물 곳 하나 없겠어? (나는 너를 따라 웃었다.)
 
노아:이미 없어진 것을 계속 매만지고 추억하기에는 삶이 너무나 길고, 이 도시는 추억으로 남기겠다는 결심이 섰어요. 정이 든 곳이지만, 그런 곳이니만큼 한 번쯤 떠나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오리나 유진, 레지스탕스 대원들과 헤어질 생각을 하면 조금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웃었다)
... 감사해요. 다시 이정표를 찾고, 깃발을 꽂고 정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머물 곳 하나쯤은 있겠죠. (가볍게 끄덕거리며 이오리네 병원을 향해 내려간다.)
 
노아는 한창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니... 병원 문을 열고 당신을 무작정 끌고 갑니다.
 
노아:이오리, 여기 있어요?
 
그러고는 진료실 문을 냅다 열어 안을 들여다보네요.
 
이오리:아, 노아 왔... 단골 손님도 왔네.
친구를 보러 온 거니? (시아록에게 눈짓한다)
 
시아록:하하.
(작게 웃었다가 노아를 눈짓했다.) 노아한테 끌려왔달까..
 
이오리:몸에 문제라도 생겼니? 이제 과로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게 며칠 전 일 같은데 말이야.
(제법 엄한 눈초리로 꼬았던 다리를 펴고 고쳐앉는다.)
 
노아:아뇨, 과로가 문제가 아니고... 요즘 계속 악몽을 꾸신대요.
그래서 많이 불안하시고, 잠도 못 드시나 봐요.
 
시아록:(과로란 말에 도리도리 고개를 내젓다가 노아의 말에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노아:특히나 어제는 정말 쓰러지시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팔짱을 끼고 한숨을 뱉는다)
도저히 그냥 못 보고 있겠어서 이렇게 데려온 거에요.
 
시아록:(괜히 혼난 기분에 입만 꾹 다물고 있었다.)
 
이오리:계속 악몽을 꾸는 건 신경과 관련된 증세인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명확하게 이유가 없는 경우가 많아. 일상생활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그냥 넘어가도 괜찮지만...
그 말을 들으니, 처방이 필요해 보이네. (차트에 무언가 기록하더니 처방전 하나를 내민다)
저쪽 약국에 이 수면제가 있어. 깊게 잠들면 수면의 질이 올라가고, 그럼 꿈을 꾸는 횟수도 줄어들 거야.
(볼펜으로 처방한 약을 톡톡 건드리며) 자기 30분 전에 한 알씩 먹고, 우선 일주일분을 처방해줄테니 경과를 보고 다시 오렴.
 
이오리는 별 일은 아니라며 약 하나를 처방해줍니다.
 
이걸 먹으면 그런 꿈을 조금이라도 덜 꾸게 될까요?
 
시아록:(별 것 아니라는 말에 조금 안도했다. 처방전을 받아들며 적힌 약 이름들과 이것저것 살펴보지만, 사실 아는 건 없다.)
약 처방해주셨으니 괜찮을 거 같아요.
 
이오리:그래. 힘들면 다시 와. (이만 가도 좋다는 듯 손을 휘저어 둘을 내보낸다.)
 
그렇게 진료실에서 쫓겨납니다.
 
이오리네 병원은 원래 진료비를 받지 않죠. 처방전을 받아들고 바로 약을 사러 가면 됩니다.
 
노아는 약국 이름을 보더니 안전지대 안에 있는 약국이라고 알려줍니다.
 
노아:수면제 같은 건 아직 비싸니까, 안전지대까지 들어가야 하는 거겠죠...
어차피 제 집에도 들러야 하니까, 가는 길에 들리면 되겠네요.
(처방전을 받아들고 가방을 한 번 고쳐맨다)
 
시아록:응, 알았어. 가자. (네가 챙기는 걸 보고 천천히 따라간다.) 수면제부터 처방받고, 노아네 집에 가는 게 나을까?
 
노아:아마 그게 편할 걸요. (성큼성큼 앞장서고) 그 쪽으로 들어가는 건 오랜만이에요.
 
시아록:그렇지. 나도 레지스탕스 기숙사에서만 지냈고..
 
노아:가끔 짐을 가져올 때만 들렀었는데 많이 바뀌어있을까요? (그렇게 말하며, 높은 장벽 한구석의 개구멍으로 들어간다)
 
다시 찾은 안전지대는... 세상에, 거의 다른 세상입니다.
 
온갖 건물마다 빛나는 간판이 달려 있고, 도로는 매끈하게 포장되어 있으며,
 
차뿐만 아니라 이상한 보드며 바퀴처럼 생긴 것이 인도를 달리고 있거든요.
 
곳곳에 신호등이 달려 있고, 어디 하나 무너진 곳이 없습니다.
 
게다가 처음 보는 이상한 기기도 있습니다. 전화기랑은 다른데, 대체 이게 뭐지?
 
시아록:(처음 왔을 때와도 전혀 다른 모습에, 놀랐다. 밖이랑 이렇게 다른가..)
 
석판에서 발견한 기술은 레지스탕스 전술에 이용할 수 있었지만,
 
제일 많이 득을 본 곳은 안전지대 안이죠.
 
이 곳에는 시간을 들여 신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인력과 자원, 돈이 모두 갖춰져 있으니까요.
 
게다가 브리니클이 도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니, 만들어진 것이 부서질 걱정은 안 해도 되고요!
 
그러니까 경계 안은, 일종의 미래도시 같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침 햇살이 내리쬐는 대로변을 걸어 약국으로 향합니다.
 
지폐를 건네고 약을 받아들다 보면, 약국도 바깥과는 전혀 다르네요.
 
곳곳에 약 뿐만 아니라 연구용 선반 같은 것도 보이고요.
 
깔끔하게 정돈된 내부는 약국이라기보단 연구실 같은 걸 생각나게 합니다.
 
놀랍네요. 정말 한 20년 후에 떨어진 느낌이에요.
 
약 처방이 끝나면 이번에는 노아의 집으로 돌아옵니다.
 
계단을 올라가고 올라가면 보이는, 높다란 언덕 한 켠에 있는 작은 빌라.
 
노아의 집 문 손잡이에는 먼지가 더께 쌓여 있습니다.
 
여태 비워둔 집이니, 뭐라도 살지 않을까 걱정이기도 하네요...
 
노아:들어오세요. (커다란 가방을 매고 문을 열어주며)
 
노아는 집에 있던 가구는 모두 놓고 가는 대신,
 
중요한 물품만을 챙길 가방을 하나 들고 왔습니다.
 
시아록:응. (정말 오랜만에 와보는 너의 집이다.)
 
이사를 도와주는 대가는 다름아닌 이 집입니다.
 
바다로 돌아갈 당신에게 필요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팔기에도 뭣하니, 쓰고 싶은 대로 쓰라고요.
 
다행히 안전지대 안에 있는 집이라서인지 쥐나 바퀴벌레 같은 것과 인사하지는 않았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눈에 익어버린 내부가 눈에 들어옵니다.
 
들어오자마자 왼편에 화장실이 하나. 거실에는 소파와 작은 탁자. 그 옆으로는 골목이 한눈에 보이는 베란다가 하나. 안쪽으로 방이 두 개.
 
노아는 거실부터 향하더니 이것저것 뒤지기 시작합니다.
 
한참을 기다리고 노아가 돌아오면... 세상에!
 
가방에 집을 다 담은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짐이 큽니다!
 
가방을 맨 노아가 그 무게에 비틀거릴 정도니까요.
 
시아록:..노아, 그거 다 들고 다닐 수 있겠어? (휘청이는 당신을 붙잡는다.)
 
노아:...헉, 헉. 필요한 것만 들고 왔어요.
전화기는 아직도 멀쩡하고, 선반은 그냥 통채로 담아왔는데...
자, 잘 모르겠어요. 들고 갈 순 있으려나... (저절로 새우마냥 등이 굽어진다)
 
시아록:선반에 뭐가 있었는데...? (당신의 등에 매인 짐을 다시 보고 질린 눈을 해버렸다.)
 
노아:어... 그냥 이것저것이요. 책도 있고 앨범도 있고 인형이나 라디오도 있고...
 
그 밖에도 엄청나게 잡다한 물건들의 목록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이런 건 좀 두고 가도 괜찮지 않나?
 
시아록:... 지금 정리해서 가방에 다시 담자. 이 가방으로 그 구멍 통과도 못할 거 같아..
 
노아:(...너무나 맞는 말이라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하지만, 다 어딘가에는 쓸모가 있을 텐데... (쓸데없이 미련이 가득한 눈...)
 
시아록:그건 그렇지만, 너 지금 그거만 매고도 비틀거리고 있잖아. 구멍도 못 통과하고, 여행도 몇 걸음 못 갈 걸?
(당신의 미련 가득한 눈을 보고, 단호하게 현실을 자각시켰다. 가방에 손을 대보니, 대체 이걸 어떻게 매었나 싶었다.)
가방 내려놔...
 
노아:(어쩐지 혼나는 기분이라 잔뜩 풀이 죽은 얼굴로 바닥에 가방을 내려놓는다.)
그렇네요... (어쩔 수 없이 가방에서 물건을 꺼내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한다)
음, 역시 벽걸이 시계까지 들고 가는 건... 좀 그렇죠.
 
그리고 노아의 가방에서는 웬 살림이 다 나오기 시작합니다.
 
시아록:벽걸이 시계는 왜 챙긴 건데? (기함하며 시계를 당신의 손에서 빼냈다.)
 
온갖 상자며 전자기기 같은 무거운 것부터 부채나 빗 같은 사소한 것까지...
 
그 와중에 종류별로 하나씩 챙겼네요.
 
....노아는 이사를 하면 안 되는 사람 같습니다.
 
이래서야 대체 살던 마을은 어떻게 떠나겠다는 건지.
 
당신의 등쌀에 하나하나 짐을 내려놓고 정말 필요한 것만을 챙기면,
 
그제서야 사람이 들 만한 가방 크기가 됩니다.
 
노아도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가방을 매고요.
 
...집 떄문이 아니더라도 따라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아:(비상식량이나 정말 중요한 앨범 같은 것만을 남긴 가방을 툭툭 턴다...)
...근데 저 동화책은 진짜 들고 가면 안 돼요? 어릴 때 자장가처럼 듣던 건데. (말하며 10년은 더 되어 보이는, 표지와 책등이 분리되는 낡은 책을 쥐어들고)
 
시아록:(너덜한 책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챙겨가도 되겠지만..., 돌아갈 때 서점에 들리자. 네가 읽고 싶은 책이나 동화책 한 권 내가 사줄게.
 
노아:아, 서점은 어차피 들리려고 했어요. 시장가에도 한 번은 가야 하니까... (당신의 허락에 기쁜 낯으로 동화책 하나를 가방에 넣는다)
그럼 이제 광장 쪽으로 가 볼까요? (자리를 짚고 일어선다)
가서 살 것들이 많아요. 팔 것도 많고.
 
시아록:응. 음... 가방 내가 들어줄까? (손을 내밀었다.) 어차피 이제 끝나고 여행하면 내내 매고 다닐 거니까. 오늘은 내가 들어줄게.
 
노아:네? 전 괜찮은데... ...음, 들어보고 무거우시면 다시 돌려주시는 거에요. (하긴 가방을 대신 들려지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 테니까. 순순히 가방을 건넨다)
 
노아와 당신은 아인 광장으로 들어섭니다.
 
처음 안전지대에 왔을 때도 보았던 시계탑이 친숙합니다.
 
시장 거리에 죽 늘어선 가게들은 바뀐 게 안 바뀐 것보다 훨씬 많지만,
 
그래도 몇몇 것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둘러보기 전에... 시아록, 밥은 잘 챙겨먹었나요?
 
가방을 들어주며 근력 판정합니다.
 
시아록:
근력
기준치: 75/37/15
굴림: 85
판정결과: 실패
 
세상에, 한 팔로 받아드니 팔이 저절로 축 처집니다.
 
분명 아침에 식판도 긁고 왔는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힘이 없죠?
 
노아는 놀란 눈치로 가방을 다시 뺏어듭니다.
 
노아:
근력
기준치: 40/20/8
굴림: 29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러게 무리하시지 말라니까요. 내일 파견도 나갈 거잖아요. (가방을 거뜬히 들쳐매고 척척 앞장섬)
 
시아록:으.. 밥 안 먹어서 그런 거 뿐이야. (머슥하게 뒷목을 쓸며 네게 가방을 빼앗겼다.)
 
짐을 빼앗긴 팔이 무색합니다. 어쨌든 다시 시장가를 둘러보면, 파는 것은 달라져도 시장거리 특유의 활력은 변한 게 없네요.
 
곳곳에서 흥정하는 소리, 떠드는 소리가 귀에 들어오고,
 
구수한 냄새와 부스럭거리는 소리, 무언가 찌는 소리나 자르는 소리...
 
온갖 것들이 감각을 자극합니다.
 
광장의 중심에서 노아는 오늘 갈 곳을 하나하나 짚어줍니다.
 
골동품점, 서점, 잡화점... 그 밖에도 들리고 싶다면 뭐든지!
 
아, 저 쪽에는 단골 식당도 하나 보이네요. 반가운 간판입니다.
 
(비록 처음 갔을 땐 고작 15유로를 계산 못 하는 등 민망한 일이 있었지만)
 
어디로 먼저 향할까요?
 
시아록:어디부터 가지.. 노아는 배고프지 않아? (오랜만의 안전 지대는 둘러볼 곳이 많아 시선이 이리저리 움직입니다.)
 
노아:저요? 아침 배식은 받고 나와서 특별히 배고프진 않지만... 허기지시면 로스네 베이커리라도 갈까요?
전에 가끔씩 프레첼 사먹던 곳 말이에요. (없어진 건 아니겠지? 까치발을 들어 가게를 이곳저곳 살핀다)
 
시아록:좋아. 프레첼, 오랜만인데, 있겠지? (함께 눈이 구른다.)
 
당신과 노아는 산책하듯 전에 가던 빵집으로 향합니다.
 
그래요, 우선 끼니를 챙겨야 힘이 나죠.
 
다행히 로스네 베이커리는 전에 있던 곳에서 그대로 영업하고 있습니다.
 
요즘 매출이 오히려 올라서, 주인장 로스 씨의 얼굴이 더욱 붉습니다.
 
안에는 빵 굽는 냄새가 가득합니다.
 
갓 구운 식빵의 쫄깃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고소함이 절로 떠오르는 향입니다.
 
...물론 당신이 알고 있듯이, 독일은 좀 심심한 나라입니다. 독일 빵도 자기 나라를 닮아서 전부 맛이 심심하거나 견과류만 잔뜩 들어간 게 대부분이고요.
 
새로운 자극이나 식재료 같은 건 일절 내놓지 않습니다. 참 이 곳 사람들도 한결같아요.
 
새로운 빵만을 찾다 보니, 우리는 졸지에 아인 광장 안의 빵집 메뉴를 모두 먹어본 사람이 되었습니다.
 
(당연하죠, 한 집 건너 한 집이 죄다 똑같은 통밀빵만 팔고 있는데요)
 
그것은 가게에 들러도 딱히 눈에 띄는 메뉴가 없다는 뜻입니다... 어차피 통밀빵이거나 치즈가 들어가거나 견과류가 들어가거나 셋 중 하나겠죠.
 
뭘 먹어볼까요? 모카빵, 바게트, 식빵, 프레첼 등등이 놓여 있습니다.
 
아, 한켠에는 크루아상이나 베를리너(독일식 도넛) 같은 것도 있고요...
 
시아록:나는 프레첼 먹고 싶은데, 오랜만에 왔으니까.. 바게트나 베를리너도 좋지만. 노아는 뭐 먹고 싶어? (군침이 흐르는 냄새가 나는 빵들을 둘러본다. 시선이 먹고 싶은 곳에 예외없이 긴 시간 머물렀다.)
 
노아:전 시아록이 먹는 거랑 같은 거요. (보기만 해도 죄다 비슷한 냄새가 나는 메뉴들을 훑어본다. 이 곳은 여러모로 변한 게 없구나...)
 
시아록:그래? 그럼 나 프레첼 먹을래. 두 개 주문할까?
 
노아:네, 전 플레인으로요. (주머니를 뒤지더니 생활비로 보이는 지폐를 건넨다. 이걸로 계산하라는 듯)
 
시아록:나도 돈 있을 거야. (주머니를 뒤진다.)
 
그럼요, 바로 며칠 전에 진주도 팔았는데요...
 
설마 돈이 한 푼 없을까요? 시아록, 재력 판정.
 
시아록:
재력
기준치: 50/25/10
굴림: 1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다행히 어렵지 않게 빵값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무사히 계산을 하고 빵집을 나서며 프레첼을 하나씩 입에 뭅니다.
 
크림치즈가 들어간 달콤한 빵은 언제 물어도 참 바삭바삭하고 맛있네요. 이제 조금은 물릴 지경이지만.
 
어쨌든 배를 채웠다면, 다른 곳에도 들릴 차례입니다. 오늘 할 일이 참 많으니까요.
 
어느 가게부터 갈까요?
 
시아록:물건 사는 건 나중에 가고.. 골동품점부터 들려도 될까? 구경만 하고 나올 확률이 크지만...
(제 입가에 붙은 부스러기를 혀로 훑어내며 너를 돌아보았다.)
 
노아:(입가를 프레첼을 감싸던 종이로 닦아내고는) 아, 네. 골동품점은 광장 변두리에 있으니까 가까울 거에요.
다른 건 천천히 해도 되니까. (찌르릉거리는 자전거 사이를 지나 골목을 통과해 골동품점으로 간다)
 
골동품점은 전에 혹시 몰라 나침반을 맡겼던 곳입니다.
 
이 곳까지 길을 안내해준 나침반은 빙글빙글 돌다 멈춰버렸거든요.
 
정말 고장이라도 난 줄 알고 맡겼지만, 확인해보니 '나침반 자체에는' 이상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모든 기관과 침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요.
 
주인장은 가리킬 것이 없어서 멈췄거나, 무언가 외부의 영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건 아니냐는 의견도 조심스레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이상해진 것을 더 뜯어보기에도 뭣하니,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나와야 했죠.
 
노아는 집에 있던 돈이 될 만한 것들을 팔기 위해 카운터로 향합니다.
 
딱히 용건이 없는 당신은 선반을 훑어봅니다.
 
눈에 띄는 물건이 있나 보려면, 행운 판정합니다.
 
시아록:
기준치: 80/40/16
굴림: 3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구석에 있는 자명종 시계 사이에서,
 
오르골이 내장된 워터볼 하나를 발견합니다.
 
안에 든 것은...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무언가 형용하기 힘든 물체가 부서지며 푸른 물 속으로 하얀 눈을 뿌리는 게 보입니다.
 
마린 스노우를 표현한 걸까요?
 
...더 찾아보려면 재판정합니다.
 
시아록:(여기도 마린스노우 같은게 있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워터볼을 흔들다가 내려놓았다.)
기준치: 80/40/16
굴림: 51
판정결과: 보통 성공
 
또 다른 진열장에는 카세트 라디오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완전히 초기 버전이네요.
 
라디오를 보는 순간, 어렴풋하게 무언가 떠오릅니다.
 
어디선가 이걸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아주 익숙한 형태입니다.
 
시아록:(어디서 본 거 같지만, 이게 뭐지? 한참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당신을 불렀다.)
노아, 이거 봐.. 이게 뭔지 알아?
 
노아:아, 여기도 카세트 라디오가 있네요... 다행이다.
 
노아는 허락받았다는 말을 덧붙이며, 전선을 연결하고 손바닥만한 카세트 테이프 하나를 꺼냅니다.
 
음악을 재생하면 몇십년 전 국가가 흘러나오네요.
 
달칵거리며 뚜껑이 열고 닫히는 조잡한 기계를 보며 당신은 알아차립니다.
 
이거, 심해의 박물관에서 본 것이잖아요.
 
분명 그런 설명이 덧붙여져 있었죠.
 
신호를 받아들이는 막대기란 안테나를 말한 것이었어요. 조개를 열었다 닫는 것마냥 달칵달칵 소리를 내며 열리는 뚜껑은 카세트 테이프를 넣는 구멍이었고요.
 
생각에 빠진 한편, 노아는 테이프가 망가지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다시 꺼내듭니다.
 
노아:부모님 세대부터 있던 물건이었거든요. 그때는 테이프도 비싼 가격이어서, 두 달 치 월급을 털어서 장만하셨다고 하셨죠.
소중한 물건이에요.
 
시아록:그렇구나.. (심해 박물관에는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추측이었을 뿐인데, 뭔가 자세히 알게 되니 신기한 기분이다.)
 
곰인형, 자전거 바퀴, 카세트 라디오. 조각난 인류의 추억과 희망의 흔적은 흩어져 바닷속까지 가라앉았습니다.
 
그 사실을 떠올리면 조금 씁쓸해지기도 하네요.
 
아무튼 노아는 카운터에 가서 무언가 흥정하고는 역시 뿌듯한 얼굴로 돌아옵니다.
 
제값을 받은 모양이죠.
 
노아:시아록, 다 둘러봤으면 이만 갈까요?
 
시아록:응.. 다 둘러봤어. 노아는 뭐했어?
 
노아:집에 있던 골동품을 팔았어요. 아까운 것들도 많았지만 말마따나 다 들고 갈 수도 없고...
그래도 더 좋은 주인에게 갈 수 있다면 좋은 거겠죠.
 
시아록:그렇구나. 네가 괜찮다면 그래도 되겠지..
이제 어디갈까? 서점? 잡화점?
잡화점에 살 거 많으면 서점부터 가자.
 
노아:음, 잡화점에서 살 건 딱 하나밖에 없으니까 괜찮아요.
잡화점은 저 쪽 건물 2층이니까, 그 쪽으로 가요. (골동품점 문을 딸랑, 열고 나와 낡은 건물로 향한다.)
 
잡화점은 이 근방에서 가장 큰 가게입니다.
 
이 곳에서는 화분도 팔고, 열쇠고리도 팔고, 생필품도 팔고, 필기구도 팝니다.
 
거대한 시장을 가게 하나에 밀어넣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노아는 전처럼 한눈팔지 않고 곧장 한 곳으로 향합니다.
 
그 시선을 따라가면, 진열대 위에 카메라가 있습니다.
 
비싸지 않냐고 물어보면, 아까 골동품을 팔아 충분히 마련했으니 괜찮다고 답합니다. 어차피 사야 할 것이기도 하고요.
 
과거의 추억을 팔아, 새로운 추억을 쌓으려 하는 겁니다.
 
...그조차 바다에 수장될 추억이지만 당신은 어쩐지 말리지 못합니다.
 
오늘 못 사면 안 된다는 듯 태도가 워낙 굳건하기도 하고요.
 
시아록:(추억을 남기기 위한 카메라. 어째서인지 눈물이 나올 정도로 슬퍼지는 기분이지만, 그것과 다르게 쉽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끊임없이 침몰할 앞을 아는 건 좋지 않다. 그래도... 그럼에도, 아마 이 과거는 나에게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너랑 다른 사람들, 그걸로 찍어도 돼?
(제 마음을 좀먹어가는 것 같은 기분을 목 뒤로 삼킨 채, 부러 밝게 얘기했다.)
 
노아:아, 그럼요. 근데 이거, 암실이나 어두운 곳에서 말려서 인화해야 한대요.
사진기의 원리가 적힌 석판은 발견된 지 고작 몇 달이라고 들었는데, 벌써 팔릴 만큼 다 완성되었다니... 역시 안전지대라는 걸까요?
 
시아록:이렇게까지 다른 세상인 걸 보면, 그런 건 금방인가봐.
 
노아:다행이네요. 시아록이 떠나는 때에 맞추지 못하면 어쩌나 했는데. (밝게 말하고는 있지만 조금은 씁쓸해보이는 표정.)
여기만큼 변화가 빠른 곳도 없을 거에요... 이렇게 득을 많이 보고 있으면, 레지스탕스한테 좀 더 투자해주면 좋을 텐데. (부자들이 다 그렇죠. 죽어도 돈은 아끼고 싶어하고... 한숨을 쉰다)
 
시아록:그러게. 죽으면 다 끝인데.
(답지 않게 이를 드러내며 사납게 웃었다. 자신만큼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 그 돈이란 걸 바리바리 끌어안고 당신들은 바다 깊이 처박힌단 걸, 알까? 고생하는 동료들을 보면 괜히 심술이 났다.)
 
노아:적당히란 걸 모르는 사람들이라 그런 거에요. 살아있는 동안 제 명에 다 쓸 수 있는 돈도 아닌데. (유독 못마땅한 표정으로 끄덕인가)
아무튼 전 계산하고 올게요. 시아록은 살 거 있어요?
 
시아록:아니. (예전과 다르게 쉽게 고개를 내저었다. 기숙사만 해도 가지고 갈 게 얼마나 많던가. 더 샀다가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속상할 터다.)
 
노아:음, 하긴 바다에 책이나 시계나... 그런 건 못 가져가겠죠?
그럼 수중 인류는 정말로 바닷속에 존재하는 재료만으로 모든 걸 만들어 쓰는 거에요? 바닷속에 플라스틱이나 철 같은 건 없을 거잖아요. 아, 콘크리트도.
필요하시면 저희 거라도 좀 들고 가 보세요. 참고하면 생활이 더 편해질 만한 게 많으니까...
 
시아록:응. 진짜 바닷속에 있는 걸로만 만들지. 다시마 줄기나, 돌이나.. 갖고 가면 편하긴 하겠지만, 바닷물이란 건 꽤 강해서 여기 물건들은 못 버틸 거야.
(바닷물에 금방 닳아버리는 모든 것들을 떠올리며 웃었다. 우리는 바다를 이길 수 없다.)
 
노아:정말요? 하긴 옷도 처음에는 미역이나 물고기 비늘 같은 걸로 엮은 걸 입고 계셨으니까... (그 땐 정말 놀랐었지, 라며 옛 추억을 회상해 본다)
물 속 세계도 마냥 평화롭지만은 않구나... (신기해하며 납득하고는 카메라를 계산하고, 이만 가게를 나선다)
 
시아록:바다 속은 지상이랑은 전혀 다른 공간이니까. (계산하고 나서는 너를 졸졸 따라갔다.)
이제 서점!
 
서점에서는 살 게 많다고, 노아가 미리 경고(?)했었죠.
 
아무래도 책을 잔뜩 살 모양인지, 특정 코너 앞에서 책을 펼치고 덮고를 반복합니다.
 
...적당히 시간을 때워야 할 것 같죠. 뭐라도 읽어볼까요?
 
시아록:(이것저것 확인하는 너를 빼꼼 쳐다보다가 이내 심심해져서 주변의 아무 책이나 집어들었다.)
 
서점에서는 넘치는 게 책입니다. 석판처럼 무겁지 않으면서도 훨씬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있는.
 
하지만 부럽다고 느낀 적은 없습니다. 석판에 있는 기록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걸요.
 
돌 위에 새긴 문자들은 이런 종이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오랜 세월을 걸쳐 전해진 것이기도 하고요.
 
이 곳의 책은 오히려 글자가 너무 많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무튼 책을 집어보려면, 책장에 여러 카테고리가 있습니다.
 
지금 눈에 띄는 건 시사/경제 분야, 역사 분야, 과학 분야. 크게 셋이네요. 여행 분야는 노아가 이미 살펴보고 있고요.
 
시아록:(시사/ 경제 분야는 슬쩍 보고 후다닥 도망쳤다. 역사 분야에 들어서 책을 집어들었다.)
 
역사책을 아무거나 집어들면...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기록]이라는 제목의 책이 잡힙니다.
 
읽어보면, 인쇄의 역사를 다루고 있네요. 인류가 남긴 여러 가지 기록 방식이 시대별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금속활자, 인쇄기... 그 다음에는 재료가 나열되고요. 나무와 종이가 가장 대표적이며,
 
더 오래 전으로 흘러가면 석판, 아예 선사 시대까지 가면 동굴 벽.
 
... 그런 내용이 이어집니다. 조금 지루할지도 모르겠어요.
 
*신경쓰이는 부분이 있다면 더 자세히 읽어볼 수도 있습니다.
 
시아록:(바다에선 뭔갈 기록하기도 그리 쉽진 않은데..선사시대의 동굴벽과 석판에 관해 살펴본다. 뭔가 브리니클의 석판 같은 것도 생각나고....)
 
석판 부분을 훑어보면, 인류가 극초기에 사용한 방식이라는 말만 나와 있네요.
 
그러고보면 예전에, 최초의 석판이 남극에서 발견되었다는 설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저 흘려 넘겼는데, 생각해보니 켈러 씨가 말하던 남극의 유물과 석판이 어느 정도 겹치네요.
 
시아록:(별 거 없네.. 무료한 얼굴로 책장을 넘겼다. 이제 브리니클 해치우러 갈 건데.. 뭐, 진짜 아무 것도 없고.. 콧잔등만 찡그리며 책을 내려놓았다.)
 
그러고 보면 브리니클의 본거지도 남극에 있다고 했었죠.
 
이 모든 건 그저 우연일까요?
 
...당신은 과학 쪽의 책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시아록:(아직도 책을 고르는 것 같은 노아를 보다가 과학 분야의 책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읽는다고 자신이 알까마는 그냥 한 번쯤 읽어보기로 했다. 콜드슬립에 관한 것도 있으려나.)
 
콜드 슬립에 관한 책자라면... 있습니다.
 
하지만 향후 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같은 상투적이고 지루한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네요.
 
그 옆에 있는 책을 펼쳐보면, 타임 패러독스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명한 이론이죠.
 
과거를 바꾸면, 반드시 그 미래도 영향을 받는다고 했던가요.
 
그래서 과거로 돌아가 조금이라도 인과율에 영향을 끼치면... 심하게는 나라 하나가 없어지는 커다란 나비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당신이라면 그냥 읽고 지나치기 힘든 내용이겠네요.
 
수중 인류는 지상 인류의 멸망으로부터 기원된 존재들이잖아요.
 
그럼 당신이 이대로 멸망을 막을 방법을 찾아,
 
그들의 미래를 만들면...
 
동시에 당신의 미래는, 당신이 슈슈와 돌아갈 곳은 없어지고 맙니다.
 
아니, 애초에 당신과 슈슈는 수중 인류니까, 둘 다 사라질지도 모르고요.
 
시아록:(미래에 대한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나는 이미 내 현실에서 과거로 와서 이렇게 많은 것을 내 멋대로 바꾸고 행동하고 있는데... 내 현재까지의 과거에서 내가 여기에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멸망하고서 바다까지 사람들이 흘러들어온 건지. 아니면 나는 이미 바꾸고 있는지... 내가 내 현재로 돌아갈 때까지 알 수 있을까? 내가 멸망을 막았을 때 이 지상은 이대로 남아서 내 고향을 없애버리는가? 아니면 내가 막았다고 해도 또 다른 미래에 멸망해버리고 바닷속의 마을을 생겨나는 건가? 그리고 슈슈는? 나는? 마을 사람들은? 많은 가설들이 머릿속에서 하나로 혼재되어 이내 두통이 찾아왔다. 마른 세수를 하다가 낮게 한숨을 쉬었다.)
 
당신은 슈슈를 연표의 기준으로 삼고... 슈슈가 깨어나기만 한다면 바로 돌아가리라 생각했습니다.
 
지상의 멸망이나 존속에 대해서는 아직 생각해보지 못했었죠.
 
당신은 거대한 인과율에 손을 대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오히려 멸망으로 다가가게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당신이 어떤 짓을 해도 인류가 멸망했을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이대로 지상 인류의 미래를 연장한다면, 그로 인해 평화를 누리는 이들 때문에,
 
가라앉아 수중 마을을 구성할 인간들과 유적지의 절벽들...
 
그런 것들이 가라앉지 못한다면, 이대로 브리니클이 모두 없어져버린다면.
 
그리하여 당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거나, 슈슈와 돌아갈 미래가 없어진다면.
 
당신은 괜찮은가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도... 버틸 수 있나요.
 
시아록:(결국 마른 손에 얼굴을 묻은 채 책장 사이에 쪼그려 앉았다. 세상이 나한테 너무 잔혹한 거 아니야? 낮게 중얼거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욕심쟁이라 당신들도, 또 당신들도 놓을 수가 없는데. 그럼에도... 만약 슈슈와 당신들을 놓고 저울질 한다면 나는, 감히 슈슈만 선택한 채로 침몰할 테다. 오롯이 나의 선택(잘못) 하나로 일어날 그 모든 인과에 나는... )
(모든 걸 떠안고 가라앉을 것이다.)
 
세상이 당신에게 던지는 질문은 잔혹하고, 한낱 인간이 받아들이기엔 난해할 만큼 복잡합니다.
 
심지어는 답이 규정되어 있지도 않아요.
 
어쩐지 울고 싶어지는 기분이 됩니다. 지상 인류의 멸망을 이대로 두고 보는 건 옳은 일일까요?
 
수중 인류가 사라지게 하는 것은요.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감히 당신에게 손가락질 할 이는 없습니다.
 
당신이 모든 죄업을 떠안고 슈슈와 심해 바닥에 닿는 동안,
 
비난할 이는 모두 죽고 없을 테니까요.
 
...제 생각에 너무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은 과거로 돌아왔잖아요. 이건 어떠한 계시일지도 모르고 기회일지도 몰라요. 슈슈와 수중 마을의 몰락을 막을 수 있는.
 
그런 생각과 함께 숨죽여 앉아 있으면, 저 멀리에서 노아가 다가옵니다.
 
들고 온 것은 모조리 여행에 관한 책이네요.
 
세계 각국의, 걸어서 갈 수 있는 관광지부터 이동 수단의 힘을 빌려야만 할 만큼 먼 관광지까지...
 
앞으로 그의 미래가 될 것이 담겨 있습니다.
 
노아는 머리를 감싸고 있는 당신을 보곤 묻습니다.
 
노아:...시아록? 책 읽어요?
무슨 책이에요? (이 쪽을 힐끔거리며)
 
시아록:(당신의 물음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올려다본 품에 들어찬 당신의 여행에 관한 많은 책들이 다시금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결국 슈슈를 놓치 못한다. 그러니 너의 여행이... 네가 만족할 만큼 이어지기를. 그 바람을 뱃속에 집어넣은 채로 어설프게 웃었다.)
그냥 아무거나 집어든 거였어...
(타임패러독스에 대한 책의 표지만 네게 보여주고는, 금방 책장에 꽂아버렸다.)
 
노아:<시간 역설로 말하는 물리학>...? 어려운 거 읽으시네요. (잘 모르는 주제인 듯 고개만 한 번 갸웃하고 만다.)
(책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얼굴을 감싸고 계셨나? 멋대로 오해 아닌 오해를 하곤) 그,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날 때부터 지상 인류였던 저도 잘 모르는 내용인데...
앞으로 차근차근 배우면 되잖아요. 배, 배울 수 있는 내용이 많다는 건 깨달을 때의 즐거움도 많다는 거니까 좋은 게 아닐까요...?
 
시아록:으응.. (쓰게 웃었다.) 나도 잘 모르겠더라.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냥 눈에 띄었을 뿐이었어. 노아는 책 다 골랐어?
 
노아:아, 네. 이 정도면 고를 건 다 골랐어요.
지구 저편에 핀란드라는 땅이 있는 거 아세요? 그 나라는 남극, 이라는 곳만큼이나 설원에 파묻혀있대요.
아이슬란드라는, 저쪽의 조용하고 책도 많이 읽는 섬도 있고요. 아니면 화산 폭발로 유명한 섬나라나 모든 게 거울처럼 비쳐 보이는 소금 사막도 있어요.
세상은 생각보다 아주 넓네요. 여태 관심이 없어서 몰랐어요.
혹시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 쪽으로 또 놀러오세요. 만에 하나 마주친다면 곳곳에서 찍은 사진이라도 나눠드릴게요.
 
시아록:브리니클만으로도 정신없었으니까. (어깨를 으쓱이다가) 좋아. 갈 수 있다면 갈게. (갈 수 있다면... 속으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아는 책 표지의 오로라 사진을 보여주더니 고개를 끄덕입니다.
 
당신이 이걸 못 보는 건 아쉽지만 바닷속에는 인류도 모르는 더 아름다운 풍경이 있을 테니 괜찮겠다는 말도 덧붙이고요.
 
책 대신, 여러 무거운 생각들을 안고 나옵니다.
 
이제 정말로 일과는 마쳤으니 돌아갈 때죠.
 
밖은 벌써 해 질 녘의 오묘한 색깔이 해 주변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햇빛을 등에 지고 옆에서 걸어가던 노아는 문득 말합니다.
 
노아:내일은 눈이 온대요.
신기하죠. 여태 날이 맑았는데.
그 북극이라는 곳에는 워낙 자주 온다고 하니까...내일 출전하면 거기서도 볼 수 있겠죠?
(잠시 옆머리를 꼬며 말한다. 이내 그게 본론은 아니었던 듯 다시 입을 열고)
저, 슈테른 씨랑 겹쳐본 적 있었죠.
 
시아록:(눈 얘기에 집중하다 갑작스러운 말에 눈이 커졌다. 1초, 2초, 극히 짧은 시간 후에 저도 모르게 벌어진 입으로 낮은 웃음 소리가 나와버렸다.)
슈슈가 콜드 슬립이 아니라 만약 나와 발 맞춰 자랐다면 노아랑 닮았으려나 그런 생각하긴 했지만. 있잖아, 노아. 나는 단 한 번이라도 너와 슈슈를 겹쳐보거나 같은 사람처럼 착각한 적 없어. 잠결조차. 너랑 슈슈가 다른 사람이란 건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건 슈슈한테도 너한테도 실례잖아.
 
노아:...본인도 모르셨죠? 지금은 아니고, 전에 가끔 그런 시선을 느낀 적이 있었어요. 하도 일만 하셔서 병원에 가니 마니 옥신각신할 때. (턱에 손을 얹으며 이야기한다. 슈테른은 낄 리 없는 가죽 장갑에 나이에 맞지 않게 굳은살이 박힌 손.)
 
노아는 끄덕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모로 기울입니다.
 
...그러고 보면, 노아는 슈테른과 약속이라도 한 듯이 머리를 죽 풀고 다녔습니다.
 
가끔 작전을 나갈 때 편의를 위해 묶기는 했지만,
 
그것도 두 갈래로 묶거나 옆으로 묶은 적은 없었죠.
 
그냥, 언제부턴가 그랬습니다.
 
일단 이 쪽을 똑바로 보고 있으니까 기분이 상하거나 화난 건 아닙니다.
 
오히려 아무 생각도 없어 보여요. 아니면 그런 척을 하는 건지.
 
시아록:노아가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 글쎄, 그래도 난 노아랑 슈슈가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 그래도 그렇게 느꼈다면 내가 잘못한 거겠지.
 
노아:아, 사과받으려고 한 소리는 아니었어요. 저도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잘 알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앞으로 슈테른 씨를 볼 때 저를 겹쳐보거나 떠올리지는 말라고, 하고 싶었어요.
 
그 때에 전 이미 이 곳을 떠나고 없을 테니까. 아예 죽은 사람처럼, 그리워하지도 말고 떠올리지도 말아 달라는. 차분한 목소리가 이어집니다.
 
노아:전 그럼 이삿짐 정리하고, 오필리아 씨랑 상의할 게 있어서 선착장에 잠시 들렀다 갈게요.
 
시아록:(차분한 당신의 말을 들으며 두어번 눈을 깜빡였다.)
알았어. 그럴게.
 
노아:전처럼 저 없다고 길 잃으시면 안 돼요. (가볍게 웃어주곤 손을 흔들며 멀어진다)
 
시아록:...조심히 가. (너의 등 뒤로 저도 따라 작게 손을 흔들었다.)
 
...당신은 다시 편안한 숙소로 가 침대에 얼굴을 묻습니다.
 
이건 모두 아침부터 쉬지도 못하고 뛰어다닌 탓이라고 생각하면서요.
 
그러고보면 이제는 모든 게 당신의 추억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지난 4년간, 입는 것도 먹는 것도 자는 것도... 모두 이 곳 지상 세계에서만 했잖아요.
 
병원도 약국도 레지스탕스 기지도, 단골 상점이나 아인 광장, 노아의 집. 안전 지대 안으로 뻗은 포장 도로까지.
 
모두 당신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슈슈가 모든 일의 구심점이라 몰랐는데 생각보다 당신의 '고향'은 훨씬 넓었던 거에요.
 
이런 세계가 침몰한다니, 당신은 어떡하면 좋을까요?
 
자책해야 하나요? 안도해야 하나요? 걱정해야 하나요?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혼란스러운 생각을 외면하려 짐에 손을 댑니다.
 
노아처럼 당신도 이삿짐을 싸야 하긴 하니까요. 바로 내일모레가 당신의 송별회잖아요?
 
생각이 잠잠해질 때까지 손에 짐이 닿고,
 
그렇게, 당신은 밤까지 잠들지 못합니다.
 
악몽 때문만이 아닌 다른 이유로.
 
 
마지막 열쇠
 
...그것도 모두 어젯밤의 얘기입니다.
 
어제는 모처럼 꿈도 꾸지 않고 푹 잤습니다.
 
노아가 시키는 대로 수면제를 먹은 덕분일까요.
 
개운한 몸을 일으키면 바깥에서부터 난잡한 소음이 잔뜩 흘러들어옵니다.
 
아침부터 TV에서 레지스탕스가 승전보를 가져오리란 속보가 줄기차게 쏟아지고 있거든요.
 
네, 드디어 오늘인 겁니다. 설원의 동굴로 출격하는 것이!
 
누군가는 단번에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니냐고 걱정했지만,
 
미뤄봤자 브리니클이 도망가거나 또다시 침투할 빌미만 주는 꼴이니
 
속전속결로 처리하자는 것이 레지스탕스에서 대두되던 의견이었습니다.
 
오늘은 딱히 아침에 할 건 없습니다.
 
조금 쉬다가 오후가 되면 비행선에 탑승하기만 하면 됩니다.
 
자, 무엇을 할까요?
 
시아록:(어제는 뭔가 순식간에 잠들고 일어났다. 눈뜨니까 아침인 기분이다. 어제의 그 고민들 모두를 어딘가에 치워놓은 것 같은 기분에 벌떡 일어나 씻고 준비해 기숙사를 나왔다. 자연스럽게 발이 병원으로 향했다.)
 
밥을 먹는 것보다도 병문안이 우선합니다.
 
정확히는 그냥 무의식적으로 발을 움직이고 보니 이곳, 슈슈의 병실에 있는 것에 가까운 거겠지만요.
 
콜드 슬립 기계 안에는 여전히 얼어붙어 평온한 슈슈가 존재합니다.
 
오늘따라 혈색이 좋아 보여요. 그 돌덩이들을 계속 해치우고 있기 때문이죠.
 
브리니클의 격파는 슈슈의 호전과도 연결되니, 앞으로도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슈슈는 아직 자고 있어, 당신이 온 줄도 모르는 것 같아요.
 
그래도 수중 인류인 덕에 물속에서 답답하다거나 춥다고 느끼지는 않을 겁니다.
 
원한다면 아침 인사를 건네도 좋습니다. 모처럼 좋은 날이잖아요.
 
시아록:(처음보다 훨씬 나아진 안색에 뭔가 일어날 때부터 이것저것 잘 풀려가는 거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쉽게 밝은 얼굴로 슈슈에게 인사를 건낼 수 있었다.)
안녕, 슈슈. 오늘은 아침부터 그냥 기분이 좋네. 뭔가 모든 게 다 되어가는 기분이라 그런가봐. 너도 오늘은 기분 좋을까? 그럼 좋겠다.
오늘은 이제 마지막으로 브리니클을 모두 없애러 가. 모든 브리니클이 없어졌을 그 순간에 네가 눈을 뜬다면.. 직접 못 보는 게 아쉬울 거 같지만, 난 전에도 말했듯이 내가 깨어있는 것만으로도 기쁠 거야. 먼저 일어나있으면 어서오라고 나중에 얘기해줄래?
 
브리니클과의 전쟁이 쉽게 끝날지는 모르겠습니다.
 
언제쯤 슈슈에게서 잘 자라는 인사가 아닌 새로이 맞는 아침 인사를 들을 수 있을지도.
 
하지만, 이마가 그리는 호선마저 외워버릴 만큼 마냥 그립고 익숙한 얼굴을 맞대고 있으면,
 
어쩐지 무엇이든 잘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저도 모르게 기분 좋은 웃음이 지어집니다. 이렇게 차가운 포옹도 견딜 수 있는 당신이니
 
차가운 브리니클들과의 싸움도 결코 어렵지는 않을 거에요.
 
당신은 언제나 아쉬운 작별을 하고 레지스탕스 기지로 돌아옵니다.
 
숙소는 오늘도 평화롭습니다. 밝은 분위기도 한층 더 감돌고 있고요.
 
따로 할 게 없다면 침대에 다시 눕거나, 점심 배식을 기다리거나, 이삿짐을 미리 싸 둘까요.
 
시아록:(아침을 넘겼으니 점심을 먹으러 어슬러 식당으로 향했다. 맛있는 거 있으려나?)
 
오늘의 점심 메뉴는 치즈 그라탕과 아스파라거스 샐러드입니다.
 
아, 원하는 사람은 샐러드에 참치도 넣어먹을 수 있다네요.
 
후식은 방울토마토입니다. 보통 것과는 다르게 길쭉길쭉하게 생겼네요.
 
국물이 없는 건 아쉽지만, 급식치고 아주 제대로 된 요리가 나왔습니다.
 
당신은 시간도 모르고 너무 일찍 와 버렸고, 기어이 오늘 식당을 1등으로 밟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따끈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건 좋지만...
 
이 넓은 식당을 독차지하고 있는 기분이 이상합니다.
 
시아록:(이렇게 사람 없는 식당은 별로 경험한 적 없어서 이상한 기분이다. 늘 북적북적하던 곳이 한없이 조용하니, ... 이걸 대체 무슨 기분이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음식을 받은 식판을 들고 잠시 멍하니 탁자와 의자를 둘러보았다. 늘 넓다고 느끼지 못했었는데... 이렇게 넓었나? 여기에 와서 너무 사람과 부대꼈나보다. 늘 사람이 적은 게 익숙했는데, 어느새... 사람이 없는 걸 어색하게 느끼다니.)
 
수중 마을은 적은 사람들끼리 오순도순 살았었죠. 아마 이 식당 안의 절반도 못 채울 겁니다.
 
그걸 새삼 떠올리자니 당신은 지상 세계라는 곳에 익숙해져있던 모양입니다.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가랑비에 옷 젖듯이.
 
심지어 이제 물물교환 거래보다는 뭐든 돈으로 해결하는 게 편하고요.
 
생활 습관부터 식재료까지도, 뭐든 지상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텅 빈 식당을 보면 조금 외롭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런 걸로 낙심할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당신은 씩씩하게 샐러드를 입에 넣습니다.
 
아스파라거스는 신선하게 보관했는지 아삭아삭하고 드레싱은 고소하네요. 음! 토마토가 참 달콤하네요.
 
물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채소를 씹은 것만으로도 벌써 입안이 상쾌해집니다.
 
어쨌든 점심까지 잘 먹고 배를 두드리다 보면 선착장 쪽에서 무언가 소리가 납니다.
 
시험 운행중인가 봐요. 정말 곧인 겁니다.
 
...
 
아틀란티카는 유유히 허공을 가르고 날아갑니다.
 
오늘은 레지스탕스의... 말 그대로 모든 인원이 비행선에 탑승해서인지 속도가 조금 느린 것 같은 느낌도 들어요.
 
탐사대원 뿐만 아니라 이오리처럼 대원이 아닌 관련자도 함께 실었거든요.
 
그야 오늘은, 마지막 남은 본거지를 타파하는 날이잖아요!
 
거기다 극지대는 온통 새하얀 눈으로 덮여 있다고 노아가 그렇게 성화를 부렸는걸요.
 
그 깨끗한 설원의 경치가 보고 싶어 탑승한 사람도 몇 있고요.
 
레지스탕스가 아닌 외부인까지 탑승하고 싶다고 몰려와서, 대장이 뿌리치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아무튼, 창 밖으로는 어느새 노을이 다 지고 밤이 덮인 하늘만 가득차 있습니다.
 
오늘은 요한이 운전을 맡는 날이라며, 노아도 곁에 있고요.
 
설원은 한참을 날아가야 하는 아주 먼 곳입니다. 아마 하룻밤을 자도 모자라다고 했던 것 같아요.
 
오래전 남극, 북극이란 이름으로 불리던 곳이라고 켈러 씨가 말했었죠.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들판이라니. 모래사장과는 전혀 다른 느낌일까요.
 
어쩌면 켈러 씨가 말한 남극의 유물, 우주의 보고가 남아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아록:엄청 머네... (창 밖을 내려다보니 하늘이고 땅이고 바다고 아무것도 구분되지 않은 채로 새까맣다.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어서 그런 건지 겁나진 않는다.)
노아는 나중에 요한이랑 교대해야해?
 
노아:그렇죠. 극지대가 왜 극지대냐면, 아마 지구의 끝과 끝점에 있어서 그렇다고 해요.
인간으로 따지자면 정수리와 발바닥이라는 느낌이라는데... 무슨 말일까요?
아무튼, 이렇게 보니까 까마득하네요, 모두. 저렇게 도시의 불빛이 선을 따라 이어지고 있으니까, 빛으로 그린 들판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책을 덮고 하품을 한 번 한다) 이따가 한 번요. 계속 요한한테 시켰다간 곡소리를 낼 거에요... 무리하게 두고 싶지도 않고.
 
시아록:그렇구나. (인간의 정수리와 발바닥? 끝과 끝? 어깨를 으쓱하고, 당신의 말에 시선이 빛으로 향했다.) 아름답긴 하네..
피곤할 거 같은데, 교대하기 전에 한숨 자야 하는 거 아니야? 밤새 그리로 향해야한다며?
 
노아:이륙할 때의 광경은 언제 봐도 떨리는 것 같아요. (창문만 들여다보면 잠이 확 달아나는 얼굴이 된다.)
그렇죠... 빨라도 내일 아침에나 도착할 거에요. 한 숨 자면 좀 나을 것 같기는 한데, 침대에 누우면 아주 푹 자버릴 것 같아서...
그냥 책이나 보면서 버티려고요. 읽다 보면 재밌으니까...
시아록이야말로 얼른 이 닦고 주무세요. 곧 새벽이잖아요. (다시 한 번 하품을 흘리고)
 
시아록:응, 그래. (비행선을 운행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워낙 적으니 당신이 하겠다는 것에 반대할 수도 없다.) 무슨 책인데? 여행책?
(네 하품에 옮아 하품했다. 졸린 건 아닌데..) 자는 게 나을까?
 
노아:네, 여행 책이요. 이 세상엔 정말 신기한 나라가 많네요. 다 가 볼 자신은 없지만, 보고 싶은 게 많아요.
음... 시아록은 버틸 필요도 없잖아요. 내일 있을 작전을 위해서라도 좀 주무세요. 아니면 떨려서 잠이 안 오시는 거에요?
 
시아록:응... 음, 그렇지. ( 버틸 필요 없다. 내일 작전에서도 자신이 딱히 할 일이 많은가 싶다. 비행선이 있고부터 일들이 너무 쉬워졌다.)
그런 건 아니야, 그냥 안 졸리는 거지. 어제밤에 너무 잘 잤나? (자는 게 좋다는 걸 알면서도 뭔가 우물거리게 된다.)
 
노아:아, 수면제가 효과 있었나 봐요. 다행이네요... 약은 안 빼먹고 잘 챙겨오셨죠?
(침침한 눈을 비비다가 저쪽에서 큰 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금방 일어난다.) 아, 벌써 그렇게 됐나...?
 
시아록:응, 챙겨왔어. (가방에 있던 수면제를 떠올린다. 그걸 먹고 오늘 잘 생각은 없지만.)
 
노아:저, 저 다녀올게요! (다급하게 소파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시아록:벌써 교대할 시간이네.. (소리가 들린 곳으로 사라지는 너를 보다가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하고 방으로 발을 움직였다.
 
당신도 이만 자리에서 움직여, 숙소에 있는 침대에 발을 들입니다.
 
숙소는 2인 1실. 배치는 편의상 기지와 같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룸메이트 신경쓸 필요 없이 잠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아예 자러 오질 못하니 수면시간을 맞출 필요도 없다는 거죠.
 
본인은 좋아서 하고 있는 거니 상관은 없다지만...
 
아무튼, 당신은 대강 가방 안의 물건들이나 만지작거리며 침대에 누웠다가...
 
정말로 잠이 들고 맙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 일어났더니 작은 창으로 햇빛이 쏟아지고 있거든요!
 
로비에 나가면 오필리아 씨와 노아가 모여 있습니다.
 
경치 구경을 하고 있는 모양이네요. 그 밖에도 레지스탕스 대원 몇 명이 옹기종기 모여 1층의 제일 큰 창문 하나를 들여다봅니다.
 
노아:와.
 
뭐 신기한 거라도 있나? 같이 힐끔 구경하면,
 
비행선 아래에는 끝없이 흰눈밭만 펼쳐져 있습니다.
 
깡충깡충, 열심히 뛰어가는 은여우가 보입니다.
 
새하얀 탓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발자국이 혼자 뛰어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광활한 설원.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완벽한 얼음의 땅.
 
드디어 도착한 겁니다. 설원에 말이에요.
 
목적지에 인접한 비행선은 이내 날개를 접어 속도를 줄입니다.
 
본격적으로 브리니클의 동굴을 발견한 다음, 발포를 명령할 차례죠.
 
밖에서는 함박눈이 펑펑 내립니다. 튀링겐주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그 눈이요.
 
원한다면 갑판까지도 나가볼 수 있습니다.
 
시아록:오...
(마린 스노우 같은 게 지상에서도 떨어지는 걸 보니 신기하기 그지 없다. 갑판으로 나서자 차가운 공기가 느껴지고 뿌연 입김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갑판으로 올라간다면 엄청난 바람과 눈보라가 휘날립니다.
 
추위가 몸을 강타하지만, 당신이야 늘 심해에서 살았으니 참을 만 하네요.
 
눈이 톡, 톡. 콧잔등에 내려앉습니다.
 
마린 스노우와 달리 차갑고, 물기를 머금은 지상의 눈.
 
설탕처럼, 고운 입자가 갑판 바닥에 쌓입니다. 하지만 미끄럽지는 않고 오히려 푹신해요.
 
얕게 쌓인 것만 해도 이 정돈데, 직접 내려서 땅을 밟는다면 정말 이불 위를 걷는 기분일 겁니다.
 
눈꽃이 뭉친 눈송이는 꼭 수국처럼 푸르고 예쁩니다.
 
한창 눈을 구경하다 보면,
 
유진:자, 이제 들어가십시오. 곧 발포를 지시할 겁니다.
 
유진이 단호한 목소리로 축객령을 내립니다.
 
벌써 다 온 걸까요? 시아록, 관찰력 판정.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책미 (GM):아이고
 
하늘:* 이와중에 대시패요...?)
 
책미 (GM):액땜한 걸로 칩시다!! 액땜!!!
 
주변을 좀 살펴보려니 눈가에 웬 큰 송이 하나가 팍, 하고 부딪힙니다.
 
으악! 눈이 너무 따가워요! 아무래도 깊숙이까지 들어간 모양입니다.
 
닦기 위해서라도 얌전히 유진의 말대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
 
시아록:(눈이 아파서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더듬더듬 선내로 들어서 화장실을 찾았다.)
 
들어가서 얼굴에 물을 부딪히면 좀 나아집니다.
 
눈 구경하다가 이게 무슨 봉변이람!
 
아무튼, 밖으로 나오면 모두가 비행선의 대포 부분만을 주시하고 있고, 담당 대원들은 바쁘게 발포 준비를 합니다.
 
추적기는 계속해서 불온한 빛으로 깜빡거립니다.
 
이제 저 빛을 보는 것도, 정말로 마지막이겠죠.
 
쿵, 쿵, 쿵. 발 밑 지하에선 화약을 나르느라 뛰어다니는 소리가 울립니다.
 
로비에서 대기 중인 인원들도 모두, 하나 같이 긴장한 얼굴입니다.
 
유진:발포 준비!
 
그러고 있으면 일은 어제와 같이 일사천리로 진행됩니다.
 
대장이 앞에서 대포를 통솔하고,
 
든든하고 강력한 무기의 총포가 모두 브리니클 더미를 향합니다.
 
이 한 발로, 마지막 결전이......
 
따르릉―
 
난데없이 울리는 전화벨에 모두가 한곳을 바라봅니다.
 
로비 구석에 놓인 전화기입니다.
 
소리의 정체를 파악한 사람들이 귀찮다는 듯 한숨을 쉽니다.
 
어이, 시아록. 전화 좀 받아라.
 
심지어 당신에게 떠넘기기까지 하네요...
 
시아록:... 알았어요. 제가 받을게요. (브리니클의 화려한 마지막이고 기뻐해야하지만, 어제의 그 초롱불빛같은 불빛들을 생각하면 뭔가 조금 불편해져서 수화기를 들었다.)
 
“쏘면 안 돼!”
 
전화를 받으면 켈러 씨가 다급하게 비명을 지릅니다.
 
다짜고짜 쏘면 안 된다며 당장 멈추라고 외치기를 반복합니다.
 
그러더니 당신이 대답할 새도 없이 다다다다 쏘아붙이기 시작합니다.
 
“석판의 마지막 부분을 해석했어.”
 
“브리니클은 지금 자신의 우두머리를 위해 분신 중이야!”
 
“브리니클을 전부 파괴하면……”
 
“과거 인류를 멸망시킨 그 괴물이 깨어날 거라고!”
 
시아록:(다급한 비명에 화들짝 놀라 움찔, 몸을 떨었다가 머리가 제대로 상황 판단을 하기도 전에 소리를 질렀다.)
 
유진:발사!
 
시아록:대장!!
 
동시에 유진이 외칩니다.
 
쾅, 쾅, 쾅.
 
비행선의 바닥이 열리고 다시금 대포가 고개를 내밉니다.
 
포탄이 하나 떨어질 때마다 당신의 뇌리를 스치는 기억이 있습니다.
 
흰 알 앞에서 불타던 딱딱한 병정들.
 
하늘을 향해 든 두 팔.
 
불길에 고통스러워하는 건지, 기쁘게 여겨 분신하는 것인지 알 수 없던 그 그림.
 
그리고…… 달을 가리키던 슈테른의 손가락.
 
보름달을 가르던 균열.
 
―――――――――――― !
 
거대한 폭격에 지축이 뒤틀리고, 눈사태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켈러 씨의 목소리가 멀어집니다.
 
발포의 반동으로 선체가 거칠게 흔들립니다.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은 채 모든 것이 무로 회귀한 순간.
 
끓고 흐르는 끈적한 액체가,
 
사람의 눈으론 분간할 수 없는 덩어리들을 떨구며 태어나기 시작합니다.
 
멈추지 않고 꿈틀거리며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모습은
 
얼음 호수의 동굴에서 본 것과 무척 닮았습니다.
 
차갑고, 어둡고, 희고, 축축한 것.
 
아무것도 없는 것.
 
땅에 내리는 재앙.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
 
시작. 원초의 시대. 영원한 손실. 무無로 회귀하는 것.
 
태어난 것이 멸망을 가져오고 죽은 것이 저주를 내린다.
 
인류가 자초한 재앙.
 
낳아지지 않은 근원, 우보 사틀라의 강림을 목격합니다.
 
시아록:아... (힘이 풀린 손에서 수화기가 떨어지고 시선은 한 곳에 붙박혀 떨어지지 않았다.)
SAN Roll
기준치: 69/34/13
굴림: 99
판정결과: 실패
 
본능적인 공포감에, 중력을 견디지 못하고 곤두박질칩니다.
 
전화기도, 당신도.
 
시아록, 이성 20 감소.
 
마치 수수깡처럼, 갈대처럼, 있어야 할 곳에서 뽑혀나오는 한낱 미물이 되어
 
몸이 짜부러진 듯 바닥에 쏟아집니다.
 
그런 도중에도 시선은 계속 '그것'을 향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자유의지도, 이성도, 의식도 모두 머리를 비트는 광경 아래 말살된 지 오래.
 
저게 뭐야? 달이 쪼개졌다! 브리니클이 아니야!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귓전을 스칩니다.
 
쪼개진 달 아래로 흘러내리는 무언가는 달을 잡아먹는 월식처럼 부피를 늘립니다.
 
수십, 수백 개에 달하는 위족이 뻗어져 나와 꿈틀거리며 하늘을 뒤덮고 땅으로 흘러넘칩니다.
 
그 끄트머리에서 작은 덩어리가 떨어져 나오며 스스로 움직이고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기 시작합니다.
 
그 괴물은 아틀란티카를 향해, 손이라 부를 수 없는 덩어리를 내밉니다.
 
도망가야 해. 도망가야 해. 도망치지 않으면 안 돼.
 
본능이 경고합니다.
 
...하지만 어디로?
 
어디든, 저것을 벗어날 수 있는 곳으로.
 
어디라도 좋으니까, 제발.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미리 외워둔 주문 하나가 떠오르고요.
 
차원을 건너 머나먼 곳까지 도망치는 자들을 위한 차원의 관문이요.
 
그러고보니 발동시키는 열쇠가 뭐였더라. 기억나지 않아요.
 
시아록:아.. 뭐였지.. ( 생각해, 생각해. 생각해.. 생각해내.)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59
판정결과: 보통 성공
 
모두 집으로 돌아가자.
 
그래요, 집으로 돌아가야죠. 집으로...
 
아아, 하지만 당신에게는 수중 세계라도 있지 이 불쌍한 지상 인류에게는 이제 멸망한 고향 말고 또 무엇이 있단 말입니까!
 
멸망시키느니 마니로 고민했던 지난날이 모두 부질없게 느껴집니다.
 
이토록 허무하고, 이토록 쉽게
 
인류가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지는데...
 
주문을 떠올려도 자꾸 가슴속에서 무언가 치솟아올라 부식되는 것처럼 활자를 녹입니다.
 
...그럼에도 심호흡을 하고, 당신은 눈을 감으며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 주문을 외웁니다.
 
모두 집으로 돌아가자.
 
완성하는 데에 얼마나 결렸는지는 모르겠어요.
 
주변에 살아있는 사람은 있던가요?
 
이미 미쳐버린 당신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습니다.
 
발 밑에 짙고 짙게 깔린 붉은 웅덩이가요.
 
어두워지는 하늘. 깨진 달과 빛을 잃은 별, 잡아먹힌 구름.
 
죽음의 풍경 앞에서 당신이 차원의 관문을 열면……
 
팽.
 
핑그르르.
 
띵.
 
날카로운 소리가 들립니다.
 
당신의 주머니에서 요동치는 것은 마녀가 건넨 나침반입니다.
 
황금빛으로 번쩍이고 있습니다.
 
뚜껑을 열면 바늘이 팽팽, 거꾸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갑자기 돌아가기 시작한 나침반을 발견한 시아록, 지능 판정.
 
시아록:(열린 차원의 문과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나침반.... 손이 덜덜 떨리는 와중에도 꽉 쥐고 있었다.)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98
판정결과: 실패
 
그 때 석판에서 읽었던 문장이 뇌리를 스칩니다.
 
사실 나침반에 특별한 마법이 걸려있었다든가...
 
어쨌든 차원의 관문에 공명하는 것 같습니다.
 
부서지라 나침반을 꽉 쥐고 바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착시현상처럼 눈앞이 점점 일그러집니다.
 
그리고 비행선이 역행하기 시작합니다.
 
당신의 몸은 힘없이 시공간 한가운데 던져지고,
 
세계의 초침소리마저 거꾸로 흐르며...
 
시계는 역으로 돌아가고,
 
머릿 속에선 째깍째깍, 째깍째깍째깍째깍,
 
온 세상의 시곗소리가 울립니다.
 
한낱 인간 주제에 감히 시간을 돌린 대가일까요?
 
누군가 비디오테이프를 거꾸로 되감기한 것처럼,
 
당신의 머릿속으로 파노라마가 쏟아집니다.
 
세계의 주마등, 과거의 기록입니다!
 
카티란틀아
 
*
 
먼 옛날,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던 인간은 나날이 터전을 넓혀 갔습니다.
 
여섯개의 대주에 만족하지 않고 다섯 개의 대양, 아마존의 밀림, 사하라 사막까지…….
 
그러다 결코 침범해서는 안 되는 영역을 건드리고 맙니다.
 
남극의 빙하 아래 묻힌 우보 사틀라의 동굴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곳에는 신들에 관한 비밀과 위대한 지식이 담긴,
 
별에서 캔 돌로 만든 석판이 가득했습니다.
 
거기서 그만두었다면 좋았으련만.
 
그랬다면 이 이야기는 시작되지 않았겠죠!
 
석판을 꺼내고, 글줄을 해석하고, 그 안에 담긴 놀라운 진리를 깨달은 인류는
 
계속, 계속, 계속 얼음을 가르고 눈을 퍼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예언이었습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없이 귀한 것들이 모습을 드러냈거든요.
 
지구에서 볼 수 없는 성분의 원석이에요!
 
오, 고대의 비밀이 적혀 있습니다!
 
태초의 지구와 폭발 이전의 우주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얼마나 놀라웠겠어요?
 
하지만 다시 말합니다. 거기서 그만두었다면 좋았으련만.
 
...
 
빙하가 깊은 줄 모르고 파헤치던 인간들 탓에, 기어코 우보 사틀라가 깨어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보금자리에 이변이 생기자 바깥으로 기어 나왔고……
 
낳아지지 않은 근원과 그 아래에서 난 자식들은 인류를, 문명을 초토화시켰습니다.
 
문득 보관소에서 읽었던 구절이 스쳐 지나갑니다.
 
특정 종교의 교리가 왜 석판에 적혀 있느냐며 의문을 표했던 목소리를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창세기도 아니고, 교리도 아니며,
 
지어난 이야기나 구전 따위도 아닙니다.
 
다름아닌 인류의 역사였던 겁니다.
 
무슨 소리냐면 마법사와 마녀들이 힘을 합쳐
 
그를 남극의 빙하만큼 차갑고 단단한 별에 봉인했거든요.
 
그러나 이미 문명은 손 쓸 수 없게 대파된 후였습니다.
 
*
 
위대한 마법사와 마녀들이 힘을 합쳐 남극의 빙하만큼 차갑고 단단한 별에 이계신을 봉인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대다수 국가는 붕괴·수장된 상황이었으며,
 
우보 사틀라의 동굴과 석판에 관한 기록도 소실되었습니다.
 
마법사와 마녀들은 이 재앙이 알려지거나, 다시 파헤쳐지거나,
 
악용당하지 않도록 침묵의 맹세를 맺었습니다.
 
짧은 삶이 끝나고, 그 세대가 모두 죽자
 
지상 인류는 오랜 시간 노력한 끝에 도시를 재건했습니다.
 
제법 괜찮은 재시작같아 보였습니다.
 
...
 
한편, 달에 봉인된 우보 사틀라는 남극의 거처로 돌아가기 위해,
 
자신의 자식과, 곳곳에 흩어졌던 별에서 캔 돌로 만든 석판들을 불렀습니다.
 
연식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오래된, 단단한 돌, 얼음, 철로 만들어진 석판과
 
무엇이든 삼켜 녹이는 근원의 자식들이 합치자
 
거대한 괴물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우보 사틀라의 뜻에 따라 인류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났고,
 
원죄를 잊은 인류는...
 
그것들을 브리니클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브리니클의 목적은 인류를 제거하고 우보 사틀라를 강림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브리니클이 파괴될 때마다,
 
석판과 자식들의 힘은 우보 사틀라의 부활을 위해 공헌되었습니다.
 
모든 브리니클이 파괴되면,
 
비로소 모든 힘을 되찾은 우보 사틀라가 부활하게 되는 구조죠.
 
...
 
지상 인류는 브리니클에게 대적하고자 힘을 모았으나,
 
사실상 더 큰 재앙, 그들의 어버이,
 
우보 사틀라를 부르고 있었던 겁니다.
 
오래된 과거.
 
그때에도 지상 인류는 비행선을 개발해 모든 브리니클을 파괴하고……
 
우보 사틀라의 강림을 이루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모든 인류가 물속으로 가라앉은 후에야……
 
*
 
회귀자
 
그것도 다 어제의 일입니다.
 
어젯밤은 모처럼 꿈꾸지 않고 푹 잤습니다.
 
좀 많은 과거를 보긴 했지만 꿈은 아니니까요.
 
몸을 일으키면 바깥에서부터 난잡한 소음이 잔뜩 흘러들어옵니다.
 
아침부터 TV에서 레지스탕스가 승전보를 가져오리란 속보가 줄기차게 쏟아지고 있거든요.
 
네, 드디어 오늘인 겁니다. 설원의 동굴로 출격하는 것이!
 
누군가는 단번에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니냐고 걱정했지만,
 
미뤄봤자 브리니클이 도망가거나 또다시 침투할 빌미만 주는 꼴이니
 
속전속결로 처리하자는 것이 레지스탕스에서 대두되던 의견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자, 회귀한 시아록, 소감이 어떤가요?
 
시아록:(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상체를 세우고서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길고 무거운 한숨이 입밖으로 터져나왔다. 아아.. 지독한 신음도 흘러나왔다.) 왜 자꾸 나한테만 보여주는 거야..?
(세상이 사실 나를 붙잡고, 멸망하면 안 된다고 애원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럴 거면 나를 붙잡고 외칠 게 아니라 유진이나 이오리, 노아에게 했어야지. 나는... 나한테 남길 것은 단 하나 밖에 없는데. 세상과 슈슈? 저울에 올려놓을 수도 없는 것을, 나에게 알려줘도 소용없어. 나는 훗날 이 선택들로 인한 죄악감이 나를 이루게 되더라도 상관없으니까.)
오늘은, 따라가지 말까.
(선택지는 이미 정해졌다.)
 
당신은 가장 오래된 과거부터 가장 날 것의 미래까지 모두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흔히 말하는 회귀자, 주인공, 그런 존재가 된 거죠.
 
당신이 이런 존재가 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슈슈와 수중 인류를 구하기 위해 마녀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거대한 해류의 끝이자 시작에 몸을 던졌기 때문이죠.
 
새우의 내장이나, 복어의 가시독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쓴맛이 입안을 덮고 온몸을 짓누릅니다.
 
...그래요, 슈슈.
 
슈테른의 증세... 아니, 이제는 우보 사틀라의 저주라고 부를까요.
 
아무튼 그것은 공교롭게도 브리니클이 다 부서져야만 차도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슈슈가 있는 곳은 지상 세계에요. 과거죠. 곧 멸망할.
 
...이제 아시겠나요. 슈슈를 구하기 위해선 어떻게든 브리니클을 다 파괴해야 합니다.
 
하지만 브리니클을 파괴하면 지상 인류는 멸망합니다.
 
그렇다고 치료법을 찾지도 못한 채 무작정 바닷속으로 돌아가면
 
슈슈를 집이 아니라 파도의 계단으로 보내게 될 겁니다.
 
...당신은 또 다른 딜레마에 빠집니다.
 
지상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다면 슈슈나 당신의 존재가 부정되거나, 나아가서는 마을 하나가 없어질 수도 있지만...
 
지상 인류가 멸망하게 둔다면, 그래서 슈슈의 치료법을 찾지 못하면 슈테른은 죽음을 맞습니다.
 
어떻게 해도 선택지가 없잖아요.
 
이런 얄궂은 이야기가 있다니 헛웃음이 나오네요.
 
마을을, 슈테른을 구하기 위해서 물 위로 올라왔는데,
 
두 세계의 운명을 쥐락펴락할 자리에 당신이 들어가게 되었잖아요.
 
...슈슈를 구하려면 무엇부터 하면 좋을까요. 더없이 암담합니다.
 
마음이 꺾였을 지도 모르겠어요. 시아록, 이성 판정.
 
시아록:
SAN Roll
기준치: 69/34/13
굴림: 58
판정결과: 보통 성공
 
하지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목표와 목적지를 정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요.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투성이였죠.
 
돌아가니 사라진 시체들,
 
순진무구한 눈동자를 빛내던 바다 마녀,
 
같은 이름을 지닌 비행선과
 
유적지에서 보았던 모든 문명.
 
계속해서 반복되던 예지몽.
 
돌이켜보자니 당연했던 거예요.
 
말도 안 되지만, ‘당신이 살아 숨 쉬는 이곳이 과거라면’ 모든 아귀가 들어맞으니까.
 
...
 
드디어, 라고 되뇌던 유진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브리니클만 물리치면 모두 잘 될 거라고, 슈테른도 깨어날 거라고 말하던 노아의 얼굴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멸망을 고대하는…… 사람들이.
 
그들을 우습게 보건 동정하건 아무 감정도 가지지 않건 상관없어요.
 
비행선이 출항하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남았습니다.
 
무엇을 할지, 결정할 때입니다.
 
시아록:(꿈속의, 혹은 과거의 시간과 똑같지만 다르게 무거운 발걸음이 슈슈를 향해 간다. 브리니클은 모두 없어져야 하는 건 이미 결정되어버렸고, 자신은 그걸 말리지 않을 거다. '오늘'은 모두가 비행선을 탄 것 같던데, 자신 하나쯤 슈슈 곁에 남아도 모를 것이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간다면, 수중 세계에는 시아록만이 홀로 남습니다.
 
그래도 괜찮나요?
 
당신에게 의지해 목숨을 연장하고 있는 슈슈가...
 
단맛에 휩싸여 얼어붙어도 괜찮나요?
 
치료법을 찾거나, 석판을 뒤지던...
 
당신의 그 모든 발걸음이 파도에 쓸려나가듯 지워져도.
 
하늘:(* 잠시만요, 제가 다르게 생각한 거 같은데요. 브리니클 중에 우보 사틀라가 들어가나요??)
 
책미 (GM):우보 사틀라의 일부=브리니클이에요.
슈슈의 증세는 우보 사틀라의 저주에서 기인한 거잖아요? 그래서 브리니클을 무찌르면 차도를 보입니다.
하지만 그게 완전한 해결책은 또 아니에요. 알아내고자 한다면 탐사자를 움직여보세요.
추천하는 곳은 아무래도 보관소입니다.
 
하늘:(*아하, 우보 사틀라는 브리니클이 아니라고 생각해버렸네요. 죄송해요! 이어 갈게요.)
 
책미 (GM):아녜욥 어깨조물라드림.
 
시아록:(그런 걸, 인류가 멸망할 정도의 그런... 그런 괴물같은 것을, 고작 비행선으로 막는 것은 무리다. 그 먼 과거의 마법사들이 그것을 봉인해버렸듯... 석판에 방법이 있지 않을까? 석판을 찾으러 가기 시작했다.)
 
주문을 구할 수 있는 방도는 언제나 ‘석판’이었고,
 
석판은 보관소에서 보관하고 있으니까요.
 
또 다른 과거에서 해답을 찾기 위해,
 
당신은 비틀거리는 걸음을 끌어 보관소로 향합니다.
 
보관소로 이동한다면,
 
역시 기묘하게 꾸며진 내부가 보입니다.
 
까마득하게 높은 천장, 가득 쌓인 석판.
 
오늘은 켈러 씨가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침체된 공기가 더욱 조용하게 느껴집니다.
 
아마 깊은 곳에서 아무 석판이나 연구하다가,
 
다음 날 아침에 '그 석판'을 해독하고 전화를 걸겠죠.
 
...당신은 무엇을 찾고 싶나요?
 
시아록:켈리가 해독하던 게 뭐지...? (켈리가 해독하는 자리로 가 석판을 찾아본다.)
 
켈러 씨가 있는 해독실은 지금은 닫혀 있어요.
 
그가 집중할 때는 당신조차 함부로 방해하기 힘듭니다.
 
시아록:... 다른 곳이라도 뒤져야 하나. 켈리는 대체 어디로 간 거야. (주변의 석판을 뒤져보기 시작한다.)
 
당신은 아무 석판이나 집기 시작합니다. 시아록, 자료조사 판정.
 
시아록: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88
판정결과: 실패
 
그 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석판 하나가 손에 걸립니다.
 
어지럽고 모독적인 내용이죠. 이제야 그가 찬미하는 대상을 이해하고 맙니다.
 
...낳아지지 않은 근원, 우보 사틀라였어요.
 
다른 내용을 읽고 싶다면, 자료조사 재판정합니다.
 
시아록: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10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다시 찾은 석판 또한, 인류의 죄악된 업보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아무 석판이나 뽑아들면 끝이 없겠어요.
 
특별히 찾는 석판이 있어야 이 도서관도 협력해주지 싶습니다.
 
당신은 무려 지난 4년동안 사서였잖아요. 분명 석판도 당신의 의지를 따르는 겁니다.
 
시아록:... 우라 사틀라를 없애거나 봉인하는 방법은 뭐지..
(중얼거리며 석판들을 올려다본다.)
 
우보 사틀라를 봉인할 방법을 찾다 보면, 석판 하나가 손에 걸려듭니다.
 
여전히, 발에 걸리기 좋은 바닥에 쓰러져 있습니다.
 
이제 그 석판의 내용을 해독할 수 있습니다.

핸드아웃: 신 송환 주문

• 비용: 참가자 한 명 당 마력 1 이상
• 시전 시간: 기본 1분; 마력을 제공하는 참가자 한 사람당 1분 추가


신의 위엄에 대항하려면 그에 합당한 마력을 지불해야 한다. 그 위엄의 일정 비율에 달해야 송환 조건을 충족하며, 신의 마음을 부추기기 위해서 추가로 마력을 사용할 것을 명심하라. 마력을 1점 더 사용할 때마다 확률이 5%씩 높아진다.


 
시아록:신 송환...? 우라 사틀라를 돌려보내는 건가? 이걸로 되는 건가.. (석판을 자세히 읽으며 혼자 중얼거린다.)
 
송환 주문 자체에 특별한 조건은 없어 보입니다.
 
외계 신이라면 누구든 본래 있던 우주로 돌려보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주문을, 이젠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마력은 도저히 무리입니다.
 
슈테른과 다른 사람들의 마력을 다 빌려도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초조하게 석판을 읽다 보면
 
마력이 모자랄 땐 여러 사람을 동원하거나,
 
고대종의 수정을 구하라고 쓰인 구절을 볼 수 있습니다.

핸드아웃: 고대종의 수정

다양한 형태를 지닌 결정형 마력 보관 용기.
전 우주 어디에 몇 개가 있는지 쓰여 있습니다. 그중, 심해의 고대종이 만든 수정에 대한 설명이 눈에 띕니다.
 
「상체는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하체는 물고기의 지느러미를 가진 심해의 고대종은 가장 정결한 보석, 바다가 낳은 아쿠아마린에 무한대의 마력을 담아두었다. 순결한 은으로 재단하여 마력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반짝,
 
시아록:고대종의 수정...? 어.. (설명을 읽다가 눈이 커진다. 이거.. 인어에게 받았던 거 아닌가...?)
 
문득 목덜미에서 뭔가 반짝입니다.
 
혼곤한 글줄에서 빠져나와 확인해보면, 펜던트네요.
 
인어에게서 건네받았던 것.
 
당신의 과거와 당신의 현재에 동시에 존재했던 이에게서 보내진 것입니다.
 
여전히, 심해의 일부를 닮은 푸른색의 보석이 반짝이고 있습니다.
 
그립고 아름답네요. 그런데 잠시만……
 
상체는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하체는 물고기의 지느러미를 가진 심해의 고대종.
 
영원히 샘솟는 축복.
 
순결한 은.
 
웃음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미 모두 손아귀에 있었어요.
 
이러기 위해 안배된 만남과 운명과 행보였던 것처럼…….
 
시아록:... 이렇게 운이 좋아도 되는건가. 아니면... (머릿속에 수없이 떠오르고 사라지는 생각들을 붙잡지 않고 눈을 감았다. 입가엔 헛웃음을 닮은 웃음이 떠있었다.)
 
SOS CALL
 
노아:시아록!!
 
그때, 노아가 들이닥칩니다.
 
당신을 찾고 있었는지 숨이 좀 가쁘네요.
 
더없이 심각한 얼굴입니다.
 
이상한 일이에요. 당신이 기억하는 ‘어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큰일이에요, 숨을 삼킨 노아가 말합니다.
 
노아:슈테른 씨께, 문제가 생겼대요.
지금 당장 병원으로 오라고, 이오리가...
 
……네? 이게 무슨 일일까요?
 
시아록:뭐? (깜짝 놀란 얼굴로 당신을 바라보다가 이내 순식간에 뛰쳐나가버렸다.)
 
노아:자세한 건 잘 모르겠어요. 그냥 이걸 듣는 즉시 오라고...
아, 시아록! 같이 가요!!
 
심장이 쿵쾅거립니다. 비단 뛰고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신 송환 주문을 찾은 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걸까요?
 
바로 병원에 도착하면, 안은 좀 어수선하고,
 
이오리 테일러는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당신에게 말합니다.
 
눈을 찌푸리고,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마치 슈슈를 차가운 잠에 빠트렸던 그 날 밤처럼.
 
이오리:...네, 친구, 슈테른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어.
자세한 내용은 병실로 가면서 이야기하자. 저쪽에 있을 거야.
(달려가는 발걸음이 아주 급하다. 바람에 부딪히는 머리카락이며 차트가 흩날린다.)
 
시아록:슈슈가 왜 사라져요? (경황없는 당신을 보고도 자제없이 제촉할 뻔하다가 당신을 따라 달렸다.)
 
그의 말대로 슈테른이 있던 병실로 향하면,
 
...이오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슈슈가 들어가있던 콜드 슬립 기계가, 텅 비어 있습니다.
 
그 안에서 곤히 잠들어있던 그는 어디로 간 건지.
 
이오리:침입자의 흔적은 없어. 기계가 아니라 사람만을 데려가는 것도 이상하고.
의사가 아닌 이상 기계를 제대로 움직이는 것도 모를 텐데.
 
그야말로 감쪽같이, 안에서 실종했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그리고 왜? 어디로? 언제? 온갖 물음표가 머릿속에서 뒤섞이느라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이오리 테일러가 무슨 말을 더하려던 차,
 
긴급 환자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옵니다.
 
혀를 찬 이오리가 당신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후 달려갑니다.
 
마음이 답답할 테니 찾아볼 테면 찾아봐도 좋다는 말과 함께요.
 
담당 간호사가 불안한 듯 당신을 보고 있습니다.
 
시아록:(불안한 숨이 힛, 목구멍을 울렸다. 슈슈가 있던 방을 한 번 살폈다.)
 
방을 둘러보면, 싸움의 흔적 같은 건 없습니다.
 
침대나 기계 외부의 장치, 심전도 측정 장치, 링거와 선반...
 
그 모든 게 문제없이 제 기능을 다하고 있습니다.
 
아, 슈슈의 상태를 보여주던 장치는 이제 삐― 소리만을 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명처럼 들리기도 하고, 무언가의 선고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시아록:(네가 없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실감이 났다. 그대로 뒤를 돌아 너를 찾기 위해 밖으로 뛰쳐나왔다. 귀에는 여전히 삐- 울리던 소리가 이명처럼 들러붙어있었다.)
슈슈! 슈슈! 어딨어! 슈테른! 어디 있어!!
 
텅 빈 콜드 슬립 기계는,
 
그 안에 있던 냉기도, 온기도, 아무것도 내비치지 않습니다.
 
대마술사도 아닌 슈테른이 어디로 사라질 수 있단 말인가요. 아찔합니다.
 
이곳에서 버틴 건, 전부 슈테른의 치료를 위해서였잖아요.
 
우선순위가 뒤죽박죽 흔들립니다.
 
사실, 슈테른마저 그저, 과거를 구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면.
 
싫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부정해줄 사람은 없어요. 손가락질할 사람도 없고요.
 
지금은 모두 멸망하고 없는, 당신이 외면한 사람들은 당신을 외면할 뿐입니다.
 
잠깐 멍하니 서 있었을까요? 뒤늦게 노아가 병원 입구로 들어옵니다.
 
노아:시아록, 어디 갔었... 아니, 무슨 일이에요?!
슈테른 씨는 무사한 거에요?? 왜 여기 나와 있어요?
 
시아록:아니, 없어졌대. 없어졌어. 어디로갔지?어디서찾아야하지?어디로가야해? (무섭게 숨도 안 쉬고말하며 당신을 붙들고는 힘이 빠진 무릎이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노아:...(잠시 이해하기 위해 뜸을 들이다가) ...어디어디 찾아봤어요?
담당 간호사나 이오리는 뭐라고 했는데요.
 
시아록:이오리가 없다고.. 병실봤는데 없었어. 어디갔지. 왜없어졌지. 분명히.. 있었는데..
 
노아:(...과거의 어느 때보다도 심상치 않은 표정을 하고 시아록을 일으킨다.)
갑자기 없어졌을 리가 없잖아요. 하다못해 병원의 다른 곳이라도. (한숨을 쉬며 우선 병실로 향한다. 맞잡은 손은 떼지 않은 채다)
 
노아는 퍽 놀라고도 침착한 기세로 당신을 이끕니다.
 
막상 당신은... 슈슈에 대한 것 말고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데.
 
노아:...일단 여기로 걸어오면서, 조금 급하긴 했지만 주변은 잘 둘러봤어요. 제가 찾는 건 잘 하잖아요.
그래서... 병원 근처에 슈테른 씨와 닮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요.
게다가, 한동안 몸도 편찮으셨으니까, 멀리까지 가진 않으셨을 테고... (하나하나씩 소거법으로 논리를 완성해간다. 당신이 이 사건의 모든 감정을 끌어다 쓴 만큼 차분한 태도)
 
시아록:(세상이 다 무너진 것 같은 표정으로 당신의 손에 잡혀 멍하게 따라갔다.)
 
병실로 돌아가면 슈테른의 담당 간호사와 눈이 마주칩니다.
 
아까부터 꼼짝도 못 하고 서 있는 걸 보면...
 
따로 내려받은 지침이 없는 모양이에요.
 
당신과 같이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는 눈치입니다.
 
노아는 마찬가지로 내용물 없는 콜드 슬립 장치를 보고 헛숨을 들이키다가,
 
곧장 간호사에게 직진합니다.
 
노아:... 간호사님. 여기서, 환자가 없어졌다고...
혹시 아시는 바가 없나요, 저 안에서 콜드 슬립 중이시던 분이요. 저랑 닮았던. (어느 때보다 빠른 말투로)
 
그러자 불안한 눈으로 우리를 보던 간호사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담당 간호사: 화, 환자 슈테른 씨를 마지막으로 확인한 건 한 시간 전이었어요.
전체 회진을 돌던 중이었죠. 항상 여기부터 시작하거든요...
기계는 이상이 없었고, 상태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시간 후, 회진을 끝나고 돌아오니...
기계가 텅 비어 있는 거예요.
 
시아록:다른 건.. 없었어요? (아무런 단서도 없는 거 같은 말에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담당 간호사: 모,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아무도 오지 않았고, 어떤 이상 징후도 없었어요.
혼자 사라졌다니 말도 안 되지만, 지금으로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네요.
 
그렇다면 슈테른은 정말, 난데없이,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답변을 들은 노아는 입술을 꽉 깨물고 팔을 끌어당깁니다.
 
노아:병실이 총 23개죠? 이 곳을 제외하고.
하나하나 찾아보고, 혹시 다른 곳에 계신 건 아닌지 찾아봐요.
지금으로선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당신이 뿌리치거나 반항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양보하지 않는 태도로 바로 반대쪽 호실부터 노크하기 시작한다.)
 
시아록:(멍청하게 그저 당신이 이끄는대로 움직인다.)
 
노아는 여느 때처럼 앞장서서, 다른 병실을 뒤집니다.
 
혹시 모르니 화장실이나 창고같은 곳까지도. 노아와 당신은 레지스탕스의 중요 관련자잖아요.
 
그러니 비상사태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관대해집니다.
 
당신에게 거기까지 신경쓸 여력은 없겠지만.
 
그러나, 첫 번째 병실부터 시작해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마지막 병실까지 모두 돌아보더라도.
 
슈테른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
 
둘러볼 수 있는 곳을 전부 본다면, 인정하고 맙니다.
 
슈테른이 없어요.
 
사라졌어요. 어디에도 없다는 걸 말이에요.
 
처음 이오리의 병원에 왔을 때가 떠오릅니다.
 
죽은 산호처럼 창백하게, 소금처럼 희게 질려서는,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얼굴로, 아쉬움이 조금이라도 닳아 없어질 만큼 안아주었습니다.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이 유독 무거웠었죠.
 
꼭 등을 돌리면 사라질 것만 같아서.
 
하지만, 이런 건... 이런 걸 바라지는 않았어요. 예상하지도 못했고요.
 
슈테른과의 기억이 스쳐지나갑니다. 바다 위로 올라와서 콜드 슬립 기계에 들어가......
 
그것은 당신의 기억이지만, 슈테른의 목숨의 평생분이 담겨 있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그의 곁에 있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지금 스쳐지나가는 이것은...
 
다른 말로는 그의 주마등, 이라고 표현해도 좋을까요.
 
미소 짓는 얼굴을 보지 못하고,
 
차분한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그 손을 잡아보지 못해도 여태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언젠가 다 괜찮아질 거란 희망 때문이었는데.
 
……무얼 위해 여기까지 온 건가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강한 현기증이 치밀어오릅니다.
 
단숨에, 깊은 바다 아래에서 위로 솟아오를 때
 
혈관에 작은 산소 알갱이들이 가득차 일제히 터지며 느끼는 고통처럼요.
 
호흡이 어렵습니다.
 
당신은 저도 모르게 몸을 굽히며 숨을 몰아쉽니다.
 
...
 
...
 
"...록, 시, ... ..."
 
"...아록..."
 
노아:시아록!!
정신 차려요!!
 
누군가 당신을 뒤흔듭니다. 끊임없이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시아록:(움찔 놀라며 몸을 일으켜 당신을 보았다. 이미 몸은 식은땀 범벅이었다.)
 
그대로 주저앉은 당신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 목소리가 어쩐지 익숙합니다.
 
힘껏 잡은 손아귀가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갑습니다.
 
이쪽을 직시하는, 얼굴이, 같은 색의 눈동자가.
 
그는 슈테른이 아니라 노아입니다.
 
하지만 이상해요. 이상해요.
 
무언가 이상하다고요.
 
퍼즐 한 조각이 빠진 것처럼.
 
과거와 현재, 미래, 브리니클과 우보 사틀라,조각난 달과 무너진 세계, 바다 깊은 곳의 마을, 슈테른과 노아, 비행선, 고꾸라진 랜드마크……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에서, 딱 한 점이 부족한 듯한 감각이.
 
당신이 혼란스러워하는 동안 노아는 계속 당신을 위로합니다.
 
노아:...아직,
아직 안 찾아봤어요.
바다.
혹시 모르잖아요. 깨어나서 수중 마을로 돌아갔다거나...
 
시아록:바다... (갑자기 나온 바다 얘기에 의아해졌다가 이내 인정했다. 어느새 자신은 이렇게 이곳이 익숙해져버렸지..)
 
노아:(잠깐 머릿속을 정리하려는 듯 서 있다가) 만에 하나 꺠어나서 바다로 가신 걸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절대 포기하시면 안 돼요.
 
시아록:응...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노아:아직 되돌릴 수 있잖아요. 돌이킬 수 있을 때... (비단 시아록이 아닌 누군가에게 말하는 듯 멀리까지 목소리가 닿고)
...일단 숨 좀 고르시고, 길은 제가 잘 아니까...
 
노아의 말대로 잠시 심호흡하고 있으면, 숨이 아닌 무언가가 자꾸만 빠져나가는 느낌이 듭니다.
 
차가운 겨울 공기가 폐부로 들어오면, 그제야 머리가 돌아갑니다.
 
그야... 바다로 돌아가려면 해독제를 먹어야 하잖아요.
 
불현듯 깨닫습니다.
 
지금, 그 약이, 제자리에 있는지, 열어보아야 한다고.
 
때를 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늦어. 지금이어야만 해. 다음은 없어.
 
시아록:해독제..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말하고는 노아의 손을 놓고 급하게 기숙사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노아:시아록?! 같이 가... (뒤따라오는 소리마저 점점 멀어진다. 완전히 다른 세계에 빠진 것처럼 일체의 소음이 차단된다)
 
기숙사 안쪽 가방에 잘 넣어두었습니다. 그때에도, 분명히, 확인했으니까요.
 
나침반은 여전히 거꾸로 돌아가고 있고, 그 옆에 해독제가 든 병이 있습니다.
 
절대 때가 오기 전까지 열어서는 안 된다는.
 
해독제는 당신이 가졌으니 슈테른은 마실 수 없어요.
 
그걸 앎에도 확인해야 한다는 강렬한 충동이 당신을 사로잡습니다.
 
당신이 코르크 마개를 뽑으려 하면...
 
노아:하아, 하... 시아록, 대체 왜 여기로...... (숨이 찬 나머지 무릎을 짚다가 주저앉는다)
차, 찾았어요?
 
시아록:(해독제 병을 꽉 쥐 채로 당신을 돌아보았다.)
 
...노아는 당신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한동안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방에서 나가지는 않아요. 불안한 눈으로 이 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시아록:(그사이 눈가가 거뭇해져있었다. 여전히 해독제를 손에서 놓지 못 한채로 일어섰다.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노아의 앞에 섰다.)
바다에, 다녀올게.
 
여차하면 마시고 돌아가 슈테른을 따라잡겠다고……
 
그렇게 생각할지도 몰라요.
 
노아는 여전히 떨어지지 않고 쫓아옵니다. 뭐가 그렇게 궁금한 걸까요.
 
그것이 곤란에 처한 사람을 돕고자 하는 의지임을 당신은 모릅니다. 살필 의지도 없고요.
 
아까처럼 앞장서며 손을 잡아오는 노아는 말합니다.
 
노아:...사해라면 저 쪽 길이 좀 더 빨라요.
저 쪽 언덕길이 험하니까 조심해서 올라오세요.
 
시아록:.. (잡아오는 손을 물끄러미 내려오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가리킨 길을 향해 움직였다.)
 
브리니클에 쫓길 때보다도 더욱 긴급하고 빠르게,
 
죽어도 놓칠 수 없는 소중한 것을 붙잡기 위해서.
 
당신과 노아는 사해로 향합니다.
 
에메랄드빛 물과 상아빛 모래.
 
그 안에는 슈테른은 커녕 인어조차 없습니다.
 
당신은 더 지체할 틈도 없이 해독제를 엽니다.
 
안에 든 건, 둘둘 말린 작은 종잇조각과 흰 알약 하나입니다.
 
시아록:(알약과 함께 든 종이조각을 펼쳤다. 어쩐지 봐야할 것 같았다.)

핸드아웃: 마녀로부터의 편지

사실 인간이 되는 약은 해독제가 필요 없어요. 당신은 다시 바다에 완전히 뛰어들면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습니다. 이건, 바닷속에서 숨을 쉴 수 있게 해 주는 약이에요. 바다로 뛰어들기 직전에 삼키면 된답니다. 당신이 아니라, 당신 곁에 필요한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동봉합니다.


 
내 곁에, 필요한 사람……?
 
천천히 시선이 움직입니다.
 
눈이 마주칩니다. 같은 색의 눈동자와.
 
텅 빈 콜드 슬립 기계. 바닷속에서 숨을 쉴 수 있도록 돕는 약. 똑같은 얼굴.
 
뒤틀린 타임 패러독스.

핸드아웃: 도플갱어 패러독스

마을의 유일한 이방인. 어느 날 멀리 떨어진 바다에서 발견된 아이. 수중 인류라기엔 유난히 헤엄이 더디고, 비늘이 보이지 않았던 사람. 멸망한 지상의 흔적을 몇 번이고 매만지던.
지금의 노아는 슈테른과 조금도 다르게 생기지 않았습니다. 슈슈는 사라지지 않았어요. 슈슈는 언제나 당신 곁에 있었습니다.


 
노아는 당신을 보더니 이윽고 흠칫합니다.
 
더 이상 닿을 수 없을 때까지 다가오고,
 
그리고...
 
당신의 드러난 한 쪽 볼에 손을 댑니다.
 
노아:https://www.evernote.com/shard/s638/sh/4297cf49-6a14-a770-37a1-57b03d07c9a2/51707e36fa4448bd2b0276fc648d36e1
 
시아록:... 안 우는데.. 나 울어? (당신의 손에 얼굴을 기대며 되물었다. 나는 울고 있었나..)
.....노아..
(머릿속을 헤집는 패러독스를, 나는... 결국 얼굴을 찌푸리고 말았다. 너는 내 앞에 이렇게 선명하다. 아.. 슈슈..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노아:...괜찮아요? (언뜻 보기엔 진정된 것 같은 얼굴이지만, 여전히 떨림을 멈추지 못하는 목소리에 시선을 떼지 못한다)
지금이라도 먹고 가 봐요, 해독제. 혹시 모르니까, 그, 혹시 정말 못 찾으면 다시 올라오면 되잖아요.
제가 도시 쪽을 찾아볼 테니까. (몇 번이고 손을 잡아오다가, 뒤를 돌아 도시 쪽을 향한다)
 
시아록:아니야.. (고개를 내저었다.) 찾을 수 있을 거 같아.
(큰 보폭으로 몇 번 걸어 당신의 손을 잡았다.)
 
노아:어디에 갔는지 적혀 있어요? 그게 슈테른 씨가 남긴 쪽지에요...?
(뒤를 돌아 방금까지 구원줄마냥 잡고 있던 해독제 병을 들여다본다)
 
시아록:그건 아니지만.. 어디있는지 알려줬어..
(나는 여전히 너를 붙잡고 있었다.)
 
노아:어디에요? (말해주면 당장이라도 달려갈 듯한 눈치로 말한다. 지금도 상당히 복잡해보이는 표정)
...바다로 돌아간 건 아닌 거죠? 이오리에게 소식 전하고 올까요?
이오리도 많이 놀랐을 거에요.
 
시아록:아니.. (다시 한 번 고개를 내저었다.) 전부 끝나면.. 얘기해.
 
노아:...네? (다시 한 번 의중을 파악하는 듯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지금 찾지 않아도 괜찮은 거에요? 환자잖아요.
아, 아니. 다 나아서 밖으로 나오셨다고 하면... 하지만... (머리가 핑핑 도는 얼굴로 우선은 병원으로 돌아간다.)
 
시아록:(그저 입을 꾹 다물고 당신의 손이 생명줄이라도 되는 듯 꾹 잡고 따라갔다.)
 
노아:(아까는 그렇게 놀라셨으면서... 괜찮으신 건가? 아무것도 말씀하시지 않으니 잘 모르겠다. 길을 재촉하면서도 퍽 신경쓰이는 건지 중간중간 돌아본다.)
 
병원으로 가면, 환자가 빠진 건지 내부가 훨씬 한산합니다.
 
하지만 병원 초입에 발을 들이자마자 호출이 옵니다.
 
노아:...아, 세상에. 벌써 시간이 이렇게...
시아록, 20분 후에 아틀란티카가 출항한대요. 지금이 3시 10분이니까...
 
당신은 이제 결정해야 합니다.
 
우보 사틀라를 송환할지, 아니면 인류를 이대로 멸망으로 이끌지.
 
...노아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문득 스쳐지나가는 형상이 있습니다.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는 콜드 슬립 기계가 보입니다.
 
누군가 그 안에 잠들어 있습니다.
 
잠들기 전에 약을 먹었다면 물 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을 거예요.
 
아틀란티카가 침몰할 이름을 가지고 있더라도 안심하세요.
 
그를 위한 방주는 따로 있었으니.
 
...
 
먼 훗날, 기계가 수명을 다해 잠에서 깨어난 이는
 
자신이 누구인지, 이곳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채로 정처 없이 바닷속을 헤매고,
 
길을 잃은 아이를 발견한 마을 주민은
 
선한 마음으로 아이를 마을에 데려와,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프루헤 슈테른.
 
너는 처음부터 여기에 있었구나.
 
과거도 미래도, 결국 너였다고…….
 
노아는 차분히 서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보 사틀라를 송환하고자 한다면, 이오리에게 사정을 설명하는 건 도움이 됩니다.
 
현장에서 마력을 빌려달라고 언질해둘 수 있으니까요.
 
시아록:노아. 바다가 좋아, 지상이 좋아? (당신과 눈을 맞추고 묻는다.)
 
노아:......네?
바, 바다가 좋냐뇨, 지상이 좋냐뇨...?
 
시아록:그냥. 의미 없어. 어디가 좋아?
 
노아:아, 음... (잠시 생각하려는 듯 손을 떼고 팔짱을 낀다. 그냥 던지는 말에도 쓸데없이 신중한 태도)
(긴급한 상황이라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을 톡톡 두드리다가) 바다도 언젠가 꼭 가 보고는 싶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여행할 수 있는 건 지상이 더 넓죠. (우선순위가 당신이 아닌 먼 곳에 있는 눈으로 돌아와 말한다.)
 
시아록:(당신의 선택을 듣고 웃었다.)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네 행복은 여행이지?
 
노아:...어, 그렇죠...?
...사실 좀 고민하고는 있어요. 여행.
 
시아록:왜?
 
노아:아니, 그것보다 가 봐야 하지 않아요? (시계를 가리킨다. 촉박한 시간을 알리려는 듯)
...면전으로 말하긴 좀 부끄러워서요. (웃음을 흘린다. 사실 쓴웃음일지도 모르겠다)
 
시아록:음, 그럼 비행선 안에서 얘기해줘. 나 궁금하단 말야.
(그걸 들어야 나는 ...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다. 네가 지상을 여행하고 싶다고, 그게 네 행복이라고 하면.. 나는 오롯하게 너를 위해서 지상을 선택할 수 있다.)
 
노아:... 음... (굉장히 조심스러운 태도로 뜸을 들이더니) 무슨 일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얼결에 더듬더듬 뱉어내며)
그냥 그렇다고요. 이제 갈까요? (병원 문과 시아록을 번갈아 살피며)
찾았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무사하신 거죠? 슈테른 씨는.
저 정말 깜짝 놀랐다고요... (한바탕 몰아치던 폭풍이 지나가고 새삼스럽게 가슴을 쓸어내리며)
 
시아록:응... 고마워, 노아. (그제야 너를 보고 제대로 웃었다.)
 
당신은 노아의 손을 잡고 선착장으로 향합니다.
 
오늘은, 다름아닌 브리니클들의 마지막 본거지를 파괴하기로 한 날이니까요.
 
그를 슈슈라고 불러도 좋을지, 아니면 다른 사람인지, 어떻게 행복을 빌어주면 좋을지, 그런 건 모르겠어요.
 
그래도 우리는 함께였어요.
 
오래도록 둘이었습니다.
 
 
비행선 아틀란티카는 예정대로 설원의 동굴을 향해 날아갑니다.
 
인류의 평화를 가장하면서, 껍데기 안쪽에는 멸망을 품고 있는 알을 향해.
 
막 이륙하기 전, 선착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붐빕니다.
 
오늘만큼은 레지스탕스의 관련자 모두가 탑승하기로 한 날이거든요. 그야, 마지막 브리니클을 파괴하기로 한 날이잖아요.
 
그럼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시아록, 우보 사틀라를 송환하고 인류의 멸망을 막고 싶나요?
 
당신이 아직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더라도, 약속한 듯이 비행선은 이륙하여 도시의 머리 위를 날아갑니다.
 
발 밑에 곧 끝을 맺을 찬란한 인류 문명을 둔 기분은 어떤가요,
 
시아록:(북적한 선착장에서 비행선에 올라타며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하지. 시간은 자꾸 흘러만 가는데 아직도 결정을 못 내렸다.)
 
그들 모두의 존속이 오로지 당신의 손에 달려 있는 기분은요.
 
창 밖으로는 어느새 노을이 다 지고 밤이 덮인 하늘만 가득차 있습니다.
 
붉음에서 시작하여 노랑으로 끝나는 노을은 오래가지 못하고 밤의 어둠에 덮이고,
 
도시를 비추는 태양은 지평선, 아니 이제는 수평선 너머 물결에 잡아먹히고 맙니다.
 
오로지 어둠으로 덮여 몰락한 지구. 그럼에도 인간들이 곳곳에 밝힌 등이 어둠을 몰아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꼭 저주가 퍼졌을 때 슈테른과 함께 올라간 언덕 위에서 보았던 경치를 떠올리게 합니다.
 
...아니, 어쩌면 조금도 다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비록 사는 시간대가 다를지라도,
 
노아:시아록, 뭘 그렇게 보세요?
 
노아는 당신 옆에 있으니까요.
 
오늘은 요한이 운전을 맡는 날이라 괜찮다고 덧붙이면서요.
 
시아록:음, 그냥 생각을 좀... (풍경에서 눈을 떼고, 당신을 쳐다보았다. 세계가 멸망하는 걸 눈으로 보며 미래의 너를 기다릴 건지, 아니면 네가 행복한 미래를 바라야 할지. ...그런데 만약 우보 사틀라가 없어지지 않으면 그때처럼 또 모두가 아플 건지. 당신을 바라보며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렇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에게 물어볼까? 모든 걸 다 얘기해야할지말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뭐라도 물어보면 답이 나올까? 밖을 보다 달을 올려다봤다.) 시간이 얼마 없는데.. (저도 모르게 작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창 밖에서, 항상 노아의 머리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는 보름달이 야속합니다.
 
저 차가운 별이 대체 뭐라고 지상을 멸망하여 파도에 삼켜지게 했으며, 노아의 꿈과 함께 방주를 침몰시키고,
 
종내에는 슈슈의 평화마저 빼앗아갔나요.
 
노아는 당신을 보더니 한동안 말이 없다가, 책을 덮고 천천히 일어섭니다.
 
노아:설원까지는 적어도 내일 아침까지는 날아야 도착해요.
우리가 날아갈 곳은 남극이라는 곳인데 말 그대로 지구의 남쪽 끝이에요. 극지대가 왜 극지대냐면, 아마 지구의 끝과 끝점에 있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브리니클은 다들 남극 출신이라 그렇게 차가웠던 걸까요?
 
시아록:노아, 하나만 물어봐도 돼? (당신의 말을 가만히 듣는 거 같다가 대화의 흐름과 전혀 다른 질문을 했다.)
 
노아:그곳은... 네? (안 듣고 계셨던 건가. 머쓱해져서 목덜미를 긁적인다)
 
시아록:브리니클이 다 없어져지면 행복할 거 같아? 좋을 거 같아?
 
노아:브리니클이 다 없어지면 인류는 마침내 평화로워지겠죠. 그리고... (창가에 팔을 대고 엎드린다) ... 이전에는 못 해본 일들을 잔뜩 할 수 있을 거에요. 당신도 고향으로 돌아갈 거고. 음...
...어떤 마음이실지는 이해해요. 입은 바싹바싹 마르고, 깊은 바다에 빠진 듯이 무섭고, 당장이라도 배에서 뛰어내려서라도 상대방한테 달려가서... 눈을 떠서 날 보게 하고 싶죠?
그러니까 정신 차리셔야 해요. 여기서 제대로 브리니클을 격파하고 가야 슈테른 씨도 깨어나고, ...그래야 당신은 행복해질 수 있잖아요.
슈테른 씨를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최선의 일도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거니까. ...제가 그 분이었다면, 시아록이 이 작전에서 절 걱정하다가 다쳐오는 건 조금도 바라지 않을 거에요.
 
시아록:그런 게 아니었는데.. (인상을 찡그리고 작게 웃어버렸다.) 내 질문은 내 행복이 아니라 네 행복에 대해서 물은 거였는데, 내 걸 말하면 어떡해.
 
노아:시아록이 이 작전에 제대로 집중 못 하는 것 같으니까 그렇죠. 그래도 집중하셔야지 어떡해요.
 
시아록:나는 딱히 중요하지 않은데. 네 걸 얘기해줘. 그거면 되니까.
 
노아:...제 행복이라니 답하기 어려운 질문만 골라서 하시네요. 그래도 지금까지 어려운 일을 하는 건... 제 전문이었으니까.
아뇨, 중요해요. 시아록은 수중 인류지만 저랑 친구이기도 하고, 이제 우리들과 추억을 공유하거나 같은 것을 보지 못하더라도 어딘가에서 행복하길 바라니까.
그야 당신은... (뒷말은 고개를 완전히 묻으며 삼킨다.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흰 얼굴을 가리는 모습은 달을 가리는 지구의 그림자를 보는 것 같다)
 
시아록:나?
(당신이 말을 하다 말아버리자 고개를 기울였다.)
 
노아:...음, 맞아요. 제 행복은 당신이 슈테른 씨랑 무사히 바다로 돌아가는 걸 보고, 저도 저만의 여행을 시작하는 거거든요. 다시 돌아올 엄두가 안 날 만큼 멀리까지 가서, 세상도 절 잊고 저도 세상을 잊을 때까지.
그런 것 같네요, 음. (말을 마치자마자 벌떡 일어나 다시 소파로 향한다)
 
시아록:세상이 널 잊고, 너도 세상을 잊고...? 왜 그러고 싶은 거야?
(생각해보니 전에도 들은 거 같은데 이유를 되묻지 않았던 거 같다. 여행에만 정신이 팔려서)
 
노아:잊으면 행복해질 것 같아서요. 빈 자리를 망각으로 채우겠다니, 어리석죠.
하지만 전 원래 그랬으니까요. 옛날에도, 지금도. (아까처럼 똑바로 앉지 않고 팔걸이 쪽에 엉덩이를 받친다)
 
시아록:지금까지의 일 전부?
 
노아:... 아뇨,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게 절 구성하는 것들인데.
이오리 씨도, 호버 씨도, 오필리아 씨도, 엘나스 씨도... 그리고 대장이나, 당신도.
추억하는 건 멈추지 않을 거에요. 그래도 다른 것으로 절 채우다 보면 괜찮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막연하게나마 들어요.
 
시아록:그럼 기억을 다 잃어버리게 된다면.. 싫겠지? (바닷속 기억을 모두 잃어버렸던 너를 떠올렸다. 토대없이 하나씩 쌓아간 기억들이 정말 제대로 기둥이 되었을까? 지금의 네가 몇 번이고 곱씹었을 추억이 사라지는 게 정말 좋은 걸까?)
 
노아:잊고 싶다곤 했지만 지우고 싶다는 건 아니에요. 파도에 부딪혀 서서히 부서지는 것과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건 다르니까요.
...복잡하죠? 솔직히 저도 제 마음을 모르겠어요. (책 표지를 쓸어넘기며 웃는다)
 
시아록: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네가 너의 행복만 우선하면 좋겠어. 그럼 나는 행복할 거야. (이건 진심이다.)
 
노아:오늘따라 제 행복을 엄청 궁금해하시네요... (조금 어색한 표정을 짓는다. 쑥쓰러움과 떨떠름함 사이 어딘가. 괜히 책만 만지작거리다 입을 연다) 제 행복은 신경쓰지 마세요. 그럼 저도 행복할 거에요.
 
노아는 무어라 더 입을 우물거리다가, 곧 한숨과 함께 말없이 털어버리곤 일어섭니다.
 
노아:전 피곤해서 먼저 가 볼게요. 이따 요한 씨랑 교대도 해야 하고...
 
시아록:응, 조심히 가. 좀 푹 자.
 
노아:그럼 내일 또 봐요. (복잡한 표정으로 웃어주며 손을 흔들고 방을 나선다)
 
시아록:(그 사이에 모든 일이 끝나면 좋겠는데. 방을 떠난 당신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그자리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얼굴을 묻었다. 정말 쉬운 건 하나도 없구나. 나한테 주어진 선택이란 게 너무 큰 거 아니야?) 네가 아프지만 않는다면, 나는 다 괜찮아. 네가 행복하기만 하면, 미래에 내가 없어도 괜찮아. 나한텐 세계보다 네가 더 중요해. 나보다도 네가 더 중요해. (홀로 작게 중얼거렸다. 무릎 아래에서 말들이 맴돌았다. 너는 내게 끝내 답을 내놓지 않았다. 네가 한마디만 해줬어도 나는 답지 고르는게 정말 쉬웠을 텐데.) 하...
 
세계를 구하느냐 마느냐는 이제 당신에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브리니클과 우보 사틀라는 인류를 필시 멸망으로 몰고 갔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류가 멸망할 원인이 우보 사틀라에게만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지상세계가 위기를 피해간다고 해도 언젠가 수중 세계는 생겨나고 말 것이라는 걸,
 
이제 몇 번이고 세계를 건너고 시간을 건넌 당신은 어렴풋이나마 알아챕니다.
 
그 수중 세계가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는 있겠지만요.
 
당신이 아는 "슈슈"는 없겠지만요.
 
그렇기에 세계를 구하는 것은 곧 그를 구하는 것과 뜻이 같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세계는 그니까요.
 
아주 옛날부터, 줄곧 그랬으니까.
 
이 이야기의 비극은 그의 세계가 당신이 아닌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넉넉한 소파에서 공허감이 잔뜩 묻어납니다.
 
주인을 잃고 테이블에 홀로 버려진 책은 바람에 날려 책장을 팔랑팔랑 넘기고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요?
 
당신은 그저 그가 행복하기를 바란 것 뿐이었는데.
 
"어제"와는 달리 졸음은 쉬이 찾아오질 않고, 어느 곳에 몸을 눕히기에도 비행선 안은 너무 춥습니다.
 
겨울이니까요. 꽃이 지고 새들이 짝을 잃으며 나무가 열매와 잎을 떨구는 계절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침대로 찾아가 눕습니다. 이제 빨리 자야 한다고 잔소리해줄 사람은 없어졌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
 
그렇게 몇 시간을 뜬눈으로 지새웠던가요?
 
정신차리고 보면 아침입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 일어났더니 작은 창으로 햇빛이 쏟아지고 있거든요!
 
컨디션이 그닥 좋진 않네요. 아무래도 잠을 설쳤으니까요.
 
그래도 약속처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풍경이 펼쳐집니다.
 
로비에 나가면 오필리아 씨와 그리드 씨 등등... 레지스탕스 대원들이 모여 있습니다.
 
당신을 보고는 아는 체를 하네요.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 중에는 전에 동굴 탐사를 함께했던 대원도 있습니다.
 
정체불명의 물 웅덩이... 아니, 이제는 우보 사틀라의 자식이었다는 걸 당신은 알죠.
 
아무튼 그것에 휘말릴 뻔했지만 당신이 구해낸 사람입니다.
 
시아록:(마주 손을 흔들고 다가갔다.) 유진은 어딨어요?
 
대원: 대장님? 아마 지금쯤 조종실 근처에 계실 걸.
슬슬 설원에 도착했으니까, 동굴이 어디 있는지 탐색하라고 지시하고 계실 거야.
 
시아록:그렇군요. 고마워요. 대장한테 갔다 와야겠어요. (상대에게 웃으며 대답하고는 조종실 쪽으로 향했다.)
 
조종실 문 바로 앞 갑판에는 대장과 몇몇 고위직 간부가 서 있습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흰눈밭을 등진 채입니다.
 
쏟아지는 눈은 갑판에 달라붙어 그 표면을 덮습니다.
 
분명 추워야 맞을 텐데 오늘은 소복히 쌓인 눈이 마치 이불처럼 느껴져요.
 
얼핏 보니 조종 방향에 대해 무언가 회의하다가 고개를 돌립니다.
 
동태를 살펴보는 중인 것 같네요.
 
시아록:대장..
 
유진:(턱을 손에 대고 주변을 올빼미처럼 이리저리 주시하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퍼뜩 돌아본다.) 누구... 아, 시아록 대원.
 
시아록:할 말이 있는데 괜찮아요?
 
유진:곧 도착할 것 같습니다. 미리 들어가 계ㅅ...
무슨 말이지? (잠자코 멈춰서서 그 말을 경청한다.)
 
시아록:그게...(말하려고 하는 지금조차 고민에 들어섰다. 그러나... 나는, 만에 하나 '그것'때문에 네가 또 아플 확률을 두고 볼 수 없다.) ...석판에서 봤는데요. (시간을 돌아온 걸 말할 수는 없어서 얼버무리며 작게 한숨을 들이켰다.) 브리니클을 모두 처리하면 신이 소환되어 세계가 멸망할 거라고 적혀있었어요. (그걸 신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유진:...석판? 어느 석판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저번 탐사에서 새로 얻은 석판에서 해독한 내용인가? 그런 중요한 내용이 있었다면 내게 보고가 들어오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두 눈이 거세게 떨리는 걸 보면, 이 이야기를 믿지 않는 눈치는 아니다)
...어떤 신, 입니까? 저희가 어떻게 대비하면.
 
시아록:(결국 크게 한숨 쉬고 말았다.) 대비할 수 있는 건... 마법 밖에 없어요. 사람도 엄청 필요하고요.(지금의 당신들은 할 수 없고, 나만이 할 수 있는.) 근데 실패하면 전부 다 죽을 거예요. 우리 뿐만이 아니라 세계 모든 사람들이요. 그래도 브리니클 전부를 없애고 '그 신'을 불러 낼 거예요?
 
유진:(몇 분이 흘렀을까? 브리니클 수십 마리보다도 무거운 결심의 말을 던진다.) 브리니클을 완전히 멸하지 못하면 더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저희는 조금이라도 더 사상자를 줄이기 위해 이곳에 있으니까요.
그로 인해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무엇이든 할 거다. 가만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레지스탕스 전원에게 예의가 아니니까.
말씀해주십시오. 레지스탕스가 그 신을 막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무릎을 딛으며 앉는다. 꼭 비는 것처럼)
 
시아록:(당신도 참 한결같은 사람이어서 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그의 앞에 저도 느리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마 많은 사람이 필요할 거예요. 제 마력으로 마법을 써봤자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의 마력이 필요해요. 이건 신 송환 주문이에요.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돌려보내는 거죠. ...진짜 실패하면 그 누구도 남지 않고 다 죽어버릴 거예요. (내가 다시 시간을 거슬러 올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으니까.)
그러니까 브리니클을 모두 해치우기 전에 갑판에 모두 모여있도록 하죠. 브리니클이 전부 사라지면, 저 달에서 우보 사틀라, 그 신이 나올 거예요. 그때 제가 돌려보내볼게요.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반반이에요. 아시죠? (슬쩍 미소지으며 당신의 눈을 바로 쳐다봤다.)
 
유진:...그 마력이라는 걸 저희도 가지고 있습니까? 몇 사람이면 충분하겠습니까. 그거면 됩니다. (이제 더는 뒷걸음칠 수 없다는 듯 굳은 눈으로 이 쪽을 바라보고 있다)
 
시아록:있긴 해요. (슈슈도 마법을 배워 썼으니..) 되도록 많으면 좋죠. 위치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 말고는 다 갑판에 올라갔으면 좋겠어요. (마력 부족이면 모두가 죽는다.)
 
유진:알겠습니다. 가능한 많은 인력을 당신의 마법에 동원할 테니...
부디 우리의 미래를, 함께 구원해 주십시오.
 
유진은 그 말을 끝으로 당장 선박으로 내려가 무언가 지시하기 시작합니다.
 
밖으로 나오면 모두가 비행선의 대포 부분만을 주시하고 있고, 담당 대원들은 바쁘게 발포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어제와 같이 비행선은 창공의 어느 지점에 정박하고,
 
그 대포의 총구를 모두 동굴 쪽으로 겨눕니다.
 
이 한 발로, 마지막 결전이 맺힙니다.
 
당신의 요청대로 대포를 조종하는 사람을 제외한 모두가 갑판에 서 있습니다.
 
개중에서는 노아도 함께합니다. 모두가 같은 자리에서 같은 것을 보고 있습니다.
 
엄청난 바람과 싸라기눈. 마지막 발포를 준비하는 사람들.
 
당신은... 무슨 생각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나요.
 
시아록:(아래를 보기보다 그저 하얗게 입김이 올라가는 걸 그대로 따라 시선이 올라가며 달을 찾았다. 입김에 증기에 감춰 한숨을 쉬었다.)
 
옷깃에 묻어두었던 펜던트, 고대종의 수정을 꺼냅니다. 심해의 조각을 극풍설한의 온도로 얼린 펜던트는 당신의 손에 꼭 맞게 쥐어집니다.
 
유진이 사전에 미리 전략을 짜 두고 지시한 건지, 대원들 모두가 브리니클이 아닌,
 
그 후에 나올 우보 사틀라에게 시선을 향하고 있습니다.
 
쾅, 쾅, 쾅.
 
비행선의 바닥이 열리고 다시금 대포가 고개를 내밉니다.
 
포탄이 하나 떨어질 때마다 그간의 일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노아가 당신의 손을 가만히, 강하게 쥐어옵니다.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은 채 모든 것이 무로 회귀한 순간.
 
“온다.” 노아가 속삭입니다.
 
미세하던 금은 점점 벌어집니다.
 
알에서 새가 부화하듯, 마침내 달의 껍데기를 깨고.
 
끓고 흐르는 끈적한 액체가, 사람의 눈으론 분간할 수 없는 덩어리들을 떨구며 태어나기 시작합니다.
 
멈추지 않고 꿈틀거리며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모습은 얼음 호수의 동굴에서 본 것과 무척 닮았습니다.
 
차갑고, 어둡고, 희고, 축축한 것. 아무것도 없는 것. 땅에 내리는 재앙.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 시작. 원초의 시대. 영원한 손실. 무無로 회귀하는 것.
 
태어난 것이 멸망을 가져오고 죽은 것이 저주를 내린다. 인류가 자초한 재앙.
 
낳아지지 않은 근원, 우보 사틀라의 강림을 목격합니다.
 
이성 판정 생략.
 
당신은 어제와는 전혀 다른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봅니다.
 
무너진 달과 부서지는 하늘.
 
그 앞에서, 당신은 신 송환 주문을 외우기 시작합니다.
 
아직 부족해요. 마법을 쓰고 있지만 제대로 손에 쥐어지지 않는 마력은 불안정하기만 합니다.
 
부족한 마력을 세며 무심코 입술을 깨물었을까요? 펜던트를 쥐고 마법을 전개하느라 뗴었던 손을,
 
노아가 다시금 강하게 잡아옵니다.
 
그리고 나서는 유진이 뭐라고 소리치며, 일제히 당신에게 손을 뻗어 마력을 더해줍니다.
 
조각나고 부서지는 달의 파편이 다시금 모입니다.
 
우보 사틀라는 못다 깬 껍질을 비집고 나오지만, 마법의 영향인지 위족을 펼치지 않고 있습니다.
 
마침내 조금씩 흘러들어오는 마력이 당신의 힘을 완성시키고,
 
마지막으로 고대종의 수정을 손에 꽉 쥐면,
 
이번에야말로 모나지 않고 알처럼 완전한 마력이 당신에게 쥐어집니다.
 
이 손으로, 이번에야말로 끝을 내세요.
 
시아록:
신 송환 Roll
기준치: 100/50/20
굴림: 93
판정결과: 보통 성공
 
―!
 
강렬한 빛이 쏟아집니다.
 
그러나 위협적이진 않습니다.
 
우보 사틀라가 크게 울부짖습니다.
 
달이 차올라 초승달에서 보름달이 되듯이 완성된 마법은, 그를 다시는 찾아올 수 없을 만큼 머나먼 곳으로 떠나보낼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은 당신에게서 말미암아, 마침내 모두의 손으로 완성한 기적입니다.
 
우보 사틀라의 무수한 위족들이 꿈틀거리며 휘둘러지지만, 아틀란티카를 맞추는 일은 없습니다.
 
유진 크시슈토프가 선언합니다!
 
유진:더 이상의 희생은 없다.
우보 사틀라여, 다시는 깨어나지 말아라!
 
갈라졌던 달이 달라붙습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달의 뒷면, 우보 사틀라가 사라지는 것이 보입니다.
 
아, 마침내 지상에서 거대한 신이 사라집니다.
 
끝났다, 는 실감도 없이 멍하니 있으면 한 박자 늦게 환호가 울립니다.
 
레지스탕스 전원이 감격하고 있습니다. 와앙 소리 내 울기도 하고요.
 
"이제 모두 무사할 거에요!" 노아는 신이 나 당신을 끌어안았을지도 모르겠네요.
 
눈가를 가볍게 훔친 유진이,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습니다.
 
유진:비행선 아틀란티카, 귀환!
 
...
 
...
 
 
노아의 말이 맞아요.
 
그 후부터는 모든 게 무탈히, 잘 돌아갔습니다.
 
브리니클과 우보 사틀라가 인류의 손에 남김없이 사라지자 도시는 빠르게 재건되었습니다.
 
매일같이 부서진 건물을 보수하는 소리가 들려와 노아는 잠을 설쳤지 뭐예요.
 
앞으로 평화가 이어진다면, 언젠가 유리도 깨어나게 될 날이 올까요?
 
병원으로 향하는 유진은 평소보다 온화해 보였습니다.
 
오늘은 도시에서 대대적으로 축제가 열리는 날입니다.
 
브리니클을 모두 격퇴하고 우보 사틀라의 마수로부터 도시를,
 
세계를 지켜낸 자들을 위한 연회죠.
 
하지만 당신은 그 거대한 행복으로부터 조금 빗겨난 채입니다.
 
어째서일까요? 당신이 지상 인류가 아니라서?
 
그것도 아니면...
 
노아:...시아록.
 
시아록:...응? (한 박자 늦게 당신의 말에 대답했다.)
 
당신과 노아는 연회장에 가는 길을 벗어나 사해를 걷고 있습니다.
 
그리운 바다, 옥색 물과 상아빛 모래...
 
아니, 어떤 모습이더라도 언제까지고 당신의 고향일 바다.
 
노아는 해안선을 따라 걸으며 묻습니다.
 
노아:...제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말, 진심이에요?
 
그렇게 묻는 노아는 조금 수척해 보입니다.
 
분명 기쁜 표정일 줄 알았는데, 왜 저런 얼굴일까요.
 
역시 잠을 설쳐서?
 
시아록:응? 당연하지. 왜? (당연한 대답을 하고, 흐린 당신의 얼굴이 더 신경쓰이는 듯 자세히 쳐다본다.)
피곤해?
 
노아:... 당신이라면 다르게 대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아록:응..? 뭐가?
 
노아:역시 상냥하시네요. (고개를 숙였다가 바닷가의 경치로 얼굴을 돌린다.)
피곤한 건 아니에요. 아직 쌩쌩한 걸요. (힘 없는 목소리로 내뱉으며)
 
시아록:그럼 왜 그래? 기분 안 좋아?
 
노아:...아뇨, 그냥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아요.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슈테른 씨는 어때요? 깨어나셨어요? 유리 씨는 아직이래요.
 
시아록:어디가 아픈데? (급하게 물었다가 슈슈의 이야기에 조금 웃고 말았다. 말해도 될까?)
있잖아. 좀 엉뚱한 얘기해도 돼? 그냥 동화같은 건데. 좀 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많이 생략해볼게. ...지금보다 먼 미래에 어느 곳에, 엄청 친한 두 사람이 있었어. 마을은 작았지만, 사람들이 서로서로 도우며 사는 평화로운 곳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하나둘 아프기 시작하더니 곧 죽음에 이르는 거야. 그걸 두 사람이 해결하려고 하다보니 과거로까지 거슬러 올라왔어. 그런데 두사람 중 한 명도 똑같이 아프기 시작했어. 그래도 어떻게든 그 병을 고칠 방법을 알아내서 해결하던 중에.. 정말 놀랍게도 과거에서 친하게 지내게 된 사람과, 미래에서 같이 과거까지 거슬러온 아픈 친구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대. 그리고 병을 고치려면 과거도 다 바꿔야 한다는 걸 알았어. 또 그것만이 아니라 과거를 바꾸면 자기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도 알았어. 뭐, 이건 반반이지만. 그럼 그 사람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알아? (너무 대놓고 정신없게 얘기하나 싶으면서도 말을 멈출 수 없었다. 저도 모르게 이제는 알아줘, 알아줘. 하고 바라고 있었으니까.)
 
노아:(멈춰서서 그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는다. 분명 5분도 되지 않을 찰나마저 영원처럼 느껴지는 순간.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지만 않았다면 시간이 멈춘 것처럼도 보일 것이다. 손에는 전에 산 카메라를 들고 있다. 언젠가 바닷속으로 잠기고 말 테지만, 당신이 지켜준 덕에 두 손에서 떠나가지 않은, 이번에야말로 추억을 담을 상자.)
(아니, 표정이 보이지 않아서 그저 멈춰선 걸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돌아보는 얼굴은 셀 수 없이 많은 감정으로 뒤틀려 있다) ...시아록.
지, 지금 무슨 얘기를... 저, 저는. (눈을 꽉 감고 고개를 젓더니 손을 꽉 잡아온다.)
 
시아록:(무수한 감정을 담은 복잡한 네 얼굴을 보다가 어쩔수 없다는 듯 웃음이 났다. 알아달라는 마음을 담았지만, 네가 이걸로 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게, 무슨 얘기였을까.
 
노아:아니, 잠깐만, 잠깐만요. 과거... 라니요? (아픈 표정으로 웃지도 않고 서 있다가, 이내 두 손을 잡아온 뒤 쏟아내기 시작한다) 미래에서 왔다고요? 거짓말. 그럴 리가 없잖아요. 이렇게 선명한데...
아니라고, 해 주세요... (손에 힘이 풀려 잡고 있던 손을 놓친다. 푹, 모래에 사진기가 떨어져 파묻히는 소리는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와 같았다 다른 시간대라면 이제 당신은 돌아가야 하잖아요.)
...사라지지 않았죠? 사라지지 않을 거죠? (무리한 부탁임을 알면서도 내뱉는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믿음만이 마지막 희망이었는데, 이제 같은 시대에서 살 수도 없다니. 울고 싶은데 그 사람 앞이라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돌아갈 거에요? 그 사람은? 슈테른 씨는...? (풀 수 없는 난제를 마주한 수학자같은 눈을 하고 있다.)
 
시아록:그러게.. 돌아가지 말까? (사진기를 떨어뜨린 당신의 손을 한 손으로 잡고, 날리는 네 머리카락을 다른 손으로 잡았다.) 그냥 여기 있을까?
하하, 너도 알잖아. 네가 슈슈야. (돌려돌려 말하던 것을 결국 내뱉었다.) 내가 너무 많이 바꿔버려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 미래도 돌아가도 내가 있을 자리가 있을까, 네가 있을까. 조금 무섭기도 해. (바람결에 날아가버려서 네가 듣지 못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건지 목소리가 한참 작았다.)
 
노아:아뇨, (직설적인 말에 창으로 관통당한 사람마냥 잠시 비틀거린다.) 아뇨, 전 그 사람이 아니에요. 당신이 함께 유년기를 보내 온 가장 소중한 소꿉친구잖아요. 저랑 슈테른 씨가 동일인물이라고 해도 그 공백은 메울 수 없어요. (알고 있었는데, 만약 이 사람이 바다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이 곳에 있어준다 해도 당신이 행복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포기한 건데... 바람이 차서일까? 눈에서 결국 눈물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 날의 당신처럼 차마 마음 속에 다 담을 수 없는 감정이 흘러나와 모래 위를 적신다)
차라리... 말하지 말지 그랬어요. 그럼 다 잊고 보내줄 수 있었는데, 왜 그랬어요...(결국 무너지는 얼굴을 두 손에 묻는다. "곁"에 있어주겠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사무치도록 외로운지 모르겠다)
왜 사라질 줄 모르는 상황에서 그런 선택을 했어요? 제가 행복하려면 당신이 행복해야 한다고 했잖아요. 왜 존재를 걸고서 그런 짓을 했어요. 혹시나 바꾼 과거 때문에 당신이 사라진다면... 돌아갈 곳이 없어진다면 당신은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잖아요. 그게 얼마나 비통한 일인지 당신은 알아요? (한숨을 쉬며 힘이 빠진 듯 주저앉는다)
 
시아록:너에게 내 어린 시절이 없어도, 바다에서 같이 지내던 기억이 없어도.. 그렇다고 네가 아닌 게 아니야. 나한테는 그래. (작은 목소리가 조근조근 읊었다.) 네 말대로 말하지 말 걸 그랬나? 그래도... 네가 나를 알아주길 바랐어. 네가... 나를.
(주저 앉는 당신에게 놀라 움찔 몸을 떨다 한 발 늦어 당신을 붙잡지 못했다. 그 대신 당신의 앞에 쪼그려앉으며 당신의 말을 곱씹었다.) 내가 왜 안 행복해? 네가 살아있고, 후에 행복해진다면 그게 내 행복이야. 내가 미래에 있던 없던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내가 그랬잖아. 내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그건 나에게 하는 말들과 생각이었어. 노아가 곧장 부정해줬지만.
그러니까 그건 슬픈 일이 아니야. 전혀.
 
노아:... (행복하다는 말을 듣고서도 한동안 멍하게 앉아서 눈물만 흘린다. 온 세상의 슬픔을 다 떠안은 듯한 얼굴) 제가 있는 게 당신에겐 행복이에요? 하지만 전 수중 세계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라요. 추억도 공유할 수 없고요. 전... 전 바보라서 지금 와서 제가 그 사람이라느니 제가 당신의 행복이라느니 그런 건 모르겠어요. 하나도 모르겠다고요... (울컥, 하고 무언가 치솟는 채로 겨우 눈물 범벅이 된 손으로 어깨를 더듬더니 껴안아버렸다)
 
시아록:(네게 안기니 왜인지 눈물이 났다. 너를 끌어안고 네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노아:왜 아무것도 털어놓지 않았어요? 난 이미 당신을 떠나보내고, 그 사람과 행복하게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차라리 그때 얘기해줬다면 이러는 게 아니라 좀 더 기뻐해줬을지도 모르는데.
(터져나오는 울음에 자꾸 말문이 막힌다. 답답한 것도 같고 가슴이 아픈 것도 같다)
...하나만 물을게요. (어느새 어깨에서 얼굴을 떼며 잔뜩 일렁거리는 목소리로) 그럼 당신은 이제 어떡할 거에요?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어요?
 
시아록:나도 안지 얼마 안 되서 그래.. (여전히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당신과 마주보았다.) 너만 있으면 나는 아무것도 필요없어. 내가 왜 자꾸 네 행복을 지금껏 물었겠어. 세상도 너와 바꿀 수 없어. 세상이 다 무슨 소용이야, 네가 없으면. ....그러니까, 네가 원하면 나는 남을 거야. 우보 사틀라도 없으니까 미래는 다 괜찮을 거야. (여기 남는다고 자신이 괜찮을지 알 수는 없지만, 미래로 돌아가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네가 없을 지도 모르는 미래보다는 네가 있는 과거가 낫지 않을까.)
 
노아:... 당신이 그렇게 말하면 포기할 수가 없잖아요... (작은 틈마저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다시금 품으로 파고들어 끌어안는다. 마치 어리광을 부리듯, 새끼가 어미에게 매달리듯 맹목적인 움직임) 전 당신만 행복하다면 뭐든 됐어요. 저한테 그럴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정말 제가 행복하면 뭐든 됐다고 하면... 저는... 곁에 있어달라고 할 거에요...
...그래도 정말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아요? 두고 온 게 있잖아요, 당신이 있을 곳은 거기잖아요... (그 말을 뱉자마자 다시 눈물이 치솟아오르는 듯 한동안 흐느낀다)
 
시아록:(그저 네가 매달려오듯 안기는 게 좋아서 마주 끌어안았다. 눈물은 여전히 뚝뚝 떨어졌다. 네가 자신을 포기할 수 없다고, 곁에 있어달라고 해서 그게 너무 기뻐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아. 그런 건 정말 아무래도 상관없어. 내가 네 옆에 있을 수 있다면 그걸로 전부 괜찮아. 그러니까... 옆에 있어줘, 노아.
 
노아는 그 말에 더욱 크게 울음을 터트립니다. 당신은 가슴이 아프고도 행복해서, 그저 더 힘을 줘서 노아를 끌어안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떨어지는 눈물은 슬픔으로 시작해 안도감을 섞어 흘러내립니다.
 
다시 몸을 추스르고, 사진기를 주워들고 나면 어느덧 다시 노을이 집니다.
 
겨울은 해가 금방금방 지니까요. 벌써 저녁을 준비할 때가 온 거겠죠.
 
비행선에서는 어쩌면 마지막으로 보게 될 하늘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시금 되찾으니 반가우면서도, 어딘가 먼 곳에 있는 게 그리워집니다.
 
당신이 다시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한 아주 머나먼 시간대가.
 
노아는 말없이 손만 잡고 걷다가 꼭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 중얼거립니다.
 
노아:예전에, 당신을 좋아한 적이 있었어요.
당신은 알았을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당신에게는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이 있었고, 그걸 알면서도 마음이 흔들리는 걸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그런데도 당신을 좋아하게 되는 것보다 당신이 저를 잊는 게 더 무서워서... 그래서 구태여 자주 붙어다녔어요.
당신이 저와 슈테른 씨를 구분한다는 건, 저를 오롯이 저로서 기억해준다는 소리였지만, 동시에 저는 죽어도 그 사람이 될 수 없다고,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더없이 기쁜데도 어쩐지 속이 아팠어요.
그래서 솔직히 지금... 제가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가 해요.
여행은... 전에 말한 대로에요. 아무리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나더라도 당신을 잊고 추억 한켠에 남기면 조금 나아질까 생각해서...
...미련하죠? 저.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지 모르겠다며 헛웃음을 흘린다.)
 
시아록:그게 왜 미련해?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안 쉬운데, 하물며... 서로 좋아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이잖아. 그런 건 미련하다고 하는 거 아니야. (잡고 있던 당신의 손을 슬쩍 풀었다가 깍지껴 잡았다.)
노아랑 슈슈는 분명 같은 사람이지만, 지금랑 미래에서 서로 다른 기억으로 쌓아올린 게 노아는 서운할지도 모르니까 나중에 전부 얘기해줄게.
 
노아:가, 갑자기 깍지는 왜... (입술을 꽉 물고 그야말로 석양처럼 익은 얼굴을 휙 돌린다. 일단 풀지 말라는 듯 손에 힘을 주고 있으니까 절대 기분이 나쁜 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조, 좋아했던 상대한테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이상하다고요.
(곁눈질로 당신의 옆얼굴을 훔쳐보다가 의외의 말에 눈을 크게 뜬다) ...아, 그, 그렇구나. 그래도 괜찮아요?
가, 감, 감사합니다. 그럼 저도 잘 듣고 기억에 새길게요. 드, 듣는 것뿐이고 직접 겪은 건 아니라지만, 그래도... (안절부절못하는 눈치로 손을 잡았다 뗐다가 아주 난리도 아니다)
...이제 떠나지 않는 거죠? 곁에 있어주시는 거죠, 정말로.
 
시아록:응, 그냥 기억하고만 있어도 돼. (네가 안절부절하는 반응에 작게 웃으며 손을 꽉 잡았다.)
응, 안 떠나. 여기 있을 거야. 계속.
 
노아:(당신의 확답에 조금 복잡하고 아픈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활짝 핀 미소를 보여준다) ...네, 그거면 됐어요.
그럼 이만 도시로 돌아갈까요? 우리도 축제의 주인공인데, 마저 즐겨야죠.
 
시아록:그래, 그리고 나중에 다시 짐 집으로 옮길 거지? 아니면 같이 그대로 여행 가? (당신의 손을 잡고 도시로 돌아가면서 물었다.)
 
노아:아...! (생각 못 했다는 얼굴로) 그, 그건... 여기 남으실지 바다로 돌아가실지만 생각하느라...
전 어디에 있어도 괜찮지만... 당신만 괜찮다면, 가, 같이 이곳저곳을 가 보고 싶어요. 세상에는 안 보면 손해일 만큼 아름다운 광경도 여행지도 많이 있으니까.
무, 물론 이 도시도 사랑하는 고향이고, 좋지만... 바다를 포기하게 되었다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시아록:그럼 좋아, 여기저기 여행다녀보자. 나중에 여기로 다시 돌아오면 되니까.
 
노아:...네. (따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오늘이 이 도시에서의 마지막 축제겠네요. 어서 가요. 이따 저녁에 행진 같은 것도 한다니까...
 
그렇게 말하며 노아가 당신을 끌어당깁니다.
 
덥석, 잡는 손은 따뜻합니다.
 
저주도 추위도 얼음도 없어요.
 
노아:...그나저나 전 그럼 정말 미래의 또 다른 저... 제 도플갱어 같은 걸 만난 셈이네요. (척척 앞장서 걸어가면서 얘기한다)
도플갱어끼리 만나면 죽는다던데... (스스로 뱉고도 조금 안 좋은 표정이 된다)
 
넌 안 죽어, 라고 답하면 웃습니다.
 
뭐, 엄연히 말해 그 ‘미래’는 사라졌죠.
 
수중 세계는 여전하겠지만(어쩐지 그런 확신이 듭니다.)
 
마을에 ‘슈테른’은 없을 거예요.
 
당신은 혼자 바다 위로 올라왔다, 저주도 죽음도 없었다……
 
그런 기억이 당신에게도 작게 생겨났거든요.
 
다른 기억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 작게요.
 
당신은 노아가 이끄는 대로 사람들이 기다리는 연회장으로 달려갑니다.
 
발을 바쁘게 움직이면 숨이 찹니다.
 
바싹 마른 공기가 당신의 폐를 부풀립니다.
 
아직 지상의 중력은 무겁고, 건조한 공기는 비늘을 딱딱하게 만들어요.
 
정든 바다를 떠나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게, 살던 곳에서 벗어나 정처 없는 여행을 시작하는 게
 
마냥 행복한 일들만 겪게 되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괜찮아요.
 
그 계단에 누워 손을 잡았을 때부터.
 
마음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쭉 뻗은 하늘 아래, 거리로 뛰어나갑니다.
 
게다가, 지상에는 아주 많다고요! 조금도 유해하지 않은,
 
END 2. 낯선 단맛을 한껏 누리게 될 거야
 
노아 생환, 탐사자 생환
 
지상은 구원받습니다.
 
수중에 저주는 내리지 않아, 저주로 죽었던 이들도 죽지 않습니다.
 
‘프루헤 슈테른’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당신의 곁에는 노아가 있습니다.
 
이 낯선 지상에서 같이 살아가요. 그리고 영원히 헤어지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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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미 (GM):아, 엔딩 후일담이 몇 개 있는데요...
 
하늘:네!
 
책미 (GM):우선 마녀의 편지부터 읽어드릴게요.
 
어느 날, 당신은 유리병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꽉 닫힌 마개를 열자 편지가 튀어나왔습니다. 어쩐지 익숙한 글씨체였습니다.
 
전부 읽자, 물거품이 터졌습니다. 오래전에 끝난 이야기일 뿐입니다.
 
책미 (GM):이런 이야기에요!
 
하늘:앗.. 마녀님
인어씨
 
책미 (GM):넵넵, 인어가 수중 마을에도 존재한다고 강조한 이유가 이거에요
나중에 만날 인어가 마녀를 만나고 훗날 마녀가 되니까요.
그러니까, 인어이자 마녀님은 이 타임 패러독스와 거대한 순환에 같이 올라타고 계신 분이에요.
인어가 왕자님을 만나기 위해 마녀를 만나고, 실연당해서 가라앉아 마녀가 되고, 다시 인어가 찾아오고...
그래서 자기는 마녀가 아니지만 분명히 마녀가 있었다고 말한 거에요.
인어가 가라앉을 때쯤 마녀는 타임 패러독스로 사라졌으니까요.
 
하늘:그렇군요!
 
책미 (GM):또 작가님이 적어주신 후일담도 있는데, 이것도 세계관이 잘 나와있어서 보내볼게요.
 
시간이 꼭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지만은 않는다는 거 아세요?
 
과거는 미래에 영향을 미치고, 미래는 과거에 영향을 끼치죠.
 
이 이야기는 나선 모양으로 회전하는 구조고, KPC는 타임 패러독스의 결과물입니다.
 
하늘:그리고 엔딩으로 애들은 그대로 시간을 살아가겠죠?
 
책미 (GM):원래 둘의 시간선은 왼쪽에 보이는 것처럼 평행이었잖아요.
하나는 과거고, 하나는 미래죠.
어... 과거에서 살아가겠죠?
원래 노아는 그대로 침몰해서 죽었을 운명이고, 아록이도 언젠간 저주로 세상을 떴을지도 몰라요.
어쨌든 확실한 건, 노아(슈슈)와 아록이는 서로 만나지 못했ㅇ을 거에요.
아록이가 과거로 돌아가지 않았다면요.
 
하늘:헉 그랬군요..
 
책미 (GM):원래 겹치지 못했을 시간대인데, 먼저 과거의 슈슈가 미래의 시간선에 들어가게 되었죠.
콜드 슬립 떄문에요. 누군가에게 약을 받아서 숨을 쉴 수 있었고요.
그리고 훗날 저주를 고치기 위해 둘은 뭍으로 떠나고,
다시 과거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과거의 슈슈, 노아를 만나죠.
그리고 노아=슈슈임을 알게 된 아록이는 그냥 있을 수 없어서 약을 먹이거나 했을 것이고...
지상은 멸망을 피하지 못하고 노아는 그대로 가라앉습니다.
 
책미 (GM):그런데 과거에서 온 노아가 다시 미래의 아록이에게 영향을 끼치고, 미래에서 온 아록이가 과거의 노아에게 약을 주고... 의 굴레죠.
이건 루프라기보단 꼬여진 시간축, 나선으로 흐르는 시간이라는 느낌이네요.
 
하늘:호에...
 
책미 (GM):말씀대로 이제 지상이 구원받고, 이런 개입이 없어졌기에
과거와 미래의 시간선은 다시 제 갈 길을 가게 됩니다.
대신 노아와 아록이는 같은 시간대를 누빌 수 있게 되고요.
이해가 되셨으려나 모르겠지만, 다시 나레이션을 출력할게요.
 
즉, 노아는 KPC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 지상에 살 적의 자신인 겁니다.
 
노아는 지상에서 브리니클에게 가족을 잃고 외로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뭍으로 올라온 KPC와 탐사자를 만나게 됩니다.
 
자신과 닮은 사람. 그리고 그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외로움이 어떤 마음으로 변질되었는가는 여러분만 아시겠죠.
 
KPC가 브리니클의 저주에 걸려 탐사자는 지상으로 올라옵니다.
 
그리고 노아와 만납니다.
 
탐사자와 만난 노아는 다시금 콜드 슬립에 빠져,
 
억겁의 시간을 보내고도 당신을 만나고 싶다고 바라게 될 거예요.
 
그렇게 눈을 감으면 심해로 떨어져……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채로 KPC가 되어 깨어나겠죠.
 
다시 베키 씨가 KPC를 구하고, 탐사자와 만나고, 유일무이한 또래로 함께 자라게 될 겁니다.
 
KPC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긴 콜드 슬립의 후유증입니다
 
송곳니가 발달하지 않은 것, 비늘이 흔적만 남은 것은 전부 수중 인류가 아니란 증거고요.
 
이 이야기가 나선으로 회전하는 구조고, KPC가 타임 패러독스의 결과물이라면
 
탐사자는 가장 중요한 회전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탐사자의 행보는 이 나선을 풀거나 끊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러니 탐사자.
 
저 까마득하게 먼, 물 위를 궁금히 여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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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3부에 걸친 대서사시가 끝났습니다... 언제 읽어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인간찬가적 스토리와, 언제 읽어도 마음이 일렁이는 갓 롤플의 조화...
정말 좋아하는 캠페인을 정말 좋아하는 아이와 다녀올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상황과 서로의 감정을 마구 꼬아놓은 탓에, 엔딩을 앞두고선 제발 해피엔딩 보게 해 달라고 앤오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렸던 기억이 있네요 ^_^; 세션 중 로그뺨도 쳐 보고... 여러모로 인상깊은 탁이었습니다.
하... 좋았다...... 얘들아 평화로운 세계에서 행복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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