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known:(본능처럼 창밖을 확인했을 뿐, 아까전에도 새까맣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것 같아 기대감이 전혀 없었던 것만큼 실망감도 없는 채로 손끝으로 유리만 문지르다가 시선을 떼어냈다. 맨발을 타고 오르는 진동감을 몸으로 느끼는 채로 다시 발을 끌 듯 천천히 움직여 널부러진 상자에 가까이 다가갔다.)
unknown:(이게 거울이고 제 얼굴이 비친다는 것을 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안개 낀 머릿속으로 정말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기만 한 제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어딘가 기묘하게 위화감을 갖게 하는 목덜미의 가시를 깨진 거울 속으로 보다가 목으로 손을 뻗었다. 이게 왜 이상한 기시감을 갖게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어서 손 끝으로 몇 번 건들여보다가 손을 내렸다. 이게 원래부터 '내' 몸에 있던 건지 아닌 건지 알 수 없으니..)
가시를 자세히 살펴볼까요?
그럴 생각이 없다면 다음으로 눈에 띄는 것은 각각 앞, 뒤로 향하는 문 두 개일 것입니다.
unknown:(뭔지도 모르겠는 가시는 내버려두고, 슬금슬금 뒤쪽으로 향했다. 왜 저길 뒤쪽이라고 자신이 판단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문은 창문과 손잡이가 없는 철제문입니다.
그런데 밀거나 당겨도 꿈쩍하지 않네요.
그렇다고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패드 따위가 달린 것도 아니고요.
unknown:(몇 번을 문과 씨름하며 달그락거리다 금세 포기한 듯 한동안 잠시 꾸물대다가 반대편 문으로 향했다.)
이쪽은 창문이 달린 미닫이문입니다.
창 너머로는 시커먼 어둠이 보이네요.
문을 열면 건너에서 묘한 쇠 냄새가 납니다.
앞으로 나아갈까요?
unknown:(아까와는 다르게 쉽게도 열린 문을 물끄러미 보다가 코끝을 스친 냄새에 콧잔등을 찌푸렸다. 고개만 돌려 제가 있었던 곳을 힐끔 쳐다봤다가 앞으로 향했다.)
시아록:(가만히 그를 관찰해 제 눈에 보이는 건 알아차렸지만, 실상 아는 것이라곤 하나 없으니 실속이라고는 없었다. 호흡을 길게 뱉어내고는 이름 모를 '그'가 가리킨 책장으로 몸을 돌렸다. 질문이 우수수 제게 떨어졌었다고는 하나 '아무것도' 아는 게 없으니 사실 궁금한 것은 없는 것과 다름없었다. 알고 싶은 게 없는데 여기서 무얼 찾아야 할까.)
시아록:(관리라곤 안 되었던 듯 읽을 수 있는 세 페이지 외에는 알아볼 수도 없는 것 같아 읽을 수 있는 부분만 읽어보기로 한다.)
팔랑, 팔랑, 낡은 문서가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오래된 책 냄새가 훅 끼쳐옵니다.
핸드아웃: 테일러 에반의 예언서 1P
…썩은 땅에는 작물이 자라지 않았고, 그곳에서 살던 자들은 병을 얻어 죽어갔다. 이 최악의 재앙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최후의 도시로 모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인구가 과포화된 도시 또한 다른 방식으로 멸망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모든 이가 가난했기에 고통스러웠기에 남을 상처 입혀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곧 축복의 도시는 곧 가난과 기아, 범죄의 도시가 되어, 이 땅에 사는 모든 인간의 목표는 곧 생존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신의 자비 없이 인간은 살아갈 수 없다는 말인가?
핸드아웃: 테일러 에반의 예언서 2P
더는 우리가 하늘이라 부르던 풍경을 볼 수 없다. 텅 비어버린 거대한 공동은 별도 달도, 해도 비추지 않은 채 그림자만을 뿜어낸다. 햇빛 대신 그림자를 빨아들인 땅은 이치에서 벗어났기에 썩어갔으며, 그 품에 안겨 있던 모든 생명은 독기를 얻어 시들어 죽어갔다.
이 모든 건 신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세계를 구성하며 지탱하던 자들이 이 별을 떠났기에 무너지는 것은 당연했다. 자신에게 기생해 살아가고 있는 별을 버리는 것은 그 땅 위에 사는 자들에겐 어떤 이유를 대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겠으나, 신들은 이유를 알려준다는 작은 자비조차 베풀지 않았다. 생명은 자신들이 왜 죽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죽어갔다. 아직 떠나지 않은 신을 붙잡으며 애원하는 자들도 있었으나 제 죽음을 재촉하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그저 존재할 뿐인,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 신을 붙잡아둘 방법은 없다. 그들에게 있어 우리는 이 땅에 기생하여 살아가고 있는 벌레와 같으니.
아직 남아있는 신들까지 전부 떠나고 나면 생명이란 개념은 완전히 사라지고 만다. 그런 최후의 세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지막까지 그저 살아가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런 인간에게 마지막 예언이 내려왔다.
핸드아웃: 테일러 에반의 예언서 3P
…순환 열차는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다. 그 열차에 올라타고 싶어 하는 인간은 많았으나 우리는 예언에 따라 선택받은 한 명만을 열차에 태웠다. 가장 아름답고 우수한, 사랑받아 마땅한 인류의 결실. 그가 승차한 열차가 달리는 한 등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이며, 등불이 꺼지지 않는 한 우리는 최악의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인류 최후의 예언이리라.
시아록:(겨우 읽을 수 없는 페이지만 읽었으나 여언의 문장은 몰이해만을 불러왔다. 무슨 희망? 단 한 사람에게서? 떠나는 신이란 것도, 썩어가는 땅도, 죽어가는 모든 생명도 본 적 없고 여전히 아는 거라곤 제 이름 하나뿐이나 그들이 원하는 게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은 알 것 같았다. 최악에 줍는 희망에 의미가 있나. 모로 기울인 고개짓으로 차갑게 책을 닫았다.)
시아록:(맛이 없다고 한정된 자원 안에서 투덜거릴 생각은 없었다. 그저 천천히 음식을 씹었다.)
??:궁금한 점은 없어지셨나요. (식기를 내려놓고 물로 목을 축인 뒤 얘기한다)
시아록:(잠시 고민하는 듯 눈동자가 움직였다.) 궁금한 건 계속 더해지지 않을까..
??:...저는 이후에도 일정이 있으니, 질문이 있어도 대답해드릴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에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쉰다. 조금 이르게 식사를 마치고 입가를 냅킨으로 닦는다)
시아록:(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서 식사를 마쳤다.)
??:(옆에 놓인 곰인형을 쳐다보고 있다가 고개를 든다) ...저는.
저는 당신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이나요? (관심이 있어서 묻는 건지, 무언가 파악하기 위해 묻는 건지, 모호한 질문이다.)
시아록:(정말로 생각지도 않은 물음에 놀란 듯 동그래진 눈이 몇 번이고 깜빡였다. 그러고는 몇 차례의 호흡과 함께 아까의 표정으로 돌아와서는 생각이라도 하듯 고개를 이리저리 기울였다.)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요.
(정말로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고작 한 두번 본 걸로 판단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제 머릿속은 여전히 안개속에 쌓여있을 뿐인데, 누군가를 판단하고 있을 기준점도 없었다.)
??:...그런가요. (평가가 어떻든, 대답은 그 몇 글자가 전부다. 긍정적인 말을 뱉었어도, 부정적인 말을 뱉었어도 비슷했을 거란 예감이 든다.)
이 열차가 어디로 가면 좋겠어요?
기억나는 건 있나요? 열차에 대해서, 타게 된 이유에 대해서.
시아록:(몇 번이고 다시금 눈을 깜빡이며 말을 듣고 있다가 느리게 물음에 대답했다.)
나는 이 열차가 어디로 갈 수 있는지도 몰라.
그리고 다른 것들도 몰라. 기억도 아무것도 안 나고.
??:......(이어지는 대답에는 눈이 더 내려앉는다. 다시 한숨을 뱉는다.) 역시 그렇군요.
기대하지 않는 게 더 좋을 거에요. 어차피 당신은 이 열차에서 내릴 수 없거든요.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입을 굳게 다뭅니다.
식사를 마치고 배가 부르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습니다.
테이블에는 금이 가 있고 바닥에 깔린 카펫은 크게 찢어져 있습니다.
단순히 오래되어 생긴 흔적 같진 않은데요.
시아록:(말을 가만히 되씹으며 이해하다가 다시금 고개가 모로 기울어졌다.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자신이 여기서 내린다고 무얼 한단 말인가. 아까 읽은 책에서도 밖은 죄다 썩어버렸다고 하지 않았던가. 제가 묻고서는 지레 겁먹은 듯, 저는 생각지도 않은, 다시금 돌아오는 대답들을 가만히 들었다. 그의 생각이 어딘지 읽히는 듯해서..)
모든 ■■■ 위■ 열차에 오를 ■■이 선■■■다. 그의 ■름은 프루헤 슈테른. 인류 최후의 ■■■ 받아 열차■ 올라타는 그를 “신■ ■■”라 부르■ ■■ ■■다. 하얀 ■을 입고 ■■■ 올라■ 그는 ■■■ 영원히 신■ 함께■■ ■■■■■이다. 하지만 이 ■■ ■■■ 부■■■로 바■■■ 자 ■■ 분명 존재■다. 그가 자■■ 의무를 ■■고 열차■■ 뛰■■■■■도 ■■, ■■는■■ 썩어■■ ■ ■에서 ■■■게 될■■ ■■다. 그■기에 열차에 ■■ 기계 ■종의 수를 늘리자■ 의■■ 점■ ■■■며….
시아록:(읽을 수 없는 글자들을 넘기거나 혼자 상상해 끼워보거나 하며 띄엄띄엄 읽어내렸다.)
프루헤 슈테른. (아마도 열차에 혼자 올라탔을 '그' 사람. 그렇다면 저는 여기 왜 있지?)
알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이름이 '프루헤 슈테른'이었다는 것밖에는 없군요.
그가 신문에 날 정도로 유명인이었다는 것도요.
열차에 오를 수 있는 선택받은 한 명이었기 때문이겠죠.
책도 찾아봤겠다, 이제 무엇을 하나요?
시아록:(아는 게 없으니 혼자서 자료를 찾아보는 것도 벅찼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열차가 어느 노선을 따라 이동하는지 궁금해졌다.)
열차의 노선도를 찾아보면,
이 땅의 지도가 나옵니다.
열차는 전국에 깔려 있어 모든 땅을 한 바퀴씩 돌고 있습니다.
타고만 있어도 세계 일주가 가능하겠군요.
이렇게까지 선로를 길게 이어둔 이유가 있을까요?
또 찾아보고 싶은 게 있나요?
더 용건이 없다면, 다른 칸을 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시아록:(세계를 다 돌게 만드려는 듯한 노선도는 의도를 알 수 없으며 지역을 읽어도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다시 지도를 덮어 책장에 꽂아넣었다. 더이상 새로운 궁금증은 떠오르지 않아서 서재를 빠져나가 앞으로 가보기로 한다.) 아까 슈테른,이 나갔던 곳이지..
그가 나간 문 쪽으로 가면 잠겨 있습니다.
방해하지 말라는 어떤 말이 차가운 금속을 타고 전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안 가본 곳은...
시아록:아까 방도 잠겨있고.. 식당도 별로 볼 건 없지 않나... (덩그러니 남겨진 곳에 길잃은 미아가 된 기분으로 느리게 서성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