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색범람

[아록슈슈] 침몰혜성

퍄퍙책미 2023. 12. 9. 02:22

KPC 프루헤 슈테른     PC 시아록

날짜 2023.11.05 ~ 2023.11.16

플레이타임 총 17시간

원문 시나리오 링크    https://ellipse-s-dot.postype.com/post/10657356

 

 

 

※아래 내용은 플레이로그입니다. 시나리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므로 열람에 주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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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편안했던 적이 있을까요.
 
새카만 하늘, 오로라처럼 부드럽게 일렁이는 빛무리 사이로 물거품이 떠오릅니다.
 
아, 그렇네요. 가라앉고 있는 거였어요.
 
이것은 죽음일까요?
 
잠겨 드는 정신 속, 손을 잡아 주었던 이는 뭍이 아니라 곁에 있군요.
 
함께입니다.
 
그렇다면, 침몰도 꽤 아름다운 일이에요.
 
 
세카
 
침몰혜성
 
w. 타원
 
 
구분선해파리
 
 
시야에 가득한 풍경은 섬뜩할 정도로 광막한 하늘입니다.
 
느리게 유영하는 새는 높게 뻗은 나뭇잎 사이를 노닐고,
 
찝찌레한 공기중에는 녹처럼 슨 혈액의 악취가 스며 있습니다.
 
먹구름 가득한 세상, ……이 아닙니다.
 
다시 바라볼까요.
 
시야에 가득한 풍경은 섬뜩할 정도로 광막한 바다입니다.
 
느리게 유영하던 심해어는 길게 자란 해초 줄기 사이에 끼어 있고
 
찝찌레한 검은 물에는 부패한 악취가 잔뜩 스며 있습니다.
 
그리고,당신의 곁에는……
 
그가 있습니다.
 
바라보아 옷이며 몸 여기저기가 검은 물에 절어 있으나
 
그 눈동자만큼은­ 벅차도록 선명한 색을 품고 있습니다.
 
두 눈에 비친 당신의 모습이, 영락없는 괴물일지라도요.
 
맞잡아 얽히는 부드러운 손에서는 체온이 느껴집니다.
 
약소하게 품었던 희망의 끝에서 떠밀리고 떠밀려,
 
결국 절망으로 가라앉은 끝에 서로를 마주한 감상은 어떤가요?
 
시아록:(맞잡은 손을 꿈지럭 움직여 조금 더 힘주어 잡았다가 이내 힘을 풀었다. 얽힌 손은 여전했지만. 칙칙한 물거품이 오르는 걸 눈으로 쫓다가 한숨처럼 물거품을 뽀그르르 뱉어냈다. 너를 포기한 건 아니지만, 다 내려놓고 가라앉은 탓일까, 마음은 어쩐지 그저 평온했다.)
 
'인간'으로서의 당신이 얼마나 버텼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서로를 등대로 삼기에는 우리의 존재는 너무나 작았고 바다는 너무나 넓었습니다.
 
귓가에서는 물거품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가끔은 슈테른의 이름을 잊어버리는 때도 있었습니다.
 
더 지나고서는, 잠에 들 듯 시야가 어두워지더니,
 
정신을 차려보면 그가 여기저기 다친 채로 당신을 끌어안고 있던 때도 여러 번이었고요.
 
그러므로, 전원 HP를 3 차감합니다.
 
슈테른:시아록, 몸은 괜찮아요? 기분은 어때요...? (이제는 소리도 물에 파묻혀 나오지 않을 한숨을 쉬고, 당신의 비늘이 돋은 얼굴을 쓸어내린다)
...같이 잠겨서 다행이네요. 한 명쯤은, 다른 한 쪽을 끌고 떠오를 수도 있을 테니까.
 
시아록:(네 손에 어리광이라도 부리듯 슬쩍 부볐다가 괜찮다는 듯 고개만 끄덕였다.)
 
슈테른:...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같이 있을 수 있다면. (가장 깊은 곳까지 파묻힌 탓인지,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게 되었다)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쩐지 위화감을 느낍니다.
 
어두컴컴한 심해. 어둠이라는 불편한 환경 외에도 뭔가, 답답합니다.
 
걸을 수 있는 사람이 기어 다니는 듯한 감각.
 
시야가 너무나 어둡기 때문일까요.
 
바로 앞의 있는 사람의 얼굴조차 베일이라도 쓴 듯 제대로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숨 쉬는 법을 배우지 않아도 땅 위의 것이 숨을 쉬듯이
 
바다 아래에서 깨어난 본능이 당신을 이끌어 갑니다.
 
감겨있던 눈을 뜨듯이, 시아록, 관찰력 판정.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3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돌연 눈꺼풀에서 얇은 막이 벗겨지는 듯한 감각과 함께, 시야가 트입니다.
 
여전히 어른어른한 느낌은 남아 있으나 눈이 바닷속에 적응한 것처럼 한결 편안한 느낌이 드네요.
 
아니, 어쩌면 눈만이 아닐지도.
 
온몸을 물이 감싸는 느낌이 자연스러워 마치, 여기서 태어난 것처럼 느껴지네요.
 
당신의 뿌리가 애초에 여기 있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한 곳에 걸립니다.
 
어떤...... 거대한 도시의 실루엣이.
 
알 수 없는 이끌림을 느낍니다. 저 너머로 가면 무언가 있을 것 같아요.
 
아니, 아무것도 없다 한들... 저곳이 꼭 '돌아가야' 할 장소처럼 느껴집니다.
 
시아록:(도시를 발견한 눈이 꿈에서 깨어나려는 듯 두어번 꿈뻑이다가 이내 커졌다.)
슈슈... (느릿하게 당신을 부르고 손짓으로 도시를 가리켰다. '이해'와는 별개로 반드시 가야할 것 같은 장소는 다소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슈테른:(가리킴과 동시에 같은 곳을 바라본다. 처음부터 뭔가 느끼고 있던 것처럼) 뭔가 보이세요? 제 시야로는 흐릿하기만 한데, 무언가 있다는 건 알 것 같아요. 기분이 이상하네요......
음, (한 쪽 팔을 감싸고 고개를 숙인다) 이대로 침체되어 있기보다는 행선지가 있는 쪽이 나을 것 같아요. 그곳이 등대가 아닌 건 아쉽지만, 그래도.
 
시아록:도시가, 있어. (천천히 답을 하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는 듯 맞잡은 손을 슬쩍 끌어당기 듯 흔들고는 잘 안 보인다는 당신의 말을 상기하고는 길잡이라도 하듯 먼저 발을 내딛었다.)
 
발을 이끌어, 신기루처럼 물살에 흔들리는 형체를 향해 걷습니다.
 
다만 물이 밀어내는 힘이 생각보다 강하게 느껴집니다.
 
마치, 여기는 뭍이 아니니 전의 방식을 고수하지 말라는 것처럼...
 
아무래도 물을 가르며 수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시아록, 수영 판정.
 
시아록:
수영
기준치: 85/42/17
굴림: 8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제는 익숙해진 수영입니다만, 이곳에서 하는 건 유독 느낌이 다르네요.
 
얕은 움직임에도 부드러운 지느러미가 넘실거리고, 모든 신체가 자유롭습니다.
 
신체의 모든 부분이 나서서 당신을 앞으로, 도시로 밀어주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맞아요. 당신의 본능이 향하는 곳은 저 도시입니다.
 
길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우리를 감싼 어둠이 자전이라도 하듯 느리게 흐릅니다.
 
이곳은 심해저. 세상의 밑바닥……
 
이 어둡고 광막한 공간은 꼭 우주처럼 느껴집니다.
 
이 공간에 아는 것이라곤 없고 우리는 한없이 작기만 합니다.
 
무한의 궤도에 버려진 어느 우주 비행사처럼 우리는 다시 표류합니다.
 
두려운가요?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이. 시아록, 이성 판정.
 
시아록:
SAN Roll
기준치: 19/9/3
굴림: 59
판정결과: 실패
 
문득 당신을 이 심연으로 떠민, 마지막 기억이 생각납니다.
 
'마지막 기억'이라기에도 애매한 게, 당신은 추락할 때 당시의 기억이 없습니다.
 
전투하던 도중 필름이 끊겼다가, 눈을 뜨고 보니 이곳이었죠.
 
더 거슬러 올라가도, 당신과 달리 따뜻한 손을 붙잡고 검은 바다 위를 떠도는 것으로 기억이 가득차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막막한 심정입니다. 시아록. 이성 1 감소.
 
그러나 이 순간, 눈앞엔 등대를 대신하듯 도시가 있군요.
 
저곳에도 과연 ‘희망’이 있을까요?
 
시아록:(애매한 기억과 제 과거와 현재처럼, 미래 또한 그럴 것이라는 듯 새카맣기만 한 바닷물들을 밀어젖히며 도시까지 나아가는 것에 별다른 기대감은 담겨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저, 여전히 네 손을 잡고 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여길 뿐. 그런 감정으로 도달한 도시를 찬찬히 눈으로 훑었다.)
 
 
구분선해파리
 
 
어두운 심해를 유영하다 보면,
 
멀리서 본 것은 도시의 한 귀퉁이일 뿐이라는 듯
 
웅장하고 거대한 그림자가 점차 가까워집니다.
 
곧, 우리는 해저 도시의 근교에 도착했습니다.
 
거대한 터 위로 수면을 뚫고 나갈 기세로 높게 뻗은 건축물들이 즐비합니다.
 
여러 양식이 뒤섞인 기물 위로 따개비며 해초 같은 세월의 흔적이 뒤덮여, 그 문명과 삶을 감히 추측할 수 없습니다.
 
빛 한 점 없이 그저 배경처럼 서 있을 뿐이나, 그럼에도 우리를 압도합니다.
 
이곳은 심해에 사는 어떤 종의 도시일까요,
 
아니면 가라앉은 고대의 도시일까요?
 
어쨌든 우리가 봐왔던 지상의 도시와는 조금 다르군요.
 
아파트 같은 딱딱한 건물이 있는가 하면, 중세 시대에 지어진 듯한 아치형 돔이나 신전 같은 건물도 있으니까요.
 
건물이 없는 곳에는 넓은 대로가 도시 중앙에 쭉 이어져 있고
 
그 주변에 각종 건물과 기암괴석, 산호초 따위가 정리되어 놓여 있습니다.
 
흔적만 남은 가로등이 길을 따라 세워져 있기도 합니다.
 
시아록:(예상보다 훨씬 더 커다란 도시에 놀란 듯 입이 벌어졌다. 그러나 곧 당신의 반응도 확인하려는 듯 시선이 자연스레 도시에서 당신에게로 옮겨왔다.)
 
슈테른:(시야를 방해하듯 몰려드는 물살을 남은 손으로 제치며, 주변을 살핀다.) 심해에 이런 도시가 있었다니...
예전에 사람이 살았을까요? 아니, 그렇다기엔 장식품들이 전부 바다에서 나는 것들 뿐이니까, 처음부터 이 바다에 있던 것 같은데...
...괴물들은 분명히, 깊은 밤이 되면 바다 아래에서 잠을 잔다고 했었죠. 어쩌면 그들이 이곳에서 지냈을까요?
 
괴물이라.
 
그 말이 사실인지는 몰라도, 제법 설득력이 느껴지기는 합니다.
 
시아록:(놀란 듯 말이 많아진 당신을 보며 웃는 듯이 입만 달싹이다가 당신의 추측을 귀담아 들었다.)
 
이곳에서는 물거품 소리도 자장가처럼 들릴 만큼, 모든 감각이 편안해지니까요.
 
그는 어느새 호기심이 어둠을 걷어낸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도 그를 따라 이곳을 살피다 보면, 시선이 물 흐르듯 가장 크고 웅장한 건물에 닿습니다.
 
중앙 대로의 먼 끄트머리에 있는... 커다란 신전입니다.
 
대로를 따라 양옆으로 나뉜 도시와 그 중앙에 세워진 신전이라니.
 
명백하게 이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인 것 같습니다.
 
무형의 이끌림이 당신을 부르고 있다는 것까지 말입니다.
 
시아록:(누가봐도 중앙에 세워진 게 나 중요해요, 하고 소리치는 듯한 신전 건물을 보며 뭔가 불퉁한 마음에 괜히 눈썹만 올렸다 내렸다. 그렇다고 안 가볼 수도 없는 걸. 얌전히 단념하고는 당신의 손을 흔들었다.)
슈슈, 저기, ..신전에 가보자. (조금이라도 길게 이어진 말에는 소리가 그르륵, 목을 긁어서 홀로 짜증을 내듯 콧잔등만 잠시 구겼다.)
 
슈테른:...뭔가 느껴져요? (여기저기에 얕은 호기심을 분산시키던 것도 잠시, 곧 신경이 당신에게 쏠린다) 시아록, 그 몸을 하고부터는 본능에 엄청 강해진 것 같아요. 전 여기가 어둡고 넓다는 것 말고는 잘 모르겠는데...
같은 시야를 가질 수 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혼잣말하듯 중얼거리고, 신전이라 불린 곳을 돌아본다. 영화에서나 보던 현란한 곡선의 구조를 봐도, 여전히 같은 느낌은 받지 않는지 눈만 깜빡인다. 당신의 찌그러진 콧잔등을 펴 주고, 이끄는 대로 걸음을 재촉한다)
 
시아록:으응? 그런가.. (당신의 말을 듣고서야 아, 그런가. 하고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괴물이라서 그럴지도 모르지. 원래라면 저를 찌르는 생각일지도 몰랐으나, 스스로 떠올린 생각에도 그게 딱히 슬프거나 아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잘 보여. (느긋하게 대답하며 신전으로 당신을 이끌며 움직였다. 네가 잘 안 보인다면 잘 보이는 자신이 먼저 길어림을 하면 될 일이었다. 불편한 일도 아닌걸.)
 
신전으로 향한다면, 수영 판정합니다.
 
시아록:
수영
기준치: 85/42/17
굴림: 57
판정결과: 보통 성공
 
넓게 난 길 위로, 때로는 낮은 건물을 스치기도 하면서 나아갑니다.
 
물의 흐름이 비늘과 지느러미를 치고 지나가는 감각이, 익숙하지 않지만 익숙합니다.
 
무언가에 물들고 있다는 느낌이지요.
 
지나가는 건물들은 하나같이 기기묘묘합니다.
 
여러 색의 돌을 모자이크하듯 섞어 벽면을 장식한 건물,
 
이리저리 꼬인 물고기의 뼈대에 유리를 잘라 붙인 스테인드글라스,
 
불가사리를 꽃처럼 장식한 빛바랜 수정궁과
 
자개로 장식된 광석 조경물까지.
 
지금은 모두 세월에 바스라졌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낡았다기엔 너무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군요.
 
군데군데, 파여 있거나 반으로 부서진 건물들이 보이니 말입니다.
 
자연적으로 풍화된 게 아니라 인위적으로 망가트린 것마냥.
 
도시 곳곳에 그러한 상흔이 남아 있습니다.
 
대체 이곳에선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확실한 건, 건물은 말라비틀어졌고 도시 문명 사이를 누비는 것은 몇몇 죽지 않은 심해어,
 
그리고 우리뿐이라는 겁니다.
 
이곳은... 완전히 죽은 도시입니다.
 
시아록:아무도 없네... (황량하기 짝이 없는 도시를 보며 얕게 중얼거렸다. 딱히 누가 있다고 해서 좋을 것도 없다고 생각은 했지만. 누군가가 있다고 딱히 좋았던 적도 없었으니 당연히 떠오른 생각이었다.)
 
 
구분선해파리
 
 
도착지로 다가갈수록 어두컴컴한 암녹빛이 시야에 가득해집니다.
 
숲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해초가 가득 자란 장소입니다.
 
커다란 나무와 같이 가지를 뻗은 산호초.
 
바닥에는 빛을 내는 광물이 박혀 있는지
 
그 위를 뒤덮은 이끼로도 숨겨지지 않는 광채가 물속의 꽃처럼 하느작거립니다.
 
신전은 그 중심에 선 채로, 순백색의 몸체를 뽐냅니다.
 
검은 도시에서 하얀 건물을 만나니 자체발광하는 것마냥 존재감이 뚜렷하군요.
 
산호가 벽을 혈관처럼 뒤덮은 신전의 입구를 찾아보면,
 
입구랄 게 없이 아치형으로 벽만 이어진 형태입니다.
 
화려한 구조와 곳곳에 뻗은 기둥들도 그저 눈속임입니다.
 
마치 뼈대만 남은 거대한 생물의 내부마냥, 텅 비어 있어요.
 
그렇다면 느껴지는 이 부름은……
 
아, 바닥 쪽입니다.
 
신전의 바닥에 세로로 된 긴 균열이 있습니다.
 
마치 보호하는 듯 근처의 산호초들은 크고 작은 가시를 뻗고 있습니다.
 
중앙에는 ‘손잡이’처럼 보이는 둥그런 문고리가 있군요.
 
슈테른:문고리...?
안쪽에 문이 있는 걸까요? 어디로 이어지는 건가...?
 
그가 가시에서 약간 떠오른 채로 묻습니다.
 
시아록:그러게.. (문고리를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당신을 돌아보았다.) 산호초, 치우고.. 들어가볼까? (기묘한 이끌림이 저를 부르고 있고 반드시 들어가야 할 것 같지만, 지금까지의 경험들이 한 번 더 신중을 기하게 했다.)
 
슈테른:(당신을 말리지 않고, 대신 한 마디를 덧붙인다.) 다치지 않게 조심하세요.
 
시아록:(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고, 가시돋힌 산호초를 치워내며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문고리를 쥐면 따끔, 불길한 감촉이 느껴집니다.
 
미처 치우지 못한 가시가 문고리에 달라붙어 있었는지 피가 배어납니다.
 
이질적인 듯 편안한 작은 소름이 일고……
 
추락하는 한 방울을 돌이킬수 없군요.
 
이곳은 물속인데,
 
방금 당신이 흘린 피는 물과 기름처럼 전혀 섞이지 않고 형체를 유지합니다.
 
마침내 선명한 붉음 한 방울이 바닥으로 뚝 떨어져 스며들면.
 
――――!
 
그 순간, 죽은 도시가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깨어난다고요? 아뇨.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무형의 염원이, 목소리가, 가시덩굴처럼 돋아 당신을 얽습니다.
 
혼란의 뒤로, 시끄럽게 종소리가 울리는 것만 같은 착각이 입니다.
 
당신이 무언가 열었다면, 그것은 분명 광기의 입구였을 겁니다.
 
당신을 부르는 이 소리는 뭐죠?
 
……소리?
 
짙은 종소리가 머리를 울립니다. 그러니까……
 
시아록:(갑자기 베인 손가락과 들리는 소리에 도리질치며 한발자국 물러났다.)
SAN Roll
기준치: 18/9/3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동쪽입니다. 동쪽에서 들려왔어요.
 
당신을 부르고 있습니다. 가야 해요.
 
비록, 마지막 남은 미약한 이성이 이 부름에 저항하고 발걸음을 막더라도.
 
당신이 흐름을 따라 신전을 나서려 하면, 현실 속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립니다.
 
당신을 붙잡고, 어떤 인간이 말하고 있습니다.
 
슈테른:---, ----.
 
무언가에 막혀 들리지 않지만요.
 
슈테른:---, 시아록!
 
그리고 그가, 누군가를 부릅니다.
 
그게 어떤 신호탄이라도 된 것마냥, 떠오르려던 당신의 몸이 안정을 되찾습니다.
 
당신을 이끌던 어떤 인력이 모두 제거되어, 당신은 땅에 다시금 발을 디디고 섭니다.
 
슈테른:시, 시아록. 괜찮아요, 진정해 보세요. 네? 잠시만요, 제발...
 
그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계속 당신의 정신을 일깨우려 말을 걸고 있습니다.
 
시아록:으응..? (당신의 붙잡음에 당황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멈췄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머리는 깨질 듯이 고통스럽고, 뜻 모를 충동이 당신을 지배합니다.
 
스스로를 깨트리고 싶다는 강렬한 본능이 당신을 잠식합니다.
 
육신을 부수어, 저 가득 찬 가시에 꿰이기 위해 태어났잖아요!
 
이것이 당신의 사명인데 저항할 수 있을까요?

핸드아웃: 저항 기능치 안내

 

『침몰혜성』은 특수한 상황(도시의 원념이 들려올 때)에 이에 따른 광기 RP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항 기능치]를 통하여 탐사자가 광기에 얼마나 저항할 수 있는지 판정하고, 이에 따른 결괏값이 가이드 라인과 비슷한 형태로 안내됩니다. 다만 이 안내는 다소 강압적으로 탐사자의 정신과 신체를 조종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으므로, 해당 사항이 어려우시다면 꼭 수호자와 이야기를 나누어 주세요.
평상시에는 보통의 탐사자이지만, 알 수 없는 목소리가 걸거나, 광기가 발동하면 저항 판정을 해야 하고 그 성공 여부에 따라 광기에 순응하는 정도가 달라진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해당 안내는 참고로 두고 자신의 RP를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해서 모든 안내에 순응하기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외, 저항 기능치 상황에 따라서 평소에도 어느 정도의 광기 롤플레잉을 섞으시는 것도 무관합니다. 이 부분 역시 수호자님과 상의하여 주세요.


 
시아록:
저항 Roll
기준치: 47/23/9
굴림: 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그러나, 두 발을 땅에 딛는 것에 집중하고 있으면
 
충동과 함께 종소리가 서서히 잦아듭니다.
 
그래요, 그가 부르는 것은 당신의 이름이었죠.
 
왜 슈테른이 닿자마자 자신을 좀먹는 욕망을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야 한다는, 깨트린다는 어떤 본능을 억누르는 것에 성공합니다.
 
어느새 온몸에 솟아오른 식은땀을 가라앉히고 있으면,
 
사위가 고요하게 가라앉습니다.
 
당신을 재촉하던 흐름과 압박감도, 지금은 잠잠합니다.
 
방금은 정말로,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리는 것만 같았죠.
 
동쪽에서 느껴진 그 부름은, 정말로 무엇이었을까요.....
 
슈테른:(어느새 두 손을 꽉 붙잡고 있다. 호흡에 따라 거칠게 솟아오르던 어깨가 진정된 게 보이면 천천히 놔 준다)
 
시아록:(제 의지랑 전혀 상관없었던 감각에 다시 한 번 몸서리를 쳤다.)
 
슈테른:(그리고 곧 아차했는지 다시 당신의 손을 가져온다) 방, 방금 다쳤었죠.
아마 피를 봐서 조금 놀라신 걸거에요. 지금은 치료할 수도 없는데...
 
그러고 보면, 당신의 상처는 물에 들어가면 회복되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손가락이 조금 베인 것조차 아물지 않는군요.
 
꼭 이 도시가, 세계가, 당신에게 피를 흘리라 종용하는 것처럼.
 
시아록:으응, 괜찮아. (아까의 감각을 떨쳐버리려는 듯 한숨을 쉬고는) 조금, 다친 거고... (흐르는 피를 보다 반대편 손으로 무심하게 쓸어내었다.)
 
슈테른:가방에 붕대가 있었는데... (미련이 남는지 다시 움직이지만, 곧 침몰할 때 짐도 잃어버렸음을 깨닫고 그마저 사그라든다.) 다음부터는 위험해질 것 같은 일은 제가 할게요.
열심히 할 테니까... 시아록은 앞으로도 이끌어 주세요. (멀쩡한 손을 끌어다 잡고, 안심시키려는 듯 웃는다. 설령 그게 심해의 검은 물에 파묻혀 조금 빛이 바랬더라도)
 
시아록:? 내가 낫지...? (위험한 일을 왜 네가 하냐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당신을 쳐다본다.)
 
슈테른:다치면, 또 지금같은 일이 반복될 수도 있잖아요. 눈을 뜨고 보면 기억에 없는 행동을 하고 있는 거... 불안하지 않아요?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그저 공감일까? 아니면 본인의 심리의 투영일까? 알 수 없다.)
 
시아록:아..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눈만 깜박였다. 그 감각이 싫어 몸서리친 주제에 잇단 인과관계는 생각지도 못한 듯이.)
그치만... (굳이 위험한 일을 네가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인 듯 고개만 기울이며 까딱였다.)
 
슈테른:괜찮아요. 하루이틀 다쳐본 것도 아니-- 아, 음. (도움이 안 되는 말이라는 걸 뒤늦게 깨닫고 허둥댄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시아록이 저보다 힘이 세니까 상황을 더 잘 수습해 주실 수 있지 않을까요?
 
시아록:(네 말이 마음에 안 드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가) 내가, 더 튼튼하니까... 내가 낫지 않아?
 
슈테른:(걱정하는 마음을 알기 때문에 강경하게 밀어붙일 수도 없다. 한숨부터 쉰다) 당신은 겁이 많잖아요. 뭍에서 당신이 몸을 가누지 못할 때면, 늘 무작정 모든 걸 공격하거나, 도망치려고 했어요. 당신이 절 물고 창문을 깨고 도망쳤을 때처럼요.
더 예전에, 제가 당신을 묶었을 때도 그랬고. 그래서 더 당신은 당신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도 있었지만...
그렇게 무서워하는 걸 봤는데... 다 알고도 당신을 사지에 몰아넣을 순 없어요. (쓰게 웃는다)
 
시아록:으응... (역시 마음에 안드는 듯 입을 달싹이며) 그치만, 날 말릴 수 있는 건, 너 뿐인데.. (듣기 거슬리 듯 그륵거리는 목소리가 어쩐지 칭얼거림이 되어 있었다.)
 
슈테른:그러니까 더더욱 당신보다는 제가 앞장서야... 응? (순간 오른쪽을 쳐다본다) 또 이 느낌이...
 
시아록:응?
 
슈테른:아까 멀리서 도시를 봤을 때도 느낀 건데, 어딘가로 가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요. 저쪽이면... 동쪽인가? 시아록이 느끼던 게 이런 거에요? (습관적으로 손을 만지작거린다.)
 
미약하지만 강렬한 종소리가 들려왔던 방향. 동쪽입니다.
 
무언가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시아록:어어..? 응..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여 긍정한다.)
 
슈테른:(신기한지 눈을 빠르게 깜빡이다가도 곧 시선을 내리깐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딘가에 이끌리는 거, 유쾌한 감각만은 아니네요.
이성을 잃었을 때의 당신도 이랬을까요? (천천히 숨을 내쉬고, 순순히 등을 밀어내는 도시의 물살에 따른다.)
 
어느새 같은 감각을 떠안고 우리는 이동합니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방금 흘린 피로 말미암아 바다의 간섭이 심해진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는 한낱 미물이므로, 거부할 방법 따위는 없겠지만요.
 
부름이 들려온 동쪽으로 향하면, 시아록, 수영 판정.
 
시아록:
수영
기준치: 85/42/17
굴림: 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불쾌한 경험과는 상반되게, 조금의 발돋움으로 먼 거리를 도약합니다.
 
반쯤 무너져 내려, 육교처럼 휘어진 구조물 사이를 지나고 있노라면
 
둥그런 창문이 층마다 달린 건물이 보입니다.
 
빛이 없는 심해에서 창문은 빛의 통로가 아닌 감옥의 창살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
 
기계적으로 팔다리를 움직입니다. 길을 찾아가며 관찰력 판정합니다.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3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길을 알려 주는 표지판이 없음에도 우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 합니다.
 
저편의 높은 건물에는 거대한 종이 매달려있습니다.
 
저곳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구분선해파리
 
 
가까이서 보면 유독 이 종탑은 다른 건물보다 공들여 만들어진 게 보입니다.
 
지리적으로 조금 높은 위치에 조경을 섬세하게 맞추어 배치되어 있습니다.
 
건물 외벽이며 기둥을 막론하고 조각된 문양은, 조화로운 곡선의 극치입니다.
 
구조는 얼마나 체계적이고 낭비가 없는지 아름답게까지 느껴지네요.
 
종탑은 신전과 비슷하게 입구에 문이 없이, 통로만 있습니다.
 
입구를 가린 반투명한 천이 동화 속 인어의 꼬리처럼 나부낍니다.
 
들어가볼까요?
 
시아록:(가까이서 보니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운 종탑을 고개를 꺾어 올려다보다 물결에 흩날리는 천자락으로 자연스레 시선이 옮겨갔다.)
슈슈..., 저긴, 거 같지..?
 
슈테른:맞는 것 같아요... 여기에만 시선이 가게끔 지어놓은 걸로 봐서는, 비슷하게 중요하거나 신성한 장소인가 봐요.
...여기 사는 괴물들은 신을 숭배했을까요? (조심히 앞장서며 천을 걷고 들어간다)
 
시아록:신을..? (숭배했을까, 알 수 없고 와닿지도 않는 얘기다. 처음의 절망은 신을 찾게 할지 몰라도, 너무 오랜 절망은 먼저 나서서 신을 버리게 할지니. 아마 자신에겐 앞으로의 모든 삶에 신은 없을 터다. 유일하게 남은 것은 너이므로. 그 모든 걸 꾹꾹 눌러담아 어깨만 으쓱하고는 너를 따랐따)
 
천을 붙잡아 밀면,
 
물방울을 함뿍 머금은 천이 피부에 흐르며 부드럽게 나부낍니다.
 
뜻밖의 물살에 자그마한 치어 떼가 안쪽에서 나와 두 사람에게로 와르르 쏟아집니다.
 
꼬리에 빨간 불빛을 달고 있습니다. 꼭 반딧불이를 생각나게 하네요.
 
산란하는 야광 빛이 시야에 가득하여, 눈부시게 지나갑니다.
 
그러나, 빛이 지나고 시야에 들어온 광경은……
 
섬뜩하고 경건하기 그지없습니다.
 
모서리마다 기둥이 세워져 있는, 육각형 모양의 ,
 
정중앙에 난 세 개의 낮은 층계에는 성스러운 문양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눈에 박히는 것은 바로,
 
단상 위에 무릎 꿇은 여섯 마리의 괴물들입니다.
 
기도하는 그들의 앞에는 새카맣고 굵은 밧줄이 하나씩 여섯 개가 천장에서 아래로 내려와 있습니다.
 
이를 따라 시선을 올리면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종이 보입니다.
 
시아록:(종탑의 커다란 로비의 단상을 쳐다보다 잠시 주변을 훑어내렸다. 아까의 종소리가 저것이었을까, 소름끼쳤던 기억에 종을 노려보다가 이내 다시금 시선이 단상을 향했다. 눈을 사로잡는 구조물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말없이 단상을 손으로 가리키고, 네 손을 살짝 당겼다.)
 
슈테른:(생생한 괴물들의 모습에 약간 긴장해 있다가, 당신이 잡아당기면 진정하고 눈앞에 집중한다. 위험하면 자신을 지키려 했을 거란 믿음이 있어서 가능했다.)
 
단상 위에는 화석처럼 박제된…… 익숙하게 생긴 괴물이 있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이 ‘진짜’인 모양인지,
 
몸집도 크고 이빨도 훨씬 날카롭습니다.
 
지느러미는 단단하고 눈은 튀어나온 게, 조금 더 물고기에 가까운 모습입니다.
 
곁으로 다가가면, 자그마한 중얼거림이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그 순간, 주변이 푸르게 일렁이는가 싶더니 물거품이 와르르 쏟아지고,
 
정갈한 종소리와 함께 곁에 있던 슈테른의 모습이 사라집니다.
 
“어째서……, ────!”
 
“않으십니까 ──── ────!!”
 
해묵은 필름이 억지로 돌아가는 듯,
 
현실 위에 낡은 베일이 씌워진 것처럼 잔상이 일어납니다.
 
여섯의 사도가 입을 열면, 그 비통한 목소리가 먹먹하게 귓가를 울립니다.
 
“이 ■■을 들으소서!”
 
이 언어는, 생전 처음 듣는 울림입니다.
 
목을 긁어내는 쇳소리와도 같고, 발음은 날카롭게 끊기지만……
 
점점 당신은 이것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됩니다.
 
시아록:
SAN Roll
기준치: 18/9/3
굴림: 56
판정결과: 실패
 
다른 언어? 아뇨!
 
이것은 당신의 언어이니 당연히 이해해야지요.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육신을 부술 듯이 울려 대는 종소리 사이에서도
 
이 울부짖음은 당연하다는 양 당신의 인지 속에 있습니다.
 
해일처럼 몰아치는 광기를 막지도 못하고 서 있으면,
 
신도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칩니다.
 
새파란 눈동자를 한 그것이 당신에게 기어옵니다.
 
그리고는 일정 이상 가까워지지 않고 그저 당신을 응시합니다.
 
시아록:(시끄러워, 시끄럽다고. 입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이며 저를 쳐다보는 눈에 미간을 찌푸리며 시선을 피했다. 울렁거리는 속이 죄다 게워낼 것 같았다.)
 
어지럽습니다. 저것은 그저 과거의 망령이나 환상에 불과해 보이는데
 
어째서 당신과 눈을 마주칠 수 있는 걸까요.
 
당신이 인간이 아니라서? 아니면, 광기에 빠졌기 때문에?
 
의문은 앙금처럼 남아 사라지지 않습니다.
 
숨을 고르고 있으면, 너머로 남은 신도들이 기쁘게 종에 무언가 새기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앞에 선 괴물은, 당신에게 무언가 기대하기라도 하는 듯 눈을 반짝이고 있습니다.
 
안광은 광기입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다면 할 수도 있겠습니다. 저리 가라고 말하면 물러서 줄까요?
 
시아록:(광기는 전염된다지, 피했던 시선을 결국 저를 끌고가는 '광기'에 입을 열었다.)
나한테 뭘 기대해? 아무것도 바라지마.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 무엇도 없어. 그러니까 저리 꺼져. (목을 긁으며 나는 쇳소리에 치밀어오르는 짜증을 담아 결국 험한 말을 담았다.)
 
당신이 말을 걸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엽니다.
 
기괴하게 울부짖는 찬양 소리가 천천히 사라지면,
 
잔뜩 물먹은 듯 일렁이던 시야 역시 암전됩니다.
 
……
 
얼마나 혼절했을까요?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은 걱정스러운 표정의 슈테른입니다.
 
당신은 분명 그들을 향해 몇 발 나아갔던 것 같은데, 정신차리고 보면 입구 쪽에 가깝게 서 있습니다.
 
처음 단상을 가리켰던 그 곳입니다.
 
오래된 상영기가 뱉어내는 듯한 지직거리는 환상은 사라졌습니다.
 
다만, 물과 함께 원념이 당신을 감싸는 게 느껴집니다.
 
사명을 완수하라는, 집착스러운 사념. 차라리 저주에 가까운.
 
시아록:(정신을 차리고 여전히 섬뜩한 감각에 두어번 헛구역질을 한 다음에야 제대로 숨을 뱉어냈다.)
내가, 또 쓰러졌어..?
 
슈테른:갑자기, 아무 말도 안 하고 허공을 노려보더니 쓰러지셨어요. (그동안 못다 지른 비명을 토해내는 듯한 당신을 끌어안고 조용히 등을 두드린다. 걱정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빠르게 감춘다.) 벌써 두 번이나 이런 일이 생기다니. 이곳은 당신에게 좋지 않은 곳인가 봐요.
......당장은 힘들겠지만, 제가 꼭 밖에 나가게 해 줄게요. 함께 나가요.
 
시아록:그러게.. 여기 별로다. (처음의 이끌림은 온데간데없이 그저 불쾌감만이 진득하게 남았다. 정신을 차리려는 듯 제 손으로 몇 번 얼굴을 쓸어내리고 고개를 흔든다.)
슈슈는, 괜찮아...?
 
슈테른:...전 괜찮아요. 이럴 땐 좀 시아록부터 챙기라고요... (괜히 퉁명스럽게 말한다.)
... 뭘 봤어요?
 
시아록:(타박을 듣고는 머쓱하게 입술만 달싹이다가) 그냥, 헛소리들...? 그리고 괴물들..
 
슈테른:괴물? 괴물이 뭘 했어요? 시아록을 해치려고 했나요? 아니면 아까 느낀 것처럼 어디로 가라고 한 거에요...?
 
시아록:아니... 그냥. (다급한 듯 되묻는 당신의 말에 어물어물 혀로 입안을 훑고서 느리게 얘기했다.)
헛소릴, 하던데... 뭘 찬양하고, 제물이... 어쩌고... (정말 죄다 쓰잘데없는 소리였다. 신은 아무것도 들어주지 않는데.)
 
슈테른:...점점 더 괴물들의 의중을 모르겠어요. 자신들의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 되라는 얘기라도 하는 걸까요?
그런 거라면 왜 제겐 아무것도 안 들리는 걸까요...
 
시아록:안 들리는 게, 좋아... (정말로 끔찍한 기분이니까.)
 
슈테른:(그 말에 더 표정이 안 좋아지더니, 당신의 양 어깨를 짓누른다.) 조금만 쉬고 있어요. 뭐가 있는지 조사하고 올게요.
 
잠깐이라면 정신 정도는 쉬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광기로부터 조금 멀어질 수도 있을 것 같고요.
 
휴식할까요?
 
시아록:같이, 해도 되는데...? (안절부절하다가 당신을 쳐다본다.)
 
슈테른:정말 무리하면 안 돼요.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하곤, 잠시 생각하다가 당신을 부축한다. 고통을 덜어 주고 싶다는 생각의 발로다.)
 
몸은 여전히 무겁지만, 다른 곳도 조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디를 찾아볼까요?
 
시아록:(일단 단상에서 멀어지고 싶다는 생각으로 종은 내버리고, 벽으로 향한다.)
 
벽은 온갖 화려하고 신성한 패턴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 가운데, 벽화가 새겨진 것이 보입니다.
 
여섯 개 면에 두 점씩 새겨져 총 열두 점입니다.
 
읽어 볼까요?
 
시아록:(처음과는 달리 성스러운 게 전부 혐오라는 감정으로 뒤바뀌어서 콧잔등을 찌푸렸다가 아무 소득없으면 안 된다는 심정으로 벽화를 훑어본다.)
 
마지못해 벽화를 눈으로 더듬으면,
 
언뜻 보기엔 어떤 이야기를 표현한 것 같습니다.
 
이 심해의 도시가 새겨져있습니다.
 
심해인들이 건물을 짓고 도시를 일구는 게 보입니다.
 
도시에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전쟁 속에는 심해인 외에도 거대한 괴물들이 개입하고 있네요.
 
폐허가 된 도시입니다. 중앙에 어떤 거대한 균열이 생긴 게 보입니다.
 
거대한 균열에서 헤일로와 같은 빛무리가 뿜어져 나옵니다.
 
괴물들이 그 균열 앞에 조아리고 있습입니다.
 
촘촘하게 묘사하여, 수없이 많아요.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는,
 
지워졌는지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어떤 제단이 있습니다. 그 위에 올려진 제물을 칼로 찌르는 장면이네요.
 
심지어 뒤에도 무수히 많은 제물이 죽어 있습니다.
 
중앙에 있던 균열이 부서졌습니다. 갈라진 틈으로 검은 물이 솟구칩니다.
 
제단 위에 올라간 심해인이 그 검은 물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심해인들이 그를 숭배하듯 모여 있지만, 검은 물은 빨아들여지긴커녕 범람하여 모든 걸 집어삼킵니다.
 
바다 그 자체처럼 묘사된신의 그림을 마지막으로 끝이 납니다.
 
...그저 이야기에 불과해 보이지만,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4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 벽화에 나오는 괴물, 제물, 신. 모든 얼굴은 다 웃고 있습니다.
 
아주 기쁘고 행복한 것처럼.
 
죽어 가는 제물까지도 전부 다. 웃는 얼굴로 묘사했군요.
 
시아록:으웩.. (아까처럼 헛구역질은 아니었지만, 웃는 얼굴들을 보자니 역겨운 기분에 저도 모르게 뱉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슈테른:...이게 무슨 내용이죠? 읽으면서 왠지 저도 꺼림찍해지는 기분이에요. (부축한 채로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어, 멀리서 까치발을 들고 살핀다. 조금은, 더 가까워질 수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눈치다.)
 
시아록:으응.. 기분 나빠. (작게 중얼거리고는 한숨을 뱉어냈다.)
 
슈테른:그러니까, 이 도시에 이런 일들이 있었다는 거에요? 오면서 저련 균열은 본 적이 없는데.
제물은 왜 바치는 거고, 검은 물은...... 검은 물?
(주위를 살핀다. 예전의 푸른빛은 잃고 온통 죽음의 색으로 물든 바다를.) ...설마 저기서 흘러나온 게 바다를 물들인 걸까요?
 
시아록:없어진 거면, 좋은데... (벽화에서 시선을 떼어내고 천천히 중얼거렸다. 균열이 있다한들 어떻게 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게, 아닐까... (다른 색으로는 바뀔 일 절대 없다는 듯 여전히 새까만 물을 보았다.)
 
슈테른:그렇게 많은 분량이 흘러나온 것도 아닌데 전 세계의 바다를 전부 물들였다고요?! (수면을 향해 고개를 쳐든다. 모든 희망이 흑색으로 물든 세상을 바라보듯) 인간이 흘린 오염 물질마저 시간이 흐른 뒤에는 가라앉기라도 하는 게 보통인데...
(바쁘게 말하면서, 이번엔 층계를 향해 걸어간다. 어지럽게 걷다가도 시아록을 받치고 있었단 걸 깨달으면 바로 자세를 다잡는다)
 
층계는 '걸어서 올라가는' 용도가 아님을 증명하듯 아주 낮고 폭이 좁습니다.
 
차라리 장식용 구조물에 가까워 보입니다.
 
생생한 조각이 마모되지도 않고 새겨져 있습니다.
 
첨단과학의 한계마저 뛰어넘는 정교한 조각에 이곳에서의 일만 아니었다면 감탄하며 바라봤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아록:계단, 올라가 볼 거야? (얌전히 너를 따르다가 무슨 용도인지 알 수 없는 층계를 눈으로만 올려다보았다.)
 
슈테른:신기하긴 하지만, 지금은 어서 조사하고 여길 나가고 싶어요.
(단상 위의 종을 살피면서, 시아록 쪽을 돌아본다. 아까처럼 다가가도 괜찮겠냐고 묻는 듯)
 
시아록:으응... (눈만 데굴 굴리다가 군침만 꼴깍 삼킨 채로 결국 작게 웅얼거리고 말았다. 듣기 싫어진 제 목소리까지 결국 길게 뱉어버릴만큼 정말로 싫었던 듯 그르렁거리는 목소리에 미안함이 담뿍 담겼다.) 진짜.. 미안한데, ... 종은 혼자, 봐도 돼? 나 여기, 얌전히 앉아있을게...
 
슈테른:(진정시키려는 듯 두 손을 잡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온기에는 떨림을 멎게 하는 효과도 있었을까) 빨리 다녀올게요.
 
그가 다가가는 방향으로 잠시 시선을 돌리면, 종은 상상 이상으로 큽니다.
 
사람은 물론이고, 심해인도 몇 명은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가 조사한다면 무슨 일이 생기진 않겠죠. 당신은 눈을 감고 호흡을 진정시킵니다.
 
아가미를 오가는 물살이, 점차 매끄러워집니다.
 
잠시 그러고 있으면 그가 다급히 돌아옵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요?
 
본인은 급한 눈치인데, 물의 저항 때문에 걸음은 엄청나게 느립니다.
 
새삼 당신이 얼마나 빠른지, 그리고 인간이 물속에서 살기란 얼마나 힘든지 알 것도 같습니다.
 
아무튼 그는 가까워지자마자 다다다 할 말을 쏘아냅니다.
 
슈테른:시아록, 종에 다른 특별한 건 없는데, 위에 글씨가 새겨져 있었어요.
 
시아록:글자?
 
슈테른:아마, 종을 당기는 심해인들이 새긴 것 같아요. (숨을 고르고, 외워 온 내용을 잊어버릴새라 바로 기억을 더듬는다.) 내용은...

핸드아웃: 종에 새겨진 글자

 

검은 성수 속에 이미 신의 숨결이 녹아 있는데 강림을 원했던가.
균열 속 그분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문을 열고 길을 만들어 모셔야 했음을.
그분이 힘을 되찾도록 제물을 바쳐라.
가죽을 찢고 그 피로 검을 적셔 발동시켜라. 그리고 균열을 열어라. 성수가 범람할 테다.
자, 종을 쳐라. 열두 번의 울림으로 성수의 숨결이 모일 길과 지표를 만들어라.
그리하면 성수의 숨결이 신의 그릇에 모여 진정한 탄생에 오르실 테니.
신이시여, 이 소리를 듣고 오소서, 오소서.


 
역시 평범한 종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종은 검은 바다―성수가 범람했을 때 그 속의 신의 숨결을 끌어모으는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면 신전에서도, 종소리를 듣자마자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감각과 함께 몸이 통제를 벗어났었죠.
 
싫어도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고 맙니다.
 
...하고 많은 괴물들 중에서 왜 하필 당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검은 바다가 만든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는 것이 너무나 확실해졌습니다.
 
불확실한 미래. 준비하지 못했음에도 밀어닥치는 어떤 운명.
 
……우리는 여전히 이 검은 바다의 뱃속에서 표류하고 있군요.
 
시아록:별.. (황당하다는 듯 종에 새겨진 글자의 이야기를 듣다가 고개를 내젓는다. 신따위 관심없다. 죄다 내버리고 이곳까지 가라앉았다고 한들 원하는 대로 제물이 되어줄 생각도 없다.)
다 봤으면... 나갈까...?
 
슈테른:(끄덕이며, 잡고 일어나라는 듯 손을 내민다) 심해인들이 말하는 그분이 누구인지, 왜 갑자기 우릴 끌고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시아록:(당신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슈테른:그래도 그들 마음대로 흘러가게 두진 않을 거에요.
...하지만 걱정이네요. 바다가 검게 물든 건 해결할 수도 없는 걸까요? 방법이 있다면 좋을 텐데. (생각이 많아졌는지, 천천히 걸어간다.)
 
제물의 용도는 알겠지만, 신의 그릇이란 또 무엇인지.
 
벽화에서 검은 물을 받아들이던 심해인은 무슨 생각이었는지.
 
또 다른 의문점을 남기고, 우리는 종탑을 나섭니다.
 
밖으로 나오면,
 
자그맣고 묘한 진동이 한차례 지나가는 듯하더니
 
뒤이어 커다란 땅 울림이 동쪽. 우리가 선 도시의 반을 뒤흔듭니다.
 
휘몰아치는 물살, 어그러지는 시야.
 
아까, 피를 흘려 도시가 감응한 것과 비슷한 감각이나
 
환상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이 다르군요.
 
아니, 환상인가요?
 
현실일까요?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51
판정결과: 보통 성공
 
고요한 심해저에서, 차갑고 격렬한 해류가 뻗어나갑니다.
 
그 근원지는, 다름아닌 슈테른입니다.
 
그의 주변으로 물살이 몰아치고, 한여름의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것처럼 시야를 일그러트립니다.
 
당신의 눈동자에 그의 이상한 모습이 비치면, 슈테른도 그제야 자신을 살핍니다.
 
슈테른:시, 시아록, 이거 뭔가......
 
말은 더 길게 이어지지 못합니다.
 
일순 그의 몸이 회오리에 휘말려 높게 솟아오릅니다.
 
그의 몸 안에서, 무형의 무언가가 가시처럼 우글대며
 
몸을 뚫고 튀어나오려고 합니다.
 
도시가 깨어나며 곳곳의 해초와 산호들이 만개하듯이
 
그의 몸 안에서도 뭔가가 '깨어나려는' 듯한 모습입니다.
 
곧 그의 두 눈에 담겨있던 현실이 사라집니다.
 
그때의 당신과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는 듯 보입니다.
 
바다의 검은 뱃속이, 그를 어딘가로 이끌어 가려 합니다.
 
조난당한 사람처럼, 그는 속수무책으로 폭풍 같은 해류에 떠오릅니다.
 
어떻게 하나요?
 
시아록:(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했지만, 필사적으로 당신에게 헤엄쳐 다가가 자신의 곁으로 데려오려 한다.)
 
당신이 잡아채면, 갈 곳 잃은 발은 겨우 땅을 딛습니다.
 
얕은 파도처럼 들썩이던 피부가 진정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것뿐, 그가 정신을 차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보세요, 지금도.
 
시아록:슈슈, 괜찮아? (붙잡은 당신을 흔들며 저에게로 시선을 맞출 수 있게 유도한다.)
 
슈테른:... 올바른 제물을... 심해의, 주인...
(머리를 부여잡고 있다. 압도적인 무언가에 눌린 사람마냥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다)
 
자신의 언어조차 아닌 목소리로 무언가 지껄이던 그는,
 
당신이 이름을 불러주자, 움직임을 멈춥니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면, 겨우 빛이 돌아와 있습니다.
 
시아록:괜찮아? 응?
 
동공이 흔들리다가, 겨우 먼 곳이 아닌 눈앞의 당신을 향합니다.
 
슈테른:...시, 시아록... 너무, 너무 시끄러워요...
시아록도 이런... 기분이었어요?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꺼내지만, 대화는 통한다. 잠시 기대어 겨우 안정을 찾는다)
 
시아록:(당신을 붙들고 있는 채로 아까 전 자신의 상황을 떠올리듯 눈을 굴리다가 이내 당신의 등을 쓸어내린다.) ...이제 괜찮아..
 
그가 들었던 내용은, 갇혔던 심연은 당신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피를 해방시키라는 말, 당신이자 당신이 아닌 것에게 보내는 기도.
 
바다의 작은 환희 하나마저도, 한낱 인간에게 있어선 파도의 범람과 같을 겁니다.
 
하지만, 여태껏 당신에게만 간섭할 수 있었던 원념이 어째서 이렇게 강해진 걸까요?
 
파도를 가라앉힌 그는, 당신을 꽉 붙잡고 말합니다.
 
슈테른:...누군가 말했어요, 제물에게 명령을 내리라고. 우리의 새로운 신의 태초가 되라고... 그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누굴 보고 말하는 거에요? 저는, 저는 신이 아니잖아요, 당신도 제물 같은 게 아니고... (답해줄 이는 없는데도 누군가에게 묻듯이 말한다)
 
그런데 내용을 들어보면 당신이 들은 것과는 조금 다르네요.
 
예언가처럼 고상하게 점지하는 어투이나, 무언가 다른 얘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마치 그가 제물을 받을 이라는 것처럼 말하고 있잖아요.
 
시아록:(얌전히 당신의 말을 듣다가 달래듯 희미하게 웃었다.) 내가 들은 것도, 죄다 헛소리였어. 그거랑, 같은 거지.
 
문득 벽화에서 본, 제물을 받던 제단과... 검은 물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제단 위에 서 있던, 한 심해인의 모습도.
 
그는 두 손을 벌려, 검은 물을 안쪽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죠.
 
제물만 있어서는 신이 탄생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동쪽의 색채를 가진 것들은 여전히 무언가를 환영하는 것처럼, 물결을 따라 흔들립니다.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공간이면서, 우리가 봐왔던 환상적인 풍경을 애써 모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찾아든 광기는 동쪽이 깨어나면서부터 시작되었고요.
 
.......이것이 어떤 형태의 각성일지는 모르나, 슈테른은 그저 슈테른입니다.
 
슈테른:(안쪽에 고아 둔 숨을 천천히 내뱉고, 그 얼굴을 더 잘 보려는 것처럼 시선을 고정하며 천천히 뒤로 물러난다) 시아록, ...
 
시아록:응? (당신의 부름에 당연한 듯 답한다.)
 
슈테른:그, 덕분에 산 것 같아요. 순간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어서...
수압이... 갑자기 온몸으로 느껴지는 기분이 들고... 제가 누구인지도 떠오르지 않았거든요.
...이제 와서 지적하기엔 늦었지만, 저는 어떻게 숨을 쉬고 있는 걸까요. 여기가... 바다가 절 원하고 있어서 이런 편의까지 베푸는 걸까요?
 
시아록:그랬어? ..그런 건, 끔찍하지. (괴물의 외관으로 미소지으니 입꼬리가 비틀리는 게 전부겠지만, 여전히 당신을 어르고 달래듯 미소짓다가 이내 마지막 물음에 고개를 기울인다.)
....글쎄... (가르랑거리는 소리가 한숨처럼 나왔다.) 그치만 바다가 널, 배려하는 거면 좋겠어. (저 검은 물 탓인가도 잠시간 생각했지만, 굳이 쓸데없는 얘기로 널 불안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떠오른 생각을 다시 바닥에 가라앉혔다.)
 
슈테른:도시에서 떠돌 때에도, 가끔 파도가 더 높아져서 은신처에 쌓아둔 것들이 다 묻히기도 했잖아요. 그럴 때 어디로 돌아가야 좋을지 모르겠어서 겁이 날 때도 있었는데, 그때 당신을 발견하면 안심이 됐었거든요.
...이번에도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무언가 설명하려 하지만, 명확하지 않고 물에 파묻힌 듯한 내용이다. 잘 전달되지 않는 말 대신 체온으로 마음을 전하려는 것처럼 손을 맞댄다. 바위처럼 단단한 비늘을 쓸어내리고 사이사이에 낀 살들을 어루만진다) 꼭, 이 검고 흐린 세상에서 하나 놓인 이정표처럼요.
배려하는 거라고요... (무거운 표정으로 웃으며 한숨을 삼킨다.) 이대로 당신과 있을 수 있게 방법을 찾아야겠네요. (숨을 들이쉬고, 함께 다짐이 차오른 듯한 눈으로 어딘가를 돌아본다.)
(시선 끝에 걸리는 것은... 여전히 침묵에 잠겨 있는 서쪽. 도시의 나머지 반절이다.)
 
시아록:(네가 하고 싶은 모든 말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다른 말도 없이 천천히 눈만 꿈뻑였다. 당신의 모든 말을 귀기울여 듣다 이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같이 있을 수 있는 방법, 찾으러 갈까.
(당신의 얼굴을 새기듯 한 번 더 쳐다보았다가 이내 당신과 같은 시선으로 서쪽의 도시를 바라본다.)
 
이 도시는 무엇을 바라고 우리를 이끄는 것일까요.
 
서쪽은 아직도 묵빛의 밤에 잠겨 있습니다.
 
생명력에 환호하듯 일어나는 산호와 심해어 떼들, 박동하듯 반짝이는 발광석들.
 
동쪽의 깨어난 도시가 물살을 만들어내 우리를 떠밉니다.
 
무엇을 고대하는지, 부디 서쪽에는 답이 있기를 바랍니다.
 
흐름을 따라 이동하면서... 시아록, 수영 판정.
 
시아록:
수영
기준치: 85/42/17
굴림: 1
판정결과: 대성공
 
하늘:(*갑자기 수영 대성공...이요?)
 
책미 (GM):우와..................
 
가벼운 발돋움에 벌써 종탑이 꽤 멀어졌군요.
 
사방에서 포르르 올라오는 물거품이, 빛깔을 되찾은 심해의 기물들에 반사되어 오색으로 빛납니다.
 
중앙을 넘어가자, 무형의 힘도 생명력도 점차 자취를 감춥니다.
 
발밑에 지나가는 건물들, 전쟁으로 파괴되어, 삶의 흔적조차 부서진 도시.
 
수장되어 버석하게 마른 찬란한 문명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있는 중앙 신전에는, 온 건물을 뒤덮는 산호 가시가 꽤 줄어 있네요.
 
종탑에서 떨어져 보니, 그제야 근처를 지나는 거대한 고래 같은 생명체가 보입니다.
 
다만 같은 거라고 봐도 될지는 모르겠어요.
 
지느러미는 프릴처럼 변해 힘을 잃었고... 대신 바닥에 달린 팔다리 같은 것으로 기어다니고 있을 뿐이거든요.
 
아마 검은 바다의 힘으로 뒤틀렸을 것입니다.
 
옆에 있는 슈테른은 중간중간 멈춰 서기도, 한눈을 팔기도 합니다.
 
별세계에 빠졌다 나오는 것을 반복하는 것처럼.
 
그 또한 이 심연 속에서 천천히 파묻히고, 변형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당신도 그럴까요.
 
 
구분선해파리
 
 
서쪽은 동쪽과는 달리 아무것도 없이 넓은 공터밖에 없습니다.
 
가까워질 수록 물비린내가 심해집니다.
 
앞을 바라보면 높은 절벽 아래에 널찍한 공터가 있고,
 
주변으로는 경계선을 그은 듯 빽빽하게 자란 무언가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내려가 볼까요?
 
시아록:(당신의 손을 붙잡고 천천히 공터로 내려간다.)
 
낭떠러지에서 몸을 던집니다.
 
물론 심해라는 계단이 우리를 받쳐주므로, 우리는 천천히 이 광막한 공간을 걸어 내려갑니다.
 
물살을 가르며 다가가면 그제야 우리는 알게 됩니다.
 
흔들리던 검은 것은, 전부 시체입니다.
 
수많은 괴물들이 선 채로 죽어,
 
발목에 돌덩이가 매달린 채 물살에 따라 흔들거리고 있었습니다.
 
마치… 단체로 처형이라도 당한 모양새입니다.
 
공터 테두리를 따라 묶여 있는 처형된 괴물들.
 
그들의 중심에는 제단처럼 보이는 구조물이 있습니다.
 
지나온 절벽의 한가운데에는 암굴이 보입니다.
 
슈테른:맙소사... (종탑과는 또 다른 의미로 끔찍한 광경에 눈을 찌푸린다.) 괴물이라곤 해도, 이렇게 참혹하게 죽임당하다니 너무하게 느껴지네요...
 
시아록:(생각지도 못한 끔찍한 광경에 잠시 말을 잃고 주변만 쳐다본다.)
그러게.. 아까 거기랑은..뭔가 반대인 거 같지? (고개를 숙이고 이마를 문질렀다.)
 
슈테른:종탑에 있던 것들은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만 같았는데, 이들은...
(그들이 천적이었다는 것도 잊었는지 성큼 다가간다.)
 
새파랗게 떴을 두 눈은 회백색으로 가라앉았고,
 
손은 뒤로 묶어 두었으며, 돌에 밧줄로 단단히 고정되어 떠오르지도 못한 채 가라앉아 있습니다.
 
꼭, 효수되어 매달린 죄인 같습니다.
 
산송장 같던 종탑의 괴물들과는 다르게,
 
이들은 정말로 부패한 느낌입니다.
 
지느러미가 잘려 있다거나, 신체 일부가 뒤틀려 있다거나, 따개비가 곳곳에 붙어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시아록:(시체들은 자세히 보니 더 끔찍해서 콧잔등만 찡그렸다가 이내 중심에 있는 제단을 쳐다본다.) 제물이었을까...?
 
슈테른:하지만 제물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험하게 다룰 이유가 있었을까요? 마치 본보기로 죽여놓은 것 같잖아요.
무얼 잘못했길래, 이렇게 많은 동족을 매달아뒀을까요...
 
넓은 제단은 인간부터 동물, 벌레, 그리고 우리가 알 수 없는 생물들까지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으나
 
부서진 곳 하나 없이 무척 단단합니다.
 
건물들조차 이겨내지 못한 세월의 풍파도 이 제단은 맞지 않았습니다.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재료를 단단히 뭉쳐 만들어낸 듯하네요.
 
그러나, 딱 한 자리에는 칼자국이 길게 남아 있군요.
 
여러 차레 칼날이 닿았는지, 참상 주변에는 지워지지 않을 핏자국이 눌러붙어 있습니다.
 
공터의 중앙에 놓인 제단 앞에 서면,
 
비로소 ‘공터’가 무엇인지 느껴집니다.
 
발 디딘 땅 아래 가득한 진득한 고통과 악의.
 
이 공터 자체가 제물을 파묻은 구덩이를 막아 둔 뚜껑과도 비슷합니다.
 
아래에 대체 얼마만큼의 희생된 것이 파묻혀 있을는지.
 
그리고, 불현듯 뒷덜미가 서늘해집니다.
 
사방에서 움직임이 느껴집니다.
 
공터의 경계에서 점차 이곳, 중앙을 향해 모여듭니다.
 
매달려있다 어느 틈에 바닥으로 쓰러진 것들이 기어오기 시작합니다.
 
발목이 묶인 만큼 느리게, 그러나 운명처럼 반드시 피할 수 없는 형태로.
 
지느러미가 잘려 헤엄칠 수도 없는지,
 
뭍에 던져진 물고기처럼 그들이 힘없이 기어옵니다.
 
시아록:
SAN Roll
기준치: 19/9/3
굴림: 51
판정결과: 실패
 
“결국 도래.”
 
“하는, 건, 가.”
 
“우, 리, 는.”
 
이것은 종탑의 비통함과는 결이 다른 분노입니다.
 
두려움이며, 후회. 경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국, 당신의 발목이 그 뒤틀린 손가락에 잡힙니다.
 
슈테른:
정신
기준치: 75/37/15
굴림: 95
판정결과: 실패
 
시아록:
저항 Roll
기준치: 47/23/9
굴림: 4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들의 뭉그러진 재색 눈동자는 꼭 우는 것만 같은 간절함이 보입니다.
 
“살, 아, 남아,”
 
“증, 명, 하여, 이젠, 끝, 을, ……”
 
삶이 아닌 죽음을 향한 열망에 휩싸인 얼굴.
 
그들은 안식을 달라 몸부림치고, 탄생이 아닌 끝을 내라 종용합니다.
 
하지만 무엇을?
 
슈테른:―……
 
부서진 퍼즐 조각처럼 이어지지 않는 정보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으면,
 
어느덧 슈테른도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습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기색이지만 또 다른 고통을 부르고 있을 뿐이네요.
 
하지만, 눈앞에 그가 제대로 보인다는 건.
 
이것은 기괴하게 비틀린 환상도 아니고, 당신의 광기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그가 광기의 입구를 열었는지, 모든 감각을 두려워하며 웅크리고 있습니다.
 
꼭 멸망의 계시라도 들은 신자처럼.
 
시아록:이게, 무슨.. (머리를 흔들고, 발을 굴려 뭔지도 모를 것들을 털어내며 당신을 붙들었다.) 슈슈, 슈슈.
 
그의 이름을 부를 적에는, 회백색으로 물든 눈동자와 눈이 마주칩니다.
 
그리고 목소리와 ‘환상’이 점점 물에 섞여 사라집니다.
 
돌아온 광경 속에서, 슈테른만이.
 
슈테른:
정신
기준치: 75/37/15
굴림: 90
판정결과: 실패
 
당신이 그의 구겨진 몸을 펴주면,
 
그는 공손하게 당신의 앞에 무릎꿇습니다.
 
흐릿해진 눈동자가 당신을 바라보고, 아니, 아니에요.
 
그가 '당신'에게 예를 차리고 무릎꿇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필시 그가 보는 것은 당신이 아닐 겁니다.
 
광기에 휘말려 이곳을 떠나버린 그의 정신을 붙들어줄 방법이란,
 
당신이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시아록:슈슈? 슈슈, 그거 진짜 아니야.(당황한 낯빛으로 어떻게든 당신이 정신차릴 수 있도록 당신을 몇 번이고 부르며 손과 어깨를 붙잡아 흔든다.)
 
이 바다의 역사만 못지 않게 오랫동안 애정을 덧칠해온 이름,
 
슈테른, 석 자를 부르면 그제야 그가 반응합니다.
 
맥이 탁 풀린 것처럼 주저앉아, 방금까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눈치입니다.
 
시아록:슈슈, 괜찮아? (당신과 마주하고 무릎꿇고 앉아 당신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
 
슈테른:어, 시, 시아록. (잠깐 비틀대다가도 그걸 동력삼아 금방 일어난다. 정신은 되찾았으나 혼란스러운 눈치다.) 그러니까, 저는, 제가 방금까지 들은 건...
 
이곳의 모래는 단단하고도 축축해서
 
바닥에 맞닿은 무릎이 잠길 것처럼 푹 들어갑니다.
 
그와 함께 천천히 일어나면, 슈테른은 무언가 말을 고르더니 얘기합니다.
 
무언가 알아냈다는 눈빛으로, 이제는 떨리지 않는 공기만큼이나 덤덤하게.
 
슈테른:신의 그릇, 이라고 했어요. 저에게.
이상하게 이 괴물들이 하는 말만은, 광기에 찬 것 같긴 해도 끔찍한 느낌은 아니네요... 눈이 마주쳤을 땐 그저 무서웠는데.
......그릇이란 게 되어서 성수를 끌어모은다면, 이 세상을 되돌릴 수 있는 걸까요?
 
시아록:신의 그릇.... 세상을 돌리고 싶어? (신인지, 신의 제물인지 어쩌고 했던 그 모든 환상을 떠올린다.)
 
슈테른:사람이 괴물로 변한 건 바다가 검게 물든 때부터였으니까, 검은 물을 몰아내면 변했던 사람들도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을까요? (사람들, 이라고 포괄하고는 있으나, 그의 눈에 담기는 것은 당신밖에 없다.)
 
시아록:글쎄.. 돌아오긴 할까? (어깨를 으쓱이며 내뱉는 말에는 희망이라곤 없었다.) 그릇이란 게, 딱히... 좋게 들리지도 않는 걸..
 
슈테른:하지만 여기의 괴물들에게 분명히 '신의 그릇'이라는 말 말고도 살아남으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그 그릇이라는 게 저의, 우리의 생존이랑 관련이 있는 걸까요?
...이 바다를 조금 더 찾아봐야겠어요. 아직 정보가 너무 부족하단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중얼거리며, 아직 희망을 놓지 않고 손을 끌어당긴다. 이동하자는 표시인 듯 하다)
 
시아록:그래, 정보가 없지.. (신의 그릇이 슈슈라면, 제가 신의 제물이었던 거 같다. 그때 내가 들은 건 그런 것들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네가 걱정하게 만들고 싶진 않으니까 입을 다물고 당신이 이끄는 대로 손을 잡은 채 발을 옮겼다.)
 
모래를 밟으면 찰박찰박, 소리가 텅 빈 공터를 울리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우리는 높이 매달린 처형수들이 그림자라는 안개를 만드는 곳을 벗어나, 암굴 쪽으로 향합니다.
 
암굴이라곤 해도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형태는 아닙니다.
 
절벽을 통째로 깎아 만들었는지, 꼭 절벽에 매달린 듯한 건물입니다.
 
다른 건물과 비슷하게 돔 형태지만 따로 꾸미는 장식이 없어 투박하게도 보입니다.
 
입구 안쪽으로 눅눅한 어둠이 스며있습니다.
 
들어가 보면 바깥과 마찬가지로 눅눅하고 불쾌한 것들이 잔뜩 들어차 있는 듯,
 
몸을 무겁게 하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습니다.
 
어두운 심해 속에서도, 이곳은 창문도 없어 특히나 빛 한 점 들지 않습니다.
 
벽과 천장에 연결된 밧줄에 묶인 도구들.
 
바닥에는 크기가 다른 항아리 세 개가 있군요.
 
시아록:어딜가도 불쾌하네.. (한숨처럼 뱉어내고는 밧줄에 묶인 도구들을 쳐다봤다.)
 
이제 보니, 밧줄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굵직한 촉수입니다.
 
돌돌 말려있는 그것은 걸려 있는 도구를 끌어내니 부드럽게 늘어납니다.
 
날카롭게 벼렸으나 지금은 무디게 삭은 칼,
 
뼈도 부술 수 있을 것 같은 가위.
 
정체불명의 단단하고 투명한, 마치 두꺼운 테이프 같은 막까지.
 
손톱과 이빨이 있는 이들에게 필요하진 않을 것 같은 도구들이 있네요.
 
슈테른:눅눅하고 녹슨 냄새가 어딜 가도 떠나지 않네요. 여기서 일어난 참살의 흔적을 보면 당연할 것 같지만.
 
시아록:그러게... (어디에 쓰인지 알 거 같은 물건들을 보다가 내려두었다.) 쓸 일이.. 있을까?
 
슈테른:...많이 답답하다면 수면 쪽으로 올라가요. 해류가 달라지는 층까지 올라가면 공기가 달라질 지도 몰라요. 그 몸이 감각에 예민해졌다면, 원래부터 민감하셨던 후각은 더 힘드실 거잖아요. (약하게 한숨을 뱉어낸다.)
 
시아록:아냐, 이정도는.. 괜찮아. (코만 한 번 찡긋거리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여기도 그렇지만, 물 위도 그렇게 좋진 않았다.)
 
슈테른:생물을 상대로 썼다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음. 인간은 신체적 한계가 있어서 도구를 썼다면, 이들은 이빨이 너무 강하고 날카로워서 도구를 쓰지 않았을까요? 손톱으로 시멘트 벽을 할퀼 만큼 강하지만, 그런 걸로 손질을 하려면 먹이가 너덜너덜해졌을 테니까... (긴장이 조금 풀렸는지 주절주절 내뱉는다.)
 
시아록:그럴지도 모르겠네. (예전처럼 제 추측을 재잘재잘 내뱉는 널 보다가 슬쩍 웃었다.)
 
슈테른:(편치 않은 표정을 보다가 고개를 기울인다.) 숨쉬기에는 물 속이 편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햇빛을 보는 게 익숙하고 마음 편해지지 않아요? 시아록은 인간이었잖아요.
 
시아록:음... 그렇긴, 하지? 너도 위가 편하다면 한 번 올라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눈동자가 위를 향해 굴러갔다 도로 너를 향했다.)
 
슈테른:(편하다, 는 말을 듣고 고개를 숙인다) 제가 편한 곳이라면... 어차피, 그... 시, 시아록의... 옆... 이면 되니까... (점점 앞머리로 얼굴이 가려지고 목소리가 작아진다)
 
시아록:(네 말을 듣고서 이 불쾌한 공간에서 처음으로 기분이 좋아진 거 같다. 웃음에 가르랑거리는 소리가 섞였다.) 그건, 나도 그런데.
 
슈테른:(괜히 스스로가 내뱉은 말이, 이 텅 비고 서늘한 공간에서 메아리치는 기분이 든다. 아마 스스로의 부끄러움 때문에 느끼는 기분 탓이겠지만.) ...가, 가실 거면... 언제든지 얘기하세요... (그리고 신경을 돌리기 위해 괜히 다른 곳을 조사한다)
 
시아록:응, 알았어. (여전히 웃는 낯으로 항아리로 향한다.)
 
그도 항아리를 열려고 몇 번 힘을 주다가, 어째선지 탁 놓아버립니다.
 
작아서 그렇게 무거워보이진 않는데요.
 
당신이 열어주려면, 근력 판정합니다.
 
시아록:
근력
기준치: 80/40/16
굴림: 1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당신도 힘을 줘 보니, 아주 단단한 접착제로 붙어 있는 듯 하네요.
 
그래도 괴물의 근력을 쓰니 금방 떨어집니다.
 
투두둑, 소리가 나며 떨어진 접착면에는 진액이 잔뜩 발려 있습니다.
 
그것의 주인이었던, 온몸이 진액 투성이인 바다 민달팽이는 유유히 헤엄쳐 떠납니다.
 
그렇게 열린 항아리는 총 세 개입니다. 뭐부터 조사할까요?
 
시아록:(가장 가까운 것부터 들여다본다.)
 
우주 비행선 안에서 물을 쏟는 장면을 본 적 있나요?
 
물에 섞이지 못하는 기름이 가라앉은 듯,
 
여러 가지 채도의 붉은색을 오묘하게 섞은 빛깔의 피가 꿀렁거리면서도 퍼지지 않고 깔려 있습니다.
 
뭘 죽이면 이런 피를 흘리는 걸까요?
 
시아록:이건 또.. (진짜 끔찍한 것만 있네, 들여다보던 항아리에서 상체를 일으키며 다음 항아리를 본다.)
 
뚜껑이 열리면 투명하여 안쪽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자그마한 해파리 떼가 나옵니다.
 
시아록:해파리...?
 
안쪽에 선홍색의 눈이 달려 있습니다. 원래 해파리한테 눈이 있었던가?
 
밖으로 나온 해파리들은 가느다란 레이스 자락 같은 촉수를 움직여 떠나갑니다.
 
시아록:(원래 있을리도 없는 눈을 가진 해파리가 이상해 저도 모르게 빤히 쳐다보다가 해파리가 떠난 항아리 안엔 다른 게 없는지 쳐다본다.) 해파리만 있었나..?
 
다른 건 없는지 이제 텅 비었습니다.
 
시아록:(텅 빈 걸 확인하고 세번째 항아리를 들여다본다.)
 
오래되어 보이는 물건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작은 가위, 조개로 만든 목걸이, 투명하게 빛나는 깃털이 있는가 하면
 
눈알, 동물의 손톱, 알 수 없는 문양이 그려진 부적 따위까지.
 
그런데, 항아리 아래에 어떤 상자 하나가 깔려있는 게 보입니다.
 
시아록:잡동사니, 를 넣어둔 건가...? (항아리를 보다가 아래에 깔린 상자를 끄집어냈다.)
(상자를 들어 겉면을 훑어본다.)
 
슈테른:해파리도 그렇고, 일종의 수집품 창고같은 게 아니었을까요? (우리의 시선에선 큰 쓸모를 찾기 힘든 내용물을 본다.)
이 상자는 따로 둔 걸 보니 중요한 게 있을 것 같은데...
 
상자는 뚜껑에 화려한 문양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인간의 문명을 구성하지 않는 미지의 물질로 만들어진 상자는, 일견 고풍스럽게까지 느껴집니다.
 
문양은 붉은 색으로 채워져 있는데, 중간중간 빈 부분이 있습니다.
 
열어 보려고 해도 열쇠 구멍 없이 단단히 잠겨 있고요.
 
시아록:그런가봐...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네... (살펴본 상자는 열릴 기미도 안 보여서 들고 귓가에서 몇 번 흔들어보았다.)
 
안에서 달각달각 소리가 나는 걸 보면 상자는 맞는 것 같습니다.
 
시아록:뭐가, 들어있긴.. 한가보네. (당신에게 상자를 내밀어보인다.) 열어보는 게 좋겟지?
 
슈테른:(상자를 들고 여기저기 살펴본다) 이건 열쇠구멍도 없네요? 뭔가 다른 장치를 충족하면 열리는 걸까요...?
장식도 없어서 눈에 띄는 거라곤 문양밖에 없어 보이는데.
 
시아록:처음에, 본 항아리에 빨간... 게 있었는데, 문양도 빨가니까..비어있는 부분, 채워보면..?
 
슈테른:아, 그런 게 있었죠. 밑져야 본전이니까...한 번 해 봐요. (순간 이걸로 안 되면 직접 피를 내야 하는 건가... 라고 생각하다 곧 놀라며 떨쳐낸다)
 
문양을 전부 붉게 채우면 달깍. 틈 사이에서 작은 물거품이 일어나며 잠금쇠 열리는 소리가 납니다.
 
시아록:오, 진짜 열리네. (이건 좀 신기했다.)
 
안쪽에는 커다랗고 평평한 조개가 세 개 들어 있습니다.
 
슈테른:민달팽이로 항아리를 밀봉한 것도 그렇고, 천장의 촉수도 그렇고, 이곳에서 신기한 건 잔뜩 보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발견이 유쾌하지 않다는 게 문제였지만.)
 
문양을 파내 새기고 안쪽에 유리 같은 걸 부어 채웠는지 질감이 다릅니다.
 
만져 보면, 자연스럽게 읽히는 일종의 글자임을 바로 알아챕니다.
 
……이전보다 이 문자’를 받아들이는 시간이 확연히 빨라졌네요.
 
당신도 이 흑색의 바다에 물들어가고 있는 걸까요.
 
시아록:중요한 걸 새겨둔 거겠지..? ('글자'의 문양을 손끝으로 문질렀다.)
 
조개 상단에는 괴악한 솜씨로 새긴 그림도 그려져 있습니다.
 
무언가를 죽이거나, 합치고, 뒤트는 걸 그린 듯합니다.
 
매끄럽고 시린 감촉의 조개를 읽어보면.

핸드아웃: 첫 번째 조개의 글자

 

가라사대,
신성한 일에 휘말린 자, 종의 진화를 이뤄낸 자는 신의 올바른 제물이며,
신성한 일을 겪은 자, 종의 진화를 멈추어 역경을 이겨낸 자는 신이 될 그릇일지어다.
 
올바른 제물을 만들고자 한다면 제물이 될 수 있는 모든 종을 찾아 기적을 부여해라.
죽음 가운데 다시 살게 하며, 합치고 뒤섞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 진화와 기적을 꾀하라.
이것이 성공하면 그가 올바른 제물이니, 제물의 모든 혈액을 내어 성수를 품게 하라.
힘을 되찾은 성수께서 신의 그릇을 택하실 테니, 이 얼마나 기쁜가.
연약한 육신과 혈액을 모두 바쳐 만들어질 잉태요, 진정한 탄생의 첫걸음이어라.
그러니 진화를 이뤄낸 존재를 성전으로 보내어 피를 채워라.


 
시아록:(눈으로 읽어내린 글귀는 생각대로 기분 나쁜 문장 뿐이었다. 또, 신의 제물이니 그릇이니.. 그냥 둘 다 희생양이지. 당신에게 들리지 않게 홀로 궁시렁거리며 조개를 꽉 쥐었다.)
 
당신은, 우리는 이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성한 일, 종의 진화. 기적. 우리에게 한 번 닥쳐왔던 일이니까요.
 
하고많은 괴물과 인간 중에서 하필 우리가 골라진 이유가 있습니다.
 
슈테른과 당신은 ‘특별’했지요.
 
검은 바다의 숨결에 잡아먹혀 괴물이 되고도 인간의 이성을 되찾았으니까요.
 
'종의 진화'란 괴물로 변이하는 걸 말할 것이며,
 
그렇다면 역경을 이겨냈다는 것은 괴물로 변한 자의 이성을 깨운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신이 내린 역경을 극복한 자를 성인으로 추대하는 것은 괴물들도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육신과 혈액을 바친다'는 대목으로 봐서는, 성인이자 그릇의 종착점은 죽음이겠죠.
 
제물이며 신의 그릇이라니 누가 그런 걸 바랐나요?
 
우리는 그저 함께 있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로서 있기 위한 발버둥이, 지금 둘의 사이에 더 커다란 균열을 만들어내고 말았군요.
 
……그에게 백신을 맞춘 일, 후회하나요?
 
시아록:(무슨 문제가 있어 슈슈만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상관없지만, 굳이? 왜 나나 슈슈가 제놈들을 위해서 희생해야 한단 말인가. 남 좋은 일 하겠다고 괴물이 되고서도 이성이 남은 게 아니었다. 온전히 슈슈를위해서였지. 자신들에게 강요하는 희생에 들끓는 기분만 들었다.)
SAN Roll
기준치: 18/9/3
굴림: 75
판정결과: 실패
 
기적이라 생각했던 일이 더 커다란 저주가 되어 찾아온 것을 깨닫습니다.
 
지나간 일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이 상황에 대한 조금의 한탄이 정신에 스며듭니다.
 
슈테른:...무슨 내용이에요? (옆에서 고개를 내밀어 살피다가, 곧 눈이 커진다.) ...어, 저... 문자가 읽어져요...
 
시아록:...그래? (당신을 힐끗 보고는 조개의 글자를 잠깐 손으로 덮었다.)
딱히 좋은 내용도, 아닌데.
 
슈테른:종에 붙은 글자도 매만져야만 겨우 알 수 있었는데, 아니 그보다. 어떻게 인간인 제가 괴물들의 문자를...
(충분히 머리가 복잡해 보이지만, 손을 부드럽게 치우고 내용을 확인하자 더 미동이 없어진다.)
올바른 제물이라니, 지금 이 심해에서, 피를 낼 수 있을 만큼 살아있는 것이라곤.......
(짙은 광기가 시아록을 둘러쌀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건 다른 문제인 모양인지, 잠시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이마를 두손으로 감싼다) ...다른, 다른 내용은 없어요? (말투가 빨라진다. 자신도 미쳐가고 있는 상황이니 더더욱 시간이 없다)
 
시아록:(계속 숨겨오긴 했지만, 여기까지 이야기가 적혀있으면 얘기해야 할 터다. 네가 충격은 받을 수 있으나, 서로 대화하고 대답을 내어놓을 수는 있다.)
내가 읽은 건, 여기까진데. 그리고, 내가 제물이래.
(평범한 일상 얘기라도 하듯한 말투는 이 얘기에 조금도 신경쓰지도 않을 것이며 따르지도 않을 거란 의미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슈테른:...알아요. (억눌린 목소리가 나온다) 지금까지 말하지 않은 건, 정말 괜찮아서에요? 계속 혼자 몰려오셨을 텐데, 저한테 조금이라도 말해 주셨으면 부담도 덜했을 텐데...
당신이 아무리 괜찮아도, 제가 막을 거에요. (단호하게 조개를 내려놓는 몸짓에서 인정하지 않을 거라는 마음이 느껴진다.)
 
시아록:응, 정말 괜찮은데.. (느릿하게 눈이 두어번 깜빡였다.)
나도 할 생각 없어.
 
슈테른:... 알았어요. (안도와 걱정이 섞인 한숨을 내뱉고, 다른 조개는 없는지 살펴보려 한다.)
 
그는 상자 속의 두 번째 조개를 집어들고 읽더니, 곧 조용히 고개를 젓습니다.
 
큰 진전이 있는 내용은 아닌 듯 하네요.
 
당신도 조개를 들여다보면, 읽히지 않습니다.
 
‘격’이 다른 문자가 적혀 있는 느낌이에요.
 
상단의 그림에는 신성한 것을 표시하는 듯한 헤일로가 그려져 있으니,
 
아마 신의 그릇에 대한 얘기 같습니다.
 
제물은 신의 그릇의 이야기를 읽을 수 없는 걸까요?
 
그래도 읽고 싶다면, 저항 판정으로 제물의 위치를 거부해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시아록:
저항 Roll
기준치: 52/26/10
굴림: 1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전에는 흐릿했던 글자가 안경을 쓴 것처럼 그 뜻이 눈에 들어옵니다.

핸드아웃: 두 번째 조개의 글자

 

 힘을 찾은 성수가 기적을 부여하여 신의 그릇을 선택하실 테니, 그릇을 찾아라.

기쁜 사명을 품은 존재. 준비된 그릇을 단검으로 부수어 길을 만들고 섭리의 균열을 열어라.
종소리로 숨결을 이끌어라. 그리하면 그릇 속에서 뒤섞여 이 세상에 온전히 탄생하실 것이다.

어떤 가죽도 과연 그분을 담을 수는 없다. 잠시라도 그분을 받아 낼 수 있다면, 그 뒤에 터져 나온 것은 성수가 아니오 그분 자체일지니 얼마나 기쁜가.
연약한 육신을 탈피하며 오르는 진정한 탄생이어라.
기적이 곧 그분이고, 그분이 곧 기적이매. 모든 창해가 그분을 따를지어다.


 
슈테른:(글자를 읽는 당신을 보며 조용히 말한다.)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요.
 
시아록:불안해? (글을 읽다말고 당신을 쳐다봤다.)
 
슈테른:이 바다는 지금까지 우리를 몇 번이고 이끌고 조종했잖아요. 만약 그게 계속되어서, 둘 중 한 명이 더는 버티지 못하게 되면...
그때는... 어떡해요?
 
시아록:같이만 있을 수 있다면, 난 괜찮을 거 같은데..
(바다니 인류니 진화니 생각해본 적 없다. 관심도 없다. 자신의 세상 중심에는 오롯이 너만 있어서. 결국 밀리고 밀려서 끄트머리에 선다고 하더라도 같이 있을 수만 있다면 정말로 상관없다.)
 
당신은 처음 광기에 휩싸였을 때를 떠올립니다.
 
스스로를 부숴야만 할 것 같은 감각이 온 몸을 지배했었죠.
 
그때도 슈테른이 당신을 깨우고 이름을 불렀기에 겨우 당신으로서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미처 저항하지 못하는 순간이 왔을 때는요?
 
사념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바다에서, 만약 상대방을 놓쳐버린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환상의 벽에 가로막혀 결국 함께 있을 수 없게 된다면?
 
안 좋은 생각이 듭니다.
 
검은 바다와 사념들이 제시하는 선택지는 딱 둘 뿐입니다.
 
서로를 합쳐 알 수 없는 존재로 진화하거나,
 
표류하며 시간을 보내다 정신까지 잡아먹히는 것.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걸까요.
 
어느 쪽이건 끝이 명확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야,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4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우리가 지나온 바다를 둘러보면, 겉으로는 상냥했잖아요.
 
괴물들이 우리를 공격하지도 않았습니다. 남아있는 생물들은 무언가를 고대하듯 한껏 반짝일 뿐이었고요.
 
어쩌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건, 그러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선택지가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일 지도 모릅니다.
 
검은 바다에 잡아먹혀 신체가 변한 당신과, 괴물들의 문자를 읽을 수 있게 된 슈테른.
 
우리는 지금도, 착실하게 소화되고 있으니까요.
 
지금의 우리가 몇 시간 뒤의 우리보다 온전한 자아를 가지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시아록:슈슈, 근데, 우린 괜찮을 거야. (근거는 전혀 없으나 확신만 내뱉는다.)
 
슈테른:...맞아요. (조심스럽게 끄덕인다.) 무언가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요. 우리는 아직 신이나 균열에 대한 것도, 여기서 말하는 '단검'에 대한 것도 잘 모르니까. (두 번째 조개를 짚으며 말한다.)
(괜찮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 같진 않지만, 힘은 얻은 듯하다) 세 번째 조개는 무슨 내용이에요? ...읽어도 기분이 좋진 않지만, 그래도 확인해 둬야 할 것 같아요.
아무리 어둡고 막막해도 지금 있는 곳을 파악해야 빠져나갈 구멍도 찾을 수 있으니까. (당신의 손을 꽉 쥐었다.)
 
시아록:그렇지..? (남은 마지막 조개를 쥐어들었다.)
 
세 번째 조개는 일지와 비슷합니다.
 
이들이 얼마나 오래,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집요하게 ‘제물’을 준비해 왔는지 알 수 있는 일지.
 
마을 하나를 몰살시켜 한 사람만 남긴 뒤, 마도서를 흘려 기적을 일으키도록 유도했다가 납치하거나,
 
어떤 씨앗을 심어 두고 그것이 발아할 때까지 백여 년이 넘도록 기다리기도 했으며,
 
그 씨앗으로 멸망해 가던 도시에 살 수 있는 힌트를 주는 행위.
 
이런 방식으로 기적을 입은 여러 종의 생물을 합쳐 제물을 만들고, 그것을 바쳐 왔습니다.
 
때로는 구원이자, 때로는 저주처럼.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이렇습니다.
 
…… 이 꼴을 보아하니 실패한 걸까요?
 
시아록:(끔찍한 역사서같은 내용에 인상만 쓰다가) 결국은 다 실패했다는, 거 같은데.. 이게 성공할 일은 있는, 걸까?
 
슈테른:......이런 짓을 했으니 한 명도 빠짐없이 죽을 만하네요. (다 읽은 조개들을 상자에 돌려놓는다.)
그건 잘 모르겠지만, 성공해도 실패해도 좋은 결과가 남을 것 같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응하지 않는다는 선택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머리를 비우고 싶은 듯 몇 번 털어내고) 서쪽은 이만하면 다 둘러본 것 같은데, 이만 일어설까요? 계속 있으면 향 때문에 싫으실 수도 있잖아요.
 
시아록:응, 나갈까. (안에 있던 모든 물건들을 내버려둔 채로 일어나 당신의 손을 잡아 굴 밖으로 나간다.)
 
어느 정도 대화를 나누고, 우리는 암굴을 빠져나갑니다.
 
입구로 나오면 바다가,
 
보여야 하는데.
 
……
 
시야에 드는 것은 바다가 아닌 암흑입니다.
 
마치 거대한 구렁이가 몸을 휘감은 듯 무겁고, 섬뜩하게 차가워요.
 
선 채 가위에 눌리는 느낌입니다.
 
……아니.
 
방금 서 있다고 했나요?
 
아뇨. 당신은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도 모를 어둠 속에서,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기 힘든 좁은 관 안에 갇혀 있습니다.
 
암흑뿐인 사방에서 들려오는 암송 소리가 온몸을 두들깁니다.
 
그들이 당신에게 바치는 저주의 내용이란, 예상이 갑니다.
 
음습한 사념에 피부가 따끔따끔해지는 느낌까지 듭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귀를 막을 수도 없어요.
 
귀를 막아도 무형의 공기가 끝까지 쫓아올 거고요.
 
그래도, 무언가 시도해볼 수 있다면,
 
당신의 온몸을 광기가 묶어놓고 집념이 억누르더라도,
 
당신의 생각만은 늘 자유로웠습니다.
 
시아록:
저항 Roll
기준치: 52/26/10
굴림: 1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생각’은 가능하지만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현실의 당신은 충분히 저항했는데,
 
이 환상 속에서는 그럴 수 없군요.
 
암송 소리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이성이 먹혀,
 
이 섬뜩한 고통에 작은 희열마저 느껴집니다.
 
당신의 의지를 비웃듯 팔이 멋대로 움직여 무언가를 쥡니다.
 
들어올리면, 보이는 것은 단검이네요.
 
푸욱. 날붙이가 몸에 박히면, 아래의 피가 ‘출렁이기’ 시작합니다.
 
아픈가요? 그것도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단도가 뽑혀 나가면,
 
상처에서 뿜어져 나온 피를 단도가 탐욕스레 빨아들입니다.
 
거세지는 출혈, 몸이 부유하는 감각.
 
아, 죽음에 가까워집니다.
 
 
세상이 다시 한번 가라앉고,
 
눈을 뜨면 당신 곁에는 슈테른이 있습니다.
 
그는 무언가 열심히 말하고 있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환상 속에서 이어지던 이명이 아직도 당신의 귀를 덮고 있는 걸까요?
 
슈테른:――. ... ―시아록!
제발, 제발 정신 좀, ...
 
그리고 그가 이름을 부르자마자, 마비되어 있던 감각이 풀린 것처럼 모든 감각이 깨어납니다.
 
죽음 후의 안식을 떠다니는 듯한 기분나쁜 감각에서 벗어납니다.
 
시아록:아... (물에 오래도록 잠겨있다 뭍으로 나와 첫 숨을 뱉어내듯 입을 열었다. 여전히 자신은 물속이건만, 그렇게 느껴질 정도로 그 끔찍한 감각에 몸서리치며 상체를 일으켜 뒷목을 쓸어내렸다.)
슈슈는, 괜찮아..?
 
슈테른:......아뇨. (그새 몸싸움이라도 한 것 같은 상처가 몇 군데 생겼다.) 당신이... 자꾸 자기 몸을 심하게 긁거나 찌르려고 해서...
 
시아록:아... 미안. (널 상처입히는 게 자신이고 싶진 않았는데. 당신의 손을 쥐고 어쩔 줄 몰라 손가락 끝으로만 손등을 문질렀다.)
 
슈테른:전, 차라리 저를 공격하란 말이에요. (목소리가 형편없이 일그러지고, 얼굴을 숨기려는지 품에 고개를 묻는다) 당신이 다치면 도대체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요...
당신이 어떻든 다 괜찮은데 아까같은 것만 하지 말아요, 바보... (온몸이 떨린다)
 
시아록:으응. 미안.. (제 품에 안긴 당신의 등을 끌어안고는 달래듯 천천히 쓸어내렸다.)
 
웃는 모습이나 괴로워하는 모습, 결의에 찬 모습은 여러 번 봤지만
 
통곡하는 건 처음 보는군요.
 
기억에 없는 걸 보면 당신이 괴물로 변한 뒤로부터는 처음인가 봅니다.
 
...당신과 그를 괴롭히는 환상을 떠올리면
 
이제 글귀 속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있으면, 슈테른의 너머로 보이는 도시가……
 
빛나기 시작합니다.
 
아, 동쪽에서 본 것과 비슷하지만 배로 화려합니다.
 
온 도시에 산개한 산호들이 물결에 따라 흔들리며 빛납니다.
 
사이에서 춤추는 작은 물고기들은 이보다 생기 넘칠 수가 없군요.
 
어두침침한 도시에서 바다 반딧불이와 광석, 자개들이 반짝거리며 태양을 모방합니다.
 
그들이 비추고 가리키는 것은 명확합니다.
 
...중앙의 신전.
 
'사명’을 이해한 당신을 반기며 부표를 만들고 있어요.
 
우리를 조종할 수 있을 거라 믿은 게 아니라, 처음부터 거절 따윈 염두에 두지 않은 듯합니다.
 
그러고 보면, 벽화에서도 온통 웃는 얼굴밖에 없었고요.
 
바다가 우리를 이끌어온 이유도, 이 사명을 이해하길 기다렸던 것이겠죠..
 
......바다가 가리키는 대로 가야 할까요?
 
시아록:슈슈, 우리.. 저 멀리 가버릴까? (모든 의사를 무시하고 머리채를 잡아끌어당긴다고 내가 그걸 들어줘야 할 이유가 있나? 알아서 하라지. 그렇게 신이 되고 싶으면 알아서 되라지. 제물도 그릇도 없어서 오롯하게 '신'이 될 수 없다면 그게 무슨 신이란 말인가. 독기 찬 눈이 신전을 노려보았다.)
 
슈테른:...당신이 있으면 어디든 괜찮아요. (부어오른 눈가로 애써 웃느라, 미소가 이상하게 일그러진다. 꼭 시아록이 그러하는 것처럼)
 
우리는 도망치듯 도시에서 멀어져 하늘로,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하지만 지느러미는 날개가 될 수 없죠.
 
수면에 일정 이상 가까워지고, 스며드는 햇빛을 겨우 손에 쥘 때쯤 되자
 
갑자기 엄청나게 잠이 밀려옵니다.
 
그럼에도 애써 눈을 뜨고자 한다면 저항 판정합니다.
 
시아록:
저항 Roll
기준치: 57/28/11
굴림: 85
판정결과: 실패
 
당신은 눈을 뜨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바다에서는 팔다리를 양껏 휘저어봤자 더 빨리 가라앉을 뿐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정확히 떠나려고 했던 그 장소에 돌아와 있습니다.
 
시아록:(돌아온 장소를 보고 결국 아드득 이를 갈았다)
 
잠에 취한 듯 몽롱해지고 편안해진 정신이, 당신을 중앙의 신전으로 초대합니다.
 
신이 머무르는 장소에 어떠한 귀소본능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럼에도 도망친다고 생각한다면, 가라앉는 미래를 알고서도 끝까지 발버둥쳐 보겠다면.
 
시아록:(아득하게 솟구친 분노에 손톱을 세워 몇 번이고 바닥을 긁어내리다가 이를 악물고 신전을 노려보았다. 몇 번이고 바다를 벗어나더라도 아마 저는 또 돌아오게 될 것이다. 저것들은 이미 제 존재를 알아버렸으니까. 이걸 무한히 반복한다면 괴물인 제가 먼저 부서지는 게 아니라 인간인 슈슈가 먼저 부서질 게 너무도 자명해서. 결국 입밖으로 물거품을 혀를 차듯 내뱉고는 일어서 신전으로 향했다.)
 
당신이 가라앉는 몇 번의 시도 동안, 어쩌면 그의 손을 놓치게 될 지도 모릅니다.
 
혹은 당신이 먼저 저항하고자 하는 의지를 모두 잃을 지도 모르겠고요.
 
게다가, 우리는 이런 썩어빠진 도시에 가라앉자고 그동안 생존해온 게 아닙니다.
 
당신이 발돋움하면 그도 당신에게 맞춰 따라오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인간에겐 물갈퀴가 없고, 그래서 당신보다 걷는 속도는 훨씬 느리네요.
 
꼭, 그에게만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면 좋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계속 우리가 우리로서 함께할 수만 있다면.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도시는 반짝임을 가득 머금은 채입니다.
 
클리오네며 초롱을 품은 심해어들이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오릅니다.
 
참 기이한 광경이에요. 저것들의 원류는 끈적하고 컴컴한 저주가 아닌가요.
 
고개를 들면 시야에 가득 차오르는 숨이 막힐 정도로 끝없고 망막한 어둠.
 
그러나 지금, 새카만 천에 보석 가루를 뿌려 놓듯이,
 
우리의 생명력에 이끌린 별들이 우리를 중심으로 점점 모여듭니다.
 
유성처럼 긴 꼬리를 무수히 달고 흐르는 투명한 해파리,
 
각도에 따라 무지개빛으로 빛나는 치어 떼가 흩뿌리는 은하수,
 
은은한 광원을 삼킨 고래들이 빙글빙글 돌며 만들어 내는 어느 태양계의 아득한 궤적……
 
아래는 죽은 것들의 야경, 위는 생명이 만든 우주.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별세계 속에서 우리는 아직 살아 있어요.
 
이 방대한 우주의 수압에도 짓눌리지 않고 부지런히 팔과 다리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슈테른:아름답네요. (지나온 상황 때문인지 약간 잠긴 목소리지만, 그래도 짧게나마 내뱉는다.)
 
시아록:그러게.. (아름답다고 좋아질 것도 아니지만.. 포록 물거품을 뱉고는 네 손을 좀 더 꼭 쥐었다.)
 
그러고보니, 뭍의 책에서 별의 방향으로 북쪽을 찾는 방법을 배운 적이 있었죠.
 
이 심해의 위장품일 뿐인 별들로도, 길을 찾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구분선해파리
 
 
신전은 내부에 있던 산호며 가시들이 모두 사라진 채입니다.
 
우리가 이동하며 만들어낸 물결에 흔들리는 해초들이, 꼭 깊게 절하는 백성처럼 보입니다.
 
중앙까지 깊숙이 들어오면, 당신이 손잡이를 잡고 처음 피를 흘렸던 그 문도 보입니다.
 
그때는 가시덤불에 휩싸여 있어 들어가지 못했는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 사라져 있습니다.
 
슈테른:...여기로 들어오라는 거겠죠? (지하실로 이어지는지 바닥에 있는 문에 손을 댔다가, 화들짝 놀라 뗀다.)
 
시아록:왜 그래? (당신의 화들짝 놀란 기색에 덩달아 놀라며 묻는다.)
 
슈테른:그게, (잘 이어지지 않는 말로 설명하기보다 팔의 소매를 걷어보인다. 처음 종탑을 나왔을 때와 비슷하게, 팔의 혈관이 끓고 피부가 일렁대는 기괴한 몰골이 보인다.) ...길을 헷갈릴 일은 없겠네요. 확실하게 가리켜 주고 있으니까......
 
시아록:(기묘해진 당신의 팔을 붙잡아 쳐다보다가 이내 왈칵 인상을 썼다.) 나 혼자 갔다올까?
 
슈테른:(고개를 젓고, 소매를 되돌린다. 팔에서 솟구치는 흐름을 억누르듯 반대쪽 손으로 꽉 쥔다.) 그,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조금만 참으세요. 이걸 해결하려면 저도 가야 한다고요...
 
시아록:이상하게, 보이는 건.. 아닌데. 걱정된 거지.. (가리는 네 팔을 보다가) 응, 그럼 가자.
 
그가 마저 문을 밀자, 환영하는 듯 활짝 열립니다.
 
너머로는, 문만큼이나 커다란 내리막길이 있습니다.
 
어찌나 넓은지 수십 명은 헤엄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드문드문 야광석이 박혀 있긴 하지만,
 
우리가 지나온 우주에 비해서는 컴컴하고, 막막하기만 합니다.
 
시아록:
저항 Roll
기준치: 53/26/10
굴림: 9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느껴집니다. 저 아래에 확실히 있어요.
 
'당신'을 부르는 무형의 것이.
 
하지만 그것이 원하는 건 당신이 아닙니다.
 
그것은 제물을 기다리고, 당신은 아직 자신을 제물이라 인정하지 않으므로.
 
한 번 더 마음을 다잡습니다. 시아록, 저항치 2 상승.
 
우리는 아래로, 아래로 내려갑니다.
 
이것은 스스로 가는 것이니 침몰이 아니며,
 
비록 너무나 변해버렸더라도 우리는 우리입니다.
 
무저갱처럼 깊고 깊은 내리막이 천천히 끝나면
 
드디어, 넓고 긴 복도에 도착합니다.
 
너머에 문이 하나 보이고,
 
복도의 벽, 천장, 사방에 위에서 본 우주가 펼쳐져 있습니다.
 
엷고 검은 물로 가득한 이 공간에 그들은 알고 우리는 모르는 수백, 수천의 은하가 존재하고 있어요.
 
이 너머에는 더욱 태초에 가까운 것들이 존재할 텝니다.
 
침몰과 해일, 죽음과 이별……. 멸망의 시작과 끝이 말이에요.
 
슈테른:(문틈으로도 빨아들이는 듯한 흐름과, 어떤 강력한 파동이 느껴져 습관적으로 옆을 돌아본다. 머리가 아프지만, 표정으로 드러나지 않게 숨긴다.) ...들어갈까요?
 
시아록:응.. (심호흡을 하고 당신의 손을 잡고 문을 열었다.)
 
슈테른:안쪽에서 많은 게 결정되겠지만... 그래도 희망을 놓진 말아요.
방법이 없더라도 괜찮아요. 우리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화답해주지 못했던 웃음에 뒤늦게 답하며, 안심시켜주려는 듯 웃어보인다)
 
시아록:(희망을 놓치말란 네 말에 그저 입꼬리만 올려 마주 웃고 말았다. 네가 원한다면 옛적에 버린 희망을 한조각쯤 주어들어 쥐고 있을 수 있다.)
 
끝내는 침몰하게 될 지라도, 끝까지 우리는 함께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르죠. 침몰도 아름다운 것일지도.
 
 
구분선해파리
 
 
거대한 문이 느리게 열리면, 너머로 보이는 것은
 
압도적인 어둠 속에서 조아리고 있는…… 수많은 괴물들입니다.
 
넓디넓은 예배당의 중앙을 암녹빛 융단이 가르고,
 
기백이 넘는 심해인들이 부장품처럼 박제되어 양옆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습니다.
 
죽은 지 오래되어 사라져야 했건만, 악만이 끈질기게 남아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부정한 것들이 읊어 대는 기도문과 찬양이 머릿속을 갉아먹는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광신도라고 지칭할 수밖에 없겠군요.
 
융단이 끝나는 저 먼 장소에는 제단이 보입니다.
 
그리고 제단의 뒤편에서 어떤 거대한 흐름이 느껴집니다.
 
슈테른:(이미 죽은 걸 알지만, 그런데도 다 삭은 시체가 오로지 광기를 원동력으로 아직도 움직이는 걸 보고 있으면 섬뜩해진다. 차라리 살아있는 걸 보는 게 낫다고 느껴질 정도.)
시체가 공터에 있던 것의 몇 배는 되는 걸 보니까... 여기가 일종의 '본거지'였나 봐요. (털이 쭈뼛 선 팔을 쓸어내린다.)
 
시아록:(저도 모르게 침잠한 눈으로 광기가 휘몰아치는 공간을 쳐다보았다. 켜켜히 쌓인 악의와 광기는 이미 어느 선을 넘어서 툭 건드리면 터질 것 같아보이기도 했다.)
그런가봐... 이런 게 너무 많으니까, 끔찍하네.
(결국 여기까지 끌려왔다. 무언가를 하긴 해야겠으나, 끈적한 악의가 기분을 진창에 처박게만 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다 한숨만 나왔다.)
 
슈테른:...이들이 신을 불러오기 위해 한 짓은 너무나 끔찍했지만, 의식이 실패했다고 오랜 세월을 이렇게 방치해둔 신도 비슷하게 흉악한 존재이지 않을까요.
정도를 넘어선 자들이 숭배하는 신이니까, 똑같이 악의에 푹 절어 있을지도 몰라요.
 
시아록:아무래도 그렇겠지? 둘 다, 똑같은 거지.
 
슈테른:검은 바다를 벗어나려고 했을 때 방해한 것도 아마 신이겠죠? (지독하다는 듯 눈을 찌푸린다.) 의식을 실패해야 할 텐데.
검은 물... 성수만 범람했을 때도 이 별이 푸른빛을 잃고 검게 물들어 버렸는데, 아주 신이 강림해 버린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어느 쪽이든 좋은 방향은 아니겠죠. (천천히 제단을 가리킨다.) 가 볼까요?
 
시아록:(가만히 네 말을 듣다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 번 짜증을 삼키고 제단으로 향한다.)
 
도열한 심해인들을 지나고 지나 제단에 가까워질수록
 
암송 소리가 공명하듯 점점 커져 갑니다.
 
머릿속으로 천천히 부어지는 가느다란 물줄기처럼.
 
이 물줄기는 언젠가 큰 파도가 되고 또 해일로 변모하겠지요.
 
제단은 동쪽의 종탑과 서쪽의 공터에서 본 것과 완벽하게 동일합니다.
 
그러나 뭔가 위화감이 느껴지네요.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2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다만 딱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이 제단에는 제단을 빙 두르는 얇은 실금이 그어져 있어요.
 
그러니까, 관처럼 말입니다.
 
시아록:이거, 열리는 걸까..? (발견한 얇은 실금을 손톱끝으로 문지르며 당신을 쳐다보았다.)
 
슈테른:그냥 제단인 줄 알았는데, 이것만 형태가 조금 다르네요? 꼭, 덮개로 덮여 있는 것처럼...
(틈에 손을 넣고 살짝 힘을 줘 본다. 손톱만큼 움직일까 말까다) 안에 뭐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열어볼까요?
 
시아록:그럴까? (당신의 손을 부드럽게 밀어내고 자신이 뚜껑부분을 손으로 밀어본다.)
 
덮개는 너무 무거워서 혼자 힘으로는 열리지도 않습니다.
 
둘이서 끙끙대며 힘을 줘야 가까스로 들립니다.
 
시아록:꽤 무겁네..
 
안쪽에서는 새까만 무언가가 연기처럼 빠져나옵니다.
 
뚜껑을 완전히 치우면, 심연처럼 어두운 공간이 보입니다.
 
당신은 문득 이해합니다. 이것은 관이자, 깨달음을 주기 위한 세뇌실이라는 것을.
 
심연이라고 생각했던 검은 점액질은
 
사람 모양의 틀을 만들고 있다 흩어져 사라집니다.
 
꼭 악몽에서 깨는 것처럼.
 
그러고 나면 바닥에 놓여 있던 새카만 단검과 상자가 드러납니다.
 
시아록:(관 바닥에 있는 두가지를 집어들었다.) 상자부터 열어볼까..?
(상자를 살펴본다.)
 
흑요석으로 만든 듯한 새카맣고 반질거리는 상자입니다.
 
단검을 담는 상자인지, 검이 들어갈 빈 공간이 있습니다.
 
안에는 단검 그림이 그려진 양피지가 있습니다.
 
슈테른:......(상자를 바라보다 초점이 흐릿해진다.)
정신
기준치: 75/37/15
굴림: 5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의식을 위해서는 이걸 읽어야 해요. (그의 입을 빌려 말하고는 있지만 꼭 그가 말하는 게 아닌 것만 같다)
 
시아록:이거? (양피지를 손그로 가리켰다가 초점이 흐릿한 당신을 보고 잠깐 인상을 썼다.) 슈테른, 괜찮은 거지?
 
슈테른:(묻는 말에도 인형처럼 침묵하고 있다가, 당신이 이름을 부르자마자 번뜩 정신을 차린다. 계속 눈을 뜨고 있었으나, 꼭 졸다가 깬 사람 같은 몸짓이다)
네? 아, ... 이제 괜찮아요. 뭐라고 적혀 있어요?
 
시아록:이제 살펴보려고.. (당신의 눈빛이 돌아온 걸 보고 양피지를 본다.)
 
글은 없고 그림밖에 없는 양피지입니다만,
 
슈테른이 방금 전 깨달았는지 허둥대며 페이지를 넘깁니다.
 
시아록:단검만 그려져 있네.. (네가 넘기는 걸 보고, 아... 얕은 탄성과 함께 쳐다본다.)
 
그러자 물이 벗겨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본래 있던 그림이 사라지고 다음 장이 떠오릅니다.

핸드아웃: 상자 아래 양피지

 

빈 진주에 피를 채워 그 힘을 두 손에 쥘 수 있다.
오직 선택된 제물만이 단검을 다룰 수 있을 따름이니 단검을 제물에게 주어라.
그리고 그릇을 깨트려라. 신의 그릇께서는 기쁘게 단검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분은 온전한 신앙을 품은 존재.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완벽히 이해하실 테니 틀림없이 그 허물을 벗는 데에 망설임 없으시리라.

단, 숨결이 완전히 섞이어 신으로서 다시 탄생하기 전까지는 신의 그릇이 살아 있어야 하며 그의 피 또한 가죽 아래에서 온전히 보존되어야 한다. 그러나 걱정 말아라. 성수의 숨결이 깃든 그릇은 이미 신에 가까운 자로서, 상처가 나면 당연히 스스로 수복하게 될 테니 염려 말고 그저 곁에서 기쁘게 찬양하라. 융해가 끝난 그분이 터져 나오기를 믿음으로 기다리면서.

우리의 대계가 실패할 때를 대비하여 남기니, 본능에 따라 모든 것을 행하라. 그곳에 진정한 탄생이 기다릴지어다.


 
이건……
 
단검에 관한 이야기이군요.
 
부가적으로는 제물로 바치는 과정도 적혀 있어요.
 
직관적으로 인지가 가능한 것은...
 
자꾸 스스로를 찌르고 싶다거나,
 
몸을 던지고 싶었던 암시와 속삭임은 여기에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본능에 따라 모든 것을 행하라니.
 
이 불쾌한 본능이 속삭이는 행위라면 뭐든 반대로 해야 한다는 것쯤은 압니다.
 
시아록:내가 날, 찌르라는 거네. (본능은 무슨, 기분 나쁘다는 듯 진저리를 치고는 여즉 손에 쥐고 있는 단검을 확인했다.)
 
슈테른:...이래서 시아록이, 자꾸 스스로를 해치려고 한 걸까요?
피를 마셔서 힘을 흡수하는 단검이라니, 오싹하네요...
 
시아록:그러게, 징그럽게..
 
사람의 심장 위치에 놓여 있던 단검은
 
당신이 집어들자마자 묘한 광채를 내며 빛나기 시작합니다.
 
그도 옆에서 조심스럽게 쥐어 보지만, 역시 당신이 아니면 반응이 없네요.
 
이질적일 정도로 녹이라고는 하나도 슬지 않아서,
 
스치기만 해도 피부를 찢을 듯이 날카롭군요.
 
손잡이 중앙에 박혀 있는……
 
반투명한 속이 빈 진주처럼 보이는 보석이 유독 시선을 빨아들입니다.
 
진주를 바라보면 반짝,
 
형언하기 어려운 오묘한 빛이 이드르르 스미며 당신을 비춥니다.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빈 것이,
 
가득 찬 당신과 눈을 마주칩니다.
 
성수가 부드럽게 당신의 마지막 할 일을 일깨워 줍니다.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를 치우기 위해, 시아록, 저항 판정.
 
시아록:
저항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2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가까스로 손을 통제에서 놓치지 않는 데 성공하지만,
 
이제는 당신의 목소리로, 누군가 속삭입니다.
 
죽어서, 제물이 되어야 한다고.
 
모든 기적을 다 내어 드리면 성수가 힘을 되찾을 테니,
 
과연 기쁜 일이 아니냐고.
 
슈테른:시아록, 떨고 있어요. 괜찮으세요? 아까 저처럼, 뭔가 떠오르는 거라도 있으신 거에요? (혹시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까, 단검을 잡는 손을 단단하게 쥔다.)
힘드시면, 제가 갖고 있거나 상자 째로 가져가요.
 
시아록:으음.. 아니... (한참을 입을 다물고 있다가) 제물이 되라고, 또.. 시끄럽게 하길래.. (결국 우물거리며 천천히 뱉어냈다.)
 
그렇게 말하고 있으면,
 
어떤 기운이 물결을 따라 미풍처럼 당신의 볼을 어루만지고 갑니다.
 
단검을 손으로 잡아 놓든 떼어 놓든 이것은 당신을 떠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기운이 소용돌이처럼 몰아쳐 모이는 것은...
 
제단의 뒤편.
 
당신이 '무언가' 있다고 감지할 수 있는 곳입니다.
 
몇 걸음 걸어가면 균열이 보입니다.
 
지금은 닫혀있지만, 한번 부서졌던 것을 수복한 모양인지
 
거미줄처럼 산개한 옅은 선이 주변에 남아 있습니다.
 
무언가 가득 차 있다가 비게 된 것처럼, 텅 빈 심연이 안쪽에 있군요.
 
우리는 비로소 이해합니다.
 
이 균열이라고.
 
잘못된 범람으로 세상을 집어삼킨 검은 바다의 원류.
 
우연히 이 심해와 이어져 숭배의 대상이 된, 검은 성수가 있던 장소.
 
검은 바다의 압박이 당신의 숨통을 누르며 가까워져옵니다.
 
우리는 이제 도시의 최심부까지 도달했습니다.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신의 그릇과 제물이 아닌 두 사람으로서 있으려면.
 
정보를 취합하고, 또 생각해야 해요.
 
시아록:(검은 바다가 제게 주는 압박감 속에서 천천히 생각이 가속했다. 저 균열을 없애야 할까? 그걸 어떻게 없애는데? 막을 수나 있어 빈 진주에 피를 채우면 힘을 쥘 수 있다지 않았나? 근데 그게 진짜인가? 진짜라고 치면 이 조그만 진주쯤은 얼마간의 피만으로 채울 수 있지 않나? 근데 만약 제 피 전부를 쏟아야만 채워지는 거면 어떡할 건데? 슈슈랑 살아가길 원하는 거지, 딱히 죽고 싶진 않은데. 줄줄이 이어지는 생각들 사이로 여전히 뚜렷한 답은 없다. 그야 당연하지. 이런 세상에서 무슨 현답을 구한단 말인가. 늘 최악과 차악만이 남은 세상일 뿐인데.)
 
하늘:(*쓰고보니 뫠 이렇게 또 문장이 길게..;;;)
 
시아록:슈슈, 저기 "성수"라는 게 흘러나온 균열 같은 거... 보여? 저걸, 제대로 막아야 할까.. 아니면.. 부서야 할까..? 아니면... (어떡해야 할까? 한숨처럼 마지막 문장은 작았다.)
 
슈테른:저 균열 속에 원래는 성수가 있었고 지금은 비어 있으니까, 어쩌면...
(순간 머리를 부여잡지만, 곧 말을 이어간다) 저 안으로 성수를 되돌려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시아록:응, 그럴수도.. 원래 비어있으면 차려고 하니까.. (정말 비어있는지도 알 수 없지만, 굳이 최악을 읊을 필요는 없다.)
 
슈테른:시작과 끝은 같다는 말도 있으니까,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다고 해도... (머리가 울리는지 두 손으로 꽉 조인다) 아직 괜찮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은 걸 시도해보고 싶어요.
 
지금 검은 물은 예기치 못하게 '범람'한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저 균열을 부수어 통로를 낸다면
 
지구의 모든 생명력을 집어삼켜 그 위로 넘실거리는 검은 성수가 자연스레 안으로 빠지지 않을까요?
 
욕조에 차오른 검은 물이 배수구로 빠지듯.
 
……저 균열을 어떻게 열었다고 했었죠?
 
시아록:균열, 어떻게 열었었지. (더듬더듬 지금까지의 기억을 되짚는다.)
 
벽화에서, 제물의 피로 적신 단검으로 균열을 찌르자 틈이 생기고 검은 물이 넘쳤었죠.
 
시아록:(처음 도착했던 도시에서 보았던 종에 새겨진 글자가 떠올랐다. 제물의 피로 적신 단검. 단검도, 제물인 저도 있다. 충분하겠네, 작게 중얼거리다가 단검을 당신에게 보이게 슬쩍 흔들었다.) 이거 내 피로, 적셔서 균열을 찍으면, 열리지 않을까?
 
슈테른:(이마를 짚은 채, 온전하지 못한 몸으로도 최대한 집중해서 듣고 있다 흠칫한다) 시, 시아록의 피라니...!
하지만 단검을 사용하려면, 반드시 피를 채워야 한다고 했죠. ...그걸로 당신이 죽는 건 아닌 거죠?
당신은 제물이 아니고, 저도 신의 그릇이 아니... 윽!
 
그런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자마자 그가 힘없이 무너집니다.
 
반으로 접혀, 정체불명의 두통을 호소합니다.
 
신이 되는 일에서 멀어질수록 그도 점점 억눌리는 듯 합니다.
 
시아록:이 조그만게 피를 채운다고, 얼마나 피를-. 슈슈? 슈테른? (말을 잇다 말고 무너져내린 당신을 놀라 붙잡았다.)
 
하지만 당신이 이름을 불러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네요.
 
시아록: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생각해 보면, 왜 그는 신의 그릇일까요.
 
또 제물이 아닌 평범한 인간임에도 왜 계속해서 신이 조종할 수 있던 걸까요?
 
조개 속 글자에 '힘을 되찾은 성수는 신의 그릇을 직접 택한다'는 말도 있었으니,
 
어쩌면 당신이 피를 흘리는 순간부터 옆에 함께 있는 그를 인지하고
 
신이 직접 그를 그릇으로 지정한 걸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일종의 경고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을 해치면 그도 함께 잘못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못을 박듯이 그가 입을 엽니다.
 
슈테른:...아까부터 '신을 돌려보낸다'는 생각만 하면 머리가 너무 아파요. 깨질 것 같아요...
(호소하기보단 그저 상태를 알리는 게 목적이었는지, 그 뒤의 고통은 입술을 깨물며 삼킨다.) 완전히 균열을 부수기라도 하면, 전, 으윽 어떻게 되는 걸까요...
 
시아록:괜찮아? 지금은 그런 생각하지마. (당신을 붙들고 달래 듯 등을 쓰다듬다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신은 신이고, 넌 너니까.. 문제가 있다는 점은.. 이상하지 않아?
 
그러나 예리해진 감각으로 그의 주변을 감싸는 기운을 헤아리다 보면, 당신은 깨닫습니다.
 
신이 원래 있던 별로 돌아가는 시점에, 그도 함께 빨려 들어가 균열 너머에 갇힐 것이라고,
 
맹렬하게 몰아치는 기운과 해류가, 말하고 있습니다.
 
시아록:
SAN Roll
기준치: 17/8/3
굴림: 76
판정결과: 실패
 
저 균열을 열면 검은 바다는 사라질 것입니다.
 
결국 인간은 살아갈 것이므로 돌아온 세상에서 다시 일어서겠죠.
 
하지만 그는, 홀로 균열의 너머에 갇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다른 선택지는 또 어떻고요.
 
저 단검으로 당신이 스스로를 찌르면 그는 신의 계단을 오르게 될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슈슈는 자신을 잃어버리겠죠.
 
그를 잃은 당신도 마찬가지일지 모르고요.
 
결국 제자리입니다.
 
신을 돌려보내느니 뭐니, 거창한 걸 바란 적은 없는데,
 
우리는 그저 살고 싶었을 뿐인데.
 
그러나 이제 어떤 선택지에도 인간으로 남을 길이 없습니다.
 
……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모아 온 정보들은 전부 무슨 소용일까요.
 
당신은 손에 쥐고 있던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양피지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얻어낸 것들을.
 
그러고 있으면, 시아록, 저항 판정.
 
시아록:
저항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54
판정결과: 보통 성공
 
모든 자료에서 공통적으로 느꼈던 위화감이 다시금 일깨워집니다.
 
이 모든 문서에는, '저항'이라는 선택지 자체가 없었잖아요.
 
모든 괴물이라면 응당 기쁘게 몸을 바칠 거라고 전제하고 있죠.
 
하지만 당신은 다르잖아요.
 
지금까지도 계속 성수에게, 이 바다의 흐름에게 저항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창조하고, 슈슈가 유지한 저항심을.
 
이 의지를 담아, 다시 한 번만 모든 걸 되짚어 봅시다.
 
시아록: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68
판정결과: 실패
 
만약 신의 그릇을 포기한다면요?
 
그런 문장이 있었지요.
 
……생각하기 괴로운 가설이긴 합니다만,
 
피가 가죽 아래에서 온전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신의 숨결인지 뭔지가 피에 섞이지 못하게, 바깥으로 완전히 빼내 버린다면?
 
이것이 정말 답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신을 포기하기 전에 과다출혈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고요.
 
게다가, 이대로라면 당신이 그를 직접 찔러 죽음으로 몰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선택이 아닌 각오입니다.
 
이걸 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으니 말이에요.
 
모든 것이 불확실하지만,
 
삶이란 해일에 떠밀리다 불확실을 향해 몸을 던지는 일의 연속이니,
 
충분히 마음을 다잡고, 결심이 되었다면 단검을 손에 쥡시다.
 
시아록:(결국 최악보다는 차악이 낫다는 생각으로 단검이 미끄러지지 않게 손잡이를 꽉 쥐었다.)
 
슈테른:(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숙이고 있다, 당신이 움직이면 그제야 고개를 든다. 곧 찔릴 사람치고 반응은 그렇게 크지 않다) ...시아록, 괜찮겠어요?
당신이 절 찌르기 괴롭다면... 저도 같이 할게요. (숨을 한 번 크게 삼킨다) 괜찮아요, 저는 아픈 건 익숙하니까.
 
시아록:아픈 게, 익숙하다는 건 달갑진, 않네. (짧게 숨을 내뱉고는) 괜찮아. 내가 조심히, 할게. ... 팔이면.. 되나..?
 
슈테른:어디든 좋으니까, 잘릴 정도로 깊게 해요. (곧 피로 물들 한쪽 팔을 무심코 어루만진다)
정말 괜찮아요. 시아록이 절 죽게 둘 리가 없잖아요. 여태까지 어떤 순간에도 다른 인간이나 괴물 때문에 크게 다친 적은 있어도, 당신이 절 죽기 전까지 몰아붙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많은 생각에 잠겨 흐릿했던 얼굴에, 웃음이 떠오른다)
 
시아록:잘릴 정도까진.. (작게 중얼거리다가 이내 깊게 심호흡을 했다.) 응, 그래.. 그, 이제 할게? (당신의 팔을 단단히 붙잡고, 최대한 뼈가 상하지 않도록, 아플 수밖에 없음에도 당신이 최대한 아프지 않길 바라며 숨을 참고 팔에 단도를 빠르게 찔러넣었다.)
 
아니ㅁㅊ 바본가 죄송합니다 (GM):BGM: https://youtu.be/AxvgFb-Giuw?si=vLdDN9hRMg_8ve75
 
 
구분선해파리
 
 
우리는 검날의 끝을, 균열이 아닌 그에게 먼저 겨누기로 합니다.
 
신의 포석이 되는 일에 기뻐하지 않는,
 
슈테른이라는 그릇을 깨트려야 하니.
 
이 검은 바닷속에서도 암흑을 끌어모은 듯 새까만 단검이 그의 피부에 닿습니다.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를 진주가 탐스럽게 빨아들이고,
 
조금씩 붉게 채워지다 보면, 멀리에서 종소리가 울립니다.
 
아니, 바로 앞인가요?
 
그러면 그의 눈동자에 색이 사라지며
 
그 자리에는 별처럼 무수한 빛을 띤 광채가 몰아칩니다.
 
이 곳에는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데도,
 
그는 꼭 눈이 부신 것처럼 눈을 감습니다.
 
이 위대한 순간 그의 몸속에서 무언가 뚫고 나올 것처럼 피부가 일렁거리고,
 
보드라운 실크로 만들어진 듯한 나비 떼가 그의 몸속에서 춤을 추며 날갯짓을 시작합니다.
 
번데기를 지나, 곧 피부를 뚫고 날아오를 듯이.
 
탄생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신에 다가서려는 듯한 그를 보며, 시아록, 이성 판정.
 
시아록:
SAN Roll
기준치: 16/8/3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아니ㅁㅊ 바본가 죄송합니다 (GM):아이고 저런
 
하늘:(*대실패?????????)
 
(*이미 광기 상태이므로 일시적/장기적 광기 판정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종소리가 들려오면,
 
벌어진 틈을 비집고 몰아치던 기운이 그의 안으로 들어가려 합니다.
 
이대로 둔다면, 피 속에 신의 숨결이 섞이고
 
그는 신성을 얻음과 동시에 자신을 잃어가겠죠.
 
그의 안에서 움트는 신화를 억누르기 위해,
 
다시 한 번 피를 흘립시다.
 
시아록:
저항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72
판정결과: 실패
 
그의 안에 갇힌 거대한 은하가 터져나올 것처럼 일렁거립니다.
 
곧 새로운 신이 강림합니다.
 
이 위대한 일을 어떻게 거부하겠습니까!
 
성결한 신의 그릇의 상처가 점점 아물어갈 무렵.
 
슈테른:
정신
기준치: 75/37/15
굴림: 45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가 겨우 남은 한쪽 팔을 듭니다.
 
그리고 칼끝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 무식하게 찔러넣습니다.
 
튕겨나오는 비명에 물속으로 퍼지는 피가 섞입니다.
 
지반이 세차게 진동하고,
 
귓가에는 원념의 피맺힌 비명과 저주가 들려옵니다.
 
그 사이에서도 뇌리에 꽂히는 목소리는……
 
세 번째 종소리가 지축을 뒤흔드는 동시에 당신은 이해합니다.
 
이런 깊이의 상처조차 수복될 거에요.
 
엉망으로 갈기갈기 찢긴 팔의 손 위로,
 
아주 새카만 검은 혼돈이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우리에게 속삭임이 들립니다.
 
온전한 것을 갖기 위한 성수의 발악.
 
그러니 우리도 발악해야 합니다.
 
겨우 아물기 시작한 상처를, 다시금 피의 출구로 삼읍시다.
 
시아록:
저항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56
판정결과: 실패
 
어느새 찬송가가 끊겨 있습니다.
 
당신의 이성을 어지럽히는 저주도 속삭임도 뚝 멎습니다.
 
성수와 이 도시는, 우리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감히 필멸하는 미물이 이 영광된 일을 걷어차리라곤 생각도 못 한 거겠죠.
 
하물며 제물인 당신이 신의 그릇을 해칠 거라고는.
 
검을 고쳐잡으려는 찰나.
 
와르릉 울리는 벼락이 당신의 정수리를 관통합니다.
 
온몸이 충격으로 불살라지는 사이, 슈테른은 본능적으로 손을 환부에 가져가려 합니다.
 
당신이 고통스럽듯이, 그도 고통을 감내하고 있으니까요.
 
슈테른:
정신
기준치: 75/37/15
굴림: 72
판정결과: 보통 성공
 
신의 그릇은 온전해지다가도, 곧 손을 급하게 떼 버립니다.
 
그는 신의 그릇이잖아요, 이 기쁜 일을 어째서 막는 거죠?
 
그를 저지하세요. 새로운 탄생을 축복하고 숭배하세요.
 
당신은 그를 응당 섬겨야 하는 제물이잖아요.
 
……잠깐, 제물?
 
아니죠, 당신의 이름은……
 
슈테른:시...아록.
 
그가 누군가를 부릅니다.
 
그에게서 나온 피는 이제 진주가 모두 흡수했는데도,
 
어쩐지 그의 얼굴이 흐릿하게 가려집니다.
 
아니, 처음부터 당신의 시야가 잠기고 있는 걸지도요.
 
슈테른:손 좀... 잡아주세요. 부탁...이에요.
(자기 의지를 벗어나려는 손을, 당신에게 내민다. 잡고 있으면 당신이 막아줄 거라고 믿는 눈치다)
 
시아록:(까끌한 입안을 혀로 더듬으며 당신이 내민 손을 꽉 붙잡았다.)
 
그가 당신을 부른다는 걸, 흐릿하게나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아직은 자신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도, 당신도.
 
피가 한창 쏟아집니다. 우리는 죽음에 가까워짐으로서 삶을 향해 갑니다.
 
그러나 네 번째 종소리가 울리면,
 
밑 빠진 독에도 기적을 채울 수 있다는듯 어마어마한 범람이 밀려듭니다.
 
성수의 외침과 기운이 여남은 피에라도 스며들 듯 급하게 쇄도합니다.
 
그는 고통에 잠겨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합니다.
 
마치 죽은 것처럼 눈을 감고 겨우 호흡을 이어나가는 그를 보면
 
정말로 곧 죽을 지도 모르겠다는 착각이 듭니다.
 
불안으로 온몸이 떨리고, 의지가 물에 잠긴 듯 일그러집니다.
 
그래도... 시아록, 저항 판정.
 
시아록:
저항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98
판정결과: 실패
 
당신을 위해 피흘리는 그를 보고 있으면, 뒤늦게 깨닫습니다.
 
그는 신을 위해 몸바쳐 희생하는 신의 그릇이 아니라,
 
당신을 위해 희생하는, 당신의 소중한 사람입니다.
 
단검을 고쳐잡고, 슈테른의 다친 한 쪽 팔을 꼭 붙잡습니다.
 
그러고 있으면 당신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가 신의 그릇이 아니라면... 당신은 누구였고 무엇이었던가요?
 
슈테른:... 시아록......
 
혀끝에서 단말마를 밀어내듯이, 그가 탄식하는 것처럼 말합니다.
 
강림할 신에 대한 경애, 새로운 지식과 힘에 대한 유혹.
 
눈부시게 빛나는 영광을 시야에서 치워내며, 그의 두 눈이 당신을 담습니다.
 
슈테른:시아록!
 
그래요, 당신은.
 
시아록:
저항 Roll
기준치: 55/27/11
굴림: 66
판정결과: 실패
 
그를 도와야 하는 제물… 아니, 아닙니다.
 
당신은 한 번도 다른 것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그의 상처는 조금씩 아뭅니다.
 
이대로면 곧 닫혀 버릴 것 같아요.
 
그러면 조금의 피와 기적이라도 끌어다 써, 지금까지 해온 일이 모두 허사가 될 지도 모르죠.
 
무엇을 위해 그를 찔렀는지는, 이제는 기억나지 않지만 말입니다.
 
슈테른이 덜덜 떨리고 고통에 절로 말아쥐는 손을 단검에 가져다 댑니다.
 
그리고 당신과 함께 쥐어, 자신의 다른 팔을 겨눕니다.
 
그가 원하는 것이라면 들어주고 싶습니다.
 
그게 설령 밑바닥에 깔린 본능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해도.
 
신성과 성수는 더 이상 당신을 잡아먹지 못하는 거에요.
 
슈테른이 흘린 피가, 효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도 잡아먹히지 않도록,
 
시아록:
저항 Roll
기준치: 58/29/11
굴림: 84
판정결과: 실패
 
모든 통제력을 잃은 성수가, 위기감을 담아 비명을 지릅니다.
 
귀가 먹먹해져,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도시 속 죽은 것들이 자신의 악의를 뱉어 냅니다.
 
최후의 발악처럼 느껴지는 이 저주에, 기어코 혼돈이 그의 손조차 벗어나 알아서 상처로 기어들어 가려고 합니다.
 
슈테른:
정신
기준치: 75/37/15
굴림: 1
판정결과: 대성공
 
하지만 죽어가는 게 어디 성수 뿐인가요?
 
그가, 순간 당신의 괴력조차 압도하고 있는 힘껏 자신을 찌릅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하려는 듯, 상처를 손톱으로 있는 힘껏 긁기까지 합니다.
 
죽기 전 발악이라도 하는 모습이네요.
 
슈테른:... (안색이 완전히 검어진 얼굴로 몸부림친다) 이제, 흑, 싫어요, 변해가는 당신 앞에서 아무것도 못 하는 건.
당신은, 나 때문에 변해 주었는데... 본능도 버리고 이성을 되찾아 줬는데.
저는, 윽, 늘 무력하기만 해서... 저도, 변하고 싶어요...
신의, 아악, 그릇이 아니라... (머리가 떨구어진다. 목소리가 점차 꺼진다)
 
갈라진 상처를 비집고 뜨거운 피가 쏟아지자 뒤늦게 당신은 이해합니다.
 
당신은 제물이 아닙니다.
 
당신은 긴 시간을 거쳐 드디어 온전한 당신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무의식을 좀먹던 목소리는 모두 꺼졌으므로, 이제 어떤 저항도 의미가 없습니다.
 
방금 전까지 둘의 생명력과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던 이곳은
 
이제 죽은 시체와 살점과 파편으로 가득해졌습니다.
 
무엇을 위해 이런 일을 했죠?
 
당신의 목적은 무엇이었죠?
 
당신은, 누구였죠?
 
시아록: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32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가 신에게 끌려가지 않게 상처로 일깨워 주는 게 당신의 역할이었죠.
 
당신은 제물이 아니라 그와 함께 있기로 한 시아록이니까요.
 
많은 피가 빠져나간 몸은 조금의 움직임에도 벌벌 떨립니다.
 
죽음과 안식의 문턱 앞에 선 모양입니다.
 
어느 기울어진 건물에 있던 날의 우리도, 이런 모습이었죠.
 
조금만 더 힘내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와 함께 균열을 향해 가요.
 
신을 돌려보내기 위해서.
 
우리가 계속 온전한 우리로 있으려면.
 
시아록:(무릎 꿇고 앉아 아직도 쥐고 있는 당신의 손을 한 번 더 꾹 눌러잡고, 반대편 손으로 단검을 치켜올렸다. 여전히 혼미한 정신이기는 하나 이를 악물고서 '저'를 기억해냈다. 몇 번이나 같은 상처를 헤집는 감각은 끔찍해서 손끝이 떨렸지만, 다시금 아무는 상처를 벌려냈다.)
 
상처는 전부 벌려졌습니다.
 
신의 그릇은 망가져 못 쓰게 되었으니, 이제는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신을 추방할 차례입니다.
 
의식에서 진주에 피를 전부 채운 뒤에,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잖아요.
 
시아록:(슈슈를 손끝으로 더듬거려 확인하고서, 몇 번을 되씹었는지 너덜한 아랫입술을 다시금 깨물며 여전히 흐린 시야로 거의 기다시피 균열을 향했다. 피가 그득한 단검이 미끄러지지 않게 손이 벌벌 떨릴 정도로 남은 힘을 죄다 짜내 쥐고서 균열을 찍어내렸다.)
 
 
구분선해파리
 
 
사명을 포기한 우리에게 해저는 더 이상 안온하지 않습니다.
 
검은 바다의 무게에 짓눌릴 것만 같아, 차마 헤엄칠 수 없군요.
 
고작 두어 걸음 거리일 뿐인데 발은 땅에 뿌리내린 듯 움직이질 않고,
 
물리적인 압박감이 당신의 의지를 막기 위해 발악합니다.
 
당신이 꼭 같이 찔린 사람처럼 기어가고 있으면,
 
곧 당신의 옷자락이 당겨집니다.
 
슈테른:시, 아록... (입안이 다 헤졌는지 피가 조금씩 스민다)
같, 같이...
 
그가 말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지만, 무슨 뜻인지 당신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어지럽고 컴컴한 물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손을 잡아야겠죠.
 
그 온기에 기대어 자신을 찾아갈 수 있도록.
 
시아록:(괜찮냐고 되묻지도 않고서 당신을 끌어당겼다.) 그래, 같이..
 
섭리를 거스르고 신을 죽여 쫓아내는 것은
 
혼자서는 불가능한, 힘든 일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해냈어요.
 
지금도 손을 맞잡은 채이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결국 힘겨운 발걸음을 옮겨 냅니다.
 
균열이 가깝군요.
 
만년빙 같았던 단검은 과부하라도 온 듯이 뜨겁고,
 
득 붉은 진주에는 실금이 잔뜩 그여 있습니다.
 
성수도 그만큼이나 엉망인지, 이제 저주의 말도 제대로 뱉지 못합니다.
 
그와 상태가 비슷해서, 꼭 슈테른의 그림자를 보는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이 이상 그와 함께하게 두지 않을 거에요.
 
휘몰아치는 소음은 아까보다 확연히 힘이 약합니다.
 
그렇다면 들어야 할 목소리는 하나뿐이지요.
 
우리는 이제 서로의 이름을 잊지 않습니다.
 
성수가 제아무리 우리를 갈라놓고, 한없이 높은 하늘과 한없이 광막한 심해저에 각각 처박으려 해도.
 
끝내 서로를 붙드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시아록:슈테른. (네 이름은 늘 단단하게 부를 수 있다.)
 
슈테른:시아, 록... (불에 댄 듯한 고통에 식은땀이 마구 흐르고 목소리가 위태로운 정신과 함께 꺼졌다 켜지지만, 그 안에 담긴 애정만은 영원하다)
(입안에 모이는 피를 몇 번 뱉어내고) 준비, 됐, 어요...?
 
시아록:(당신의 입가에 묻은 피를 소매로 훑어내곤 고개를 끄덕였다.)
 
부서져 가는 단검이 떠는 것을 느낍니다.
 
자, 이만 범람한 검은 것을 되돌려 주세요.
 
――――쨍!!
 
손이 벌벌 떨리도록 힘을 짜내어 단검을 균열에 꽂아 넣으면
 
균열에 난 금이 쩌적, 쩌적, 갈라지다가 와르르 무너져,
 
텅 빈 해구가 드러납니다.
 
그와 동시에 둑이 터진 듯 무서운 속도로 검은 바다가 빨려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역천한 피와 살이 수천 수억 개의 먼지로 녹아내리고
 
뭉쳐지며 섞이어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립니다.
 
단검의 진주도 완전히 박살 났군요.
 
모든 지독한 저주가 결국 가라앉고 있으니
 
어쩌면 이것이 진짜 침몰이겠습니다.
 
쏟아져 내리는 검은 물.
 
균열 속으로 반짝이며 침몰하는 혜성―신―.
 
우리는 어떤 별을 침몰시키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당신은 볼 수 있습니다.
 
어둡게 빛나던 괴물의 비늘이 하나둘씩 떨어져 가라앉고,
 
물빛 지느러미와 물갈퀴가 녹아 물거품이 되는 광경을.
 
저주가 끝났으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포기했던 삶을 되찾으세요.
 
검은 물은 자신의 별로, 혼돈으로 돌아갈 것이고
 
우리의 세상은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그런데, 해구의 소용돌이가 점점 크게 느껴집니다.
 
힘껏 헤엄칠 때입니다.
 
아가미가 사라지기 전에.
 
물결따라 흐려지는 아득한 세상이 아니라,
 
햇빛과 바람이 가득한 선명한 세상으로.
 
시아록:(당신의 손을 붙잡고, 수면을 향해 헤엄친다. 밤보다 더 어두웠던 곳에서 점점 밝아지는 곳으로 향하는 이게, 희망 아닐까.)
 
침몰하는 것은 아름답지만,
 
우리는 물살을 역행합니다.
 
오로지 살기 위해서.
 
가라앉는 별이 아닌, 떠오르는 태양이 되기 위해.
 
힘찬 발장구로 하늘을 날아 빨려 들어가는 죽은 도시를 벗어나고,
 
심해를 한참 헤엄쳐 올라가면,
 
우리가 살아가던 도시의 뿌리가 보입니다.
 
빌딩의 근조와 무너져 잠긴 세상이.
 
수위는 시시각각 낮아져 빛을 받아 일렁이는 수면이 가깝게 보이고,
 
아가미마저 녹아 없어지면 드디어 숨이 벅차오릅니다.
 
그리고 지금. 수면 위로 솟아오르는 출렁임과 함께 보이는 것은……
 
ds
 
보랏빛으로 물든 새벽 하늘.
 
여명을 기다리는 어린 잔별이 하늘 가득히 떠있습니다.
 
이 얕은 어둠은 더 이상 검은 바다의 뱃속이 아닙니다.
 
폐부를 가득 채우는 시원한 공기에 가슴팍은 크게 부풀었다 꺼지기를 반복하고,
 
뭍으로 튀어나온 물고기처럼 맥이 펄떡대는, 진짜 삶입니다.
 
슈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뱉어내는 것은 더 이상 고통에 찬 신음이 아닙니다.
 
급하지 않은 숨을 천천히 뱉어내면, 그 몸에 지독하게 새겨진 상처도 검은 물과 함께 지워졌는지
 
뱉어내던 피를 몇 방울 떨군 것이 마지막으로, 흉터만 남긴 채 아물어 갑니다.
 
보세요. 우리는 악착같이 살아남았습니다.
 
이처럼 변해서 또 새로운 해를 보고 있어요.
 
물기가 완전히 잦아든 철골 위에,
 
화단처럼 꽃이 잔뜩 피었습니다.
 
시멘트 바닥의 사이사이에서 여리고 푸른 줄기가 숨을 텄습니다.
 
이제 막 펄떡대는 미약한 숨이지만,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작은 화단이 이끄는 길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인간들이 만든, 또 다른 '등대'가 보입니다.
 
전 등대보다 크고, 제대로 만들어진 보금자리에요.
 
구호용 간이 침대 위에 눕혀져 있던 몸에서 비늘이 떨어져나가고,
 
껍질에서 나온 듯한 사람이 어리둥절하게 주변을 바라보다 눈물을 터트립니다.
 
멸망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맥동하는 삶들은 다시금 바뀐 세상에서 뿌리를 잡을 것입니다.
 
백신이 필요 없게 된 이 세상에는,
 
부정적인 요소가 전부 빠져나간 판도라의 상자처럼, 희망만이 남았으니.
 
후회와 기억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결국 인류는 삶을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을 믿어요.
 
...그렇다면, 세상은 돌아왔지만 당신은 어떻죠?
 
시아록:
SAN Roll
기준치: 11/5/2
굴림: 27
판정결과: 실패
 
당신의 남은 이성과 정신은,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괴물의 몸은 돌아왔지만, 변해버린 몸과 맞지 않는 정신이 비명을 지릅니다.
 
판단력이 흐려져, 눈 앞의 것들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괴물의 자아를 되돌리는 백신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죠.
 
하지만, 괜찮습니다.
 
슈테른:시아록. (비늘이 떨어지는 걸 보느라 잠시 떼었던 손을 다시금 붙잡는다)
(예전으로 돌아온 손발을 바라본다) 이제 물에서 저보다 빨리 헤엄칠 수 없겠네요.
힘도 전보다는 덜 세질 거고, 감각도 더는 곤두서지 않겠지만...
그래도 괜찮겠죠. 여긴 약한 사람도 살아갈 수 있는 인간들의 세상이니까.
 
그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당신도 인간이 되어도 상관없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눈을 감고 있으면 단단한 몸을 대가로 잃어버렸던 지식과,
 
기본적인 개념이나 도덕 같은 것들이 돌아오기 시작합니다.
 
검은 해일부터 오늘까지, 너무 고생했지요.
 
우리는 이제 숨을 쉽니다.
 
꺼지지 않을 성화를 품고, 땅 위를 걷습니다.
 
 
END A. 침몰역행
 
KPC, 탐사자 생환
 
당신의 무너졌던 정신은, 서서히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이제 두 사람이 된 둘은, 앞으로도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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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정말 괜찮나? 싶을 만큼 제 욕망을 가득 발산한 탁이었는데...... 재밌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코즈믹 호러 감성이 낭낭한 것도 좋았는데, 결국 인간의 희망이 어떤 어둠도 이긴다는 뉘앙스의 대목이 진짜 아름다워서 눈물을 흘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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