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록:(맞잡은 손을 꿈지럭 움직여 조금 더 힘주어 잡았다가 이내 힘을 풀었다. 얽힌 손은 여전했지만. 칙칙한 물거품이 오르는 걸 눈으로 쫓다가 한숨처럼 물거품을 뽀그르르 뱉어냈다. 너를 포기한 건 아니지만, 다 내려놓고 가라앉은 탓일까, 마음은 어쩐지 그저 평온했다.)
시아록:(애매한 기억과 제 과거와 현재처럼, 미래 또한 그럴 것이라는 듯 새카맣기만 한 바닷물들을 밀어젖히며 도시까지 나아가는 것에 별다른 기대감은 담겨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저, 여전히 네 손을 잡고 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여길 뿐. 그런 감정으로 도달한 도시를 찬찬히 눈으로 훑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머리는 깨질 듯이 고통스럽고, 뜻 모를 충동이 당신을 지배합니다.
스스로를 깨트리고 싶다는 강렬한 본능이 당신을 잠식합니다.
육신을 부수어, 저 가득 찬 가시에 꿰이기 위해 태어났잖아요!
이것이 당신의 사명인데 저항할 수 있을까요?
핸드아웃: 저항 기능치 안내
『침몰혜성』은 특수한 상황(도시의 원념이 들려올 때)에 이에 따른 광기 RP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항 기능치]를 통하여 탐사자가 광기에 얼마나 저항할 수 있는지 판정하고, 이에 따른 결괏값이 가이드 라인과 비슷한 형태로 안내됩니다. 다만 이 안내는 다소 강압적으로 탐사자의 정신과 신체를 조종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으므로, 해당 사항이 어려우시다면 꼭 수호자와 이야기를 나누어 주세요. 평상시에는 보통의 탐사자이지만, 알 수 없는 목소리가 걸거나, 광기가 발동하면 저항 판정을 해야 하고 그 성공 여부에 따라 광기에 순응하는 정도가 달라진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해당 안내는 참고로 두고 자신의 RP를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해서 모든 안내에 순응하기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외, 저항 기능치 상황에 따라서 평소에도 어느 정도의 광기 롤플레잉을 섞으시는 것도 무관합니다. 이 부분 역시 수호자님과 상의하여 주세요.
시아록:(가까이서 보니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운 종탑을 고개를 꺾어 올려다보다 물결에 흩날리는 천자락으로 자연스레 시선이 옮겨갔다.)
슈슈..., 저긴, 거 같지..?
슈테른:맞는 것 같아요... 여기에만 시선이 가게끔 지어놓은 걸로 봐서는, 비슷하게 중요하거나 신성한 장소인가 봐요.
...여기 사는 괴물들은 신을 숭배했을까요? (조심히 앞장서며 천을 걷고 들어간다)
시아록:신을..? (숭배했을까, 알 수 없고 와닿지도 않는 얘기다. 처음의 절망은 신을 찾게 할지 몰라도, 너무 오랜 절망은 먼저 나서서 신을 버리게 할지니. 아마 자신에겐 앞으로의 모든 삶에 신은 없을 터다. 유일하게 남은 것은 너이므로. 그 모든 걸 꾹꾹 눌러담아 어깨만 으쓱하고는 너를 따랐따)
슈테른:...이게 무슨 내용이죠? 읽으면서 왠지 저도 꺼림찍해지는 기분이에요. (부축한 채로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어, 멀리서 까치발을 들고 살핀다. 조금은, 더 가까워질 수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눈치다.)
시아록:으응.. 기분 나빠. (작게 중얼거리고는 한숨을 뱉어냈다.)
슈테른:그러니까, 이 도시에 이런 일들이 있었다는 거에요? 오면서 저련 균열은 본 적이 없는데.
제물은 왜 바치는 거고, 검은 물은...... 검은 물?
(주위를 살핀다. 예전의 푸른빛은 잃고 온통 죽음의 색으로 물든 바다를.) ...설마 저기서 흘러나온 게 바다를 물들인 걸까요?
시아록:없어진 거면, 좋은데... (벽화에서 시선을 떼어내고 천천히 중얼거렸다. 균열이 있다한들 어떻게 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게, 아닐까... (다른 색으로는 바뀔 일 절대 없다는 듯 여전히 새까만 물을 보았다.)
슈테른:그렇게 많은 분량이 흘러나온 것도 아닌데 전 세계의 바다를 전부 물들였다고요?! (수면을 향해 고개를 쳐든다. 모든 희망이 흑색으로 물든 세상을 바라보듯) 인간이 흘린 오염 물질마저 시간이 흐른 뒤에는 가라앉기라도 하는 게 보통인데...
(바쁘게 말하면서, 이번엔 층계를 향해 걸어간다. 어지럽게 걷다가도 시아록을 받치고 있었단 걸 깨달으면 바로 자세를 다잡는다)
층계는 '걸어서 올라가는' 용도가 아님을 증명하듯 아주 낮고 폭이 좁습니다.
차라리 장식용 구조물에 가까워 보입니다.
생생한 조각이 마모되지도 않고 새겨져 있습니다.
첨단과학의 한계마저 뛰어넘는 정교한 조각에 이곳에서의 일만 아니었다면 감탄하며 바라봤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아록:계단, 올라가 볼 거야? (얌전히 너를 따르다가 무슨 용도인지 알 수 없는 층계를 눈으로만 올려다보았다.)
슈테른:신기하긴 하지만, 지금은 어서 조사하고 여길 나가고 싶어요.
(단상 위의 종을 살피면서, 시아록 쪽을 돌아본다. 아까처럼 다가가도 괜찮겠냐고 묻는 듯)
시아록:으응... (눈만 데굴 굴리다가 군침만 꼴깍 삼킨 채로 결국 작게 웅얼거리고 말았다. 듣기 싫어진 제 목소리까지 결국 길게 뱉어버릴만큼 정말로 싫었던 듯 그르렁거리는 목소리에 미안함이 담뿍 담겼다.) 진짜.. 미안한데, ... 종은 혼자, 봐도 돼? 나 여기, 얌전히 앉아있을게...
슈테른:(진정시키려는 듯 두 손을 잡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온기에는 떨림을 멎게 하는 효과도 있었을까) 빨리 다녀올게요.
새삼 당신이 얼마나 빠른지, 그리고 인간이 물속에서 살기란 얼마나 힘든지 알 것도 같습니다.
아무튼 그는 가까워지자마자 다다다 할 말을 쏘아냅니다.
슈테른:시아록, 종에 다른 특별한 건 없는데, 위에 글씨가 새겨져 있었어요.
시아록:글자?
슈테른:아마, 종을 당기는 심해인들이 새긴 것 같아요. (숨을 고르고, 외워 온 내용을 잊어버릴새라 바로 기억을 더듬는다.) 내용은...
핸드아웃: 종에 새겨진 글자
검은 성수 속에 이미 신의 숨결이 녹아 있는데 강림을 원했던가. 균열 속 그분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문을 열고 길을 만들어 모셔야 했음을. 그분이 힘을 되찾도록 제물을 바쳐라. 가죽을 찢고 그 피로 검을 적셔 발동시켜라. 그리고 균열을 열어라. 성수가 범람할 테다. 자, 종을 쳐라. 열두 번의 울림으로 성수의 숨결이 모일 길과 지표를 만들어라. 그리하면 성수의 숨결이 신의 그릇에 모여 진정한 탄생에 오르실 테니. 신이시여, 이 소리를 듣고 오소서, 오소서.
역시 평범한 종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종은 검은 바다―성수가 범람했을 때 그 속의 신의 숨결을 끌어모으는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면 신전에서도, 종소리를 듣자마자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감각과 함께 몸이 통제를 벗어났었죠.
그의 주변으로 물살이 몰아치고, 한여름의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것처럼 시야를 일그러트립니다.
당신의 눈동자에 그의 이상한 모습이 비치면, 슈테른도 그제야 자신을 살핍니다.
슈테른:시, 시아록, 이거 뭔가......
말은 더 길게 이어지지 못합니다.
일순 그의 몸이 회오리에 휘말려 높게 솟아오릅니다.
그의 몸 안에서, 무형의 무언가가 가시처럼 우글대며
몸을 뚫고 튀어나오려고 합니다.
도시가 깨어나며 곳곳의 해초와 산호들이 만개하듯이
그의 몸 안에서도 뭔가가 '깨어나려는' 듯한 모습입니다.
곧 그의 두 눈에 담겨있던 현실이 사라집니다.
그때의 당신과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는 듯 보입니다.
바다의 검은 뱃속이, 그를 어딘가로 이끌어 가려 합니다.
조난당한 사람처럼, 그는 속수무책으로 폭풍 같은 해류에 떠오릅니다.
어떻게 하나요?
시아록:(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했지만, 필사적으로 당신에게 헤엄쳐 다가가 자신의 곁으로 데려오려 한다.)
당신이 잡아채면, 갈 곳 잃은 발은 겨우 땅을 딛습니다.
얕은 파도처럼 들썩이던 피부가 진정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것뿐, 그가 정신을 차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보세요, 지금도.
시아록:슈슈, 괜찮아? (붙잡은 당신을 흔들며 저에게로 시선을 맞출 수 있게 유도한다.)
슈테른:... 올바른 제물을... 심해의, 주인...
(머리를 부여잡고 있다. 압도적인 무언가에 눌린 사람마냥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다)
자신의 언어조차 아닌 목소리로 무언가 지껄이던 그는,
당신이 이름을 불러주자, 움직임을 멈춥니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면, 겨우 빛이 돌아와 있습니다.
시아록:괜찮아? 응?
동공이 흔들리다가, 겨우 먼 곳이 아닌 눈앞의 당신을 향합니다.
슈테른:...시, 시아록... 너무, 너무 시끄러워요...
시아록도 이런... 기분이었어요?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꺼내지만, 대화는 통한다. 잠시 기대어 겨우 안정을 찾는다)
시아록:(당신을 붙들고 있는 채로 아까 전 자신의 상황을 떠올리듯 눈을 굴리다가 이내 당신의 등을 쓸어내린다.) ...이제 괜찮아..
그가 들었던 내용은, 갇혔던 심연은 당신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피를 해방시키라는 말, 당신이자 당신이 아닌 것에게 보내는 기도.
바다의 작은 환희 하나마저도, 한낱 인간에게 있어선 파도의 범람과 같을 겁니다.
하지만, 여태껏 당신에게만 간섭할 수 있었던 원념이 어째서 이렇게 강해진 걸까요?
파도를 가라앉힌 그는, 당신을 꽉 붙잡고 말합니다.
슈테른:...누군가 말했어요, 제물에게 명령을 내리라고. 우리의 새로운 신의 태초가 되라고... 그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누굴 보고 말하는 거에요? 저는, 저는 신이 아니잖아요, 당신도 제물 같은 게 아니고... (답해줄 이는 없는데도 누군가에게 묻듯이 말한다)
그런데 내용을 들어보면 당신이 들은 것과는 조금 다르네요.
예언가처럼 고상하게 점지하는 어투이나, 무언가 다른 얘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마치 그가 제물을 받을 이라는 것처럼 말하고 있잖아요.
시아록:(얌전히 당신의 말을 듣다가 달래듯 희미하게 웃었다.) 내가 들은 것도, 죄다 헛소리였어. 그거랑, 같은 거지.
문득 벽화에서 본, 제물을 받던 제단과... 검은 물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제단 위에 서 있던, 한 심해인의 모습도.
그는 두 손을 벌려, 검은 물을 안쪽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죠.
제물만 있어서는 신이 탄생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동쪽의 색채를 가진 것들은 여전히 무언가를 환영하는 것처럼, 물결을 따라 흔들립니다.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공간이면서, 우리가 봐왔던 환상적인 풍경을 애써 모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찾아든 광기는 동쪽이 깨어나면서부터 시작되었고요.
.......이것이 어떤 형태의 각성일지는 모르나, 슈테른은 그저 슈테른입니다.
슈테른:(안쪽에 고아 둔 숨을 천천히 내뱉고, 그 얼굴을 더 잘 보려는 것처럼 시선을 고정하며 천천히 뒤로 물러난다) 시아록, ...
시아록:응? (당신의 부름에 당연한 듯 답한다.)
슈테른:그, 덕분에 산 것 같아요. 순간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어서...
수압이... 갑자기 온몸으로 느껴지는 기분이 들고... 제가 누구인지도 떠오르지 않았거든요.
...이제 와서 지적하기엔 늦었지만, 저는 어떻게 숨을 쉬고 있는 걸까요. 여기가... 바다가 절 원하고 있어서 이런 편의까지 베푸는 걸까요?
시아록:그랬어? ..그런 건, 끔찍하지. (괴물의 외관으로 미소지으니 입꼬리가 비틀리는 게 전부겠지만, 여전히 당신을 어르고 달래듯 미소짓다가 이내 마지막 물음에 고개를 기울인다.)
....글쎄... (가르랑거리는 소리가 한숨처럼 나왔다.) 그치만 바다가 널, 배려하는 거면 좋겠어. (저 검은 물 탓인가도 잠시간 생각했지만, 굳이 쓸데없는 얘기로 널 불안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떠오른 생각을 다시 바닥에 가라앉혔다.)
슈테른:도시에서 떠돌 때에도, 가끔 파도가 더 높아져서 은신처에 쌓아둔 것들이 다 묻히기도 했잖아요. 그럴 때 어디로 돌아가야 좋을지 모르겠어서 겁이 날 때도 있었는데, 그때 당신을 발견하면 안심이 됐었거든요.
...이번에도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무언가 설명하려 하지만, 명확하지 않고 물에 파묻힌 듯한 내용이다. 잘 전달되지 않는 말 대신 체온으로 마음을 전하려는 것처럼 손을 맞댄다. 바위처럼 단단한 비늘을 쓸어내리고 사이사이에 낀 살들을 어루만진다) 꼭, 이 검고 흐린 세상에서 하나 놓인 이정표처럼요.
배려하는 거라고요... (무거운 표정으로 웃으며 한숨을 삼킨다.) 이대로 당신과 있을 수 있게 방법을 찾아야겠네요. (숨을 들이쉬고, 함께 다짐이 차오른 듯한 눈으로 어딘가를 돌아본다.)
(시선 끝에 걸리는 것은... 여전히 침묵에 잠겨 있는 서쪽. 도시의 나머지 반절이다.)
시아록:(네가 하고 싶은 모든 말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다른 말도 없이 천천히 눈만 꿈뻑였다. 당신의 모든 말을 귀기울여 듣다 이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같이 있을 수 있는 방법, 찾으러 갈까.
(당신의 얼굴을 새기듯 한 번 더 쳐다보았다가 이내 당신과 같은 시선으로 서쪽의 도시를 바라본다.)
슈테른:눅눅하고 녹슨 냄새가 어딜 가도 떠나지 않네요. 여기서 일어난 참살의 흔적을 보면 당연할 것 같지만.
시아록:그러게... (어디에 쓰인지 알 거 같은 물건들을 보다가 내려두었다.) 쓸 일이.. 있을까?
슈테른:...많이 답답하다면 수면 쪽으로 올라가요. 해류가 달라지는 층까지 올라가면 공기가 달라질 지도 몰라요. 그 몸이 감각에 예민해졌다면, 원래부터 민감하셨던 후각은 더 힘드실 거잖아요. (약하게 한숨을 뱉어낸다.)
시아록:아냐, 이정도는.. 괜찮아. (코만 한 번 찡긋거리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여기도 그렇지만, 물 위도 그렇게 좋진 않았다.)
슈테른:생물을 상대로 썼다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음. 인간은 신체적 한계가 있어서 도구를 썼다면, 이들은 이빨이 너무 강하고 날카로워서 도구를 쓰지 않았을까요? 손톱으로 시멘트 벽을 할퀼 만큼 강하지만, 그런 걸로 손질을 하려면 먹이가 너덜너덜해졌을 테니까... (긴장이 조금 풀렸는지 주절주절 내뱉는다.)
슈테른:민달팽이로 항아리를 밀봉한 것도 그렇고, 천장의 촉수도 그렇고, 이곳에서 신기한 건 잔뜩 보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발견이 유쾌하지 않다는 게 문제였지만.)
문양을 파내 새기고 안쪽에 유리 같은 걸 부어 채웠는지 질감이 다릅니다.
만져 보면, 자연스럽게 읽히는 일종의 글자임을 바로 알아챕니다.
……이전보다 ‘이 문자’를 받아들이는 시간이 확연히 빨라졌네요.
당신도 이 흑색의 바다에 물들어가고 있는 걸까요.
시아록:중요한 걸 새겨둔 거겠지..? ('글자'의 문양을 손끝으로 문질렀다.)
조개 상단에는 괴악한 솜씨로 새긴 그림도 그려져 있습니다.
무언가를 죽이거나, 합치고, 뒤트는 걸 그린 듯합니다.
매끄럽고 시린 감촉의 조개를 읽어보면.
핸드아웃: 첫 번째 조개의 글자
가라사대, 신성한 일에 휘말린 자, 종의 진화를 이뤄낸 자는 신의 올바른 제물이며, 신성한 일을 겪은 자, 종의 진화를 멈추어 역경을 이겨낸 자는 신이 될 그릇일지어다.
올바른 제물을 만들고자 한다면 제물이 될 수 있는 모든 종을 찾아 기적을 부여해라. 죽음 가운데 다시 살게 하며, 합치고 뒤섞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 진화와 기적을 꾀하라. 이것이 성공하면 그가 올바른 제물이니, 제물의 모든 혈액을 내어 성수를 품게 하라. 힘을 되찾은 성수께서 신의 그릇을 택하실 테니, 이 얼마나 기쁜가. 연약한 육신과 혈액을 모두 바쳐 만들어질 잉태요, 진정한 탄생의 첫걸음이어라. 그러니 진화를 이뤄낸 존재를 성전으로 보내어 피를 채워라.
시아록:(눈으로 읽어내린 글귀는 생각대로 기분 나쁜 문장 뿐이었다. 또, 신의 제물이니 그릇이니.. 그냥 둘 다 희생양이지. 당신에게 들리지 않게 홀로 궁시렁거리며 조개를 꽉 쥐었다.)
당신은, 우리는 이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성한 일, 종의 진화. 기적. 우리에게 한 번 닥쳐왔던 일이니까요.
하고많은 괴물과 인간 중에서 하필 우리가 골라진 이유가 있습니다.
슈테른과 당신은 ‘특별’했지요.
검은 바다의 숨결에 잡아먹혀 괴물이 되고도 인간의 이성을 되찾았으니까요.
'종의 진화'란 괴물로 변이하는 걸 말할 것이며,
그렇다면 역경을 이겨냈다는 것은 괴물로 변한 자의 이성을 깨운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신이 내린 역경을 극복한 자를 성인으로 추대하는 것은 괴물들도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육신과 혈액을 바친다'는 대목으로 봐서는, 성인이자 그릇의 종착점은 죽음이겠죠.
제물이며 신의 그릇이라니 누가 그런 걸 바랐나요?
우리는 그저 함께 있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로서 있기 위한 발버둥이, 지금 둘의 사이에 더 커다란 균열을 만들어내고 말았군요.
시아록:(무슨 문제가 있어 슈슈만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상관없지만, 굳이? 왜 나나 슈슈가 제놈들을 위해서 희생해야 한단 말인가. 남 좋은 일 하겠다고 괴물이 되고서도 이성이 남은 게 아니었다. 온전히 슈슈를위해서였지. 자신들에게 강요하는 희생에 들끓는 기분만 들었다.)
슈테른:...무슨 내용이에요? (옆에서 고개를 내밀어 살피다가, 곧 눈이 커진다.) ...어, 저... 문자가 읽어져요...
시아록:...그래? (당신을 힐끗 보고는 조개의 글자를 잠깐 손으로 덮었다.)
딱히 좋은 내용도, 아닌데.
슈테른:종에 붙은 글자도 매만져야만 겨우 알 수 있었는데, 아니 그보다. 어떻게 인간인 제가 괴물들의 문자를...
(충분히 머리가 복잡해 보이지만, 손을 부드럽게 치우고 내용을 확인하자 더 미동이 없어진다.)
올바른 제물이라니, 지금 이 심해에서, 피를 낼 수 있을 만큼 살아있는 것이라곤.......
(짙은 광기가 시아록을 둘러쌀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건 다른 문제인 모양인지, 잠시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이마를 두손으로 감싼다) ...다른, 다른 내용은 없어요? (말투가 빨라진다. 자신도 미쳐가고 있는 상황이니 더더욱 시간이 없다)
시아록:(계속 숨겨오긴 했지만, 여기까지 이야기가 적혀있으면 얘기해야 할 터다. 네가 충격은 받을 수 있으나, 서로 대화하고 대답을 내어놓을 수는 있다.)
내가 읽은 건, 여기까진데. 그리고, 내가 제물이래.
(평범한 일상 얘기라도 하듯한 말투는 이 얘기에 조금도 신경쓰지도 않을 것이며 따르지도 않을 거란 의미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슈테른:...알아요. (억눌린 목소리가 나온다) 지금까지 말하지 않은 건, 정말 괜찮아서에요? 계속 혼자 몰려오셨을 텐데, 저한테 조금이라도 말해 주셨으면 부담도 덜했을 텐데...
당신이 아무리 괜찮아도, 제가 막을 거에요. (단호하게 조개를 내려놓는 몸짓에서 인정하지 않을 거라는 마음이 느껴진다.)
시아록:응, 정말 괜찮은데.. (느릿하게 눈이 두어번 깜빡였다.)
나도 할 생각 없어.
슈테른:... 알았어요. (안도와 걱정이 섞인 한숨을 내뱉고, 다른 조개는 없는지 살펴보려 한다.)
기쁜 사명을 품은 존재. 준비된 그릇을 단검으로 부수어 길을 만들고 섭리의 균열을 열어라. 종소리로 숨결을 이끌어라. 그리하면 그릇 속에서 뒤섞여 이 세상에 온전히 탄생하실 것이다.
어떤 가죽도 과연 그분을 담을 수는 없다. 잠시라도 그분을 받아 낼 수 있다면, 그 뒤에 터져 나온 것은 성수가 아니오 그분 자체일지니 얼마나 기쁜가. 연약한 육신을 탈피하며 오르는 진정한 탄생이어라. 기적이 곧 그분이고, 그분이 곧 기적이매. 모든 창해가 그분을 따를지어다.
슈테른:(글자를 읽는 당신을 보며 조용히 말한다.)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요.
시아록:불안해? (글을 읽다말고 당신을 쳐다봤다.)
슈테른:이 바다는 지금까지 우리를 몇 번이고 이끌고 조종했잖아요. 만약 그게 계속되어서, 둘 중 한 명이 더는 버티지 못하게 되면...
그때는... 어떡해요?
시아록:같이만 있을 수 있다면, 난 괜찮을 거 같은데..
(바다니 인류니 진화니 생각해본 적 없다. 관심도 없다. 자신의 세상 중심에는 오롯이 너만 있어서. 결국 밀리고 밀려서 끄트머리에 선다고 하더라도 같이 있을 수만 있다면 정말로 상관없다.)
우리를 조종할 수 있을 거라 믿은 게 아니라, 처음부터 거절 따윈 염두에 두지 않은 듯합니다.
그러고 보면, 벽화에서도 온통 웃는 얼굴밖에 없었고요.
바다가 우리를 이끌어온 이유도, 이 사명을 이해하길 기다렸던 것이겠죠..
......바다가 가리키는 대로 가야 할까요?
시아록:슈슈, 우리.. 저 멀리 가버릴까? (모든 의사를 무시하고 머리채를 잡아끌어당긴다고 내가 그걸 들어줘야 할 이유가 있나? 알아서 하라지. 그렇게 신이 되고 싶으면 알아서 되라지. 제물도 그릇도 없어서 오롯하게 '신'이 될 수 없다면 그게 무슨 신이란 말인가. 독기 찬 눈이 신전을 노려보았다.)
슈테른:...당신이 있으면 어디든 괜찮아요. (부어오른 눈가로 애써 웃느라, 미소가 이상하게 일그러진다. 꼭 시아록이 그러하는 것처럼)
시아록:(아득하게 솟구친 분노에 손톱을 세워 몇 번이고 바닥을 긁어내리다가 이를 악물고 신전을 노려보았다. 몇 번이고 바다를 벗어나더라도 아마 저는 또 돌아오게 될 것이다. 저것들은 이미 제 존재를 알아버렸으니까. 이걸 무한히 반복한다면 괴물인 제가 먼저 부서지는 게 아니라 인간인 슈슈가 먼저 부서질 게 너무도 자명해서. 결국 입밖으로 물거품을 혀를 차듯 내뱉고는 일어서 신전으로 향했다.)
...의식을 위해서는 이걸 읽어야 해요. (그의 입을 빌려 말하고는 있지만 꼭 그가 말하는 게 아닌 것만 같다)
시아록:이거? (양피지를 손그로 가리켰다가 초점이 흐릿한 당신을 보고 잠깐 인상을 썼다.) 슈테른, 괜찮은 거지?
슈테른:(묻는 말에도 인형처럼 침묵하고 있다가, 당신이 이름을 부르자마자 번뜩 정신을 차린다. 계속 눈을 뜨고 있었으나, 꼭 졸다가 깬 사람 같은 몸짓이다)
네? 아, ... 이제 괜찮아요. 뭐라고 적혀 있어요?
시아록:이제 살펴보려고.. (당신의 눈빛이 돌아온 걸 보고 양피지를 본다.)
글은 없고 그림밖에 없는 양피지입니다만,
슈테른이 방금 전 깨달았는지 허둥대며 페이지를 넘깁니다.
시아록:단검만 그려져 있네.. (네가 넘기는 걸 보고, 아... 얕은 탄성과 함께 쳐다본다.)
그러자 물이 벗겨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본래 있던 그림이 사라지고 다음 장이 떠오릅니다.
핸드아웃: 상자 아래 양피지
빈 진주에 피를 채워 그 힘을 두 손에 쥘 수 있다. 오직 선택된 제물만이 단검을 다룰 수 있을 따름이니 단검을 제물에게 주어라. 그리고 그릇을 깨트려라. 신의 그릇께서는 기쁘게 단검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분은 온전한 신앙을 품은 존재.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완벽히 이해하실 테니 틀림없이 그 허물을 벗는 데에 망설임 없으시리라.
단, 숨결이 완전히 섞이어 신으로서 다시 탄생하기 전까지는 신의 그릇이 살아 있어야 하며 그의 피 또한 가죽 아래에서 온전히 보존되어야 한다. 그러나 걱정 말아라. 성수의 숨결이 깃든 그릇은 이미 신에 가까운 자로서, 상처가 나면 당연히 스스로 수복하게 될 테니 염려 말고 그저 곁에서 기쁘게 찬양하라. 융해가 끝난 그분이 터져 나오기를 믿음으로 기다리면서.
우리의 대계가 실패할 때를 대비하여 남기니, 본능에 따라 모든 것을 행하라. 그곳에 진정한 탄생이 기다릴지어다.
시아록:(검은 바다가 제게 주는 압박감 속에서 천천히 생각이 가속했다. 저 균열을 없애야 할까? 그걸 어떻게 없애는데? 막을 수나 있어 빈 진주에 피를 채우면 힘을 쥘 수 있다지 않았나? 근데 그게 진짜인가? 진짜라고 치면 이 조그만 진주쯤은 얼마간의 피만으로 채울 수 있지 않나? 근데 만약 제 피 전부를 쏟아야만 채워지는 거면 어떡할 건데? 슈슈랑 살아가길 원하는 거지, 딱히 죽고 싶진 않은데. 줄줄이 이어지는 생각들 사이로 여전히 뚜렷한 답은 없다. 그야 당연하지. 이런 세상에서 무슨 현답을 구한단 말인가. 늘 최악과 차악만이 남은 세상일 뿐인데.)
하늘:(*쓰고보니 뫠 이렇게 또 문장이 길게..;;;)
시아록:슈슈, 저기 "성수"라는 게 흘러나온 균열 같은 거... 보여? 저걸, 제대로 막아야 할까.. 아니면.. 부서야 할까..? 아니면... (어떡해야 할까? 한숨처럼 마지막 문장은 작았다.)
슈테른:저 균열 속에 원래는 성수가 있었고 지금은 비어 있으니까, 어쩌면...
(순간 머리를 부여잡지만, 곧 말을 이어간다) 저 안으로 성수를 되돌려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시아록:응, 그럴수도.. 원래 비어있으면 차려고 하니까.. (정말 비어있는지도 알 수 없지만, 굳이 최악을 읊을 필요는 없다.)
슈테른:시작과 끝은 같다는 말도 있으니까,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다고 해도... (머리가 울리는지 두 손으로 꽉 조인다) 아직 괜찮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은 걸 시도해보고 싶어요.
지금 검은 물은 예기치 못하게 '범람'한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저 균열을 부수어 통로를 낸다면
지구의 모든 생명력을 집어삼켜 그 위로 넘실거리는 검은 성수가 자연스레 안으로 빠지지 않을까요?
욕조에 차오른 검은 물이 배수구로 빠지듯.
……저 균열을 어떻게 열었다고 했었죠?
시아록:균열, 어떻게 열었었지. (더듬더듬 지금까지의 기억을 되짚는다.)
벽화에서, 제물의 피로 적신 단검으로 균열을 찌르자 틈이 생기고 검은 물이 넘쳤었죠.
시아록:(처음 도착했던 도시에서 보았던 종에 새겨진 글자가 떠올랐다. 제물의 피로 적신 단검. 단검도, 제물인 저도 있다. 충분하겠네, 작게 중얼거리다가 단검을 당신에게 보이게 슬쩍 흔들었다.) 이거 내 피로, 적셔서 균열을 찍으면, 열리지 않을까?
슈테른:(이마를 짚은 채, 온전하지 못한 몸으로도 최대한 집중해서 듣고 있다 흠칫한다) 시, 시아록의 피라니...!
하지만 단검을 사용하려면, 반드시 피를 채워야 한다고 했죠. ...그걸로 당신이 죽는 건 아닌 거죠?
당신은 제물이 아니고, 저도 신의 그릇이 아니... 윽!
그런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자마자 그가 힘없이 무너집니다.
반으로 접혀, 정체불명의 두통을 호소합니다.
신이 되는 일에서 멀어질수록 그도 점점 억눌리는 듯 합니다.
시아록:이 조그만게 피를 채운다고, 얼마나 피를-. 슈슈? 슈테른? (말을 잇다 말고 무너져내린 당신을 놀라 붙잡았다.)
시아록:(무릎 꿇고 앉아 아직도 쥐고 있는 당신의 손을 한 번 더 꾹 눌러잡고, 반대편 손으로 단검을 치켜올렸다. 여전히 혼미한 정신이기는 하나 이를 악물고서 '저'를 기억해냈다. 몇 번이나 같은 상처를 헤집는 감각은 끔찍해서 손끝이 떨렸지만, 다시금 아무는 상처를 벌려냈다.)
상처는 전부 벌려졌습니다.
신의 그릇은 망가져 못 쓰게 되었으니, 이제는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신을 추방할 차례입니다.
의식에서 진주에 피를 전부 채운 뒤에,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잖아요.
시아록:(슈슈를 손끝으로 더듬거려 확인하고서, 몇 번을 되씹었는지 너덜한 아랫입술을 다시금 깨물며 여전히 흐린 시야로 거의 기다시피 균열을 향했다. 피가 그득한 단검이 미끄러지지 않게 손이 벌벌 떨릴 정도로 남은 힘을 죄다 짜내 쥐고서 균열을 찍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