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색범람

[아록슈슈] 수몰도시

퍄퍙책미 2023. 2. 6. 06:28

KPC 프루헤 슈테른     PC 시아록

날짜 2023.01.28 ~ 2023.02.05

플레이타임 총 14시간

원문 시나리오 링크    https://ellipse-s-dot.postype.com/post/3686148

 

 

 

※아래 내용은 플레이로그입니다. 시나리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므로 열람에 주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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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잘 쉬어지지 않습니다.
 
무언가 애타는 부름이 들리는 것 같지만
 
먹먹한 귓가에는 물거품 소리만이 맴돌고,
 
올려다본 하늘은 그저 검게 일렁이고만 있습니다.
 
……아, 그렇네요. 가라앉고 있는 거였어요.
 
……이런 게 죽음일까요?
 
그러나, 잠겨 드는 정신 속 뻗어진 손이 당신을 끌어당기고,
 
차가운 바닥에 올라온 당신은 그제야,
 
일그러져 있는 시야 속에 더 일그러진 얼굴로 당신을 바라보는 슈테른을 마주합니다.
 
 
세카
 
수몰도시
 
w. 타원
 
 
구분선파도
 
 
파도 소리가 가라앉았던 정신을 일깨우듯 천천히 가까워집니다.
 
그럼 당신은, 눈꺼풀 아래로 드는 어렴풋한 빛에 눈을 뜹니다.
 
시아록:
건강
기준치: 65/32/13
굴림: 71
판정결과: 실패
 
관자놀이가 찡하고 좀 어지럽네요. 덩달아 머리도 지끈거립니다.
 
거뭇거뭇한 얼룩이 진 옷에 축축한 기운이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 기억은 아주 흐릿합니다.
 
문을 열었더니 괴물이 튀어나와서, 도망치다가…… 물에 빠졌던 것 같은.
 
여기서 발생했던 일은 맞는지, 전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무심코 몸을 일으키려 하면, 손이 무언가에 당겨집니다.
 
눈을 감은 채, 당신의 손을 꽉 붙잡은 채인 슈테른입니다.
 
……수몰도시에서 지낸 게 얼마인데 물에 빠져버리다니.
 
그가 얼마나 걱정했을까요.
 
아무튼 정신이 없네요. 무엇부터 하는 게 좋을까요?
 
주변을 살필 수도, 가방을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시아록:(축축하게 젖은 머리카락이 거슬러 쓸어넘기고는 걱정 중인 표정의 당신을 보고는 코를 찡그리며 슬쩍 웃었다. 죽을 뻔 했던 거 같은데도 글쎄, 걱정하고 있는 당신을 보자니 그래도 무언가 다 괜찮은 거 같았다.)
나 괜찮아, 슈슈.
(네 손등을 느긋하게 토닥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선을 돌리면, 깨어진 창문 너머로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하늘과 새카만 수평선이 보입니다.
 
사무실로 사용하던 장소인 듯, 부서진 책상과 유리 조각 따위가 널려 있습니다.
 
자세히 둘러보려면…… 우선 슈테른의 손을 놓고 움직여 봐야 할 거 같네요.
 
시아록:우리 주변 좀 둘러볼까?
(무릎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쪽으로 향했다. 옮기는 발걸음에 물자욱이 묻어났다.)
 
당신이 그의 손을 놓으려 하면, 몸이 힘없이 축 늘어집니다.
 
눈을 감고 있네요. 자고 있는 게 아닐까요?
 
깨워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슈테른이 당신을 여기까지 끌고 왔다면,
 
슈슈는 이미 이 곳을 알고 있겠단 생각은 드네요.
 
안전한 장소니까 당신을 여기에 두었겠죠.
 
시아록:(한두발짝 걷자마자 늘어진 당신에게 깜짝 놀라서는 당신의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숨결부터 확인하며 당신의 어깨를 두드리며 흔들었다.)
슈슈..? 슈슈?
 
그를 자세히 보면, 평범하게 자고 있는 건 아니네요.
 
얼굴은 팍 찡그려져 있고, 무언가를 연신 중얼거리고 있습니다.
 
들어보려면 듣기 판정.
 
시아록: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5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슈테른:괜찮아요, 괜찮아, 괜찮아요…….
 
누구를 향하는 건지도 모르는 말을 연신 중얼거리기만 합니다.
 
흔들어 봐도 눈을 뜨지 않는 걸 보면, 잠꼬대겠죠.
 
시선을 돌리면, 마찬가지로 검은 물이 든 낡은 옷의 끄트머리가 아직 미세하게 젖어 있고,
 
손목이며 목덜미에는 붕대가 많습니다.
 
멸망 이후 두 사람은 젖고 다치는 것이 일이었으니.
 
두꺼운 옷을 입고, 붕대를 감으며 힘냈을 것입니다.
 
깨우려고 해봐도 눈을 뜰 생각을 안 하는 걸 보면, 피곤한가 봅니다.
 
시아록:(누구에게 무얼 괜찮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만, 지친 너를 깨워야 할까 악몽이면 어쩔까. 젖은 채로 잠들어도 괜찮나. 제가 젖은 것엔 관심도 없으면서 당신의 젖은 머리칼을 넘기며 걱정했다. 가방에 담요가 있던가. 가방을 뒤졌다.)
 
사무실 구석으로 눈을 돌리니, 두 사람의 것일 배낭 두 개가 있습니다.
 
무엇이 누구 것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네요. 뭐, 구분짓는 게 의미가 있으려나 싶지만요.
 
각각 배낭1배낭2를 살필 수 있습니다.
 
시아록:(손을 뻗어 가까운 배낭1부터 열어젖혔다.)
 
여기저기 기워 둔 자국이 보이는 가방.
 
사람 못지 않개 낡고 지친 모양새입니다.
 
열어 보면 작은 통조림 한 캔과 군용 나이프,
 
탄창이 비어 있는 총, 붕대로 쓸 찢어진 옷가지,
 
진통제, 반짇고리가 들어 있습니다.
 
당신의 소지품이 없으니, 이건 슈슈의 것이네요.
 
...그런데, 아무리 제 것이 아니라지만 묘한 낯섬이 듭니다.
 
시아록: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8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총이 너무 가볍습니다. 분명 몇 발 들어있었던 것 같은데...
 
그새 다 쓴 걸까요?
 
시아록:(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기억나지 않는 머리의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한숨과 함께 가방을 챙겨넣고는 제 가방일 듯한 다른 가방을 열었다.)
 
튼튼하고 굵은 밧줄, 비닐에 잘 싸인 여분의 옷가지와
 
당신의 무기인 손도끼, 전에 선물받은 눈사람 키링과 거기 매달린 가게 열쇠,
 
그리고 사진이 들어 있습니다.
 
가장자리가 거뭇하게 물들고 있는 사진 속
 
슈테른과 당신이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얼마나 쓸어 봤으면 사진에 손자국이 남았네요.
 
그나저나 담요는...... 시아록, 행운 어려움 판정.
 
시아록:
기준치: 80/40/16
굴림: 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적당한 두께의 담요가 3장 있습니다.
 
시아록:아, 있다.
(다행이라는 듯 조금 펴진 얼굴로 후다닥 담요 한 장을 당신의 위를 덮었다. 실은 네가 옷도 갈아입었으면 좋겠지만.)
 
담요를 덮어주고 나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했습니다.
 
슬슬 주변을 둘러봐야겠죠.
 
시아록:(잠시 당신을 내려보다가 아까 전 눈에 들어왔던 책상으로 다가갔다. 엉망인 걸 보면 뭐가 있겠나 싶지만..)
 
걸어가면 빠직빠직, 유리 조각이 밟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납니다.
 
검게 물든 나무판자며 부서진 모니터가 보이네요.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81
판정결과: 보통 성공
 
서랍을 꼼꼼히 뒤져보니, 배터리 2개가 나옵니다.
 
포장된 새것이네요. 어딘가에 쓸 수 있을까요?
 
시아록:오...
(이런 세상에선 귀한 배터리가 두개나 나왔다. 조금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일단 챙겼다. 어디든 쓰겠지.)
(책상 주변을 눈대중으로 한 번 더 훑고는 창문으로 향했다.)
 
깨어진 창가 쪽으로 가서 바라보면 아래쪽이 까마득하게 잠겨 있습니다.
 
꽤 높은 빌딩인 것 같지만, 우리가 목적으로 삼던 등대는 이 방향에서는 보이지 않네요.
 
멀지 않은 아래에서 느리게 파도치는 검은 물에는 붉은 노을이 조금 스며들어 있고,
 
사람의 가죽이며 부서진 물건들이 둥둥 떠 있습니다.
 
특별한 건 없네요. 할 수 있는 건 밖으로 나가는 것 정도일까요.
 
시아록:(새까만 물을 바라보던 눈이 잠깐 침잠했지만, 주변에 다른 게 없다는 걸 확인만 하고 몸을 돌려 당신에게 다가가 곁에 앉았다.)
언제 일어나려나.
(재촉하지 않는 말투로 작게 중얼거리며 눈을 떴을 때처럼 당신의 손을 잡았다.)
 
깨우려면 깨울 수 있지만... 이 상태대로면 한동안은 자고 있겠네요.
 
시아록:(네가 자는 동안 배낭 안이나 정리할까. 가벼워진 당신의 총을 조금 걱정하고, 제 가방 속의 너와의 사진도 괜히 한 번 만지작거리다가 무릎을 세워 얼굴을 묻었다. 한 것도 없이 피곤했다. 실은 늘 그랬지만.)
 
마냥 잠들기는 위험하겠지만… 잠깐이라면, 아주 잠깐이라면 괜찮아요.
 
당신은 어느새 편안해진 슈슈의 표정에 전염된 듯 마음을 놓고 얼굴을 묻습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요. 문득 귓가에 부글거리는 소리가 다시 들립니다.
 
당신은 그것에 놀라지도 않고 가만히 있다가, 천천히 눈을 뜹니다.
 
주변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대신, 부글거림인 줄로만 알았던 목소리가.
 
슈테른:……시아록…?
 
고개를 들면, 위태로운 표정의 그가 보입니다.
 
시아록:잘 잤어? 몸은 좀 어때?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되물었다.)
 
슈테른:……네? 에? (부쩍 멍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잠시 당신의 얼굴을 매만진다.)
(그리고 눈이 커지며, 마치 잠수하는 사람처럼 무턱대고 당신의 품에 몸을 던진다.) …시, 시아록? (목소리도 마치 물에 잠긴 것처럼 무겁게 흘러나온다)
괘, 괜찮은 거에요…? 아니, (다급하게 숨을 내쉰다.)
제, 제 이름… 기억해요?
 
시아록:응? 슈슈?
(당신을 품에 받아들고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슈테른:…… (한동안 말없이, 아니 말을 잃고 쳐다보다가,) 하, 한 번만.
한 번만 더… 불러주세요.
 
시아록:슈슈?
(여전히 무슨 일인지 파악하지는 못 한 상태로 네가 부탁한 대로 입을 열었다.)
 
슈테른:하, 하아…… (숨도 쉬지 않고 말했는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고 몸에 힘을 푼다.) 당신이 어떻게 될까봐… 걱정했어요.
(커지려는 숨소리를 심호흡하며 정돈한다.) 구하러 가는 게 늦어서… 정말 걱정했는데…
 
시아록:내가?
 
슈테른:이제 괜찮으신… 거죠?
 
확인받고 싶은 것처럼, 양팔을 동앗줄처럼 잡고 있습니다.
 
당신이 물에 빠진 게 충격이었던 모양입니다.
 
시아록:괜찮긴 한데...
(무슨 일이었던 거지? 의아한 기색은 다분하지만, 그저 놀란 거겠지 하고 네 등을 토닥였다.)
 
슈테른:(손길에 따라 점점 안정을 찾는다. 이런 세상에서는 흘러넘치는 감정도 발목을 잡는 요소가 되므로,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는 게 보인다) 죄송해요. 그, 오래 잠들어 계셔서... 하루 정도일까요.
여긴 그나마 안전한 건물이에요. 문을 열고 나가면 방이 하나 더 있고... 계단은 막혀 있어서 조금만 쉬었다 곧장 옮겨가야 할 거에요.
등대도 곧이니까요.
다른 방은 아직 제대로 조사하지 못했으니 둘러봐도 되지만... (어쩐지 망설이는 기색이다)
 
시아록:내가 하루 잠들어 있었다고? (작게 중얼거리다가 큰 문제는 아니겠지, 그저 털어버리고 당신의 말을 얌전히 들었다.)
응, 그럼 같이 조사하고 옮길까.
 
슈테른:(작게 끄덕이고, 당신을 일으키려 한다. 맞잡으려 다가오는 손이 잠깐 움찔거렸지만, 아주 찰나였다.)
 
그래요, 오래 머무르는 건 위험할 것 같습니다. 식량이 전부 떨어졌거든요.
 
자세히 둘러본 건 없지만 어째선지 그런 확신이 들어요.
 
아무튼 덜렁덜렁 떨어지기 직전의 문을 제치고 나가면,
 
꿉꿉한 비린내가 나는 복도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쪽의 창문은 유독 크게 깨져있고,
 
심지어 그 앞의 난간은 박살 나 있기까지 합니다.
 
창문 아래에서부터, 무언가를 옮긴 흔적처럼 조금 번진 물자국과 발자국이
 
복도를 지나 방금 나온 방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그것이 슈슈의 것임을 당신은 본능적으로 알아챕니다.
 
맞은편에는 문이 하나 더 있습니다. 안쪽은 고요하네요.
 
시아록:나 옮기느라 고생했겠다. 더 조심할게.
(무슨 사고였는지도 모르겠지만. 네가 걱정할 법한 마지막 말은 홀로 삼키고, 당신의 손을 이끌어 맞은편 문에 다가섰다.)
안에 무언가 있지는 않겠지?
(작게 중얼거리며 문 안쪽에 신경을 세워 귀 기울였다.)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무언가 있는 기색은 없습니다.
 
하긴 안전한 곳이라고 했으니까요.
 
시아록:(아무런 기척도 없는 것에 다행이라고 여기며 문을 열기 위해 손을 얹었다.)
 
다만 문을 열면 비린내와는 다른 불길한 냄새가 끼칩니다.
 
그러니까... 피 냄새 같은.
 
부서지고 쓸려 나간 책상이나 유리병이 형체도 없이 널부러져 있고,
 
거의 모든 물건이 그야말로 엉망으로 부서지거나 이가 빠져 있습니다.
 
방망이 자국 같은 인위적인 흠집도 보입니다.
 
싸움의 흔적일까요?
 
하지만 그중 단언컨대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처참하게 흩뿌려진 핏자국입니다.
 
시아록:윽.. 엉망이네.
(저도 모르게 팔부터 올라가 코와 입가를 가리고는 당신을 쳐다봤다.)
슈슈, 괜찮아?
 
슈테른:(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표정을 알 수 없다.) 괜찮아요.
전 바닥을 둘러볼 테니까... 시아록도 궁금하신 게 있다면 살펴보고 계세요.
 
시아록:으음.. 그럴게. (네 기색을 슬쩍 살피다가) 근데 여기에 뭔가 있을까..
 
크게 싸움의 흔적핏자국을 조사할 수 있습니다.
 
시아록:(일단 시선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핏자국부터 조사한다.)
 
괴물의 것인지 사람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보면 어째선지 기분이 아주 나빠지고 불길합니다.
 
절로 얼굴이 구겨질 정도입니다.
 
남겨진 지는 꽤 시간이 지난 듯 단단히 굳어 있습니다.
 
시아록:(오래되었다 말고는.. 딱히 알 수 있는 건 없네. 누가 하나는 죽었을까? 단단하게 굳은 피처럼 딱딱해진 얼굴로 다음으로 싸움의 흔적을 눈으로 쫓았다. 죄다 깨벼저린 유리병과 책상을.)
 
특별할 것 없는 파편들만 있습니다.
 
부서진 모양새에서 격정이 묻어나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한 쪽 벽에 발톱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괴물의 것임이 분명합니다.
 
아, 지긋지긋한 괴물.
 
그 익숙한 형태를 더듬다 보면,
 
당신은 문득 괴물에 대한 것을 상기합니다.
 
분명 익히 들었었는데, 정신이 없어서 여태껏 잊고 있었던.

핸드아웃: 괴물

 

세상이 검은 바다에 잠긴 뒤 생겨나기 시작한 이 괴물은, 원래는 인간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또 다른 인간을 공격하고 잡아먹으며, 괴물에게 ‘물리면’ 그 사람도 괴물이 됩니다. 감염 속도는 빠르면 30분, 느려도 2시간 남짓입니다. 감염은 단계가 있다는 게 기정사실이지만, 아직 연구가 부족해 미지의 영역입니다.
 
창백해진 피부 위에는 시퍼런 핏줄이 흉하게 올라 있으나 피는 인간과 동일한 붉은색이며, 온몸까지는 아니지만 딱딱한 비늘이 다닥다닥 돋아 있습니다.
 
흰자위가 파랗고, 무기인 손톱은 시멘트 벽에 상처를 낼 정도로 단단합니다. 힘이 세며 발이 물갈퀴처럼 변해 있습니다. 개체에 따라 아가미나 지느러미를 달고 있기도 합니다. 기괴한 울음소리를 냅니다만 괴물끼리 소통이 가능한지는 알 수 없습니다.
큰 소리를 내면 몰려들기는 합니다. 검은 바다에서 잠을 자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주 깊은 곳에 머물기 때문에 바다에서 마주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시아록:(질린 표정으로 할퀴어진 자국을 보다가 이내 마른 손으로 쓸어내리고는 당신을 불렀다.)
슈슈, 찾은 거 있어? 없으면 빨리 이 방에서 나갈까? 계속 있어봤자 좋은 기분도 안 들 거 같아.
 
슈테른:...이걸 찾았어요. (총알 하나를 주워든다.)
쓸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우선 제가 갖고 있을게요.
볼일도 끝났으면 이만 나갈까요? 계속 있으면... 피 냄새 때문에 어지러울 테니까.
 
시아록:잘 찾았네. 응, 얼른 나가자.
(당신의 손을 잡고 재촉하듯 흔들며 문 밖으로 나왔다.)
 
다시 복도를 지납니다, 창문 너머로 잠긴 빌딩의 벽을 타고 파도가 혀를 날름거리는 게 보입니다.
 
그걸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처음 파도가 세상을 집어삼켰던 날이 떠오릅니다.
 
아직도 생생히 떠오릅니다. 그 날은 날씨가 유독 맑았거든요.
 
우리는 그날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죠.
 
기념일도, 휴일도 아닌 평범한 일상.
 
하지만 슈슈와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그 날은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안 좋은 의미로도 특별한 날이었죠. 검은 파도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 시작했거든요.
 
두 사람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당신이 슈슈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던지…
 
언제는 바닥이 온통 젖어서 슈슈의 몸을 당신이 이불처럼 덮고 바들바들 떨면서 잠든 적도 있었습니다.
 
다시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면, 어느새 노을이 다 져 갑니다.
 
해가 검은 파도를 핏빛으로 물들이며 집어삼켜집니다.
 
계단이 부서져있다니 이 층에서 바로 뛰어들어야겠지만...
 
다행인지 바다까지의 높이는 2~3층 남짓입니다.
 
뛰어든다고 아주 위험하진 않겠죠.
 
그렇게 가방을 챙겨들고 채비를 마치려는데, 뒤에서 슈테른이 부릅니다.
 
슈테른:저, 시아록.
 
시아록:응?
 
슈테른:오늘은... 괴물을 만나도 최대한 전투는 피하는 게 어때요?
혹시 싸우게 되더라도, 발 정도만 다치게 해 두고...
제가, 그, 몸이 조금 안 좋아서...
 
시아록:그럴까? 그래.
(이런 상황에서 몸을 사리는 게 나쁜 것도 아닌걸. 오늘은 아마 저도 그리 좋은 컨디션은 아닐 테다. 고개를 끄덕이며 네 말에 동의를 표했다.)
 
조심하고 피해 다니는 것 정도야 늘 해왔던 일이니 어렵지도 않을 겁니다.
 
창문 앞의 유리 파편을 발로 쓸어 치우고,
 
당신은 행선지를 정하기로 합니다.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54
판정결과: 보통 성공
 
멀지 않은 저편에 '등대', 그러니까 환히 빛나는 빌딩이 보입니다.
 
그리고 마침 가는 방향에 기울어지긴 했어도 상태가 깨끗한 빌딩 하나가 보이네요.
 
당신의 생각보다 등대가 훨씬 가깝습니다.
 
이 여정의 끝도 정말 머지 않은 걸까요.
 
그럼 자, 점찍은 빌딩도 있으니 이제 헤엄쳐야겠죠.
 
몸도 풀고, 비닐로 배낭을 단단히 감싸 두고.
 
첨벙, 오늘도 검은 바다의 뱃속으로 뛰어듭니다.
 
시아록:
수영
기준치: 75/37/15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물에 부딪히는 충격에 삼켰던 숨이 죄 빠져나옵니다.
 
잠수부터 실패하다니... 역시 당신도 컨디션이 멀쩡하지 않은가 봐요.
 
그래도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되고, 숨은 다시 들어마시면 됩니다.
 
시아록:매번 하던 걸..
(한심함에 혼자서 짜증을 삼켰다.)
수영
기준치: 75/37/15
굴림: 3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언제 실수했냐는 듯, 당신은 익숙하게 물살을 가르며 나아갑니다.
 
얼굴로 물살이 거칠게 밀려들고, 보글거리는 물거품 소리가 납니다.
 
서서히 눈을 뜨면 희미하게 투과되어 번지는 붉은 노을이 시야를 어물어물하게나마 밝혀 줍니다.
 
검은 물 속으로 잠수하고서야 빌딩 숲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우리가 살아가던 장소.
 
암흑의 묘지 속에 문명이 잠들어 소화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이끼가 잔뜩 돋아난 비행기의 날개가 이쪽으로 날아옵니다.
 
조심해요! 시아록, 수영 판정.
 
시아록:
수영
기준치: 75/37/15
굴림: 42
판정결과: 보통 성공
 
하마터면 부딪히거나 해초가 발에 감길 뻔했습니다.
 
파도에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이며 뼈대, 심지어는 사람의 짐가방이 물에 밀려 날아오는 일은 흔합니다.
 
무거워서 금방 가라앉아야 정상일 것들을 움직이게 할 만큼 이 파도는 강합니다.
 
하지만 모든 게 가라앉고 몰락해도 절망할 수는 없습니다. 그야...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1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검고 깊은 바닷속에서도, 바다 반딧불이가 옅게 빛나니까요.
 
마치 검은 하늘에 빛나는 등대의 불빛처럼, 그것들은 물살에 하느작거릴지언정 쓸려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힘을 내야죠.
 
그나저나 오늘따라 물속이 꿉꿉하네요. 아니, 미적지근할 수준입니다.
 
평상시보다 물 온도가 올라가 있는 느낌이군요. 바다가 변하려나?
 
그러나 길게 생각할 시간도 없이, 손이 목적지인 빌딩에 턱 닿습니다.
 
 
구분선파도
 
1일째 밤
 
 
기울어진 빌딩의 중간층으로 들어옵니다.
 
온몸에 익숙하고 거친 통증이 내달립니다. 시아록, 체력 1 차감.
 
기울어졌는데도 물에 잠기거나 파도에 밀려 무너지지 않다니,
 
제법 견고하게 지어진 빌딩이었던 모양입니다.
 
게다가 경사도 생각보단 덜하네요. 좋은 소식입니다.
 
아무튼 창문을 타고 들어오자마자 휑하니 넓은 공간이 우리를 맞이합니다.
 
금 간 벽과 그 벽에 가득한 이끼만 보일 뿐 물건이랄 게 전혀 없네요.
 
아마 파도가 전부 쓸어 갔겠죠.
 
아니면 인간이 쓸어 갔거나.
 
한쪽 벽면이 뜯어져 그대로 보이는 바깥은 이제 완연한 암흑입니다.
 
수평선의 경계가 보이지 않아, 하늘이 어딘지. 또 바다는 어딘지.
 
그저 익숙한 검은 풍경입니다.
 
시아록:(습관처럼 주변부터 확인하면서 손은 착실하게 제 옷자락의 물을 짜내기 바빴다.)
여기 꽤 튼튼하니 괜찮겠다. 슈슈는 괜찮아?
 
슈테른:(하늘과 바다가 구분되지 않아 꼭 검은 파도로 가득찬 듯한 풍경을 보다가도, 금방 고개를 돌리고 일어선다. 마찬가지로 가방의 비닐을 벗겨내는 등 뒷정리를 한다.) 네, 생각보다 안전해 보여요.
꽤 강한 파도를 맞은 것 같은데 큰 손상은 없네요... 아니면 사람이 머물고 있어서, 어느 정도 치워 뒀거나.
아, 저 쪽에 계단이 있어요. 가파르긴 하지만...
 
시아록:그렇네.. 올라가볼까?
(당신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가리키는 쪽을 보면, 계단까지는 멀쩡하지 않은지 거의 산 못지않게 가파른 모습입니다.
 
게다가 군데군데 뒤틀려 있고요. 무사히 올라가려면 오르기 또는 근력 판정을 필요로 합니다.
 
시아록:
근력
기준치: 75/37/15
굴림: 1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밧줄도 꺼내 보고, 어떻게든 낑낑거린 끝에 무사히 올라옵니다.
 
그러면 가장 먼저 사람의 손...이 발밑에 걸립니다.
 
심지어 저 쪽에는 사람의 형제가 넘어져 있......
 
...아니, 놀랄 게 없네요. 이건 마네킹입니다.
 
복도를 따라 상태가 제각각인 마네킹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사람보다 마네킹이 더 드문 세상인데, 어떻게 이런 걸 구했을까요?
 
확실한 건 이 건물엔 사람이 머무를 확률이 높다는 겁니다.
 
시아록:으엑.. 마네킹이 너무 많으니까 징그럽네..
 
다만 마네킹 말고는 거의 볼 게 없네요.
 
다음 층으로 올라갈까요?
 
슈테른:...하지만 사람이 다친 걸 보는 것보단 나을 거에요.
 
시아록:그건 그렇지만..
좀 더 위로 올라가볼까?
 
슈테른:
관찰력
기준치: 55/27/11
굴림: 4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시아록을 놀래킨 마네킹의 일부를 원위치에 돌려놓으려다 흠칫한다.)
이거, 입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옷을 하나 훔친다.)
 
시아록:와, 옷이 있네. (너에게 조르르 다가간다.)
 
슈테른:몇 벌은 가져가도 될 거에요. 어차피 괴물은 옷을 입은 것과 입지 않은 걸 구분하지 못하니까... (묘하게 확신하는 말투다.)
(집어든 옷은 전부 시아록에게 건넨다. 본인 걸 챙길 생각은 없어 보인다)
 
시아록:(네가 건네는 옷들을 보다가 그냥 챙겨넣었다. 어차피 너와 나누어 입어도 될 것이고, 짐이 무거운 쪽이라면 자신이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일 뿐이다.)
 
여벌옷을 챙겨들고 다시 위층으로 향하면,
 
이번 층은 또 분위기가 다릅니다.
 
전투의 흔적도 없고, 무너진 사물의 파편도 없습니다.
 
별다른 것은 없어 보이지만 바로 그게 맹점입니다.
 
이 층, 굉장히 깨끗합니다. 먼지도 쌓여 있지 않아요.
 
복도에는 문이 둘 있습니다. 열려 있는 방과 잠겨 있는 방.
 
시아록:누가 있나?
(너무 깨끗한 장소를 보자니 께름칙해지며 경계심만 올라갔다.)
 
슈테른:...최근까지 사람이 머무른 거겠죠. (누가 듣기라도 할까 작게 속삭인다.)
음, 열려 있는 쪽부터 들어가보는 게 좋겠죠? 혹시 누가 올 수도 있으니까...
 
시아록:응, 그러자.
(괜한 기분나쁨에 몸서리치며 당신과 문이 열린 방으로 조심히 걸어간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면 주기적으로 청소한 듯 먼지 없는 방이 보입니다.
 
가구가 있었던 흔적과 바닥의 흠집을 보아하니
 
원래부터 빈 방은 아니었겠죠.
 
시아록:여기도 깨끗하네..
 
비어 있는 약통, 완전히 찢어진 책, 다 먹은 통조림 같은 게 구석에 마구잡이로 쌓여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슬슬 식량을 찾아야 할 텐데요.
 
뒤져 보려면 행운 판정합니다.
 
시아록:
기준치: 80/40/16
굴림: 7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사이에서, 통조림과 빵을 하나씩 찾아냅니다. (통조림: HP+1, 빵: HP +3)
 
슈테른:(옆에서 간만에 웃는다.) 식량 걱정은 덜었네요.
 
시아록:그러게. 다행이네. (너를 따라 웃었다.)
 
슈테른:통조림이 아닌 먹을 건 정말 오랜만에 봐요. 빵은 유통기한이 기니까 안심할 수도 있고...
...그런데 빵이 있다는 건, 정말로... (옆 방을 조심스럽게 살핀다.)
 
시아록:음.. 조금 그렇지..?
 
슈테른:(어느새 자연스럽게 인간을 괴물만큼 경계하고 있는 스스로를 자각하지만, 긴장을 푸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음, 하지만 슬슬 묵을 곳을 찾아야 하는데.
다른 건물로 옮기기엔 날이 너무 늦었어요. 그렇다고 복도에서 잘 수도 없고...
 
시아록:그렇지.. 여길 잠글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닫힌 문 안도 확인해보긴 할까..?
 
슈테른:(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벌써부터 숨을 죽인다.)
 
그렇게 옆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때였습니다.
 
철퍽, 철퍽. 발소리가 들립니다.
 
불쾌한 숨소리가 두 사람의 곁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언제 들킨 걸까요?
 
하지만 다른 층으로 피하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반대편에 있는 계단은 완전히 무너져 있거든요.
 
당신과 슈슈가 몸을 굳히고 있는 와중에도 역겨운 냄새가 점점 가까워 집니다.
 
......선택지는 두 가지뿐입니다.
 
숨거나, 전투하거나.
 
시아록:우리 숨을까? (작게 속삭이며 열린 방을 가리켰다.)
 
슈테른:(말할 여유도 없다는 듯, 시아록을 끌어당기며 문을 열고 들어간다.)
 
괴물을 피하려면... 한동안 숨을 죽이고 있어야겠죠. 시아록, 은밀행동 판정.
 
시아록:
은밀행동
기준치: 65/32/13
굴림: 92
판정결과: 실패
 
너무 급하게 닫은 문이 삐걱, 쾅! 요란한 소리를 냅니다.
 
괴물의 특징 중 분명히 큰 소리에 이끌리는 것이 있었죠.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듯 멀어지려던 발소리가,
 
점점 이쪽으로 다가옵니다.
 
...아무래도 이번 전투는 피하기 힘들겠군요.
 
문이 열리고, 흉측한 괴물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시퍼렇게 뜬 눈과 비늘, 기괴하게 발달한 날카로운 손톱.
 
불쾌한 냄새가 훅 끼쳐 오고,
 
괴물:캬아악--!
 
괴물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듭니다.
 
*전투에 앞서, 민첩 대항으로 행동 순서를 정합니다.
 
슈테른은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뒤로 물러섭니다. 몸이 안 좋다고 했던가요.
 
당신이 앞을 막지 않으면, 아마 그도...
 
아무튼 불길한 상상은 이쯤 합시다. 민첩 판정합니다.
 
시아록:
회피
기준치: 35/17/7
굴림: 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괴물:
민첩
기준치: 45/22/9
굴림: 1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번에는 시아록이 선공합니다.
 
1라운드
 
시아록의 턴
 
공격 턴으로 시작합니다. 무기 란에서 원하는 무기를 굴려주세요.
 
시아록:
손도끼
기준치: 70/35/14
굴림: 75
판정결과: 실패
피해: 8
 
당신이 휘두른 무기 끝에는 괴물 대신 괴물의 머리카락만 걸립니다.
 
해초처럼 기분나쁘게 흔들거리는 것들은, 마치 자아가 있는 것처럼 당신의 팔에 감기려다가,
 
가까스로 떨어지네요.
 
괴물의 턴
 
괴물이 흉흉한 손톰을 휘두릅니다. 잘못 맞으면 다신 눈을 뜨지 못하리란 생각까지 듭니다.
 
괴물:
손톱
기준치: 40/20/8
굴림: 53
판정결과: 실패
피해: 1
 
그러나 그것은 당신의 코끝에 닿을락 말락 하는 것에 멈춥니다.
 
입맛을 다시는 게 소름이 돋습니다.
 
시아록의 턴
 
다시, 원하는 무기를 휘두릅니다.
 
시아록:
손도끼
기준치: 70/35/14
굴림: 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피해: 4
 
힘껏 휘두른 손도끼가 우드득, 괴물의 옆구리를 파고듭니다.
 
살과 뼈가 뚫리고 우그러지는 소리가, 촉감이, 요란합니다...
 
그런데, 괴물은...
 
괴물:크, 크아아악, 흐아악-...
 
갑자기 괴성을 지르더니 바로 쓰러져 버립니다.
 
...?
 
괴물, 전투 불능. 전투를 종료합니다.
 
시아록:(몇 번을 느껴도 끔찍한 느낌에 찌푸렸던 미간이 순식간에 펴졌다.)
이렇게 갑자기...?
 
...뭔가 이상합니다.
 
평소에는 손도끼로 몇 번을 공격해도 건재하던 괴물이, 이렇게 손쉽게?
 
머리를 때린 것도 아닌데 이건 뭔가 이상합니다.
 
아무래도... 약해져 있던 개체일까요?
 
심지어 발만 자르는 게 목표였는데, 괴물은 몇 번 손으로 바닥을 힘껏 긁더니 그대로 절명해 버립니다.
 
...
 
상대가 괴물이라지만 살해는, 몇 번을 해도 익숙해지질 않는군요.
 
그것은 슈테른도 마찬가지인 듯, 양 귀를 틀어막고 시체 쪽을 바라봅니다.
 
시아록:(당황한 표정으로 괴물을 내려다보다가 피묻은 손도끼를 털어내고 챙기고는 슈슈를 쳐다본다.)
뭔가 이상하긴 하지만... 일단은 안전할 거 같네. 슈슈는 괜찮지?
 
슈테른:......미안해요.
아니, 죄송해요. 어떻게... (괴로운 듯한 표정으로 주저앉는다.)
(누구한테 말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눈을 맞추기는 커녕 초점도 들어오질 않는다)
 
시아록:왜, 왜 그래?
(당신에게 후다닥 달려가 앞에 쪼그려앉아 시선을 맞춘다.)
 
슈테른:(고개만 휘휘 젓는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건지, 생각을 떨쳐버리려는 건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확실한 건 그것에 맹목적으로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10분 같은 1분이 흐르고, 천천히 일어선다.) ...먼저 들어가 계실래요?
전투의 흔적을 지우지 않으면, 다른 괴물들이 낌새를 알아채고 몰려들 수도 있으니까...
 
시아록:정말 괜찮아?
(일어선 너를 여전히 앉은 채로 올려다보다가)
힘들면 내가 치울게.
 
슈테른:...방금까지 시아록이 전부 하셨잖아요. 제가 하게 해 주세요.
 
시아록:그치만, 슈슈.. 몸도 안 좋은 거 같은데..
(머뭇거리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슈테른:몸이 안 좋다고는 해도 환자를 혼자 싸우게 내버려두다니, 제가 부족했어요. (그렇게 말하며 웃는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너무 걱정 말고, 시아록이야말로 몸 챙기셔야 해요.
내일부터는 다시 움직여야 하니까. ...등대가 머지 않았잖아요. (유일한 희망을 되짚으며 숨을 내쉰다.)
 
시아록:(아까의 당신의 걱정을 떠올리면 그저 마냥 말릴 수도 없을 것 같지만, 이건 전해야 했다.)
그야 여기까지 오는데 피로한 건 있어도, 난 환자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그리고 네 말대로 조심할게. 그러니 슈슈도 조심해.
 
슈테른:...네. (짧게 답하고, 당신이 문을 닫고 들어가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웃어보인다)
 
문은 잠겨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요?
 
적절한 판정 선언으로 열어봅시다.
 
시아록:(그렇게 좋지도 않은 실력이지만, 일단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대로 문을 따보려고 시도한다.)
열쇠공
기준치: 31/15/6
굴림: 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몇 번 써본 기억도 없는데 술술 손이 움직입니다.
 
찰칵 소리가 시원합니다. 그렇다고 감흥은 없지만요...
 
하지만 방안을 둘러본 순간 당신은 놀라게 됩니다.
 
일단 젖지 않은 침대가 눈에 띕니다. 침대라니, 몇 달만에 보는군요.
 
무너지지 않은 꽤 멀쩡한 책상과 의자도 있고,
 
심지어 한켠에는 책장도 놓여있습니다.
 
색색의 천을 여러 겹 올리고 기워 포근해 보이는 2인용 소파까지 놓여 있네요.
 
시아록:와... 너무 멀쩡한대.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고 방을 이리저리 살핀다. 어떻게 이렇게 멀쩡하지..?)
 
작지만 바깥이 보이는 창문 옆에는
 
비가 올 때를 대비해 만든 것인지 창문에 꼭 맞는 나무판을 세워 두었네요.
 
작은 테이블도 앙증맞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게다가 가구들은 약간 기울어진 빌딩에 맞춰 접은 종이로 균형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만큼 해내기가 참 어려웠을 텐데요.
 
게다가 곳곳이 방금 지나왔던 복도처럼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합니다.
 
시아록:(너무 멀쩡하고 깨끗한 방을 보자니 꼭 누군가의 방을 훔처보는 기분이다. 그래도 슈슈와 제대로 쉴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마냥 안심이 될 뿐이지만. 당신에게 이 소식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문을 열고 당신을 불렀다.)
슈슈. 얼른 여기 와봐.
 
당신이 부르는 소리에, 그가 걸음을 재촉하는 게 느껴집니다.
 
방 안을 둘러본 슈테른 또한 당신과 같은 반응입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정돈됐을까, 잘 됐다. 그렇게 얼굴이 말하고 있습니다.
 
...방금까지 짓고 있던 그 표정은 무엇이었을까 싶지만.
 
슈테른:그저 묵을 수준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정말로 사람이 사는 방이잖아요. (감탄과 놀람이 섞인 목소리가 떨린다)
 
시아록:그렇지? 오늘 밤은 편하게 쉴 수 있을 거 같아.
(당신의 피곤함과 컨디션을 생각하면 정말로 좋은 일이다. 오랜만에 행운이 굴러온 기분.)
거기다 문도 잠글 수 있으니까 훨씬 안전할 거라고 생각해.
 
슈테른:다행이에요. 그저 하룻밤만 머무르기엔 아쉬울 정도로 좋은 곳이네요...
한때는 이런 곳에서 머무르는 게 당연한 시절도 있었는데.
 
시아록:그러게.
(대답하면서도 어쩐지 그런 시절은 오지 않았던 것처럼 너무 아득한 기분이었다.)
 
슈테른:...아, 이 침대 좀 보세요. 저희 것보다 넓은 것 같지 않아요?
 
그 말에 가리키는 손을 따라가면, 2인용 침대가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순간 위화감이 듭니다.
 
시아록: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81
판정결과: 실패
 
침대? 우리가 침대에, 그것도 같이 누운 적이 있었던가요?
 
순간 현기증을 느끼지만, 곧 천천히 되짚어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착각입니다.
 
설마 연인인데 같이 잠든 적이 한 번도 없었을 리가요. 게다가...
 
2인용 침대에서 잠든 기억만 없을 뿐, 같이 잠든 적은 분명 있었으니까요.
 
먼 일이라 자세히 떠오르지는 않지만 분명 행복했었다고......
 
당신이 그런 기분에 휩싸여 있는 동안 슈슈는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기분 탓인지 눈이 마주치면 피하더니, 말없이 책장 쪽으로 다가갑니다.
 
...뭘까요? 아무튼, 방안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시아록:(반사적으로 당신을 따라 책장으로 향했다.)
 
침대, 책장, 소파, 책상, 테이블 정도를 둘러볼 수 있겠네요.
 
책장으로 가면, 50권 남짓의 책들이 꽂혀 있습니다.
 
시아록:책이 많네..
 
상태는 제각각이지만,
 
이 척박한 세계에서는 이 정도면 책장이 아니라 서재라고 봐도 될 겁니다.
 
책은 여러 장르가 혼재해 있습니다.
 
눈에 띄는 걸 찾아보려면 자료조사 판정합니다.
 
시아록: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76
판정결과: 실패
 
뽑아들면, [천재 그레이 씨]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책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세기의 천재였던 그레이라는 소년이, 어느 날 불의의 사고로 머리를 다칩니다.
 
가족이라고는 여동생밖에 없던 그레이는 그 머리만이 유일한 밥줄이었습니다.
 
그를 딱하게 여기던 한 의사는 친절하게도 그레이에게 한 치료를 제안합니다.
 
바로 생쥐의 뇌를 이식하는 것입니다. 생쥐의 뇌는 이식 성공 사례가 있어서,
 
평범하지 않는 뇌를 끼우면 그 비정상성-천재성-이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의사는 많은 사람들의 신뢰를 받는 마음씨 따뜻한 사람이었기에 그레이는 곧바로 수락했습니다.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아니, 참패였습니다.
 
그레이는 수술의 여파로 제대로 말도 못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뿐인 여동생은 결국 먼 나라의 이상한 취향을 가진 남자에게 팔려갔습니다.
 
선의를 베풀고 싶을 뿐이었던 의사는 명예를 박탈당하고 조국에서 쫓겨나 평생 구걸을 하며 살아갑니다.
 
...마지막 장에 교훈이랍시고 적힌 글이 있습니다.
 
시아록:...이게 무슨 이야기람..
(교훈이라고 적혀있는 글도, 이야기도 아무 의미 없어 보여서 책을 덮고 책장에 꽂아버렸다.)
 
이 책장의 주인 취향을 의심했을 겁니다.
 
책장이 정말 아무 책이나 끌어모은 모양새가 아니었다면.
 
그러니까... 다음 책은 좀 괜찮은 게 나오지 않을까요?
 
시아록:
자료조사
기준치: 50/25/10
굴림: 68
판정결과: 실패
 
다시 꺼내든 책은, '인어공주'라는 제목입니다.
 
읽어보면 정말 다행히 아주 평범하고 슬픈 내용이네요.
 
다만, 인어공주의 인어인 모습이... 좀 과할 정도로 실제 같습니다.
 
삽화가가 다른 것도 아닌 비늘 묘사에 목숨을 건 게 느껴집니다.
 
...이거, 진짜 인어를 보고 그린 건 아니겠죠?
 
그런데 평이하던(?) 책의 마지막 장에 어린아이의 글씨로 무언가 적혀 있습니다.
 
시아록:(성숙한 생각은 역시 나이에는 상관없나봐. 아까의 책보다는 훨씬 좋은 기분을 느끼며 책을 책장에 꽂아넣었다.)
다른 곳도 한 번 둘러볼까..
(책장 전체의 책을 읽기란 요원해보이기도 하고, 그냥 시간 날 때 한 번 더 둘러보자고 생각하며 책상으로 향했다.)
 
서랍이 세 칸 있는 책상 위에는 펜 몇 자루와 빈 종이가 놓여 있습니다. 전구가 나갔지만 예쁜 모양의 스탠드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시아록:(책상 위에는 별게 없는 것 같아서 눈대중으로 훑고는 서랍을 위에서부터 차례로 열어본다.)
 
입을 만한 마른 옷가지가 들어 있습니다.
 
옷가지를 뒤적이면 사이에 있는 배터리 한 개, 양초와 성냥 다섯 개비를 찾을 수 있습니다.
 
*양초를 키고 관찰력이나 자료조사 등 눈을 사용하는 판정을 할 경우 보너스 다이스 1개를 받습니다.
 
다만 불을 키려면 성냥 1개를 소모하며, 행운 판정의 성공을 요구합니다.
 
시아록:챙길 게 꽤 많네..
(조금 좋아진 기분으로 들어있던 모든 물건을 챙기고는, 두번째 서랍을 열었다.)
 
이 서랍에는 투명한 비닐 봉투가 여러 개 놓여있고,
 
봉투 속에는 자그마한 씨앗들이 들어 있습니다.
 
봉투 뒷면에는 [나팔꽃] [해바라기] [장미] [알리움] [무스카리] 등 이름표가 붙어 있습니다.
 
꽃……
 
흙과 꽃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시아록:여기 주인은 언젠가 심으려고 모아둔 걸까.
(어쩐지 희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거 같다. 그저 피로감에 휩쌓인 채로 슈슈와 살아남는다는 일념 하나에 여기까지 온 자신과는 다르게. 이건 자신이 손대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라. 그대로 서랍을 닫고, 세번째 서랍을 열었다.)
 
이쪽은 다 녹은 양초나 물에 부식된 건전지 등, 잡동사니만이 들어 있네요.
 
그런데 그것들을 파헤쳐보니 수첩이 하나 드러납니다.
 
시아록:(앞선 서랍과는 달리 쓰지 못하는 잡동사니만 넣어둔 서랍에서 수첩이 나오자 왠지 기분이 이상해졌다. 수첩을 주워들고 펼쳤다.)
 
내용은 누군가의 일지인 모양입니다. 낡지는 않았네요.

핸드아웃: 누군가의 일지

검은 해일이 몰려온다 했더니 눈을 뜬 곳이 이곳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세상은 다 물에 잠겼고 당연히 휴대폰도 되지 않는다.
리안은, 비산은……. 제발 무사하길.
 
괴물에 의해 사람이 죽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물어뜯긴 사람이 괴물로 변한 것도.
그들이 나를 알아차리지 못한 게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내가 도울 수 있었을까? 아니, 내가 도왔어도 어쩌면 그들은…….
 
가족과 꽃밭으로 소풍 가는 꿈을 꿨다. (이 부분엔 눈물 자국이 묻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죽게 되면 가족을 볼 수 있을까?
아니야. 너희는 살아 있을 테니 나도 힘을 내야지.
신이시여 제발…….
 
천운으로 안전한 장소를 찾은 듯하다. 만반의 준비도 끝냈고, 가구도 전부 옮겨놓았다. 간만에 침대에 누으니, 잊은 줄 알았던 눈물이 밀려나왔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편안하지 않고 오히려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참 우습다. 위험할 땐 살기만 하면 다 좋을 것 같았는데, 이런 배부른 생각을 하게 될 줄이야.

차라리, ■곳■■ 길잡■■ 해볼■ ■다. ……전■■ ■■ ■했■니.
일단 식량 문제는 없고 여긴 꽤 안전하니까.


 
시아록:(글자가 겹쳐쓴 건지 아니면 지워버린 건지 알 수 없는 일지를 훑었다. 이것도 그냥 버리고 싶었던 걸까.. 잡동사니 속 수첩의 신세가 어쩐지 슬프게 느껴졌다. 일지도 제자리에 넣고 닫았다.)
(괜스레 손으로 책상 위를 한 번 쓸어보고는 테이블을 확인하러 다가갔다.)
 
침대 맡에 둘 법한 작은 테이블입니다.
 
물에 꽤 오래 잠겨 있던 물건인 모양인지,
 
흰 테이블의 다리 언저리가 검게 물들어 있습니다.
 
딱히 올려져있는 건 없지만... 그렇기에 무언가 올려둘 수 있겠죠.
 
시아록:깨끗하게 관리되어 있네..
(살펴볼 게 없는 테이블에서 소파로 시선이 옮겨갔다. 슈슈와 둘이서 편하게 앉을 수 있을 것 같은 소파.)
(소파에 다가가서 한 번 앉아보고는 슈슈를 부르기 위해 쳐다보았다.)
 
한 사람 정도라면 구겨져서 잘 수 있을 법한 크기의 소파입니다.
 
나름대로 푹신하지만 삐걱거리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그런데, 앉아보니 무언가 딱딱한 감촉이 느껴지네요.
 
마치, 쿠션 아래에 무언가 있는 듯한...
 
시아록:뭐지? (일어나 쿠션을 들어올렸다.)
 
아니나다를까, 아래에 숨겨져 있던 비상 식량이 있습니다.
 
통조림 2개와 생수 1개네요.
 
(통조림: HP+1, 생수: 이성+1.)
 
식량을 주워들고 슈슈 쪽을 바라보면, 그도 손에 무언가 들고 있습니다.
 
시아록:슈슈, 이거 봐. 식량이야.
(사냥에 성공해온 동물마냥 기분 좋게 당신에게 손에 쥔 걸 보여준다.)
 
한껏 의기양양한 당신과 다르게, 슈슈는 그저 맥없이 돌아봅니다.
 
슈테른:여기에도 식량이 있었다니. 내일 아침은 조금 더 먹을 수 있겠어요.
다행이에요. 그, 여러모로 무리하셨는데 체력 회복은 하고 갈 수 있겠네요.
 
시아록:그치. 슈슈는 발견한 거 있어?
 
슈테른:그런데 통조림...은 괜찮아요?
아, 전 이걸 찾았어요... 중요한 서류 같아요. (손에 들고 있던 걸 펼쳐보인다.)
 
그걸 보면, 서류라기보단 그저 수첩의 페이지 같......
 
아니, 이건... 익숙한 그 디자인입니다.
 
심지어 일기와 글씨체도 같네요. 이 방의 주인은 기록하는 걸 어지간히 좋아했나 봅니다.
 
시아록:통조림? 괜찮은 거 같은데..
(손에 들린 통조림을 확인하다가 네가 가져온 걸 본다.)
이거 내가 아까 책상 서랍에서 발견한 거랑 같은 거 같은데..
 
슈테른:아... 그, 그렇죠. 이상한 질문을 했네요.
책상 서랍...? ......
...무슨 내용이었어요? 읽어보고 싶어요.
 
시아록:(당신의 말에 책상에 가서 수첩을 가져와 건넨다.)
 
슈테른:(...약간의 텀을 두고 웃으며 받아들었다가, 술술 아래로 내려가던 시선이 어느 곳에서 멈춘다.)
...이곳에서 길잡이를 해볼까 한다. ...전에는... 하지? 돕지? 못했으니.
 
시아록:길잡이?
 
슈테른:... (끄덕이며 덮는다. 납득했다는 건지, 방금의 질문에 대답한 건지 모르겠다)
왜 이 부분만 지워둔 걸까요.
 
시아록:그러게..
 
슈테른:우리도... 같은 상황이었다면, 누군가를 돕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었을까요?
닥쳐보지 않으면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사람은 심적으로 강한 사람이었나 봐요.
 
시아록:그런 거 같아. 다른 칸에는 꽃씨들이 잔뜩 있었어.
(저도 꽃씨를 보고 이 방의 주인을 그렇게 생각했으니.)
 
슈테른:아, 이것도 읽어보세요. (일기와 함께 일지를 건네준다.)
 
시아록:응? 어디? (고개를 뺴꼼히 내밀어 당신이 건네준 일지를 쳐다본다.)

핸드아웃: 감염의 3단계

감염의 증상은 개인마다 제각각이지만, 나는 도저히 가망이 없던 사람들을 관찰한 끝에 공통적인 증세를 목격했다. 훗날의 누군가를 위해 기록을 남긴다. 이 문서를 발견하는 사람이 있다면 부디 소중히 다뤄 주고, 기록을 남기는 과정에서 감염으로 고통받던 사람들의 평안을 빌어주기를 바란다.
 
1단계: 물린 직후. 체온이 점점 내려가다 어느 지점에서 멈춘다. 검은 물이 차갑지 않게 느껴질 정도라고 한다. 물린 상처 부위와 근처 핏줄이 파랗게 변하고 그 부위에 열감이 있다. 정신은 아직 또렷하지만 목이 무척 마르다.
 
2단계: 시야가 흐리고 어지럽다. 가끔 발을 헛디디거나 물건을 놓치기도 한다. 물린 부위의 파란 핏줄이 점점 번지고, 감각이 없어진다. 눈가가 시리며 동공이 창백해진다.
 
3단계: 동공과 흰자위 모두 파랗게 변화하며,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더듬고, 온몸이 벌벌 떨린다. 체온이 급격하게 오르다가, 다시 급속도로 낮아진다. 이 단계에서 눈을 감거나 정신을 잃으면 그대로 끝난 거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친애하는 메리,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서 미안했어.
하늘에서는 부디 편안하기를…


 
시아록:감염 단계... 친애하는 메리... 친한 사람이 감염되었었나봐..
 
슈테른:등대가 가까이 있어도, 결국 괴물이 되어버리면 백신을 맞추기 힘들 테니까... 이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고통을 끝내 주는 정도밖에 없었겠죠.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시아록:그러게.. 안타까운 일이야...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라앉다 못해 침잠한 채입니다.
 
눈가가 붉습니다. 당신이 그걸 모른 척하건 그렇지 않건, 그는 천천히 일어나 소파에 앉듯 눕습니다.
 
시아록:괜찮아?
(오늘만 해도 똑같은 말을 몇 번째 당신에게 하는지. 당신에게 제대로 해줄 수 있는 건 없는 자신을 깨달으며 당신의 옆에 걸터앉아 머리를 쓰다듬었다.)
 
슈테른:...죄송해요. 생각이 많아져서... 전 괜찮으니까.
시아록이야말로 이만 쉬시면 좋겠어요. 아, 하지만 침대가 하나니까 같이 눕는 거...에요?
 
시아록:같이 눕는 게 왜?
 
슈테른:(뇌정지가 온 사람처럼 잠시 침묵하다가) ...네? 아, 아니에요.
얼마 만인가 싶어서요. 문이 잠기지 않으면 둘 중 한 명이 불침번을 설 때도 있었으니까...
 
시아록:그렇긴 하지.. 오늘은 편하게 같이 잘 수 있겠다.
(네 말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슈테른:그... 아니, 이럴 때가 아니죠. (당신의 곳곳에 감긴 붕대를 보고 황급히 일어난다.)
이만 가서 쉬어요. 내일을 기약해야죠.
 
자연스럽게 침대로 다가가면, 삐걱 소리가 나긴 해도 매트리스는 푹신하네요.
 
베개도 있고요.
 
어쩐지 볼록한 이불을 들추면 머리맡에 CD 플레이어가 있습니다.
 
CD 플레이어라니……. 예전 같았으면 구식이라고 웃었겠지만 지금은 반가울 지도 모르겠어요.
 
시아록:침대에 이게 뭐지..?
(생각지도 못한 물건에 당황스럽긴 했지만 뭔가 반갑긴 하다.) 재생은 될까?
 
슈테른:안에 CD는 들어있는데... 눌러도 아무 반응이 없어요.
CD 플레이어는 자주 고장나니까... 음.
 
좀 더 살펴보려면 관찰력 판정합니다.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98
판정결과: 실패
 
혹시 몰라 뒤집어보니, 다행히 건전지로 작동하는 종류입니다.
 
기존에 들어있던 2개의 건전지는 다 썼는지 가볍습니다.
 
시아록:나 아까 배터리 발견했었는데, 이거 맞을까?
(주섬주섬 배터리를 꺼낸다.)
 
슈테른:아, 오늘 찾으신 거죠? 제가 찾아봤을 땐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는데. (약간 멋쩍은, 그렇지만 기쁜 표정을 지으며 배터리를 꽂아 본다.)
 
건전지 두 개를 넣자마자 CD가 돌아가고 읽히기 시작합니다.
 
어느 년도의, 무슨 가수의, 무슨 노래인지도 모르는 노래를 듣습니다.
 
귀여워............(손에 모터달린 기세로 쓰다듬음) (GM):https://www.youtube.com/watch?v=NrT2KRrxc0k
 
아니, 아는 노래였지만 잊어버려서 생각이 안 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디선가 들어본 멜로디 같기도 하니까요.
 
문명이 하나씩 파묻히고 생존만이 최우선순위가 된 세상에서...
 
좋아하던 노래 하나 기억 속에 간직하지 못할 사람은 많을 테니까.
 
어쩌면 난생 처음 듣는 노래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그리운 느낌이 드는 건,
 
이 노래가 우리를 과거로 되돌려 주기 때문이 아닐까요.
 
모든 게 바뀌었지만,
 
인간다운 장소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것만은
 
우리가 그리워하던 옛날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니까요.
 
하늘은 여전히 어둡지만 오늘은 별이 가득하여 세상으로 아득히 쏟아지고 있습니다.
 
고요한 파도 소리와 함께 들리는 노랫소리.
 
……저편의, 창문으로 보이는 등대에 불이 켜집니다.
 
역시 굉장히 가까운 게, 앞으로 이틀 정도면 도착하겠어요. 희망적이군요.
 
슈테른:시아록.
 
먼저 침묵을 깬 것은 그입니다.
 
말문을 터놓고, 그는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묻습니다.
 
시아록:응?
 
슈테른:만약에, 제가 감염된다면... 어떻게 하실 거에요?
 
을었던 건 슬픈 생각을 했기 때문일까요.
 
담담한 어조 아래 묻어둔 슬픔이 보입니다.
 
시아록:어.. ... (당신의 말을 듣고는 한참동안 입을 다물었다가 느즈막이 입을 뗐다.)
글쎄, 모르겠는데. 그런 일은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말 그대로 감히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는 이야기여서, 무언가 제대로 대답을 해야한다는 걸 막연하게 알면서도 백지화 된 머리로 버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슈테른:괘, 괜찮아요. 억지로 답하실 필요 없어요. 정말로... (덩달아 자기도 패닉한 듯 허겁지겁 돌아보고 살핀다.)
그냥 마음에 걸려서...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음, 그것보다 옷은 다 마르셨어요? 혹시 물에 빠지셔서 감기 기운이 있으신 건 아니죠? 필요하시면 제 옷이라도 드릴 테니까.
(맞을 지는 모르겠지만... 이라는 말은 안으로 삼킨다.)
 
시아록:(한껏 말을 돌리려는 너를 빤히 바라보다가 일상 이야기라도 하듯 담담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이것은 너를 비난도 아니오, 타박도 아니다. 그저 제 생각을 있는 그대로 너에게 얘기할 뿐이다.)
아니, 억지로는 아니고.. 그냥 진짜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해야하나. 이런 상황인데도, 지금껏 한 번도 너나 내가 감염되면 어쩌지? 하고 걱정해본 적 없어. 그냥... 뭐라고 하지? 그냥 너랑 나 둘이면 등대까지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게 다야.
네 말대로 사실은 한 번쯤 생각해봤어야 할 문제일지도 모르는데.
 
슈테른:당신 추위 잘 타잖아요. 마침 가방에 모포도 있고... 말을 돌리려는 게 아니라 정말 걱정돼서 그런 건데. (표정이 살짝 뚱해진 채 듣는다.)
 
시아록:(뚱해진 네 얼굴이 귀여워서 웃으며 검지로 뺨을 콕 찔렀다.)
침대에 이불 있으니까 괜찮아. 정 추우면 나중에 꺼내 덮지 뭐.
 
슈테른:...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는 표정이 점점 묘해진다.) 어째서? (마찬가지로 타박하거나 의문을 갖는 게 아닌, 그저 순수하게 궁금한 눈치다.)
 
시아록:그러게. 어째서일까? 난 내 생각보다 희망 찬 사람인가봐. (이 방의 원래 주인처럼. 책상의 두번째 서랍 속 몇 종류나 되던 꽃씨들을 떠올리며 슬쩍 웃었다.)
 
슈테른:이불이 두껍긴 하네요. 마른 옷가지도 마침 몇 벌이나 찾았고. ...그, 그리고 정 안 되면, 그.... 제, 제가 끌어... 안고 있으면 따....... (거기까지만 말하고, 갑자기 저 혼자 돌아눕는다. 어쩔 줄 몰라하는 등 아주 난리도 아니다)
...저도 말해 두자면... 솔직히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당신과 함께 등대까지 갈 거라고...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조금 어두워진 얼굴이지만, 그래도 두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다시 힘주어 말한다.) 정말로.
 
시아록:(얘기하다 말고 부끄러워진 듯 돌아눕는 당신의 빨개진 귓가를 보고 입꼬리가 올라갔으나 구태여 건들이지 않았다. 장난쳤다가 삐져서 침대에서 내려가 버리면 안 되니까. 그래서 가만히 당신이 돌아누운 채로 하는 이야기들을 귀기울여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말은 정말이라는 듯 다시 저를 향해 몸을 돌린 당신을 꾹 끌어안았다.)
같은 생각이네. 기분 좋다.
 
슈테른:(한창 진지하게 말하다가 갑자기 끌어안기면, 한동안 말이 없다. 보통은 부끄러워했던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스칠 때쯤 갑자기 온 몸을 부르르 떤다.) ...가, 가, 간지러워요.
아니, 간지러운 게 아닌가? 어쨌든... (중얼거린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딱히 팔에 힘을 풀지는 않는 걸 보면 싫진 않은 모양이다.) ...그, 그래도 다행이에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내내 묻고 싶었거든요. 당신이... (뒷말은 삼킨다.) 어, 얘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이만 쉬죠.
노랫소리, 방해되세요? (당신의 예리한 감각을 신경쓰며 묻는다.)
 
시아록:(가만히 당신의 이야기를 듣다가 너에게 얼굴을 기댔다.)
괜찮아. 오늘은 그냥 잘 잘 거 같아. 우리 둘 다 피곤하기도 했고, 뭐랄까.. 노랫소리도, 추위같은 것도, 오늘밤도 그냥 다 괜찮을 거 같아.
슈슈는 노래 시끄러워?
 
슈테른:(당신과 함께 있는데 다른 게 신경쓰일까... 생각만 해도 부끄럽지만, 또렷하게 떠올라 사라지지 않는 말을 애써 꾹 누른다.) 앞으로도 이러면 좋겠어요. 함께한다고 모든 일이 해결되지는 않아도... 적어도 문제를 해결할 때 필요한 의지나 여유같은 것들을 얻을 수 있다면.
저도 다 괜찮아요. (오늘 대체 괜찮다는 말을 몇 번이나 말하는 걸까. 하지만 당신과 있다면 뭐든 괜찮았다.)
(바로 곁에서 들리는 숨소리와, 잔잔한 노랫소리를 자장가 삼아 서서히 눈이 감긴다. 칭얼대는 어린아이처럼 품에 더 파고든다)
 
시아록:(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제 품에 파고드는 당신의 등을 느리게 토닥였다. 당신의 숨소리에도, 당신을 달래듯 두드리는 제 손의 리듬에 슬금슬금 눈이 감겼다.)
 
잠에 빠져들 수록, 파도 소리와 노랫소리, 무언가 물에 빠지는 소리...
 
이 세계를 둘러싼 소음들이 일체 제거됩니다.
 
결국 최후에 남는 것은 서로의 숨소리 뿐입니다.
 
우리는 걱정일랑 잊어버리고 서로의 곁에서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의식이 까마득한 저 아래로 잠길 즈음.
 
당신은 어떤 소리를 듣습니다.
 
시아록: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97
판정결과: 실패
 
슈테른:당신이... -를 -망하지 않을지, 그게 궁금해서...
하지만 이제, ---졌으니까.
 
그 말이 신호탄이라도 된 듯, 당신의 의식은 다시금 완전한 어둠 속으로 빠집니다.
 
 
구분선파도
 
?????
 
 
뚝, 뚝.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눈앞은 물에 빠진 것처럼 일렁이고,
 
입을 열어도 바람 새는 소리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마치 가위라도 눌린 것처럼, 몸이 전혀 말을 듣지 않습니다.
 
온몸이 축축한데, 이상하게도 기분만은 아주 평화롭습니다.
 
“--.”
 
동시에, 누군가 흐릿한 시야를 찢으며 나타납니다.
 
당신에게 무언가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흐트러진 이성은 귓가에 쏟아지는 소리조차 언어로 치환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쯤이야 안다는 듯 익숙한 목소리는 몇 번이고 말합니다.
 
그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듭니다.
 
의식이 수면 위로 솟아오른 것처럼, 눈앞의 상황이 분명하게 들어옵니다.
 
당신 앞의 인간이 당신을 꽉 끌어안고 있습니다.
 
눈물을 뚝뚝 흘릴 것처럼 위태로운 표정이지만,
 
정작 뚝뚝 소리는 전혀 다른 곳에서 납니다.
 
팔의 물린 상처입니다.
 
피가 떨어져내리는 대로 솟아올라서, 이대로면 위험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상처 크기에 비해 피가 너무 많이 흐릅니다.
 
피의 근원지는 그의 팔뿐만이 아니었던 듯, 시선을 더듬어 올라가다 보면
 
당신의 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당신의 온몸을 축축하게 적신 건 아무래도 물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시아록:
SAN Roll
기준치: 80/40/16
굴림: 69
판정결과: 보통 성공
 
시아록, 이성 1 감소.
 
당신이 이 모든 걸 받아들이건 받아들이지 못하건, 눈앞의 상황은 당신을 두고 흐릅니다.
 
멈추지 않고 떨어지는 피처럼.
 
혼란 속에서, 명백한 원망을 담은 목소리만이 선명했습니다.
 
시아록:뭐가..?
(흥건하게 젖어들며 떨어지는 제 피를 보면서도 현실감없이 정신은 어딘가 부유하고 있는 기분이 들어서 제가 들어도 이질적이게 차분하고도 담담한 목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헉, 숨을 들이킵니다.
 
물 밖에 나온 물고기처럼 벅찬 숨을 내쉬는 데만 집중하다 보면,
 
당신은 어제 잠들었던 그 침대 위에 있습니다.
 
반사적으로 목께를 만져보면…
 
아니, 몸의 어디를 살펴도 당신은 멀쩡합니다.
 
……아무래도 개꿈을 꾼 모양입니다.
 
사방이 밝아 눈이 부신 것이, 벌써 해가 중천이네요.
 
슈테른:…어떻게…….
 
그런데, 멀찍이서 그가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습니다.
 
슈테른:…점점 빨라지고 있어.
 
손에는 노트가 들려 있습니다.
 
당신이 자고 있는 걸 의식해서인지 노트를 넘기는 소리조차 죽이고 있습니다.
 
시아록:슈슈? (당연하게 당신을 부르며, 당신의 말을 뇌리에 몇 번 곱씹었다. 무슨 말일까? 우리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나...? 뭐가 빨라진다는 거야?)
 
슈테른:...아, 시아록? 괜찮아요...?
계속 땀을 흘리고 계셔서... 걱정했어요.
 
시아록:난 괜찮은데... (땀이 나? 제 팔을 들어 확인해보다가 자신에게는 곧 신경을 껐다.) 그냥 오랜만에 편하게 자서 그렇겠지. (당신이 걱정할 법한 꿈 이야기는 묻어두었다.)
근데 뭐해? 뭐가 빨라져??
 
슈테른:악몽이라도 꾸시는 건가 해서, 깨울까 했는데.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살피지도 못했네요… 죄송해요.
조금 문제가 생겼어요. 라디오가 망가졌거든요.
 
시아록:그건 괜찮지만. 라디오?
 
그 말에 시선을 돌리면, 치직 소리만을 뱉는 라디오가 보입니다.
 
비명 소리처럼 들리기도 할 만큼 귀가 아픈 노이즈입니다. 잠깐 틀던 슈슈는, 곧 그걸 단호하게 꺼 버립니다.
 
슈테른:...밤새 만져 봤는데, 아무래도 무리에요. 어느 채널에서도 신호가 오질 않아요.
 
시아록:밤새? 안 잤어?
(라디오 보단 당신이 밤새 그러고 있었다는 게 더 신경쓰인다.)
 
슈테른:우리한테 등대가 있다고 알려줬던 그 채널에서도… 묵묵부답이에요. 아니, 외견상으로는 멀쩡하니까, 어쩌면 라디오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뒷말은 삼킨다.)
...네? 아, 당연히 잠은 잤죠, 그럼요….
 
굳이 상태를 살피려면 관찰력 또는 심리학 판정해볼 수 있습니다.
 
시아록:(눈을 가늘게 뜨고 침대에서 주섬 내려와 당신에게 다가갔다.)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98
판정결과: 실패
정말? (확신없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네 앞에 앉았다.)
 
가까이 다가가서 바라보면, 눈가가 어둡습니다.
 
다시 보니, 그가 앉아있던 책상 위에는 온갖 공구며 책들이 널려 있네요.
 
슈테른:그, 그것보다 슬슬 허기지시지 않아요? (스스로가 평소답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꿋꿋하다.)
모처럼 어제 식량도 많이 찾아냈으니까, 간만에 배불리 드세요.
...항상 배고파하셨으니까.
 
시아록:(뭔가 행동이 묘하게 이상한 건 알겠지만, 애매해서 괜히 입만 삐죽였다.) 같이 먹자. ....항상?
 
슈테른:...네? 그야 저희가 배부르게 먹은지는 오래됐잖아요. 그냥, 그래서... (대화가 어딘가 엇나가는 느낌이다)
...음, 아무튼 좋은 소식이 있어요. 여기 쌓인 책 중에서 유용한 지식을 담고 있는 책을 좀 찾았거든요.
당장 라디오도 책을 보고 손댄 거고... 소용없었지만.
 
그 말대로 이야기책뿐만 아니라 실용서도 여럿 쌓여 있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거들떠도 보지 않았겠지만... 지금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는 마다할 필요가 없습니다.
 
[간편식품 레시피 100가지], [암벽 등반 가이드], [자연 속의 나침반들] 등등이 있네요.
 
잘은 몰라도 하나 꺼내읽는다면 유용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시아록:(무언가, 뭔가.. 이상한 것 같은데.... 뭐가 이상한지도 모르겠어서 제 눈치가 맞는 건지도 모르겠어서.. 미약한 한숨을 쉬고는 당신의 말대로 시선을 돌리고는 '자연 속의 나침반들'이라는 책을 집어들어 펼쳤다. 등대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으니 뭔가 더 찾아가기 쉽지 않을까? 이게 정말 제목같은 책일지 모르겠지만.)
 
책에서는 나침반 없이도 북쪽을 찾는 여러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북두칠성을 이용하는 방법, 이끼를 이용하는 방법...
 
그나마 가능한 건 별을 통해 찾는 거겠죠.
 
파도가 지상의 별을 삼켜 어두워진 만큼, 별빛은 더욱 밝아졌으니까요.
 
시아록:(유용한 이야기 같으면서도 그렇게 잘 아는 분야는 아니라서 별을 이용한 방법만 자세히 읽었다.)
 
슈테른:...통조림 가지고 올게요. 원하시는 종류 있으세요? (옆얼굴을 힐끔거리다 일어선다.)
 
시아록:슈슈가 고르고 남은 거로 먹을래.
(책을 덮으며 당신을 쳐다보았다. 오늘은 꿈이 괴상해서였을까, 괜히 당신이 더 신경쓰인다. 꿈과는 전혀 다르게 멀쩡한 제 목을 손바닥으로 훑어내렸다.)
 
그는 조용히 끄덕이고는, 당신이 책을 읽는 동안 간단한 아침을 차립니다.
 
당장 묻고 싶은 건 많지만,
 
그는 마음의 정리가 아직 안 된 듯 허둥거리기만 합니다.
 
보세요, 지금도. 별안간 통조림 하나를 놓쳐서 쏟아버렸습니다.
 
당신도 당신대로 오늘은 기분이 좀 싱숭생숭하네요.
 
그렇게 평소보다는 조금 더 처진 아침이 지나갑니다.
 
시아록:
심리학
기준치: 45/22/9
굴림: 33
판정결과: 보통 성공
(통조림을 떨어뜨린 당신을 보고는 벌떡 일어나 다가갔다.)
괜찮아, 슈슈?
(역시 어딘가 이상해..)
 
얼굴이 어둡습니다. 단순히 다크서클이 쌓여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얼굴에 감도는 기색은,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요?
 
어딘가 불편해 보이지만, 그런데도 한구석에서는 편안해 보이는 표정입니다.
 
이를테면, 체념 같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흐릿하던 두 눈에 이지가 차오릅니다.
 
슈테른:오늘은 최대한 빨리 등대까지 가는 게 목표에요.
 
시아록:슈슈? (너무 갑작스레 달리진 기색에 당신의 이름만 불렀다.)
 
슈테른:...등대에 무슨 일이 생겼더라도, 확인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아요.
망설이고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시아록:그렇긴... 하지만...
(등대는 그저 너와 내가 안전하기 위해 가는 장소일 뿐이지, 등대 안의 사정이 어쩌건 사실 자신에게는 전혀 상관없었다. 그러나 아까전과 다르게 기묘하게 맑아진 눈빛과 정말로 희망을 가진 건지 아니면 그거라도 쥐고 있어야겠는지 모르겠는 당신의 단호한 말에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슈슈는 빨리 등대로 가고 싶은 거지?
 
슈테른:빠르면 빠를 수록 좋겠죠.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니까. ...아, 그렇다고 무리하라는 건 아니에요.
그야 저한테 중요한 건 등대가 아니라... (잠시 뜸을 들인다. 여유가 없이 살아서 그런지 말을 끊어내는 빈도수가 늘었다.) 전 당신과 함께 등대까지 갈 거에요. 그거면 됐어요. 설령 등대의 빛이 꺼졌다고 해도… 그걸 위해 우리가 쏟은 노력엔 의미가 있고,
목표 같은 건 다시 찾으면 되니까. (꼭 당신에게만 말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시아록:그래, 그렇게 하자. 등대에 갔다가 무슨 일 있다면... 그건 그 때 또 다음을 정하면 되겠지. (그게 저희를 무한한 굴레에 가두더라도 당신이 지치지 않는다면 되었다.)
 
진지한 이야기를 하느라, 당신은 무지성으로 눈앞에 놓인 통조림을 떠먹습니다.
 
뭔지도 모르고 그저 입에 넣어버렸네요.
 
오늘의 식사는... 1 골뱅이 2 과일 3 생선 1
 
골뱅이인 것 같습니다. 식감이 아주 쫀득하고, 적당히 짭짤한 맛 뒤에 약간 고소한 맛도 묻어납니다.
 
통조림답게 겉면은 약간 딱딱하고 건조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안쪽에 숨은 살이 더욱 촉촉하게 느껴집니다.
 
시아록:아, 골뱅이. (아무생각없이 입에 쑤셔넣은 게 오랜만에 먹는 골뱅이라니.) 슈슈도 먹어볼래? 맛있네.
 
멸망 전에 먹었던 것과 다름없는 맛이 묘하게 향수를 자극합니다. 맛도 괜찮고, 영양분 섭취에도 유리하죠.
 
슈테른:(전에는 못 먹던 음식이라, 순간 심호흡을 한다.) ...한 입만요. (무슨 생각인지, 평소엔 콩이나 과일 통조림만 먹었으면서 오늘은 하나를 받아먹는다.)
 
시아록:많이는 말고 조금만.
(네가 안 먹는 걸 알면서도 너무 오랜만의 골뱅이에 순간 들떠선 너와 음식을 공유하고 싶었었다.)
 
슈테른:...지금 충분히 안 먹어두면 이따 힘들지도 모르니까. (어차피 새로운 걸 받아들이지 못하면 내쳐지는 세상이다. 거부감이 없지는 않지만, 이미 수많은 죽음을 밟고 선 인류면서 이런 걸 가리는 게 의미가 있을까, 같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맛있네요. (마음에 없는 말이지만, 그래도 결의에 찬 어조로 중얼거린다.)
 
그럭저럭 평화로운 식사가 이어집니다. 생수는 누군가 다 마셔버려 짠 입을 헹굴 순 없었지만,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건 정말 행운이었습니다.
 
약간의 아쉬움이나 찝찝함은 털어내고, 당신과 슈슈는 다시 여정을 떠나기로 합니다.
 
 
구분선파도
 
2일째 낮
 
 
안락한 곳이지만 이곳에 영원히 머물 수는 없겠죠.
 
등대로 향하기 위해 기울어진 계단을 내려갑니다.
 
생존자의 손길이 닿았을 마네킹이 있던 층, 유독 깨끗했던 층을 내려와
 
마침내 벽이 반쯤 무너졌던 층에 도착합니다.
 
바깥을 바라보면, 세상 아래에 수몰된 도시가
 
높게 뜬 태양 빛에 반사돼 아름답게 빛나고 있습니다.
 
뺨을 간질이는 보드라운 바람은 평화롭게 느껴지기까지 하네요.
 
그런데, 옆 빌딩의 창문 근처에서 무언가 보입니다.
 
인영 같네요. 이쪽을 발견한 것 같지는 않지만, 창가 앞에서 자꾸 서성이고 있습니다.
 
……사람.
 
당신은 사람을 오래간만에 보는군요.
 
시아록:저게 사람일까...? (저도 모르게 숨죽여 당신에게 건내는 듯 아니면 혼잣말을 하는 듯 중얼거렸다.)
 
슈테른:사람이요...? 전 안 보여요.
 
그는 어리둥절한 눈치입니다. 눈썰미 좋은 당신과는 다르게 발견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하는 수 없이 당신이 직접 알아보는 수밖에요.
 
시아록, 관찰 또는 듣기 판정. (판정 종류에 따라 출력되는 결과가 다릅니다)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79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러니까, 저기..? (손끝으로 가리켰다.)
 
저 사람은 한 곳을 빙글빙글 돌고만 있습니다.
 
자세히 보니 눈에 초점이 전혀 없고, 무언가 중얼거리기만 하네요.
 
...이런 세상에서는 미치지 않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기는 하죠.
 
생존자는 끝내 검은 바다를 향해 뛰어듭니다.
 
풍덩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시아록:아... (일련의 일들을 보고 저도 모르게 탄식이 터져나왔다가 당신을 쳐다보았다. 괜히 가리켜서 당신이 험한 걸 보게 만든 게 아닌지 걱정되었다.)
 
슈테른:(바람과는 다르게 눈이 어두워지지만, 곧 고개를 젓고 손을 끌어당긴다.) 괜찮을 거에요.
바로 저기가 등대니까...... (뭐가 괜찮다는 건지 분명하지 않은 어조다)
 
시아록:(깊게 한숨을 쉬고 잡아온 당신의 손을 꾹 잡았다.) 그래..
 
그의 말대로 등대가 정말 가깝습니다.
 
적당한 위치에 있는 목표 빌딩도 잡았습니다. 내일이면 등대에 도착할 겁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요...
 
자꾸 같은 자리를 서성이기만 하던 인영이, 머리에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습니다.
 
왠지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 닥쳐옵니다.
 
괜한 불안이 손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 같아, 당신은 맞잡은 손을 더욱 꽉 쥐고 말았습니다.
 
 
어쨌거나, 어딘가 찝찝했던 광경을 뒤로하고 우리는 창틀 앞에 서서 잠수 준비를 합니다.
 
해는 창창하게 떠있지만,
 
높고 거친 파도가 해를 잡아먹을 기세로 몰아칩니다.
 
우리까지 삼켜지지 않으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고 헤엄쳐야겠어요.
 
……
 
오늘도 검은 바닷속으로 들어갑니다.
 
나름대로 한가롭던 풍경이 단박에 뒤집혀 시야가 어둑해집니다.
 
귓가로는 물소리가 들어찹니다.
 
문명의 묘지는 언제나처럼 어둡고 음습합니다.
 
꼭 밤하늘에 삼켜진 것처럼 막막한 바닷속.
 
오늘은 어째 바다 반딧불이도 빛나지 않습니다.
 
슈테른:
건강
기준치: 30/15/6
굴림: 36
판정결과: 실패
 
...그런데 문득 슈슈에게 시선을 돌리니,
 
어째선지 그가 가라앉고 있습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물거품만 내뱉고 있는 걸 보면, 한눈에도 위험해 보입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아무래도 당신이 끌어올려줘야 겠습니다.
 
시아록:
수영
기준치: 75/37/15
굴림: 72
판정결과: 보통 성공
(깜짝 놀란 탓에 입 안에서 튀어나온 공기의 방울들이 눈 앞으로 가렸다. 하지만 금방 헤치고 발이 물을 거세게 차내며 당신에게로 급하게 향했다.)
 
당신은 뛸 듯이 헤엄쳐 겨우 그를 데리고 수면 위로 빠져나옵니다.
 
급히 올라오면 바로 앞에 반쯤 무너져 내린 빌딩이 있습니다.
 
본래 예정했던 건물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당장 건물 안으로 가야 합니다.
 
유독 가볍게 느껴지는 무게를 등에 짊어지고 무너진 벽 안으로 들어갑니다.
 
내부는 밖에서 보던 것보다도 엉망입니다.
 
벽은 온통 이끼투성이고, 괴물의 흔적은 곳곳에 수놓아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바닥이며 문이 온통 갈라져 있거나 일그러져 있습니다.
 
이 안에 멀쩡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신은 그런 걸 살필 여유조차 없습니다.
 
놀라서인지 숨이 찹니다. 천천히 숨을 가라앉히며 슈슈의 상태를 살핍니다.
 
시아록:괜찮아?!
(당신과 자신의 고르지 못한 숨 사이로 어찐지 물음이 비명처럼 튀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아파 보입니다. 급해지는 마음에 외투를 걷어내면,
 
당신은 더 부정할 수도 없이, 보고 맙니다.
 
시아록:
SAN Roll
기준치: 79/39/15
굴림: 53
판정결과: 보통 성공
 
변화는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핏줄이 번지고 뻗어나가는 것처럼, 서서히 다른 이상한 점들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체온이 급격하게 올라가고, 흰자위가 점점 창백해집니다.
 
숨은 난잡하기 그지없고, 초점은 제대로 맞을 일 없이 시선이 사방으로 흩뿌려집니다.
 
시아록:언제부터 이랬어? (오열과도 닮은 작은 목소리가 잇새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수첩에서 읽은 증상을 눈으로 급하게 확인하고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토할 것처럼 끔찍한 기분을 느끼며 제 좋지도 않은 머리가 온갖 생각을 맹렬히 떠올렸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하는데? 결론은 하나지.) 백신..
(당신을 여전히 끌어안은 채로 시선이 등대가 있는 방향을 향했다.)
 
등대는 가깝습니다. 쉬지 않고 헤엄치면 3시간… 아니, 어쩌면 1시간만에 돌파가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슈슈의 상태가 좋지 못합니다. 물에만 들어가도 괴로워하던 그입니다.
 
그렇다고 그를 두고 혼자 갔다오기에는, 이 빌딩에 홀로 뒀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습니다.
 
아니, 무엇보다, 감염이 진행 중이니 다녀온 뒤에는 이미 모든 게 늦었을 지도 모르고요.
 
희망의 상징이었던 등대가 바로 앞에 있는데,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야속합니다.
 
깜빡거리는 불빛이 오늘따라 우리를 조롱하는 것만 같습니다.
 
무심코 그의 손을 꽉 쥐었을까요? 그가 뒤척입니다.
 
시아록:(그치만 어떡하지? 혼자 두고 가기도, 함꼐 수영해 가기도 불가능한 일에 가까워서 까득까득 손톱만 물어뜯었다. 흘러가는 시간은 야속해서 마른 눈에 열이 올랐다.)
 
슈테른:...시, 아록... (겨우 낸 목소리는 쥐어짜는 것처럼 일그러져 있다. )
 
시아록:슈슈?!
 
슈테른:...미안해요. (고통 때문에 생리적인 눈물이 흐른다. 마치 이 말을 할 때만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말을 내뱉자마자 표정이 편해지더니, 몸이 축 처진다.)
 
시아록:아냐아냐아냐! 네가 왜 미안해! (고개를 정신없이 흔들며 벼락처럼 외치고는 축 늘어진 당신의 몸을 끌어안고 이를 악물었다. 눈동자가 구르며 다시 급하게 생각에 잠겼으나 어차피 백신은 등대에만 있으니 답은 하나 뿐이었다. 답은 하나. 같이, 등대까지 갈 것. 그럼 배나 판자같은 거라도 없나. 혼자 헤엄쳐서 끌면 되지 않을까. 무심코 떠오르는 나쁜 생각들은 의식적으로 쳐내며 주변을 훑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태로 움직이는 건 힘들어 보입니다.
 
1시간 거리를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사람 한 명을 끌고 가는 건 도저히 무리입니다.
 
혹시라도 중간에 체력이 바닥나서, 가라앉기라도 하면 그대로 끝장이고요.
 
...
 
...
 
당장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데, 도대체 뭘 해야 할지, 뭘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나 많은 걸 배워온 당신인데, 막상 상황이 닥치니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숨을 참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토해낸 숨이 가쁩니다.
 
의식해서 호흡에 집중해야 숨이 쉬어질 만큼 머리가 패닉에 다다랐습니다.
 
하지만 천천히 생각해보면, 아직 끝이 아닙니다.
 
분명 방법이 있을 거에요. 시아록, 지능 판정.
 
시아록: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56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픈 그를 쉬게 하기 위해서라도, 슈슈를 숨길 곳이 필요합니다.
 
알맞은 곳을 찾는다면 백신을 찾아 떠나거나, 하다못해 간호할 수라도 있겠죠.
 
그렇게 하면 분명 슈슈를 구할 수 있을 겁니다.
 
빌딩 입구에서 보이는 문은 온통 무너져 있으니, 더 안쪽까지 들어가야 할 겁니다.
 
시아록:(그래, 숨겨서.. 숨기고 얼른 다녀오면.. 다시금 손톱을 물어뜯다가 당신을 추슬러 끌어안고서 안쪽으로 급하게 발을 옮겼다.)
 
 
구분선파도
 
 
젖은 발걸음 소리가 고요한 복도를 울리면,
 
걸음걸음마다 검은 물로 발자국이 남습니다.
 
팔에 닿아오는 체온은 불타는 것처럼 뜨겁습니다.
 
이렇게 펄펄 끓을 것처럼 치솟아오르다가, 곧장 아래로 추락하겠죠.
 
그나마 바깥에서 들어와야 할 햇빛도 이제는 구름에 가려져, 빌딩은 온통 어둡습니다.
 
문 밖만 살펴도 온통 구겨지고 무녀져 있는데, 안쪽은 더 심각합니다.
 
부서진 책상이며 유리조각, 어디서 쓸려왔는지 모를 간판이며 잡동사니.
 
그를 숨길 만한 곳은 조금도 보이지 않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계단은 무너진 지 오래입니다.
 
어디로 가야 좋단 말인가요. 꼭 길을 잃은 어린애가 된 기분입니다.
 
마치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무섭습니다. 당신 곁에는 분명 슈슈가 있는데도.
 
이를 악물고 주변을 살핍니다. 시아록, 관찰력 판정.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2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급한 마음에 불쑥 짜증이 치밀어 발로 바닥에 거슬리는 것을 차버렸다.)
 
마음 가는 대로 바닥의 나무판자를 발로 차면, 발이 아픕니다.
 
어둠이 좀먹는 시야에 발을 헛딛기도 여러 번입니다.
 
쓸린 상처가 생겨나지만, 지금 무엇보다 욱신거리는 건 마음 쪽입니다.
 
얼마나 헤맸을까요. 눈에 띄는 문을 하나 발견합니다.
 
우선 어느 곳도 무너지거나 뚫리지 않아 안전하고.
 
청소용 자루걸레가 문간에 비스듬히 세워져 있습니다.
 
고전적이고 확실한 잠금 방식이죠.
 
시아록:(아픔도 곧 짜증으로 치환되었다가 깨끗하고 안전해보이는 문을 발견하고서야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문 안에 뭐 없겠지? 조금 급한 발걸음으로 문에 다가갔다.)
 
다가가면 쇠 파이프가 닫혀 있는 문의 문고리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빌딩에서 잠기는 문이라고는 여기밖에 없어 보입니다.
 
시아록:(쇠파이프를 빼내고 슬쩍 열어 안을 확인했다.)
 
막대기를 치우고 문을 열면 그곳에는 ‘쇠약해진 괴물’이 있습니다.
 
이 약해 보이는 괴물은 등을 돌린 채 웅크리고 있습니다.
 
병에라도 걸린 것 같고, 당신이 왔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왜소한 등이 덜덜 떨리고 있습니다. *습격이 가능합니다. 필수는 아닙니다.
 
시아록:(슈슈의 상태를 보고있자니 괜히 신경쓰여서 인상만 썼다. 편하게 공격하기도 글렀다. 마른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냥 빨리 여기서 쫓아낼까?)
 
쫓아낼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요?
 
시아록:(소리에 예민했던가.. 소리를 내면 쫓아나가려나.. 둔감해진 머리가 어설프게 방법을 떠올렸다. )
 
큰 소리를 내면 반응하기는 하겠지만, 괴물의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아 방에서 나갈 것처럼은 안 보입니다.
 
실제로 당신을 발견한 괴물이 아무렇게나 팔을 휘두르며 점점 구석으로 붙고 있을 뿐이니까요.
 
시아록:... (한숨을 내뱉고 일단 문안으로 발을 옮겼다. 슈슈를 잠시 안전한 곳에 눕히고 끌어내던가 해야지.. 위협적으로도 느껴지지 않는 팔의 움직임을 보다가 모포와 옷가지들을 가방에서 잔뜩 꺼내 그와 반대편에 눕히고 덮고 싸매고는 고개를 구석의 괴물에게로 다시 돌렸다.)
 
그를 보호하듯 감싸두자 몸이 덮여 있던 경련이 조금씩 가라앉습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반대로, 구석의 괴물은 손발을 다 휘저으며,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약해진 괴물:--! -!
 
귀가 울릴 정도로 소리를 지르자, 저 멀리에서 다른 무언가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립니다.
 
...어떻게 하나요?
 
시아록:(갑자기 달라진 괴물의 태도에 놀라긴 했지만, 어차피 쫓아내던지 아니면.. 다른 방법은 한가지 밖에 없다. 일단 손도끼를 꺼내 쥐고서 위협하듯 밀어냈다.)
 
시아록:
근접전(격투)
기준치: 70/35/14
굴림: 1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분명 밀어내어 쫓아내려고만 했는데.
 
휘두른 도끼 끝에 섬뜩한 감촉이 걸립니다.
 
괴물이 피를 쏟아내며 쓰러집니다. 마지막 단말마 같은 떨림이, 도끼를 타고 전해집니다.
 
시아록:아...
 
말도 안 됩니다. 분명 닿지 않을 거리라고 생각했는데, 왜...?
 
시아록:(전혀 의도치 않았어서 움찔 손끝이 떨렸다.)
 
그러나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이 곳에 당신의 변명을 들어줄 사람은 없는 듯합니다.
 
... 아니, 하나 생겼네요.
 
괴물:아아…… 아, 아아아악!!!
 
아무래도 약해진 괴물이 동료를 부른 모양입니다.
 
점점 가까워지던 발소리가 멈추면, 흥분한 괴물이 바로 당신 앞에 있습니다.
 
괴물은 당신과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괴성을 질러대며 당신을 향해 달려옵니다.
 
건물을 울리는 기분 나쁜 울부짖음에 귀가 아플 지경입니다.
 
시아록:(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손도끼를 쥔 손이 그대로 휘둘러진다.)
 
*바로 전투에 돌입합니다.
 
괴물의 민첩 65, 시아록의 민첩 70. 시아록이 선공합니다.
 
시아록의 턴
 
시아록:
손도끼
기준치: 70/35/14
굴림: 82
판정결과: 실패
피해: 11
 
당신은 공격보다는 방어를 염두에 두고 무의식적으로 도끼를 휘두릅니다.
 
그래서일까요. 시퍼런 날붙이는 허공을 가를 뿐입니다.
 
괴물의 턴
 
괴물:아아아, 아아아아...
아아악-!!!
 
괴물은 악에 받친 듯 필사적으로 몸을 던집니다.
 
괴물:
날카로운 손톱
기준치: 70/35/14
굴림: 98
판정결과: 실패
피해: 2
 
물에서 미끄러지듯 달려오지만, 역시 당신을 맞추지 못하고 빗겨나갑니다.
 
시아록의 턴
 
시아록:
손도끼
기준치: 70/35/14
굴림: 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피해: 7
 
괴물의 심장 부근을 공격하자, 피가 뿜어져 나옵니다.
 
괴물은 중상을 입은 듯 잠시 몸을 가누지 못하지만...
 
상처에도 아랑곳 않고 재차 손톱을 휘둘러옵니다.
 
괴물:
날카로운 손톱
기준치: 70/35/14
굴림: 47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5
 
달려든 괴물의 날카롭고 긴 손톱이 엉망으로 휘둘러집니다.
 
당신을 공격하기는 커녕 도까에 그대로 맞기만 하네요.
 
파괴력은 있어 보이지만,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요.
 
이런 괴물을 본 적이 있던가?
 
일단 전투를 끝내고 생각해야 합니다.
 
슈테른의 상태가 더 급하니까요.
 
괴물의 턴
 
괴물은 무릎을 꺾으면서도 어떻게든 당신의 앞으로 걸어와, 당신의 허벅지를 노립니다.
 
괴물:
날카로운 손톱
기준치: 70/35/14
굴림: 2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피해: 4
 
간발의 차로 닿을 것 같습니다. 어떡할까요?
 
시아록:(급하게 뒤로 발을 빼낸다.)
 
회피하려면 회피 판정합니다.
 
시아록:
회피
기준치: 35/17/7
굴림: 37
판정결과: 실패
 
타는 듯한 고통이 허벅지, 그것도 가장 두꺼운 혈관이 지나가는 자리에 번집니다.
 
피가 왈칵 쏟아지고, 순간 꿈속에서 피를 흘리던 일이 생각납니다.
 
치명상이 아닌데도 눈앞이 어쩐지 흐립니다.
 
아... 여기서 쓰러지면 안 되는데.
 
시아록의 턴
 
공격받은 건 당신인데 괴물은 반작용만으로도 힘든지 거의 쓰러져 있습니다.
 
죽지 못해 살아있는 것 같은 모양새입니다.
 
마무리를 지어줄 때입니다.
 
시아록:
손도끼
기준치: 70/35/14
굴림: 60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7
 
두 팔에 힘을 실어 괴물의 머리를 노립니다.
 
괴물:
날카로운 손톱
기준치: 70/35/14
굴림: 59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5
 
하지만 당신의 팔을, 괴물이 양손으로 붙잡습니다.
 
죽음에 몰려있는 상황에서는 누구나 필사적이 되니까요.
 
살이 파고드는 느낌이 불쾌합니다. 피냄새가 지독합니다.
 
이건 누구의 피 냄새일까요? 당신? 괴물? 아니면...
 
괴물의 턴
 
그것에서 멈추지 않고, 괴물이 당신을 깔아뭉갤 것처럼 몸을 던집니다.
 
괴물:
날카로운 손톱
기준치: 70/35/14
굴림: 88
판정결과: 실패
피해: 3
 
하지만 아까의 타격이 컸는지, 몸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휘청거립니다.
 
넘어지는 와중에도 이 쪽을 겨냥하는 걸 잊지 않습니다만...
 
괴물은 결국 넘어진 뒤 다시 일어나지 못합니다.
 
괴물, 중상으로 인해 전투 불능.
 
전투를 종료합니다.
 
완전히 바닥에 쓰러진 괴물의 괴로운 숨이 흩어집니다.
 
빛을 잃어 가는 눈동자는 흐릿해지고, 붉은 피가 바닥에 낭자합니다.
 
그럼에도 당신의 발목을 붙잡고 힘겹게,
 
……힘겹게?
 
이상해요. 이 괴물은 마치 감정이 있는 것처럼 굴고 있습니다.
 
괴물의 입술이 달싹입니다. ……무언가 말하고 있네요.
 
시아록:(어지러운 시야로 달싹이는 입을 쳐다보았다.)
 
귀를 기울이려면, 듣기 판정합니다.
 
시아록: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31
판정결과: 보통 성공
 
괴물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떨어지면, 괴물의 마지막 말은…….
 
괴물:……지옥에나…… 떨어져----. 이, 괴……물.
 
선명하게 들린 단어.
 
“괴물”
 
지금 당신을 괴물이라고 부른 건가요? 누가 누굴?
 
아니, 이 괴물은 정말 이상합니다.
 
감정이 있고 인간의 말을 하는 괴물이라니 있을 수 없잖아요.
 
그러나 이런 것에 시간을 쓸 때가 아닙니다.
 
슈테른이 앓고 있으니까요.
 
시아록:(깊게 생각지 않고 슈슈의 가방에서 찢어낸 천으로 상처를 감고서 안에서 쓰러진 괴물들을 꺼내고는 문을 막아두었다.)
 
어질러지는 상을 간신히 맞붙이고, 겨우 뒷처리를 끝내고 나면.
 
슈슈는 여전히 열 때문에 기절해 있습니다.
 
그를 살피려던 차에, 바닥에 떨어진 노트를 하나 발견합니다.
 
지퍼백에 싸여 있습니다. 슈슈의 옷자락 근처에서 삐져나온 듯한 모양새입니다.
 
시아록:(떨어진 걸 보고 반사적으로 주워들었다.)
 
펼쳐 보면, 역시 익숙한 글씨체가
 
아니, 어디가 익숙한 거죠? 완전히 처음 보는 글씨체에 노트인데요.
 
그런데도 느껴지는 기시감을 치우지 못한 채, 당신은 노트를 넘깁니다.

핸드아웃: 슈테른의 노트―1

 

[1번째 기록]
벌써 사흘이 지났다. 세상이 혼란스러워진 만큼 지금 상황을 기록하고 정리하는 게 중요해졌다는 생각이 들어 일기를 쓴다.
우리는 우선 더 높은 빌딩으로 피신했다. 여기마저 잠기면 목숨을 걸고 헤엄쳐야 한다.
쫓기는 신세나 다름없는데도 붙잡아주는 손이 있으니 어쩐지 두렵지 않아. 이건 자존심일까, 용기일까.
 
[6번째 기록]
배낭을 감싸던 비닐이 찢어져서 많은 것들이 젖었다. 다행히도 이중으로 감싸 둔 수첩과 여분 옷은 무사했지만……
라디오에서 생존자가 모이는 빌딩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금은 새벽이라 당장 움직일 수는 없지만, 해가 뜨면 바로 이동하기로 했다.
 
[12번째 기록]
괴물이 생겨나고 있다. 핏줄이 파랗고 비늘과 손톱이 돋아 있었다. 겨우 도망쳤지만… 바닥에 흐르던 건 분명 피였다. 붉은색… 괴물이 흘린 걸까, 다른 생존자가 흘린 걸까? 어느 쪽이든 유쾌한 경우의 수는 아니다.
우리는 무사할 수 있을까… 무사할 거야.
 
[17번째 기록]
빌딩에 도착했지만, 살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혹시나 시체 중에서 부모님이 계실까 싶어서 당신이 말리는데도 막무가내로 뛰어들었다가… 괴물로 깨어난 사람이 있어서 죽을 뻔 했다. 시아록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시아록은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쉬고 있다. 다음부터 이런 짓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마음 속으로 약속했다.
 
[50번째 기록]
밤에 잠깐씩 조명이 켜지는 건물을 찾았다. 이 시대에 전기가 연결되는 것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사람의 흔적일지도 모르니까… 우선 그쪽을 목표로 향하고 있다.
 
[52번째 기록]
라디오에서 방송이 나왔다.
사람 목소리였다. 백신이 있다고 했다. 생존자들도 있다고. 우리가 여기 있으니, 희망을 잃지 말라고….
우리는 저 빌딩을 등대라고 부르기로 했다.


 
시아록:일기장이구나. (읽으면서 힐끔 슈슈에게 시선이 향한다.)
 
하지만 이상합니다.
 
분명 슈슈와 함께 지내면서, 등대 외에 다른 목표를 정한 적은 없거든요.
 
하지만 일기에는 분명 당신과 그가 생존자를 찾기 위해 빌딩을 향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당신이 잊어버릴 리가 없을 텐데
 
...뒤로도 페이지가 이어집니다.
 
읽어 볼까요?
 
시아록:(의아한 기분으로 다음 장을 넘겼다.)
 
기록이 잘 적혀 있던 수첩에 갑자기 빈 페이지가 생겨납니다.
 
몇 장이나 백지가 이어지더니, 곧 덜덜 떨리는 글씨가 뒤를 잇습니다.

핸드아웃: 슈테른의 노트―2

 

[…… 번째 기록]
기록하지 못했던 사흘간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야 펜을 들 정신이 생겼다.
시아록은…… 배가 고픈지 울부짖다가 지금은 잠들었다.
……
당신이 차라리 나를 탓해 주었더라면 마음이 편했을 텐데. 당신은 정신이 흐려지는 와중에도 울지 말라며 나를 달랬다.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아서 당신의 호흡 소리에 숨을 맞추고 있다.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 번째 기록]
등대로 가야 한다. 아집일 거라 생각하지만… 그 얼굴을 보고 있으면 도저히 죽게 둔다는 선택 따위는 떠올릴 수 없다.
일주일이나 시도해 봤지만 여전히 통조림은 드시지 못하고 계신다.
나를 먹이로 준다면 덜 배고파하실까? 하지만, 사람을 먹게 두는 건 당신이 바랄 것 같지 않다. 어떻게 하면 좋은 걸까.
 
 
[…… 번째 기록]
생존자를 만났었다. 총알이 스친 게 아니라면 나는 이미 죽었겠지.
괴물이라는 말이… 순간 누구를 가리킨 건지 헷갈렸다. …제정신으로 보이지 않겠지. 알고 있다. 하지만…
……
요즘은 당신에게 자꾸 말을 걸게 돼요. 어제는 검은 파도가 몰아치기 전 마지막 날에 대해 얘기했어요.
대답하는 목소리는 없지만, 이렇게 자꾸 당신과의 추억을 되짚다 보면, 계속 당신과 같이 있을 수 있으니까.
지금도 이렇게, 말하듯이 적게 되네요. 외로운 걸까요.
하지만, 버틸 거에요.


 
뒤에도 페이지가 있습니다. 어제의 기록입니다.
 
3단계: -
 
…기록에서 눈을 떼고, 무의식적으로 시선 가운데 슈슈를 두자마자,
 
당신이 그간 놓쳤던 기억들이 밀려들기 시작합니다.
 
*
 
꿈 속의 그 장소와 비슷한 공간입니다.
 
당신은 목에 붕대를 감고 있습니다. 피는 멎었지만, 푸른 핏줄은 야금야금 피부를 갉아먹고 덮어나갑니다.
 
당신 앞의 인간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합니다.
 
그의 팔은 멀쩡합니다. 상처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온몸은 축축하게 젖었지만, 이상하게도 온몸은 아주 편안하고,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의식이 잦아듭니다.
 
*
 
하지만 이번에는 전신이 답답합니다.
 
방금 전의 편안하고 몽롱한 감각은 달아난 지 오래입니다.
 
목소리가 들립니다. 눈앞의 무언가가 당신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긴 커녕 시끄럽고 거슬립니다.
 
당신은 자유롭지 못한 한쪽 팔을 들어 바닥을 쾅 내리칩니다.
 
그것만으로도 소음은 멎어들지만… 기분이 더 나아지는 일은 없습니다.
 
어쩌면 불쾌했던 게 아니라 무서운 걸지도 모르겠군요.
 
아직 가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당신이 참다 못해 고개를 들면, 눈앞의 인간은 움찔하더니 말합니다.
 
당신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습니다. 눈앞의 인간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확정짓지도 못한 채로.
 
하지만 묶인 상태라 당신의 손이 그에게 닿는 일은 없습니다.
 
*
 
다시 거슬리는 소리에 잠에서 깹니다.
 
어슴푸레한 빛이 문을 넘어 들어오지만, 당신이 묶여 있는 곳까지 닿는 일은 없습니다.
 
그는 쏟아지는 햇빛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합니다.
 
어떤 말을 해도 대답이 돌아오는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입을 다물지 않는 인간을 쫓아냈으면 모를까.
 
하지만 아무리 당신이 불편해해도, 그날따라 인간은 말이 길었습니다.
 
배고픔에 눈앞이 흐려집니다. 휘두른 팔이 생채기를 내지만, 눈 앞의 인간은 도망치지 않고 얘기합니다.
 
*
 
긴 꿈을 꾼 것처럼, 정신이 서서히 깨어나며 모든 게 정리되기 시작합니다.
 
식량이 다 떨어졌던 빌딩. 싸움 자국과 핏자국이 남았던 방.
 
창문을 깨고, 도망치듯 물속으로 몸을 던졌던 당신.
 
물에 빠져있는 것처럼, 물거품 소리가 귓가에 들리기 시작합니다.
 
당신이 갖고 있었다 생각했던 기억 하나, 당신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괴물로 변한 당신이 인간 시절의 기억을 갖고 있을 리 없으니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귓가에 누군가의 숨소리가 들립니다.
 
힘겹게 떨리고 있습니다.
 
전신은 핏줄로 뒤덮이고, 팔에는 붕대를 감은 채로.
 
슈테른:...시, 아록.
일기, 읽으셨어요? (답을 알면서도 묻는다.)
 
시아록:... 내가 널 물었어?
(대답 대신 다른 질문이 대답했다.)
 
슈테른:...전에 떠나온 빌딩에, 생존자가 들어왔었어요.
당신이 그 사람을 물려고 하는 게 보여서, 막다가.
당신이 보기 전에 핏자국은 닦고 싶었는데. ...
 
슈테른은 들고 다닌 적 없던 방망이를 쓴 흔적.
 
유독 불길한 기분이 들어 얼굴이 절로 찌푸려지던 핏자국.
 
조금씩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 듭니다.
 
슈테른:...당신은 누군가를 물거나 잡아먹는 걸 원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물린 직후에, 당신이 갑자기 도망치더니 물에 빠져버려서......
 
시아록:그랬구나.. (어째서 눈물이 나올 것 같을 때도 늘 제 눈은 버석했는지 알 것 같았다. 혼자 살아남지, 뭐하러 여기까지 저를 힘겹게 끌고서 왔냐고 말하지 않는 건 저도 그럴 것이라는 것을 알아서 네가 무슨 마음으로 매달려있었는지 너무나도 잘 알아서 무너져 내린 무릎걸음으로 네게 다가갔다.)
괜찮아? (한숨처럼 같은 말을 내뱉고 네 머리카락을 손톱끝으로 닿지 않게 넘겼다.)
 
슈테른:...괜찮아요. 당신이 충격을 받거나, 절 원망해도. 그것도 다 끌어안겠다고 생각했으니까.
등대에 가면 당신을 되돌릴 수 있을 테니까.
 
시아록:글쎄, 그런 기분은 아닌데. 너나 나나 너무 미련해서 웃음이 나. (헛웃음 지어진 입가는 그저 일그러지기만 했을 터여서 너는 전혀 못 알아봤을지도 모르겠다. 어딘지 가슴 속이 체한 듯 꽉 막힌 기분이 들었다.)
등대에 다녀올까?
(백신은... 저는 안 들어도 너는 듣지 않을까?)
 
슈테른:하지만, 당신이 저 때문에 인간을... 죽였어요. (흘릴 눈물은 이미 어제 다 흘려버려서, 더는 울지도 못한다.)
 
인간의 이성을 되찾은 당신은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당신과 다른 종족을 괴물로, 같은 종족을 인간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게 설명됩니다.
 
사람의 손을 바로 전까지 탄 안식처와 아주 가까운 곳에 사람이 아닌 괴물이 있었던 것도, 괴물들이 너무나 쉽게 쓰러진 것도,
 
괴물이라 생각했던 것이 사람의 말을 하던 것도.
 
시아록:그게 왜 너 때문이겠어. (예전 같았으면 경악하고 무너졌을 상황들에도 이성을 찾았어도 괴물이 된 탓일까, 아니면 제눈엔 괴물로 보였기 때문일까. 어쩐지 그렇구나, 하는 감상평이 잠깐 남았다가 이내 흩어졌다. 늘 중요한 건 너 뿐이라서.)
괜찮아. (제 입에서 튀어나오는 건 다시금 똑같은 말 뿐이다.)
 
슈테른:(등대에 갈 수 있을까. 누군가 우리를 받아주기는 할까. 감염된 상처보다도 당신을 구할 길이 없다는 게 무서워서... 그저 당신을 끌어안고, 비늘로 뒤덮인 한쪽 어깨에 얼굴을 댄다.) 제 감염 속도가 평균보다 느리긴 하지만,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기침 소리가 나더니 온몸이 들썩인다.)
 
시아록:(기침에도 몸이 흔들리는 네 등을 느리게 두드렸다.)
 
슈테른:...그래도, 말했잖아요.
어떻게든 당신과 함께 등대까지 갈 거라고.
고통 같은 건 벌 받는다고 생각하고 전부 견딜 테니까... (손을 더듬는다. 결국 당신의 손에 씻길 수 없는 피가 묻었음을 직감한다. 그렇게 만든 건 자신이라는 것도.)
데려가 주실래요.
 
시아록:그래, 같이 가자. (형용할 수 없는 기분으로 느리게 눈을 깜빡이다가 네 손을 잡았다.)
 
슈슈를 구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몸을 던져 대신 감염된 당신.
 
그런 당신을 구하고자 버틴 끝에, 당신을 이곳까지 끌고 와서는, 당신이 다른 사람을 무는 걸 막기까지 한 슈슈.
 
모든 게 비틀린 세상에서도, 구원은 순환합니다.
 
설령 이런 세상에서 구원이 몰락과 같은 의미라고 해도.
 
맞는 말이지만, 이곳은 동화가 아닌 현실입니다.
 
서로 사랑한다고 해서 마법처럼 모든 게 해결되는 일은 없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게 무너졌습니다. 윤리관, 인간으로서의 껍데기, 머무를 수 있는 안식처.
 
그저, 등대까지 함께 가겠다던 약속만이 우리의 등을 밀고 있습니다.
 
 
아득하게 붉은 노을과 시커멓게 몰려든 먹구름이 뒤섞이면,
 
거대한 늑대가 되어 달려온 포악한 파도가 철썩 소리를 내며 핏빛으로 산산이 부서집니다.
 
거칠어지는 파도 소리가 세상에 가득하군요.
 
폭풍이 올 거라는 신호입니다.
 
흐리게 깔린 어둠의 저편에 등대가 보입니다.
 
슈슈는 지금 수영을 할 수 없으니, 태우고 갈 것을 찾아야겠죠.
 
무게를 생각하면 나무 판자 같은 게 제일 적당할 것 같습니다.
 
마침 적당한 크기의 판자가 있잖아요.
 
이 건물에서 유일하게 망가지지 않은 문 말이에요.
 
뜯어내거나 부숴서 들고 가려면 근력 판정합니다.
 
시아록:
근력
기준치: 80/40/16
굴림: 1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아까 슈슈를 데려다두었던 방문을 뜯어내려 돌아가면
 
그 방 근처에는, 손톱과 무기로 무참히 살해당한,
 
아니, 찢긴 시체가 두 구 있습니다.
 
붉은 피를 남기며 바닥에서 차게 식어가는 그것은, 분명히 인간이었습니다.
 
살인의 흔적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한 시아록, 이성 판정.
 
시아록:
SAN Roll
기준치: 20/10/4
굴림: 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어쩐지… 괴물도 아니고 사람을 죽였는데 그렇게 큰 감흥이 남지 않습니다.
 
시아록:(제가 만든 참혹한 시신들을 내려보다가 옆에 곱게 누이듯 방안에 옮겨놓았다.)
 
당신이 그렇게 만들긴 했지만, 저 사람들은 죽은 후에도 함께하겠군요.
 
우리도 저렇게 될까요?
 
아무튼, 뜯어낸 문짝에 슈슈를 태우면 그럭저럭 배 역할을 합니다.
 
무사히 입수하고 배를 띄우기 위해 수영 판정합니다.
 
시아록:
수영
기준치: 85/42/17
굴림: 1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발에 달린 물갈퀴가 당신을 날아다니는 몸으로 만들어줍니다.
 
수영 속도는 아주 빠르고, 숨을 쉴 필요조차 없습니다.
 
당신은 검은 바다의 축복을 받은 자.
 
새카맣게 들러붙는 이 바닷물이 꼭 요람 같습니다.
 
너무나 안온해서 불쾌한 감각이 몸을 감쌉니다.
 
어떤 거대한 품속에 안 긴 듯, 갈라진 상처가 달라붙고 아뭅니다.
 
문고리를 꽉 붙잡고 배를 이끕니다. 이 속도라면 15분 안에 도착할 수 있겠네요.
 
시아록:
수영
기준치: 85/42/17
굴림: 92
판정결과: 실패
 
서늘한 갈퀴를 수백 개 겹쳐둔 듯한 물살이 크게 몰려오고 부서집니다.
 
당신은 아무렇지 않지만, 감염이 진행 중인 인간에게 바닷물은 독과도 같습니다.
 
한참 헤엄치다 보면, 팔에 무언가 걸립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시체입니다.
 
게다가 한두 구도 아닌지 줄줄이 떠내려오는 모습입니다.
 
익사체는 아닙니다. 오히려 상처 몇을 제외하면 멀쩡합니다.
 
그것만으론 별일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이것들… 전부 등대 방향에서 밀려오고 있네요.
 
심지어 극소수지만 괴물의 시체도 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걸까. 고개를 들면,
 
당신은 그제야, 이상함을 눈치챕니다.
 
분명 켜진 채여야 할 등대의 불빛이…
 
 
구분선파도
 
 
 
찰팍, 당신은 곧 고요한 빌딩, 등대에 도착합니다.
 
슈테른:...으으...
 
배가 지상에 턱 걸려 멈추는 충격만으로도 그가 앓는 소리를 냅니다.
 
슈테른:(머리가 울리는지 부여잡은 채 한동안 쓰러져 있다가) ...도착, 했어요?
 
시아록:괜찮아? (당신의 신음소리 하나에도 움찔거리며 문짝을 붙잡았다.)
응.. 도착했어. (했는데.. 라는 뒷말은 잠깐 삼켰다가 입을 열었다.) 불이 꺼져있어..
 
혹시나 해서 건물을 올려다봐도, 분명히 등대 건물은 맞습니다.
 
잘못 찾아온 걸지도 모른다는 얄팍한 희망을 품지도 못할 거란 소리입니다.
 
슈테른:괘, 괜찮... 은데... 몸에 감각이 없어요. (팔을 부여잡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 한다.)
건강
기준치: 30/15/6
굴림: 36
판정결과: 실패
 
몸의 일부가 얼어붙은 사람처럼 벌벌 떨던 그는, 다리를 조금 드는 동작만으로도 고꾸라집집니다.
 
더 움직이지도 못하네요. 게다가 통각이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는 것 같고요.
 
시아록:(깜짝 놀라 당신의 팔을 붙잡는다.) 전혀 안 괜찮잖아.
(살짝 찌푸려진 미간으로 움직이기도 힘겨워보이는 당신을 훑어보다가) 그냥 슈슈가 안기거나 업히는 게 편하겠는데..
 
슈테른:(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저, 좀... 옮겨주세요.
무, 무겁겠지만... 같이 가기로 했으니까. (이 와중에도 업히는 게 신경쓰이는지 목소리 톤이 어긋난다.)
 
시아록:무거울 리가 없잖아? (그대로 당신을 안아들었다.)
 
지금의 몸은 힘줄도 억세고, 근육도 아주 단단합니다.
 
성인을 거대 인형 안아올리듯 가볍게 들 수 있을 정도입니다.
 
당신에게 안긴 그는 탁해진 눈으로, 자조적으로 웃습니다.
 
슈테른:...원래 계획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거나 환각을 보는 당신이 길을 잃지 않게, 제가 이끌고 갈 예정이었는데.
 
시아록:그랬어? (당신의 말에 웃으며 여상하게 대답했다. -제 웃음이 정말 웃음소리처럼 들리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만.-
 
슈테른: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반대가 됐네요. (안긴 채로 당신의 앞머리를 쓸어내린다. 얼굴 근육이 움직이며 비늘끼리 맞부딪히고 끼기긱, 하는 소리를 내는 것 같지만, 곁에서 워낙 오래 지켜본지라 그게 기분이 좋다는 의사 표시인 건 알 수 있다.) 그래도 제가 없으면 백신을 구하기 힘들 수도 있으니까 조금만 더 참으세요.
 
시아록:(무얼 참아야 한다는 말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린 백신을 찾으러 가자.
 
당신은 그 말을 들으며, 주변을 살핍니다.
 
그다지 기울어지지 않은 빌딩의 로비 층인 모양입니다.
 
통조림 캔이며 기름, 버려진 옷가지 등이 쌓여있는 걸로 봐선
 
생존자가 머무르고 있던 건 확실하지만……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불길한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러고보니 찾아오는 길의 장례 행렬까지 만났었죠.
 
설마, 괴물의 습격에게 당했다거나…
 
정말로, 우리는 괴물에게 한 번 헤집어진 등대를 기어코 뒤집어서 백신을 강탈해내는,
 
괴물보다도 더 괴물같은 짓을 해야 하는 걸까요.
 
그런 섬뜩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가방 속에 묻혀있던 라디오에서 소리가 납니다.
 
어느 곳에서도 방송이 나오지 않아 고장난 거라 생각했던.
 
그리고 내려지는 것은, 일종의 선고입니다.
 
차라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부정확한 소음이라면 상상의 여지도 있을 법한데.
 
바로 앞에서 착각하지 말라는 듯 분명하게 들리는 음성 때문에 그것도 불가능합니다.
 
“이제 이 곳에, 희망은 없습니다.”
 
 
죽음과도 닮은 정적이 흐릅니다.
 
스피커에서는 짐을 싸는 듯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건 저쪽에, 저건 폐기하고… 어쩔 수 없…"
 
"백신은…"
 
마이크에서는 멀어졌는지 희미한 소음만 들립니다.
 
...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1층은 온통 물에 잠겨 있습니다.
 
이제 무얼 하면 좋을까요?
 
시아록:(너도 들었나? 힐끗, 시선이 당신에게로 향한다.)
(아까의 .. 장례식이 백신의 문제였을까..)
(백신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하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쏟아져내렸다.)
 
당신이 가만히 서 있으면, 옷깃을 잡아당기는 힘이 느껴집니다.
 
슈테른:... 가 봐요.
무슨 일인지 정확히 알아야, 다음으로 내릴 결정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 콜록.
 
시아록:그래... (겨역할 수 없는 당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가 들린 곳으로 발을 옮겼다.)
 
이 곳을 잠식한 물은 유독 무거워서 발걸음이 느려집니다.
 
…아니, 정확히는 물 때문이 아닙니다.
 
어둠처럼 텁텁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우리를 내리누르고 있습니다.
 
문을 열면, 아무래도 방송이 나오던 건 이 층이 아닌지 아무도 없습니다.
 
제법 깔끔하고 사람의 흔적이 남은 가구가 놓여 있었지만,
 
이제는 먼지가 쌓이지 않게 하는 흰 천이 씌여 있습니다.
 
마치 사망 선고를 받은 인간에게 덮는 천이 떠오릅니다.
 
이 공간 자체에… 장례식이라도 치러지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너머로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입니다.
 
올라가볼까요?
 
시아록:(1층엔 아무것도 없는 걸 확인하고는 2층으로 발길을 옮겼다.)
 
다음 층에 도착하면 계단과 이어진 문이 있습니다.
 
문을 열어 보면 텅 비어 있는 넓은 로비 사이사이에
 
산산조각 나 부서진 가구며 물건들이 보입니다.
 
그럼에도 폐허 위로 간이 침대가 여럿 놓여 있습니다.
 
옆에는 의자며 구급상자, 약병, 피 묻은 붕대 조각 같은 게 널부러져 있습니다.
 
간호의 흔적입니다. 하지만, 침대는 모두 비어 있습니다.
 
물에 쓸려나가고 지워진 핏자국이 이곳저곳에 흐릿하게 남아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침통한 곡소리가 들립니다.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비명을 지르고, 누군가는 그래도 쓰다 남은 백신을 챙기고, 누군가는 성호를 긋습니다.
 
당신은 무의식적으로, 이들이 '남겨진 사람들' 임을 알아챕니다.
 
당신이 들어오자마자 여기저기에서 경악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마저 조금 뒤에는 얼어붙은 듯 잠잠해집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에겐 도망칠 힘이 없거나,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시아록:(처절하고 끔찍한 공간이었다. 저들도, 아마 나도. 그러나 이런 아비규환에 신경을 팔리고 있을 때가 아니라서 그들을 뒤로 하고, 슈슈를 끌어안고 '무언가'를 찾아 헤매며 걸었다. 무엇을 찾는지도 모르겠는 채로.)
 
걸어가는 당신의 뒤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꼬리처럼 따라붙습니다.
 
잠시간 침묵이 맺히고,
 
그 밖에도 한참을 격한 목소리, 체념한 목소리가 번갈아 들립니다.
 
시아록:(백신을 맞고 죽었다고?)
 
대화 속에서는 얼핏 이상한 말이 오갑니다.
 
아무리 약을 잘못 만들었어도, 백신이 사람을 죽인다니요?
 
게다가 초기에는 별다른 문제도 없었던 백신입니다.
 
무슨 일이 생겼던 건지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마침 장례식장을 지나가면, 복도 한켠에 서고로 보이는 문이 있습니다.
 
지금의 도서관을 떠올리려고 하지 마세요. 책장 같은 건 없이, 그저 길거리 좌판처럼 파일 몇 개가 쌓여 있을 뿐이니까요.
 
시아록:(엉망으로 쌓인 파일들을 집어들고는 당신도 볼 수 있게 펼쳤다.)
 
누군가의 기록인 듯, 조금 삐뚤빼뚤한 글씨가 적혀 있습니다.
 
한 달 전의 날짜에 작성된 일기입니다.
 
하얗고 깨끗했던 종이를 검은 물이 잡아먹은 채입니다.
 
일지
 
…슈테른의 감염 단계는 3단계.
 
이 일지와 등대 안의 정황을 살펴보면,
 
아무래도 백신은 우리에게 '인간으로서 죽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설명이 너무 부족합니다.
 
현상만 있고, 원인은 하나도 적혀있지 않잖아요.
 
이걸 잘 아는 누군가가 없을까요? 하다못해 백신을 찾기 위해서라도 건물을 더 둘러볼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시아록:(백신을 맞았을 때의 상황이라던가는 알게 되었지만 크게 도움되는 이야기가 적힌 건 아니어서 한숨만 내쉬며 파일을 덮었다.) 별 도움되는 얘기가 적힌 건 아니네... 좀 더 찾아볼까, 슈슈. (당신에게 질문과 동시에 발을 옮기며 주변을 살핀다.)
 
다행인지…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한쪽에 있습니다.
 
...하지만, 방금의 전의를 잃은 사람들과는 달리, 윗층의 사람들과는 전투를 피하기 힘들 겁니다.
 
윗층은 등대의 최상층. 백신과 그 연구자들이 있는 곳일 테니까요.
 
어쩌면 한 명, 아니면 그 이상의 생명을 거두게 될 지도 모릅니다.
 
원치 않게 죽여온 그 사람들처럼.
 
그래도 올라갈까요?
 
시아록:(모로 비튼 고개가 위층을 올려다보았다가 다시 제 품의 당신을 쳐다보았다. 제 우선순위는 당신 뿐이다. 천천히 올라가는 계단을 밟았다.)
 
최상층에서는 말소리가 드문드문 울립니다.
 
가장 하늘과 가까운 층.
 
그럼에도 유일한 광원인 달빛은,
 
오늘따라 흐릿하기만 합니다.
 
주변이 밝아지는 것보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는 게 더 빠를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우리가 유리하죠.
 
어둠에 숨어들 수 있으니까요. 시아록, 은밀행동 판정.
 
시아록:
은밀행동
기준치: 65/32/13
굴림: 87
판정결과: 실패
 
아무래도 인기척을 들킨 모양입니다.
 
연구복을 입거나 고글을 쓴 사람들이, 이쪽으로 다가옵니다.
 
손에는 각각 무기가 들린 채입니다.
 
어떻게 하나요?
 
크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대화를 시도하거나, 협박하거나.
 
시아록:(말이라도 걸어볼까. 상황이 악화된다면...... 어쩔 수 없지만. 혼자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더 이상 인간의 발성 기관이 없습니다.
 
말인즉슨…… 음성으로 대화하긴 힘드니 통역 수단을 빌려야 한다는 겁니다.
 
슈슈에게 맡길 수도 있고(좀 힘들어하긴 하겠지만), 수기를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둘 다 죽을 위험을 감수하긴 해야겠죠.
 
당신에겐 공격할 의사가 없어도 저들은 아니니까요.
 
시아록:(쉬운 게 없네. 혼자서 얕은 짜증을 내며 슈슈에게 말을 걸었다.) 슈슈 많이 힘들어?
(많이 힘들면 굳이 슈슈까지 나서서 대화를 시도해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 동시에 적을 것도 찾았다.)
 
슈테른:(기절한 것처럼 가만히 있다가, 당신의 말에 고개를 흔들고 살을 꼬집어 겨우 정신을 차린다.)
건강
기준치: 30/15/6
굴림: 1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무슨 일이에요? (괴물 특유의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살짝 섞여 나오지만, 의외로 목소리는 매끄럽다.)
 
시아록:음.. 대화를 시도라도 해볼까, 하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하는 말을 저들이 못 알아들을 거야..
 
슈테른:알, 알겠어요. ...아까, 파일을 제대로 못 읽어서 그런데, 뭐라고 물어보면 좋을까요?
 
시아록:백신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가 듣고 싶다고? 사실 백신을 맞고 난 후에 반응같은 것만 적혀 있어서 딱히 도움은 안 되었거든.
 
슈테른:... (당신이 말하는 중간에 콜록 소리를 낸다. 눈의 생기가 점멸한다.) 네... (당신이 말한 걸 잊지 않으려는 듯 입으로 계속 외우며 걸어간다.)
 
시아록:(당신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잡아챌 수 있도록.)
 
슈테른:시, 시아록은 따라오면... 안 돼요.
위험, 한 일이 생기면 바로 도망쳐야 해요. 알겠죠...? (비틀거리는 와중에도 그 말을 남긴 뒤에야 방으로 들어간다.)
 
그는 흡사 기어가는 것처럼 걸어갑니다.
 
...3단계의 감염자들은 정신을 잃으면 끝난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었죠.
 
아까도 반쯤 기절해있던 걸 보면, 시간이 얼마 없음은 분명합니다.
 
시아록:(도망갈 생각은 없는데.. 기어가듯 걷는 모습을 보자니 마음만 조급해져서 제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문에 기대 앉아 대화소리를 들어봅시다. 시아록, 듣기 판정.
 
시아록: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4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당신이 말한 대로 질문을 내뱉는 슈테른의 모습이 보입니다.
 
다만 말한다기보단, 그저 '음성을 출력하는' 것에 불과해보일 만큼 멍한 모습입니다.
 
연구자1:혹시 백신을 맞은 사람들이 죽은 원인이 알고 싶으신 거라면…
그걸 모르니까 등대의 문을 닫겠다는 겁니다.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피를 흘렸어요.
 
슈테른:…그럼, 백신이라도… 받아갈 수 있나요?
 
연구자1:드릴 수는 있어요. 전부 연구 자료라 여분을 드릴 순 없고, 대신 1인분이라면…
더 넉넉히 드리고 싶지만, 이미 비상용으로 빼둔 걸 제외하곤 다른 빌딩으로 보낸 채에요.
 
그렇다면 받을 수 있는 백신은 1개밖에 없다는 뜻이 됩니다.
 
다른 층의 생존자들이 갖고 있던 것들은 전부 쓰고 남은 것이라, 다 합쳐도 1인분이 나올 것 같진 않습니다.
 
…정말 이대로, 별 수확 없이 돌아가야만 할까요.
 
물에 빠진 것처럼 마음이 답답해지려는 찰나, 한 사람이 어렵사리 입을 여는 게 보입니다.
 
연구자2:저… 이건 가설이니까 듣기만 하세요.
저희는 추측하고 있어요. 몸이 완전히 돌아오더라도 의식이 돌아오지 못하는 게 사망의 요인이라면…
어쩌면 이 백신은, 정신의 감염을 치료하지는 못하는 건 아닐까, 하고요.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과 '실제 자신의 모습'이 다르다면 끝내는 정신이 붕괴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백신을 맞고 인간으로 돌아온 육체가 자신을 괴물이라 생각하는 정신과 만난다면?
그렇다면 사람들이 아무런 상처 없이도 급사한 건, 어쩌면 정신적 쇼크 때문이 아닐까 하고요……
 
정신의 감염. 괴물로서의 자아.
 
말은 복잡하지만, 연구원들의 말이 확실하다면,
 
완치의 조건은 딱 한 가지일 겁니다.
 
당신이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상황은 물 흐르듯 진전됩니다.
 
연구자들은 저들끼리 '시간이 없다'며 긴급 정지 장치를 눌러 연구실을 폐쇄하고,
 
구명정을 띄워 다른 곳으로 이동할 준비를 합니다.
 
건물 안은 비상 장치의 작동으로 인해 사이렌 소리가 가득찹니다.
 
위에 달린 스피커에서는 "입구가 봉쇄될 예정이니 10분 내로 짐을 챙겨 나가 달라"는 방송이 나옵니다.
 
시아록:(시끄러운 사이렌 소리 사이에서 문을 열고 슈슈를 찾았다.)
 
한때 희망의 빛을 품고 있던 이 등대는,
 
이제 밖에서 보면 적색 경보로 빛나는 건물이 됐을 테지요.
 
슈슈는 제대로 걷지 못해서인지,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뒤에 나옵니다.
 
손에는 백신 1개가 들린 채입니다.
 
얼굴에는 알 수 없는 기운이 서려 있습니다. 슬픈 건지, 절망한 건지, 기쁜 건지, 놀란 건지…
 
아니면 전부인지.
 
슈테른:... 시아록, 방, 방금 얘기... 콜록, 들었어요?
 
시아록:응, 들었지. (딱히 거짓말 할 생각은 없다.)
 
슈테른:...다른 생각은, 하지 마세요. 건물이 폐쇄된다니까, 우선은 빠져나가야 해요.
 
시아록:그래, 네 말대로 일단 나가자. (당신에게 다가가 그대로 안아올리고 밖으로 나기기 위해 움직였다.)
 
아래층의 장례식장으로 내려옵니다. 남은 시간은 7분 무렵.
 
혹시 챙겨가고 싶은 게 있다면 챙겨갈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생존자들이 남기고 간 짐이라든지. 쓸모있는 게 있나 털어보려면 행운 판정합니다.
 
시아록:
기준치: 80/40/16
굴림: 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여분의 식량과 약이 가득 들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짐을 내버려 둘 작정이라면, 이걸 갖고 있던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일일히 생각하기엔 시간이 모자랍니다.
 
당신은 빠른 속도로 내려와 1층 바닥을 딛습니다.
 
이 신체는 육지 생활에 적합하진 않지만, 소중한 사람을 안고 달리는 지금 당신의 마음은 누구보다도 급합니다.
 
마침내 입구 바깥까지 나왔을 때쯤,
 
쿠궁――
 
셔터가 묵직하게 내려앉는 소리를 내며 닫힙니다.
 
아니, 어쩌면 내려앉는 건 문뿐만이 아니라… 인류의 희망도 함께일 겁니다.
 
땅을 울리는 진동이 음울하고 짙은 건, 그 때문일 테죠.
 
한참을 사람들이 움직이고, 떠나갑니다. 여기서 떠나겠다는 목적이나마 쥐었기 때문일까요,
 
사람들에게선 이제까지 중 제일 생기가 묻어납니다.
 
...
 

 
흑색의 바다가 희고 덧없는 거품을 내며 밀려옵니다.
 
조용해진 백사장에는 이제 우리만 남았습니다.
 
말이 없는 건, 각자의 생각이 복잡하기 때문일까요.
 
우리에게 남겨진 백신은 단 한 사람의 분량입니다.
 
그것이 말하는 바는 명백합니다.
 
백신이 든 주사기는 그 효과에 비해 아주 가볍지만,
 
이것을 누구에게 쓸지에 대한 선택은 결코 가벼울 수 없겠죠.
 
그러다 보면 새삼스러운 생각이 듭니다.
 
인간의 이성이 우리를 사람으로서 남게 해주는 요인이라면…
 
당신의 백신은 등대가 아니라, 바로 옆에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슈테른:...당신이 맞게 할 생각이었는데...
제가, 완전히 변하면... 어떻게 하실 거에요?
 
시아록:(빤히 당신을 보다가 고개를 기울였다.) 음, 고작 한 사람 분량인데 날 맞히겠다고? 왜?
 
슈테른:그야, 한 사람 분량밖에 없으니까...?
연구, 원들의 말대로라면... 당신은... 백신을 맞으면 돌아갈 수 있잖아요.
 
시아록:그러니까, 나는 안전하잖아? 나중에 새로 백신을 구해서 맞아도 될 일이지.
 
슈테른:하지만 그건... 긴 기다림이 될 거에요.
당신이 언제 정신을 잃어버리고 완전히 괴물로 돌아갈지, 그때까지 백신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전부 모르는 일이고.
 
시아록:아냐, 난 괜찮을 거야. (그냥 그런 기분이 들었다.)
백신은, 아마 언젠가는 성공하겠지. 그 사람들 별로 포기한 것 같진 않던데.
 
슈테른:제가 안 괜찮아요...... 전 당신이 백신을 맞으면 좋겠어요. ...생존자분들이 당신에게 모진 소리를 들을 때 제 심정이 어땠는지 알아요?
그분들 탓을 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제가 같은 처지였어도 조금은 그런 생각을 했을 테니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적대할 거에요. 등대가 특수한 상황이었을 뿐이지, 당신이... 언제 우리가 죽여온 괴물들처럼 피를 흘리게 될지 알 수 없잖아요...
전 어차피 절 이용해서 백신을 얻어내고, 당신에게 맞히는 것밖에 생각해본 적 없어요. 그, 러니까 저도 괜찮을 거에요.
 
시아록:모진 소리.. (딱히 나쁜 이야기를 들었다는 자각은 없었다. 어차피 스치듯 지나가는 소리같았고, 마음에 와닿지도 않았다. 남들의 이야기가 나에게 중요하던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너에게는 그게 멍이 되었을지 몰라도, 제게는 그러했다. 그래서 저는 어깨만 으쓱이고 말았다.)
슈슈는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나는 애초부터 혼자 맞을 생각 전혀 없었는데.
그리고 나중엔 사람은 안 남을지도 모르지. (제대로 된 백신이 먼저 개발되는 게 빠를까, '우리'가 모든 인간을 감염시키는 게 빠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슈테른:당신이 상처받지 않은 건 기쁘지만...... 역시 전 모르겠어요. 당신의 말마따나 사람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으니, 사람들이 포기해서 모두가 괴물이 되는 것보단 당신이 위험해지는 게 빠를 거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백신이 개발되는 게 아무리 잠깐이라도, 잠깐인 만큼... 당신이 위험할 일은 이제 없었으면 해요.
...이대로면 많은 게 문제가 돼요. 괴물은 원래 인간을 먹고 살잖아요. 전 당신을 그렇게 둘 자신이 없지만, 당신이 제대로 먹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이제 싫어요... 떼 쓰는 소리지만. (당신을 끌어안고 목께에 고개를 부빈다. 비늘에 쓸려 상처가 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고개를 파묻어버리는 게 무언가를 외면하고 싶기라도 한 것 같다)
...하지만, 시아록이... 제가 괴물이 됐을 때 또, 똑같은 일을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도 없어서.
 
시아록:(가만히 들으며 당신의 등을 토닥였다.) 맞아. 나도 슈슈랑 똑같이 행동할 걸. (이런 고집불통인 점이 같다는 게 좋은 일인 건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어쨌든 같은 점이 있다는 건 마음에 드는 일이다.)
그리고 있잖아. 난 어차피 한 번 이성을 찾아봤으니 한 번 더 잃더라도 다시 찾을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하지 않아? (네가 있다면 그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것 같다. 넌 여전히 동의하지 않는 거 같지만. 지금껏 잘해오지 않았나. '잘' 해왔다는 말에 너는 부정할 지도 모르지만.)
 
슈테른:차라리, 혼자 맞을 생각이 없다면... 이 작은 분량이라도 나눠서... (하지만 충분한 양을 주사해 감염 단계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이상, 미래는 없다. 이성은 침몰하여 저 아래에 가라앉겠지. 이번엔 건져올려 줄 사람도 없이. 당신을 구하고 싶었던 것 뿐인데... 왜 이렇게 된 걸까. 차선의 방법이 있다는데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스스로가 답답해서, 마음이 타버릴 것 같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네요. 당신이 제가 겪은 일을 똑같이 겪게 하거나, 늘 배고픔에 시달리며 죽을 위험에 빠트리거나. (어느 쪽도 고르고 싶지 않다. 얄궃은 상황에 시간만 흘려보낸다. 왜 당신을 온전하게 구원할 수 없는 걸까. 더 좋은 선택지가 있었을까. 지금까지 당신을 '구하려고' 해온 노력에 의미는 있던 걸까... 끝도 없는 후회가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다시 물을게요. 당신이 백신을 맞고 절 내버려둘 생각은... 정말 없어요?
정말... 괜찮겠어요? 수많은 사람들에게 경멸과 모함을 받고, 어디에도 합류하거나 환영받지 못하고, 괴물과 인간의 경계에 애매하게 걸쳐져 평생 정처없이 이 검은 바다를 떠돌게 된다고 해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처지라고 해도...? (말을 내뱉으면서도 힘이 빠진다. 자신이 생각하는 당신이라면 무슨 답을 할지 이미 정해진 까닭이다.)
 
시아록:없지? 너도 못 한 걸 나보고 하라고? (네가 걱정과 후회와 체념과도 비슷한 무언가들이 가득한 말들을 내뱉는 걸 보는 데도 어쩐지 웃음이 났다. 진짜로 저한테는 당신이 말하는 그 모든 게 정말로 별 것 아니라서. 온전히 너만 괜찮다면 다 괜찮아서. 그래서 웃음이 났다.)
너만 있으면 다 괜찮은데. (그냥 삼키려고 했던 말을 구태여 입 밖으로 끄집어내었다. 이게 얼마나 나에게 중요한 일인지 너도 알 필요가 있었다.)
 
슈테른:......바보. (결국 참고 참았던 말이 역류한다. 말을 뱉은 뒤에 스스로도 놀라지만, 부정하는 대신 또 다른 묻어둔 말을 꺼낸다.) 저도에요. 사실... 당신이 없으면 이제 어딜 향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살아갈 순 있겠지만,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정말 죽을 때가 된 건가. 평소에 했으면 죽을 만큼 부끄러워할 법한 말이 술술 나온다)
당신이 괜찮다면, 저도 괜찮으니까. 어차피 등대도 당신을 되돌리겠단 심정으로 향한 거였고... 사실 그 전에도, 늘 목표엔 당신이 섞여있던 것 같아요.
이젠 당신이 제 등대가 된 셈인 거에요. 처음엔 당신을 살리려고 등대에 갔었는데... 이제 반대가 됐네요.
...얼마나 더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힘 닿는 데까지 속죄하고, 당신을 지킬게요. 전처럼 당신이 절 구해주면, 저도 당신을 구해줄게요. 그러면 되는 거죠? (한숨처럼 웃고, 파묻었던 고개를 빼내어 두 눈을 마주한다. 전에 쉼터에서 나누었던 대화처럼.)
 
시아록:응, 나도 늘 그랬어. 지금까지처럼 서로 구하면서 가보자. 앞으로 함께 나아가는 데는 그걸로 충분해. (너와 두 눈을 마주치고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새로운 목표가 정해졌다. 그게 너와 나를 앞으로 살리고 함께 하게 될 것들이라 기분 좋게 웃었다.)
 
결정을 내렸다면 이제 백신을 주사할 때입니다.
 
슈슈는 이제껏 당신과 대화한 덕에 정신이 흐려지지 않은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둘이 이별하는 일은 기필코 없겠죠.
 
앞으로 많은 난관이 있을 겁니다.
 
불확실한 미래. 우리를 적대할 사람들. 언제 파도에 쓸려나가 지워질 지 모르는 두 사람의 생.
 
그럼에도 어쩐지, 이게 작별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옵니다.
 
당신은 슈슈도 당신과 똑같은 표정일 거라 확신하며, 주삿바늘을 그의 피부에 찌릅니다.
 
새빨간 액체가 푸르게 변한 슈테른의 핏줄 속으로 들어갑니다.
 
백신을 위해 무리한 온몸이 비명을 지르고 피곤하지만,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는 건, 함께 있는 이 상황이 꿈처럼 연약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겠죠.
 
곧 슈슈도 전전히 눈을 감습니다. 푸르게 돋은 핏줄이 가라앉고 비늘은 떨어져나가며,
 
변형됐던 손발의 일부도 당신이 익히 아는 형태로 되돌아옵니다.
 
당신에게 또 다른 의미의 백신을 준 사람.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구원을 준 사람이, 당신의 손으로 구해집니다.
 
모든 게 비틀린 세상에서도, 구원은 순환하므로.
 
잠에 빠져들 수록, 파도 소리와 뱃고동 소리, 무언가 물에 빠지는 소리...
 
이 세계를 둘러싼 소음들이 일체 제거됩니다.
 
결국 최후에 남는 것은 서로의 숨소리 뿐입니다.
 
우리는 걱정일랑 잊어버리고 서로의 곁에서 눈을 감습니다.
 
등대를 잃었지만, 또 다른 등대가 비춰주는 밤하늘은,
 
밝고 아름답습니다.
 
END.A 검은 바다에 떠오른 등대
 
KPC 생환, 탐사자 로스트?
 
탐사자의 불안정한 이성은 언제 떠나갈 지 모릅니다.
 
하지만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마 우리는 함께겠죠.
 

 

 

 

더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e-G1PvNQn64 

 

개변을 했다지만 설마 이런 분위기의 엔딩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하아... 인외는 맛있고 인외앤캐는 2제곱배 맛있기 때문에 만족합니다. 쩝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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