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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른&시아록] 잘 자요, 고마워요, 그리고 또 만나요.

퍄퍙책미 2022. 6. 7. 03:44

KPC 프루헤 슈테른     PC 시아록

날짜 2021.02.06~2021.02.11     플레이타임 총 13시간

원문 시나리오 링크     https://call-of-danan.postype.com/post/4201644

 

 

 

※아래 내용은 플레이로그입니다. 시나리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므로 열람에 주의해주세요.※

※과학적으로 전혀 고증이 되지 않은 내용이 가득합니다!! 픽션으로 받아들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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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C: 안드로이드인 슈테른은 원래 시제품으로 만들어졌으나 운송사 측 사고로 결함이 생겨서 그대로 버려진 케이스다. 기능이나 작동에는 문제가 없지만, 정품 인증이 되지 않아 보안이 조금 취약한 편.

 

 

PC: 도시 안 출신으로 부모님이 물려주신 집에서 살고 있다. 물려주신 돈으로는 사치만 하지 않고, 검소하게 산다면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지만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기엔 그래서 좋아하는 악세서리 가게를 하기로 했다. 수입에는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사치하고 살 생각도 없어서.

 

처음에 슈테른(안드로이드)을 주워온 이유는 그냥 버려진 건 안타까우니까 하는 길가다 고양이를 데려온 정도의 감각으로, 딱히 돈을 아낀다거나 안드로이드를 살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리고 슈테른과 지내면서 곧 혼자 있을 때는 별로 깨닫지 못했던 외로움이라는 걸 알았다. 꽤 소중하게 대하면서 같이 악세서리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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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지막한 오후. 곧 비가 쏟아질 것처럼 하늘이 우중충합니다. 아침부터 틀어진 TV는 열정적으로 온갖 광고를 토해낸 후에 늦은 오후의 뉴스를 송출합니다.
 
쉘터 안의 잡다한 소식을 늘어놓던 두 명의 아나운서 목소리는 지루할 정도로 단조로워서 졸았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게 만들 정도입니다.
 
마지막 소식입니다, 라는 말로 운을 뗀 한 명의 아나운서는 세상의 멸망을 고했습니다.
 
표정도, 목소리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아나운서는 일상의 편린을 읊조리듯 무감각이 보고했고, 전 쉘터에 송출되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행은 소름 끼칠 정도로 단조로웠고, 바깥은 고요했고, 인공 빗방울은 사납게 유리창을 내리치기 시작합니다. 모든 것이 일상처럼 느껴질 만큼 끔찍한 안정감이었습니다.
 
떠들어대던 뉴스가 꺼집니다. 곧이어 들끓는 커피 포트가 김을 뿜으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네요. 고개를 돌리면 당신의 안드로이드, 슈테른이 손잡이를 쥐곤 머그잔으로 뜨거운 액체를 쏟아내는 것이 보입니다.
 
잔으로 쏟아지는 액체의 아우성 사이로 과거가 파고들기 시작합니다. 인류를 위한, 인류에 의한, 안드로이드. 당신은 슈테른을 처음으로 발견했던 그 날을 떠올립니다.
 
안드로이드란 당신에게 전혀 놀라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다른 것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박스만 조금 파손된 채로,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상태로 길바닥에 버려져 있었다는 것이겠죠.
 
당신은 별 생각 없이 그를 집으로 들였습니다. 빗물에 젖은 박스가 유달리 축축했죠.
 
원래 주인을 잃고 그대로 버려질 뻔한 슈테른은, 당신의 손으로 비로소 세상을 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당신과 슈테른이 만났습니다.
 
...
 
잠시 옛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당신의 잡념을 깨는 문장의 토막이 발치로 떨어집니다.
 
슈테른:여행을 하고 싶어요. 같이 가 주실래요?
 
시아록:응, 여행? 갑자기? (생각지 못한 단어에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슈테른:(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저희는 계속 쉘터 안에서만 살았잖아요, 인간이 만든 방주 안에서.
그래서... 쉘터 밖의 세상은 어떨지 궁금해졌어요.
가능하다면 직접 보고 싶어질 만큼.
 
시아록:바깥에...? 으음.. (조금 전 들은 뉴스를 떠올리며 잠시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바깥을 구경하는 정도라면 나쁘진 않겠지...?
 
슈테른:네. 그럼...
쉘터 안은 꽤 넓으니까, 나가기까지 며칠은 걸릴 거에요.
최소한 식량은 챙기는 게 좋겠죠. (당신에게 김이 나는 머그컵을 내민다.)
 
시아록:음, 그렇지? 필요한 게 뭘까? 좀 잘 챙겨가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식량이랑 돈이랑 음.. 또 뭐있지? (제대로 멀리까지 나가본 적 없는 탓에 무얼 챙겨야할지 모르겠어서 컵을 받으며 네게 묻는다.)
 
슈테른:짐을 최대한 줄이려면, 식량은 하루치 정도만 챙기고 가는 길에 추가로 구매하는 게 효율적일 거에요.
그 외에는 우천을 대비한 우산... 이 있으면 좋을 텐데, 이건 제가 챙길게요.
 
시아록:그럴까? 음. 보호수단 같은 건..? 잘 때 쓸 거라던가..
아, 우산. 그래..!
 
슈테른:잘 때 쓸 것이라... 집에 침낭이 있으니 그걸 가져가는 게 좋겠어요.
 
시아록:응, 침낭이랑... 옷가지도 조금 챙기는 게 좋겠지?
 
슈테른:방수가 될 수록 좋고요. 쉘터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는 가능한 한 건물 안에서 숙박하는 게 좋겠어요.
옷가지는... 쉘터 밖의 날씨가 어떨 지 모르니 긴팔옷 위주로. 피부를 보호할 수 있게요.
그 외에는 여름용 옷과 겨울용 옷 한 벌씩만 넣으면 충분할 것 같아요.
 
시아록:음, 알았어. (네가 말하는 것들을 정리하며 가방을 꺼내어 챙긴다.) 슈슈한테 필요한 것들은?
 
슈테른:저한테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가능한 한 챙길게요. 아무거나 남는 가방 하나 던져주실래요? (여유공간을 남겨두는 게 좋으니 책가방 크기 정도면 좋아요, 라고 덧붙였다.)
 
시아록:너한테 필요한 것도 챙겨야지. (책가방 정도 크기의 다른 가방을 꺼내 네게 건넨다.)
 
슈테른:으음... 저는 솔직히 혈혈단신으로 나가도 별 문제가 없어서.
그럼 토치를 챙길까요? 간단하게라도 요리할 수 있게요.
 
시아록:음, 확실히 그러면 편하겠지? 너무 짐되거나 하면 챙기지는 말고!
 
슈테른:알겠어요. (말을 멈추고 짐을 싸는 데 집중하기 시작한다. 동작이 점점 빨라지는 게, 어쩐지 들떠 보인다.)
 
시아록:(조금 들뜬 듯한 너를 보고 작게 웃고는 나머지 짐들을 챙겨 가방에 넣었다. 바깥의 상황은 전혀 모르겠으니 걱정되긴 하나 네가 좋아하는 것 같으니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기로 했다.)
다 챙기면 집을 한 번만 점검하고 출발하자.
 
슈테른:빠트린 건 없는지 확인하시려고요?
모든 물건을 다 들고 가는 건 무리니까 적당히 챙기는 게 좋겠어요.
 
시아록:아, 그런 것도 있지만.. 그냥 여행 가면 집을 오래 비우게 될 거잖아.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오래 머물렀던 집이고.. 정돈해서 깨끗하게 해둔 채로 밖으로 나가고 싶어서? 뭐 조금 정리하고 문단속하는 거 밖에 없겠지만.
 
슈테른:아...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지 눈이 크게 뜨인다.) 여행 전에 정돈을 하고 나간 적은 없어서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실 줄은 몰랐어요.
 
시아록:뭐.. 나도 여행간 적은 없지만, 지금은 세상이 이러니까? 쓸데없는 행동일지도 모르지만..
 
슈테른:집을 청소할까요? 원하신다면 명령을 내려주세요.
 
시아록:같이 조금만 청소하자. 정리랑 문, 창문단속정도면 충분하니까!
 
슈테른:음... 알겠어요. 그럼 간단하게 정리하고 문 잠금만 확인할게요.
 
집 청소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어디서부터 치울지 정해봅시다.
 
그리 넓은 집은 아니어서, [ 화장실 / 시아록의 방 / 창고 / 주방 ] 정도밖에는 없습니다.
 
시아록:방부터 치워볼까.
 
당신은 슈테른의 손을 잡고 방으로 향합니다. 침구가 조금 어질러져 있네요.
 
침대 정리 등은 슈테른이 하기로 하고, 당신은 사용하던 책상 위를 둘러봅니다.
 
시아록:(침구를 정리하는 슈슈를 한 번 보았다가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부모님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이 걸려 있고, 갖가지 책 위로 악세서리를 개발할 때 붙잡고 있었던 재료함이 보입니다.
 
그 옆에는 이리저리 휘갈겨 쓴 메모와, 당신의 가게 열쇠가 놓여 있습니다.
 
시아록:(책상에서 사진을 들고 한 번 가만히 관찰하다가 품 안 주머니에 챙겨넣었다. 재료함은 다시 잘 정리해두고, 메모는 책상서랍에 대강 정리해 넣었다. 마지막으로 가게 열쇠를 들고 흔들다가 가방에 챙겨넣었다.) 이정도면 되었나...
 
그 외에는 별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습니다. 당신은 발걸음을 돌립니다.
 
고개를 돌려 슈테른을 쳐다보면...
 
슈테른:
가사노동 Roll
기준치: 90/45/18
굴림: 81
판정결과: 보통 성공
 
... 일반인이 했다면 시간이 두세 배는 더 걸렸을 작업을 아무렇지도 않게 끝내놓고 앉아 있네요!
 
시아록:벌써 다했어? 역시 슈슈 빠르네.
 
그가 유능한 가정용 안드로이드임을 잊으면 안 되죠.
 
슈테른:이 정도면 다 된 것 같네요. ... 빨래도 돌려놓고 갈까요?
(품에 빨랫감을 조금 안고 있다.)
 
시아록:그럴까... 널어두고 나가도 괜찮겠지.
 
슈테른:그럼 다른 곳을 살펴보시는 동안 빨래하고 있을게요. (옷가지를 들고 창고로 향한다.)
 
시아록:응, 그래. 주방에 가 있을게.
 
주방은 이미 전에 치워두고 잤던 건지 깨끗합니다.
 
냉장고를 열어도 과일 같은 간식밖에 없습니다. 아까 필요한 건 전부 챙겼으니까요.
 
시아록:주방 깨끗하네. 가스랑 전기만 나중에 차단하고 나가면 되겠다.
 
가스 밸브같은 잡다한 것들을 점검해 보면... 전부 잘 잠겨있습니다.
 
주방 안의 작은 창문도 잘 잠겨있네요. 나가도 괜찮을 것 같아요.
 
시아록:주방은 다 잘 치워져있네. 그럼 창고에 가볼까. 슈슈 아직 창고에 있으려나
 
슈테른은 이미 푹 젖은 옷가지들을 널고 있습니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중인지 가까이 다가갈 수록 위잉 소리가 납니다.
 
창고 또한 별달리 볼 것은 없습니다. 아까 짐을 챙길 때 이미 한 번 뒤져봤으니까요.
 
다만 급하게 침낭을 꺼낸 곳에 여러 가정용품 박스가 마구잡이로 튀어나와 있는 게 보입니다.
 
시아록:(네가 빨래를 너는 동안 정리되지 않은 박스를 정리한다.)
 
박스들을 원래 있던 곳에 차곡차곡 집어넣고 나면, 전보다 훨씬 멀끔해 보입니다.
 
슈테른:아, 시아록. 빨래는 끝났어요. 이제 뭘 할까요?
 
시아록:화장실만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나가면 될 거 같아.
 
슈테른:알겠어요. (축축한 손으로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화장실에 있는 선반을 열어보면, 휴지나 물티슈, 칫솔같은 위생용품밖에 없습니다.
 
한 쪽 벽면에 있는 작은 이중창은 하나가 덜 닫혀 있네요. 그걸 발견한 건지 슈테른이 대신 닫아줍니다.
 
시아록:아, 고마워.
 
슈테른:네. 말씀하신 작업들은 모두 끝낸 것 같은데...
이제 슬슬 출발할까요?
 
시아록:그럴까. 다 정리도 했고 창문도 잘 잠갔으니까.
 
슈테른:(당신의 말에 가방 두 개를 챙기고, 마지막으로 거실의 불을 껐다. 저녁이라 그런지 불을 끄자 사방이 깜깜해진다.)
 
시아록:벌써 저녁이네. 너무 늦게 출발하는 거려나. (네가 가져나온 가방 하나를 받아 등에 맨다.)
 
슈테른:... 시아록.
 
시아록:응?
 
슈테른:아까의 여유 시간 동안 종말에 대해 조사해보았어요.
검색 결과 종말까지 남은 시간은...
아무리 많아도 사흘 남짓이라고 해요.
빠르면 이틀 안으로 쉘터가 무너지겠죠.
(표정은 없지만, 안타까워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 만큼 목소리가 떨린다) 어쩌면 이 집에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어요.
 
시아록:아.... 그런가.. (조금 쓴웃음을 짓는다.)
슈슈랑 꽤 오래 산 집인데 아쉽네. 아님 악세서리 재료함이라도 챙길 걸 그랬나?
(괜히 조금 가볍게 얘기한다.)
 
슈테른:(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쉘터 밖은 어떤 환경인지 전혀 모르니, 재료를 들고 나가도 전혀 다른 환경적 조건에 망가질 수도 있어요.
이제 좋아했던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을 때가 온 것 같네요.
그 외에 쓸 만한 정보는 없어요. ... 이만 나갈까요?
 
시아록:그렇네. 가자.
 
당신은 정들었던 집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뗍니다. 집에 있던 모든 것들은 멸망과 동시에 우그러져 형체도 알 수 없게 망가지겠죠.
 
그 사실을 떠올리자니 가슴이 지끈거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당신은 천천히 거리로 나아갑니다.
 
종말, 이틀 전
 
쏟아지는 비는 거세고, 사람들은 길가에 몇 보이지 않습니다. 고요한 적막 속에서 홀로 울부짖는 빗소리만이 허공을 가릅니다.
 
간간이 길목에 교통을 정리하는 안드로이드가 폭우 속에서 우산 없이 서 있는 것이 보입니다. 건물 곳곳에서는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지만, 여전히 종말에 대한 두려움과 좌절의 비명은 들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고개를 들어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아득한 빌딩과 줄을 지어 선 가로등, 곳곳에 널린 네온사인들의 불빛...
 
그 모든 것이 그림 안의 물감처럼 섞여 시야를 어지럽힙니다. 비가 와서인지 바닥에 불빛들이 훤히 비치며 까만 아스팔트를 덧칠하고 좀먹습니다.
 
곧 끝을 맺을 찬란한 인류 문명을, 당신은 천천히 눈에 새기며 가던 걸음을 계속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걷고 있으면, 옆에서 우산을 씌우고 있던 슈테른이 문득 얘기합니다.
 
슈테른:쉘터 밖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거기에도 무언가 존재한다면, 반짝이는 게 있으면 좋겠어요.
 
시아록:그러게.. 있으면 좋겠어!
 
슈테른:(찰박거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릴 만큼 도시는 고요하다. 일체의 감탄도, 비명도 들려오지 않는다. 그대로 감정을 잊고 굳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전에 역사관에서 봤던 거, 기억나세요?
푸른 녹음이 담긴 사진 밑에, 이렇게 쓰여있었잖아요. '오래 전, 지상에 있었던 자연적인 숲의 사진. 이 곳 안에는 원래 100여종 이상의 다양한 생물들이 거주해왔으나, 모두 멸종하여 지금은 폐허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쉘터의 외곽 주변에도 그 숲이라는 게 조성되어 있대요. 사진 속과는 다르게 인공적으로 형성된 거지만.
 
시아록:오, 그래? 그건 좀 궁금하다. 인공적이라고 해도 그 사진에서의 모습이랑 닮았으면 뭔가 엄청 좋을 거 같다.
제대로 말로 설명할 순 없지만.
 
슈테른:(당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 쉘터 밖에는 그런 것도 있을까요?
이런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생소한 질감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시아록:그러게.. 나도 쉘터 밖은 안 나가봐서 모르겠네. 그렇지만 있다고 생각하고 나가볼까. 기대가 나쁜 건 아니니까.
 
슈테른:미지의 장소니까, 이런 기대를 가지는 것에는 의미가 있겠죠. 그럴 것이라는 보장도 없지만,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으니까요.
무언가 새로운 게 있다면 좋겠어요.
 
시아록:응. 나가보면 뭔가 처음 보는 것들도 많을 거 같아.
반짝이는 것도 있으면 좋을 거 같고
 
슈테른:맞아요. ... 아, 도시 밖으로 나가본 적은 있으세요?
저는 도시를 벗어나는 것조차 처음이에요. 계속 이 안에서만 지냈으니까...
 
시아록:나도 도시에만 계속 살았었어. 슈슈랑 나가는 게 처음이야.
 
슈테른:그런가요? 도시 밖은 안보다 훨씬 어둡다고 해요. 가로등이나 간판같은 시설이 적어서...
무언가 밝힐 만한 게 없다면, 상점가에 들려서 사갈까요?
 
시아록:응, 랜턴이랑 초가 좋겠지? 랜턴 건전지도 어느정도 갈지도 모르고..
 
슈테른:그렇겠죠. 쉘터 밖에 나갈 때까지 쓸 걸 생각하면... 최대한 다양하게 사 가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에요.
 
상점가에는 가지각색의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불이 꺼진 가게 앞에 놓인 TV들이 시끄럽게 깜빡거리네요.
 
당신은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잡화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랜턴과 건전지는 다양하게 있군요.
 
다만 어디를 둘러봐도 아직 열려 있는 양초 전문점은 보이지 않습니다. 애초에 양초를 파는 가게도 워낙 적으니까요.
 
시아록:양초파는 곳은 없네.. 랜턴이랑 건전지를 좀 많이 사야할까?
 
슈테른:가능한 대용량의 건전지가 들어가는 랜턴을 사고, 건전지는... 10개들이 정도만 사도 충분할 것 같아요.
어차피 웬만해서는 건전지 하나도 꽤 오래 가니까...
 
시아록:그럴까? 좋아. (네 의견에 동의하며 랜턴과 건전지를 골랐다.)
 
당신은 필요한 물품을 사고 길거리로 나옵니다.
 
비가 오는 상점가는 빗물에 젖어 번들거렸고, 우그러진 네온사인의 불빛뿐입니다. 불이 꺼진 상점도 늘어진 거리는 답지 않게 우울해 보이기도 합니다.
 
아스팔트와 보도블록에 고인 색색의 빛을 피해 발걸음을 옮기던 슈테른은 문득 전자 상가 쪽을 바라봅니다.
 
슈테른:... 시아록, 사진기를 하나 사는 건 어떠세요?
저희의 추억을 남길 수 있게요.
 
시아록:아, 그거 좋겠다. 생각도 못했네. 좋아, 사진기.
(사진기를 골라 집어든다.)
 
사진기를 고르고 계산을 하면, 옆에서 슈테른이 자신의 볼일은 끝났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여행의 시작인 걸까요. 그것을 반기듯 쏟아지는 빗물의 양은 서서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가전제품점을 빠져나와 조금 걸으면, 한 안드로이드가 진열된 가게 유리창에 전자형 리플렛이 걸려있습니다.
 
시아록, 관찰력 판정.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100
판정결과: 대실패
 
책미 (GM):??????
 
하늘:(*대실패?!!!! 처음 봤어요..)
 
책미 (GM):저희 저번에도 한 번 봤었잖아요
그 뭐냐 빙장이었던가? 산치체크 할때요
 
하늘:그거 대실패였나요?
 
책미 (GM):
 
하늘:99짜리였던 거 같은데..
잘못 기억하고 있군요, 제가
왜 여기서 대실패...
 
책미 (GM):하... 하여튼 계속 진행할게요
 
빗물에 시야가 흐려진 탓에 잘 안 보이네요.
 
당신은 눈을 비비고 맑아진 눈으로 다시 리플렛을 살펴봅니다. 시아록, 관찰력 판정.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2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리플렛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쓰여있습니다.

핸드아웃: 의문의 리플렛

1. 친구와 연인 중, 하나를 고르면 다른 알고리즘은 삭제되어 복구가 불가능하오니, 신중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2. 랜덤 버튼을 누를 시, 저장된 무수히 많은 변수가 섞여 커스텀 됩니다. 원하는 안드로이드가 있다면 직접 커스텀 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3. 재 커스텀을 할 경우, 이전에 함께 보냈던 기억을 담은 메모리칩 또한 리셋되오니 이 역시 신중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4. 본 안드로이드만의 절충형 배터리가 있습니다. 일반 휘발유 등의 연료도 사용할 수 있지만, 이는 안드로이드 내부 부품에 큰 악영향을 끼쳐 오래 가지 못한다는 점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로 인한 a/s는 불가능합니다.

5. 배터리 소진까지 얼마 남지 않았을 경우, 삑삑―거리는 알림음이 들리오니 반드시 충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가동 중지가 되는 것으로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장기간 중지될 시 기억이 리셋될 수 있으니 주의해주십시오.


 
혹시 이 설명은...
 
시아록, 지능 판정.
 
시아록: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슈테른과 같은 기종의 사용 설명서가 아닐까요? 그러나 진열된 안드로이드들을 보면, 생김새가 전부 조금씩 달라 같은지 다른지도 구별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안드로이드 사이에 조금씩 공통점은 있을 테니까요. 참고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시아록:역시 그냥 눈으로 구분하는 건 어렵네.. (팜플렛을 챙겨 가방에 넣었다.)
 
*리플렛이기에 챙길 수는 없지만, 당신은 스마트폰으로 그것의 사진을 찍어두었습니다. <핸드아웃> 탭에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그런 것들을 시선으로 더듬어 내려가다 보니 누군가의 손이 불쑥 찾아들어 시야의 일부를 가립니다.
 
불청객의 존재를 찾으며 고개를 돌리자 옆에 선 채 당신을 보고 있는 슈테른이 보이네요. 당신이 뭘 그렇게 보고 있는지 궁금한 듯 합니다.
 
시아록:아, 슈슈. 미안... 내가 기다리게했어?
 
슈테른:(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는 게 제 업무니까요. (그렇게 말하곤 우산을 당신 쪽으로 기울인다.)
 
시아록:아, 고마워. 그래도 같이 쓰자. (너에게로 다시 좀 더 기울게 하며) 이제 갈까.
 
슈테른:알겠어요. 마저 갈까요? (길을 안내하겠다고 말하곤 어느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간다.)
 
시아록:(너를 따라 걷는다.)
 
둘은 다시 빗속을 걷습니다.
 
우산의 팽팽한 표면을 두들기는 빗줄기와 서늘하지만 습한 바람. 어둠이 켜켜이 내려앉은 거리 사이로 우왁스럽게 파고드는 네온사인의 불빛.
 
상점가를 거의 다 빠져나올 때 즈음입니다. 문득 어두운 골목이 시선을 잡아끕니다.
 
시아록, 관찰 판정.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3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형형색색의 길거리를 말미암아 구석으로 뻗어 나간 좁고 어두운 골목입니다. 건물의 작은 형광등 한 줄기에 연명하며 숨을 쉬는 뒷골목에는 무수히 많은 안드로이드가 있습니다.
 
망가진 혹은 전원이 방전된 무수히 많은 안드로이들이 마치 죽은 것처럼 눈을 감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둠 속이 무덤이라는 양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것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차라리 눈을 돌려버리고 싶을 정도로요.
 
시아록:(시야에 들어온 장면에 저도 모르게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당신이 골목을 바라보자 슈테른 또한 당신의 옆에서 골목을 바라봅니다. 한참을 바라보던 그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그것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셔터 소리가 끝나고, 슈테른이 우산을 내버려둔 채로 그 무덤에 조금 더 다가갑니다. 안드로이드 특유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무표정으로요.
 
시아록:앗, 그건 왜.. 찍었어..?
 
슈테른:(뒤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 안드로이드들은 모두 쓸모가 없거나 수명이 다해서 죽은 거겠죠?
망가진 걸 버리고 새 물건을 사는 건 당연한 것이지만... 어쩐지 그들이 있었다는 걸 기록하고 싶었어요.
멸망 전에, 그들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고 싶어서요... 이것도 계산된 반응일까요.
 
시아록:..아냐. (네 말에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눈을 돌렸던 골목길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렇구나. .. 응. 그것도 좋겠다. 그들을 기억하는 건 너랑 내가 마지막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슈테른:... 마지막. (사실 멸망 전이 아니라고 해도 그들을 눈에, 그리고 기억에 담을 만한 자들은 우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다들 각자의 삶을 사느라 바쁘고, 인간의 눈에 그들은 그저 고물일 뿐이니까.) 함께 기억하겠다고 해 주셔서 감사해요. 보기에 유쾌하진 않을 텐데.
 
버려져 있던 유해들에게서 눈을 떼고, 둘은 빗물로 축축한 보도블록을 밟으며 도시 밖으로, 또 밖으로 나갑니다. 어둠을 어깨에 인체로, 나란히.
 
그러고 보면, 도시의 외곽으로 나오면서 단 한 사람도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모두 자신만의 바쁘면서도 게으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타인에 대한 신경은 더는 불필요한 것이고, 필요 이상의 교류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덕에 밖으로 나가는 둘을 멈춰 세울 사람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마주한 도시 밖의 풍경은 무척이나 낯섭니다.
 
낡아 보이는 건물들은 일부의 콘크리트가 벗겨져 철근이 드러나 있기도 했고, 몇몇 곳은 버려진 것을 이어붙여 쌓고, 두르고, 올려서 엉성한 건물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무수히 많은 홀로그램과 네온사인의 빛과 쉘터의 천장을 뚫듯이 높고 또 높게 쌓아올린 빌딩들이 빽빽하게 모여있던 도시와는 사뭇 다른 풍경입니다.
 
한 쉘터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의심스러울 만큼 이질적이네요. 그러나 이방인 또는 불청객을 보는 듯한 시선이 등 뒤를 쫒는 것을 보아하니 사람은 사는 것이 분명합니다.
 
시아록:바깥은 이렇구나.... (무언가 살풍경한 광경에 어깨를 잠시 떨었다.)
 
슈테른:이런 척박해 보이는 곳에도 사람이 살 수 있다니. (이론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눈으로 마주하는 것은 처음인, 도시 밖에 대한 데이터들을 열심히 담는다.)
도시 안과는 다르게, 전체적으로 거칠고 투박한 느낌이네요.
 
시아록:그러게, 전혀 다른 느낌이네..(네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쉘터랑 가까워서 사람들이 모였을까..? 좀 더 나가면 숲을 볼 수 있을까..?
 
슈테른:그렇다기엔 이 위치는 쉘터 외곽까지는 거리가 있어요. ...시간이 꽤 늦어서, 어딘가 묵어야 할 것 같아요.
 
하늘은 어느새 먹구름이 아닌 밤의 어둠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온갖 빛에 가려졌던 곳을 벗어나니 비록 인공이라고 하더라도 무수히 많은 별이 쏟아질 듯 존재감을 과시하며 하늘에 매달려 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의 말을 들으며 당신은 쉴만한 곳이 있을지 주변을 훑어봅니다.
 
시아록, 관찰력 판정.
 
시아록:
관찰력
기준치: 90/45/18
굴림: 2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과연 하루나마 묵을 수 있을 숙소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변두리를 살펴보던 도중, 허름하고 무너질 듯 보이는 간판을 내건 숙박시설 하나가 시야에 걸려듭니다.
 
……이토록 허름한 공간에 묵는 건 처음이지만, 길바닥에서 자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시아록:숙박시설이.. 맞나?
(생각지 못한 허름함에 조금 당황한 듯 하다.) 노숙보다야 낫지만..
 
슈테른:여기는 건물을 튼튼하게 지을 만한 자원이 부족한 것 같아요.
경제적 자원도, 물질적 자원도...
 
시아록:그건 그렇지..
 
슈테른:건물이 다들 눈에 띄게 허름한 건 그 때문이겠죠.
 
시아록:뭐, 어쩔 수 없지.. 일단 저기 가볼까?
 
슈테른:그래도, 이런 곳에서 묵는다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인간이 아니니 환경에 둔감한 게 당연하지만요.
별다른 선택지가 없으니 불편하셔도 조금 참고 묵는 게 좋겠어요.
 
시아록:응 (네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너와 함께 숙박시설로 향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그야말로 허름한 로비가 보입니다. 카운터에는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고개를 흔들며 졸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평소에 손님이 잘 오지 않는 걸까요? 주인을 흔들어 깨워 보면, 급하게 잠에서 깨어난 주인이 시아록과 슈테른을 보곤 미간을 옅게 찡그립니다.
 
시아록:방이 있나,요?
(주인의 찡그린 미간을 보고 어물거리며 물었다.)
 
방이 있느냐고 묻자 주인은 별다른 말 없이 열쇠를 내어줍니다.
 
시아록:(열쇠를 받았다.) 몇호실이에요..?
 
주인: 304호실.
 
시아록:아, 네..
 
그 짧은 말만 내놓고 주인은 손으로 숫자 3을 표시합니다. ... 설마, 큰 거 세 개?
 
잘못 본 건가 다시 물어도 주인은 계산하라는 듯 카운터를 톡톡 두드릴 뿐입니다.
 
시아록:세 개..? (얼마인 거지.. 생각하며 지갑을 꺼낸다.)
 
지갑만 꺼내놓고 멀뚱멀뚱한 당신을 보는 주인의 눈빛이 점점 사나워집니다.
 
주인: 숙박비, 안 낼 거냐?
 
시아록:아, 아뇨. 정확히 얼마인지. 모르겠어서.. (어물거린다.)
 
주인: 30만원. (재촉하듯 다시 카운터를 탕탕 두드린다.)
 
시아록:아.. (역시 비싸다고 생각하지만, 어차피 세상은 멸망했고 더이상 쓸 일도 없으니 돈을 건넨다.)
 
계산을 마치면 불친절함의 극치인 주인은 손을 휘휘 내저으며 썩 가 버리라는 듯 둘을 내쫓습니다. 무어라 말을 더 하지 못하고 그냥 304호실을 찾아가는 당신을 슈테른이 묵묵히 따릅니다.
 
시아록:(슈슈와 함께 304호실로 올라간다.)
 
계단을 향해 몸을 돌리자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립니다.
 
시아록, 듣기 판정.
 
시아록: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36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다른 객실들의 손님들이 대화하는 말소리 같습니다.
 
시아록:(방음 하나도 안 되네... 생각하며 들리는 말소리에 저도 모르게 귀기울이고 말았다.)
 
"오늘도 갈 거지? 야시장." "그럼! 아직 다 돌아보지도 못했잖아? 뒷마무리는 확실히 해 줘야지." "이번에야말로 누가 먼저 술에 꼴아 기절하나 내기해보자구."
 
흔한 수다이지만, 요점은 오늘 야시장이 열린다는 것이겠네요. 아마 여기 근처이지 않을까요?
 
시아록:야시장..? (작게 중얼거린다.) 여기도 그런 게 열리긴 하는구나. 역시 사람사는 곳은 다 똑같네...
 
어쨌거나 당신은 가던 길을 마저 갑니다. 계단을 오르고 오를수록 발아래에서는 나무의 삐걱대는 비명이 자꾸만 뒤따라오네요.
 
숙박시설의 내부는 좋다고 할 수도, 그렇다고 나쁘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하루 정도 잠을 자기엔 충분한 공간입니다.
 
단출한 방은 낡은 티가 납니다. 구석구석 누렇게 변질된 벽지와 여전히 삐걱거리는 마룻바닥.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는 하얀 매트리스, 덩그러니 놓인 옷걸이, 다른 벽면에 붙어있는 작은 욕실까지.
 
길바닥에서 자는 것보단 나으니, 이 정도로 만족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아록:역시 엄청 낡았네.. 슈슈는 괜찮아?
 
슈테른:전 괜찮아요. 비도 오는데 노숙해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묵을 곳이 있어서 다행이네요.
 
시아록:응, 그건 다행이지. 너무 낡았지만..
그러고보니 좀 전에 밖에서 야시장이란 얘기하던데.. 같이 가볼까..?
 
슈테른:(몸을 끌어 침대 위에 조용히 앉았다.) 상당히 오래되어 낡은 방이네요, 확실히.
야시장이라면... (정보를 수집하는지 잠시 침묵하다가) 대체로 먹을 것을 팔거나 작은 게임장을 여는 등 놀 수 있는 장터를 말씀하시는 거에요?
 
시아록:그럴걸? 나도 어쩌다가 엿들은 거라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럴 거야. 슈슈가 가보고 싶다고 하면 가보자. 여기 야시장이 우리가 살던 곳 같을지는 모르겠지만..
 
슈테른:그렇군요. ... 시아록이 원한다면 저도 좋아요. (함께하는 데에 장소가 크게 의미있는 건 아니니까, 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저희가 살던 곳에서 열리던 것보다는 훨씬 허름할 거에요. 안내 로봇이나 에스컬레이터 같은 건 고사하고, 아마 비를 막아줄 천장도 따로 없겠죠.
 
시아록:그렇긴 하겠지.. (네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슈테른:(말하다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작은 욕실에 들어갔다가 수건을 들고 나온다.) 몸이 이곳저곳 젖으셨네요. 비 올 때의 밤은 쌀쌀하니 닦는 게 좋겠어요. (동의도 받지 않고 머리의 물기부터 조심히 탈탈 털기 시작한다.)
 
시아록:아, 고마워.. (네가 빗물을 털어주는 수건에 가만히 머리를 맡겼다.)
비가 정말 많이 오네.
 
슈테른:그러게요. 일기 예보는 내일 아침이면 먹구름이 물러갈 거라고 말하고 있는데...
다르게 말하면 오늘까지는 멈추지 않을 예정이래요. 점점 가늘어지겠지만요.
 
시아록:오, 그래? 내일이라도 비 그치면 좋겠네. 알려줘서 고마워. 음, 슈슈가 오늘 비 너무 많이 와서 나가기 싫다면 야시장 가지 않아도 괜찮고.
 
슈테른:(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전 방수니까 비를 맞느냐는 아무래도 상관 없어요. 중요한 건 시아록이에요.
괜찮으시면 갈까요?
(비에 젖은 옷을 꽉 짜 주고, 외투에 묻은 물기를 탈탈 털어주었다. 전보다 훨씬 습도가 내려간 당신의 모습에 조금 뿌듯해보인다.)
 
시아록:음, 그래? 그렇다면 가볼까? 같이 갔다가 별 거 없으면 금방 돌아오자. (얌전히 네 손길을 받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슈테른:좋아요. ...아, 돈은 꼭 챙기시고요.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야시장에서는 돈을 쓸 곳이 많다고 해요.
 
시아록:응, 챙길게. (네 말에 지갑을 꺼내 잠바의 안쪽 주머니에 챙겨넣었다.)
 
슈테른:(방 문을 열었다가, 이제야 생각났는지 당신을 돌아보곤 말한다.) ... 저, 가는 길을 검색하고 싶지만, 어디서 열리는 지 파악하지 못했어요.
 
시아록:음, 그럼.. 여기 주인은... 안 알려주려나?
 
슈테른:도시 밖의 건물과 지리는 정보값이 거의 없어서... GPS가 있어도 우리의 위치만 파악 가능하지, 도시 안이 아니면 전부 먹통이 되는 것 같아요. (생각지도 못한 차질이네요. 계산식에 따라 당황하는 표정을 짓는다.)
... 여쭤볼까요? 현지인분은 알고 계시겠죠.(자연스레 당신을 앞세우곤 천천히 로비로 나갔다.)
 
로비로 나가면 주인은 다행히 깨어 있는 상태입니다.
 
시아록:응, 물어보면 되지. 그 정도는 어려운 거 아닌걸.
(앞서 나가 주인에게 물어본다.) 여기 야시장이 어디서 열릴까요?
 
주인: 야시장?
 
시아록:네, 야시장이요..
 
주인: 나가서 쭉 직진. 사거리가 나오면 왼쪽. 무슨 빵가게 하나가 나오면 다시 오른쪽. 다시 사거리가 나오면 앞으로. 그러다 보면 불빛이 보일 텐데 그쯤으로 쭉 직진하면 야시장.
 
...예?
 
시아록:네..? 나가서 직진, 사거리.. 왼쪽... 어...
 
좀 더 제대로 된 설명을 바란 게 잘못이었을까요... 전혀 뭐가 뭔지 몰라 난처한 당신을, 옆에 있는 슈테른이 잡아끕니다.
 
시아록:아, 슈슈. (네가 끄는 대로 따라 나간다.)
 
슈테른:(내내 침묵하고 있다가 숙소와 멀리 떨어져서야 입울 연다.) 주인분이 말씀해주신 경로를 녹음했어요.
 
시아록:아, 그렇구나.
 
슈테른:찾아갈 수 있을 거에요. 따라오세요, 길을 안내할게요.
 
시아록:슈슈가 있어서 살았네.
응. (너를 따라 움직인다.)
 
슈테른은 열심히 길을 찾아가며 당신을 안내합니다. GPS도 먹통이 된 상황에서 제법 막막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다니 대견하네요.
 
그의 노력이 헛되지 않은 건지, 녹음이 된 자료를 돌려들으며 걷던 그와 당신의 앞에 아득한 불빛들이 보입니다.
 
슈테른:... 저건가요? 야시장.
 
시아록:오, 저기구나.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밤의 황무지는 숨소리마저 들릴 만큼 고요합니다. 도시 안과는 다른 느낌으로 삭막한 곳에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계속해서 걸음을 옮기면 야시장이 나타납니다.
 
낡고 지저분한 천막을 친 간이 가판대가 길 양쪽에 옹기종기 모여있고, 사람들은 그 사이를 지나다니며 숨기지 못하는 웃음을 내걸고 있습니다. 여기만큼은 낯선 이방인을 불쾌하게 바라보는 시선조차 존재하지 않습니다.
 
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다가가기만 해도 군침이 돌게 만드는 음식 냄새가 나는 먹거리 장터가 보입니다. 이곳저곳에서 먹고 가라는 외침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을지 두리번거릴 때 즈음. 시아록, 행운 판정.
 
시아록:
행운
기준치: 80/40/16
굴림: 56
판정결과: 보통 성공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 홀로 조용하고 음침한 가게 하나가 툭 튀어나와 있습니다. 그 모습이 은근하게 시선을 끄네요.
 
시아록:(괜히 눈길이 가는 가게에 슈슈의 손을 흔들었다.) 우리 저기 가볼까?
 
슈테른:(그 또한 흥미가 가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여기는 다른 곳보다 유독 천막 색이 어둡네요...
생긴 걸로 봐서는 점집일까요? ... 천막 틈으로 거의 보이는 게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시아록:점집? 그런 거야? (생각지 못한 단어에 좀 더 흥미가 생긴 듯 하다.) 가보자.
 
그 이끌림에 따라 안으로 들어가 보면 은은한 라벤더 빛 조명이 가득한 가게 내부가 제일 먼저 보이고 갖가지 화려한 장신구와 알 수 없는 색색의 병, 그리고 오래되어 보이는 서적이 꽂힌 책장 등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가게 내부에 들어서고 얼마 되지 않아 한 늙은이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천천히 구경하다가 가라고 합니다. 구경할 만한 게... 아, [가판대 / 진열장 / 책장]정도네요.
 
시아록:점짐은 아닌가보네.. 장신구 같은 거 있는데, 좀 보고 싶다! 얼마나 반짝일지 모르겠지만! (너를 이끌고 가판대로 향한다.)
 
화려한 장신구가 놓인 가판대입니다. 전체적으로 자주색의 벨벳이 깔려 있어 신비로운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놓인 장신구는 전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긴 부담스러울 정도로 화려합니다. 아름답기는 하지만요...
 
시아록:헤, 꽤 화려하네. 이런 곳에서 이런 걸 파나? (신기한 듯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판대에 찰싹 붙어 장신구를 살펴본다.) 진짜인가? 가짜? 확인하는 물건 챙겨서 나오진 않았으니까 잘 모르겠네.. 슈슈가 보기엔 어때?
 
슈테른:... 죄송해요. 제게 진품을 감정하는 능력은 없어서...
저한테는 그저 화려한 장신구로만 보이는걸요.
저 분이 직접 만드신 걸까요? 귀에 걸면 꽤 무거울 것 같아요.
 
시아록:그렇지. 요즘 잘 만든 건 그냥 눈으로 보면 구분 안 될 정도로 잘 만들어져 있으니까..그래도 잘 만들었긴 하네. 예쁘다. (장신구를 손가락 끝으로만 살짝 건드려보고는 널 바라봤다.) 슈슈 갖고 싶은 거 있어?
 
슈테른:(당신의 감정 상태를 파악하려는 듯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거절당해도 크게 신경쓰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는지 고개를 저었다.) 제가 들고 다니다가는 괜히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시아록은 꽤 좋아하실 것 같아요, 이런 거. (번쩍거리는 금속이 눈부신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시아록:아, 그런가.. (고개를 주억이다가) 응, 좋아하긴 하지. 근데 나한테 어울릴만한 것도 아니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면 샀을 텐데, 그것도 아니니까 보는 걸로 만족해볼까. (한 번 더 가판대 위의 장신구들을 훑고 허리를 세웠다.) 다른 곳을 볼까? 진열장에 있는 것도 꽤 예쁜 거 같아.
 
슈테른:...그렇네요. 이제 보관할 곳도 전부 없어질 테니까. (슬프다기보단 그저 무덤덤하게 말한다) 시아록이 괜찮다면 됐어요.
가게 분위기만 봐서는... 진열장에 골동품이 잔뜩 담겨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당신의 손을 끌어당기며 진열대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유리문이 없이 오픈된 진열장입니다. 그 위에는 색색의 액체가 담긴 유리병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습니다.
 
유리병에 달린 라벨을 들춰보면 각각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천재의 묘약, 사랑의 묘약, 식탐의 묘약……
 
그리고 잠의 묘약이라는 라벨이 달린 유리병을 볼 때 즈음, 늙은이가 당신에게 그것을 건넵니다.
 
늙은이: 이 늙은이의 가게에 온 게 반가워 주는 선물이란다. 내, 오랫동안 사람을 본 적이 없어 무척 반가워 그러는 것이니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으면 좋겠구나.
 
그리 말한 늙은이는 더 구경하고 싶으면 구경하라는 듯 턱짓을 합니다.
 
시아록:예? 아.. 어, 감사합니다...? (조금 얼떨떨한 기분에 감사의 인사가 의문형이 되고 말았다. 받은 물건에 붙은 '잠의 묘약'이란 라벨을 저도 모르게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말았다.) 수면제 같은 건가... (작게 중얼거리곤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뭔지도 모르는 걸 그냥 먹기엔 찝찝하고, 선물로 받은 것이니 그냥 챙겨두면 되겠지. 가볍게 생각했다.)
묘약이라니.. 좀 독특하네. 유리병은 꽤 예쁘게 생긴 거 같지만.
 
슈테른:뭘 받으신 거에요? (들고 있는 게 궁금한지 옆에서 이리저리 훔쳐보다가 다시 진열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약...? 출처가 분명해 보이지는 않는데...
 
시아록:아, 궁금해? (너에게 보여주기 위해 주머니에 넣었던 '잠의 묘약' 병을 꺼냈다.)
이거 주시던걸.
 
슈테른:잠의 묘약...? ... 무슨 약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렇게 한 번에 많은 양을 복용해도 괜찮은 걸까요... 아무리 물약이라고 해도.
저는 약사가 아니니 말을 얹을 권한은 없지만, 복용은 신중하게 하시는 게 좋겠어요.
 
시아록:괜찮아. 나도 딱히 먹을 생각은 없고.. 잠의 묘약이니까 수면제 같은 거 아닐까 싶지만, 역시 묘약이란 단어도 붙어있고.. 잘 모르니까? 그냥 주신 거니까 챙겨둘 생각일 뿐인걸. (어깨를 으쓱였다.)
 
슈테른:흔히 소설책에서나 나오던 것들이 실제로 있다는 것도 의문스럽지만... 누가 왜 이런 것들을 만들었는지도 궁금하네요. 천재의 묘약 같은 걸 마신다고 머리가 갑자기 비상해질까요? 선천적인 특성을 약 하나로 바꾸다니... (낯설고 비과학적인 것을 마주하자 괜히 혼란에 빠졌다.)
그런가요? ...혹여 부작용이라도 생길까봐 노파심에 얹은 말이었어요. (얼굴에 안심한 기색이 감돌았다.)
 
시아록:걱정해줘서 고마워. (널 향해 웃는다.) 뭐 너무 깊이 생각하지마. 그냥 뭐더라? 그.. 강하게 믿으면 믿는 대로 하면 그렇게 된다던.. 그런 효과같은 느낌일 거야, 아마! 성분이 뭔지는 잘 모르겠으니 역시 복용하긴 그렇지. (다시 주머니에 챙겨넣었다.)
책장도 마지막으로 볼까?
 
슈테른:플라시보 효과요? (잠시 생각하느라 말을 멈췄다.) 인간의 믿음이란 그 어떤 약보다 강하니까요. 없던 효과를 만들거나, 존재하지 않는 통증을 만들 정도로.
좋아요. 어떤 책이 있을까요?
 
아주 오래된 서적들이 꽂혀있습니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책등에 적힌 제목조차 손끝에 닳아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얇은 책부터, 무척 두꺼운 책까지. 가지각색의 서적들이 보기 좋게 나열되어있습니다.
 
호기심에 표지에 아무것도 없는 한 책을 꺼내어 펼쳐 보면, 도무지 알아볼 수 없는 글자에 머리가 어지러워집니다.
 
시아록, 이성 판정.
 
시아록:
SAN Roll
기준치: 83/41/16
굴림: 43
판정결과: 보통 성공
 
... 조금 찝찝하다, 는 생각이 들 뿐 별 일은 없었지만... 역시 뭐라고 하는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시아록:음.. 음... 알 수 없는 글자네. 외국어 같은 건 어렵고... 슈슈는 어때? 알아보겠어? (책을 네게 한 번 보여준다.)
 
슈테른:잠시만요... (책을 눈으로 스캔한다.)
(한창 내용을 해독하다가, 단호하게 책을 덮어버린다.) ... 신경쓰지 마세요.
 
시아록:응? 그래..? (네 반응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납득해버린다. 중요한 거였으면 네가 알려줬을 거라고 생각하므로.) 음, 가게 다 둘러봤나. 주인 할아버지한테 인사하고 나갈까?
 
슈테른:(놓친 건 없나 가게를 한 번 두리번거리다, 역시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시아록:주인 할아버지, 저희 갈게요.
 
당신의 인사에 늙은이는 웃음짓는 얼굴로 또 오라는 말을 건네곤 다시 가게 안쪽으로 들어갑니다. ...가게만큼이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가게에서 나온 후 뒤를 돌아보면 그 가게는 홀연히 사라져 있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시아록, 이성 판정.
 
시아록:
SAN Roll
기준치: 83/41/16
굴림: 56
판정결과: 보통 성공
 
믿을 수 없는 광경이지만, 손에 들린 잠의 묘약은 꿈이 아니라고 말해줍니다.
 
시아록:..뭐였지..? (두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모르겠다는 듯 너를 바라봤다.) 어, 가게 다녀온 거 맞지..?
 
슈테른:... (아까의 길거리와 지금의 길거리 사진을 비교하다가, 가게가 사라졌다는 것을 확신한 듯 고개를 들었다.) 바로 전까지만 해도 분명 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지다니...
끝까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가게였네요.
 
시아록:그러게.. 뭐, 큰 문제 없으면 다른 곳에 가보자. (멸망해 가는 세상이니 그냥 무슨 일이 생겨도 크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신경쓴다고 해도 아마 이 짧은 시간동안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내 신경을 끄고 장터 쪽으로 몸을 돌리면, 다시 맛있는 음식 냄새가 후각을 자극합니다.
 
손에 무언가를 들고 먹으며 둘러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꽤 많은 가게에서 음식소리가 나니 특별히 팔지 않는 음식은 없을 것 같습니다.
 
시아록:나온 김에 뭐라도 좀 먹을까? 이런 동네의 야시장의 음식도 비슷하려나. (주변의 음식 가게들을 둘러본다.)
 
뭘 팔고 있나, 이리저리 둘러보면... 색색의 음식들이 눈길을 한껏 끌며 진열되어 있습니다. 디저트류나 간단한 간식부터, 아예 주식으로 먹을 수 있는 것까지 다양합니다.
 
흔히들 야시장에서 보이는 음식은 전부 있네요. 파란 색 플라스틱 의자가 가득 쌓인 가게들은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제법 왁자지껄합니다.
 
시아록:음.. 뭘 먹지..? 배를 좀 채우는 게 낫겠지?
슈슈, 추천해줄만한 거 있을까?
 
배를 채울 만한 음식만 골라 되짚자면... 철판볶음밥이나 막국수, 계란빵, 호떡, 부침개 등등이 있네요. 거의 없는 걸 빼고 다 있습니다.
 
슈테른:음... 드시고 싶은 걸로 드세요. (특별히 좋거나 나빠 보이는 음식은 없는지 애매하게 대답했다.) 걸어가면서 드실 거니까, 너무 많이 드시지는 않는 게 좋겠어요.
 
시아록:음, 그런가..그럼 부침개 먹을까.
(부침개를 파는 가게로 조금 다가간다.)
 
"어서 오세요!" 호탕해보이는 한 부부가 운영하는 주점입니다. 부침개를 주문하고, 다니면서 먹을 수 있도록 컵에 담아달라고 부탁하자 문제없다는 듯 눈을 찡긋하네요.
 
거의 호떡 크기로 부쳐진 부침개는 꽤 맛있어 보입니다. 주인에게 돈을 건네고 나오면, 들고 있는 종이컵 덕에 손이 따끈해집니다.
 
시아록:오, 맛있겠다. (받은 부침개를 한 입 베어물었다. 뜨거워서 살짝 혀를 데이고 말았지만, 맛있어서 입 안에서 숨을 들이쉬며 식히고는 우물우물 먹었다.)
 
슈테른:아, 무언가 먹을 줄 알았다면, 물이라도 챙겨올 걸 그랬네요...
그러고 보니까... 비가 그쳤네요. (더 이상 낙수음이 들리지 않았다. 쓸모가 없어진 우산을 접어 손에 들었다.) 아, 저기 게임센터 같은 게 보이는데, 가 볼까요?
 
시아록:나중에 음료라도 사면 되지. 응? (네가 접는 우산을 보다가) 그래. 좋아. 게임센터도 있고, 먹을 거리도 많고 진짜 큰 야시장이네. ( 함께 네가 가리킨 게임센터로 향한다.)
 
입구로부터 3분의 1 정도 걸어가자, 슬슬 먹을거리는 줄어들고 잡화점이나 게임 센터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합니다.
 
둘이 발견한 것은 간판에는 게임센터라고 적혀있긴 하지만 그렇게 불리기엔 조금 엉성한 가게입니다. 가판대 뒤에 있는 좁은 공간 안에는 몇몇 사람이 두 가지 게임을 즐기고 있습니다.
 
금붕어 잡기와 사격 게임인 듯 보입니다. 한쪽에는 대야 주변에 쭈그려 앉아 작은 뜰채로 금붕어를 잡으려 애쓰고, 다른 쪽에서는 불규칙적으로 총 소리가 납니다. 어느 것을 먼저 즐길까요?
 
시아록:(총소리에 좀 더 흥미가 이끌린 듯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가 향한다.) 사격게임 보고 싶네. (너의 손을 잡고 사격게임으로 향한다.)
 
진열대 위에 놓인 인형을 쏴 떨어트리면 그 인형을 가지고 갈 수 있는 단순한 게임입니다.
 
시아록:전형적인 사격 게임이네. 한 번 해볼까! 뭐.. 전혀 못하겠지만.. (흥겹게 하겠노라 외쳤다가 급격히 목소리가 작아졌다.)
 
주인에게 돈을 쥐여주면 탄환 5개 정도를 세서 주더니 총에 끼우라는 듯 가리킵니다.
 
인형은 종류가 다양합니다. 손바닥만 한 작은 인형부터 허벅지까지 올 만큼 커다란 인형까지. 어느 경품을 노릴 건가요?
 
시아록:너무 작은 건 못할 거 같고.. 큰 건 못 들고 다니겠지? (탄환을 총에 끼우고는, 중간 사이즈의 인형을 노리고 총구를 겨냥한다.)
 
당신은 딱 적당한 크기의 인형 하나를 노리며, 자신없는 몸짓으로 방아쇠를 당깁니다.
 
시아록, 사격(권총) 판정.
 
시아록:
사격(권총)
기준치: 20/10/4
굴림: 97
판정결과: 대실패
 
책미 (GM):wow...
 
방향 조절을 한참 잘못했는지, 당신이 날린 탄환은 하마터면 당신 옆에 있는 슈테른을 맞힐 뻔합니다.
 
시아록:앗, 미안! (화들짝 놀라 슈슈를 향해 사죄한다.)
정말 미안. 어디 안 맞았어?
(네가 정말 괜찮은지 이리저리 확인합니다.)
 
슈테른:(당신의 말에 멀쩡한 얼굴로 잘못 날아간 탄환을 줍고는, 탄환이 별로 위험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 꾹꾹 누른다.) 실리콘 재질이라 맞아도 별로 아프지는 않아요. 게다가 빗맞았고요.
죄송해하실 일도 아닌걸요. (저는 인간보다 튼튼해요, 라고 덧붙이며 실 하나 손상되지 않은 멀쩡한 옷을 들어서 보여주었다..)
 
시아록:정말 괜찮아? 아 진짜 깜짝 놀랐네.. 실리콘이라도 총을 쏘는 거니까 아픈 건 아플 거야. 이건 그만 둘까.. 또 그럴까봐 겁난다.. 남은 거 슈슈가 쏴볼래..? (총을 멀찌감치 두며 너를 쳐다본다.)
 
슈테른:너무 긴장해서 그러신 거 아닐까요? 아뇨, 저 정말 괜찮은데... (어쩐지 기운이 빠진 듯한 모양새에 조금 당황했다.)
음, 그럼 한 발만 쏴 볼게요. (당신에게서 총을 건네받고 아까 당신이 노리던 쪽으로 총구를 돌렸지만, 어디까지나 가정용 안드로이드라서 그런지 잡은 꼴이 영 어색하다.)
사격(권총)
기준치: 20/10/4
굴림: 97
판정결과: 대실패
 
책미 (GM):??????????????????????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늘:ㅋㅋㅋㅋㅋㅋ같이 ㅋㅋㅋㅋㅋ
 
책미 (GM):아니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떻게 둘 다 하나같이 대실패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심지어 굴림도 똑같아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늘:총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애들의 고증인가요 ㅋㅋㅋㅋ 아 진짜 어떻게 이럴 수 있지 ㅋㅋㅋ
 
방금의 일에 대한 복수일까요? ... 그 또한 분명 인형을 노렸는데도 당신을 맞힐 뻔합니다.
 
슈테른:죄, 죄송해요. 죄송해요! 제가 총을 잡는 게 아니었는데... 그, 어,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세요? (크게 당황했는지 말까지 더듬는다.)
 
한 발도 맞히지 못하고 총 하나 두고 서로에게 연신 사과하는 둘을 보는 주인의 시선이 점점 이상해집니다. ... 경품을 따더라도 면목이 없겠는데요...
 
시아록:아, 어.. 아냐. (전혀 맞지 않았지만 놀라긴 했는지 눈이 동그래졌다.) 괜찮아. 안 맞았어. 빗나갔고...
그.. 우리 총은 안 맞나봐.. 그냥 다른 거 하러 갈까? (주인의 시선을 받으며 너에게서 총을 받아 조심히 가판대에 내려놓았다.)
 
슈테른:(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을 맞힐 뻔한다는 건 이렇게나 무서운 일이었네요. 왜 그렇게 놀라셨는지 이제 알겠어요.
혹시라도 맞은 부분이 아프시다면 말씀하세요. 응급처치는 얼마든지 가능하니까요... (동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 금붕어 잡기라도 해 볼까요?
 
시아록:응응, 전혀 안 맞았어. (도길도리 고개를 흔들고는) 좋아. 안전하게 금붕어 잡기를 하자. (네 손을 잡아 얼른 사격장을 빠져나와 금붕어잡기로 향한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낮은 수조에 어른이며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
 
안에는 주홍색과 검은색의 금붕어들이 유유자적 헤엄치고 있고, 사람들은 작은 용기 하나와 거름망을 쥔 채로 헤엄치는 금붕어를 노리고 있습니다.
 
슈테른:... 금붕어를 잡더라도 다시 놓아주고 갈까요?
우리에게 금붕어까지 키울 여력은 없을 거라고 계산돼요.
 
시아록:응, 그래야지. 데리고 여행가기는 너무 힘들고. 그냥 잡아보는 정도에 재미라고 생각하자.
 
일단 한 번 해 보자는 마음으로 주인에게 돈을 쥐여주면, 종이로 된 얇은 뜰채를 건네받습니다.
 
금붕어를 잡고 싶다면 손놀림 판정.
 
시아록:
손놀림
기준치: 25/12/5
굴림: 35
판정결과: 실패
아, 어렵네..
 
슈테른:워낙 뜰채가 작고 얇아서... 쉽지 않을 거에요.
금붕어는 생각보다 훨씬 날쌔니까요. (당신이 금붕어 잡는 걸 옆에 앉아서 구경한다.)
 
계속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자유롭게 손놀림 판정 해 주세요.
 
시아록:
손놀림
기준치: 25/12/5
굴림: 39
판정결과: 실패
 
세 번 이상 실패하면 뜰채가 찢어집니다. (재구매할 수 있습니다.)
 
시아록:으아아. 또 놓쳤네..
슈슈도 뜰채 하나 구입해서 해볼래?
 
슈테른:저요? 음...
저는 팔이 인간의 것보다 무거워서... 무언가 확 낚아채는 건 자신이 없어요. 그러니 구경하는 걸로 괜찮아요.
 
시아록:그래? 한 번만 더해보고 안 낚이면 뭐.. 그만 두자. 꼭 잡으려고 한 건 아니니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신중을 가해 뜰채를 놀린다.)
손놀림
기준치: 25/12/5
굴림: 60
판정결과: 실패
아, 역시 안 되네. (멋쩍게 웃었다.)
 
종이로 된 얇은 뜰채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찢어집니다. 흐물거리는 종이가 물고기마냥 흔들거리며 헤엄치듯 춤을 춥니다.
 
잡지는 못했어도, 결과에 연연할 것도 없는 당신은 미련도 털어버리고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게임 센터를 나와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반절 정도 왔을까요? 딱 중앙처럼 보이는, 원래 마을의 광장 역할을 하는 공간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처음 듣는 노래를 부르는 이를 중심으로 하여, 많은 사람들이 넓게 원형으로 서서, 혹은 앉아서 그들의 공연을 구경합니다.. 그곳을 보던 슈테른은 당신을 이끌고 천천히 다가갑니다.
 
슈테른:저곳에서 길거리공연을 하나 봐요. 다른 말로는 버스킹이라고 하죠.
 
시아록:오, 노래 잘한다.
(너에게 이끌려 공연하는 곳 가까이에 다가갔다.)
 
둘은 사람들 틈에 자연스럽게 섞여들어 갑니다. 어쩐지 다들 행복한 표정을 한 채로 노래를 듣는 사람들에게서 행복이 옮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슈테른:시아록.
노래하는 건... 즐겁나요?
 
시아록:음.. 난 노래를 잘하는 게 아니니까 남한테 들려주긴 그렇지만, 즐겁지. 뭐 노래도 슬픈 것도 즐거운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듣는 것도 부르는 것도 즐거워!
 
슈테른:그렇구나... 그래서일까요? 여기 있는 모두가 행복해보여요.
듣는 사람도, 부르는 사람도 전부.
(그렇게 말하며 어느새 가방에서 꺼낸 사진기로 당신을 찍는다.) 시아록도, 그런 얼굴이에요.
 
시아록:아.. (갑작스레 찍혀 눈이 동그래졌다가 뺨에 옅게 홍조가 졌다.) 음, 사진 찍히는 건 뭔가 부끄럽네. 내가 노래 들을 때 그랬어?
 
슈테른:(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이 광장 전체가 웃음으로 가득찬 것만 같아요.
출신지도 나이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다 같이 섞여서 무언가를 즐겁게 감상하는 건... 처음 봐요. 도시 안에는 좀처럼 이런 게 없었으니까.
본인이 웃고 있는 걸 모르셨다는 건, 정말로 마음 속에서 흘러나온 미소였다는 거네요.
그래서 찍어두고 싶어요. 이럴 때가 있었다는 걸 남겨둘 수 있게.
 
시아록:그렇구나... (너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뭔가 더 부끄러워져서 입을 우물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따.) 저 사람들 노래 잘 부르니까...!
 
슈테른:시아록이 듣기에도 잘 부르시는 것 같나요?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저 사람들은 노래하는 게 직업일까요? 요즘은 방송 기술이 발달해서 이렇게 직접 옮겨다니며 공연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경제적 여유가 없으셔서 이런 방식을 택하신 걸까요?
(사진기를 빤히 보더니 움찔한다. 아까까지 찍은 것을 확인하고 있던 모양이다.) 흔들리지는 않았는데, 눈이 감긴 채로 찍혀버렸네요.
 
시아록:음, 저 사람들이 경제력으로 좋은지 안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노래 들려주고 싶어서가 아닐까?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고.
(사진기를 들여다보던 네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씩 웃어버렸다.) 나 눈 감고 찍혔어? 나 사진에는 잘 찍혀본 적 없으니까 그럴지도!
 
슈테른: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노래를 들려주기 위해서... 그런 식으로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생각해보면 도시 밖에서는 방송을 들을 수 없으니까, 이 편이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겠죠.
직접 이동해야 하니 번거롭겠지만, 그런데도 훨씬 자유롭고 행복해 보여요. 저 사람들.
잘 찍히신 적이 없다고요? 그럼 더더욱 제가 잘 나온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네요.
 
시아록:그럴지도! 저렇게 나와서 다른 사람에게 노래 들려줄 정도면 노래도 좋아한다는 거니까. 좋아하는 일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행복함을 나눠줄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겠지.
으응, 사진 찍히는데는 안 익숙해서. 그리고 내가 잘 찍지도 못하고!
잘 찍히든 안 찍히든, 그냥 슈슈랑 같이 추억으로 남을 수 있으면 괜찮아!
어차피 다른 사람들이 볼 것도 아닌걸.
 
슈테른:(노래가 어떤 분위기인지 잘 모르니 행복하다고 반응하지는 못하지만, 이런 공간에서 같은 걸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맞아요. 멋진 사람이네요, 저 분들.
그래도 아쉽잖아요. 평생 한 번도 잘 나온 적이 없다니.
그렇기는 하지만... 쑥쓰러워하시길래 잘 나왔다고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완벽하게 찍지는 못 했네요.
 
시아록:그렇지, 멋지지!.
아, 뭐.. 애초에 사진을 별로 몇 번 찍혀본 적이 없으니까...?? 잘 찍힌 건 뭔가 분위기라던가 그런 거? 아니면 뭐.. 얼굴이 잘 나온 거..? 그런 건 찍히는 쪽도 자주 찍혀봐야 사진이 잘 나온다고 하더라고. 나 사진 찍으면 어색해지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해준 것만으로 고마워!
 
슈테른:(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확실히 장신구의 사진을 찍으면 찍었지 스스로의 사진은 찍는 걸 별로 못 봤다는 것을 떠올렸다.) 찍히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으신가 봐요. ...찍다 보면 좀 익숙해지실까요?
아니에요. (짧게 답하곤 다시 음악에 집중한다.)
 
시아록:맞아. 별로 안 익숙해. 슈슈랑 추억만 되면 되니까 괜찮아. 그러게 찍히다보면 익숙해질까? 나중에 슈슈 사진도 하나 찍어줄게! (사진기를 보며 짧게 웃었다. 네가 음악에 집중하는 걸 보며 자신도 잠시 음악감상에 빠졌다.)
 
준비해둔 마지막 곡이 끝났는지, 사람들은 노래를 멈추고 잠시 관중들과 수다를 떨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찬사를 받은 것이 얼떨떨하면서도 더없이 기쁘다는 얼굴입니다.
 
좋네요, 이런 분위기. 갑자기 도시 밖으로 나와서, 처음 보는 풍경에 긴장하고 있던 몸이 풀리는 걸 느낍니다. 역시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고 느꼈을지도요.
 
슈테른:... 슬슬 움직일까요? 아마 마지막으로 한 곡만 앵콜로 하고 마칠 것 같은데.
더 듣고 싶으시면 계속 있고요.
 
시아록:아냐, 움직이자. 많이 들은 거 같아!
이제 어디로 갈까~
 
슈테른:으음...
일단 길을 따라서 쭉 걸어볼까요?
광장 쪽에는 별로 상점은 없는 것 같아요.
 
시아록:응, 좋아. ( 네 손을 잡고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야시장이 선 길목을 조금 걷다 보면 낡은 한 건물이 보입니다. 그 뒤에서 또한 왁자지껄,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여기서도 무언갈 하는 것으로 보이는군요.
 
건물 뒤 주차장으로 보이는 곳은 어느덧 한 극단을 위한 작은 무대로 변해있습니다.
 
아직 시작하지 않았는지 바닥에 앉은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마침 저기에 자리가 나 있습니다. 연극을 보려면 지금이 딱 맞을 것 같네요.
 
시아록:어, 연극을 하나봐. 슈슈 같이 볼까?
 
슈테른:좋아요. 마침 자리도 비어 있고...
(어떤 연극인지 궁금해 팜플렛이 있는지 찾아보다가, 아무래도 그런 것까진 없는지 빈 자리로 가서 당신과 함께 앉았다.)
 
자리에 착석하면 얼마 되지 않아 배경음악이 깔리고 배우들이 한 명씩 나오기 시작합니다.
 
간단한 인사를 한 그들은 몇몇은 무대 뒤로 들어가고, 남은 이들은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기 시작하네요.
 
내용을 보아하니 죽어가는 사람과 함께 곳곳을 여행하며 여생을 보내는 이야기입니다.
 
하루하루를 힘겹게 견디는 서로를 받쳐주며 애틋하게 바라보는 두 사람. 사랑하는 연인의 아픔을 담고, 중간중간 재미있는 연출이 분위기를 마냥 무겁게 만들지 않습니다.
 
...
 
곧이어 한 사람이 쓰러지고, 남은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무너지는 몸을 추락하기 전에 받아듭니다.
 
그리고 내려가는 커튼. 사람들의 아우성이 쏟아지고 곧 밝은 표정의 배우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연극의 끝입니다.
 
아팠던 사람, 도와주는 사람, 폭언을 부었던 사람, 죽은 사람... 모두가 하나같이 사이좋게 손을 잡고 관객들에게 인사합니다.
 
관객들도 즐겁게 보았는지 맞인사로 호응해줍니다. 한창 감사의 물결이 지나가고 나면, 그들은 이러한 질문을 내놓습니다.
 
"죽음을 받아들인 이에게 가장 나은 것은 죽음일까요, 삶일까요?"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당신은 자기도 모르게 그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심오한 주제이다 보니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렵네요.
 
슈테른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혹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시아록:어려운 질문이네.. 굉장히 철학적이고... (작게 중얼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렇지만.. 당사자말고는 그건 정확한 답을 내릴 수 없지 않을까..? 죽음이라는 건 다른 사람에게 너무 슬픈 답이겠지만, 그걸 선택한 사람은 그게 최선이었을지도 모르고...?
삶이라고 대답한다면.. 그걸로 기뻐지는 그 사람의 소중한 사람이 있을 테고, 그 사람 또한 행복이라고 느낄 수 있는 거고.. 그런데 결국 죽음은 오는 거니까... 아, 뭔가 말이 정리가 안 되네. 괜히 이상한 소리만 한 거 같아.. (혼자 두서없이 말을 꺼내다가 제가 한 의미 모를 말들을 되짚으며 멋쩍게 웃었다.) 잘 모르겠다.
 
슈테른:음... (말해도 될까, 어물쩡거리다 시아록이라면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결국 입을 열었다.) 인간은... 죽지 않기 위해 평생을 살아가잖아요.
살기 위한 본능이 굉장히 우세할 텐데도 죽음을 받아들일 만큼 강한 사람이라면, 고통스러운 삶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요?
(말하다가 혼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불필요한 계산-잡생각-을 떨쳐내려는 듯.) 제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 모르겠네요... 그냥 잊어주세요.
 
시아록:그런가... 결국은 죽음에 도달할 수 밖에 없겠지만...? 슈슈 말대로 그런 사람은 심적으로 정말 강하고 튼튼한 사람들이겠다.
뭐, 이건 자기 의견 얘기하는 거니까! 그걸 이겨내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에 누군가가 기뻐하면 좋을 일이겠다
 
슈테른:철학적인 질문이 으레 그렇듯 저 질문에도 정답이라는 건 없겠죠? 시아록이 내린 답도, 정제되지 않았을 뿐 좋은 답변이라고 생각해요.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시아록:너무 생각대로 의식의 흐름으로 말해버린 거 같지만! 어려운 질문이었어..
 
슈테른:(당신의 말을 경청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그 말, 죽어가는 사람이 들으면 분명 기뻐할 거에요.
정답이 없는 문제니까 당연히 어려운 거 아닐까요? 답을 내렸다면 된 거에요.
 
시아록:으응. 그런가! (네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씩 입꼬리를 올렸다.)
연극도 재밌었고, 마지막에 심오한 질문 받아서 많이 생각도 해봤고..!
이제 다른 곳에 또 가볼까?
 
슈테른:좋아요. 일단 야시장 쪽으로 돌아갈까요?
 
시아록:그래!
(네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너와 함께 다시 야시장으로 향한다.)
 
때아닌 난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고민을 마치고 다시 야시장의 길목으로 돌아오면, 저쪽 끝에서 어린아이 몇 명이 사람들 사이를 헤쳐 지나가며 달려가는 게 보입니다.
 
자기들끼리 소리치길, 곧 불꽃놀이를 한다네요.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사람들을 따라 걸으면 널따란 공터가 보입니다.
 
그곳으로 향하면 여러 사람이 길고, 검은 막대 두어 개를 사람들의 손에 쥐여주고 있습니다.
 
스파클러라고 하던가요? 끝부터 천천히 불태우면서, 반짝거리는 예쁜 불꽃을 볼 수 있는 막대기입니다. 공터 한쪽에는 발사시킬 수 있는 불꽃놀이 장난감 또한 3개씩 묶어 파는 것 같습니다. 슈테른은 나눠주는 것을 받으며 말합니다.
 
슈테른:원래 불꽃놀이는 넓은 하늘에 폭죽을 쏴 거대하게 피어나는 색색의 불꽃을 보는 거라고 해요.
 
시아록:오, 그렇구나. (손에 받은 스파클러 막대를 잡고 흔들었다.)
 
슈테른:하지만 쉘터 안이라서 그것까진 무리고, 이걸로 만족해야 하나 봐요.
하늘에 불꽃을 쏘는 놀이도 있다니... 본 적은 없지만, 아마 예쁠 것 같아요.
 
시아록:그러게. 하늘에 쏘아진 불꽃이란 거 궁금하다. 나도 쉘터에서만 있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예쁘려나!
이것도 반짝반짝 예쁘잖아.
 
슈테른:밤하늘에 쏘는 거니까, 많은 입자들이 별처럼 번쩍거리면서 사라지겠죠? 하늘에 쏘는 게 이것보다 클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시아록:하늘에 어떻게 쏘는지 잘 모르겠지만.. 하늘은 머니까 그래도 크지 않을까?
아니면 멀어서 작아보일까...?
 
슈테른:너무 작으면 잘 안 보일 테니까, 아마 크게 만들지 않을까요? (말하면서 별 의미 없이 손에 쥔 스파클러를 흔든다.) 쉘터 밖으로 나가게 된다면, 그 불꽃놀이라는 것도 같이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좋아하실 것 같아요, 분명.
 
시아록:오, 그러게! 한 번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스파클러를 흔들며 해맑게 얘기했다.)
 
어두운 인공 하늘 아래, 많은 사람이 노란 불꽃을 들고 있으니 은하수 한복판에 떨어진 것 같기도 합니다.
 
뛰어노는 아이들의 궤적을 따라 불빛이 흔들리고, 별을 쥐어 매단 것처럼 빛의 궤적이 쉴 새 없이 나아가고, 허물어지고, 비틀리고 직행하다 무너집니다.
 
슈테른은 "잠깐만요." 라며 당신에게 스파클러를 맡기고는, 아까와 같이 카메라를 듭니다.
 
찰칵, 하고 작은 소음이 들리고 나면, 카메라에 당신이 담깁니다. 시아록, 행운 판정.
 
시아록:
행운
기준치: 80/40/16
굴림: 62
판정결과: 보통 성공
(네가 카메라를 드는 것을 보고 어색하게 포즈를 취했다.)
 
이번에는 아까같은 일이 없도록 사진을 여러 장 찍고 나면, 누군가가 다가와 당신에게 부탁합니다.
 
행인: 안녕하세요! 혹시 저희 사진 좀 찍어줄 수 있나요?
 
시아록:(화들짝 놀랐다가 자신에게 물어본 사람과 슈슈를 번갈아보았다.) 어, 네. 뭐...
사진기는 어떤 걸로..? (우리 사진기로 찍어달란 건가..? 잠깐 의문이 들었다.)
 
행인: 감사합니다! 저기 있는 사람이랑 같이 나오게 찍어주시면 되세요!
 
행인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휴대폰을 쥐여 줍니다. 당신은 어색하게나마 작은 화면으로 사진을 찍어줍니다.
 
시아록:(건넨 휴대폰에 안도하며 어색하게 사진을 찍어주고 폰을 돌려주었다.)
 
행인: 와, 잘 찍으셨네요! 마음에 들어요!
왕년에 사진 좀 찍으셨나 보죠? 이것 좀 봐. 잘 나왔지?
 
행인은 그렇게 말하며 동행인에게 당신이 찍은 사진을 보여줍니다.
 
다행히 두 사람 다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네요. 그러더니 행인이 감사하다며 두 분도 찍어드리겠다고 제안합니다.
 
시아록:아, 감사합니다. (그러고보니 둘이 있을 땐 같이 찍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슈슈에게서 카메라를 받아 넘겼다.)
슈슈, 사진 찍자.
 
슈테른:네? 아... 알겠어요. 그... 무슨 포즈를 취하면 될까요? (자기가 찍힐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는지 조금 당황하는 눈치다.)
 
시아록:자연스럽게 찍으면 되지 않을까? (네 옆에 다가서며 네 어깨를 끌어안았다.)
 
자연스럽게, 라는 말에 슈테른은 그냥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로, 평소처럼 서 있을 뿐입니다.
 
호의적인 웃음을 띤 갈색 머리의 사람이 카메라를 건네받고 두 사람을 화면에 담아냅니다.
 
얼마 가지 않아 찰칵, 하는 짧은 단말마가 고막을 두드립니다. "두 분 정말 잘 나왔어요!" 하고 카메라를 건네는 그들의 얼굴에는 모든 행복을 끌어안은 듯 밝습니다.
 
시아록:(카메라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슈테른:(옆에서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해요.
 
시아록:(그들과 조금 멀어지고 나서 카메라를 확인하고는 슈슈에게도 보여준다.)
 
슈테른:음... 처음 찍혀보는 거라 어색해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아주 굳지는 않았네요.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안도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시아록:그러게, 다행이다. 나도 카메라 앞에선 굳으니까 어색하게 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잘 나왔네.
 
슈테른:(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저분들 덕분에 같이 나온 사진도 이렇게 볼 수 있네요.
마주친 게 행운이었어요. 도시 안에서만 해도 다른 사람에게 관심도 안 가지는 사람이 태반이었는데...
 
시아록:응. (네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운이 좋았네!
 
슈테른:(어느새 꺼져버린 스파클러를 집어 수거함에 버리고, 당신 쪽을 돌아보았다.) 야시장도 거의 다 봤네요.
주변엔 잡화점 정도는 보이는데, 더 보실래요?
 
시아록:야시장에 온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벌써 끝이 보이네. 잡화점에서 뭔가 살만한 게 있으려나.
한군데만 가볼까..?
 
슈테른:좋아요. (출구 근처에 있는 잡화점 쪽으로 앞장섰다.)
 
잡화점에 들어서면, 진열대 위에 갖가지 잡다한 물품이 널려있는 게 보입니다.
 
모자나 스카프같은 장식품부터, 효자손이나 때수건, 심지어 수세미도 팔고 있습니다.
 
흔히 잡화점이나 할인마트에 있을 만한 건 다 파는 것 같네요. 가게 안쪽에는 음료수 병이 들어있는 냉장고도 보입니다.
 
시아록:오, 진짜 별걸 다 팔고 있네. 우리 여행가는 데는 물건 다 챙겼으니까 특별히 살 건 없지..? (잡화점의 물건들을 둘러보다가 슈슈를 보았다.)
 
슈테른:필요한 건 숙소에 다 있지만... 혹시 모르니 음료수를 한 병 사갈까요? 가면서 목이 마르실 수도 있으니까요.
 
시아록:응, 좋아. (네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음료수 한 병을 집어들었다.) 슈슈는 필요한 거 없어?
 
슈테른:전 괜찮아요. 그럼 음료수만 계산하고 갈까요?
 
시아록:그러자. 이제 숙소가서 푹 쉬자. 내일 또 출발해야 하니까.
(음료수 병을 든 채로 계산대로 향한다.)
 
음료수 하나를 계산하고 가게 밖으로 나오면, 길고 길었던 야시장의 출구가 보입니다.
 
시간이 늦었지만 그 열기는 여전합니다. 여전히 사람이 여럿 길가에 깔려 있고, 몇 군데인가 문을 닫았을 뿐 야시장의 불빛은 아침까지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둘은 즐거웠던 곳을 뒤로하며 길을 떠납니다.
 
이런 축제가 도대체 얼마 만일까요. 그 삭막하고 대부분이 디지털화된 곳에서 벗어나니 어쩐지 숨이 트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행복한 웃음소리를 들은 것이, 그 활발한 거리를 본 것이, 그리고 사람이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야시장을 떠나 숙소로 가다 보면 서서히 침묵이 찾아옵니다. 오로지 당신과 슈테른의 발걸음 소리뿐이에요.
 
한참 걸었을까요? 저 멀리 숙소가 있던 건물이 보입니다. 그 쪽으로 향하려는 당신을, 슈테른이 붙잡습니다.
 
슈테른:... 시아록.
 
시아록:응? 왜?
 
슈테른:즐거웠던 차에 이런 말을 해서 죄송하지만... (이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처럼, 한참 뜸을 들인다. 계산에 따라 말을 하면 하고 안 하면 안 하는 그이니만큼 이런 광경은 드물다.)
 
시아록:응..?
 
슈테른:(하지만 인적이 드문 곳은 여기밖에 없으니, 지금밖에 말할 시간이 없다고 판단하고는 말을 꺼낸다.)
제가 해킹의 위험이 다분하다는 건 알고 계시죠.
정품 인증이 되지 않은 기체라 본사로부터 제공되는 백신 프로그램이나 방어벽 업데이트를 전혀 받지 못한다고요.
물론 시아록이 수동으로 설치해 주셔서 지금까지는 안전했어요. 그런데...
문제가, 조금 생겼어요.
 
시아록:(갑작스런 너의 말에 잠시 멍청해져선 눈을 두어번 깜빡이며 가만히 듣고 있었다.)
...무슨, 문제?
 
슈테른:... 아까 숙소에 앉아 있다가 그제서야 깨달았는데...
제 알고리즘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일부 변경되었어요. 어디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아직 분석 중이라 모르겠어요.
정말, 만에 하나의 이야기지만... 누군가가 저를 해킹했을 가능성이 있어요.
만일 그렇다면 제 보안이 뚫린 것이니,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몰라요.
 
시아록:그거 위험한 거잖아?! 컴퓨터 있는 곳으로 가야 하지 않아? (깜짝 놀라 소리치고 말았다.)
 
슈테른:... 본사에 A/S를 요청해도 지금은 들어주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요.
아마 시스템 자체가 먹통이 되었을 걸요. (애초에 출근은 하셨을까요, 하고 중얼거린다.)
 
시아록:아니 그래도 뭔가, 뭔가 할 수 없을까?
 
슈테른:최대한 해결하기 위해 어떤 부분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누군가 침투한 흔적은 없는지 검사 중이에요.
결과가 나오면 바로 말씀드릴게요. ... 그 때까지는 저를 조심하시는 게 좋겠어요.
 
시아록:갑자기 말해도.. 뭘 조심하라고...
(갑작스레 들이닥친 일에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슈테른:제가 당신에게 위험한 존재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무언가 이상 행동을 보인다면, 팔 쪽에 있는 긴급 정지 버튼을 누르세요.
아, 시아록의 개인 정보 관련해서는 괜찮아요. 애초에 쓸 만한 개인정보라고는 집 주소나 생년월일 정도고...
그 외에는 전부 잡다한 정보들 뿐이니까요. 그 쪽은 건드렸을 것 같지 않아요.
 
시아록:아니, 네가 나한테 어떻게 위험한 존재가 된다는 거야. 그럴 일 없어!! 아, 아니, 아...
그 뭔가 다른 뭔가.. 뭔가 할 수 있는 거 없어??
(정신이 없는 듯 제대로 된 말을 내뱉지 못하고, 다른 할 수 있는 것이 없냐는 말만 되뇌였다.)
 
슈테른:... (더 할 수 있는 게 없냐는 말에 그저 침묵으로 답한다. 그가 당신에게 처음으로 보이는 무능한 모습이었다.)
 
정말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당신은 순간 사고회로가 정지되는 기분을 느낍니다.
 
아뇨, 하지만 다시 천천히 짚어 봐요. 그가 뭐라고 했었죠?
 
안드로이드가 반응하고 행동하는 것의 모든 기준점인 알고리즘이 갑자기 변경되었다고 했죠, 외부인의 개입 가능성도 함께 말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멸망 직전이 아닌가요?
 
당신에게 앙심을 품은 게 아니고서야, 설령 정말 그렇다고 해도...
 
며칠 안에 전부 무너질 운명인 참에, 해킹이라고요?
 
...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있는지 한편으로는 의문도 듭니다.
 
어쨌거나 오늘은 이만 쉬어야겠다고 판단한 듯, 당신의 안드로이드는 천천히 다시 숙소를 향합니다.
 
차마 손은 잡지 못한 채로, 그저 앞장섭니다.
 
시아록:(평소와 달리 손을 잡아주지 않는 네 손을 먼저 가서 잡고는 숙소로 향했다.)
 
카운터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주인을 지나 숙소로 향한 당신은 옷을 벗고 침대에 눕습니다. 당신도, 그도,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은 채입니다.
 
슈테른은 뒷정리를 다 끝냈는지 침대 옆 바닥에 앉아 나지막하게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넵니다.
 
시아록:슈슈.. 아까 말한 거... 나중에 알아내면.. 나한테 바로 알려줘. 알았지?
(아마 오늘은 잠들지 못하고 아까전의 생각을 계속 곱씹어 볼지도 모른다. 자신의 생각만으로 무언가가 해결되는 것도, 해결할 수도 없는 걸 잘 알지만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고, ...정말 만에 하나의 일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도 결정내릴 수도 없다.)
 
슈테른:... 제 선에서 최대한 노력해 볼게요.
...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이 숙소는 방음도 잘 안 되니까...
 
시아록:아니, 바로 알려줘. 약속해.
 
슈테른:아마 무슨 일이 생겨서 시아록이 위험해진다면, 분명 누군가가 구해주러 오실 거에요.
알겠어요. 꼭, 검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바로 알려드릴게요.
 
시아록:내가 위험에 빠질 일이 뭔지 모르겠지만.. 누가 날 구해준다는 거야.. (아까의 연장선의 일로 침울해진 목소리로 답했다.)
응, 약속이니까 꼭 알려줘...
... 내일 다시 길 떠나야 하니까, 슈슈도 좀 쉬어.
(모로 누워 살짝 웅크린 채로 눈을 감았다. 그렇지만 머릿속은 실타래처럼 생각이 엉켜있어서 전혀 잠오지 않는다. 그저 생각의 끄트머리를 잡고 거기에 매달려있을 뿐이다.)
 
슈테른은 뒤를 돈 채로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는 한동안 침묵합니다. 잠시 뒤, 미동이 없는 그의 몸에서 '수면 모드로 전환됩니다.'라는 음성이 흘러나옵니다.
 
아마 잠 못 이루는 밤은 길어질 것 같습니다. 눈을 가만히 감고 있을 뿐인 시아록, 듣기 판정.
 
시아록: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1
판정결과: 대성공
 
책미 (GM):??????
 
하늘:?????!!!!
 
불을 꺼 깜깜한 공간 속에서 날카로운 기계음이 들립니다.
 
고요함 사이로 불현듯 파고드는 것은 칼날과도 날카로워 잘못 들었다고 치부할 수도 없을 만큼 선명한 소리입니다.
 
삑삑-. 그 소리에 어쩐지 심장께가 서늘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게 그가 말했던 이상 징후일까요?
 
잠을 몰아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슈테른을 지켜보면, 그러나 여전히 미동은 없습니다.
 
그저 편안해 보이는 무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을 뿐입니다. ... 괜찮은 걸까요?
 
시아록:(잠시 가만히 슈슈를 쳐다보고 있다. 조금 전에 들은 소린 뭐지. 괜히 불안한 마음에 인상을 썼다.)
 
여전히 별 반응은 없습니다. 삑삑거리던 소리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뚝 끊깁니다.
 
생각이 이리저리 꼬인 느낌을 지우지 못하고, 당신은 심란한 채로 다시 침대에 눕습니다.
 
몇 번을 뒤척였을까요? 곧 동이 틀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들 때 쯤에야 당신은 잠에 듭니다.
 
 
이른 아침 햇살이 눈두덩을 간질입니다.
 
커튼 사이로 쏟아지는 빛무리에 눈이 아파져 올 때 즈음, 누군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립니다.
 
"일어날 시간이에요, 시아록."
 
눈을 떠보면 슈테른이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선이 마주치자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말을 건넵니다.
 
태연히 인사하는 걸 보면 다행히 간밤에 아무런 일도 없었던 모양이죠. 종말을 하루 앞둔 아침이라고 하기엔 믿을 수 없이 평화로운 시간입니다.
 
종말, 하루 전
 
칙칙한 회색으로 뒤덮인 지상과는 다르게 하늘은 무척 파랗습니다. 슈테른이 준비한 건지, 숙박 시설의 주인이 챙겨준 건지 모를 아침밥이 탁자 위에 올려져 있습니다.
 
시아록:안녕, 슈슈. (일어나 손을 흔들고, 약간 비몽사몽한 상태로 탁자 앞에 앉았다.) 아침이네..? 슈슈가 차렸어?
 
슈테른:(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일 때문에 불을 쓰는 도중에 사고라도 나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다행히 멀쩡했어요. 맛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드셔보세요.
 
시아록:응, 고마워. 잘 먹을게. (탁자 앞에서 금방 수저를 집어들고 맛있게 먹었다.) 맛있어!
 
슈테른:식제료가 많지 않아서 뭘 차려드려야 할지 고민했는데, 입에 맞으시다면 다행이에요.
 
시아록:아냐, 엄청 잘 준비했는걸. 다먹고, 정리되면 출발하면 되겠지?
 
슈테른:네. 아직 퇴실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으니까 천천히 준비하셔도 괜찮아요.
몸의 피로는 많이 풀리셨나요? 교통수단 없이 그렇게 오래 걸은 건 처음이셨을 텐데.
 
시아록:응, 조금 피곤하긴 한데. 이정도는 괜찮아!
 
슈테른:알겠어요. 다 드시고 나면 씻으실래요?
그동안 저는 뒷정리를 하고 있을게요.
 
시아록:응, 그럴게.
(차려준 아침을 전부 먹고 씻으러 간다.) 잘 먹었습니다. 씻고 나올게.
 
당신은 욕실로 들어가 세수와 양치를 하고, 여기저기 뻗친 머리를 조금 정리합니다.
 
다 씻은 뒤 방으로 나온 당신은 슈테른이 건네는 가방을 메고 체크아웃을 하러 로비로 향합니다.
 
아침도 해결했겠다, 체크아웃까지 마치고 당신은 숙소 밖으로 나옵니다. 도시 안보다 훨씬 조용하고, 훨씬 공기가 맑은 느낌의 거리가 펼쳐집니다.
 
여전히 당신과 슈테른 사이에는 정적이 흐를 뿐입니다. 숙소로부터 조금 멀어져 아직 잠이 덜 깬 광장을 걷다 보면,
 
슈테른:시아록.
 
시아록:응?
 
그가 조용히 당신을 불러세웁니다.
 
시아록:왜 그래?
 
슈테른:... 어제 얘기 때문에 많이 놀라셨죠.
검사 결과가 나왔어요.
스캔해본 결과, 확실히 몇몇 부분이 조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어요.
그런데 변경된 부분이, 하나같이 조금 이상해요.
 
시아록:(어젯밤 이야기의 연장선에 잠시 심각해졌다.) 응, 어떤 부분이?
 
슈테른:예를 들자면, 제 기종과 같은 안드로이드는 위기 상황 시에 우선 주변의 안전부터 확보하고, 그 다음 노약자들부터 구조하도록 알고리즘이 구성되어 있어요. 생존율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서에요.
주인의 식단을 짤 때는 건강과 입맛, 그리고 재정 상태를 모두 고려하여 최적의 음식을 만들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고요.
그런데 그 기존의 알고리즘이 망가지고, 시아록의 안전과 시아록의 기호만을 생각하도록 다시 작성되었어요.
... 이상하죠? (눈가를 찌푸린 표정으로, 천천히 설명한다.)
 
시아록:응...? (심각한 표정으로 너의 설명을 듣다가 종내에는 어리둥절해졌다.)
누가 나를 최우선하려고 슈슈의 알고리즘을 건드렸다고...???
 
슈테른:저도 그 부분이 의아했어요. 보통 악의를 가지고 저를 해킹할 사람이 이런 짓을 하지는 않을 텐데...
어제 일은 그냥 단순한 오류였을지도 몰라요.
오류였다면 고치면 돼요. 하지만 아무리 수정되기 전으로 알고리즘을 롤백하려고 해도, 어째선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아요.
머리로는, 분명히 잘못되었다는 걸 아는데... 고치고 싶지 않아요.
...죄송해요.
 
시아록:응..? 그래..? 음... 그럼 차분히 해봐.
서로 크게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괜찮지 않을까...?
 
슈테른:... (큰 문제가 생길 만한 사항인지 다시 한 번 고민해보았다. 역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시아록:슈슈가 편하게 해. 슈슈에게 설명들었을 땐 아직 뭔가 문제가 발생할만한 건 아닌 거 같은걸.
 
슈테른:생각했던 것보다는 규모도 작고, 타인의 침투 흔적도 보이지 않지만... 왜 이런 오류가 생긴 걸까요.
아뇨, 시아록이 고치라고 하시면 고칠게요. 어쨌든 오류는 오류니까요.
...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신가요?
 
시아록:아니, 크게 문제가 생긴 건 아니라고 하니까 안심되네. (너를 보고 안도한 기색으로 씩 웃었다.)
 
슈테른:(안도하는 당신을 보자 기이하게도 같은 감정을 느꼈다.) 오늘의 계획은 여전히, 쉘터 외곽 부분까지 걸어가는 건데...
혹시 바로 직행하지 않고 도시 밖을 더 살펴보고 싶으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시아록:음.. 쉘터 근처까지 가는 길에 뭐가 있는지 잘 모르겠네. 나도 이렇게 멀리 나와본 적이 없어서. 우리 뭔가 사야할만한 거 더 있나? 식량이라던가.
 
슈테른:잠시만요. (등에 매여 있는 짐가방 안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고개를 휘저으며 다시 닫는다.) 하루치 식량은 넉넉하고, 필요한 건 전부 챙겨왔으니까요.
 
시아록:그래? 그럼 그냥 가도 되겠다. 쉘터 밖은 진짜 처음이고.. 조심해야겠지?
 
슈테른:네. 하지만 제가 함께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마저 걸을까요?
 
시아록:응!
 
당신 옆에서 걷던 슈테른은, 고민하다가 조심히 손을 잡아옵니다. 거리가 점점 활력을 얻으며 깨어나고, 건물 사이사이로 햇빛이 눈부시게 비칩니다.
 
둘은 쉘터 밖으로 향하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의논해봅니다. 점심은 어떻게 할 건지, 그런 시답잖은 얘기들 말이에요.
 
그렇게 조금 걷자 저 멀리 있는 주유소에서 말소리가 들립니다.
 
주유소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말소리는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건장한 성인들은 흰색의 커다란 플라스틱 용기를 큰 트럭에 한가득 싣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진해지는 석유 냄새를 보아하니 그 안에 담긴 것은 휘발유인 것 같네요. 뭘 하고 있는 걸까요?
 
시아록:주유소네..? 휘발유 담아가나? (트럭을 쳐다본다.)
 
조금 낡기는 했지만 평범한 트럭입니다. 아마 정황 상 휘발유를 자동차 연료로 쓸 것임은 확실해 보입니다.
 
트럭을 빤히 보고 있으면, 둘을 발견한 사람들의 인상이 험해집니다. 마치 이방인을 보는 듯한 눈빛입니다.
 
곱지 않은 시선은 특히 슈테른 쪽을 향해 있습니다. 누가 봐도 사람이라기엔 이질적이니까요.
 
시아록:음.. 분위기가 별로네.. (너를 향한 시선에 앞으로 나서 가린다.) 슈슈, 얼른 지나갈까.
 
슈테른:(내내 딱딱한 자세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당신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 그러는 게 좋겠어요.
 
사람들은 이방인들을 거슬린다는 눈빛으로 보다가, 이내 신경도 쓰지 않겠다는 듯 하던 일을 계속합니다. 트럭에 넣을 휘발유를 계속해서 쌓고, 싣습니다.
 
그들로부터 조심히 멀어지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저들도 혹시 종말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트럭이란 원래 무거운 것들을 많이 실을 수 있는 이동 수단이잖아요.
 
도시 안 사람들 중에 저런 이들이 한 명이라도 있었던가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도시 안의 그 소름끼치던 정적과 대비되는 사람들의 힘쓰는 소리가 유독 귀에 깊게 스며듭니다.
 
아무리 그래도 표정은 너무 험상궂었지만요.
 
옆에서 걷던 슈테른에게 시선을 돌리면, 시아록, 지능 판정.
 
시아록: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93
판정결과: 실패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무언가 중요한 얘기를 할 때마다 꼭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얘기했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다른 사람들이 듣는 게 싫었기 때문일까요?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면, 옆에서 그가 당신을 보고 있습니다.
 
슈테른:... 무슨 생각 하세요?
 
시아록:아, 어.. 아니. ...음, 저 사람들 좀 이상하네.. 하고..
 
슈테른:... 아. 하긴...
시아록, 왜 도시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지,
왜 저 사람들은 저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계시는지... 아세요?
 
시아록:아니.. 자세히는 몰라
 
슈테른:(조금 더 조용한 골목으로 당신을 끌고 오며 답한다.) 도시 안의 땅값은 제법, 아니 많이 비싸죠.
그리고 그렇게 비싸진 이유는, 도시 안의 생활이 워낙 윤택하고 편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안드로이드의 발달 때문에 사람들이 설 자리가 부족해졌기 때문이에요.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었고, 물려받은 게 없거나 안드로이드에게 밀려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결국 도시 밖으로 쫓겨나야만 했어요.
낙오된 거죠, 간단히 말해서.
 
시아록:아... (잘 몰랐던 뒷 이야기에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슈테른:그래서 도시 밖의 사람들은 기계와 첨단과학 등에 전혀 기대지 않고, 자신들끼리 힘을 합쳐 연명하고 있어요.
다른 방식은 철저히 배제되고, 아날로그적인 방식만을 사용하죠.
도시 밖으로 쫓겨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서 현재는 도시 밖의 인구가 도시 안의 인구보다 훨씬 많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 안으로 다시 들여보내 달라는 그들의 항의는 전혀 전해지지 않았죠.
고위직 관리자들은 그들의 말을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았으니까요. ...원통함에 찬 사람들의 비난의 화살은 이윽고 기계들을 향했어요.
 
시아록:그건 안드로이드 탓은 아니잖아...?
 
슈테른:... 조사해본 바로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안드로이드와 같은 기계들은 어차피 생명이 아니니 죄책감도 들지 않아서라고 해요.
많은 안드로이드들이 도시 밖에서 부숴지거나 실종되었죠. 그에 따라 도시 밖과 도시 안의 경계는 훨씬 선명해지고, 왕래는 극도로 적어지게 되었어요.
사이에 마치 벽이라도 세워진 것처럼.
... 솔직히, 여기까지 오면서 돌이라도 맞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시아록:나 그런 건 전혀 몰랐어...
(네가 위험하게 무방비로 돌아다녔다는 사실에 침울해졌다.)
앞으로는 조심히 다녀야겠네..
슈슈는 괜찮아?
 
슈테른:모르는 게 당연해요. 도시 사람들은 이 사실을 내내 은폐해 왔거든요.
그래서 혹시 감정이 격해진 사람들이 시아록을 공격할까봐 우려도 되었는데, 다행히 별 일은 일어나지 않았네요.
아, 저는 괜찮아요. 통계에 따르면 주인이 보는 앞에서 부서지거나 끌려간 안드로이드는 거의 없거든요.
 
시아록:그랬구나... 으응.. (아무것도 몰랐던 사실에 조금많이 놀랐다.)
앞으론 나도 신경쓰고 조심할게.
 
슈테른:...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곧 있으면 숲 쪽으로 들어가게 되어서, 앞으로 사람을 마주칠 일은 많지 않을 거에요.
 
시아록:응. (네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슈테른:조금 더 걸으면 정말 외곽 부분에 닿겠네요. 이만 갈까요?
 
시아록:응, 얼른 가자.
(네 손을 잡고 다시 움직인다.)
 
계속해서 바깥으로 걸어가자 서서히 녹음이 지더니 곧 사람들이 억지로 심은 나무들이 빼곡해지기 시작합니다.
 
비록 크기가 비슷하고, 곧고 예쁘게 뻗어 나간 나무들이 일정한 간격에 맞추어 늘어져 있지만, 자연의 아름다움만은 못합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다른 생명체는 일체 없어서 풀벌레나 새들의 맑은 노랫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점이겠군요.
 
계속해서 걸으면 짙은 풀 내음이 나고, 낮임에도 불구하고 점점 그늘에 휩싸여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런 곳곳에 카메라를 들이밀며 사진을 찍는 슈테른은 조금 비장해 보이기도 합니다.
 
한참 그것들을 사진에 담던 그는 곧 다른 기능을 찾았는지 카메라를 든 채로 이곳저곳을 찍습니다. 셔터를 누르지 않는 걸 보면 동영상이라도 찍고 있나 보네요.
 
시아록:영상 찍고 있어? 어두워서.. 잘 보여?
 
그 말에 그가 들고 있던 카메라가 당신 쪽을 향합니다.
 
슈테른:괜찮아요. 셔터 속도로 밝기를 변경할 수 있고, 여차하면 야간 투시 기능도 있어서요.
 
시아록:오, 그렇구나. 그런 기능은 써본 적 없는 거 같아.
 
슈테른:저도 설명서를 보고 나서 알았어요. 세세한 조작은 못 하더라도, 필터를 씌운다든가 하는 간단한 기능은 전부 들어있는 것 같아요.
 
당신을 마주 본 채로 뒤로 걷던 슈테른의 머리와 얼굴과 몸 위로 조각난 햇빛이 내려앉습니다.
 
곳곳에 흩뿌려진 빛 조각이 꼭 어제 본 불꽃을 닮은 것 같기도 합니다.
 
시아록:(가만히 보다가 휴대폰을 꺼내 네 사진을 찍었다.)
 
슈테른:(찍던 와중에 역으로 찍혀버리자 크게 당황하다가,) ... 제 사진이 찍고 싶으세요?
 
시아록:분위기가 좋아서 찍고 싶었어! 슈슈가 카메라 들고 있으니까 내 폰으로 찍어봤어. (너를 향해 방긋 웃으며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슈테른:그, 그렇구나... 아, 여기만 햇빛이 들어와서 사진으로 찍으니까 근사해 보이네요. (당신이 보여준 사진을 보곤 무언가 떠올랐는지, 녹화 중이던 동영상을 끄더니 다시 사진기를 당신에게 향한다.)
 
시아록:(자신에게 향한 사진기를 보고 고개를 잠시 갸웃 흔들었다.) 아, 날 찍게?
 
슈테른:(고개를 천천히 끄덕인다.) 제가 서 있던 위치로 와 보세요.
시아록도 찍어드릴게요. 남기고 싶어요.
 
시아록:으음, 갑자기 또 찍힌다니까 어색하네. (멋쩍게 웃으며 네가 말한 위치에 섰다.)
 
슈테른:(몇 번 셔터를 누르더니, 사진기를 들고 와 당신에게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이거 보세요. 얼굴이나 머리 쪽에 햇빛이 덧씌워져서...
반짝거리는 것 같지 않아요?
 
시아록:오, 그렇네. 분위기는 예쁜데. 내가 어색하지 않아? (사진을 들여다보며 말한다.)
 
슈테른:전혀요. ...어색하더라도, 그런 점이 오히려 시아록다워요.
(그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은 밝을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조금 복잡해 보인다.)
 
시아록:그런가?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네 말에 고개를 주억이다 네 표정을 보고 의아해졌다.) 왜 그래, 슈슈? 뭔가 문제 있어?
 
슈테른:... (돌연 카메라에서 눈을 떼더니 당신을 빤히 쳐다본다. 얼굴에 머물던 시선은 꿈뻑이며 다시 카메라로 옮겨진다.)
(한참을 그러더니 아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기뻐보이는 동시에 슬퍼보이는, 안드로이드치고 꽤 이상한 얼굴을 하고 있다.)
 
시아록:슈슈? (네 표정에 어리둥절해져서 네 얼굴을 가까이에서 쳐다본다.)
 
슈테른:(잔뜩 복잡한 얼굴인 채로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쳤다. 시선을 피하려는 듯 눈이 흔들리다 다시 앞을 향한다.)
 
시아록:왜 그래? 괜찮은 거야?
(걱정어린 눈빛이 너를 향한다.)
 
슈테른:... 시아록.
제 알고리즘을 바꿨던 범인이, 누군지 알 것 같아요.
 
시아록:응?
(갑작스런 말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슈테른:(아까의 얘기를 꺼내든 것은 무척 뜬끔없는 타이밍이었다.)
... 저에요.
제가 했어요, 전부.
 
시아록:응? 슈슈가?
(전혀 상상치 못했던 말이다.)
 
슈테른:오류 때문이 아니에요. 해킹 때문도 아니에요.
 
시아록:으응..? 그거 자기가 바꿀 수 있는 거였어...?
 
슈테른:제가 스스로, 기존에 짜여진 알고리즘까지 바꿔가면서 당신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도요.
안드로이드가 스스로 알고리즘을 바꾼 사례는 고금에 없어요. 짜여진 대로 행동해야 하는 게 안드로이드에요.
 
시아록:(여전히 눈이 동그래진 채로 너를 보다가 이내 웃었다.) 뭐야, 나쁜 것도 아니잖아. 슈슈가 날 소중하게 생각해주고 있다는 의미잖아, 그건.
 
슈테른:... 괜히 놀라게 해서 죄송해요. 설마 스스로 바꿨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다른 누군가가 바꾼 줄로만 알았어요.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시아록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었거든요.
 
시아록:괜찮아. 내가 웃는 얼굴? 나 잘 안 웃던가... (잠시 자신을 돌아본다.)
 
슈테른:아뇨, 오히려 자주 웃어주셨죠. 제가 말한 건... (다시 길게 고민한다. 여태까지 모르거나 어려운 건 인터넷이나 최첨단 기능에 기대어 알아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왠지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이 상황을, 아니 '감정'을 설명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자신 뿐이라고.)
그냥, 받은 만큼 돌려드리고 싶다고들 하잖아요, 그런 거에요.
인간들은 이런 걸... 애정이라고 하나요? (스스로 입에 담기에도 낯설어하는 눈치다. 알고리즘을 바꿔가면서까지, 계산된 방식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감정.)
 
시아록:오.. 그렇구나. 고마워. (어쩐지 굉장히 쑥쓰러워졌다.)
아냐, 슈슈가 생각하는 걸 충분히 느꼈어.
 
슈테른:(고개를 숙이자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졌다. 행복에 젖은 건지 슬픔에 겨운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 ... 별 것 아닌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이건 정말 큰 사고에요. 안드로이드가 스스로 제 행동 방식을 벗어난 거잖아요.
인간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안드로이드를, 세간에서는 흔히 실패작이라고 부르죠.
 
시아록:그런가?
그치만 나한텐 실패나 오류같은 걸로 보이진 않는데. 어쩌면 슈슈가 그런 "감정"이란 걸 느낀다는 점에서 우월할지도 모르고.. 어쩌면 과학자들이 그렇게 바라던 "사람같은"이란 의미일 거 같기도 한데.
그러니까 괜찮다고 생각해. 슈슈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자기걸로 하고 행동하고 있는 거잖아.
 
슈테른:(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인 듯 조금 놀란 얼굴로 입을 연다.) ... 그런가요?
... 사실 버려지는 게 아닐까, 많은 생각을 했었는데... 감사해요, 그런 식으로 말씀해 주셔서.
 
시아록:내가 슈슈를 왜 버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내가 슈슈를 버리는 일은 없어.
 
슈테른:... 정말로요? (스스로의 손을 끌어모았다.)
 
시아록:그렇지? 왜 그렇게 생각한 거야?
 
슈테른:보통 멀쩡한 안드로이드는 이런 일을 하지 않잖아요. 오류를 제대로 해결하지도 못하는 저니까,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되었어도 전 분명 웃고 있었을 거에요. ... 제가 시아록에게 영향을 받고, 시아록과 같은 인간이 되어간다는 게 기뻐서...
 
시아록:으음.. 슈슈는 그렇게 생각했구나. 그래도 걱정하지마. (네 머리를 두어번 토닥였다.) 나는 절대로 널 버릴 일 없으니까. 그리고 뭔가 사람이 되어간다는 말은 좋다.
 
슈테른:(편안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말씀만으로도 감사해요.
 
시아록:응. 그럼 이제 다시 출발할까~!
슈슈도 괜찮다는 걸 알았으니까
 
슈테른:... 네, 마저 가요.
얘기가 길어져서 죄송해요. (천천히 다시 쉘터의 출입구 쪽으로 향한다.)
 
숲을 한참 걸었습니다. 미리 사둔 음식으로 끼니를 챙기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대단한 사명을 짊어진 것처럼, 발걸음은 잠시 쉴지언정 멈추지 않았습니다.
 
타오르던 석양이 물러나고 샛별이 하나둘씩 쉘터 밤하늘에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스크린에 떠오르는 것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실제로 보면 얼마나 감탄이 쏟아질까요." 옆에 있던 그가 작게 중얼거립니다.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은 쉘터 안의 세상은 이질적인 벽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이 끝을 숨기려는 듯 나무를 빼곡하게 심어 둔 숲의 끝에는 땅에 밤하늘이 맞닿고 있습니다.
 
발치에 고인 밤하늘을 본다면 이런 기분일까요? 손을 뻗어 별이 떠오른 검은 벽면을 짚으면 단단하고 묘하게 열감이 느껴지는 스크린이 만져집니다.
 
슈테른:아, 드디어...
여기까지 왔네요.
아직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는데도 조금 뒤의 미래가 기다려져요.
 
시아록:그렇네. 처음이다, 여기까지 와보는 거.
쉘터 벽은 이렇게 생겼구나.
 
슈테른:하늘처럼 보였던 건 전부 스크린으로 틀어졌던 영상이었네요.
밖으로 나가도 이런 광경을 볼 수 있을까요?
 
시아록:그러게.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스크린 전부 실제 하늘을 본따서 만든 거겠지?
 
슈테른:그렇겠죠. 실제처럼 보여야 하니까...
아, 저기... 사다리가 보여요.
저기로 올라가면 정말로 나갈 수 있겠죠? 어두우니까 손전등을 켜는 게 좋겠어요.
 
시아록:그래. (가방에서 손전등을 꺼내서 켰다.) 이제 올라가볼까. 사다리 조심해서 올라가자.
(사다리를 붙잡고 먼저 올라가기 시작한다.)
 
사다리를 통해 올라가다 보면, 슈테른이 넌지시 말합니다.
 
슈테른:쉘터 밖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거기에도 무언가 존재한다면, 반짝이는 게 있으면 좋겠어요.
하늘에 쏘는 불꽃놀이가 터지고 있어도 좋고, 이곳처럼 인공적이지 않은 녹음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모든 건 당신과 함께해야 의미가 있겠지만요.
 
사다리를 통해 올라온 곳에는 단단히 닫혀 있는 철제 문이 보입니다.
 
문 밖에서 무언가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기도 하는 것 같아요.
 
시아록:..? 이게 무슨 소리야?
 
슈테른:어...
말소리 같은데요. 먼저 나간 사람들이 있는 걸까요?
 
당신은 종말을 향해, 무엇이 있을지 모를 미래를 향해 나아갑니다.
 
호기심에 휩싸여 문고리에 손을 대려던 순간.
 
시아록, 듣기 판정.
 
시아록:사람이려나..?
듣기
기준치: 60/30/12
굴림: 2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삑삑―
 
슈테른에게서 불길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밖에서 나던 소리는, 이내 삑삑거리는 경고음에 덮입니다.
 
그리고 듣지 못하면 안 된다는 것처럼 쉬지 않고 한 번 더 날카로운 소리를 냅니다.
 
... 슈테른의 알고리즘이 바뀐 건 오류가 아니었습니다. 해킹 때문도 아니었죠.
 
그럼 이 소리는 왜 들리는 건가요?
 
...
 
<배터리 소진까지 얼마 남지 않았을 경우, 삑삑―거리는 알림음이 들리오니 반드시 충전해주시기 바랍니다.>
 
맞아요, 리플렛에 분명히 그런 문구가 있었잖아요.
 
동시에 숙소에서 들었던 경고음 또한 배터리가 부족했기 때문에 생겼다는 것을, 당신은 직감합니다.
 
시아록:아. (너를 돌아본다.) 슈슈
배터리 충전 지금까지 한 번도 못했지? 어떡하지?
다른 충전방법이라도 있을까?
 
슈테른:... 제 기종은 전용 배터리가 있어요.
나올 때 최대한 챙기려고 했는데, 전부 떨어져 있어서...
그게 없으면 충전은 불가능할 거에요, 앞으로도.
 
시아록:아, 어떡하지? (초조한 듯 발을 움직였다.) 그 전용 배터리 충전하려면...
재충전은 불가하고 그냥 사서 써야 하는 거야?
 
슈테른:... (고개를 끄덕인다.)
거의 다 왔으니, 이만 갈까요.
 
그의 말대로라면,
 
슈테른의 "죽음"은 정말로 얼마 남지 않은 게 되겠군요.
 
시아록, 이성 판정.
 
시아록:
SAN Roll
기준치: 83/41/16
굴림: 2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 1 감소.
 
슈테른:어차피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어요.
종말이 찾아오면 저 같은 안드로이드도 끝을 맺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요.
저는 쉘터의 부산물이잖아요.
그러니 쉘터가 무너지면, 저도...
 
시아록:멸망이 얼마 남지 않긴 했지만.. 나도 어차피 끝나겠지만, 그래도 멸망의 끝까지는 슈슈랑 같이 있고 싶어. (침울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슈테른:그렇게 말씀하시지 않더라도 끝까지 옆에 있을게요.
... 나갈까요? 밖으로.
 
시아록:....응...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슈테른은 달래는 말로 그저 시아록에게 손을 내밉니다. 목 뒤로 밝았다가 점멸하는 붉은 빛을 인 이가 야속할 뿐입니다.
 
손을 뻗어 뻑뻑한 문고리를 돌려 힘차게 밖을 향해 밀면 두어 번의 시도 끝에 활짝 열립니다.
 
밖에서 쏟아지는 바람은 상쾌하고, 차가움을 흩뿌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공의 바람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두 사람은 여행의 끝으로, 완결을 맺기 위해 걸음을 옮깁니다.
 
멀리서 풀벌레의 찌르르 우는 소리가 들려오고, 바람 소리가 들려옵니다. 나뭇잎이 몸을 부닥치며 쏟아지는 울음소리가 통로를 왕왕 울립니다.
 
그래요, 곧 끝이 다가옵니다.
 
그는 손을 내밀어 당신의 손을 쥡니다. 적당한 온도의 손아귀가 맞닿자 그 안에 기분 좋은 체온이 고이기 시작합니다.
 
...
 
밖으로 나오자마자 보이는 것은 쏟아질 것 같이 반짝이는 밤하늘 위의 별입니다. 그 아래 드리운 온갖 녹음은 어둠에 감겨 바람을 따라 천천히 몸을 흔들다가 이따금 서로 부닥치며 비명을 지릅니다.
 
지상 위의 모든 것들은 한껏 생명을 품어가고 있습니다. 광활한 대지 위에 단 두 사람이 서자 어쩐지 벅찬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슈테른:... 여기가,
쉘터 밖이구나...
 
시아록:와... (네 손을 잡고 주변을 둘러본다. 상상조차 해본 적 없던 쉘터 밖의, 경이로운 풍경에 잠시 충격을 받고 입을 살짝 벌린 채 보았다.)
 
슈테른:멸망한 세계라고 해서 폐허일 줄만 알았는데...
이 정도면, 사람이 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시아록:그러게... 굳이 쉘터 안에서의 생활이 아니어도 괜찮았겠는 걸...
그래봤자 그냥 자연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전혀 모르지만..
 
슈테른:... 오래 전 조상들이 살았던 곳이 여기라면,
분명 후대의 인간도 살 수 있을 거에요.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시아록:그럴지도.. 왜 쉘터 안으로 다같이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자연적으로 복원된 걸까...
 
슈테른:자연은 스스로를 청소하며 원래 상태로 돌아가 균형을 유지하려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어요.
그렇다면 어쩌면, 이 땅 위에 솟은 자연을 인간이 망쳐서 지상이 멸망했던 건 아니었을까요?
 
허허벌판 위에는 오로지 녹음과 어둠뿐입니다. 더이상 멸망한 세계처럼 보이지 않지만, 사람의 흔적 또한 찾을 수 없습니다.
 
천천히 걷다 보면 커다란 물웅덩이가 하나 나타납니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 그 위에 비쳐서, 물 표면이 반짝이는 것이 보입니다.
 
있었군요, 반짝이는 것.
 
운이 좋다면 푸르른 초목이 한가득 있는 진짜 숲을 발견할지도 모르고, 하늘을 수놓는 커다란 불꽃놀이를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곁에, 슈테른은 없겠지만요.
 
쉘터는 무너지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밖으로 나온 사람들 뿐입니다. 한 세계가 멸망하고, 다른 세계가 구축됩니다.
 
시대가 바뀌는 것처럼, 이전 세대의 흔적인 슈테른마저 그 멸망에 휩쓸려가는 걸까요.
 
기계음은 꼭 세계의 비명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슈테른의 표정은 믿기지 않을 만큼 차분해 보입니다.
 
이어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섞여듭니다. 환호하는 듯, 우는 듯, 대지 위로 쏟아지는 외침은 쫓겨난 이들의 해방을 알렸습니다.
 
거칠고 낡은 엔진 소리와 아까 맡았던 후각을 괴롭히는 기름 냄새. 잠시 그것을 보고 있던 슈테른은 자리에 주저앉으며 당신을 밀어냅니다.
 
시아록:슈슈?
(밀려났다가 너에게 다가가 옆에 앉았다.)
 
슈테른:... 더는 못 걷겠어요.
저 사람들을 따라간다면 시아록은 살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아니, 분명히 살 수 있어요.
 
시아록:아냐, 같이 쉬자.
 
슈테른:안 돼요.
지금 따라가지 않으면 다들 먼저 가 버리실 거에요.
... 몇 분 안에 배터리가 모두 소진될 거에요.
얼마 남지 않았으니, 먼저 가세요.
 
슈테른은 자신을 버리고 가라는 말을 하면서도 행복하게 웃고 있습니다.
 
당신과 마지막까지 함께 있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기쁜 것 같습니다.
 
시아록:몇 분 안이라고 하면 얼마 안 남았네. 그냥 같이 있을래.
 
슈테른:... 알겠어요.
제가 아무리 이만 가달라고 해도 듣지 않으시겠죠.
음... 무슨 얘기 할까요?
 
시아록:응, 무슨 얘기할까.
아까 사진 찍은 거라도 좀 둘러보면서 얘기할까?
 
슈테른:좋아요.
제가 나온 사진은 온통 웃기게 찍혔을 것 같지만요, 뭘 찍었는지 둘러보는 것도 좋겠어요.
 
시아록:내가 더 이상할 걸?
 
슈테른:(찍은 순서대로 앨범을 넘겨 본다.) 별로 이상하지는 않았어요...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요.
 
시아록:그렇다면 다행이네. (슬쩍 웃었다.)
 
맨 처음 보이는 것은, 기본적으로 한 장씩 들어있는 그래픽 파일입니다.
 
기본 폴더를 지우지 않았나 보네요. 사진을 넘기다 보면 지금까지의 궤적이 환히 그려집니다.
 
안드로이드들의 무덤을 찍은 사진, 버스킹을 듣던 당신을 찍은 사진,
 
그리고 불꽃놀이를 배경으로 한 사진 두 장. 하나는 당신만이 나와 있고, 나머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둘이 같이 찍힌 사진입니다.
 
시아록:같이 좀 더 찍을 걸 그랬다. 같이 찍은 게 한 장 밖에 없네.
 
슈테른:그러게요. ...삼각대라도 같이 샀다면, 타이머 기능으로 찍을 수 있었을 텐데...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요? ... 그래도 시아록이라도 사진으로 남길 수 있어서 기뻤어요.
 
그 다음으로 숲 곳곳을 찍은 동영상과 사진이 여러 장 나오더니, 당신을 찍은 사진이 눈에 비춰집니다.
 
찍힐 때는 그저 어색하기만 했는데, 슈테른이 찍어준 사진 안의 당신은...
 
모두 하나같이 행복해 보입니다.
 
시아록:나 뭔가 다 기분좋게 찍혔네.
 
슈테른:행복해보이던 순간을 남기고 싶었으니까요.
카메라는 시아록이 가져가실래요?
 
시아록:내가 챙기긴 하겠지만..
(잠시 우물쭈물거리다가 사진을 가져와 슈슈를 한장 찍었다.)
슈슈, 나랑 좀 더 가지 않을래? 내가 업고 갈 테니까.
 
슈테른:(곧 전원이 꺼질 듯 불빛이 희미해지는 눈을 감고 있다가 셔터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 지금 별로 좋은 상태도 아닐 텐데... 그, 찍고 싶으시다면야 괜찮지만요.
... ...네?
좀 더 간다뇨?
 
시아록:슈슈는 못 걷겠다고 하니까, 그냥.. 아까부터 생각한 건데.. 내가 슈슈 업고 좀 더 걸어도 되지 않나 해서..
사람들 따라가는 것보다 좀 더 슈슈랑 여행하는 기분이고 싶은데
 
슈테른:... 무거우실 텐데.
그나마 절전을 해서 지금까지 버틴 거지, 전 어차피... 곧 꺼질 거에요. (목소리가 작아진 건 배터리가 고갈되었기 때문이겠지만, 어쩐지 슬픈 것처럼도 보인다.)
 
시아록:사람도 다 큰 성인은 무거워
응, 그래도..?
 
슈테른:... 시아록이 좋다면, 업어주세요.
곁에서 눈을 감을 수 있다면 행복할 거에요.
 
시아록:좋아! (네 승락에 얼른 너를 업었다.)
 
그를 업고, 당신은 천천히 호숫가를 걸어갑니다. 멀리서 사람들이 다 함께 트럭에 타 어딘가로 이동하는 것이 보입니다.
 
무언가 할 말이 생긴 당신은 등에 업혀 있는 그를 부릅니다. 긴 정적만이 찾아옵니다.
 
그의 몸에 더는 힘이 없습니다. 다정한 목소리는 더는 대답해주지 않습니다.
 
 여행도, 그의 삶도 끝을 맺었습니다.
 
당신은 광활하게 깔린 잔디 위에서 잠시 걸음을 멈춥니다.
 
긴 여로의 끝에 갈림길이 있습니다. 당신은 결정해야 합니다.
 
그를 두고 혼자 여행할 것인지, 잠의 묘약을 마셔서라도 같이 잠들 것인지,
 
그도 아니면 잠들어버린 슈테른이라도 데리고 갈지.
 
세계는 당신의 선택을 따릅니다.
 
시아록:(이제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은 너를 업은 채로 잠시 멈춰서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잠시 고민을 하는 듯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당신을 한 번 더 추켜올려 제대로 업고는 천천히 발을 옮긴다. 아직은 좀 더 어디든 같이 갈 수 있으면 좋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그럼에도 슈테른과 함께 이곳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함께하고, 이토록 많은 추억이 있으니 아무리 가야 했던 길이 다르더라도 끝내 동화될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은 축 늘어진 슈테른을 업고 천천히 여로를 걷습니다.
 
사방이 쥐죽은 듯 고요해요. 슈테른의 몸은 무겁고, 무겁고,
 
그리고, 무섭습니다.
 
목에 걸린 카메라가 조금씩 흔들립니다. 우리의 마지막 추억이 담긴 작은 상자입니다.
 
슈테른이 당신을 진심으로 애정하노라 말할 적 빛났던 그 표정을, 그가 '인간'으로 변해감을 기억하는 이는, 이제 오로지 당신뿐입니다.
 
이토록 무거운 건 우리가 함께 만들었던 추억의 무게일까요? 당신은 문득 삑삑거리는 소리 사이에서 희미한 목소리를 듣습니다.
 
슈테른:마지막이니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을게요. 이번 여행도... 잘 부탁해요.
잘 자요, 고마워요, 그리고 또 만나요.
 
 
ED4. 또 다른 여행의 시작.
 
탐사자 생환 / KPC 로스트?
 
생환보상 : 슈테른, 슈테른의 카메라, 이성치 회복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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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미 (GM):아................?
근데 저렇게되면
함께하다가 도중에 버리고 가나요?
 
하늘:음..
사실 얘 나중에 망한 도시 찾아가서 배터리 뒤질 거 같은.. 기분이 들어요..
 
책미 (GM):분위기 깨서 죄송합니다...()
ㅇ예?
헐?
 
하늘:배터리 다 되어갈 때부터 생각했던 건데
아마 폐허? 무너져내렸으려나..? 여튼 돌아가서 뒤질 거 같아요..
 
책미 (GM):헐,,,
이미 다 무너져서 못 들어갈텐데ㅠㅠㅠㅠ
 
하늘:그렇죠.. 근데 눈으로 봐야할 거 같아요
 
책미 (GM):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하늘:끝까지 노력해도 못 구하면 어쩔 수 없지만. 음. 나중에 자리잡아 살아가게 되더라도
집에 슈슈는 있겠죠?
 
책미 (GM):정말 방법이 있는지 찾아야만,,,, 포기하는
으아악?????
안 버리고요????
세상에
 
하늘:그럴 거 같아요.
애초에 수집욕도 있는데, 애정까지 있으면 애 성격상 못 버려요..
 
책미 (GM):그그렇구나
하....
 
하늘:그래서 잘 모으고 있죠...
 
책미 (GM):근데 진짜 엔딩 4번 볼 줄은 몰랐어요............. 전 아록이가 당연히 슈슈 두고갈 줄 알았거든요....
 
하늘:앗 그러셨나요?
 
책미 (GM):그래서 다른 엔딩 복사하고 있었는데
 
하늘:성격상 아무리 생각해도 ... 쟨 못 버려요..
계속 안 버린다고 했잖아요?
정말로 버리지 못해요.
 
책미 (GM):그렇긴 한데, 그 뭐냐
 
하늘:무슨 엔딩 복사하고 계셨던 거 예요 ㅋㅋㅋ
사실 밀어냈을 때부터 저랑 시아록 머리 속은
그냥 업고 가면 안 돼!? 였어서..
 
책미 (GM):오작동한거랑 완전 언제 깨어날 지 모르는 상태인거랑은 다르니까요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선택지가 세개였잖아요
 
하늘:그랬죠!
 
책미 (GM):그래서 KPC 두고 혼자 여행하는 엔딩 복사하고 있었는데
 
하늘:같이 간다는 선택지 말고는 아록이 아무것도 안 보였을 걸요 ㅋㅋㅋ
 
책미 (GM):아 그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늘:넹 ㅋㅋㅋㅋ
성격상..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 뿐이었어요 ㅋㅋㅋ
 
책미 (GM):흐아앙,,,,,,,,,,,,,,, 아니 전부터 누누히말했지만
진짜 착오가있어서 천국에서 쫓겨난 거 아녜요?
하,,,,,,,,,,,
 
하늘:녜? ㅋㅋㅋ 아닙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반짝이는 거 좋아하고 수집욕 있는 애일 뿐이에요 ㅋㅋㅋ

...저 도움 안 되는 짐덩어리를 당시 관캐(현 앤캐)가 집에 데리고 있어주고, 망한 도시로 돌아가서 배터리를 찾는 등 깨울 방법까지 찾을 거라는 충격적인 발언에 그만 고록을 팔 결심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백스토리도 그렇고 정말 머리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요. 당시 세션방을 어떻게 제정신으로 파하고 나왔는지도 기억이 안 납니다.

말도 안 돼... 아니라고요 아록이는 갓캐라고요 다시없을 2차원계의 마스터피스라고요.............

 

아무튼, 참 좋아하는 시나리오에요. 잔잔하게 멸망 속에서 여행하는 스토리라인이나 인간이 되어가는 안드로이드에 대한 묘사나... 언젠가 꼭 다시 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