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채영: 좀 더 책임감 있고 당찬 성격으로 바뀌었습니다. 선배에게 사정을 들어 빌런, 서문규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선우천해: 아마 문규가 죽고 한동안은 천해도 방황 아닌 방황을 할 거 같긴 해요. 자신의 히어로 생활도 돌아보고. 한동안 심란한 표정으로 다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다 그래도 자신은 아직 사람들을 구하고 싶다고 결심이 서면 본부 찾아가서 복직하고 싶다고 떼쓰지 않았을까.....
처음엔 죄책감도 크고, 자기 손으로 끝내야했던 죽음의 무게가 무거우니까 어디가서 말하지 못하는데, 그때쯤이면 담담하게 본부장이나 채영이에게 문규와 있었던 일에 대해 들려줄 거 같아요. 천해에겐 힘든 일이었던 만큼 결국엔 단순히 사건이 생겨 출동하는 히어로보다는 평소에도 주변이나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는 히어로로 성장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화성파(감비노 패밀리) 간부들: 리턴히 때 집행유예로 풀려났다가, 운 좋게 체포할 거리가 생겨 싹 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그의 죽음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자 매스컴과 대중의 관심은 뜨거웠습니다. 하지만 장례식이 끝나고 벌써 일주일. 사람들의 관심은 점차 사그라들었고 KPC의 이름 역시 이제는 잊혀진 빌런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탐사자는 문제 없이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만, 근신이 풀린 이후로 강채영의 소식이 부쩍 드물어졌습니다. 전화도 거의 받지 않고, 메시지로 물어봐도 바쁜지 나중에 얘기해 주겠다는 답변 뿐입니다. 내색하지 못할 섭섭함을 느끼며 후배와의 메세지를 훑어보고 있으면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발신인은 신경훈. 썩은 고기 주위를 맴도는 하이에나 같은 그 남자입니다.
“부검 중에 KPC의 시체가 사라졌다는 소문이 있어. 높으신 분들이 그걸 감추려고 시체 없이 장례식부터 치러버렸다는 거지. 당신은 뭐 아는 거 없나?”
당신의 삶을 조금이나마 바꿔놓은 그 사건 이후에도 시간은 변함없이 흘러갔으며, 세상은 크게 달라진 것 없이 각자의 색깔로 존재합니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는 맑게 개이기 마련이죠.
당신의 인생도 그랬을 지는 모르겠으나, 오늘 날씨 또한 시원할 정도로 맑습니다.
전직 히어로인 당신은, 이런 평화로운 날에 뭘 하고 있나요?
선우천해(테이):(한달이라는 시간은 마음을 정리하기에 충분한 시간은 아닙니다. 아직도 문득 그날의 선택이 옳았던 걸까 생각이 들고, 어느날은 악몽을 꾸고 축축해져 일어나곤 합니다. 자신이 내린 선택이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그를 살리지 못한 것에 죄책감은 느끼곤 합니다. 비록 예전만큼의 능력은 아니지만,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도 씩씩히 살아갑니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 아침 일찍 일어나 언제나처럼 뉴스를 보고, 가볍게 동네 조깅을 갔네요.)
조깅을 다녀오고 샤워까지 하고 나니 기분이 좋네요. 상쾌한 하루의 시작입니다.
전처럼 큰 일이나 사고에 휘말리는 일 없이, 일반인과 다름없는 언제나와 같은 일상을 영위하다가도,
당신은 문득 핸드폰을 꺼내 연락을 확인해 봅니다.
후배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 옆의 1은 아직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틀 전에 보내둔 메시지를 아직도 확인하지 못하다니,
평소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딴짓을 하며 말을 붙여오는 후배님인 걸 생각하면 조금 이상하죠.
특히나 은신 기간 동안은―강채영은 민간인에게 기밀 문서를 공유했다는 이유로 2주간 근신 처분을 받았습니다― 더 이상 연락할 친구도 없다며 당신과 그렇게 열심히 수다를 떨었는데요.
어지간히 바쁜 모양이죠. 걱정 반 서운함 반으로 당신은 핸드폰을 덮어둡니다.
마저 다른 일에 집중하려니, 갑자기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립니다.
발신인의 이름은 ‘신경훈’. 이 빌어먹을 기자가 또 뭘 캐고 싶어서 전화까지 한담.
선우천해(테이):(메시지를 확인합니다. 어쩐지 요즘 소홀한 후배의 연락에 조금 적적함을 느끼지만, 자신 때문에 근신까지 받은 채영에게 무어라 하기 미안하기에 서운해하지 않습니다. 채영아 점심 먹었어? 라고 메시지를 보내려다 지워버립니다. 바쁜 거 같은데 괜히 신경 쓰게 할 수 없으니. 핸드폰을 내리려다 울리는 소리에 화면을 확인하고 미간을 좁힙니다. 무슨 일로 전화했지? 딱히 좋은 일은 아닐 거 같지만 받아봅니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으면 벌써부터 방정맞고 정신사나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립니다.
여보세요? 선우천해 씨? 선우천해 씨 핸드폰이죠? 내가 제대로 건 게 맞아야 할 텐데.
선우천해(테이):(핸드폰을 잠시 귀에서 멀리하고 말이 끊기면 대답해 줍니다) 네, 제가 천우선해인데요. 무슨 일이시죠?
곱게 볼 수 없는 인물인데 계속 되물어오는 말에 조금 눈살이 찌푸려지려던 찰나.
당신이 들으면 눈이 뒤집힐 정보가 있어요.
...서문규에 관한 겁니다.
느닷없이, 그리고 역시나 튀어나온 석 자에 당신은 무심코 숨을 들이킵니다.
무어라 대꾸해주려던 찰나.
아무도 모르게 둘만 만나서 얘기하고 싶소. 워낙 민감한 정보라서.
그쪽 집 근처에 와 있으니 언제든지 나오쇼.
그는 자기 할 말만 지껄이더니 전화를 끊어버립니다.
...집 근처? 기자라니 그렇다치지만, 언제 집 주소가 털린 걸까요.
대체 어디로 나오라는 건지. 무심코 창문을 보면 고민해볼 새도 없이 현관 앞에 주차되어있는 차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선우천해(테이):... (그의 입에서 서문규의 이름이 나오는 게 그다지 유쾌하지 않습니다. 대답을 하기도 전에 제 할 말만 다 하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기자가 황당해 끊어진 핸드폰을 멀뚱히 봅니다.)
(전화를 끊고 발견한 현관 앞 낯선 차에 난감한 표정이 됩니다) ......이거 이사를 가야 하나. (작게 한숨 쉬고 겉옷을 챙겨 밖으로 나가봅니다)
수상쩍고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이지만, 내버려뒀다간 더 큰 사고를 몰고 오는 골칫거리니 어쩔 수 없습니다.
달갑지 않은 마음으로 당신은 그에게 장단을 맞춰주러 나갑니다.
선우천해(테이):(차쪽으로 가서 사람이 있나 확인해봅니다)
집 앞의 차가 주차되어 있던 곳으로 나가면, 당신을 발견한 신경훈이 경적을 울립니다.
신경훈:여기! 여기요!
선우천해(테이):....(^^; 요란하게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다가가 꾸벅 인사를 합니다) 안녕하세요 기자님. 대체 무슨 일이길래 집까지 찾아오신 거죠?
신경훈:말했잖아요. 큰 걸 하나 물어왔다고.
우선 나와줘서 고맙다는 말부터 해둘까? 일단 차에 타쇼.
긴이야기가 제법 길어질 것 같으니까, 안 그래요?
선우천해(테이):...흐음. (그렇게 대단한 기삿거리라면 바로 원고부터 써서 냈을 텐데 자신을 먼저 찾아온 게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경훈의 말에 끄덕이곤 옆좌석에 올라탑니다) 다른 사람은 들으면 안 될 정도로 심각한 문제인가요?
좁은 차에 올라타면 가장 먼저 매캐한 담배 냄새가 훅 끼쳐 들어옵니다.
핸들 근처에 꽁초가 수북한 캔이 놓여 있고,
정리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차내는 그렇지 않아도 좁은데 훨씬 더 갑갑하게 느껴집니다.
망나니의 소굴 같네요. 그에게는 퍽 어울리는 장소지만요.
신경훈:뭐, 누추하지만 모쪼록 편히 있어요. (딱히 상대방을 위해 하는 건 아닌 듯한 말을 예의상 내뱉는다.)
선우천해(테이):(매캐한 담배냄새에 한번 쿨럭거리고 애써 웃어보입니다)
신경훈:내 신뢰도에 대해서는 나도 잘 알지만, 이번만은 진짜요. 신께 맹세코. (과장된 태도로 가슴에 손을 얹었다가 씨익 웃는다.)
당신은 기억합니다.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던 넓은 공터를. 어쩐지 숨이 막히는 것 같던 그 영정 사진 앞에 서던 순간을.
본부의 몇몇 사람만 참석해 극비리로 치러진 장례식은 아주 조촐하게 치러졌습니다.
그러니까 관도, 작게라도 조성해 두는 흰 국화 장식 하나도 없이 그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는 소리입니다.
그 사진 앞에 꽃 한 송이라도 놓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죠.
관계자에게 이것뿐이냐고 물어보니, 장례식은 형식적인 것이고 부검 후에 바로 화장터로 보내질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선우천해(테이):(추모해 줄 사람도 없었던 적막한 그의 장례식 모습이 다시금 떠올라 가슴이 아려옵니다. 근데 시체를 봤냐니...?) 서문규씨의 시체요? 당연히 제가 친족도 아니니 보진 못했습니다만, 시체가 도난당하기라도 했나요? (문규의 시신은 부검 후 화장한다고 전해 들은 게 떠올라 의아한 표정으로 경훈을 봅니다)
신경훈:도난이라... 고작 그런 거였으면 오늘 특종으로 내고 말지.
당신의 말을 들은 신경훈은 담배를 입술 끝으로 물고, 수전증 탓인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불을 붙인 뒤 말을 잇습니다.
신경훈:역시 그렇구만. 이건 정말 어렵게 입수한 정보인데...
서문규의 시신이 장례식 전, 부검 중에 사라졌다는 것 같아.
뿐만이 아니야. 그때 부검을 맡은 부검의도 집에 돌아오지 않은 지 꽤 됐다는 군. 어제 실종 신고가 처리됐소.
그리고 말야, 직접 참석까지 한 당신이라면 알 수 있지 않나? 떠밀리듯 빠르게 치러졌다는 걸 말이야.
선우천해(테이):...? 장례식 전에... 사라졌다고요? 하지만 장례식 땐 분명...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 더듬거리며 대답하지만, 경훈의 말을 들으니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문규가 가족이 없었다고 하지만 부랴부랴 치른 느낌이 있기도 했고) 부검의도 사라졌다고요? 어디서 들은 정보죠?
신경훈:어디서 들었냐니, 다 방법이 있지. 내 나름대로 먹고 살아온 짬밥이 있으니 말이요. (큼큼, 헛기침을 하고는)
요는, 서문규와 부검의, 그리고 당직을 서던 직원 두 명까지 한날 한시에 실종됐다는 거요. 여기까지만 들어도 사건의 냄새가 풀풀 나지 않나?
그리고 그 뭐냐 저시기, 장례식을 치룬 다음에 화장했다지?
화장을 진행했다는 화장터 쪽도 쑤셔봤는데, 그날 화장터는 극소수의 직원 외 출입 금지 상태였더라고.
심지어 그 직원 중에 협회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더군. 잘 생각해 봐. 직원을 소수만 보낸 이유가 뭐겠어?
다~ 입막음을 위해서지.
선우천해(테이):(경훈의 말대로라면 최소 3명의 사람이 사라진 사건인데 들은 바가 없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며 느리게 끄덕입니다) 그럼 기자님의 말씀은 협회에서 서문규씨의 시신을 분실하고 그 사실을 숨기려 한 거 같다는 말인가요? 하지만 본부에서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을 텐데요. (라고 말하며 협회 편을 들지만, 문규가 이능력을 얻은 방법이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게 생각나 찝찝한 표정을 숨기지 못합니다)
신경훈:글쎄... (담배를 든 손으로 운전대를 툭툭 두드린다) 그거야 두고 봐야 아는 거고. 한협회가 그렇게 깨끗한 곳은 아닌 거, 당신도 모르진 않을 거 아니요?
단순히 잃어버리기만 했을까, 기다렸다는 듯이 장례식도 바로 해치워버린 걸 보면 다분히 계획적으로 보이지 않소?
뭐, 협회 관계자들 생각을 내가 어떻게 알겠소. 당신을 부른 것도 그것 때문인데.
선우천해(테이):...(그래도 한협회에서 함께 일했기에, 경훈의 말에 조금 기분이 상합니다. 한협회는 완벽한 곳은 아니지만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곳인데.) 기자님 나름 조사해 보셨겠지만, 과한 상상은 오해를 부르는 법이죠. 일단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따로 알아볼게요.
(채영이라도 만나서 물어봐야 하나 생각하며 차에서 내리려고 몸을 돌리다 손잡이를 잡던 손을 멈춥니다) 참, 서문규씨를 화장했던 화장터가 어디인지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제안을 하지. 나랑 어울려주면 내가 알아낸 제일 결정적인 정보를 드릴게. 대신 맨입으로 줄 순 없지. 그 동안 선우천해 씨는 본부장 쪽을 좀 찔러보쇼. 손해 볼 거 없잖아?
나도 참 협회로 쳐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말야, 그쪽 본부장님이 요즘 좀 바쁘신 것 같더라고. 신경훈은 신경 건드리는 말투로 거들먹거립니다.
당신은 히어로입니다. 이런 악마의 혓바닥에 손에 쥔 것을 내어줄 수야 없지요.
그럼에도 무심코 망설이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선우천해(테이):아, 음... (본부장님이라... 깐깐한 본부장의 얼굴이 떠올라 푹 숨을 내쉽니다. 그렇다고 거절하기엔 지금 자신이 가진 정보는 턱없이 부족하고, 특히 경훈이 말한 결정적인 정보라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잠시 고민하다 어렵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럼 사건에 대해 알아보는 동안 정보를 공유하기로 해요. 대신 함부로 기사를 써내지 않아주시면 좋겠어요.
적어도 일이 확실히 밝혀질 때까진 다른 사람들에겐 비밀로 해주세요.
신경훈:어이쿠, 물론이지. 내 딸을 걸고 맹세하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고 죽은 듯이 있겠다고.
강채영:저희 이렇게 본 지 벌써 한 달만이에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무슨 큰 일 없으셨구요?
이러다가 선배가 저 까먹으면 어쩌나 걱정까지 했다구요. (으으, 앓는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편다. 어쩐지 얼굴이 전보다 푸석푸석해 보인다.)
선우천해(테이):큰일은 나보다 네가 있었던 거 같은데? 연락도 없고. (핼쑥해진 채영의 얼굴을 보고 웃어줍니다. 채영이 안은 손을 풀고 집 쪽으로 고갯짓합니다) 바쁜 거 아니면 차라도 마시고 갈래? 밥 안 먹었으면 라면이라도 끓여줄게.
강채영:아... (그 동안 왜 얼굴도 안 보였냐는 말에 일순 표정이 어두워졌다가 금세 평소대로 돌아온다.) 그, 오늘 찾아온 건요... (말하는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다가도 천해의 제안에 반색한다.) 네? 그래도 돼요? ...음, 그럼 잠시만 실례합니다~!
스물세 살이나 되어서 남한테 식사를 맡긴다는 것도 민망하긴 한데... 지금 배고파서 쓰러질 것 같아요..... (얌전히 손을 잡고 집으로 따라간다.)
그리운 집에 들어와 손님맞이를 하며 냄비를 꺼내면, 강채영이 적당한 곳에 앉더니 TV를 틀어도 되냐고 묻습니다.
선우천해(테이):(순간 어두워진 채영의 표정에 갸웃하지만 일단 배가 고파 보이니 밥은 먹이고 물어보자고 생각하고 집으로 향합니다. 냄비를 찾아 물을 올리고는 채영의 물음에 대답해 줍니다) 너도 아무리 바빠도 밥은 챙겨가면서 일해야지~ 아, 리모컨은 소파 테이블 위에 있을거야.
강채영:아, 감사합니다! (평소보다 약간 힘이 빠진 톤으로 답하더니 리모콘을 든다.) 지금 몇 시지... 아침인가...? 아니 점심이죠... (마지막으로 끌어모을 기력도 바닥난 듯, 탈진한 기색으로 소파에 늘어진다.)
우와, 그리웠다 바깥 세상... (TV에서 나오는 다큐멘터리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선우천해(테이):(ㅋㅋ) (척척 식탁에 식기도 올려놓으며 물어봅니다) 왜 그렇게 힘이 없어? 그리웠다는 건 무슨 말이고. 어디 갇혀있기라도 했어?
일이 너무 복잡해서... 앓다못해 뛰쳐나온 거에요...... (식탁 위에 먹을 것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차려지면 잘 먹겠습니다. 인사한 지 0.1초만에 면치기를 시작한다.)
선우천해(테이):(...대체 무슨 사연이길래 밥도 못 먹고 집에만 갇혀있었던 건지. 맛있게 먹는 채영의 모습을 보며 커피를 홀짝입니다) 집에만 있었으면서 왜 밥은 못 먹었어?
강채영:일하느라 그렇죠 뭐... 선배 뭐 그한 일정 이스세여? (먹다 말고 대답하느라 발음이 샌다. 할 일이 있냐고 묻는 것 같다.)
선우천해(테이):어이구. 천천히 먹어 탈 나겠다. (밥도 데워서 옆에 내려놓습니다) 일정이라면... (본부장님을 좀 만나러 다녀와야 할 거 같긴 한데. ...급한 건 아니니까. 조금 미루자고 생각하고 고갤 흔듭니다) 급한 건 없는데?
강채영:감사함니다... (눈물을 흘리며 받아들곤 놀라운 속도로 해치운다. 물도 원샷하여 마무리하고는) 아, 잘 먹었습니다아...
아, 이제 좀 살 것 같아요... 나머진 제가 치울게요! 갑자기 나타나선 일까지 시켰는데 뒷정리도 선배가 하게 할 순 없죠.
(설거지를 하려는 건지 그릇을 들고 싱크대로 간다. 기분 탓일까? 향하는 발걸음이 좀 다급한 것 같다.)
선우천해(테이):아냐, 그냥 놔둬. 내가 나중에 치울게. (오늘따라 묘하게 서두르는 것 같기도 하고 접시라도 깰까 봐 싱크대로 가 채영이를 끌어 다시 식탁에 앉힙니다) 그보다 무슨 일인데 그래?
강채영:... ... (물어오는 말에 더 이상 도망칠 수 없겠다는 듯 비장한 표정으로 식탁에 앉는다.)
...선배. 좀 갑작스러운 얘기겠지만 들어주세요.
(한숨을 쉬며 한 번 뜸을 들이고 얘기한다.) 제가 지금까지 일했다는 거, 서문규 씨 조사 관련해서 알아보느라 여태껏 바빴던 건데요...
선우천해(테이):서문규 씨에 대해? (혹시 채영이도 뭔갈 발견한 건가? 자신도 마침 물어볼 게 있었는데 잘 됐다 생각하며 자세를 바로하고 일단 들어봅니다)
강채영:그 분에 대해서는 미심쩍은 점이 좀 있었잖아요? 연구소에서 벌어진 인체실험이라든가 하는...
본부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증거가 없어서 진척이 없다길래 은신 기간 동안 인터넷을 이곳저곳 뒤져 봤는데요...
... 일단 결론부터 말할게요. 서문규 씨의 시체를 길에서 봤다는 목격담이 들어왔어요.
제 친구 지인 얘기라는데, 집에 들어가는 골목길에 누가 쓰러져 있었대요. 취객인가 해서 흔들어 깨웠는데 일어나질 않아서...
결국 구조대에 연락했는데, 얼굴을 보자마자 구급대원들 표정이 굳었다는 거에요. 무슨 일인가 해서 봤는데, 서문규 씨랑 인상착의가 닮아있던 거죠.
선우천해(테이):뭐? 서문규 씨 시체를 길어서? 언제? (상상하지 못한 채영의 말에 미간을 좁힙니다) 그래서 그 시체는 어떻게 했데? 자세히 좀 말해봐. 나도 오늘 들은 게 있어서 마침 알아보려던 했거든.
강채영:음, 더 자세히는 못 물어봤는데... 시기를 보면 일주일 내가 아닌가 해요. 구급대가 싣고 가기는 했는데 그 뒤론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고...
...선배도 알고 계셨어요? 누가 알려줬는데요? (사뭇 심각해진 표정으로 턱에 손을 얹고 이쪽을 살핀다.)
아, 안 그래도 실종 사건 때문에 머리 터질 것 같은데 이런 일이...
선우천해(테이):일주일? (같이 심각한 표정이 됩니다. 장례식 전에 사라진 시체가 갑자기 길에 나타났다니) 아... 내가 아는 건 그 내용은 아니고. 아, 채영이 너도 알지? 그 신경훈 기자님. 그분이 오늘 갑자기 와서 서문규 씨의 시체가 장례식 전, 부검 중에 사라진 거 같다고 말해주고 갔거든... 뭐, 확증은 없는 거 같지만.
근데 실종사건이라면 혹시 부검의가 사라진 거 말하는 거야?
강채영:네...? 협회가 아니고요? (고개를 갸웃댄다. 어쩐지 말이 엇갈리는 느낌이다.)
음... 아무 말 못 들으셨구나. (아무리 선배라고는 해도 지금은 민간인인데 말씀드려도 될까... 고민하다가,) 자세한 건 협회로 가면서 얘기할까요?
저희 둘 다 물을 게 많아진 것 같으니까요. 안 나오면 우리가 직접 들어가야지, 어쩌겠어요?
선우천해(테이):어, 어. 그래. (어쩐지 허둥대는 채영의 모습이 심각한 일이구나 싶어 짐을 챙겨듭니다. 본부장님도 만났어야 했고) 바로 가자. 직접 물어보면 뭐라도 답이 나오겠지.
... 직접 찾아가서 배째라 하면 한 마디라도 해 주겠죠. (눈을 꽉 감고 제 머리를 헝클어트린다.)
선우천해(테이):(만약 협회에서 숨기는 게 있다면 아무런 증거도 없이 가서 물어본다고 말해주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작정 찾아가 보려는 채영이를 멈춰세웁니다) 물론~ 그것도 방법이겠지만. 일단 증거라도 모으자. 본부장님 성격 알잖아. 그냥 간다고 말해주시진 않을 거야. 말해줄 만한 사항이었다면 이미 네게도 알려주셨을 테고.
강채영:그 증거라는 것도 모으기가 쉽지 않아서요... 인터넷을 쥐잡듯이 뒤지느라 머리 빠개지는 줄 알았어요. (지금까지 집에 갇혀있던 이유가 뭔데요, 덧붙이고는)
그래서 직접 찾아가서 심문하면 어떨까 했는데... 음, 어딜 가서 누구한테 물어보죠?
선우천해(테이):심문... (곰곰, 본부 안에 자료를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지능 판정 가능할까요? 본부장에게 바로간다고 술술 알려줄 거 같지 않아서)
안타깝게도 본부에 있는 열람실은 평범한 직책으로는 출입이 불가능한 제한 구역입니다.
게다가 악성 해커의 손에 털릴 뻔한 적도 있어서 보안에는 특히나 철저합니다. 협회 기밀을 아무 손에나 쥐여줄 순 없으니까요.
(신문에서 홀린듯 나비에 대한 기사를 읽습니다. 새로운 상식을 얻은 기분. 몇장 더 넘겨봅니다)
캡틴은 나름 유명인이라 신문에 그를 위한 지면이 몇 장이나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번에 인터뷰한 기사는 히어로 본부의 루머에 대해 유쾌하게 해명하는 내용입니다.
캡틴:"본부 아래에 지하 시설이 숨겨져 있다는데 사실인가요?" 라길래 그런 게 있겠냐고 얼마나 웃었는지.
이런 루머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계속 도는 모양이야.
아니면, 혹시 너희도 이런 소문을 믿니?
선우천해(테이):에이~ 설마요. 뭐, 있어도 멋질 거 같긴 하네요. 그 영화 같은 거 보면 스파이를 위한 기술 개발하는 시설 멋지잖아요? (전혀 믿지 않는 표정)
강채영:이러다 헬기 착륙장에서 로보트 나오는 거 아니냐는 소문도 도는 거 아니에요? (바람 빠지는 웃음을 흘린다.)
캡틴:하하하하. (두 사람의 농담을 즐겁게 듣는다.) 그것 말고도 기상천외한 루머가 다 돌았단다. 예를 들어 본부장과 메리 브라우드 박사 사이에 뭔가 있는 것 같다는...
아, 이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구나. (시계를 확인하고는 한숨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다시 한 번 느끼지만, 시간이 참 빠르지 않니?
선우천해(테이):에이~ (본부장과 박사의 얼굴을 나란히 놨다가 손사래를 치며 웃습니다) 그거야말로 진짜 루머네요~ (일어나는 캡틴을 보고 함께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오래간만에 반가운 얼굴을 만나 표정이 밝습니다) 그러게요. 처음 신입 히어로가 된 게 얼마 전 같은데, 이제 캡틴이 은퇴를 생각하는 나이라니...
캡틴:나야 이 바닥에서 할 만큼 했지. 마지막까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힘을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는 거니까. 이런 노망 난 선임을 둔 너희들이지만, 열심히 하렴. (말은 그렇게 하지만 표정에는 특유의 사람을 끌어모으는 미소가 떠올라 있다. 의자에 걸쳐놓은 외투를 집어들고 자리를 뜬다.) 둘 다 건강히 지내야 한다?
캡틴은 마지막으로 우리의 등을 한 번씩 두드려주고 자리를 뜹니다.
모두의 선배라는 인상이 강해서인지, 아니면 직속 선배이기 때문인지 캡틴 앞에 서면 어쩐지 파릇파릇한 어린애가 된 기분이 듭니다.
선우천해(테이):(저렇게 멋진 히어로가 되어야지 생각하며 캡틴의 모습을 보고 배웠는데, 그런 그보다 일찍 은퇴한 건 역시 아쉬운 일입니다. 카페를 나가는 캡틴의 뒷모습을 보다 식은 커피를 챙겨듭니다) 말은 저렇게 하시지만 아직도 현역이고 멋있는 분이지... 우리도 이제 올라가자.
그러나, 한 차례 온풍이 지나간 자리에 냉기가 맴돕니다. 그야 들고 있는 세 개째의 커피의 주인을 알고 있잖아요.
들고 있는 파일도 그러합니다. 실종 사건에 대한 서류들이라 했던가요.
두께는 얼마 되지 않지만 담고 있는 무게는 더없이 묵직합니다.
강채영:좀 더 대화해보고 싶은 분인데 늘 바쁘시니 아쉽네요. 직접 뵐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럽지만...!
전 초등학생 때 맨날 캡틴 방송 보면서 자랐잖아요. 처음 만나뵈었을 땐 얼마나 놀랐던지. TV에서만 보던 분인데 선배의 선배라니 감회가 새로웠다니까요.
...음, 크게 소득을 얻은 게 없네요. 지금까지 모은 정보만으로 본부장님 페이스를 무너트릴 수 있으려나...
...해 봐야죠. 여기에 쏟은 시간이 얼만데, 끌어내야 해요. (다짐하며 크게 숨을 들이쉰다)
선우천해(테이):그래? 나도 캡틴 같은 히어로가 되고 싶었는데 말이야. (좋은 선배를 뒀다는 것이 어쩐지 뿌듯합니다. 점원에게 받은 서류를 툭툭 치며 말합니다) 그럼, 방법이 있을 거야. 올라가면서 읽어보자.
강채영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입니다. 엘리베이터가 띵, 하고 도착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라진 시체, 신경훈 기자, 본부장, 실종 사건, 그리고 협회.
온갖 사건이 얽히고설켜 있습니다. 1달만에 찾아온 변화의 바람을,
우리는 헤쳐나갈 수 있을까요?
―
본부의 엘리베이터는 최신식 시설이니만큼 그 흔한 끼익, 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아 쥐 죽은 듯 조용합니다.
당신과 강채영은 지금 본부장실로 올라가기 전, 주인을 잃은 파일을 돌려주러 가는 길이고요.
그런데 은퇴한 당신이 왜 다시금 본부로 찾아오게 되었던가요?
신경훈 기자와 거래를 했기 때문이죠. 본부장을 구슬러 먹을 만한 정보를 캐오면 그만한 것을 주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본부로 향하는 길에 당신의 집 앞에 찾아온 강채영과 만나서 동행하게 되어, 현재에 이르게 됩니다.
의문점 하나 풀리지 않은 사건의 입구로, 우리는 걸어들어갑니다.
아무튼 다시 이 엘리베이터로 돌아와, 당신은 파일의 내용부터 열람하기로 합니다.
핸드아웃: 실종 사건 관련 파일
최근 2주 연관성을 찾기 힘든 불특정 다수의 실종이 여러 차례 보고된 바 있다. 실종자 중 초능력자 역시 소수 포함되어 있다. 실종자에 대한 목격 제보 중에 같은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목격했다는 증언이 다수 나온 점을 들어 초능력 관련 특수 사건으로 분류되었으며, 관련하여 본부가 예의주시 중이다.
겉을 슬쩍 훑어보니 실종 사건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만...
당신이 들었던 또 다른 실종 사건과 약간 맥락이 다릅니다.
선우천해(테이):실종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길 기 다리다 파일을 열어 읽어봅니다. 실종사건이라니, 신경훈 기자에게 들었던 실종사건과는 다른 내용에 찝찝함을 느낍니다. 대충 파일을 훑어보고, 겉면에 파일 주인 이름이 쓰여있나 확인 가능한가요?)
책임자의 이름이 구석에 쓰여 있습니다. 「정현수」 ― 기술과 소속.
기술과는 본부장실보다 몇 층 아래에 있습니다. 당신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최상층에서 20층으로 바꾸면, 옆에 서 있던 강채영이 물어옵니다.
강채영:누가 흘린 거래요? 중요한 파일 같던데.
선우천해(테이):(기술과가 위치한 20층을 누르고 대답합니다) 기술과 직원인데? 중요한 정보 같은데... 정신없으셨나. (파일을 열어 보여줍니다) 실종자가 더 있나 봐. 너도 알고 있던 내용이야?
강채영:...카페 알바생은 민간인인데... 안 읽으셨겠죠? 아, 그렇게 말하기엔 선배도 민간인이시지만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른다.)
선우천해(테이):그러게 말이야. 안 읽었길 바라야지. 본부장님 만나기 전에 알아볼게 생겼네. (장난스럽게 웃어 보입니다)
강채영:(알고 있었냐는 말에 고개를 끄덕여 답한다.) 아까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얘기를 못 했는데, 본부에서 주시하고 있는 실종 사건은 이 쪽이에요. 그 쪽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정체 모를 누군가에게 납치되고 있고, 심지어 초능력자가 피해자가 되기도 했거든요.
선배가 얘기하는 실종 사건은 또 다른 것 같던데, 어떤 거에요?
선우천해(테이):(채영의 말에 잠깐 생각하다 느리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긴 직원의 실종사건보다는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실종사건이 본부로써는 더 심각한 일이긴 하지.) 난 서문규씨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거랑, 그날 당직했던 직원들도 실종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이 실종과 관련이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단기간에 이렇게 실종사건이 많이 일어났다는 점에선 두 사건이 관련 있을지도 모르겠어.
강채영:...서문규 씨의 시신과 담당 직원들이 모두 사라졌다고요? 정확한 시기가 언제쯤인데요...? (심각한 얼굴로 핸드폰에 빠르게 무언가 적는다.)
...전에 그 분의 시체가 길에 쓰러져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잖아요. 혹시나 해서 본부 쪽에 문의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 사건에 대해 본부는 그런 신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못박았어요.
목격담은 전부 합성 사진이 만든 단순 루머라며 쳐냈고. 하지만 그렇다면 좀 이상해요. 구조대원 쪽에서 서문규 씨의 신원을 알아봤다면 분명 이 쪽으로도 연락이 갔을 텐데...
...해결하려는 게 아니라 무작정 덮으려는 것처럼. (무겁게 내뱉고,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 띵 소리가 울려 입을 다문다.)
선우천해(테이):못 박았다고...? (의아한 표정이 됩니다) 그게, 장례식 전이라고 했으니 1달 좀 넘었을 거 같아. 부검의랑 당직 직원까지 사라졌다고 했는데, 부검의는 어제 실종 신고처리를 했다고 하니 최근 기록이 있을 거 같고...
(의심하고 싶지 않지만 선긋는 본부의 태도가 걸립니다. 채영 역시 자신과 비슷한 의심을 하는 거 같고) ... 그러게. 함부로 추측하긴 이르지만, 본부에서 네게도 숨긴 거라면 위에서 뭔가 조용히 시키는 거 일지도 모르겠고...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이 조사에 채영이 함께하는 게 괜찮을 걸까. 괜히 얽혀 불이익을 당하는 거 아닐까. 조금 걱정스러워집니다)
(본부의 어디까지 이 일을 숨기고 있을지 모르니까 엘리베이터가 20층에 도착하면 함께 입을 다뭅니다) 일단 파일 주인을 찾아서 돌려주고 살짝 물어보자.
엘리베이터에는 아까와는 다른 완연한 긴장이 맴돕니다.
띵,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당신은 자신이 숨을 참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을 정도니까요.
열리는 문틈으로 바람이 밀고 들어옵니다. 엘리베이터는 보안이 워낙 철저해 문 없이 기술과 안으로 곧장 연결됩니다.
고민거리가 산처럼 쌓였지만 우선 할 일을 해야겠죠. 채영은 턱에 손을 얹고 끄으으응, 골머리를 썩히며 내립니다.
그를 따라 20층에 발을 딛으면, 오늘도 순조롭게 과로하고 있는 회사원 무리가 보입니다.
파일의 담당자를 당신은 어렵지 않게 찾아냅니다. 입구랑 가까운 곳에서 커피를 들고 가는 길이었거든요.
‘정현수’이라는 이름의 사원증이 목에 걸린 사원은 여러분을 보고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습니다.
선우천해(테이):(자신을 보고 있는 직원이 사원증을 확인하고 고개를 올려 얼굴을 봅니다. 바로 찾을 수 있다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며 파일을 내밉니다) 정현수 씨 맞으시죠? 카페에 파일을 놓고 가셨길래 대신 가져왔어요.
정현수:(다크서클이 짙게 덮은 눈이 크게 뜨인다.) 아, 아...
세상에, 정신이 없었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습관성으로 고개를 마구 숙인다.)
선우천해(테이):아, 아뇨. 제게 사과하실 건 없어요. (정말 피곤했나봐...) 그보다 혹시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정현수:그렇지 않아도 어디에다 뒀는지 한참 찾았는데... 난감하던 차에 감사합니다. (두 손을 공손히 모았다가 시간을 비워달라는 말에 허둥대다가 커피잔을 내려둔다.) 아, 예예. 잠깐이라면... 무슨 일이시죠?
선우천해(테이):그게, (기술과 안을 둘러보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여기서 이야기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라서. 잠깐 바람 쐬는 건 어떠세요?
정현수:아, 알겠습니다. (외투를 챙기고 비상계단 쪽으로 안내한다.) 저, 지금 밖에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없어서, 여기서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마 크게 울리진 않을 테니 말씀하세요.
선우천해(테이):(현수를 따라 비상계단 쪽으로 항합니다. 민망한 웃음) 산책할 시간도 없다니... 기술과는 항상 이렇게 바쁜가요?
아니면, 요즘 그 실종사건 때문에 바쁜건가요?
정현수:한협회에서 특수 기술을 이용해 업무를 처리하는 건 저희가 도맡고 있기 때문에 좀처럼 여유가 안 납니다. 아, 물론 실종사건도 한몫 하고요.
(눈가를 꾹꾹 누르며 말을 잇는다.) 그것 참, 또 무슨 빌런이 날뛰고 있는 건지...
선우천해(테이):(측은...) 원래도 바쁘시군요... 안 그래도 실종사건 때문에 이래저래 난리인 거 같던데, 초능력자도 당하고. 사건을 일으킨 빌런에 대해 새로 발견된 단서 같은 건 더 없나요? 사건 현장에서 발견한 증거품 같은 거라도요.
이렇게 감쪽같이 사람이 사라지는데 예사 능력자가 아닌 거 같고... (현수의 표정을 살피며 물어봅니다)
정현수:아...... 증거가 따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못 들었습니다. 저희는 사건 정황만 파악하는 역할이기도 하고요.
워낙 연관성 없는 실종 사건들이라... 이렇게 특이한 사건이 아니었다면 한 사건으로 묶이기도 힘들었을 겁니다. (큼큼대면서도 띄엄띄엄 내뱉는다.)
선우천해(테이):흐음... (특별한 소득 없는 현수의 대답에 작게 한숨을 쉽니다. 그냥 본부장님께 가자고 채영이에게 말하려다 채영이를 보고 급하게 떠올라 덧붙입니다) 아! 정현수씨, 이 사건에 히어로 누가 투입됐는지 알고 계시나요? (이런 큰 사건에 채영이 혼자 매달리고 있을 리 없지.)
정현수:아... 실종 지역이 보고되는 대로 그 근처에 상주하시는 분들이 순찰하시고 계실 겁니다. 참, 한동안 잠잠하다 싶었는데 언제 이런 세상이 되었는지... (어깨가 푹 꺼질 만큼 깊은 한숨을 내쉰다)
아, 실종자들은 모두 얼마 후 전혀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었답니다. 누가 농담 삼아 포탈이라도 탄 거 아니냐는 말도 하던데요, 원체 쌩뚱맞은 곳에서 목격된 거라.
선우천해(테이):포탈... (그렇담 순간 이동이 가능한 능력자가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 속으로 생각하고 너스레를 부립니다) 하하, 포탈이라니~ 만약 그런 빌런이 있다면 참 무서울 거 같은데 말이에요.
바쁜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부장님도 만나고 사건에 투입된 히어로들도 만나보고, 문규가 사라졌다는 곳도 찾아가고...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 현수에게 가볍게 인사합니다)
사원은 모처럼 머리를 식혔으니 다시 일해야겠다며. 후드득 인사하더니 다시 자기 자리로 비척비척 걸어 들어갑니다.
선우천해(테이):(빙긋 웃고 위치 추적기 보여줍니다) 그건 아니고요. 여기 안에 있던 데이터를 받을 수 있을까 해서요. 현장 조사하려면 사람들이 사라진 곳을 알아야 편하기도 하고~ 혹시 규칙성이 있을지도 모르고요.
정현수:아, 아...! 자세하게 물으시길래 혹시나 했는데 담당자이신가 보네요. 몰라뵀습니다.
선우천해(테이):(뜨끔, ... 전 아니지만.. )(^^;;)
정현수:새 히어로가 파견된 걸 보면 또 실종자가 나온 모양이죠? (천해의 지시에 키보드를 다다다다닥 두드리더니 데이터를 이식해 보여준다.)
그가 파일을 띄우면, 화면에 보이는 것은 도시의 도면 데이터입니다.
군데군데 점으로 위치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의 손끝이 지점을 하나씩 가리킵니다.
선우천해(테이):뭐 그런 거죠. 하하. (양심은 찔리지만 눈은 착실하게 모니터 안 화면에 고정됩니다)
정현수:이게 최근에 실종된 히어로가 가지고 있던.. 이 위치추적기를 토대로 뽑은 실종 당일 이동 경로 데이터입니다.
(지도를 불규칙하게 한 점씩 콕콕 짚는다.) 여기, 여기, 여기로 이동한 게 확실한데 이동 시간이 전부 3분에서 5분 내외죠.
거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절대 그 시간엔 갈수 없어요. 여기 끝에서 저기 끝까진데... 비행기를 타도 이 속도는 안 나올 겁니다.
실종된 히어로는 치료계 초능력자라 공간이동은 불가능하고... 뭐, 아까도 말했듯이 일련의 사건에 관련이 있다면 범인은 공간이동 초능력자…… 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선우천해(테이):흐음... (지도를 보며 끄덕거립니다. 이 정도 거리라면 일반인 저지른 범죄는 절대 아닐 테고...) 한 명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일으킨 범죄일 확률은요?
정현수:실종자들이 사라지는 패턴 자체는 같아서, 동일 인물의 수법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세상에 같은 초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으니까요.
선우천해(테이):그렇군요. (끄덕끄덕) 참, 이거 두 장만 프린트해 갈 수 있을까요?
정현수:프린트라면... 가능한데, 혹시 신분증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이런 자세한 데이터도 회사의 자원이라 함부로 사본을 만들어줄 수 없다는 설명이 뒤따릅니다.
강채영은 둘째치고 당신에게는 사원증이 아닌 임시 출입증밖에 없습니다. 어떡할까요?
선우천해(테이):(........ 일단 채영이에게 눈치로 SOS 신호를 보내고 지갑을 찾는 척합니다.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는데 갑자기 프린트는 괜찮다고 말하기도 이상하니까. 잠시 뒤적거리다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합니다) 아, 어! 지갑! 어라, 카페에 놓고 왔나 봐요... (^^;;;;)
정현수:예...? 그거 빨리 찾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남일이 아니기에 아차 하는 표정을 짓는다.)
정현수의 눈이 흔들립니다. 강채영은 당신의 의도를 눈치채고 우선 자신의 신분증부터 꺼내듭니다.
강채영:선배, 어느 테이블에 두고 왔는지 기억은 나세요? (얼핏 봐서는 진짜로 곤란한 눈치다.) 저, 급해서 그런데 빨리 복사해주실 수 있을까요?
선우천해(테이):커피값 결제하고 거기다 놓고 왔나 봐...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 긁적입니다)
정현수:예? 아, 어, 음... 잠시만요...
...이렇게 해서 실종자들의 위치 추적 데이터의 사본이 여러분 손에 들어옵니다.
참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그렇죠?
정현수는 무사히 카드를 찾길 바란다며 여러분을 돌려보냅니다.
선우천해(테이):(...정현수 씨가 과로에 찌들어서 다행이네...)
강채영:(...우리 히어로 맞는 거죠?)
선우천해(테이):(...다 대의를 위해서겠지...?) 피곤해서 자세히 확인할 정신조차 없나 봐... 우리에겐 다행이지만. (사본을 확인하고 한협회의 미래를 짧게 걱정합니다)
일단 반납하러 가자.
채영은 고개를 끄덕여 답을 대신하곤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릅니다. 위치추적기를 움켜쥐는 손이 조금 떨립니다.
양심이 아픈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일단은 정의를 위한 거니 괜찮다지만요.)
아무튼 착실히 정보를 뜯어내고 21층 비품 창고로 들어가면, 담당자 한 명 없는 썰렁한 창고 안에 덩그러니 선 비품 반납함이 여러분을 반깁니다.
선우천해(테이):(비닐팩을 반납함에 넣습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오는 박스. 히어로 일 땐 몰랐는데 본부가 이렇게 무방비해도 되는 걸까 생각이 들고... 그래도 오래간만에 만져보는 도구들이 반갑습니다. 연막탄과 도청기를 만지작거립니다) 요즘 일손이 부족하긴 한가 봐. 장부도 작성 안 하고 이렇게 가져가라고 놔두는 거 보면.
강채영:사람 손을 많이 탄 걸 보면, 탐문하거나 조사할 때 자주 쓰이는 기기들이라 그런 게 아닐까요?
어차피 본부에 들어올 때도 엘리베이터에서도 보안은 철저하게 하는 편이니까, 이런 걸 만지는 것도 히어로들 말곤 없을 테니까요. (...아마도? ^^; 어색한 표정으로 괜히 주변을 둘러본다.)
선우천해(테이):흐음... 우리도 조금 있다가 탐문 나가야 할지 모르는데 몇 개 빌릴까? 사용하고 반납 부탁해도 되지? (양심에 걸리지만 연막탄과 도청기를 챙기며 물어봅니다)
문제는 둘이 왜 같은 회의실에 있으며 그 브라우드 교수에게 무슨 말을 했길래 화까지 내냐는 거죠.
긴장으로 굳은 몸을 지탱하고 있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파고드는 수밖에요.
선우천해(테이):....(언성이 높아져야 그제야 익숙한 목소리라는 걸 깨닫습니다. 무언가 의견 충돌이 있었던 거 같은데, 이번 실종사건에 관련된 내용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차라리 의견 다른 두 사람이 같이 있는 게 우리 쪽에서 유리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본부장실 안이 조용해지는 순간을 틈타 문을 두드립니다) 본부장님, 안에 계시나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후배와 함께 문틈으로 얼굴을 내비치면, 그제야 여러분을 돌아보는 두 시선이 느껴집니다.
본부장:(잠시 숨을 들이쉬더니) 들어오게.
선우천해(테이):(문을 열고 들어가며 꾸벅 인사하고는 브라우드 교수에게도 가볍게 인사합니다) 역시, 교수님도 계셨네요. (^^;)
브라우드 교수:(짧은 눈맞춤만으로 상대를 알아보고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선우천해 씨. 다시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같이 계신 분은...
강채영:(눈을 살짝 찌푸리고 있다가 물어오는 목소리에 그제야 덜그럭대며 인사한다.) 아,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그것은 설룽하게 네 사람 사이를 훑고 지나갑니다. 안 그래도 적응 안 되는 회의실인데, 두 사람이 싸운 직후라 더욱 냉랭해진 기분이 들어요.
특유의 무거운 공기가 묵직하게 가라앉는 듯 합니다.
본부장은 여러분을 대놓고 거추장스럽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입을 엽니다.
본부장:그래서... 지금 교수와 긴밀하게 할 이야기가 있는데, 무슨 용건이지? 가능한 빨리 끝내주길 바라네.
선우천해(테이):(채영에게 괜찮다는 눈빛 보내고 어색한 침묵에 다 녹은 커피를 들어 올리며 멋쩍게 웃습니다) 두 분이 같이 계신 줄 알았으면 두 잔 사올걸 그랬어요. (각오하고 왔지만, 더 냉랭한 본부장의 눈빛에 바로 본론을 말합니다) ... 그게 서문규 씨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본부장님 알고 계셨죠?
본부장:사실이 아니네. (기다렸다는 듯 즉각 대답이 튀어나온다.) 대응할 필요도 없는 헛소문이야.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도 안 돼. 서문규의 장례식은 자네도 두 눈으로 직접 봤잖나.
그는 죽었어. 확실히 숨이 끊어졌네.
선우천해(테이):(그가 죽었다는 건 자신이 직접 봤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채영이가 알려준 이야기도 그렇고 찝찝한 구석이 많습니다. 심리학 판정으로 본부장의 표정에서 어색함이 있는지 찾아낼 수 있을까요) 그가 죽었다고 해도, 그의 시신을 노리는 자가 있었을 수도 있는 일이잖아요.
본부장은 호락호락하게 볼 상대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진실의 열쇠를 쥐고 있을지도 모르는 몇 안 되는 인간이기도 하죠.
본부장:어설픈 헛소리는 그민두게. 경솔한 발언 하나가 얼마나 큰 파급력을 가질 수 있는지 9년간 실컷 보고 듣지 않았나?
브라우드 교수:... (복잡한 표정으로 꽁지머리를 한 번 쓸어넘긴다.)
선우천해(테이):(역시 본부장의 얼굴을 읽기란 어렵습니다. 심호흡을 하고 반박해 봅니다) 본부장님의 말씀은 분명 맞는 말이지만, ...그의 시신이 사라진 건 루머라고 생각해도 부검의까지 실종됐다는 이야기를 있습니다. 혹시 최근 일어나는 실종사건과 관련된 일일지 모르잖아요. 덮어둔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 않는다는 거, 본부장님이 가장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본부장:부검의의 실종은 최근 일어나는 실종 사건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네.
하지만 서문규와는 별개의 일이야.
선우천해(테이):(서문규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딱 잘라 부정하는 본부장의 대답에 작게 한숨이 나옵니다) 서문규 씨의 일엔 제 책임도 있습니다. 하다못해 부검의의 실종사건이라도 조사하는 걸 허락해 주세요.
본부장:이미 히어로들이 충분히 조사 중이네. 자네가 개입할 필요는 없지.
강채영:... 조사해서, 그 다음엔 어떻게 하실 건데요? 그 결과가 세간에 밝혀지기는 하나요?
시민들 모두가 불안에 떨고 있어요. 묻지마 납치범이라면서요.
서문규 씨가 돌아가신 지 한 달이에요. 그 사람이 있었던 연구소를 조사한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는 소리죠. 하지만 몇 번을 물어봐도 조사에 진척이 없다는 말만 반복하셨잖아요.
그런 식으로, 이번 사건도 그저 묻어오신 건 아닌―
강채영이 뭐라 말을 얹으면, 본부장의 "조용!"이라는 고함이 말을 끊어냅니다.
본부장:자네들은 이 사건의 담당이 아니야. 담당하라고 명령한 적도 없지. 그걸 알고 있다면 다른 히어로들이 조사를 마칠 때까지 잠자코 기다리게.
브라우드 교수:목소리 높이지 마세요. 두 분이 놀라시잖아요.
권위로 알고자 하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리지 마세요.
브라우드 교수는 여러분의 대화를 잠시 가로막더니 입을 엽니다.
브라우드 교수:(손을 모으고 잠시 심호흡을 한다.) 실종사건의 조사 건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범인의 정황이 전혀 파악되지 않아서......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옆을 돌아보며) 선우천해 씨의 개입은 오히려 상황을 더 유리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 본부장님도 아시다시피……
본부장:(표정을 형형하게 굳히고 말한다.) 그만. 브라우드 교수, 거기까지 하시오.
선우천해(테이):(채영이 말에 끄덕거리다가 연구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표정이 굳습니다. 본부장을 대신해 설명해 주는 교수의 말을 잠자코 듣다가 자신이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말에 다급하게 입을 엽니다) 교수님, 제가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니, 그게 무슨 뜻이시죠? 혹시 그 연구소에서 진행된 프로젝트와 관련된 건가요?
본부장님, 지금까지 충분한 인원이 투입했는데 아직까지 단서 하나도 못 찾았다는 건 뭔가 조사 방향이 잘못된 걸지도 모릅니다. 그 연구소와 관련된 일이라면, 서문규 씨와 관련된 일이라면 저도 많이 알고 있으니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당신이 열렬히 설득을 거듭하면, 메리 브라우드 교수는 무언가 결심한 듯 나직하게 말을 내뱉습니다.
브라우드 교수:(눈을 꽉, 감았다가 입을 연다. 5초도 안 되는 찰나였으나, 꼭 5분 같이 느껴지는 틈이었다.)
...사실이에요.
본부장:브라우드 교수!
선우천해(테이):(숨을 삼키고 교수의 말을 기다립니다)
브라우드 교수:(가로막는 기세에도 굴하지 않고 말을 잇는다) 서문규 씨의 시신이 사라진 것도, 다시 목격된 것도. 전부 사실입니다.
지금 서문규 씨는 여기, 본부 아래의 지하 시설에 연금되어 있어요.
...그리고 저는 선우천해 씨가 도와주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메리 브라우드 교수의 폭탄 발언으로 본부장실은 무거운 적막에 휘말립니다.
적어도 당신이 아는 메리 브라우드 교수는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닙니다.
강채영:......
하지만 두 귀로 듣고도 도저히 믿을 수 없겠죠. 당신도 강채영도 몇 번이고 의심하게 될 겁니다.
서문규의 시신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사라진 서문규가 다시 나타났다.
그 사실에 혼란한 여러분을 두고 결국, 본부장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의자가 뒤로 끌리는 소리와 함께 본부장은 메리 브라우드 교수를 노려본 뒤 당신에게 시선을 돌립니다.
본부장:... 앞으로 보게 될 것은 모두 본부 내 일급 기밀일세. 자네들이 무덤에 들어갈 그 순간까지도 반드시 함구해야 하네.
선우천해(테이):(단순히 시신 절도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죽었던 그가 사라져 다시 나타났다는 게 사실이라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듣고 눈만 끔뻑거립니다. 다시 한번 주의하는 본부장의 목소리를 듣고야 정신을 차리고 삐걱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네, 네. 물론... 입니다.
(내가... 그를 만날 자격이 될까. 자신의 선택으로 그가 죽었던 날이 떠오릅니다. 항상 사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어쩐지 심정이 복잡합니다. 꾹 잡은 주먹이 떨립니다.) 그를 만나게 해주세요.
손에 힘이 들어가 절로 주먹을 만듭니다. 옆에 있던 강채영도 저절로 침음을 삼킵니다.
알아버린 진상이 머릿속을 빙글빙글 맴돌며 머리를 헤집어놓는 느낌입니다.
실제로 교수의 말을 들은 이후로 생각이 좀처럼 이어지지 않고, 제멋대로 얽혀버리고 있으니까요.
분명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살아있다니. 관짝을 열고 튀어나오기라도 한 걸까요.
사실 이것까지도 모두 서문규의 계획일까요? 그런 의문이 떠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을 제일 두렵게 하는 것은,
다시 만났을 때 그가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그것입니다.
신신당부를 마친 본부장은 책상 아래를 더듬어 감춰진 스위치를 누릅니다.
얼마 뒤 소리조차 내지 않고 벽이 열립니다. 감춰진 엘리베이터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본부 지하에 비밀 시설이 있다는 루머는 곧 사실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강채영:...선배.
선우천해(테이):(벽이 열리고 나타난 엘리베이터에 짧은 감탄사를 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놀랄 일이 자신을 기다릴 거라는 생각에 마른침을 삼깁니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채영이를 돌아봅니다) 어? 불렀어?
강채영:(유독 가라앉은 목소리로 묻는다.) 가실 거죠.
괜찮으시면 저도 데려가주시면 안 될까요?
본부 심층부에 감춰져 있던 지하 시설.
그 안에 들은 것이니,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위험하고 비밀스러운 것임을 당신은 알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후배가 그렇게 물으면 당신은 조금 고민하게 됩니다. 이것을 채영에게 지워도 괜찮은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아서.
당신도 깊이를 가늠하지 못하는 비리를 후배와 공유해도 되는 것인지, 모르니까요.
강채영과 동행할까요?
선우천해(테이):(자신이 힘든 선택을 할 때면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준 후배를 봅니다. 자신을 데려가달라는 채영의 말이 어느 때보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옳은 선택일까. 또 한 번 자신의 과오에 채영이를 끌어들이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채웁니다) 채영아. 난, ... 난. ... (입술을 꾹 물었다 채영의 양손을 잡고 입을 뗍니다) 솔직히 두려워. 그래서 네가 같이 가주면 좋겠어.
(채영의 눈을 보다 숨을 쉬고 미소 짓습니다) 근데, 그렇기 때문에 혼자 가야 해. 내가 선택해 치른 죽음이잖아. 그의 비난도 원망도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니까. 그 책임을 피하고 싶지도, 널 끌어드리고 싶진 않아.
강채영은 당신의 대답에 그저 알겠다고 답합니다. 당신의 말이 옳다고도, 옳지 않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강채영:선배랑, 교수님에 본부장님까지 가면 핵심 인력이 우수수 빠져버리는 거니까, 저라도 남아있어서 다행이네요.
세상은 제가 지킬 테니까, 안심하고 다녀오세요. 그러니까...
서문규 씨를, 우리가 구해야 하는 사람들을... 잘 부탁드려요. (작게 웃으며 손을 꽉 잡고는 놔 줍니다.)
선우천해(테이):(채영이의 자신의 거절에 쉽게 알겠다고 대답해 준 것이 제 마음의 무게를 덜어주기 위한 것이라는 건 지금껏 봐온 모습으로 알 수 있습니다. 잡은 손을 놓는 채영이에게 대답합니다) 별일 없을 거야. 돌아올 때까지 세상을 잘 부탁해. 템페스트 요원.
강채영:(고민하고 방황하다가도 자기만이 생각하는, 정할 수 있는 '옳은 길'로 나아가는 선배를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방황하며 세상에 휩쓸릴 때면 늘 이정표처럼 서 있어 준 사람. 신분은 민간인이어도 여전히 자신에게는 영락없는 영웅 같다. 선배가 제 선배라서 다행이에요, 같은 말이 떠오르지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는 믿음을 주고 싶다. 나아가려는 길을 가리지 않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서 물러나며 답한다.) 걱정 말고 가 보세요. 테이 씨, 그리고 선우천해 씨.
얼마가 더 이어지더라도 아쉬운 이별을 마치고 당신은 엘리베이터 앞에 섭니다.
뒤에는 후배를 남겨둔 채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알고 있어요. 이건 두고 가는 게 아니라, 서로가 필요한 곳에 서로를 보내는 것임을.
그러니 갈라지는 게 아쉬워도 웃으며 인사합시다.
지금은 잠깐 볼 수 없더라도, 우리는 모두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쫓는 히어로니까,
분명 길이 갈라져도 그 끝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에요.
준비가 끝난 세 사람은 엘리베이터에 오릅니다.
방금까지 잡고 있었던 후배의 손에 미래를 맏기며.
―
엘리베이터는 미세한 소음을 내며 아래로, 그리고 또 아래로 향합니다.
끝없이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는 심연까지 우리를 데려갈 듯 느리고, 고요합니다.
당신이 왜 여기에 타 있었던가요?
본부장과의 씨름 끝에 우연히 서문규가 본부 지하시설에 연금되어 있다는 걸 들었고...
그를 보러 가기 위해 우리는 이 수렁으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사람 셋이 있음에도 침묵으로 가득찬 엘리베이터는 지하 몇 층인지도 모를 곳에서 멈춥니다.
몇 겹의 보안 장치와 시설을 지키는 가드들을 지나면...
여러 방과 이어진 로비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선우천해(테이):(긴장한 표정, 별다른 질문 없이 본부장과 교수를 따라 걷습니다. 소문은 들었지만, 본부 밑에 이러한 시설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곁눈질로 주변을 살펴보다 입을 엽니다) 본부장님, 이곳은 뭘 하는 시설입니까?
본부장:...들어가 보면 알게 될 걸세. 몇 겹이나 되는 베일로 꽁꽁 싸인 비밀 시설이지.
밖으로 새어나가선 안 되는 일을 진행할 때 주로 쓰는 곳이네.
선우천해(테이):밖으로 새어나가선 안 되는 일이라니... (대체 본부에 속한 히어로에게까지 숨겨야 할 일이란 게 뭐있냐는 물음을 밀어 넣고 입을 다뭅니다)
9년이나 근무한 당신입니다. 본부에 대해 모르는 건 없을 거라고 자부했습니다.
분명 그랬는데...
텅 빈 지하시설에는 어디서 불어오는 건지 모르겠는 바람이 윙윙 돌아 당신의 머리카락을 어지럽히고 지나갑니다.
마음 속의 요란을 애써 잠재우며 옆을 보면, 침착해 보이는 브라우드 교수가 보입니다.
그는 여기까지 오면서 한 번도 평정을 잃지 않았었죠. 마치 모두 알고 있었다는 듯이.
발걸음 소리마저 선명하게 귓가에 떨어지는 공간.
인기척에 로비를 가로질러 가던,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이 이 쪽을 보고 고개를 숙입니다.
본부장은 인사를 받는 대신 짧게 말합니다.
본부장:상태는.
연구원: 눈에 띄는 이상은 없습니다.
직감적으로, 그들이 서문규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칩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 침묵하고 있으면, 연구원이 따라오라는 듯 손짓합니다.
연구원: 저, 감시실은 이 쪽입니다... 따라오세요.
그런데 본부장님. 이 분은...?
본부장:동행인이 있을 거라는 보고를 못 들은 건가. (짧게 대답하고는 두 사람을 내버려두고 어딘가로 사라진다.)
선우천해(테이):(본부장의 뒤에서 말없이 본부장과 연구원의 대화를 듣습니다. 본부장을 감시실로 안내하는 연구원의 말에 어쩐지 조급해지는 기분입니다. 먼저 자리를 떠나는 본부장이 가는 방향을 확인하고는 교수를 보고 묻습니다) 교수님은 언제부터 이곳의 존재를 아셨던 건가요?
브라우드 교수:저는 서문규 씨가 발견된 당일부터 불려와 그를 연구하는 직함을 맡게 되었습니다. ...아, 예전 상담 이력 때문만은 아니고...
... 서문규 씨에게 문제가 있었거든요. 저는 뇌과학을 전공한 사람이니,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하신 모양이에요.
선우천해(테이):(철렁한 가슴에 다급하게 꼬리를 물고 질문합니다) 서문규 씨에게 문제요? 어떤 문제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브라우드 교수:(쓴웃음을 지어보인다. 곤란해 보이기도 씁쓸해 보이기도 하는 얼굴) ...그 문제에 대해서라면 직접 가서 보시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그가 구금된 방은 저 쪽이에요. 연구원분께서 안내하시는 대로 따라가죠.
선우천해(테이):... (제대로 답이 되지 않는 교수의 대답에 짧게 숨을 내쉽니다. 문규에게 생긴 문제는 브라우드 교수의 탓이 아니기에 굳었던 표정을 풀고 애써 미소 지어 보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연구원이 안내하는 방향으로 향합니다)
...숨을 들이키고 좀 더 자세히 그 좁은 창문을 들여다보면, 서문규는 침대에 앉아 있습니다.
좁지는 않은 방에 침대와 탁자, 의자 하나만 놓인 단출한 구조입니다.
힘없이 창 너머를 응시하고 있는 서문규의 눈은 텅 비어 있습니다.
틀림없이 이쪽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당신을 보고 있긴 한 걸까요.
선우천해(테이):(창 너머로 보이는 문규의 모습에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느낌입니다. 입을 열어 침착하게 숨을 고르고 창 가까이 다가가 텅 빈 문규의 눈을 응시합니다. 창 위로 한 손을 올리고 이름을 불러봅니다) ...서문규 씨? 저 선우천해입니다.
하지만 침착하게 그를 불러보아도, 돌아오는 반응은 없다시피 합니다.
아니, 없습니다. 들리지 않는 건지 듣고 있지 않은 건지, 몸에 미동 하나 없습니다.
혹시나 하여 창문을 똑똑 두드려봐도 그저 인형처럼 눈만 깜빡이고 있습니다.
브라우드 교수는 천천히 창문 앞으로 다가오며 설명합니다.
브라우드 교수:... 우선 이 사건의 경위를 처음부터 나열해 드릴게요.
선우천해(테이):(문규를 보던 시선을 옮겨 교수의 말을 듣습니다)
브라우드 교수:부검 중에 서문규 씨의 시신이 사라졌어요. 부검의와 당직을 섰던 직원 두 사람도 함께요.
본부에서는 이 일이 바깥에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장례식이 치러진 지 불과 며칠 뒤에, 서문규 씨가 발견된 거예요.
본부의 기밀을 언급하며, 브라우드 교수는 몇 번인가 등 뒤를 돌아봅니다.
정확히는 천장 모서리 쪽을. 확인해보면 아니나다를까 CCTV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없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새삼 확인해보니 감시당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 마음이 훅 무거워집니다.
그는 눈치를 살피면서도 계속해서 말을 잇습니다.
브라우드 교수:동일 인물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몇 차례 유전자 검사를 치렀지만 결과는 같았어요. 서문규 씨가 맞습니다.
하지만 온전히 살아있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선우천해(테이):온전히 살아있지 않다고요...?
브라우드 교수:보시다시피, 신체는 살아있는데 정신이 죽었다고 할까……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고 어떠한 감정도 보이지 않아요. 반응 자체가 없습니다.
선우천해(테이):... 하지만 이쪽을 보고 있고, 서있기도 하고... (흔히 말하는 뇌사상태와 다른 모습에 혼란한 표정으로 되물어봅니다)
브라우드 교수:...창문은 매직미러입니다. 밖에서는 안쪽이 보이지만, 안쪽에서는 불투명하게 가려져 바깥이 전혀 보이지 않죠.
선우천해(테이):..그렇다면 의식 없이 그냥 이쪽을 보고 있다는 뜻이군요.
브라우드 교수:... 혹시 의식이 없는 척을 하시는 건 아닐까 싶어서 여러 가지 자극을 줘 봤지만...
특히 저 분의 초능력은 탈출과 잠입을 할 때 매우 유리하기에, 본부장님이 몇 번이고 독촉해 보았으나 결과는 같았어요.
무언가 드시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미동 없이 그저 앉아만 계십니다. 의식이 없는 상태가 아닌데도 말이에요.
교수의 말대로 창 너머로 보이는 서문규는...
숨을 쉴때마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몸만 아니라면,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형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생기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몸은 살았지만, 정신이 죽었다. 브라우드 교수의 말은 그의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선우천해(테이):원인은요? 아직 밝혀진 건 없나요? (처음 보는 모습에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문규에게 시선을 뒀다 다시 말을 이어갑니다) 서문규 씨를 만났을 때, 무슨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들었어요. 그 프로젝트를 통해 능력을 얻었다고 했고, 그를 만난 것도 그 프로젝트를 했던 실험실 같은 곳이었어요. 그곳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건가요?
브라우드 교수:지금의 서문규 씨는 초능력을 쓰지 않는 게 아니라, 쓰지 못하시는 상태인 것으로 보여요.
그리고 저희는 그 이유가, 감정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마저 입을 연다.) 초능력을 사용하는 대가로 원치 않게 정신력이 소모될 때가 많으시죠?
학계에서는 그 이유가, 초능력 자체가 인간이 감정을 발산할 때의 에너지로 발동되기 때문이라고 추측 중이에요.
시전자가 내뿜는 감정의 양이 방대할 수록 초능력은 더욱 강해지는 거지요. 보다 강력하고 큰 규모의 초능력을 사용할 수록 뇌파 또한 급격하게 뛰는 것을 확인했거든요.
선우천해(테이):감정이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에너지이고, 지금 서문규 씨는 감정을 못 느끼기 때문에 초능력도 못 쓰는 것일 수 있다... (중얼거리며 생각을 정리하곤 브라우드 교수의 말에 끄덕입니다) 종종 부작용을 느끼긴 했지만, 그게 감정을 잃을 정도는 아녔는데. 혹시 서문규 씨가 능력을 얻고 사용한 것 때문에 저렇게 됐을 가능성도 있는 건가요?
브라우드 교수:감정을 앗아가지는 않아요. 단지 큰 출력을 내려 할 수록 어떤 격렬한 감정이든 이끌어내기 위해 과거의 일을 상기하게 되고, 그것 때문에 정신에 부담을 느끼는 초능력자가 많은 거에요.
...그 이론이 사실인지, 서문규 씨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보다 자세한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연구소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천해 씨가 무사히 복귀하자마자 진입했지만... 서문규 씨가 발견되고 나서는 무기한 중지되었습니다. 연구소와 초능력자를 인공적으로 만드는 프로젝트에 대해 보고하려면, 결국 모든 비밀을 털어놓아야 하게 되기 때문에...
그 연구소 안으로 뻗은 진실의 무게가 감당되지 않아, 차라리 마주하는 걸 포기하고 덮는 걸 선택한 거죠.
선우천해(테이):(쇼핑몰 테러 사건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그가 능력을 쓰기 위해 지속적으로 트라우마를 견뎌 내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슴을 무겁게 누릅니다. 결국 문규를 저렇게 만든 배후에 대해 조사도 하지 않고 조용히 덮어버리려고 한 본부의 선택에 자신 또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아직 연구실에 대해 조사가 다 끝나지 않았다는 건, 어떤 연구였는지 연구에 대해 알아낸다면 서문규 씨를 돌려놓을 수 있다는 뜻이네요. 그렇다면 제가 다녀올게요.
브라우드 교수:...거기까지 보내드릴 수 있는 권한이 제게는 없습니다. 현재 연구소 쪽은 봉쇄 상태라, 민간인은 물론이고 히어로들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거든요.
하지만... 한 줄기 희망이 있다면, 천해 씨에게는 서문규 씨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는 거에요.
서문규 씨는 당신에게 아주 강렬한 집착과 같은 감정을 품고 계셨어요. 굉장히 부정적인 감정이라 스스로를 갉아먹기도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효과가 있겠죠.
제가 가진 권한은 이 정도에 그치지만 부탁드립니다. 그와 대화해주세요. 방 안쪽에서의 소리는 밖으로 거의 새어나가지 않으니 안심하셔도 될 거에요.
선우천해(테이):(연구소가 봉쇄 상태라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 문규를 도울 방법이, 자신이 용서를 구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에 표정이 어두워집니다) ... 그럴까요. 서문규 씨가 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요? (교수의 대안에 잠시 눈동자가 흔들리지만 창 너머의 문규를 보고 마음을 잡습니다) 당장은 이 방법이 최선이라면 이야기할 수 있게 해주세요.
브라우드 교수:...지금의 서문규씨는, 처음 테러사건을 겪고 상담실로 찾아왔을 때의 그 상태와 다르게 보이지 않아요. 그 어떤 외부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고 마음의 문을 단단히 걸어잠그셨던 그 때와.
그래서 저는 사건 관계자들 중에서도 유독 책임감과 죄책감을 가지게 됩니다. 어쩌면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래야 할지도 몰라요. 그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 사회가 키워낸 범죄자기도 하니까요.
(길어지는 말을 끊어내고 침착하게 긴 숨을 내쉰다.) 하지만 이 일을 맡길 수 있는 게 천해 씨밖에 남지 않아서 안타까울 뿐이에요. 부탁드립니다, 그를 도와주세요.
말을 마친 교수는 문 앞으로 다가가 철컥, 소리를 내고는 문을 열어보입니다.
안에서 고인 공기가 흘러나오면 밖의 공기와는 또 다른 흐름입니다. 묵직하고,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머금지 않은 메마른 바람이 당신을 반깁니다.
방 안은 워낙 단촐하여 볼 것은 없습니다. 눈에 띄는 것이라면 단언컨대 서문규 뿐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선우천해(테이):(교수가 문을 열어준 문에 노크를 하고 문규가 있는 공간, 그 무거운 곳에 발을 들입니다. 쉽게 그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문가에 서서 마른 입술을 꾹 물었다 이름을 부릅니다) 서문규 씨? 실례하겠습니다.
가까이 다가갈 수록 버썩 마른 생기가 그의 몸을 덮고 있는 게 보입니다.
미약한 전등의 빛에도 몸을 어둠만이 휘감은 것 같고, 눈은 안에서 보이는 유리창만큼이나 흐리멍텅합니다.
다만 착각이었을까요? 당신이 재차 부르자 그 몸이 움찔, 한 것 같기도 합니다.
선우천해(테이):(흐릿한 빛에 의지해 문규의 눈치를 살핍니다. 순간 움직인 거 같은 그의 반응에 몇 걸음 다가가 침대 곁으로 갑니다. 방금 그건 착각인가?) 서문규 씨. 오랜만이네요. 선우천해. 아, 테이입니다. ... 그동안 당신이 죽은 줄로만 알았어요. 일찍 찾아오지 못해 죄송합니다.
서문규:...... (내내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앉아있다가, 테이라는 말에 약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다는 표시인 것 같지만 그 이상의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다.)
선우천해(테이):아. (그의 미약한 움직임에 동공이 커집니다. 순간 놀라 교수가 있는 쪽을 바라보곤 조금 밝아진 목소리로 다시 문규에게 말을 걸어봅니다) 제 목소리가, 들리세요?
서문규:...네. (조금도 감정이 실리지 않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짧게 답하고, 다시 이전으로 돌아간다. 그에게서 흔히 읽어낼 수 있었던 집착이나 증오, 슬픔, 혹은 다른 감정들이 날아간 태도가 낯설지도.)
선우천해(테이):(교수님의 가설이 사실인 건가? 무미건조한 대답이지만 그가 돌아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고 조금 안심합니다. 침대 곁에 앉아 조심스럽게 문규의 손위로 제 손을 올립니다)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전해 들었어요. 분명 돌아갈 방법이 있을 거예요. 아니 꼭 찾을게요. 그러니까 문규 씨도 스스로를 놓지 마세요.
서문규:...(잘 모르겠다는 듯 가만히 있는다.)
살아서 움직이고 숨을 내쉬는 것은 확실합니다. 당신의 말에 작게라도 반응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밑의 안개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이질감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서문규를 둘러싼 주변만 다른 공간에서 뚝 떨어진 듯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아무 반응도 없었던 그가 당신에게 대답이라도 한 것은 그것대로 수확이겠죠.
당신이 말을 고르거나, 브라우드 교수에게 가려고 몸을 돌리면,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서문규가 옷깃을 잡아옵니다.
선우천해(테이):(옷깃이 당겨지는 느낌에 돌아봤다 자신을 잡는 것이 문규임에 놀라 문규 쪽으로 몸을 기울입니다) ... 네? 문규 씨, 뭐 필요한 거라도 있으세요?
당신이 돌아서면 그는 당신의 손을 끌어다 잡더니,
무언가의 암호인지 손가락으로 한참 놀라서 굳은 당신의 손바닥을 두드립니다.
그러다 별 반응이 없으면,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좀 더 직접적인 언어를 전해옵니다.
그러니까... 손바닥에 규칙성이 있는 무언가를 적고 있습니다.
아, 당신도 잘 아는 글자네요. 알파벳입니다.
주의깊게 그가 그려내는 문자에 집중하면, 단어가 하나 조합됩니다.
HELP.
도와달라는 걸까요? 그를? 무엇에서?
한참을 그러고 있으면 당신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여기 계속 갇혀 있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 어떤 처분을 받게 될지 모른다는 것.
그는 천천히 검지손가락을 펴고 입가에 가져다대더니, 누가 볼 새라 다시 원상태로 몸을 돌립니다.
선우천해(테이):(당황해 문규를 보다 제 손바닥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몇 번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걸 확인하고서야 그것이 뜻하는 바를 이해하고는 표정이 굳어집니다) 무엇에서...?
(그가 쓴 HELP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다, 입가에 가져가는 검지에 숨을 삼킵니다. 그러고 보니 브라우드 교수가 그에게 여러 가지 자극을 줬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대체 이곳에 갇혀 무슨 짓을 당한 건지. 문규를 향해 몸을 숙여 작게 속삭입니다) 제가 나갈 수 있게 도울게요.
서문규:(여전히 아무 파문도 내비치지 않는 눈으로 끄덕인다. 나가려는 천해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그저 앞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이건... 말이 통하는 건지 아닌지도 애매합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네요.
당신은 더 캐낼 것이 없을 것 같아, 우선은 몸을 돌려 방을 나섭니다.
선우천해(테이):(나가면서 방문에 보안장치가 있는지 확인 가능한가요)
방문 자체에는 없습니다. 메리 브라우드가 열어준 걸쇠가 우선은 전부입니다.
다만 감시실 입구에 보안장치가 덕지덕지 붙어있습니다.
밖에서는 초조한 기색의 브라우드 교수가 당신을 맞이합니다.
그는 한참을 무언가에 골몰하는 듯 하더니 물어옵니다.
브라우드 교수:선우천해 씨, 그에게서 어떤 반응이 돌아왔나요? 대화해본 느낌이 어떠셨는지 물어도 될까요?
선우천해(테이):(방을 나서며 cctv의 위치와 보안장치를 확인합니다. 서문규 씨의 방 열쇠는 교수님에게 있을 테고. 몸을 투명화할 수 있는 그가 능력을 쓰지 못하는 지금 그를 데리고 이 경비를 빠져나갈 수 있는 확률이 몇 퍼센트나 될지. 굳은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며 머리 한쪽으론 탈출 방법에 대해 계획하다가 브라우드 교수의 물음에 놀라며 대답합니다) 아, 네. 어... (브라우드 교수는 분명 인간적인 분이지만... 본부와 함께 문규에 대해 조사하던 사람. 어디까지 알려줘야 할지 잠시 고민합니다) ...그래도 제 목소리를 기억하는 거 같았어요.
그, 교수님. 서문규 씨가 이곳에 온 후 이번 사건의 원인에 대해 계속 조사받고 있는 상태인 건가요?
브라우드 교수:서문규 씨가 무언가에 반응을 보인 건 처음이에요. 이건 아주 좋은 신호예요. 이런 식으로 함께 있거나 대화하는 시간을 늘려가면…… (화색을 띄며 답하다가도 다음 질문에서 얼굴빛이 어두워진다.)
...이 곳은 어디까지나 위험분자이자 기밀인 서문규씨를 격리하고 가둬두는 곳일 뿐, 본격적인 연구는 다른 곳에서 한다고 하셨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오는 회의에서 결정한다고 하셨어요.
더 이상 조사가 아닌 연구의 영역으로 넘어간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지금의 서문규 씨는 복제인간으로 파악됐기 때문이에요.
선우천해(테이):보, 복제인간이요? 본격적인 연구라니. ... 서문규 씨가 빌런이었다 해도 그는 지금 환자고, 보호자조차 없는데 함부로 연구라니. 게다가 복제인간으로 파악됐다는 건 무슨 말입니까? (정리되지 않는 정보들에 미간이 좁아집니다. 그가 설령 복제인간이더라 해도 사람을 연구에 쓴다는 건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브라우드 교수:(손을 모으고 침착하게, 그리고 신중하게 답한다.)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건 분명히 서문규 씨예요.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다 했고 결과도 전부 같았죠.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문규 씨가 아닙니다.
...아까 장례식이 치뤄진 뒤 며칠 후에 서문규씨가 발견되었다고 했었죠? 그 뒤로 몇 명의 서문규씨가 더 발견되었어요.
며칠 텀을 두고, 차례차례. 저희가 최대한 추적했지만 민간인에 의해 발견되는 경우도 있었고, 그럴 때마다 저희 측에서 그를 데려갔습니다.
...믿기지 않으시죠? 복제 인간이라니. 저도 한 방에 같은 얼굴이 여럿 보이고 나서야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복제 인간들은 며칠 지나지 않아 차례로 죽었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저 사람 하나밖에 없어요.
브라우드 교수:그래서 본부장님이 연구를 더욱 독촉하시는 걸거에요. 언제 사라질 지 모르니까... 연구 내용은 자세히 말씀하시진 않으셨지만, 지금까지의 무자비한 대우를 짚어보면, 아마 좋은 내용은 아닐 거고요.
(그 말을 뱉고 나서 조금 괴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오늘 있는 회의에는 저도 참가합니다. 저는 최대한 제 의견을 피력해보고, 결과가 나오는대로 연락드릴게요.
정황을 듣고 나니 그제서야 발목을 스멀스멀 휘감던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챕니다.
서문규의 사인은 머리뼈와 허벅지뼈 골절로 인한 과다출혈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방금 본 서문규에게서 상처가 하나라도 있었나요?
처음부터 생기지 않았던 것처럼 깨끗한 피부. 죽음으로 몰아간 상처인데 흉터조차 남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직접 눈으로 보았기에 알 수 있어요. 그는 서문규가 맞지만 서문규가 아닌 겁니다.
선우천해(테이):(또 다른 문규는 어디에 있느냐 묻기도 전에 모두 죽었다는 이야기에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교수의 말에 집중합니다. 어쩐지 사건을 유독 숨기려고 했던 본부장의 행동이 이제야 이해가 갑니다. 게다가 그런 비윤리적인 연구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회의가 오늘이라니. 조급한 마음이 다르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 마음을 짓누릅니다)
방에 있는 서문규 씨는 분명 저를 기억했어요. 그가 복제인간이라면 생각까진 옮기지 못했을 거예요. (문규에게서 느낀 위화감을 애써 무시하며 교수에게 부탁합니다) 그를, 사람을 그렇게 실험대 위에 올려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그건 정의롭지 않아요.
서문규 씨가 의식이 있다고 회의에서 꼭 좀 말해주세요. ... 저는. ... 제가 할 수 있는 걸 찾아볼게요.
브라우드 교수:(결코 가볍지 않게 고개를 끄덕인다.) 본부장님께서 뜻을 굽히지 않으신다고 해도, 저 또한 이대로 손을 놓고 있고 싶지만은 않아요. 최대한 그를 사람으로서 대우해달라고 호소해 보겠습니다.
그럼 연락드릴게요. 다음에 다시 뵙죠. (가볍게 목례하고 복잡한 표정으로 방을 먼저 빠져나간다.)
선우천해(테이):(나가는 교수의 뒷모습을 봅니다. 교수의 대답이 조금 마음이 놓이긴 하지만, 본부장 역시 쉽게 뜻을 접을 사람이 아니란 걸 알기에 문규를 빼돌리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시실에 있는 cctv 위치를 확인합니다. 방에 다른 감시원들도 있을까요.)
CCTV는 사각지대가 없도록 일부러 두 대를 달아두었습니다. 왼쪽 위 모서리에 하나, 반대편에 하나.
감시원이나 감시실에 달린 잠금장치 외에 족쇄는 없습니다. 이 공간의 위치부터가 잠금장치의 일종이니까요.
워낙 좁고 배배 꼬인 길이라 초행이 아니더라도 길을 잃기 쉽고, 게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본부에서 최상층에 있는, 본부장실로 이어집니다.
탈출 루트를 아무리 구상해 봐도, 혼자서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로 없을까요? 하다못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할 수라도 있다면.
선우천해(테이):(그를 구해야 싶은데, 구해야만 하는데... 주변을 살피고 머리를 굴려봐도 그럴듯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착잡한 표정으로 창 안쪽의 문규에게 말합니다) 곧 데리러 올게요. 조금만 기다려줘요.
(그래도 그의 위치를 알았으니 다행입니다. 나가서 방법을 찾아보면 하나쯤 있을 거라고 희망하며 교수가 나간 문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무거운 발을 들어 방을 나서면, 이번엔 수행원이 당신을 안내합니다.
수행원: 현재 간부 측근끼리 중요한 안건에 대해 회의중이니, 가급적 소란 피우지 말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나가는 출구는 이쪽입니다. 이 곳에서 본 일들은 모두 함구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선우천해(테이):...네, 알겠습니다. (회의 역시 이곳에서... 수행원의 말에 힐끔 회의실을 찾아 눈을 돌립니다)
회의실은 왼쪽 복도 어딘가에 있는 것 같은데, 깊숙이 있는 건지 여기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수행원의 안내에 따라 미로 같은 통로를 빠져나가면 예의 그 엘리베이터가 나타납니다.
세 명이 아닌 한 명만이 탔지만, 그만큼의 고뇌를 끌어안아서인지 당신이 발을 올리면 약하게 바닥이 흔들리는 게 느껴져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까요?
선우천해(테이):(일단 위로 올라가 문규를 구할 방법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갑니다)
선우천해(테이):(채영이에게 의지하지 않으려고 혼자 내려간 지하였지만, 올라왔을 때 보이지 않는 후배의 얼굴이 못내 쓸쓸합니다. 울리는 핸드폰의 통화목록에 채영의 이름이 떠 있는 것을 보고 지금 시간을 확인합니다) 너무 오래 지하에 있었나...
(시간을 확인하곤 채영이에게 전화를 겁니다)
시간은 오후 4시 22분. 채영과 본부에 처음 온 것이 점심을 먹은 뒤 오후 1~2시 즈음이었던 걸 고려하면 충분히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에게 전화를 걸면, 신호음이 세 번 울리기 전에 달칵, 하고 받아드는 소리가 들립니다.
강채영:선배!!!! (천해라는 걸 확인하자마자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댄다.) 볼일은 끝나셨어요? 지금 어디세요?
선우천해(테이):(채영의 목소리에 핸드폰을 귀에서 조금 멀리합니다) 어, 방금 나왔어. 본부장실이야. 이제 내려가려고. 너는?
강채영:집이요... (언제 다급히 불렀냐는 듯 소리가 급격히 낮아진다.) 선배 가시고 나서 전 뭘 하면 되냐고 물으니까 귀가하라면서 쫓아냈어요.
괜히 방해하지 말라는 투더라고요. 저 나름 현직 히어로고 휴가도 안 냈는데 무작정 집에 보내버리다니, 이래서야 바깥 상황을 알 수가 없잖아요. 할 수 없이 선배 나오실 때까지 기다렸는데... (마음이 많이 상한 모양인지 괜히 종알대며 어리광을 피운다.)
아, 그래도 선배님이랑 같이 본부에서 털어낸 건 알뜰히 챙겨왔어요. 그... 구급상자랑 위치추적기 자료랑, 도청기랑 이것저것이요.
선우천해(테이):(ㅋㅋ) (채영의 어리광에 픽 웃음이 납니다) 아냐, 여기서 기다렸으면 한참 기다렸어야 했잖아. 안 그래도 요즘 무리했으니 집에서 좀 쉬는 것도 괜찮지. 참, 네가 그쪽으로 갈게. 해줄 말도 있고... 어쩌면, 네가 도와줘야 할 것도 있어서.
강채영:(달래주는 목소리에 기분이 조금 누그러졌는지 평소의 어조로 돌아온다.) 그래요, 이 김에 모처럼 잠이라도 자 놔야죠... (시원찮게 내뱉고는) 아, 네? 이 쪽으로 직접 오시겠다구요? 제가 데려다드릴게요.
그, 본가 차 잠깐 빌려와도 됀댔으니까... 장롱 면허지만... ... 아니, 아무튼요.
선우천해(테이):(장롱면허....) 아, 아냐. 택시 타고 갈게... 금방 가.
...스스로도 운전실력에는 별로 자신이 없는지 채영은 얌전히 "네엡. 그럼 기다릴테니까 천천히 오세요~!" 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습니다.
선우천해(테이):(휴, 목숨은 지켰네...) (채영을 만나러 본부를 나가기 전에 본부장실을 살펴볼 수 있나요?)
본부장실에는 제일 큰 본부장의 의자가 못박힌 듯 서 있고, 주변에 회의용 의자들이 나란히 책상에 꽂혀 있습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도 감춰져 있던 걸 생각하면, 다른 비밀 통로가 본부장실이나 지하 시설 쪽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성급히 움직이거나 난동을 피울 순 없습니다.
이 자리에 앉는 본부장은 자칫하면 건물 봉쇄령도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이고,
지하 시설에는 그나마 없었던 가드들이 이 곳에서는 좀비떼처럼 몰려들 겁니다.
가면 갈 수록 막막해지는 계획에 가슴이 조금 답답해집니다.
선우천해(테이):(하다못해 지하의 지도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만약 방에서 문규를 빼낸다고 해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건물을 나가기 전까지는 탈출했다고 말할 수 없을 테죠. 답답한 마음에 혹시 또 다른 숨겨진 문이 있나 천천히 본부장실 벽을 더듬거리며 본부장실을 나갑니다)
본부장실 벽은 그저 딱딱한 감촉만 만져지고, 손으로 통통 쳐도 꽉꽉 막힌 소리만이 뒤따릅니다.
할 수 없이 당신은 더 지체하지 않고 채영의 집으로 향합니다.
선우천해(테이):(택시 잡아타고 슝~)
후배님이 전에 귀띔해준 주소대로 찾아오면, 혼자 사는 태가 역력한 작은 방 안으로 들어섭니다.
그 안에서 그는 쉬는 것도 잊고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다 당신이 초인종을 누르자 후다닥 달려나와 문을 열어 맞이합니다.
강채영:선배~ 아, 못 본 지 몇 시간인데 왜 이렇게 오랜만에 뵈는 것 같죠? (집안으로 탈탈탈 들어선다.)
우선 침대에라도 앉아계세요. 주스라도 내 올게요.
선우천해(테이):응, 부탁해. (채영을 따라 집으로 들어가선 침대에 앉습니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채영의 집. 함께 임무 맡았을 때도 떠오르고. 하지만 곧 채영이에게 본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려주려니 마음이 한구석이 무겁습니다)
강채영의 집은 딱 강채영같다는 느낌으로, 자칫 번잡해보일 수 있는(그리고 실제로도 살짝 어질러져 있는) 구조임에도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곳곳에 방을 꾸미기 위해 들여놓은 초목들이 눈을 즐겁게 합니다.
좁은 방이지만 소파와 책상, 작은 탁자와 침대까지 야무지게 다 배치해놨네요.
강채영은 내어놓은 오렌지 주스 컵의 표면을 쓸다가 말을 꺼냅니다.
강채영:하아, 걱정도 들었는데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이에요. (본부에서 어떤 걸 보고 들으셨는지 묻고 싶지만, 혹시 선배가 곤란해할까봐 포기하고 말을 돌린다.) ...저, 아까 말했던 부탁이라는 건 어떤 거에요?
선우천해(테이):(주스로 말라가는 입술을 축입니다. 잠시 고민하는 표정으로 채영을 봤다 어렵게 말을 이어갑니다) 지하에 가서 서문규 씨를 봤어. 내 목소리를 기억하고 반응했는데 브라우드 교수님은 내가 알던 서문규 씨가 아닐 수 있다고 하셨어. 그동안 몇 번 또 다른 복제 서문규 씨가 발견됐다고 하더라고. 지금은 다 죽었지만.
(제 손바닥에 닿았던 촉감이 떠올라 문규에게 내줬던 손을 다른 손으로 잡습니다) 그가 내 손에 구해달라고 썼어. 아마, 그곳에 갇혀서 실험을 당한 거 같아... 그리고 오늘 회의에서 서문규 씨에 대한 처분이 정해질 예정이라고 하는데, 잘못하면 그가 본부의 연구 대상이 될지도 몰라.
...채영이 넌 히어로니까, 내게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도 부담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난 그를 구해내야만 해. 근데 나 혼자는 어려울 거 같아서... (차마 도와달라는 말이 안 나와 입을 다뭅니다)
강채영:서문규 씨의 복제랑, 실험... (천해가 뱉어내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온갖 감정이 교차해간다. 끝까지 다 들었을 때에야 비로소 형태가 정해진 그것은 명확한 분노다.)
...사실 어느 정도는 예상했어요. 서문규 씨가 여러 명 나타났다는 거. 전에 인터넷으로 조사했을 때 서문규 씨의 목격담을 담은 글이 여러 곳에 있었거든요. 주작이라고 욕 먹더니 금방 삭제됐지만.
각각의 글이 사진을 찍은 구도나, 발견한 시간과 장소가 모두 달랐지만, 그 사람만은 하나같이 똑같은 서문규 씨였어요. 다 본부에서 삭제하고 덮은 거겠죠... (얼굴을 양손에 묻는다.)
...그런데, 설마 잡아서 실험을... 할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죠.
선우천해(테이):(양손에 얼굴을 묻는 채영의 등을 다독여주려다 손을 걷습니다. 결국 채영이에게 본부에 민낯을 보여주고, 사실에 힘들게 만든 건 자신이니까) ...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서문규 씨의 복제 인간들이 나타나고 있는 건 확실한 거 같아. 본부에서도 그가 있었던 시설에 대해 조사하다 '서문규' 씨에 대해 초점을 맞춰 조사하고 있는 모양이고.
회의가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가능한 한 빨리 그를 구해내고 싶어.
강채영:(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 선배 말씀은 충분히 이해해요. 지금 이 순간 제일 화가 나는 대상도, 연구실 조사는 게을리 하고 사람을 잡아다 인체실험을 하는 본부 측근들이니까.
(찌푸린 얼굴 위로 차가운 분노가 서린다. 꽉 쥔 주먹으로 그 강도를 짐작해볼 법 하다.) 그분이 아무리 범죄자라고 해도, 공권력에 휘둘려 피해를 입는 순간부터 민간인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그래서, 저는 서문규 씨를 구해내려고 뛰어드는 게 옳은 건지... 모르겠어요.
선우천해(테이):(자신을 대신해 분노해 주는 채영이 고맙습니다. 어쩌면 후배는 도와줄지 모른다는 기대를 하지만, 자신 없게 끝나는 목소리에 채영을 보던 눈이 깜빡입니다) 옳은 건지 모르겠다니... (단둘이서 히어로 협회를 상대로 뛰어드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쉽게 수긍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외면하면 누가 그를 구하겠어.
강채영:외면하자는 게 아니에요, 단지... (손으로 얼굴을 짚고 반대편 손으로 그 손을 감싼다. 잠시 말을 고르는 듯 하다 팔을 푼다.) 어떻게 하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어서요.
이건, ...생각만큼 단순한 사건이 아닐지도 몰라요. 선배, 혹시 전에 서문규 씨의 옛날 거주지에서 읽은 편지, 기억나세요? 그, 읽을 수 없는 언어로 쓰여있던 거요.
마지막 줄에 "축하합니다, 양성입니다"라고 쓰여 있고...
선우천해(테이):(기억을 더듬다 끄덕입니다) 응, 신체 검사 결과 같았던 거? 그게 왜?
강채영:제가 그 때, 파O고로 번역 돌린다고 사진 찍었었잖아요. 그거 아직 남아있거든요. 실제 증거는 본부가 어디다 둔 건지 모르겠지만.
...거기 나온 글씨도 그렇고, 그 연구소라는 곳도 아무리 생각해도 신경쓰여서... 인터넷을 뒤져보기 시작한 거거든요. 본부에선 매번 찾아낸 게 없다고 하니까.
그런데, 기사를 뒤져대다가 우연히 그것과 똑같은 글씨를 찾았어요. 사이비 종교 관련 기사에서요.
정확히는 글씨가 아니라 언어래요. 그 사람들 말로는 신의 언어고, 인간의 신체구조로는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는 그런...
전 그런 걸 믿고 싶진 않지만, 거기까지 파고드니까... 제가 읽었던 게 대체 뭔가 싶어서 순간 꺼림찍해졌거든요. 그 사이비 종교라는 곳도 하필이면 초능력을 부여했다는 신을 추앙하는 종교였고...
선우천해(테이):(채영이 말한 글씨를 떠올리며 기억을 짚어봅니다) 초능력을 부여한 신? 분명 서문규 씨는 연구 소장이 인간이 아니라고 했었어... 어쩌면 서문규 씨의 능력과 지금 복제인간의 사건이 다 그 사이비 단체에서 이루어진 것일지도 몰라. 그게 맞다면 그들이 믿는 신을 만나보면 해결될 수도 있고.
(막막했던 것들이 모두 해결된 건 아니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것에 기운이 나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채영아, 그 사이비 단체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어?
강채영:사이비 단체의 기사는 거의 10년 전 기사고, 진작에 본부 쪽에서 한 번 정리해서 다 없어지거나 해외로 가 버렸다고 했어요. 본부가 그렇게까지 씨를 말려놓은 상황에선 수십, 수백 명을 상대로 한 대규모 연구를 하기에도 어려울 거고요.
제가 강조하고 싶은 건 그 사람들이 모신다는 신 쪽이에요. ... 저도 제가 이상한 소리 하는 건 알지만...
혹시 거짓말일지도 모르니까 전문가 소견을 여쭤보기도 했어요. 다들 한 번도 본 적 없는 언어라고 하시더라고요. 비슷한 언어도, 유래가 된 언어도 전혀 없고,,
인간의 발성이나 지능으로도 분석할 수 없는 게 꼭 지구가 아닌 먼 외우주에서 온 것 같다고... (절로 고이는 한숨을 뱉어낸다.)
그 말을 듣고 저 편지를 다시 보니까 아득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더 이상 알아보지 못했어요.
선우천해(테이):이상한 소리라니! 아냐, 좋은 포인트였어. 완전히 잊고 있었거든. 서문규 씨가 참여했던 실험을 진행했던자이기도 하고 어떻게 이능력을 갖게 된 건지, 서문규 씨의 복제 인간이 왜 생겼는지 알 고 있을지도 몰라. 이 사건에서 지워지면 안 되는 자이기도 하고. (깊이 한숨을 내쉬는 채영에게 웃어 보입니다) 도움이 많이 됐어.
강채영:그럼 더더욱 막막해지잖아요. 상대가...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대요.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 전, 연구를 진행했다고 해도 당연히 같은 빌런이나, 심심했던 괴짜의 짓이라고 생각해서, 그래서 말릴 수 있을 거라고,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
처음부터 말이 통하지도 않는, 심지어 지구 밖에 살지도 모르는 무언가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아요?
두 번째로... 타이밍이 이상할 정도로 맞아떨어져요. 서문규 씨의 실종이랑, 재발견이랑, 무차별 실종 사건이랑.
...다시 정리하자면, 서문규씨의 시신과 담당 직원들이 사라진 게 약 한 달 전. 의문의 실종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한 게 3주 전. 그리고 시신의 목격담은 가장 오래된 것이 2주 전 것이에요. 본부 사람들이 발견한 것까지 포함하면 좀 더 이를지도 모르겠네요.
큼직한 데다가 배후나 범인을 알 수 없는 사건이 한 달 남짓하는 시간동안 연달아 일어나고 있어요. 연쇄적인 일일지도 모른다는 거에요.
선우천해(테이):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포기하긴 이르지. 지구 밖에서 온 신이라고 친다고 해도 그가 이곳에서 실험을 했다는 것 역시 사실이잖아? 아예 말이 안 통하진 않을 거야. 적어도 찾아서 부탁이라도 해봐야지. (채영이가 정리해 주는 사건에 대해 곰곰 생각해 봅니다) 이번 사건을 가장 가까이서 본 채영이 네가 더 잘 알겠지만, 의문점이 많은 사건이긴 해. 사라진 사람들과 나타난 서문규 씨의 복제인간들이 서로 관련이 있을 수도, 아니면 정말 우연일 수도 지금으로선 확실한 게 하나도 없어.
네 말대로 이어진 사건이라고 치면 모든 가능성을 닫고 쉬쉬하는 본부의 태도도 문제이고... 역시 서문규 씨가 말했던 검은 튤립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아봐야겠어.
강채영:선배는... 강인하시네요. 전 지구 밖에서 온 신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이렇게 몸이 떨리는데. (혼란스러운 얼굴로, 안색이 안 좋아져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들어올린다.)
음... 검은 튤립 프로젝트는 저도 한창 뒤져봤는데요, 어디를 어떻게 뒤져도 관련 글이 하나도 안 나와요. 그것도 본부 기밀이라 열심히 숨기고 있는 건지... 아, 사건 해결에 도움 안 줄 거면 방해라도 하지 말지~! (머리를 부여잡으며 외치는 목소리는 어느새 평소의 텐션으로 돌아와 있다.)
선우천해(테이):(밝아진 채영의 목소리에 자신을 누르고 있던 무거운 공기가 옅어진 기분입니다. 머리를 부여잡은 채영의 손을 잡아내리고는 조금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말합니다) 으음... 그 프로젝트에 관련된 곳을 알고 있긴 해. 지금은 히어로조차 출입 금지 시켰다고는 했지만, 본부장님도 회의에 들어가 있을 테니 몰래 들어가려거든 지금이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강채영:네????????????
(너무 놀라서 침대에서 3cm정도 펄쩍 뛰어오른다;) 방금 전까지 그래도 괜찮을지에 대한 얘기만 줄줄줄 하고 있었는데...!!
... 아무튼, 전 서문규 씨를 구하고 싶고, 무고한 시민들을 구하고 싶어요. 그래서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겠다는 거에요.
요는 우리가 무작정 쳐들어가서 서문규 씨를 빼내 온다고 해결되는 게 있을까, 싶은 거죠. 상황이 오히려 악화돼서 우리는 징계 받고 서문규 씨는 다시 갇히고 그러면 안 되잖아요.
그래도 선배랑 상담하니까 좀 낫네요. 내내 끙끙 앓고 있던 제가 바보가 되어버리는 느낌이에요.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출입금지 구역 무단침입하는 것보단 차라리 서문규 씨를 빼오는 게 낫겠어요. (이렇게 말하면 보통 둘 다 하게 되지만... 잠시 이마를 짚는다.)
선우천해(테이):그 내가 서문규 씨를 만났던 연구소 있잖아? 그곳에 먼저 가보는 게 어떨까 생각이 들어서. 그곳도 통제하고 있다고 하니 경비가 있겠지만, 본부의 지하보다는 덜 할 거야.
복제된 서문규 씨가 나타나고 그곳에 대한 조사를 멈췄다고 했으니 분명 놓친 연구 자료가 있을 테고... 서문규를 탈출시킬 생각만 하느라 사건을 넓게 보지 못했네. 연구소에서 이 사건의 원인에 대해 찾아내면 해결 방법도, 본부의 실험도 막을 수 있겠지.
강채영:...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다. 어차피 파헤치지 않을 거라면 우리가 대신 해 주는 것도 괜찮... 지 않겠지만 선배도 저렇게까지 말씀하시고, 나도 이대로 가만히 있기엔 답답하고...) ...그, 그럼... 가는 거죠? 그 연구소.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힌 사건 속에서, 그렇게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있으면...
문득 당신의 전화가 울립니다.
발신인은 메리 브라우드 교수입니다. 회의가 끝나고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했던가요?
선우천해(테이):(발신인을 확인하고 떨리는 손으로 통화 버튼을 누릅니다 )
귀에 전화기를 대면, 브라우드 교수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가 귀에 닿습니다.
브라우드 교수:안녕하세요, 선우천해 씨. 브라우드입니다.
아니, 듣다 보니 그 목소리는... 차분한 게 아니라 잠긴 것처럼 들립니다.
브라우드 교수:(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용건을 읉는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우선 소식부터 전해드리죠. 이런 소식을 들려드리게 되어 유감이지만...
서문규 씨의 처우가 결정되었어요.
... 당장 내일, 새벽 즈음에 더 큰 연구소로 이송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선우천해(테이):(떨리는 그의 목소리에 불길함을 느낍니다. 곧이어 사안을 전해 듣고 막막함에 눈을 지긋 감습니다) ...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지체할 시간이 없네요.
당장 내일이면 본부에서 떠난다니, 본부가 정말 작정하고 숨긴다면 어쩌면 영영 족적을 찾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촉박한 시간에 침이 마르는 것 같아요.
브라우드 교수 또한 급한 눈치로, 인삿말과 함께 뚜― 뚜―하는 신호음만을 남기고 가 버립니다.
숨을 들이키며 휴대폰을 들여다봅니다. 시간은 이제 오후 6시.
남은 시간이 없습니다.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할 지도 몰라요.
그걸 알기에 당신은 마른세수를 하며 침대에서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
여러분은 저물녘 푸른빛이 거리를 덮는 도시 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한겨울다운 바람이 등을 밀고 지나갑니다.
그런데 무엇을 하려고 집도 마다하고 길바닥에 서 있는 거죠?
행선지를 결정할 차례입니다. 무엇을 하러 어디로 향하나요?
선우천해(테이):(당장 내일 새벽에 이송한다니, 생각보다 더 촉박한 시간에 마음이 급해집니다. 부지런하게 연구실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최대한 그가 다른 곳으로 옮겨지기 전에 도움이 될만한 자료를 찾아서 돌아와야 해요)
연구실이라면 지금은 파괴된, 검은 튤립 프로젝트를 진행한 연구소를 말하는 건가요?
선우천해(테이):(네, 거기서 검은 튤립 프로젝트에 대해 더 찾아보고 싶어요)
좋아요. 우리는 파괴된 연구소로 향하던 길이었습니다. 옆에는 언제나처럼 후배님도 함께합니다.
채영이 너는 괜찮아? 묻지도 않았는데 그가 대답하듯 말합니다.
강채영:아무리 그래도 선배 혼자 어떻게 보내요. 이곳저곳 무너진 데다 봉쇄된 곳이라 혼자서 갇히면 말짱 도루묵일 텐데...
선배는 연락 안 드려도 괜찮아요? 부모님께요.
선우천해(테이):...(멋쩍게 웃고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게다가 채영이의 도움이 필요할 거란건 스스로가 더 잘 느끼고 있습니다) 고마워, 괜히 연락드리면 걱정만 하실거야. 별일 없이 돌아오면 되는 거고.
채영이 넌, 연락 안 드려도 괜찮아?
강채영:아녜요. 저도 거의 삼 주씩이나 집에만 있느라 답답하던 참이고, 이대로 있는 게 옳다는 생각도 없으니까요. 무모하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선배를 믿고 싶어요.
(홀로 땀이 쥐어지는 손을 꾹 잡았다가 도로 내린다.) 평소처럼 사고 치러 간다고 연락해둬야죠. 그렇게 남겨두면 다들 그런 줄 알거든요.
제법 비장한 얼굴로 길거리를 가로지릅니다. 퇴근 시간대라 곳곳에서 빵빵대는 고함이 들리는 게 우리의 속내와 닮아 있습니다.
간이역이라 기차 말고는 다니는 것도 없을 겁니다. 우리는 전과 같은 역으로, 하지만 이번에는 함께 기차역으로 향합니다.
선우천해(테이):(가장 빠른 기차표를 예매합니다. )
차표를 구매하고 기차에 오르는 길.
번복하려면 지금뿐입니다. 선우천해.
금지구역에 침입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본부의 징계를 받기에 충분한 행위이고,
강채영의 말마따나 구해줄 사람도 없기에, 소리소문없이 갇혀서 죽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기차에 몸을 싣나요?
선우천해(테이):( 이게 옳은 일일까. 출입이 금지된 곳에 간다는 것보다는 지금의 선택이 잘못된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자신을 주저하게 만듭니다. 만약 그곳에 가서 아무것도 찾지 못하면 문규를 구해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달려가 본부장님께 사정한다고 회의에서 정해진 결정을 막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기차의 출발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는 순간까지도 두 발이 쉽게 플랫폼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문규를 도울 수 있는 일은 이게 최선이라고 결정했으니까 기차에 오릅니다)
강채영:(눈에 띄게 긴장한 눈치다. 저번에는 민간인인 선배를 길거리에 노출시켜야만 했다면 이번에는 폐쇄된 곳을 뒤져야 하니. 선배한테는 말하지 않았지만 규칙을 연속으로 두 번이나 어겼으니 이번엔 정말로 잘릴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발을 뻗을 수 있는 건 지금만큼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이 들기 때문에. 직장에서 잘리면 다른 일을 찾으면 되지만, 지켜야 하는 시민들을 구할 단서를 얻을 기회는 한 번 밖에 없다. 기울어지는 저울의 속도만큼 걸음을 빠르게 한다.)
당신이 흔들릴지언정 꺾이지 않는다면, 강채영 또한 망설이지 않습니다.
서로를 돌아보고, 버팀목이 되어주겠다는 소리 없는 약속을 하고 우리는 연구소로 향합니다.
오래된 기차가 덜컹거리고, 차창으로 날이 어두워 검은 실루엣밖에 보이지 않는 풍경을 몇 번이고 거쳤던가요.
내리고 보면, 다시 그 날의 장소로 돌아와 있습니다.
강채영:여기에요? (내리면 바로 연구소가 있을 줄 알았는데 팻말 하나만 덜렁 서 있는 무인역을 보곤 적잖이 놀란다. 까치발을 들어 주변을 살핀다.)
선우천해(테이):조금 더 가면 나와. (두리번거리는 채영이의 뒤를 따라 내립니다) ...채영아, 가기 전에 나랑 약속 하나만 해.
강채영:아, 네. 말씀하세요. (집에서 챙겨온 도청기며 온갖 자료와 기기들을 담은 가방을 어깨에 맨다.)
선우천해(테이):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냥 도망쳐. 돌아가서 책임을 묻게 되거든 내 탓이라고 말하고. 지금 난 일반인이고, 넌 히어로니까 분명 네 책임이 크게 돌아갈텐데... 그건 선배로서 너무 미안하잖아?
강채영:...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어요. (바람 빠지는 웃음을 짓는다.) 선배는 역시 선배네요.
연구소에 들어가는 건 분명 위험부담이 큰 일이고, 알려지면 분명 제게도 책임이 물어지겠지만... 그렇다고 한 일을 안 했다고 하고 싶진 않아요. 음, 저번엔 근신이었으니 이번엔 자격 박탈이거나, 비슷한 조치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본부는 결국 우리들을 필요로 하게 될 거에요. 사회의 혼란을 다 가라앉히기엔 초능력자 수가 그렇게 넉넉한 것도 아니고. 처분을 받게 되면 그냥 그러려니하려고요.
차라리 자르라고 하세요. 저도 이런 무책임한 본부 밑에서 일하고 싶지 않으니까.
선우천해(테이):어어? 이거 본부장님이 들으면 완전 1시간짜리 설교감인데? 억지 부리지 말고. (자신이 아는 채영이는 절대 도망치거나 거짓말로 책임을 회피하는 아이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기에 대답을 듣고는 픽 웃음이 납니다)
(제멋대로 채영이의 손을 끌어당겨서는 자신의 새끼손가락과 겁니다) 자, 약속했다? (이 약속이 사실은 채영이를 위한 게 아니라 후배를 끌어들인 자신을 위한 약속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게라도 받아내고 싶은 마음도 사실입니다)
모두가 선망하는 히어로잖아, 쉽게 그만두려고 하지마.
강채영:...그, 그건 그렇지만... 선배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건 전적으로 제 책임이 맞잖아요. ...그리고 들키는 게 문제라면 아무도 모르게 들어가면 돼요.(속닥)
(어어어, 하다가 결국 새끼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지만 여전히 남은 불만이 터져나온다.) 사람을 구하는 걸 그만두겠다는 게 아니에요. 조사할 수 있었으면서 가만히 사건을 덮으려던 본부에게 화나서 이러는 건데... (뭐라 중얼거리면서도 착실히 선배를 따라 걷는다.)
선우천해(테이):(투걸거리는 후배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연구소가 있던 방향으로 향합니다) 네, 그럼요. 물론 안 들키고 무사히 나오면 약속도 지킬 필요가 없으니까, 안전을 최우선으로 합시다, 후배님.
네에~... 힘없는 대답을 뒤로하고 당신은 연구소를 향해 걷습니다.
그 때처럼 지도는 없지만, 외길에 가까운 비포장도로가 죽 이어져 있어 헤매지 않고 곧장 도착지로 향합니다.
다시 찾은 의문의 연구소.
변함없이 골자가 드러나거나 무너지거나 부식되어 있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롭습니다.
전에 본 그대로, 중앙의 가장 커다란 건물을 중심으로 작은 건물이 양옆으로 늘어서 있는 구조.
우수한 지능의 연구원들은 대비용으로 그 복제를 만들어, 원본이 사망할 시 다음 대를 잇는다. 간혹 원본과 사본들이 모두 행동불능이 되었을 경우 시체 또한 원본이 될 수 있으니 확보해둘 것. 뇌가 온전하기만 하다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는 가리지 않는다. 그들의 기술력으로 불가능한 것은 없다. 연구를 가로막는 것은 없을 것이다.
선우천해(테이):(작은 창문으로 안을 보는 것을 포기하고 닫힌 방음문을 엽니다. 그리고 보이는 살벌한 수술실의 모습에 놀라 입을 막습니다. 이곳이 진짜 실험이 이루어진 곳... 차마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도 않지만, 이곳에 남아있을지 모르는 단서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콧속으로 밀려 들어오는 것만 같은 쇠냄새를 애써 무시하며 실험대를 뒤적거리다 종이를 발견하고 확인합니다.)
... (문규의 시신이 사라진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갑니다. 그렇다면 어딘가에 진짜 문규의 시신이 있을테고. 그 와중에 '그들'의 기술력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인간이 아니라고 했던가.
그 사이비 단체라는 곳. 초능력을 주는 신을 추앙한다고 했지? 여기 그들이라고 칭하는 거 보면 한 명이 아닐 수도 있겠네.
강채영: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이라고요...? 초능력이 정말 신이 준 것이라면, 왜 자기가 준 걸 자기들이 연구하는 걸까요?
(저절로 자아지는 한숨을 쉬며) 더 이상 이 실험에 사람들이 이용당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선우천해(테이):글쎄... 정보는 그들이 줬지만 실험을 한 건 사람일지도 모르는 일이고. (쓴웃음을 짓습니다) 제 3 연구소를 알면 찾아가서 물어보기라도 할 텐데...
결국 서문규 씨를 도울 수 있는 정보는 여기에 없는 건가. (기운 빠진 어깨로 터덜터덜 실험실에서 나옵니다)
또 다른 연구소의 존재, 복제인간, 실험 대상자들의 서류까지.
모을 수 있는 단서는 모두 모았습니다. 이걸로 본부장을 설득할 수 있길 바랄 수밖에요.
그러고 보면 처음에 주운 서류에서 본 것들이 마음에 걸립니다. 분명 중요한 내용이 있던 것 같았는데...
마지막으로 한 번만 떠올려볼까요. 무언가 좋은 생각이 날 지도 모릅니다. 선우천해, 지능 판정.
선우천해(테이):
지능
기준치:
60/30/12
굴림:
33
판정결과:
보통 성공
제 3 연구소, 연구 자료, 그리고 의문의 서류들...
차근차근 돌아보면, 문득 이 도시 66번지에 연구소 하나가 있다는 소문을 들은 것도 같죠.
정확한 정보는 몰라도 이 정도면, 모든 게 폐허가 된 연구소에서 수확이 큽니다.
선우천해(테이):... 아! (혹시 하는 생각에 핸드폰으로 66번지에 위치한 연구소에 대해 검색해봅니다)
검색 포털에 66번지 연구소를 치면, 로딩이 안 됩니다.
그러고 보면 전에도 전파가 터지지 않아 핸드폰도 울리지 않았었죠.
내려올 수 있는 가장 깊은 지하. 고요와 공허가 사방을 감쌉니다.
이 모든 사실에도 이 순간만은 평온해서... 폭풍의 눈 안으로 들어온 것 같아요.
우리는 우선 올라가기로 하고 짐을 챙겨 연구소를 나섭니다.
지하를 벗어나 밝은 곳을 찾아가는 우리를, 죽은 튤립들이 뒤에서 배웅해주고 있었습니다.
―
버려진 연구소의 탐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우리는 어떤 이유에서건, 협회 앞 건물에 서 있습니다.
갈 곳이 없어서, 본부장님과 대화하기 위해, ... 그 밖의 무엇이건요.
손에는 갈 때와 달리 수북한 파일이 든 가방이 들린 채입니다.
연구소가 우리의 시간까지 빨아먹은 듯 거리는 어느새 어둑어둑합니다. 선우천해, 어디로 가고 싶나요?
선우천해(테이):(본부 건물을 올려다봅니다. 문규를 풀어줄 수 있는 핵심적인 증거를 찾지는 못했지만, 이 정도 증거라면 본부장과 대화는 시도해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문규의 이송이 얼마 안 남은 만큼 새로운 연구실을 찾아 돌아다녀 볼 시간도 없기 때문에 고민할 여지가 없습니다. 본부장님을 만나러 가보기로 합니다)
망설일 시간이 없습니다. 당신은 바로 본부장실로 올라가 보기로 합니다.
떠나려는 엘리베이터를 바로 잡아 타고 올라가는 길. 강채영은 여전히 말이 없습니다.
생각이 많아진 걸까요. 이럴 때는 독촉하지 않는 게 좋다는 걸 알기에 당신은 말 없이 후배를 최상층으로 이끕니다.
본부장실로 가면 한창 서류 업무 중인 본부장님과 곁의 비서가 우리를 반깁니다.
들어오라는 호령에 바빠 보이는 비서가 문을 열어주면, 본부장은 약간 놀란 눈치로 말합니다.
본부장:... 무슨 용건인가.
선우천해(테이):...(후, 짧게 숨을 내쉬고 바로 용건을 말합니다) 서문규 씨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들었습니다.
꽤 놀란 눈치입니다. 어쩔 수 없이 비밀 기지로 내려보냈더니 하루도 안 지나서 다시금 찾아온 거니까요.
다시금 민감한 주제를 꺼내면 본부장은 역린을 건드려진 짐승처럼 얼굴을 구깁니다.
본부장:안 그래도 관련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지. 이제 듣는 것도 지긋지긋하군.
그는 근시일 내로 다른 연구소로 이송될 예정이네. 이 곳에서 언제까지고 데리고 있을 수 없으니... (주름진 이마를 감싼다)
그걸 물어보려고 찾아온 건가?
선우천해(테이):... 대체 본부에선 서문규 씨로 무슨 실험을 하시려는 건가요? 그가 복제 인간이든, 빌런이든 살아있는 사람으로 실험을 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들고 있던 서류가 방을 테이블 위에 쿵 내려놓습니다) 이거, 서문규 씨가 이능력을 갖게 된 곳에서 가져온 자료입니다. 그곳 컴퓨터에서 제3 연구소라는 곳으로 이전했다는 글도 발견했습니다.
본부장님, 그 제3 연구실이라는 곳을 찾는다면 서문규 씨의 비밀도 이번 사건의 진상도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본부장: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이네. 지금 와서 뒤집을 수 있는 게 아... (책상을 뒤덮는 서류를 팔짱을 낀 채 눈으로 훑어보더니) ...놀랍군. 자네들에게 그 연구소에 들어갈 권한을 준 기억은 없는데, 왜 이것들에 내 앞에 있는 거지?
하아... 연구소에 들어간 건 질책해봐야 시간 낭비일 듯 하고. 이 파일들이 지금 상황에 무슨 가치가 있지? 착각하지 말게. 본부가 주시하고 있는 건 연달아 발생하고 있는 실종 사건이지 이 쪽이 아니야.
다른 연구소의 존재는 확인했지만 그 뿐이네. 우리에겐 그 곳을 조사할 용건이 없어. 협회에서 정식으로 연구소를 조사했다가, 그 연구소에 아무것도 없다는 게 밝혀지면 우리 입장이 더 불리해질 뿐이야.
(아주 길게 한숨을 내쉬고 이마를 쓸어올리더니) 이 일은 중요하다고 판단되니 우선 지금까지 결정된 사항은 모두 취소하고, 내일 다시 논의하는 것으로 하겠네. 잠자코 결과를 기다리고 있길 바라네.
본부장은 서문규의 처분에 관한 결정을 모두 취소하겠다고 통지하고는, 비서에게 뭐라 말하곤 본부장실을 나갑니다.
비서는 심상치 않은 기세에 안절부절 못하곤 그의 짐을 받아들 뿐입니다.
선우천해(테이):(나가는 본부장의 뒷모습을 봅니다. 다른 연구소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니? 그걸 알면서도 문규에 대한 실험을 하고 있었다는 게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실종사건이 문규와 관련이 없다고 하기엔 문규의 복제인간과 사람들이 사라지는 사건이 너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나고 있는데. 역시 머리가 복잡해 본부장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표정이 굳어질 뿐입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당장 문규가 다른 곳으로 이송되는 걸 막았다는 것이겠죠)
(본부장이 나가면 한숨이 푹 나옵니다. 낮에 봤던 문규의 모습, 그가 손바닥에 남겼던 사인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 어떻게 해야 구할 수 있을까. (자신도 모르게 머리에 가득 찬 생각을 중얼거립니다)
강채영:역시 쉽지 않네요, 본부장님은. 얘기 들어보니까 이 쪽에서 독단적으로 진행한 일도 아닌 것 같고...
...본부장님 말씀에서 틀린 게 있나 싶기도 해요. 협회 쪽에서 연구소 하나를 정식으로 조사하게 되면 일을 덮을 수 없게 되 버리기도 하고 리스크도 크니까 움직이지 않으려는 거겠죠.
...알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 한 명을 희생시키겠다는 의지는 여전하시네요. 시민을 지키고, 구하는 게 히어로인데... 히어로의 일인데...
뭘 하고 있는 거에요, 다들. (답답한지 조금 올라간 목소리로 말한다.)
선우천해(테이):(들어오는 채영의 목소리에 쓴웃음을 짓습니다) 하아, 그러게 다들 뭐 하고 있는 걸까. 언제부터 히어로 협회가 이렇게 겁쟁이가 되어 버린 건지 모르겠어. 고작 입장이 불리해진다는 이유로 연구소에 대한 조사도 멈추고, 사람을 실험한다니...
우리가 모르는 부분이 있을지 몰라. 히어로 협회가 항상 투명했던 건... 아니니까. (본부장 자리에 서류를 훑어볼 수 있나요?
서류를 뒤져보면, 회의록이며 계약서 같은 중대하고 법조적인 일이 주를 이룹니다.
어지러운 글자들의 나열을 다 파헤치기도 전에 비서가 주의를 줍니다.
비서: 기밀 문서입니다. 본부장님의 허가 없이 읽으시면 안 됩니다.
크게 신경쓸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이제 다 엎어진 상판 아닌가요.
선우천해(테이):아, 죄송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훑던 서류에서 손을 뗍니다. 들고 왔던 서류들은 챙기고 나갑니다) 채영아, 가자.
회의실에서 나가려 하면, 비서가 그 틈을 비우지 않고 입을 엽니다.
비서: 아... 그러고 보니, 선우천해 씨라고 하셨죠?
선우천해(테이):아? 네. ...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비서를 봅니다)
비서: 일정이 끝나시는 대로 지하 기지로 내려와 달라고, 브라우드 교수님께서 말씀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방문 예정 일자와 시간을 남겨주시면 준비해 두겠습니다.
선우천해(테이):아, 교수님이요? (눈 데굴, 하고 싶은 말이라면 전화로도 가능할 텐데 지하기지에 내려오라고 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게다가 본부장도 돌아간 지금이라면 문규를 빼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금 듭니다) 지금 시간 괜찮은데. 아래에 교수님이 계신가요?
비서: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인터폰으로 누군가와 대화하는 듯 하더니,) 아직 계시다고 합니다.
바로 안내해 드릴까요?
선우천해(테이):네, 부탁드립니다. (채영아 너도 갈 거지? 눈빛으로 물어봅니다)
강채영:(가야죠. 라고 말하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용건을 받아들이면 "그럼 수행원 분들의 안내에 따라주십시오." 라며 물러서고,
전과 같은 방식으로 덜컹, 숨겨진 엘리베이터가 나타나더니 쩍 입을 벌립니다.
우리는 거부하지 않고 같은 길을 밟습니다. 가는 길은 여전히 미로처럼 복잡합니다.
지하 시설은 막다른 곳도 많고 제법 넓은 편이니까요.
강채영은 꼭 버려진 연구소 안으로 들어갈 때와 비슷한, 그러나 조금 더 결심이 굳은 얼굴로 당신을 따라옵니다.
선우천해(테이):(굳은 표정으로 말없이 복도를 걷습니다. 만약 문규를 그 방에서 탈출시킨다고 하더라도 이 미로 같은 곳을 잘 탈출할 수 있을지. 최대한 길을 외워보려고 집중합니다)
마음과는 다르게 개미굴처럼 꼬인 길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한없는 미궁의 반복입니다...
브라우드 교수:(강채영의 의중을 살핀다. 방금의 질문은 그에게 이 이야기를 듣게 해도 괜찮냐는 뜻이었는지, 여느 때보다 조심스러운 눈치로 말을 잇는다.)
...서문규 씨를 이 곳에 묶어둘 방법이 없는지 생각 중이었어요. 저로서도 이대로 서문규 씨를 인체실험에 이용되도록 내버리고 싶지는 않으니...
하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아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라도 대화를 시도해보고 천해 씨께도 부탁드릴 예정이었습니다.
강채영:(...저 너머에 있나? 창문을 들여다보곤 명백하게 그 사람의 모습이 보이자 놀람을 감추지 못하다가) ...저 사람인가요?
브라우드 교수:(씁쓸한 표정으로 창가에 시선을 두며, 고개를 끄덕인다.)
선우천해(테이):(아, 채영이는 못 봤을 수도 있겠구나. 채영이의 시선을 따라 창 너머의 문규를 보다 다시 브라우드 교수에게 시선을 옮깁니다) 안 그래도 좀 전에 본부장님을 뵈고 왔어요. 일단 서문규 씨에 관한 결정은 모두 취소하고 내일 다시 논의한다고 하셨는데... 내일 논의에서 어떤 결정이 나올지 알 수 없으니.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어 말합니다) ... 이게 옳은 방법은 아니지만, 교수님이 도와주신다면 서문규 씨를 본부 밖으로 탈출 시키고 싶어요.
선우천해(테이):(뺨에 스치는 찬 바람에 눈을 뜹니다. 낯선 방, 조용한 숨소리, 채영이에게 차인 허리가 아직도 뻐근한 거 같습니다. 끙 소리를 내며 조용히 일어나선 문규의 상태부터 살핍니다)
...아무튼, 당신은 삐걱이는 몸을 추스르고 서문규가 누운 침대 쪽으로 다가갑니다.
미동이 없어 자는 건가 싶지만, 자세히 보면 눈을 뜨고 있네요.
깬 척도 안 하는 것까지 평소와 똑같습니다.
선우천해(테이):(눈 뜨고 있는 모습에 살짝 놀라고는 작게 문규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서문규 씨? 일어났어요? (그러고 보니 어제 밥 먹을 때도 안 깨웠는데, 복제인간은 밥 안 먹어도 괜찮은 건가 걱정도 되고)
서문규:(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멀쩡한 눈치로 쑥 몸을 일으킨다. 충분히 쉬었습니다, 라는 말도 덧붙인다.)
선우천해(테이):(복제인간이라고 들었는데 행동만 봐서는 조금 기계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뭐 떠오르는 건 없으세요? 그 프로젝트가 진행됐던 연구실 같은 거나.
서문규:(침묵한다. 모르겠다는 건지, 대답하지 않겠다는 건지 구분되지 않는다.)
선우천해(테이):(대답이 없는 문규의 표정을 살피다 알겠다는 듯 끄덕입니다) 음, 그럼 뭔가 떠오르거든 그때 알려주세요.
(기억이 안 나는 건지, 말할 수 없는 건지 대답이 없는 문규의 모습에 잠시 생각이 잠깁니다. 지금 가장 확실한 곳은 옮긴 연구실이겠지만 그곳에 대해 자세히 아는 바가 없으니 무작정 찾아가는 게 현명한 방법이 아닐 수도 있고. 한참을 의자에 앉아 고민하다 신경훈 기자에게 문자를 보내봅니다)
(연락이 가능할 때 문자달라는 문자를 ...)
신경훈 기자에게 연락을 보내두면, 한동안 답장이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으면, 어느새 일어난 강채영이 당신 옆에 다가와 있습니다.
강채영:선배, 안녕히 주무셨어요? (피곤이 머무르지는 않지만 어쩐지 조금 부스스한 인상으로 서 있음.)
선우천해(테이):(답장 없는 핸드폰을 확인하다 채영의 부름에 돌아봅니다) 아, 응. 잘 잤어? (같이 퀭한 얼굴)
밤에 자는데 발길질이 얼마나 시원시원하던지~(등 통통 두드리며 말합니다)
강채영:(어쩐지 평소보다 피곤해보이는 선배 어깨라도 두드려드려야 하나, 생각하다가 뒷말을 듣고 굳는다...) ... 그래서 제가 말했잖아요...
영 피곤하시면 좀 더 주무실래요? 내려가서 추가금 결제하고 올게요. (비록 지갑엔 만원짜리도 없지만)
선우천해(테이):(채영의 심각해진 표정에 웃어버립니다) 아니야~ 농담이야. 버틸만했어. 소파도 나름 폭신했고. 하지만 다음번엔 각자 침대 쓰자.
그보다, 기자님이 연락을 안 받으시네... 내 연락을 무시할 사람은 아니고. 혹시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지?
강채영:(민망함이 담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기자님이요? 아, 그...
강채영:
(To GM)rolling 1d100<60 지능 판정
(
6
)
=
1 Success
선우천해(테이):(끄덕끄덕) 그 사람... 이번 일에 관심이 많으니까, 혹시 연구실에 대해 알고 있나 물어보려고 했는데.
강채영:...아직 답장 안 돌아왔어요? 기자인데 선배 연락을 그냥 흘려보내기도 하나...?
게다가 그 기자 엄청 집요하다고 소문 났는데... 음, 시간 되시면 답장 주시겠죠?
연구실이라면 옮겨간 제3연구실 말씀하시는 거죠. 서문규 씨는... 별 말 없으세요? 연구실 관련해서 여쭤보면...
선우천해(테이):... 그렇겠지? 그쪽에서 먼저 연락 달라고 했던 일이기 도하고. (별일 아니겠지 생각하면서도, 기자가 보낸 마지막 문자가 신경 쓰여 괜히 찝찝해합니다)
아까 물어봤는데 별 대답을 안 하시네. 기억이 안 나는 건지, 그냥 말하지 않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 연구실이란 곳에서 말하지 못하게 손을 쓴 게 아닐까도 생각이 들어.
강채영:(여러 가설을 듣다 보면 표정이 한결 심각해진다) 어느 쪽이든 좋은 일은 아니네요...
...그럼 선배, 이제 뭘 하고 싶으세요?
선우천해(테이):연락이 닿으면 그 연구실에 대해 물어볼까 했는데 연락이 언제 올지 모르니까 일단 찾아가 볼까 생각 중이야. 확실하지 않지만 대충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있고.
그 물음에 대한 답변을 생각해보는 한편으로,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는 본체를 찾고 싶다고 했습니다만, 언제 무로 돌아갈지조차 알 수 없는 몸.
하물며 이미 죽은 사람의 행방을 찾아봐야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여전히 기자와는 연락이 닿지 않고, 연구소와 서문규의 시신의 행방은 묘연한데, 본부에서는 미미하게라도 우리를 찾고 있습니다.
수월하게 돌아가는 일이 없네요. 위험에 몸을 던졌다는 건 이런 뜻이겠죠.
하지만 이것조차 당신의 선택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고뇌는 우선 뒤로하세요, 선우천해.
바깥에는 아침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우리는 우선 신경훈 기자를 직접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겨울의 추운 날씨는 두꺼운 옷으로 인상착의를 숨기는 데에 적절한 변명이 되죠. 전보다 서문규를 꽁꽁 싸매고 신경훈 기자가 근무하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선우천해(테이):(명함에 나와있는 사무실로 갑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택시를 타고 갈게요)
그가 남긴 명함을 단서 삼아 쫓아가면, 한 신문사에 도착합니다.
일출 신문. 조간신문사다운 희망찬 이름이지만 그 내용은 온통 썩어 문드러진 것뿐인 신문을 내는 곳이죠.
하지만 어떤 자리를 찾아봐도 신경훈 기자는 없다고 합니다. 아주 어제부터 특종거리를 건지겠다며 출근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당신의 집 앞에서 만났던 게 마지막 모습인데, 어딜 간 걸까요?
선우천해(테이):(신경훈 기자가 사라졌다는 말에 머리가 복잡합니다. 분명 자신에게 문자를 보낼 때까진 별일 없었을 텐데 왜 갑자기? 문자함에 혹시 놓친 문자가 없는지 확인하다 다시 전화를 걸어봅니다)
놓친 문자라고는 스팸 문자 몇 개나, 본부장에게 온 것밖에 없습니다. 그에게서 연락은 일절 오지 않았네요.
심지어는 전화를 걸어도 전혀 받지 않습니다.
...문득 어제의 그가 생각납니다. 대박을 건질 거라며 장담하는 듯했던 목소리가.
그는 대체 어디에서 무슨 짓을 했던 걸까요.
9년을 근무한 당신이라면 알 것입니다. 이건 절대 좋은 징조가 아닐 거라는 사실을요.
선우천해(테이):후... 집을 찾아가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답답한 마음에 애먼 핸드폰만 꾹꾹 누르다 어제 미뤄둔 본부장의 문자도 읽어봅니다)
본부장이 하는 말은 한결같습니다. 자네의 행위는 눈감아줄 수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어서 서문규를 원상복귀시켜라, 등등...
이제 와서 신경쓸 가치가 없는 내용들이네요.
신경훈 기자와의 대화록을 들여다보며 씨름하던 당신은 문득 생각합니다.
전화번호를 알고 있다면 위치 추적도 가능하지 않을까? 라고.
선우천해(테이):...... (혹시? 하는 마음에 커플앱 깔아서 신경훈 기자의 번호를 등록해봅니다)
기자의 번호를 등록해보면... 놀랍게도 대략적인 위치가 뜹니다. 이거 프라이버시 침해는 아닐까요?
선우천해(테이):... 어......? ? (뜻밖의 주소에 당황하며 서둘러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세웁니다) 뭔가 이상한데..? 채영아, 우리 집에 좀 다녀오자.
강채영:...어, 집에요? 위험하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공개수배 중인 것도 아니니까 경찰이나 본부 소속 히어로는 없겠지만 혹시 모른다고...
(당황하면서도 다급해보이는 눈치에 서문규를 끌고 택시에 탄다.)
선우천해(테이):(집에 가는 건 여전히 찝찝하지만, 집 앞에 찍혀잇는 기자의 위치가 너무 수상합니다. 핸드폰을 채영이에게 보여주며 설명해 줍니다) 신경훈 기자님이 연락을 안 받아서 위치를 추적해 봤는데 우리집 앞으로 나와있어서... 어쩐지 느낌이 안 좋아.
강채영:...엥? 연락도 안 받으신다더니 왜 선배 집 앞에 계신 거에요...? (마찬가지로 이상하고 불안한 느낌에 집을 향해 달려가는 택시에만 말없이 집중한다.)
집으로 향하는 내내 택시에는 침묵을 가장한 긴장만이 가득합니다.
둘 다 바라는 것은 비슷할 거에요. 바라건대 별 일 아니기를. 단지 사정이 있어서 연락을 못 받은 것일 뿐이기를.
하지만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고, 이번에도 꼭 그러했습니다.
집 앞에는 별다른 이변은 없습니다. 아침인데도 어두침침한 하늘과, 흐린 하늘 아래 딱 같은 색으로 빛나는 콘크리트,
그리고 길가를 덮는 불법 주정차 차량들...
아, 헤매던 당신의 눈에 익숙한 주정차 차량이 눈에 들어옵니다.
저것은 분명...
선우천해(테이):(익숙한 차를 발견하면 달리는 듯한 걸음으로 차로 향합니다. 제발 차 안에 있기를... 하지만 한편으론 그가 무사하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조급한 마음을 안고 신경훈의 차로 다가갑니다.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후배도 옆에서 같이 따라오네요.
하지만 아무리 창문을 닦고 살펴봐도, 안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타다 남은 담배꽁초만이 주인의 존재를 보여줄 뿐.
차는 텅 빈 채입니다. 그럼 위치가 왜 이 곳으로 뜬 걸까요?
선우천해(테이):(텅 비어있는 차의 모습에 조금 안심한 표정이 됩니다. 창문으로 안에 기자의 핸드폰이 있는지 확인해 봅니다)
창문은 담배 연기가 자욱하게 덮고 있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차 문을 열어보려고 하면 순순히 열립니다. 예상대로 차 시트 위에 핸드폰이 고스란히 올라와 있네요.
그런데 이 차 안, 전에 봤던 것보다 어딘가 이상하지 않나요?
선우천해(테이):어휴, 안에서 얼마나 담배를 피운 거야.... (차 문을 열어 나오는 뿌연한 담배 연기에 손부채질을 하다 어쩐지 모를 위화감에 손이 멈춥니다. 근데 차 안에서 담배를 피웠다면, 연기는 그대로인 채로 밖으로 나갈 방법이 있나...?)
(이상한 기분에 좌석 앞뒤로 불이 붙거나 한곳도 훑어봅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차 안에 화재의 흔적은 없습니다.
차 안에서 담배꽁초를 산처럼 쌓았는데도 질식사로 죽지 않은 게 행운이라고 해 둘까요.
창문 또한 무수히 많은 담배꽁초에서 흘러나온 연기가 모인 결과 같습니다.
그러나 발밑에 감도는 의문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무언가 위화감이 느껴집니다. 손에 만져지는 것이 그 증거가 됩니다.
시트 이곳저곳을 살펴보면 끈적끈적한 점액질 같은 게 묻어 있습니다.
한두 곳도 아니고 차 시트와 글러브 박스, 에어백이 있는 거치대까지.
특히나 운전대는 묻어있는 게 아니라 덮여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네요.
선우천해(테이):(차 안에 수북한 담배꽁초에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손에 묻은 끈적거리는 점액질에 차에서 끈적거리는 자신의 손을 내려봅니다) 으, 이게 뭐지? (살짝 냄새도 맡아봅니다)
냄새를 맡아보면 곰팡이 냄새가 납니다. 버섯 냄새 같기도 하고요. 퀴퀴한 향입니다.
점액질은 핸드폰에도 제법 묻어있습니다. 이거 작동은 되려나?
확인해보면 화면은 잘 켜지네요.
선우천해(테이):으........ (두 손가락으로 핸드폰을 잡아 올립니다. 차 안에 대체 왜 이런 게 가득 묻어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지만, 핸드폰을 켜 갤러리를 확인해봅니다)
갤러리를 확인해보면, 최근에 용량이 큰 동영상 하나를 찍은 게 보입니다.
찍은 날짜는 어제, 그것도 8시경입니다.
...문득 본능적으로 이 동영상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챕니다.
동영상을 볼까요?
선우천해(테이):(반사적으로 동영상을 재생해봅니다)
영상은 신경훈의 턱이 화면 가득 찍혀 있고, 숨찬 독백으로부터 시작합니다.
―
신경훈:(입 가까이에 대고 촬영 중인지 턱과 움직이는 입만 보인다.
힘차게 어디론가 달리고 있다. 달린다고 할까, 도망치는 것에 더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근래 비슷비슷한 실종 사건이 몇십 건이나 접수됐다는걸 확인했다. 연관을 짓기는 힘들지만 본부에서는 빌런의 짓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실종된 사람들의 뒤를 쫓다가 발견했다……
괴물을!
(화면이 움직여 신경훈의 어깨 너머를 비춘다. 하지만 카메라가 마구 흔들릴 뿐 잘 보이지는 않는다. 뭐가 있는지조차 구분하기 어렵다)
신경훈:젠장, 이런 게 있을 수 있는 거야? 그것들은 느리게 날고 무슨 거대한 벌레처럼…
벌레가 맞긴 한가?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말도 안 나오는군! 하지만 분홍색이었다.
상상이 가? 분홍색이라고!
(급하게 무언가를 탁, 닫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 차 문을 닫는 소리같다)
(차에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린다. 엔진 소리는 곧 끊기고, 핸드폰이 심하게 흔들리더니 곧 동영상이 끝난다)
―
... 뭔지 모를 내용들만을 남기고, 동영상은 끝이 납니다.
선우천해(테이):괴물... 분홍색 벌레...? (상상하기 힘든 기자의 말을 되뇝니다. 혹시 기자도 그 괴물이라는 것에 당한 걸까. 이 끈적거리는 것들은 다 그 괴물에게서 나온 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에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채영이를 불러 동영상을 다시 틀어줍니다) ...분홍색 벌레 본 적 없지?
강채영:(영상을 주의깊게 시청하고는) 분홍색... ...벌레? 그런 게 있어요...? (들어보지도 못한 단어의 조합이다. 연쇄적인 실종 사건과, 신경훈 기자, 벌레... 비이상적인 무언가에 아연한 표정을 짓는다.)
이 기자, 실종 사건을 쫓고 있었다고 했죠... 그리고 나서 괴물에게 쫓겼고.
...그럼 이분, 지금 위험한 거 아니에요?
선우천해(테이):아마도, 차를 타고 우리집 앞까지 도망 온 건가? 근데 어디로 사라진 건지 모르겠어... (기자의 핸드폰 네비로 이전에 갔던 위치 기록 같은 걸 찾아볼 수 있나요?)
네비게이션 앱을 둘러보면 이 차는 어제부터 이 곳에 주정차되어 있던 것 같습니다.
도망치다가 차에 탔고, 그 뒤로 영상이 끊겼으며,
결국 차 안이 정체불명의 점액질로 뒤덮였다는 것은, 아마도...
선우천해(테이):(차 주변 바닥에도 점액질이 있는지 찾아볼 수 있나요?)
차 주변의 궤적을 찾아보면, 이제 거의 증발했지만 희미하게나마 흔적이 남아있는 게 보입니다.
그것들은 도로 근처의 더 좁은 골목으로 이어지다, 어느 순간 확 끊깁니다.
그런데 흔적의 모양이 조금 이상합니다. 뚝뚝 떨어진 게 아니라 끊김 없이 일정한 너비로 쭉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치 무언가를 끌고 가는 것처럼.
선우천해(테이):(이 흔적 설마 기자님을 끌고 간 건가...? 차 주변에 나있는 흔적을 따라가다 골목에 들어서 사라진 모습에 의아해합니다. 혹시 주변에 다른 흔적은 없나 둘러봅니다)
점액질 자국을 제외하면 별다른 흔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정보가 머릿 속에서 조합되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고 보면 의문의 연쇄 실종사건 피해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죠.
인간이 도저히 이동할 수 없는 속도로 불특정한 여러 곳으로 이동했다는.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전혀 모르는 곳에서 사라졌다 나타난 피해자, 보란 듯이 뚝 끊긴 궤적, 연락이 두절된 신경훈 기자.
온갖 단서가 섞여서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찰나.
가만히 있던 서문규가 비틀거리며 어딘가로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그 발끝이 향하는 것은...
―
진상이 무겁게 내려앉은 길거리, 신경훈 기자의 차 앞.
우리가 미처 움직이기도 전에 발을 옮기려는 인영이 보입니다.
우리는 왜 여기까지 왔었죠?
신경훈 기자와 연락이 닿지 않아 불안한 마음에 그 자취를 찾고 찾은 결과,
그가 원인불명의 실종사건을 쫓다 그 피해자들과 같은 처지가 되었음을 알게 된 참이었죠.
그 사실에 말을 잇지 못하고 서 있으면, 서문규가 저 앞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걸음걸이가 영 불안정한데요, 저거 괜찮은 걸까요?
선우천해(테이):(정신을 차리고 나아가는 문규의 팔을 잡습니다) ...서문규 씨?
서문규:(붙잡히면 순순히 멈추더니, 잠시 길게 침묵하다가 오히려 이 쪽에서 팔을 잡아당긴다. 마치 따라오라는 것처럼.)
선우천해(테이):(문규를 잡아 세우려다, 자신을 끄는 몸짓에 고갤 기울입니다) 그쪽에 뭐라도 있는 건가요? (의아한 표정으로 채영이에게 눈짓하고는 문규를 따라가 봅니다)
강채영:(신경훈이 남긴 중요 증거들을 저장하고 있다가, 저 쪽에서 움직이려 하면 크게 움찔한다. 눈짓을 받으면 약간은 당황한 눈치로 입을 연다.) ...네? 어딜 가시는 건데요?
선우천해(테이):(자신도 모르기에 어깨를 으쓱합니다) 서문규 씨가 알려주고 싶은 게 있는 거 같아. 따라가보게.
강채영:그래도... 위험한 곳에 가는 거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아, 이래나저래나 따라가야 하긴 하는구나. 결정을 내리면 망설이지 않고 빠르게 쫓아온다.)
서문규는 중간중간 멈춰서는 것 같으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습니다.
골목길에서 나와 도로변 쪽으로 나오면, 머리를 짚더니 무언가 중얼거립니다.
서문규:본체와 복제본들에게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그 쪽에서 전하는 말이 들립니다. 66번지... 라고 하는데 어디인지 아십니까?
66번지라면 들어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 쪽에 연구소가 있다는 소문이 있었죠.
그리고 당신이 알기로는 이 도시에서 66번지에 있는 연구소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선우천해(테이):(그러고 보니 복제인간끼리는 일종의 텔레파시를 주고받을 수 있다고 적혀있던 쪽지가 기억납니다. 문규의 말에 서둘러 핸드폰으로 66번지를 검색해 봅니다) 잠깐만요, 찾아볼게요.
검색해보면,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습니다.
정보를 살피면 겉은 평범한 재단 소속으로 되어 있는 연구소네요.
본체가 있다는 주장이 허구처럼 들릴 정도로 평범합니다. 왜 본부 쪽에서 개입하지 않으려고 했는지 알 것 같아요.
선우천해(테이):(지도가 알려주는 방향 쪽으로 안내합니다. 겉으론 평범한 연구소 같은데 그곳에서 일반 사람들을 상대로 이능력을 만들어내는 실험을 했다면 분명 쉽게 들여보내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서문규 씨의 본체를 찾으려면, 몰래 들어가는 방법도 생각해 봐야겠어...(중얼)
얼마나 걸었을까요? 인적이 조금 드물다는 동네에 발을 딛고,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목적지가 보입니다. 66번지 연구소가요.
근처를 둘러보면 의외로 보안시설이나 감시카메라 같은 건 보이지 않습니다.
완벽하게 위장했기 때문일까요? 심지어 출입구를 밀어 보면, 순순히 열리네요.
선우천해(테이):...? (어라? 쉽게 열리는 문에 놀란 표정입니다. 우리가 올 거라고 생각한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차라리 잘 된 거일지도 모릅니다. 앞장서 문을 밀고 들어가 봅니다) 제가 먼저 들어갈게요.
선우천해(테이):(긴 복도를 따라 걸으며 차근차근 명패를 살핍니다. 지하부터 진짜 연구실이라고 했으니 이곳의 보안은 1층보다는 삼엄할 거라고 생각해 함부로 건드리지는 않습니다. 연구실이라는 명패가 달린 문이 열린 것을 발견하고 둘을 불러 세웁니다) 잠깐만, 여기 살펴보고 가자.
서문규:(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도 그저 묵인하고 있는다. 살펴봐도 괜찮은 듯하다.)
강채영:(지하로 오는 내내 안 좋은 표정을 짓고 있다. 복제인간도 그렇고 실종사건도 그렇고,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니. 진상에 조금씩 더 다가서는 느낌에 숨만 몇 번 삼키다가,) 연구실...? 열려있네요, 아무도 없나?
(선배가 겁먹은 기색도 없이 몸부터 들이박으면, 뒤에서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젓더니 마저 따라간다.)
선우천해(테이):(채영이에겐 미안하지만, 문틈으로 조심스럽게 고갤을 밀어 넣습니다)
작게, 꼭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로만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면...
명패에 연구실이라고 쓰여 있지만, 정작 책상이나 연구에 필요한 물품들은 전부 치워져 천을 씌워두었고,
그 자리에 커다란 화로 두개가 놓여 있습니다.
화로는 난방용이라기보다는, 소각용처럼 보입니다. 어쩐지 그런 확신이 들어요.
안은 자주 치우는 모양인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네요.
책상과 온갖 잡동사니로 어질러진 주변에는 갖가지 물건이 담긴 플라스틱 박스가 쌓여 있습니다.
선우천해(테이):...? 설마? (불길한 예감에 화로 주변을 살핍니다. 이미 깨끗한 모습을 보고 어두운 표정) 중요한 정보는 바로바로 태우는 거 같네. (포기할 수 없으니 주변을 살피다 플라스틱 박스를 발견하고 확인합니다)
강채영:(안색이 조금 더 파래졌지만, 내면의 동요를 티 내지는 않는다. 죽은 게 아니야, 살아 있어. 구할 수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스스로 되뇌이다가 꼭 감은 눈을 뜬다.)
선우천해(테이):(알싸한 약 냄새에 핑 도는 정신을 가다듬습니다. 난 뭐부터 해야하지. 채영이와 둘이 누워있는 10명을 데리고 몰래 연구소에서 빠져나가는 것엔 어려움이 있습니다. 잠시 고민하다 채영이에게 말합니다) 아직 사람들이 살아있어. 본부에 지원을 요청하자. 실종된 사람을 찾았다고 한다면 본부장님도 도와주실거야.
강채영은 그 말에 언제 창백해졌냐는 듯 고개를 팍 듭니다.
강채영:...! 아, 맞다 본부!
그 생각을 못 했네요. 근데 지하 깊숙이 들어와서... 전파가 터질까요? (입으론 그렇게 말하면서 착실하게 사진도 찍고 녹취록까지 남겨둔다.)
본부장:본부 기밀인 복제인간을 데리고 도주 후 잠적이라니, 무슨 속셈이지? 본부에 복귀하지 않으면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겠네.
명령을 따르게, 뉴스에 얼굴을 비추고 싶은 게 아니라면!
선우천해(테이):(후, ) 본부장님, 이번 일에 대한 질책은 나중에 다 책임지겠습니다. 저와 서문규 씨, (채영이 잠시 보고 고민하다 채영이 이름은 말하지 않습니다)...는 66번지에 있는 연구소에 있습니다. 이 연구소가 실종된 사람들과 관련 있는 거 같아요. 10명 정도 의식을 잃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지원 부탁드립니다. 사진 보내드릴게요.
긴장의 끈을 팽팽하게 당기며 확인하듯 다시금 실종자들을 살피면...
사이에 익숙한 얼굴이 끼어있습니다.
정체불명의 무언가에게 쫓기다가, 핸드폰만 홀로 두고 실종된 사람.
신경훈 기자입니다.
연달아 치고 가는 머리가 어질한 가운데, 본부장은 한참 침묵하더니 대답합니다.
본부장:... 불법침입까지 한 건가. 폐쇄된 연구소를 뒤지는 걸로는 모잘랐던 건가?
당장 증거 자료 제출해. 되도록 영상으로. 피해자들은 어떤 상태지? 신원은 파악된 건가?
선우천해(테이):(뜻밖에 대답에 입을 다뭅니다) ... 본부장님은 실종된 사람들의 안전보단 불법 침입이 걸리시나 보군요. 본부가 몸을 사리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곳에 끌려와 무슨 실험을 당했을지... 그런 건 걱정되지 않으시는 건가요?
자료는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신원이 파악된 사람이라면... 아는 얼굴이 있습니다. 신경훈 기자라고 저를 찾아왔는데 괴물이 쫓아온다는 영상을 남기고 사라진 사람이에요. 이 사람을 찾다 이곳까지 오게 된 건데, 저희 집 앞에 주차된 그의 차에 가면 아직 핸드폰이 남아 있을 겁니다.
강채영:(핸드폰 제가 챙겨왔어요, 선배! 라는 손짓발짓)
(점액질로 범벅이 된 핸드폰은 지퍼백에 밀봉된 채다. 가방에서 꺼내어 손에 쥐어준다)
선우천해(테이):.... (아....채영이 보고) 아, 아니... 그냥 동영상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급하게 정정합니다)
본부장:... 우리가 진작 66번지의 연구소를 조사하지 않은 건 적법하고 논란이 되지 않을 방식을 찾기 위해서였네. (대꾸하는 목소리가 벌벌 떨린다. 그리 떳떳하지 못한 부분을 건드렸으니.)
내가 장담하건대, 자네만큼 내 골이 울리게 하는 베테랑 히어로는 없을 거야. 아니, 본부의 모든 히어로를 통틀어 자네가 제일...... (이후로는 한숨만을 흘린다)
... 당장 위치를 보고해. 대기 중인 히어로들이 그 쪽으로 갈 테니.
전화기 건너편에서 본부장이 누군가에게 소리치고, 명령을 내리는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선우천해(테이):후,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연구소의 주소와 지하로 내려왔던 방법, 기자가 남긴 영상, 사람들이 누워있는 모습 등 사진을 몇 장 추려 문자로 보냅니다)
그나마 지원을 보내준다는 말에 그간 쌓인 답답한 마음이 씻겨 내려가는 듯 합니다.
본부장은 알겠다고 짧게 답하더니...
본부장:...자네는 면책받을 각오를 단단히 해 두게.
어김없이 으르렁대고는 전화를 뚝 끊어버립니다.
글쎼요, 지금 더 큰일난 쪽은 본부장 쪽 아닌가요? 기밀이 밝혀지고, 본부가 손을 놓은 탓에 수사가 지체되었다는 사실이 명료해지는 시점인데요.
별로 신경쓸 소리는 아닙니다. 훅 털어내버립시다.
강채영:(언성이 높아지는 통화에 무심코 숨죽이고 있다가, 선배가 전화기를 내려놓으면 겨우 숨을 내쉰다.) ...뭐라세요?
선우천해(테이):아~ 돌아가면 한소리 듣겠네. 어쩔 수 없지, 뭐. (채영이에게 쓴웃음을 보여주곤, 어깰 으쓱합니다) 다행히 지원은 보내주시겠데. 여기까지 들어와 사진 찍은 보람이 있다.
강채영:(한소리 듣겠다는 말에 한숨을 푹 내쉬더니, 다음 얘기에서 표정이 확 밝아진다) 네? 그게 정말이에요?
하아, 하긴 이... 걸 보고도 움직이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죠. (주먹을 꽉 쥐며 죽은 듯 누워있는 사람들을 둘러본다. 얼마나 이 곳에 갇혀있었을까?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지만, 희망의 빛이 들어왔으니 축 처지지 않고 일어난다.) 그럼... 이 사람들은 맡겨도 되겠죠?
선우천해(테이):(끄덕) 아직 서문규 씨의 본체를 찾지 못했으니까 더 찾아봐야지... 분명히 이 안 어딘가에 있을 텐데.
강채영:여긴 없는 거 맞죠...? (얼굴을 아무리 살펴도 기자님 말고는 익숙한 인상이 없어 침묵하다가, 문득 떠올랐는지 서문규 쪽을 바라본다)
본체는... 그 분은 어디 계세요?
선우천해(테이):(채영의 시선을 따라갑니다) 여기에선 느껴지는 게 없나요 서문규 씨?
서문규:(그 말을 들으면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고 아득히 펼쳐진 복도 저 너머를 가리킨다.)
조금 더 가야 합니다.
선우천해(테이):...(복도 끝을 봅니다) 네, 앞장 서주세요.
여러분이 수락하면, 그는 다시금 길을 안내합니다.
그렇게 또 약한 불빛만이 발을 비춰주는 어두운 복도를 걸어갑니다.
안으로, 더 안으로. 개미굴 같은 이 비밀의 끝까지 보겠다는 듯 발을 계속 옮기면,
유독 크고 단단한 문 하나가 나타납니다. 팻말 하나 걸리지 않은 채입니다.
그는 너무 놀라지 말라는 말과 함께, 직접 열어보라는 듯 비켜섭니다.
선우천해(테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뜹니다. 이 너머의 문규는 어떤 모습일지. 그렇게 찾아 찾아 헤매고, 드디어 찾았는데 막상 문 앞에 서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귓속을 채웁니다. 숨을 내쉬고 떨리는 손으로 문 손잡이를 잡아 돌립니다)
선우천해(테이):(문을 열고 처음 나타난, 펼쳐진 장면에 말을 잃습니다. 수많이 누워있는 문규의 모습. 놀라 움직이지 않는 몸에 눈만 도륵 굴려 방안을 살펴봅니다. 곧 유리창 너머 보이는 그토록 찾고 있었던 문규에게 시선이 닿습니다. 자신이 죽였던 사람. 선택해 주지 못한 사람. 살아있으니까 다행이라고,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지만 그의 눈을 마주 보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아 멍하니 창쪽을 바라봅니다)
진짜, 서, 문규 씨...? (간신히 더듬거리며 이름을 부르고 자신의 생각이 맞냐고 확인하듯 함께하던 복제 문규를 봅니다)
서문규:(두 눈이 유리창 너머에 가 있는 걸 확인하면 확증시켜주듯 고개를 끄덕인다.)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는 듯 싶더니... 곧이어 다른 복제들처럼 쓰러져버린다. 몇 번 움찔거리더니, 넘어진 석상처럼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마치 낡고 헤진 인형을 보는 것 같다)
선우천해(테이):... (쓰러진 복제 문규의 마지막 모습을 봅니다. 쓰러진 다른 복제들과 같이 그도 생을 다한 거겠지. 그가 이곳까지 안내한 건, 자신을 구해달라는 뜻이었으리라 그런 생각이 들어 창 가까이 다가가 문규를 불러봅니다) 서문규 씨? 들리세요? 구하러 왔어요.
서문규는 당신이 가까이 다가오자 얼굴을 구기고 몸에 힘을 주려는 듯 의자를 움직입니다.
하지만 무거워보이는 의자는 미동도 하지 않고, 서문규는 다시 힘을 주고... 그것의 반복입니다.
선우천해(테이):(와르르 무너져내리는 유리창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립니다. 깜짝 놀라 상황 파악을 하고 창을 넘어 문규의 상태를 확인합니다) 서문규 씨? 정신이 드세요?
구해주러 왔어요. 곧 히어로 본부에서도 도착할 거고... (허둥대는 손으로 문규의 입에 물린 재갈을 풀어주고, 구속된 팔다리도 풀어봅니다)
구속구를 풀어주며 그를 살피면, 서문규의 상태는 그야말로 처참합니다.
우선 얼굴에 붕대며 거즈가 덕지덕지 붙어 있고, 상체는 어디 하나 피가 안 번진 곳이 없습니다.
까슬하게 말라붙은 입술이며 피로가 녹아내린 눈.
복제인간의 몰골도 제법 창백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야말로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듯한 분위기네요.
재갈을 풀어주면, 그는 눈 앞에 있는 것을 분별하듯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이다가,
서문규:선우, 천해... 씨...?
숨을 몰아쉬며 한 마디만을 내뱉습니다.
선우천해(테이):(떨리는 손으로 그를 풀어주며 상처를 확인합니다. 그에게 해야 할 사과도 질문도 모두 나중으로 미룹니다) 대체 사람에게 무슨 짓을... (이곳에서 이루어진 실험이 무엇이든,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에 머리가 먹먹해집니다. 자신을 알아보는 서문규의 말에 숨을 삼킵니다) 네, 선우 천해입니다. 도와주러 왔어요. 당신의 복제가 안내해 주셨어요. 부축해 드릴게요.
(문규의 한쪽 어깨를 받치고, 채영이에게 도와달라는 눈짓을 보입니다)
강채영:... ... (그 날, 실려나가는 걸 마지막까지 지켜보고 있던 입장이라 두 눈 앞의 광경이 지독하게 비현실적이다. 즉사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안도감과 의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아, 네! (허겁지겁 반대쪽을 받친다. 이런 모습이니 죄송하다고 말해야 할지, 살아계셔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서문규:(힘없이 들리면서도 무언가 읆조린다) ...제, 복제...
... ...아, 도와, 달라고...
서문규는 그러더니 여러분의 손을 잡아 제지합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걸까요.
선우천해(테이):말하지 마세요, 상처가 심...? (문규를 부축하다 손에 잡혀 당황한 표정으로 봅니다) 네, 뭐 필요한 게 있으세요?
서문규:구하러 와 주셔서... 감사, 합니다. 선우천해 씨, 그리고 강채영, 씨...
...염치, 없다는 걸... 알지만... 부탁드리고, 싶은 게...
선우천해(테이):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세요. 도울게요. (희미하게 웃어 보입니다)
서문규:저를...
(말하면서도 기대고 있던 몸을 세우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시 내뱉는다.)
저를, 죽여주십시오.
이해되지 않는 문장의 나열이 흘러가면, 그는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로 말을 잇습니다.
서문규:제 복제인간에게 부탁해 연구소를 조사해 봤습니다. 최근 사람들이 실종되었다가 불시에 다시 나타나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이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검은 튤립 프로젝트를 다시 이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제가 날뛴 탓에 손실이 컸는지, 이번에는 실험체들을 무차별적으로 납치해서 이 곳에서 실험을...
...샘플이 부족해서 저를 복제하고,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들은 박제실에 가둬두었습니다.
그리고, (몇 번 콜록이고는) 실험 도중 틈틈히 제게서 샘플을 채취하거나 약물을... 주사하고 반응을 지켜봤습니다.
그들은 마치 제가 이 프로젝트의 심장부인... 없어선 안 되는 것처럼 굴더군요. 죽은 사람도 되살려서 앉혀둘 정도면, 분명 저라는 샘플이 중요했던 겁니다.
서문규:다르게 말하면... 제가 사라지면, 되살아날 여지도 없이 죽는다면 이 모든 게 중단될 거라는 뜻입니다.
저를 죽게 하시고, 피해자들을 구해주십시오. 부탁입니다... (서 있을 힘도 없는지 무릎을 꿇으며 말한다.)
선우천해(테이):무, 무슨 소리예요. (무언가 가슴속에서 툭 끊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또 한 번 자신을 죽여달라니. 문규의 설명을 듣고서야 누워있던 사람들과 사라진 사람들의 이유가 차곡차곡 정리됩니다. 표정이 굳어 움직이지 않지만, 억지로 웃어 보입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본부가, 히어로 본부가 이곳을 수사할 겁니다. 그러면 다 밝혀질 테고 더 이상 불필요한 피해자는 나오지 않을 거예요.
함께 밖으로 나가면 조사를 받겠지만, 본부가 보호해 줄 거고요. 다시는 이런 시설로 끌려올 일 없을 거예요. 그럼 이 연구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자신의 한 무릎을 꿇어 문규와 시선의 높이를 맞춥니다) 서문규 씨, 다시 얻은 기회잖아요. 그들이 당신을 샘플로 여기고 살렸다고 하지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잖아요. 근데 고작, 고작 이런 일 때문에 포기하지 마세요. (입술을 꾹 물었다 덧붙입니다) 제가 함께할게요.
서문규:... (무서운 것이라도 본 사람처럼 두 눈을 크게 부릅뜨더니) 아, 안 됩니다, 저를, 절 살리는 것만은...
...저는 죽은, 사람입니다. 세간에는... 그렇게 알려졌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이 곳을 나간다면 분명, 세상에 큰 혼란을, 가져다 줄 것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이 곳은... 위험합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건... 인간이 아닙니다.
돈이 많은 사람도, 초능력자도, 권력자도... 아닙니다. 그들은... 괴물이에요.
제가 이 곳에서, 탈출한다면... 분명 회수하거나 대체품을 찾을 때까지 그들이 쫓아올 것이고... 더 큰 악수를, 몰고 올 겁니다.
전, 괜찮습니다. 제가 걱정되는 건, 단지... (몇 번 더 기침을 하면 코에서 피가 후두둑 흘러내린다. 억지로 숨을 불어넣은 시체처럼 불안정해 보인다.)
서문규:제가 있어서, 휘말린 사람들이, 그리고... (피를 묻히는 것도 두려워 두 사람이 부축하던 팔을 빼낸다.)
선우천해(테이):(몸을 추스를 힘도 없을 텐데 결국 팔을 가져가는 문규의 모습 마른침을 삼킵니다) 정말로 그런 혼란이, 괴물이, 죽음보다 두려운 건가요? 그래서 제게 죽여달라고 말하는 건가요? 차라리 구해달라고, 도와달라고 말해줘요. 그게 히어로의 일이잖아요. 그런 괴물에서, 위험으로부터 시민들을 지켜내는 게 히어로의 일이잖아요.
(문규의 손을 감싸 잡아줍니다) 서문규 씨도 일상에서 행복을 찾고, 웃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소중한 사람을 만나고 그러다 늙어가는 삶을 살고 싶을 거잖아요.
이번 사건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요... 그리고 나도 당신을 또다시 죽이려고 찾아온 게 아니고요.
문규 씨, 함께 나가요. 네? (고갤 기울여 문규의 표정을 살핍니다)
서문규:(얼굴은 한없는 고통과 두려움, 죄책감 따위로 일그러져 있다. 자신의 말에도 굴하지 않고 그저 구하겠다는 얼굴에 더욱 속이 아프다) 저는, 죽는 것보다... 살아가는 게, 더 무섭습니다. 저는 추락하고도, 살아남았지만... 제 꿈은... 바닥에 떨어져서 부서졌으, 니까...
초능력을 얻는, 다면... 여러분처럼, 사람을 돕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결국은, 이렇게 되었지만, 요.
누군가의 행복을 꺾어버린 제게 행복을 찾을 권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 잘못이 아니더라도, 부탁드립니다.
이미 실험, 당한 사람들은... 찾을 길이 없지만... 아직 박제실에 있던 사람들은, 구할 수 있습니다.
구해야 한다면 다수를 구하는, 게... 당신의 철칙이니까... 이번에도 그렇게, 해 주십시오.
그들을 구해주십, 시오. ...―그리고 영웅이 되는 겁니다.
선우천해(테이):(여러분처럼 사람을 돕고 싶었다는 그의 말에 코끝이 찡합니다. 그가 대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 박제실의 사람들이라면 본부에서 지원이 온다고 했으니 당신이 걱정할 필요 없어요.
(다수를 구하는 것, 그래서 문규의 손을 놓은 것. 그가 말한 사실이 비수가 되어 꽂힙니다) 난... 난, 더 많은 사람을 살려야 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죄 없는 사람의 손을 놓는 영웅이 되고 싶지 않아요.
그들이 찾지 못할 곳으로 도망갈 수 있게 도와줄게요, 아니면 24시간 경호원이라도 알아볼게요. 아직 해본 게 없잖아요. 그들이 못 찾을 곳으로 숨는다면 포기할지 모르잖아요. ... 시도하지 않은 방법이 이렇게 많은데, 포기하지 마세요. 제발 당신의 목숨을 타인의 손에 맡기지 마세요. 전 서문규 씨를 다시 죽게 놔둘 수 없어요.
서문규:... 본부에서, 지원을... (자신을 죽이지 않겠다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에 사형 선고라도 받은 사람처럼 눈을 감고, 웃는다.) ...알겠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당신이, 쥐고 있는 목숨이니,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그가 빌런이더라도, 그를 살려두는 것이 인류에 더 큰 재앙이 될지라도……
도저히 그럴 수 없었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그를 죽일 수 있겠습니까.
그는 지쳐 보이지만, 아직 여러분이라는 동앗줄을 놓지 않은 채입니다.
이만 밖으로 나갈까요?
선우천해(테이):(문규를 부축해 줍니다) 남들의 느끼는 보통의 행복, 당신도 누릴 자격이 충분해요. 자책은 그만하고 이제 나가요.
강채영:(조용히 둘의 얘기를 듣고 있다가 다가와서 반대쪽 팔을 받쳐 준다. 많은 이야기를 들었으나 표정만은 아까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구해야 한다는 의지.)
전 자세한 사정은 처음 알았지만... 그래도 서문규 씨도 구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저흰 다수를 선택하고 저울질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더 많은 사람을 구하고 싶을 뿐이고...
모두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잖아요. 그게 설령 거칠고 험한 길이어도 그렇게 할 거에요. 저희가 구해드릴 테니 포기하지 마세요. (힘을 주고 이 방보다는 훨씬 밝은 바깥으로 나가는 걸음을 재촉한다)
선우천해(테이):저게 뭔지 모르지만 잡히면 안 될 거 같네. 일단 피하자 채영아! (세 사람 주변의 중력을 약하게 해 팔을 피해 도약합니다)
초능력 판정 부탁드립니다!
선우천해(테이):
초능력(중력 조종) Roll
기준치:
100/50/20
굴림:
74
판정결과:
보통 성공
그들이 움직이는 속도보다 우리가 피하는 속도가 훨씬 빨랐습니다.
괴물의 팔은 허공을 가릅니다.
괴물들이 무력화된 틈을 타 밖으로 나오면, 아까 그 길고 좁은 복도가 나옵니다.
이대로 도망치면 된다고는 하지만... 쫓아오는 괴물들이 너무 빠릅니다. 주변에 공격하거나 길을 막을 만한 기물은 없을까요?
관찰력 판정 또는 행운 판정입니다.
선우천해(테이):(주변에 사물함이라던가 넘어뜨릴 만한 것이 있는지 찾아보며 달립니다)
관찰력
기준치:
50/25/10
굴림:
78
판정결과:
실패
사물함처럼 무거운 건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능력은 그 자체로 방해물이 되기도 하니까요.
선우천해(테이):(능력으로 천장에 무게를 더해 무너트리는 거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 초능력 판정 해 주세요!
선우천해(테이):(괴물의 조금 앞쪽의 천장에 조준하고 능력을 사용합니다)
초능력(중력 조종) Roll
기준치:
100/50/20
굴림:
100
판정결과:
보통 성공
당신이 손을 뻗으면 우지끈, 하고 천장이 삐걱거리더니,
곧 매달려있던 전등과 함께, 마치 모래성이 무너지는 것처럼...
콰과광!
엄청난 굉음을 내며 무너지고, 내려앉습니다.
내려앉은 천장은 끼익, 끼익 소리를 내며 그들을 잡아먹고 지면과 맞닿습니다.
허무할 정도로 빠르게, 괴물을 무찌르는 데 성공합니다.
...
천장에 금이 간 듯 후두둑 떨어지는 콘크리트 가루들 아래,
점액질을 흩뿌리며 죽은 괴물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와 동시에, 당신은 시야가 조금 흐릿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오랜만에, 그것도 천장을 무너트릴 만큼이나 크게 초능력을 사용했으니까요.
조금 무리였던 걸까요? 이내 눈이 빠질 것 같은 두통이 찾아들고...
우르릉!
이런, 다시금 천장이 큰 소리를 내려 합니다.
진동이 심상치 않습니다. 아무래도 어디선가 큰 충격을 받았는지 이대로 무너질 것만 같아요!
하지만 지하 1층을 빠져나가려면 아직도 한참을 가야 합니다.
더 가야만 하는데, 어느새 바닥에 카펫처럼 깔린 콘크리트 가루며 파편들이 당신의 발을 걸고,
마음이 급해서 따라가지 못하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겠습니다.
우리는... 이대로 죽는 걸까요? 이렇게 허무하게?
방금 전까지 미래를 한껏 꿈꾸고 있었기에 더욱 마음이 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해보면, 서문규를 구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우리의 앞날은 줄곧 이럤죠.
흐릿하고, 어두우며, 또 모호했습니다. 마치 지금 아득히 저편에 보이는 지하 1층의 출구처럼.
당신의 기둥이 되어 당신을 지탱하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헤매이면서도, 그럼에도 사람을 구하고 싶어 몇 번이고 가던 길 위에 올랐던 나날들.
그래요, 우리는 지금 당신의 임종 직전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정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괴물들을 삼키고 광기를 삼키고 여러분도 삼킬 것처럼,
천장이 쿠궁거리며 내려앉고 있으니까요.
벌써 우리 주변의 모든 게 무너져갑니다. 건물의 유해에 덮여 지나온 길이 잘 보이지 않네요.
이내 유일하게 계단으로 올라가는 출구마저도, 그 일부에 휩쓸려 쾅 하고 닫히는 게 보입니다.
...
쾅!
또 다시 무언가를 치는 소리가 들리고, 건물이 부르르 떨며 동요합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은, 당신의 선택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사람을―서문규를 구하겠다는 선택이요.
그리고 그 선택으로 죽을 위기에 처한 당신은...
그 선택을 후회하나요?
선우천해(테이):(몸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능력을 써본 것도 얼마 만인지. 속 시원하게 천장을 부쉈지만, 개운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손에서 놓지 못한 문규의 시신, 그리고 자신을 따라와 온 채영이, 구하지 못한 실종자들. 문규를 구하겠다는 선택은 후회하지 않지만, 철저히 준비하지 않고 들어와 구할 수 있었던 사람을 구하지 못한 자신의 안일함은 후회스럽습니다)
무심코 눈을 내리깔았던 모양입니다. 강채영이 콘크리트 가루가 내려앉은 당신의 어깨를 털고,
서문규의 시신을 다시금 고르게 부축하고는...
당신을 꽉 안아줍니다.
강채영:선배, 아까 그러셨잖아요. 포기하지 말자고.
그러니까 우리도 포기하지 말자고요. 아직 무너지지 않고 안전한 곳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아까 충격을 준 곳에서 멀어졌으니 더 이상 무너지지 않을 수도 있고.
선우천해(테이):(흐릿해진 눈으로 채영이의 얼굴을 찾습니다. 이제 어엿한 히어로를 곁에 두고 무슨 걱정을 하고 있었던 건지. 채영이의 격려에 픽 웃음이 나 끄덕이고는 잘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앞으로 내딛습니다) ...이렇게 사고를 쳤으니, 곧 도와주러 오는 사람도 있겠지.
이렇게 의지해 버리고, ... (채영이와 같이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론 약한 모습만 보인 거 같아 조금 부끄럽기도 합니다) 포기하지 않을게. 채영아.
당신이 다시금 마음을 다잡으면, 강채영은 그 말만 기다렸다는 듯 웃어보이고...
곧 능력을 사용합니다.
모든 것을 날려버릴 기세로, 당신에게 날아드는 잔해며 가루들을 쳐내 버리는 바람.
맑은 하늘을 불러올 폭풍우는, 실내에서만큼은 제 임무를 다하지 못합니다.
그 증거로 능력을 사용하는 강채영에게 파편이 날아들어 생채기가 생기고...
또 그 앞으로 커다란 파편들이 튀어오르고, 쌓여가고 있으니까요.
결국엔 서로가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럼에도 당신의 주변만은 건재한 채입니다.
오로지 강채영의 앞 부분만 가로막듯이 쌓이고, 우지끈, 무너져내립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이제 후배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 그 목소리만은 이 재난에도 묻히지 않고 선명합니다.
...
숨을 죽이고 있으면,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문득 앞을 공격해오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마지막 남은 여유공간마저 잡아먹고, 깔아뭉갤 것처럼 이 쪽을 향해 다가옵니다.
그리고는 더 아래를 향해 닿더니, 이곳저곳을 헤집다가,
여러분을 향해 속도를 붙여 다가오고 멈춰선 그것은...
포크레인입니다!
정확히는 집게 부분이네요. 그런데 이게 왜 여기에 있죠?
선우천해(테이):....? (요란한 소리에 포크레인 쪽으로 고개를 올립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구출하러 왔습니다, 올라타세요!」
눈이 부실 만큼의 손전등 불빛이 이 쪽을 비추고,
우리를 가로막고 마지막 몸부림을 깔아뭉개려던 콘크리트 더미들은
모두 본부에서 파견된 히어로들의 손길 하에 싹싹 치워져 버립니다.
옆을 돌아보면, 약속한 것처럼 강채영과...
서문규의 시... 잠깐, 시신이라고 했나요?
뭔가 꿈틀대고 있는데요?!
...하여튼, 그들이 서 있습니다.
선우천해(테이):...? (손에 느껴지는 움직이는 감각에 문규에게 고갤 돌려봅니다)
스치는 오한 속에서 옅은 기침 소리가 들립니다.
너무나 작고 미약해서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이 있죠.
그 작은 소리를 놓치지 않고 귀에 꽂혀 선명하게 들려올 때가.
강채영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놀랐는지 사레가 들렸다가, 크게 넘어지고,
우당탕탕하면서도 서문규의 몸을 받치고는 웃음을 터트립니다.
당신도 어쩐지... 웃음이 나올지도 모르겠어요.
이대로 본부로 돌아가면, 이번엔 몇 시간이나 설교를 들을까요?
어쩌면 강채영은 정말 직장에서 잘릴지도 모릅니다. (본인은 신경 안 쓰는 눈치지만요)
당신도, 더 이상 복귀라는 말은 입에 올리지도 못하게 쫓겨나 버릴지도 몰라요.
서문규를 데리고 나왔으니 한동안 여러분의 이야기가 뉴스를 장식할지도 모르겠고요.
하지만, 그래도 함께일 겁니다.
이번에야말로 틀림없이, 헤어지거나 엇갈리지 않고.
상념을 덮듯 포크레인 소리가 다시금 울려퍼집니다. 건물이 폭삭 내려앉다니,
정말 화려한 업적이 생겼어요. 그렇죠?
―
...이렇게 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습니다.
다행히 박제실에 있던 사람들을 포함하여 연구소에 있던 모든 사람은 무사히 구조되었으며,
실종자 외에도 연구원으로 보이는 인원 또한 구출되어 병원으로 이송되는 중입니다.
여명이 밝아오는 하늘과, 아직 해는 뜨지 않았는데 태양 행세를 하는 조명등 불빛을 보며 당신은 생각합니다.
시기를 보면 도망친 것에 가깝습니다만... 더 이상 히어로 협회의 이름으로 부당한 짓을 벌이지는 못할 테죠.
사건 직후, 여러분은 미처 상처를 다 회복하기도 전에 중요 참고인으로서 기자회견에 참여했었죠.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오는 일과 비밀스러운 연구소가 붕괴되었다는 소식, 그리고 붕괴 현장에서 실종사건의 피해자들이 구출되었다는 소식이 밝혀졌기에,
시민들 모두가 설명을 요구하고 있었기 떄문입니다.
... 당신은 이 도시의 평화를 지켜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하여 당신과 후배님은, 여러분이 구하지 않았지만 구해낸 시민들 앞에서 입을 열었습니다.
잔뜩 꼬여버린 실을 풀어내고 비로소 매듭짓기 위해여.
당신은 일련의 사건에 대해 뭐라고 밝혔을까요?
선우천해(테이):(분명히 후폭풍은 적지 않았습니다. 실망했던 적도 있지만, 한때 믿고 따랐던 본부장의 사퇴에 약간의 미안함도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본부장의 잔소리를 피하게 됐다는 건 다행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어찌 됐든 사건이 잠잠해지면 본부장을 만나 술이나 한잔 마셔야겠다는 생각도 해요)
(본부에 돌아와 조사를 받고, 밤낮 할 거 없이 기자가 붙는 턱에 피곤하기도 합니다. 마음 같으면 당장이라도 이사를 가고 싶지만 집 계약기간이 아직 한참 남아서 한동안 가까운 친척 집에서 지내기로 합니다)
(모두에게, 시민들에게 나서 기자회견을 하는 날.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처음은 아닌데도 어쩐지 처음 인터뷰를 했던 날만큼 떨립니다. 어떻게 이 사건에 대해 전달해야 할까, 고민하지만 쉽게 정리되지 않아 마이크 앞에서 무겁게 입을 엽니다)
이미 뉴스를 보신 분들은 알고 계시지만, 한 달 전 서문규 씨의 테러는 사교도의 이능력자 만드는 프로젝트에서 시작했던 일입니다. 그리고 이번 실종사건 또한 그 연장선이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시민 여러분이 히어로 협회에 대해 불안하게 느끼실 걸 압니다. 하지만 저 역시 히어로로 일을 했었고, 사건을 함께 해결한 템페스트 요원은 현직 히어로입니다. 사건 초기에 미적지근하게 행동했던 본부의 대응으로 많은 분이 피해를 보았지만, 이 뼈아픈 교훈을 통해 히어로 협회는 더 단단해질 거로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믿어주세요. 아직 세상을, 사람들을 구하고 싶어 하는 히어로가 더 많습니다.
(물론 내 복귀는 어려울 거 같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인터뷰를 하지만, 마지막엔 조금 씁쓸한 웃음은 숨기지 못합니다)
당신은 이 모든 사건이―의문의 연쇄 실종사건이 사교도 단체에 의해 계획된 일이라고 폭로했습니다.
다행히 범인인 사교도 단체는 연구소의 붕괴로 모두 사망했다고 발표해, 사건을 일단락시켰고요.
초능력자를 인공적으로 만들고자 했다는, 그 어떤 빌런보다 충격적인 짓을 벌인 악인들.
그런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닿은 사람들이 전부 죽었다는 소식에, 시민들은 드디어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되었고요.
시민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번에는 여러분이 직접 구출한 시민들에 대해 얘기해봅시다.
신경훈을 비롯해 서문규의 부검의와 당직을 서던 직원들까지,
실종사건의 피해자들은 무사히 치료를 받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덕분에 아주 진기한 광경을 볼 수 있었죠.
박제실에서 보던 것처럼 안색이 파리하게 질리지도, 괴물에게 쫓기지도 않는 신경훈 기자가
똑같은 기자들에게 포위되어 취재당하던 꼴을요.
신경훈 기자는 안절부절하면서도 할 말은 했습니다.
신경훈:거, 거 보시오! 내 딸을 걸고 맹세한다고 했지 않소!
소리칠 기력이 남은 걸 보면 여러분보다도 팔팔해 보였죠.
선우천해(테이):(기자들 사이에서 간신히 소리치는 경훈에게 같이 소리쳐줍니다. 딱히 도와줄 생각은 없어 보여요) 네, 기자님~ 다음에 연락주실 때는 더 믿어볼게요!
앞으로는 저런 기자와... 아니 모든 기자와 협업할 일은 없길 바라야겠죠.
또 연구원들은 깨어나서는 하나같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입모아 말했고,
전부 사이비 단체와 전혀 연관이 없고, 똑같이 실종 사건의 피해자임이 확인되어
마찬가지로 간단한 재활 치료를 받고, 끝나는 대로 각자의 위치로 돌아갈 것이라고 합니다.
(정확히는 뇌가 조작되어 누군가에게 지배당하고 있던 것이지만요. 물론 이것 또한 우리만이 아는 이야기입니다.)
폐쇄된 연구소와 66번지 연구소는 붕괴된 이후지만,
혹시 사교도 단체가 남긴 흔적이나 증거를 잡기 위해 정식으로 조사할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범인이 다시 나타날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괴물들은 건물에 깔리는 바람에 함께 유해가 되었으니까요.
모든 진상을 밝히지는 못했지만, 이것으로 모두가 안전해지는 결말입니다.
...
“―선배!!”
상념에 빠져 있으면, 옆에서 당신을 깨우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강채영:신호요! 신호 바뀌었어요, 앞에요!
그 말과 함께 뒤에서 빵빵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정신차리고 보면 운전대를 잡고 있는 당신의 손이 보이고요. 앵?
선우천해(테이):어, ? (멍한 표정을 거두고 신호등을 확인합니다. 서둘러 기어를 풀고 출발합니다) 내 정신 좀 봐.
이게 다 요즘 밤낮으로 전화 와서 그래~ (마치 자기 탓이 아닌 것처럼 비죽거립니다)
강채영:무슨 일 있는 줄 알았잖아요... (차에서 흘러나오는 히터 바람보다 큰 세기로 한숨을 내뱉고 이 쪽을 쳐다본다)
선우천해(테이):일은 무슨~ (힐끔 제대로 가고 있나 네비 확인합니다) 너야말로 바쁘지 않아?
강채영:바쁘긴요, 천천히 복귀할 거라고 얘기해놔서 괜찮아요. 사건도 다 해결됐으니까 그동안 못 잔 만큼 푹 쉴 거에요. 한... 일주일 정도? (자연스럽게 농담을 던지고는)
이래나저래나 걱정했는데, 운전 꽤 잘 하시네요? 제가 하겠다니까 극구 말리시더니...
네비게이션을 확인하면, 경로를 이탈하지 않고 잘 가고 있습니다.
도착하기까지 20분 남짓 여유가 있네요.
선우천해(테이):(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생각해 보면 며칠 사이 일어난 일입니다. 채영이야 알아보느라 더 고생했지만. 일주일 정도의 휴가는 괜찮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 쉴 때 쉬어야지 돌아가서 구르지. (네비를 다시 확인하고는 농담조로 대답합니다.) 그 고생을 하고 저승 가는 차를 탈 필요는 없잖아?
강채영:저, 저승 가는 차라뇨?? 저 교통법규 준수하면서 달리거든요?
선배야말로 몸상태 온전한 것도 아니면서...! (잔뜩 어이없어하면서도 정곡을 찔린 얼굴이다...)
강채영은 한창 꿍얼대다가도 문득 심각한 표정으로 변합니다.
강채영:...선배, 본부에서는 뭐래요? 정말... 음성 나온 거 맞아요?
기자회견 이후, 당신과 강채영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뉴스에 얼굴을 올렸습니다.
전/현직 히어로의 신분으로 본부를 대신하여 사건 현장에 몸을 던져 시민들을 구출해낸 영웅.
세상은 우리의 활약에 깊이 고개 숙여 감사와 경의를 표했고,
나라에서도 그 공로를 인정받아 용감한 시민상까지 받았었죠.
하지만 불어나는 명성에 대한 대가일까요?
당신의 손안에 있었다고 생각한 초능력이,
그 사건을 기점으로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 본부에서 제공하는 검사를 몇 차례 거쳤지만 결과는 같았습니다.
당신은 더 이상, 초능력을 쓸 수 없습니다.
조금은 허무할지도 모르겠어요. 불편한 점도 많을 거고요.
그래도 회복에 집중한 덕에 빠르게 몸이 나아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퇴원 축하 선물까지 잔뜩 받았었죠.)
선우천해(테이):(아아ㅡ... 대형 인형은 집에 가져가기도 어려웠었지...)
(어찌나 선물이 많이 오던지 아주 6인실 바닥을 다 채워버릴 기세로 보내졌었고,)
(그 중에는 캡틴이 보낸 선물도 있었습니다. 강채영이 그걸 보고 노골적으로 기뻐했었기에 기억나네요.)
(... 이제 어엿한 정식 대원인데 저래도 되나?)
선우천해(테이):(선물 채영이도 받았겠죠? 캡틴이 준 걸 그렇게 좋아했다면 캡틴 선물은 다 채영이 챙겨줬겠네요)
네! 강채영도 나름 유명해져서 이것저것 받았습니다.
본부에서는 히어로 템페스트의 굿즈도 만든다더군요. 본인은 부끄러워하면서도 내심 좋아하는 눈치입니다.
선우천해(테이):(능력이 사라진 건 조금 절망스럽기도 합니다. 이능력이 없는 히어로라니 들어본 적도 없기 때문에. 하지만 채영이에게 실망한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아 괜찮은 척 웃습니다) 그날 무리하긴 했잖아~ 이제 완전히 일반이니까, 공무원 시험이나 볼까 해. 잘하면 본부 내근직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 경찰도 좋고. 아, 전 히어로 특채같은 거로 안 뽑아주려나?
강채영:(일반인... 쐐기를 박는 말에 씁쓸하게 끄덕이다가도, 예의가 아닐 거라고 생각해 금세 표정을 풀고 웃어보인다.)
선배 정도면 특혜 받을 만 하지 않아요? 명색이 전 히어로에 시민상 수상까지 했는데.
... 그래도 본부 내근직은 좀 그렇지 않아요? 기술과 같은 데에 뽑히면 어떡해요.
선우천해(테이):아... 기술과는... ... (퀭했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 숙연해집니다)
그래도 내근직도 일종의 히어로 잖아. 그리고 내근직으로 들어가면 네 서포트도 해줄 수 있는데? 그래도 싫어~?
강채영:어, 그럼 이제 제가 선배를 서포트하는 게 아니라 선배가 절 서포트하는 거잖아요? 괜찮으시겠어요? 전 멈출 줄 모르는 히어론데. (아무말)
어쨌든 앞으로도 영웅 일은 계속하실 거죠? 캡틴처럼 아예 방송인이 되거나 하실 계획은 없구요.
선우천해(테이):이거... 템페스트 빠른 건 전 국민이 아는데 내가 열심히 쫓아다녀야겠는데?(절레) 방송인이라... 캡틴이야 원래 그런 것도 잘 하는 분이었지만, 난 아직도 카메라 앞에 서면 떨리더라고. 그냥 조용한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는게 더 좋아.
강채영:그럼 저희 둘 다 본부에 빌붙어서 가끔 봉사활동도 가고 회식도 하고 그러자구요~ (계속 차에 있느라 뻐근한지 기지개를 한 번 켠다.)
그래도 이렇게 멀쩡하게 퇴원할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네요. 천장 무너질 땐 진짜 어떻게 되려나 싶었는데...
선우천해(테이):(그 아찔했던 순간이 생각나 눈을 가늘게 뜹니다) ...정말 그때 채영이 네가 아녔으면 납작해졌을 거야. 실종자들도 모두. 곁에 있어줘서 든든했어.
아~ 그 장면을 제대로 못 본 게 아쉽긴 하네.
다음엔 카메라 켜져 있을 때 그런 능력 쓰는 거다? 내가 잘 찍어줄게.
강채영:에이, 뭐 그런 걸 찍고 그러세요~ 저야말로 선배 아니었으면 연구소에 발도 못 들였을 걸요? (겸손을 떨면서도 칭찬에 기꺼워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아, 선배. 거의 다 왔다는데요? 저기 주차장... 같은 거 보이네요.
선우천해(테이):그런가... (자신도 채영이가 함께 있어서 문규와 사람들을 구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채영이가 알려주는 쪽으로 핸들을 돌립니다) 생각보다 금방 왔다~
병원에서 이만 퇴원해도 좋다는 권고를 듣고, 여러분이 처음으로 향한 곳은...
인근에 있는 특수 병원입니다.
주로 높으신 분들이나, 특별히 격리해야 할 환자를 담는 곳이죠.
예를 들면 빌런 같은.
이상하게도 초능력을 잃어버렸다는 검사 결과를 듣자마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예정대로 감옥에 수감되려다,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행색에
치열한 법적 공방 끝에 결국 근처 병동으로 이송되었죠.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서문규가 멀쩡하게 살아서 움직이는 것부터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으니 누구도 이의는 없었습니다.
선우천해(테이):(은퇴라는 말에 미소 짓고 있던 표정이 잠시 굳습니다. 문규는 모를 테니 능력이 없어진 건 말하지 않기로 합니다) 뭐~ 이번에 오래간만에 현장 뛰어보니 예전만큼 체력이 좋지 않더라고요. 나이도 히어로 은퇴기간 생각하면 엄청 이른 것도 아녀서 이젠 쉴까 해요. 백수가 꽤 맞기도 했고? (배시시 웃어 보여요)
문규 씨는 퇴원하면 가고 싶은 곳은 없어요? 먹고 싶은 것도 좋고. (탁자의 달력을 앞뒤로 넘겨봅니다) 세 달이라...
서문규:(은퇴한다는 말에는 별 저항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오히려 달력을 넘기는 손을 보고 표정이 굳는다) ... 모르겠습니다.
...도망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을 짓밟고 살려달라고 하는 게 두려웠던 겁니다. (고개를 돌리더니 그간 차마 얘기할 수 없었던 화제를 꺼낸다)
그래서 제가 원하는 게 이제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 그래도 살아갈 겁니다. 약속했으니까요.
선우천해(테이):(자신에게도 어려운, 어쩌면 피하고 있었던 이야기를 먼저 꺼낸 문규의 이야기를 말없이 듣습니다) ... 어떤 책에서 본 건데 이야기엔 힘이 있다고 했어요. 사람은 무수히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결국 입으로 낸 말이 힘을 갖는다고요.
그들을 짓밟고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고 해도, 서문규 씨는 그들을 살리기 위해 희생하길 택했잖아요. 결국 그들을 살리겠다고 한 말이 힘을 얻은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생각으로 자책하지 마세요. 서문규 씨는 악한 사람이 아니니까... (무어라 말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문규의 손을 토닥여줍니다)
...음~ 약속도 약속이고, 아직 세 달이나 남았잖아요? 그동안 가고 싶은 곳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어렵다면 저랑 채영이가 도와줄게요!
강채영:마, 맞아요. 위선도 선이라고, 서문규 씨의 결정이 모두를 살리게 되는 것이었고, 이렇게 모두 구출되어서 무사히 일상으로 돌아가셨으니 이제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저 여행지는 잘 모르지만, 맛집은 잘 아니까 찾을 수 있을 거에요. (얼레벌레 대화에 끼어든다)
(바닥을 보고 있던 시선은 어느새 두 사람을 마주하고 있다. 오래 머물지는 않더라도 분명한.) ...알려드릴 게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무언가 잘못된 건지, 구출된 이후로 초능력이 나오지 않습니다. (손으로 주먹을 몇 번 만들더니 포기하고 내려버린다)
선우천해(테이):(구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듣자 구해주지 못해서 죄책감을 느꼈던 시간이 떠오릅니다. 다시 만난다면 꼭 하고 싶었던 사과도 있고, 살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느꼈던 떨림도 생생합니다. 하지만 사과 대신 감사를 전합니다) 나야말로 돌아와 줘서 고마워요, 서문규 씨.
...그런가요. 서문규 씨 능력도 멋졌는데 아쉽네요. 그래도 만들어진 능력이 사라졌다는 건 그들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일지 몰라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거 축하해요. (어쩌면 그를 힘들게 했던, 그에게 초능력을 줬던 트라우마가 조금은 희미해진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서문규:(감사 인사를 돌려받고 나면 목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든다. 그 느낌은 선우천해 씨의 소재를 알 수 없게 되었을 때나 자신을 죽이지 않겠다 말하던 그 때와의 감각과는 다른 것이어서, 자기도 모르게 눈을 꽉 감고 만다.)
(괴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그제서야 고개를 든다) ...그러고 보니 그 때 이후로 기억이 없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된 겁니까?
며칠이 지나도 저를 추적하는 낌새조차 보이지 않더군요. 초능력이 사라진 것도 그들이 쫓아올 것에 대비하려다가 알게 되었습니다.
선우천해(테이):그게... (멋쩍은 웃음) 어쩌다 보니 아예 건물이 폭삭 무너져서. 어휴~ 그때 채영이 아니면 다 죽을 뻔했다니까요? 뭐, 그 덕분에 괴물들은 다 죽은 거 같아요.
추적하는 낌새가 안 보인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문규의 말이 괴물의 존재에 대한 확답처럼 느껴져 마음이 놓입니다)
서문규:...예? 빠져나오신 후에 건물이 붕괴된 게 아니라... (눈에 띄게 놀란 눈치로) 두 분 다 괜찮으신 겁니까? 다치신 곳은?
그게 사실이라면 병원 치료를 받으셨어야 하는 게... 병문안 오실 상황이 아니잖습니까.
(연구소가 완전히 붕괴된 사진은 뉴스로 몇 번이나 보았기에 얼굴이 한층 창백해진다. 당사자보다 더 놀라는 것 같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더니)
...가져가십시오. 역시 저는 이런 걸... 받을 수 없습니다. (과일을 도로 돌려주고 달력을 뒤집어둔다.)
선우천해(테이):문규 씨에 비하면 뭐... 긁힌 정도라고 할까. (의자에서 일어나 한 바퀴 돌아봅니다) 자, 멀쩡하죠?
무, 무슨 말이에요?! 지금 병문안 선물을 다시 가져가라고 한 거예요? (돌려주는 과일 바구니에 멈칫 놀란 눈으로 문규를 봅니다. 짧게 한숨. 바구니의 포장을 풀고 바나나 꺼내 껍질을 벗겨줍니다) ... 서문규 씨는 보면 너무~ 예의 차리는 거 같아요. 자, 먹어요. 먹으라고 사 온 거니까.
서문규:(멀쩡히 거동하는 걸 방금 전까지 눈으로 확인했지만, 떨치지 못한 불안이 얼굴에 한 꺼풀 남아있다) ......
아, ...네... (어쩔 줄 몰라하다가 일단 내민 걸 거절할 수는 없으니 바나나를 받아먹는다)
선우천해(테이):(바나나 받는 모습 보고 만족한 표정 됩니다. 다른 바나나 슥슥 까서 채영이에게도 물려줍니다)
강채영:아, 선배. 안 까주셔ㄷ우웁(얼결에 쏟 받아먹음)
까주기만 하지 말고 선배도 드세요. 기껏 맛있게 생긴 것만 열심히 골라왔잖아요~ (포도알을 손바닥만하게 쥐어줌.)
선우천해(테이):(채영이에게 받은 포도알 슥슥 티슈로 닦아 입에 넣습니다) 음~ 과일집 사장님 말이 맞았네. 맛.있.어.
강채영:그쵸? 아, 그냥 포도 말고 이것도 그렇게 맛있대요. 그, 뭐더라, 음... 아, 샤인머스캣! (자연스럽게 과일을 하나씩 꺼내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