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 C. 벨몬트:네,네?! (화들짝 놀라며 당신을 쳐다보았다.) 부르셨어요... (당신에게 대답하며 다시 한 번 눈동자만 굴려 그림을 쳐다보았다.)
그림에게 곁눈질하면, 역시... 잘못 본 게 아닙니다.
전체적으론 멀쩡한데 얼굴 부분만 일그러져 있는 점이 더욱 기괴합니다.
무언가 봐서는 안 될 걸 봐버린 기분.
노엘:왜 그래...?
(무거워서 그랬나? 메이드의 팔을 벗어나 착 바닥에 내려간다)
로즈 C. 벨몬트:아무것도 아니에요. (어린 당신에게 이런 걸 보여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그림 앞에 서서 슬쩍 가렸다.)
(제 품에서 내려간 당신의 손을 꼭 붙잡았다.) 우리 얼른 방으로 돌아갈까요?
노엘:...? 응.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한편, 놀라는 걸로 보아 바퀴벌레라도 지나갔지 싶다. 재촉하는 말에 내려가는 걸음만 빨리하다가,)
혹시 저택에 이상한 게 있으면, 나한테 말해.
다시 돌아간 도련님의 방은, 전과 같이 평화롭습니다.
실랑이를 벌이는 우리만 빼면, 그럭저럭 완벽한 풍경입니다.
로즈 C. 벨몬트:네, 알았어요. (어쩐지 보호자처럼 구는 당신이 귀여워 헤실 웃고는 일단은 당신과 침대에 다가갔다.)
잠들지 않으시더라도 편하게 침대에서 책도 읽고 얘기도 해요.
노엘:(어른스러운 척 말하고는 점잖게 침대에 앉는다.) 응...
로즈도 앉을 거야? (책을 우선 베개 옆에 두곤 옆의 빈자리에 시선을 둔다)
로즈 C. 벨몬트:앉아도 된다고 하시면 앉을래요. (귀여운 제 도련님의 곁에 앉는 것도 좋지만, 도련님의 침대의 푹신함은 제 침대와는 비교도 안 된다는 것도 한몫해서 냉큼 대답했다.)
노엘:그럼 앉아도 돼. (등받이처럼 큰 쿠션 두어 개를 벽 쪽에 깔고, 자연스럽게 기대 앉는다)
인형 안 깔게 조심해.
로즈 C. 벨몬트:감사합니다. 네, 인형은 조심할게요. (도련님이 아끼는 인형을 조심히 피해 침대에 올라 도련님 곁에 앉았다.)
(마더구스 책을 펼치기 전에 도련님에게 잠자기 왜 싫은지 물어볼까 말까 고민했다. 얘기하면 싫어하려나. 여전히 고민을 품고 입을 열어 일단 당신을 불렀다.) 도련님. 있죠..
노엘:(무릎을 끌어안은, 다소 예의바르지 못한 자세로 편하게 앉아 마더 구스를 펼치는 손만 쳐다보다가, 질문에 고개를 든다.) 응.
로즈 C. 벨몬트:우리끼리의 비밀 얘기로 하나 물어봐도 돼요? 다른 사람에겐 절대로 말 안 할게요. (결국은 묻기로 마음을 먹었다. 잠이 얼마나 중요한대!)
노엘:...? 응. (대체 얼마나 중요한 걸 물으려고? 고개를 가까이 기울인다.)
로즈 C. 벨몬트:잠들기 싫으신 이유가 뭐예요? 안 주무시면 엄청 피곤하실 거 아니에요. 전 하루라도 안 자면 너무 힘든데. (당신과 눈을 마주치고 속삭이듯 물었다.)
노엘:아까도 말했잖아, 자는 거 질렸어, 그리고 시간 낭비야.
(단호하게, 심지어 아까에 이어 하나 더 덧붙인다)
로즈 C. 벨몬트:자는 게 질릴 수도 있어요? (너무 놀라서 눈이 땡그래졌다.) 자는 게 어떻게 질릴 수 있지.. 전 자도자도 좋은데... 시간 낭비는 뭐예요? 자는 시간에 하고 싶은 거라도 계세요?
노엘:질릴 수도 있어, 아무리 맛있는 요리도 매일 먹다 보면 질리는 법이잖아.
어른들은 우리에게는 일찍 자라고 말하면서, 자기들은 잘 시간에도 여전히 깨어있잖아? 불공평해.
그러니까 한 번 따라해보는 거야. 잠을 거르면 느낌이 어떤지.
로즈 C. 벨몬트:그치만 나중에 어른들도 잔다구요? 도련님처럼 그냥 안 자려고 하는 게 아니라요. 안 주무시면 다음날 안 괜찮지 않아요?
노엘:괜찮아. (멀쩡하다는 듯 팔을 휘적인다. 아무래도 어린이의 체력으론 지치지 않을 만도 하다)
그러니까 이제 됐다고 생각해. 깨어 있을 거야.
로즈 C. 벨몬트:음.. 그럼 오늘은 같이 깨어있어볼까요? 대신 저 내일 졸면 다른 분들한테 안 혼나게 해주시기에요.
노엘:자도자도 좋다면서. 그럼 자는 게 낫지 않아? (진심으로 의아해 보인다. 하지만 막 나서서 말릴 생각도 없어보인다) 다른 사용인들한테 말해둘게.
잘 거면 여기서 자도 되는데. (혼자서 눕긴 너무 넓은 침대를 힐끔댄다. 로즈의 3배 크기는 되는 듯하다)
로즈 C. 벨몬트:혼자 깨어계시면 심심하시잖아요. (당신을 닦달하기보다는 같이 깨어있는 게 낫지 않을까. 그리고 자신은 늘 당신을 이길 수 없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도련님 침대에서 어떻게 잠들어요. 메이드장님한테 저 엄청 혼날 거예요.
노엘:(혼나는구나... 사용인들의 세계란 참 수직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안 심심하려고 책을 들고 온 건데. (하지만 본인도 안 자고 버티는 마당에 남한테 자라고 부추기는 건 어불성설이니까 가만히 있는다. 오히려 반기는 눈치)
읽을 거야? 아니면 노래 부를 거야? (담요를 둘둘 싸매며 묻는다. 담요를 가만히 두지 못하는 걸 보면 영락없는 어린애같다)
로즈 C. 벨몬트:일단 책부터 읽어드릴게요! (펼친 책 안을 훑어보면서 어떤 것부터 읽어볼까 고민한다. 처음부터 쭉 읽어내리고 싶진 않다. 단편의 제목을 읽어보다 3번째 이야기를 골랐다.)
3번째 이야기를 펼치면,
이건, 동요네요. 그런데 내용이 심상치 않습니다.
핸드아웃: 마더 구스
[Baby, baby, naughty baby]
아가, 아가, 나쁜 아가, 조용히 해, 요 시끄러운 것아. 지금 좀 조용히 해. 아님, 보나파르트가 이 길로 지나갈 거야. 아가, 아가, 그는 거인이야. 루앙의 철탑처럼 거대하고 시커멓지. 그는 그 철탑을 의지하여 아침도 먹고, 저녁도 먹지. 나쁜 사람들을 매일 잡아먹지. 아가, 아가, 네 소리를 들으면 그가 집으로 뛰어와서 고양이가 쥐를 찢어 죽이듯이. 단번에 사지를 찢어 널 죽일 거야. 그리고 널 마구 때리고 또 때릴 거야. 곤죽이 될 때까지 때릴 거야. 한 조각씩 물어뜯어서. 그리곤 널 계속 먹어 치울 거야.
…이런 걸 들려줘도 될까요,
보나 마나 무섭다고 호들갑을 떨... 진 않겠지만, 어쨌든 좋아하지 않을 건 분명합니다.
로즈 C. 벨몬트:(소리내어 읽기 전에 책의 내용을 읽었다가 소리없이 경악했다. 이게 무슨 동화람... 듣고 자다간 악몽을 꿀 거 같다.)
(몰래 다른 페이지로 책을 넘긴다.)
열심히 페이지를 사각사각 넘기다 보면,
정적인 가사가 하나 실려 있습니다.
핸드아웃: 작은 별
[Twinkle, Twinkle, Little Star]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추네 동쪽 하늘에서도, 서쪽 하늘에서도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추네
다행히 책의 뒤쪽에도 무난한 가사의 노래나 동화가 많이 실려 있고요.
로즈 C. 벨몬트:(아 이건 괜찮겠다.) 노래 가사예요! (당신에게 보여주고는) 먼저 부르고 뒤의 동화를 읽어볼게요!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노래를 불렀다.특기인 노래는 저도 뿌듯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추네.
동쪽 하늘에서도, 서쪽 하늘에서도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추네.
(평소의 발랄한 목소리는 어디가고, 어딘지 곱게 들리는 목소리가 노래를 불렀다.)
당신이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나긋한 음정 때문인지 굉장히 자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하지만 도련님을 재우기에는 노래가 너무 짧아요.
도련님은 자연스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멀쩡히 뜨고 맙니다.
노엘:(여전히 의중을 모르겠는 얼굴로 짝짝 박수친다.)
어렸을 때 들은 거야. 로즈 목소리로 들으니까 좋네.
로즈 C. 벨몬트:(앗! 잠드실 뻔 했는데.. 아쉬운 마음을 감추고 당신의 박수에 방긋 웃었다.) 좋다고 하시니 저도 좋아요. 이제 책 읽을 거예요! (가사가 적힌 책장을 넘기고 동화의 첫장을 펼쳤다.)
동화 부분을 넘기면, 이번에는 훨씬 긴 글이 나타납니다.
핸드아웃: 누가 울새를 죽였나?
[Who killed cock Robin?]
누가 울새를 죽였나? / 나, 참새가 말했네. / 내 활과 화살로 내가 죽였다네.
누가 울새가 죽는 것을 보았나? / 나, 파리가 말했네. / 내 조그만 눈으로 내가 보았네.
누가 울새의 피를 받았나? / 나, 물고기가 말했네. / 내 조그만 접시로 받았네.
누가 그의 수의를 짓겠나? / 나, 딱정벌레가 말했네. / 내 조그만 바늘로 내가 짓겠네.
(중략)
하늘의 모든 새들은 / 탄식하며 울었다네. 불쌍한 울새를 위해 / 울려퍼지는 조종을 들으며.
마찬가지로, 수면에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로즈 C. 벨몬트:(대체 동화 내용이 왜 다 이렇담. 으음... 작게 한숨을 숨겼다.) 도련님, 이 동화책이 재미없어요. 그냥 우리 얘기 할까요?
당신은 동화책을 미련 없이 덮습니다. 그러고 보니 당신이야말로 좀 졸린 것 같기도 하네요.
방금까지 같이 깨어 있겠다고 말한 게 무색하게도!
도련님은 약간 피곤한 눈의 당신을 보더니 얘기합니다.
노엘:나한테 읽어주기 좋을 법한 책을 찾아와.
(위를 가리킨다.) 없으면 돌아가도 돼.
로즈 C. 벨몬트:앗, 저희 그냥 대화해요. 아님 제가 책 읽기 원하시면 서재 다녀올게요! (밤 새기로 마음 먹었는데, 돌아갈 수 없다. 마음 먹고 한손을 번쩍 들었다.)
노엘:가만히 앉아있으면 더 졸릴 텐데. (일부러 말한 듯하다.)
로즈 C. 벨몬트:도련님이랑 대화할 거니까 괜찮아요!
노엘:...응. 하고 싶은 대화라도 있어?
로즈 C. 벨몬트:오늘은 낮에 뭐하셨어요? 저 없을 때요!
노엘:낮에? 평소처럼 수업을 들었어.
그게 꼭 가장 대단하고 중요한 것처럼 가르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힘들어. 실생활에 쓰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말야. (어린애 주제에 날카로운 지적을 내놓는다)
...그리고 선생님이 나보다 더 몰라. (투정부리듯 말한다. 아마 과장일 것이다)
로즈 C. 벨몬트:맞아요! 저도 도련님 공부하시는 거 슬쩍 봤는데 하나도 못 알아 듣겠더라구요. 도련님 말씀처럼 나중에 정말 쓰이나 싶기도 하구요. (당신의 말에 방글 웃으며 동조한다.)
노엘:(평이한 얼굴로 끄덕인다. 로즈는 오늘 카페트를 잘못 밟고 넘어질 뻔했던가... 옆에서 모두 보고 있었으니 물어볼 게 없다)
...티백, 또 갖다줄까. (떨어지지 않았냐고 묻는 듯하다)
오늘의 티타임은? (자길 재우느라 못 한 건 아닌지 살피는 눈치)
로즈 C. 벨몬트:앗 정말요? 네, 다 떨어져가고 있었어요. (당신의 말에 화색하다가 잠들기 전에 있는 자신의 조촐한 티타임을 신경 써주는 당신이 기특하고 어여뻐서 푸슬 웃었다.) 괜찮아요. 오늘은 도련님과 이렇게 얘기하면서 밤새보고 싶은 기분이니까요! 그리고 지금 티타임 해버리면 기절하듯 잠들어 버릴 거예요.
노엘:종류는 뭐가 좋아? (자기가 사오는 것도 아니면서-오히려 심부름 담당 사용인에게 부탁하거나 주방에서 훔치면 훔쳤지- 말만 해 보라는 듯 시킨다)
...그럼 지금 열자. (언제나처럼 시간 같은 건 신경쓰지 않고 방을 조르르 나간다)
(따라오라는 듯, 더 앞서가지 않고 방문 앞에서 기다린다)
로즈 C. 벨몬트:아이참, 그럼 제가 잠들어버릴 거라니까 일부러 그러시는 거죠? (짐짓 화난 듯 무섭게 얼굴을 찡그리지만, 전혀 무섭지도 화난 것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당연하다, 정말로 화난 게 아니니까.)
저 오늘은 안 잘 거라니까요. (투덜거리며 그래도 당신을 따라가기 위해 일어섰다.)
그럼요. 당신이 어떻게 저 천하무적(?) 도련님을 이기겠습니까...
이렇게까지 늦은 시간에 티타임을 여는 것도 처음이고,
아마 간단한 디저트조차 없을 테지만...
맛있는 차만 있다면 모든 게 완벽할 테니까요.
당신은 도련님을 따라 1층, 당신의 방으로 내려갑니다.
묘하게 평소보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밟으며.
―
티백이 슬슬 떨어져간다는 말에
도련님은 당신의 방으로 향하다 말고 궤도를 틀어 식당으로 향합니다.
식당은 주방이 같이 딸려 있으며, 저택 식구 모두가 앉을 수 있을 만큼 넓습니다만...
그것은 오늘처럼 촛불 하나에 의지해 찻가루를 찾아야 할 때는 단점입니다.
불은 켜지 못하고, 당신은 도둑질하듯 몰래 들어와 찬장을 살펴봅니다.
로즈는 평소에 차 종류를 아주 잘 아는 편인가요?
로즈 C. 벨몬트:으음.. 도련님, 여기 있는 건 주인님과 주인마님께서 드시는 거라 비싼 건데요.. 제가 나눠마시는 건 좀 더 구석에 있는 블랜딩 된 퍼스트 계열이에요. (당신이 보라는 듯 가리킨 찬장 안을 촛불에 의지해 훑어보자 틴케이스들에 적힌 홍차 이름을 보고 홀로 작게 경악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그리고 이내 발길을 돌렸다. 조금 질이 떨어지는 찻잎들로 주방에서 일하는 이들이 블렌딩해둔 찻잎을 찾으러 가기 위해서였다.)
좋아요, 당신은 비싼 차는 감히 마셔볼 엄두도 못 내고, 옆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좀 더 낮은 데 있는 찬장을 열어보면...
당신이 잘 모르는 차 종류가 있네요.
아니, 자세히 보니 어떤 브랜드에서 나오는 블렌딩 티백 같은데...
처음 보는 허브가 마구 섞여있습니다.
곤란하네요. 차 효능도, 용량도 모르는데 차를 마실 순 없지 않나요.
로즈 C. 벨몬트:허브 쪽은 잘 모르는데.. (코 끝을 씰룩이며 허브들의 향을 맡다가 작게 침음성을 흘렸다.)
당신이 곤란한 음성을 내고 있으면, 옆에서 도련님이 손짓합니다.
노엘:허브 관련 책은 서재에 많아.
로즈 C. 벨몬트:도련님은 허브차 괜찮으세요? 전 홍차 쪽만 알아서... (당신의 손짓에 종종 다가갔다.)
노엘:(끄덕인다. ) 지금 홍차를 마시면 못 잘 거야.
(다녀오라는 듯 문을 열어주기는 하나, 따라오려고 하진 않는다)
로즈 C. 벨몬트:그렇군요. (따라 고개를 끄덕이고 제 도련님이 열어준 문 앞에 허둥지둥 서서 제가 문을 잡았다.)
어, 허브책을 가져오는 게 낫겠죠? (책을 보고 외워올 자신이 없다.)
노엘:편한 대로 해. (기다리겠다는 듯 식당 한켠의... 탁자 위에 앉는다. 그마저 올라가려다가 탁자가 너무 높아서 한 번 헛디딘다...)
로즈 C. 벨몬트:혼자 계셔도 괜찮으시겠어요? (한 번 헛디디고서 탁자에 올라가 앉은 당신을 안절부절 걱정된 얼굴로 쳐다본다.)
노엘:난 그렇게 어리지 않아. (어리다.)
로즈 C. 벨몬트:알겠습니다. 얼른 다녀올게요! (어른인 척하는 당신을 귀엽다고 생각하며 얼른 다녀오기 위해 문을 나서 서재로 걸음을 빠르게 움직였다.)
로즈 C. 벨몬트:우... 서재는 밤에 오면 으스스하네... (혼자 중얼거리고, 바람 탓에 끼긱, 소리 내는 창문을 한 번 확인하러 간다. 이러다 창문이 깨져서 책이 상하면 호되게 혼이 날 테다.)
어쩐지 위태위태하게 덜컹거리는 창문.
다행히 창문 자체에는 문제가 없습니다만... 바깥이 너무 어둡습니다.
아무리 늦은 밤이라지만, 짙은 안개가 끼어 앞이 전혀 보이질 않네요.
최근 며칠간은 밤낮없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심한 것 같은데…
이 정도의 안개는 이 저택에서 일하게 된 이래로 처음인 것 같아요.
로즈 C. 벨몬트:(새까만 밤 사이로 앞도 볼 수 없게 희뿌옇도록 낀 안개를 보고 괜히 불길한 생각이 든다. 겁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만도 아닌가. 괜히 으스스해져서 소름이 돋은 팔을 한 번 쓸어내리고 창문을 등지고 서서 서재를 한 바퀴 훑어보다 책상으로 다가갔다.)
아까 계단에도 거미줄 같은 게 있었는데, 책상도 제대로 정리 안 한 거 아니야?
(허브책을 가지고 제 도련님에게 돌아가기 전에 책상을 한 번 훑어 정리하기로 마음 먹었다.)
로즈 C. 벨몬트:(생각지도 못한 서류에 깜짝 놀라서 서류를 놓쳤다가 얼른 쪼그려 앉아 주워들었다. 도련님이 알고 계실까? 그러나 물어볼 수 없는 질문이다.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래도 그는 제 도련님이다.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라 생각하며 문서를 정리해 책상에 가지런히 올려두었다.)
허브책, 허브책. (시간이 한참 지나서 도련님이 기다리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퍼뜩 들자 얼른 책장으로 향해서 허브책을 찾았다.)
어서 책을 찾아 돌아가려는데, 당신의 눈에 걸리고 만 게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책상 서랍은 웬만해서는 잠궈두지 않잖아요.
이것도 담당 사용인이 실수로 잠근 건가 봅니다.
음... 잠궈 두면 서류 관리하기가 번거로워지니, 문을 따 놓을까요.
열쇠를 찾거나, 정말 문을 따도 괜찮습니다.
로즈 C. 벨몬트:열쇠가 여기 있을까.. (담당인 누군가를 대신해 책상을 정리해주기로 마음에 먹었으니 마지막까지 다 처리해줘야겠다.)
로즈 C. 벨몬트:(너무 철학적인 책이다.. 자신에겐 너무 어려운 내용이지만, 내용처럼 주변이 거짓이라고, 모든 게 허상이라고 쓸데없는 생각에 잠겨 제 심력을 소모하고 싶진 않았다. 제 주변의 사람들이, 제 도련님이 허상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책을 읽다가 입만 삐죽이고는 챙겨들었다.)
별로 정서교육에 좋지 않아보이는 책이지만, 그래도 서고에 있을 책이니 돌려놓아야겠죠.
책과 종이를 챙기고 다시 거실로 나오면, 저택은 여전히 바쁘고 소란스럽습니다.
로즈 C. 벨몬트:(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다가 지금이면 방에 다들 아무도 없겠지, 라고 생각하며, 사라진 사람들의 방으로 가보기로 했다.)
사용인들의 방은 문패로 주인을 구분합니다.
나타샤와 샬롯의 방 문을 두드리면, 잠겨있지 않네요.
열어보면 정말 평범하디 평범한 방이 펼쳐집니다.
취미가 재봉이었던 샬롯에게 걸맞게 작은 반짇고리와, 조화 장식 몇 개가 책상 위에 흩어져 있고,
창문에는 가랜드를 달아 커튼과 함께 팔랑입니다.
아주 평화롭고 일상적인 풍경이에요.
방의 주인만 사라지지 않았더라면.
로즈 C. 벨몬트:(평화로운 방 분위기에 낮게 한숨을 뱉고는 책상을 들여다보았다.)
책상 위에는 아쉽게도 별다른 게 없습니다.
하물며 어디로 갔다는 단서라든가, 일기라든가... 그런 것조차 없어요.
그렇다면 사용인들은 정말로 난데없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는 뜻입니다.
더 살펴본다고 눈에 띄는 건 없겠어요.
로즈 C. 벨몬트:아무것도 없네... (다시 정리를 해두고는 방을 빠져나왔다.) 그러고보니 아까 그사람이 베인이 맞을까?
인상착의를 모르니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얼핏 베인이라는 신입이 들어왔다는 소문을 들어보았으니, 아주 안 맞지는 않네요.
로즈 C. 벨몬트:(애매한 기분만 안고서 식당으로 향했다. 거기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있을 터다.)
...그레이스가 사라졌다. 하녀장님도 사라졌다. 알제도, 로빈도, 뉴먼도, 캐시도, 그리고... 로즈도. 전부 그 신이 데려가 버렸다. 저택에 하루종일 비명소리가 들린다, 내가 사랑했던 모두가 나를 두고 떠난다, 나만을 두고. 언제까지고 가족일 줄 알았는데, 정작 나를 데려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이제 나와 함께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벌을 받는 걸까? 아니면 모두 내 가족이 아니라서 다시 돌아가는 걸까? 그럼 나는, 나는. 나도...
로즈 C. 벨몬트:(있지도 않은 내일의 일기가 적혀있다. 거기에... 내가 겪은 것 같이 모두가 사라졌지만, 모순된, 있지도 않은 비명소리들과 혼자 남았다는 도련님의 이야기... 이건 대체... 언제 쓰여진 거지..)
(당신의 말과는 전혀 상관없는 말을 꺼냈지만, 이건 일기를 읽는 내내 당신에게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이었다.)
분명, 과거의...... 그리고 지금의 나는, 도련님이 살았다는 사실에 기뻤을 거고, 도련님이 행복하기만을 바랐을 거예요. 그래서 당신이 나, 우리에게만 매달려서 이렇게 계속 슬퍼하고 괴로워하기만 했다는 게 너무... 너무 슬퍼요.
(당신의 손을 잡고 낮게, 그러나 당신에게 들리도록 속삭였다.)
노엘:나는 슬프지 않아요. 모두와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다만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나도 그들의 진짜 가족이었다면 어땠을까, 싶어서.
그럼 내가 이렇게 일주일동안 잠들지 않으려고 해도 걱정해 주었을까요?
(모두 자라는 말밖에 하지 않았지. 그래서 더욱 잠들고 싶지 않았다. 이게 꿈이라면, 차라리 깨지 않는 게 나아.)
로즈 C. 벨몬트:저도, 도련님과 만나서 행복했어요.
주인님 내외는, 글쎄요. 피가 이어지든 이어지지 않았든 그들은 상관없이 그랬을 거 같다는 생각뿐이지만요.
저에겐 자지 않는 도련님이 너무 걱정되었었어요. 외람되지만, ...저에게 주인님내외분은 그렇게 소중하지 않았어서 잘 모르겠어요. 제게 제일 중요한 건 당신과 어머니 뿐이었거든요... 다른 사용인친구들이 소중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저에겐 우선순위가 있고요. 그러니, 이번 주 내내 늘 당신이 걱정이었어요.
소중함은 사람마다 다른 거니.. 그렇게 누군가의 목숨을 쉽게 바치는 사람들에게서 당신께 소중한 걸 원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미안함도 죄책감도 갖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당신을 향해 차분하게 미소지으며 당신의 손을 꽉 잡았다.)
노엘:고마워요, 그렇게 말해 주셔서. (희미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두 손에 불을 비빈다)
로즈 씨가 나를 걱정하는 건 알고 있어요. 바보라도 알지요. 그래도, 눈에 보이는 형태로 확인받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조금 더 어리광부렸어요.
로즈 C. 벨몬트:어리광은 잔뜩 부려주세요.
노엘:몇 번이나 비밀정원을 보고도 똑같이 기뻐해주셔서 감사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도 그 곳은 당신에게 더 잘 어울려요.
비밀 정원에는 가지각색의 꽃들이 얼굴을 비추어요. 로즈 씨가 스노우드롭도, 은방울꽃도, 해바라기도, 국화꽃도 모두 보았으면 좋겠는데, 욕심일까요?
로즈 C. 벨몬트:제가 그랬잖아요. 둘만의 계절로 하자구요. 그러지 않으실 거예요?
노엘:...하지만 모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었는걸요.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제게는 전부 가족이었어요.
여러분의 삶을 되돌리고 싶어서 평생을 바친 것 뿐이에요.
어렸을 때 애착인형이 많았다는 건 잘 알고 있죠? 사실 전 인형뿐만 아니라 모두를 좋아해요. 사정이 있어서 저와는 잘 놀아주지 않지만, 그래도 같은 집에 살고, 각자의 방식으로 신경써 준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 삶을 바쳐서라도 여러분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는데, 이걸 보니 모두 잘못 생각했던 것 같네요.
로즈 C. 벨몬트:도련님은 상냥하시네요. 너무나도요.
(당신의 뺨을 쓰다듬으며 눈을 마주쳤다.)
당신이 잘못한 건 하나도 없어요. 정말요.
노엘:이제 둘만의 계절로 하는 건 무리에요, 하지만... 남는다면, 로즈 씨가 그 정원을 지켜주었으면 해서.
난 어리석었어요. 혼자서 모두를 되살린다는 건 가능할 리가 없는데.
나는 자타가 인정하는 천재에요. 이런 결말까지도 전부 예측한 뒤에 이 연구에 뛰어들었고, 세상의 그 누구도 나를 가르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동시에, 가장 중요한 걸 깨우치지 못하는 바보였죠.
감당할 수 없는 애정을 가지니까, 책임감을 가지게 되고. 결국 애정 하나로 시작했던 일이 모든 자아를 무너트리게 만들죠.
마치 너무 많은 열을 받은 눈사람처럼 녹아내리고 마는 거에요. 그럼에도 봄을 기다리고 말죠.
노엘:...일기의 저는 어땠어요? 생각만큼 한심했나요?
로즈 C. 벨몬트:...(당신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깊게 숨을 내쉬었다.)
당신은 한심하지 않았어요. 너무나도 상냥한 당신이 어떻게 발버둥쳐서 여기까지 왔는지, 당신의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고 어떻게 닳아왔는지... 그걸 알았을 뿐이에요.
나는 늘 도련님의 행복만을 바라왔는데, 제 기도가 부족했나봐요. 조금 더 빌고 또 빌 걸...
궁금한 게 있어요. 솔직하게 대답해주실래요?
저만이 살아남았다는 건 당신을 포함해서인가요?
노엘:여러분이 다시 삶을 얻고 살아가는 게 저에겐 행복이었어요. 그 뿐이에요.
...제 연구는 실패했고, 이 모든 일은 저택에 찾아온 괴한과 계약을 한 결과에요.
계약의 조건은, 일주일 동안 잠에 들지 않고 제가 보고 있는 환각을 계속 유지시키는 것.
하지만 저는 실패했고, 이제 환각 속에는 당신밖에 남지 않았어요.
이 환각을 유지해서 7일째를 맞으면 당신은 살아날 수 있어요. 저는 원래 그래야 했던 대로 소멸할 테고요.
부탁이 있어요. 그 때까지 저와 함께 있어 주세요.
로즈 C. 벨몬트:도련님, 그럼 같이 잠들까요?
(일상 얘기를 하는 것처럼 잔잔하게 얘기했다.)
노엘:...저는 잠들면 안 돼요. 당신이 잠드려면요.
도련님은 자명종 시계를 봅니다.
아까 거꾸로 돌아갔던 귀빈실의 시계와는 달리,
시침과 분침은 정확히 돌아가며 11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로즈 C. 벨몬트:(당신을 따라 시계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같이 잠들자고 한 건데요.
그거 아세요, 도련님? 당신마저 가고 나면, 저는... 당신과 같은 길을 밟게 될지도 몰라요. 혼자 살아남아서 당신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평온하게 사는 게 아니라...... 전 똑똑하지 않으니까 평생 그저 괴로워만 할지도 몰라요.
(죽음은 딱히 두렵지 않지만, 홀로 남는 건... 역시 무서울 것 같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노엘:...잊고 싶지 않아요.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인간의 기억력은 유한해요. 저는 이제 혼자 남겨지는 것도, 누군가를 잊게 되고 싶지도 않아요.
...인간사는 어떤 마더구스보다도 잔인하네요. 그렇게나 보고 싶었는데 이제 둘 중 한 명은 떠나고, 나머지 한 쪽은 남겨져야만 한다니.
하지만, 비록 생각한 대로의 결과를 맞더라도, 당신이 살아가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인생에서 어떤 수모를 겪더라도, 결국은 나를 견디고 살아가줄 거라고. 나에게도 따뜻했던 사람이니, 분명 다시 빛날 수 있을 거라고.
로즈 C. 벨몬트:도련님은... 거짓말쟁이시네요. 떠나지 말라고, 같이 있자고 해두시고선.
그렇게 얘기하시면서 결국 제가 남아있길 바라시는 군요.
노엘:누구라도 그러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이만 잠드세요.
어떤 밤이라도 해는 반드시 뜰 거니까...
…이제는 결정해야 해요, 로즈. 당신은 어떻게 하고 싶은가요?
작은 주인이 10년간 그토록 원했던 일을,
당신이 비로소 이뤄준 후 그의 마지막을 지켜볼지.
그를 모시는 자로서,
또 한 번 밤을 새운 작은 주인이 사라지지 않게…
자장가를 불러주며 잠자리에 들게 해줄지 말이에요.
로즈 C. 벨몬트:... 도련님, 저 책 읽어드리고 싶어요. 아까 책 읽어달라고 하셨잖아요.
(당신을 잡아당겨 침대로 눕히고 그 옆에 같이 몸을 늬었다. 며칠 전의 반짝반짝 작은별은 이미 외웠다. 어린 당신을 재웠었던 때처럼 느리고 고요하게 당신의 가슴팍 위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회중시계는 일기의 내용대로, 1866년 4월 6일 로즈와 노엘이 함께 묻은 게 맞습니다. 그러나 저택의 환각은 4월 1일부터 덧씌워졌고, 4월 4일의 로즈는 미래의 일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에 묻은 기억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이 없어지지는 않기 때문에, 어렴풋하게 몸에 새겨진 기억은 있습니다.
로즈, 10년 뒤의 세상은 어떤가요? 큰일 없이 잘 살고 있겠죠? 저택의 모두는 잘 있나요? 마음에 드는 사람은 만났나요? 그러길 바라요. 완성된 문장으로, 그것도 편지… 를 쓰는 건 처음이에요.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요…….
음. 어릴 때, 어느 성탄절 날 비밀정원에 눈이 가득 쌓여서 작은 눈사람을 만든 적이 있어요. 그 날은 다들 바빠서 나와 놀아주지 않았거든요. 잘 만들지는 못했어요. 온통 울퉁불퉁하고, 눈코입도 대충 박힌 못난이었거든요. 문득 눈사람이 너무나 작고 외로워 보여서 끌어안아 주니, 녹아서 사라져버렸죠. 누구보다 추웠을 텐데, 왜 봄을 맞지 못하는 걸까요? 누구보다 외로웠을 텐데, 왜 사랑받지 못하고 사라진 걸까요? 왜, 혼자가 된 걸까요? … 하지만 말이에요, 비록 내가 녹아 없어진다고 해도 누군가 끌어안아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당신은 내 말을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이 편지를 읽고 있다는 건 내 바람대로 해 주었다는 거겠죠. …감사했어요. 비밀정원이 아닌 곳이라도, 부디 꽃 아래에서 웃으시기를 바라요. 그리고 우리가 보냈던 시간을 비극이 아닌 추억으로 기억해주세요. 다음에는 천재도 연구자도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태어나서, 봄이 찾아와도 녹지 않는 사람이 될게요. 그 때는 꼭 로즈의 자장가를 듣고 잠들 수 있게 해 주세요. 안개가 희뿌연 하늘이 아닌, 작은 별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에서 다시 이야기해요.